지긋지긋한 각종 회의,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상사, 만원 대중교통에 시달리다 겨우 집에 다다른다. 아직 수요일, 내일 다시 오늘과 같은 하루를 반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그저 잠만 자고 싶다. 끼니를 대충 때우고 침대에 모로 누워 SNS에 접속한다. 이런저런 사람들의 그럴싸하게 편집된 일상을 헤매고 나니 몰려오는 정신적 허기. 하루 24시간 내내 어느 시간이든 어느 곳이든 누구에게든 접촉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내면의 풍경과 대면하기는 어려워진 건 아닐까 하는 물음이 고개를 든다. 휴대폰을 끄고 자려고 들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쓸데없는 생각들. ‘아까 회의 때 B가 한 말은 알고 보면 나를 겨냥한 것이 아닐까?’, ‘망할 놈의 남편은 왜 내 카톡에 답이없지?’, ‘엄마한테 전화 안 한 지 일주일이 다 됐네!’ 오늘 밤도 엉킨 실타래 같은 생각의 노예가 되어 하루를 마무리한다.

직장 생활 14년 차, 전에 없던 불면증이 생겼을 때 한 친구가 명상을 권했고, 내 생애 처음으로 명상 센터를 찾았다. 요가는 지난 10년간 내 일상의 가장 중요한 일과였지만 명상 수업은 처음이었다. 수카사나(책상다리 자세)로 색색의 담요 위에 둥그렇게 둘러앉은 사람들 속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자 안내자가 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코끝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숨에 집중해봅니다. 억지로 깊거나 느리게 호흡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저 자연스러운 내 호흡을 관찰하세요.” 만성비염으로 태양 경배 자세를 5회쯤 하고 나서야 겨우 실낱같은 숨이 비강을 스치는 나는 다른 사람들의 깊은 동굴 속에서 울리는 듯한 숨소리에 기가 죽었다. 우아하게 활 자세를 펼치는 수강생 옆에서 손도 잘 못 올리던 처음 요가원에 갔을 때처럼 말이다. 안내자는 무선 헤드폰을 나눠주며 쓰라고 했다. 다른 이들의 숨소리는 차단되었고,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집중하다 보니 현실계로 나 있던 문이 스르륵 닫히는 느낌이 들었다.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온 명상이라는 인류 공동의 정신 수양 프로그램이 첨단 기기의 도움으로 주의가 산만한 현대인에게 무사히 안착하는 순간이었다.

때로는 누워서 명상을 했다. “자신이 누워 있는 바닥을 느껴봅니다. 바닥과 몸이 만나는 그 사이에 의식을 둡니다.” ‘보디 스캔’ 명상은 안내자가 말하는 신체 각 부위에 감각을 집중하는 명상법이다. “먼저 자신의 의식을 오른손으로 가져갑니다. 엄지손가락의 힘을 뺍니다. 집게 손가락의 힘도 뺍니다. 가운뎃손가락이 이완됩니다. 약손가락, 새끼손가락, 오른쪽 손바닥, 손목….” 나중에는 내 몸이 투명하고 파란 바다위에서 담겨 일렁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따뜻한 바닥 때문인지 한들거리는 보드라운 담요 덕분인지 모르지만 ‘의식은 깨어 있되 깊은 이완’이라는 것을 해낸 것 같았다. 사바사나(송장 자세)로 성취감에 도취해 있으려니 강사의 음성이 들렸다. “이완의 느낌을 성취하려고 하지 마세요. 어떤 상태에 도달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순간순간의 감각에 집중하고 거기 머물면 됩니다.”

명상은 요가와도 수영이나 골프와도 달랐다. 애초에 명상이라는 행위를 신체 중심의 활동과 같은 영역으로 생각한 것이 잘못인지도 몰랐다. 명상하는 동안 나라는 그릇 안에 담긴 마음이 그대로 들여다보였고, 명상은 매우 간단하면서도 진도가 더뎠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 의식하지 못한 사이 내 일상에 스며들었다. 요즘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그리고 잠들기 직전에 5분씩 명상을 한다. 휴대폰으로 타이머를 맞추거나 유튜브에서 명상 동영상을 틀어놓고 침대 아래 깔아놓은 요가 매트에서 침묵하며 한 자세로 가만히 있는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자신의 저서에서 명상하지 않았더라면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을 쓸 수 없었을 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도 명상을 하면 내가 이전보다 대단히 나은 인간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명상을 시작한 이후로도 나는 담대한 현자의 마음을 갖추지는 못했다. 다만 무엇이든 맞아들일 수 있는 담담한 용기와 어떤 상황에서든 생을 즐길 수 있는 은은한 명랑이 내 마음에 깃들고 있다. 결심과 실패를 반복했던 새해 다짐 대신, 지금의 나를 관찰하고 온전히 마주하는 명상을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이 글을 읽는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손쉬운 일이지만 그 결과는 창대할 것이다.

 

TIP 명상 스페셜 클래스

조금 특별한 명상 클래스를 소개한다.

뮤지엄 산, 자이 요가 명상 클래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뮤지엄 산의 한가운데에는 명상관이 자리 잡고 있다. 자이 요가는 이곳에서 특별한 명상 클래스를 진행한다. 최근에는 자비와 사랑에 초점을 둔 ‘자애 명상’을 매월 넷째 토요일마다 선보인다. 나 자신과의 관계는 물론, 타인이나 세상과의 관계에서 사랑과 선한 마음을 내는 명상을 체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문의 www.jaiyoga.co.kr

써니요가 스튜디오

써니요가 스튜디오에서는 히말라야 지역의 명상 도구인 ‘노래하는 그릇’ 싱잉볼을 이용한 사운드힐링 클래스를 진행한다. 일곱 가지 금속을 조합해 만든 싱잉볼의 소리와 진동은 우리 몸속 깊숙한 곳까지 공명해 몸과 마음을 깊게 이완시키며 치유한다. 일주일에 두 번, 월요일 오후 10시, 목요일 오전 7시 30분에 정기적으로 클래스를 진행한다.

문의 카카오톡 ID:sunnyyogastudio

리탐빌

도심에서 자연 속 명상을 체험할 수 있는 리탐빌. 리탐빌의 움직이는 명상은 절 체조를 하며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프로그램이다. 몸 동작들을 취하며 과거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는 데 효과적이다. 평일 오전 6시 45분과 오후 6시, 그리고 주말 오전 9시 15분에 진행되어 원하는 시간대에 방문하기에 좋다.

문의 www.ritamvill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