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현과 메이비의 러브 스토리

윤상현메이비
윤상현이 입은 화이트 셔츠 김서룡 옴므(Kimseoryong Homme), 블랙 오팔빛 다이얼과 블랙 송아지 가죽 스트랩이 어우러진 ‘댄디 그란데 데이트 오토메틱 워치’쇼메(Chaumet).
메이비가 입은 레이스 장식 튜브톱 머메이드 드레스 잭 포즌 바이 블랑슈네쥬(Zac Posen by Blanche Neige), 골드 스톤 디테일 헤어밴드 더퀸라운지(THE QUEEN Lounge), 하트 모양의 18K 화이트 골드에 35개의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사랑스러운 네크리스 ‘리앙 크로스 하트 펜던트’ 쇼메(Chaumet).

“어렸을 때부터 한 번도 놓칠 수 없었던 꿈은 음악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였어요. 그것 외엔 한 번도 다른 꿈을 꾼 적이 없었는데 오빠를 만나서 요즘 내 삶의 목표들이 다시 생겼어요. 한 사람이 올 때, 그 사람의 과거와 미래가 함께 온다는 말이 있는데 내게로 온 오빠의 과거와 앞으로 우리가 함께해야 할 미래들… 소중하게 잘 쓸게요. 우리는 이제 이심이체 아니고 일심동체니까요. 작은 것에 감동하는 나날들을 선물해줘서 고마워요. 처음 같이 여행했던 그 마음으로 함께 이 길을 걸어가요.”

하와이로 출발하기 일주일 전, 지인들과 함께 벌인 청첩장 파티에서 메이비가 윤상현을 위해 준비한 특별한 영상에 쓰인 글이다. 그녀는 스스로 음악을 입히고, 사진을 편집하면서 직접 써 내려간 글로 그의 프러포즈에 대답했다.

 

윤상현메이비
윤상현이 입은 네이비 컬러의 잔잔한 체크무늬 수트, 화이트 셔츠, 도트 무늬 타이 모두 보스(Boss).
메이비가 입은 레이스 디테일 튜브톱 머메이드 드레스 프로노비아스 바이 블랑슈네쥬(Pronovias by Blanche Neige), 플라워 장식 레이스망 헤어밴드 더퀸라운지(THE QUEEN Lounge), 호피 무늬를 가미한 소프트 핑크 컬러 스퀘어 클러치백 롱샴(Longchamp), 핑크 골드 밴드에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를 X자로 세팅한 ‘리앙 크루아제 컬렉션 커프 브레이슬릿’, 같은 디자인의 ‘리앙 크루아제 컬렉션 핑크 골드 오픈워크 링’ 모두 쇼메(Chaumet).

윤상현의 갑작스러운 결혼 발표에 인터넷 세상이 바삐 움직이는 동안, 그의 사랑스러운 피앙세는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며 그의 사랑에 보답했다. “급하거나 앞서 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뭐든 서두르면 과정보다 결론이 앞서게 되니까. 그래서 처음 만날 때도 결혼 같은 무거운 주제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저 얘기가 좀 통하는 친구였으면 좋겠다, 같은 취미를 공유했으면 좋겠다 하는 정도였죠.” 가랑비에 옷이 젖듯, 윤상현은 서서히 메이비의 마음 씀씀이에 동화되었다.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길을 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 잘 아는 나이, 모든 걸 서두르지 않는 윤상현이지만 어느 순간 그의 마음이 그녀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언론에 나온 것처럼 연애 기간은 3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하지만 연애의 온도는 높았죠. 뭐든 천천히, 느리게 하는 걸 좋아하는데 은지(메이비의 본명)에게만은 제 방식이 적용되지 않았어요. 제가 적은 나이가 아니잖아요. 내 사람을 알아차리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진 않은 것 같아요. 은지는 내 인생의 선물 같은 존재예요.”

 

윤상현메이비
메이비가 입은 플라워 레이스 미니드레스 프로노비아스 바이 블랑슈네쥬(Pronovias by Blanche Neige), 쇼트 베일 블랑슈네쥬(Blanche Neige), 화려한 비즈 장식 헤어피스 더퀸라운지(THE QUEEN Lounge), 핑크 새틴 스트랩 샌들 지니킴(Jinny Kim).
윤상현이 입은 화이트 수트, 티셔츠 모두 김서룡 옴므(Kimseoryong Homme), 블랙 앤 화이트 자카드 슬립온 슈즈 크리스찬 루부탱(Christian Louboutin).

모든 연인이 그러하듯 두 사람의 눈빛은 항상 서로를 쫓았다. 허니문을 대신해 떠난 이번 하와이 여행에서 두 사람은 늘 서로를 먼저 생각했고, 윤상현의 손엔 언제나 메이비의 손목이 포개져 있었다. “별로 표현하는 성격이 아닌데, 변하게 하나봐요, 사랑이라는 감정이. 저도 모르게 은지 손을 잡게 되고, 놓치면 안 될 것 같고 그러다 보니까 어느 순간 붙어 있게 되고 그래요.” 자석의 양극처럼 서로에게 이끌려 하나가 되는 건, 사랑이나 마음의 끌림 같은 건 지구상의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요즘처럼 작은 것에 감동하는 나날이 또 있을까 싶어요. 별것 아닌 일에도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고, 도무지 심각하게 느껴지는 게 없어요. 뭐든 다 이해할 것 같고, 그럴 수 있을 것 같고. 생각과 시선이 좀 넓어진다고 해야 하나? 그런 제 얼굴을 보면 뭐가 그렇게 즐거우냐고 오빠가 가끔 묻는데…, 그 답은 오빠인 것 같아요. 이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다, 이 사람이 내게 와줘서 감사하다 하는 생각뿐이에요.”

 

윤상현메이비
윤상현이 입은 민트 리넨 더블 수트 버버리 프로섬(Burberry Prorsum), 블루 스트라이프 티셔츠 세인트 제임스(Saint James), 클래식한 화이트 스니커즈 커먼 프로젝트(Common Projects).
메이비가 입은 핑크 시폰 롱 드레스 프로노비아스 바이 블랑슈네쥬(Pronovias by Blanche Neige), X자 모티프 화이트 골드에 다이아몬드를 섬세하게 세팅한 네크리스 ‘리앙 화이트 골드 펜던트’ 쇼메(Chaumet).

여행을 좋아하지 않던 그녀가 산으로, 바다로 아무 때나 불려나가 부담 없이 그 시간을 즐기게 된 것도 윤상현 덕분이다. 평소에도 산에 오르는 걸 좋아하던 윤상현이, 혼자가 아닌 그녀의 존재를 공기 삼아 좀 더 많이, 자주 길을 나설 수 있었던 것 또한 그녀 덕분이다. “처음으로 같이 여행을 다녀온 게 지난해 은지 생일 때예요. 은지는 작사가라 그런지 혼자서 조용히 작업하는 걸 좋아하는데, 저는 탁 트인 곳으로 은지의 시간을 빼내오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무작정 집 앞에서 전화했죠. 그리고 아무 준비 없이 강릉으로 내달렸어요. 철 지난 바닷가는 한적하고 고요했죠. 가끔 몰아치는 파도 소리 말고는 한없이 조용했는데 그 길을 따라 걷고 또 걸었어요. 그렇게 바다를 따라 걷다 한적한 노래방을 찾아갔죠. 그런 거 있잖아요. 서울에서는 절대로 하지 않을 행동 같은 거. 한 시간쯤 노래만 불러줬어요. 그런데 별거 아닌 노래 선물에 감동하는 은지를 보고 생각이 많아졌죠.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그 마음이 참 예뻤어요.”

 

윤상현메이비
윤상현이 입은 네이비 숄칼라 턱시도 수트, 심플한 네이비 로퍼 모두 란스미어(Lansmere), 화이트 셔츠, 네이비 보타이 모두 구찌(Gucci).
메이비가 입은 은은한 비즈 디테일이 가미된 튜브톱 캉캉 드레스 라자로 바이 블랑슈네쥬(Lazaro by Blanche Neige).

사소한 다툼은 또 다른 애정 표현이라지만 이 커플에게 상대방 때문에 토라지는 건 좀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 말다툼한 게 한 손에 꼽을 정도. 둘 다 불편한 걸 못 견디는 성격이라 감정 싸움 하는 시간이 그리 길지 못하다. 티격태격 약간의 의견 충돌이 있는가 싶다가도 이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손을 맞잡고 수다를 떨게 된다. 운명이라는 게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인연이라는 게 존재하는지도 잘 모르겠다고 두 사람은 이야기한다. 그렇게 얘기하는 동안에도 두 사람은 서로를 응시했고, 두 사람의 손은 꼭 맞닿아 있었다.

“매 순간 행복하지는 않을 수도 있겠죠. 로맨틱한 순간이 지나가면 결혼은 생활이 되는 거니까. 살면서 어렵게 꼬인 문제가 하나쯤 반드시 있을 거예요. 그 일이 인생의 고비로 느껴지지 않게 서로 의지하면서 잘 풀어나갔으면 해요. 정답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이 서로 어긋나지만 않는다면 말이죠. 기다려진다거나 기대하는 마음 대신 우리에게 다가올 시간들을 덤덤하게 맞이하고 싶어요. 되도록이면 즐기는 마음으로. 10년쯤 뒤에는 부부로서 저와 은지가 한 뼘쯤 성장해 있다면 그걸로 우리의 결혼생활은 만족입니다.” 서로가 서툴던 시간, 그때는 서로 부부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김은지는 말한다. 윤상현과 김은지. 앞으로 둘은 절대 떨어지지 않고 서로의 옆자리를 지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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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여정을 미치게 만드는 것

조여정
화이트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귀고리는 조여정 본인 소장품.

제임스 설터는 군더더기 없이 내적 풍경을 묘사하는 완벽한 문장으로 유명한 작가다. 작가들의 작가라는 수식이 따를 만큼 완성도가 높지만, 폐부를 찌르는 통찰로 가득해 생각할 거리 투성이인 설터의 소설은 진도도 잘 나가지 않고, 읽고 나면 진이 쭉 빠진다. 조여정에게 최근에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이 뭐냐고 물으면서 적어도 제임스 설터보다는 더 화사한 글을 쓰는 작가의 책을 답할 줄 기대했다. 삭막하고 막막한 기분 대신 산뜻하고 상큼한 감성이 조여정에게 더 어울릴 거라는 지레짐작은, 그러니까 완전히 빗나갔다. 조여정의 20대는 그런 속 모르는 사람들의 착각과 오해로 뒤죽박죽 상처투성이였다.

“슬럼프요? 20대 내내 그랬어요.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온다더니 정말 그랬어요. 누구나 슬럼프는 있지만, 배우를 내 직업이라고 할 수 있을지 고민스러웠어요. 물론 일은 계속 하고 있었지만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일을 하는 직업이면 좋겠는데 내가 원하지 않는 길로 점점 다가가면서 돈을 벌고 있었으니까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그럼 서른 살까지만 기다려보자고 스스로 유통기한을 정했어요. 일단 기다려보자. 보답이 없으면 연기에 대한 짝사랑을 접자. 그러다 서른에 <방자전>을 만났죠.”

 

조여정
아이보리 니트 풀오버 아크네(Acne Studios).

스스로 슬럼프였다고 말하는 그 시절의 조여정이 어땠는지 어렴풋이 기억난다. 조여정은 인형처럼 예뻤다. 문제라면 그거였을 것이다. 그냥 예쁜 게 아니라 주물로 떠낸 것처럼 흠잡을 데 없이 예쁜 외모에서는 인간적 허점과 흉터, 실수, 좌절 같은 것들을 떠올리기 어려웠다. 깜찍한 외모와 거기 어울리는 발랄한 말투는 실존하는 누군가의 삶을 사는 배우보다는 고만고만한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연예인이 더 어울릴 법한 것이었다. 이름 석 자 대면 누구나 아는 연예인 됐으면 됐지 배부른 소리하지 말라고 할 수도 있지만, 연기에 목마르고, 배우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 그건 감옥이다. 그러다 조여정에게는 <방자전>이 왔고, 그녀는 그 전과 달랐다.

“인지도가 애매하다는 건 배우에게 족쇄예요. 누가 손을 내밀어주지 않으면 재발견될 수 없어요. 조여정? 예쁘지, 좋지, 거기까지인 거죠. 나를 만나고, 얘기를 해보고, 외모와 다른 사람이네, 저 사람을 꺼내주고 싶다, 하는 건 다른 거고. 그래서 캐스팅되건 안 되건 저는 미팅하는 걸 선호해요. 얘기를 나누면서 나를 보여주고 싶으니까. 그냥 인터넷에서 나에 대한 피상적인 정보만 알아낸 사람한테는 내가 그 왜 그 역할을 하고 싶어 하고, 할 수 있는지 와 닿지 않으니까요. <방자전> 때 김대승 감독님이 저를 알아봐주셨죠. 제 안에 극 중 캐릭터한테 있을 것 같은 내적 파도가 있다고 느끼신 것 같아요.”

조여정의 춘향은 현대적이고 입체적인 인물이었다. 춘향이와 조여정 둘 다 새로운 색깔을 입는 계기가 됐다. 세상은 몰랐던 조여정을 처음으로 만났다. 남들 모르게 깊이 가라앉아 있었던 20대를 지나온 조여정에게는 어렵게 만난 길이었다. 하지만 조여정의 다음 행보는 조심스럽기보다 돌발적이었다. 공중파가 아닌 채널에서 만드는 드라마는 이류 배우나 하는 거란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을 때 <로맨스가 필요해>를 차기작으로 선택한 건, 누가 봐도 어렵게 되살린 불씨를 위태롭게 만드는 무모한 결정이었다. 노출 있는 사극에 재미 들렸느냐는 비아냥거림을 감수하고 <후궁: 제왕의 첩>을 택한 것도, <인간중독>에서 굳이 남자 혼을 빼놓는 주연 대신 ‘잠자리 안경’ 쓴 스노브한 아줌마 역을 맡은 것도 그랬다.

 

조여정
원피스로 연출한 재킷 앤 드뮐미스터(Ann Demeulemeester), 슈즈 샬롯 올림피아 바이 라꼴렉시옹(Charlotte Olympia by La Collection).

“그게 저예요. <방자전>을 끝내고 <로맨스가 필요해>를 한다고 했을 때 다들 의아해했죠. 중요하지 않아, 나는 작품 보고 따라다니는 바보야, 내가 던지고 싶으면 던지는 거지. 그런데 내가 미쳐서 하면 사람들은 쳐다보게 되어 있는 것 같아요. <후궁: 제왕의 첩> 때도 또 노출한다고 미쳤다고들 했어요. 난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봐, 어떻게 완전히 다르게 보일 것인지 그게 너무 고민이지, 나는 조금씩은 바뀔 거라고 생각해, 그랬어요. 진심은 언젠가 통하게 돼 있으니까요.”

안전한 선택을 거부한 조여정의 모험은 그만큼의 보상으로 돌아왔다. <로맨스가 필요해> 이후 케이블 드라마는 작품의 완성도가 있다면 채널은 중요하지 않다는 평가를 끌어냈고, <후궁: 제왕의 첩>에서는 20대 여자에게서는 우러나올 수 없는 슬픔과 욕망, 내적 갈등을 눈빛에 담는 연기를 선보였다. 그녀가 통통 튀는 목소리가 아닌 차분하고 기품 있는 목소리를 가진 배우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이 영화에서였다. 짧게 출연했지만 조여정 연기 하나는 진짜 볼만하다는 소리를 들었던 <인간중독> 역시 배우에게 중요한 건 출연 분량과 비중이 아니라는 것을 방증하는 작품이었다. 어느 순간 조여정은 연말 연예대상 시상식보다는 영화제 레드카펫이 어울리는 배우가 돼 있었다. 그런 그녀의 다음 선택은 코미디다. 조여정은 지금 <워킹걸>의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조여정
블랙 레더 라펠 그레이 코트 노케제이(Nohke J), 슈즈 지니킴(Jinny Kim).

“제가 코미디를 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배우는 기다리는 거지 스스로 기획을 할 순 없잖아요. <기담>을 보고 정범식 감독님과 작품을 해보고 싶었어요. 저 사람은 뭐지? 저 미술은 뭐야? 그런데 막상 만나보니 코미디를 하자는 거예요. 사람을 울리는 건 차라리 쉬워요. 웃기는 것에 비하면. 코미디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 줄 알면서 감독님이라 하겠다고 했어요. 뭔가 있겠지. 카드가 많은 분이더라고요. 힘든데 재밌었어요. 코드가 맞았고. 감독님과 어떤 영화를 재밌게 느끼는 부분이 같았어요. 작품에 대한 자부심은 있는데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너무 떨려요. 여배우가 타이틀롤로 코미디를 끌어가는 경우가 별로 없잖아요. 영화 개봉하면서 한 번도 긴장한 적이 없는데 긴장이 많이 돼요. 내 배우 인생에서 이 작품이 어떤 작품이 될지 고민하게 되잖아요. 내 서른넷은 지나갔고, 그 시간은 이 영화에 담겼어요.”

조여정의 캐릭터는 일 좀 한다는 여자들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인물 ‘보희’다. 남편과 섹스할 때보다는 업무 성과가 좋을 때 훨씬 큰 쾌감을 느끼는 워커홀릭, 직장에서는 나무랄 데 없는 직원이지만, 가정생활은 엉망인 그녀가 승진을 앞둔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에서 실수를 하고 해고를 당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과의 관계도 위기에 처하고 보희가 만나는 인물은 섹스 용품점을 운영하는 여자 ‘난희’. 난희 역은 클라라가 맡았다. 한눈에도 딱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다. 비슷한 구석도 없지만, 그렇다고 정반대된다고 할 수도 없다. 코미디 자체가 드문 한국 영화계에서 두 사람이 어떤 화학작용을 보여줄지가 영화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조여정과 만났을 때 영화는 아직 시사 전이었다. ‘주인공은 웃기려고 하는 게 아닌데 너무 진지해서 그게 웃긴 영화’가 조여정이 말하는 <워킹걸>이다. 지금까지 없었던 스타일의 코미디 영화라는 그녀의 자신감이 합당한 것인지는 관객이 평가하겠지만, 이번 영화의 결과가 어떻든 매번 자신을 던지는 조여정의 방식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고 싶은 게 많아서 가끔은 초조할 때도 있어요. 겉으로 볼 때는 잘해나가고 있지만, 제가 서른넷이에요. 내 장점이 아닌가 생각하는 건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런 저도 조금 늦게 시작돼서 한 작품이라도 더 남기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잠깐 초조해져요. 그렇다고 성격이 아무거나 하는 편도 못 되니까요. 연기가 좋아요. 내가 이 사람을 표현해낼 수가 있을까 너무 막막하고 두렵거든요? 시커먼 벽을 앞에 둔 것 같은데, 슬슬 그 형체가 보이기 시작할 때, 내가 어떤 사람을 만들고 있다는 게 느껴질 때의 쾌감이 있어요. 그리고 파트너와 소통이 될 때 진짜 행복해요. 내 연출자, 내 상대역과 소통하고 있다고 느끼고 그게 작품에 담기면 미치는 거예요.”

조여정에게는 목표와 계획이 없다. 그녀에게 중요한 건 지금이고 오늘이다. 자신이 최선을 다하는 현재가 기회를 만드는 날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녀는 좋은 기회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건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조여정
블랙 니트 스웨터 레페토(Repetto), 팬츠 시슬리(Sis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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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식의 도전

최우식 화보
버건디 컬러 스웨이드 블루종 아르마니 익스체인지(A/X), 블랙 니트 톱 띠어리(Theory), 그레이 팬츠 카이아크만(Kai-aakmann), 모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한 소년이 있다. 사지 멀쩡한 아버지는 돈 한 푼 벌지 않고 자식들을 떠맡길 수만 있다면 언제든지 종교를 바꿀 준비가 되어 있고, 허리를 다쳐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된 어머니는 돈을 벌지 못할 거라면 집을 나가라는 남편의 등쌀에 집을 나왔다. 그래도 동생은 아버지 옆에 간신히 붙어 있다. 소년은 집을 나와 천주교의 보육 시설인 ‘이삭의 집’이라는 그룹 홈에서 생활하고 있다. 행여 그곳에서 버림받고 끔찍한 집구석으로 돌아가게 될까봐 자신의 부모에게도 지은 적 없는 웃음을 보육원 원장에게 보이고, 마음에도 없는 신부가 되겠노라며 신실한 척 꾸며낸 신앙심도 보여준다. 원장이 화를 내며 집어 던진 음식을 말끔하게 치우고 나서는 보육원으로 온 후원 물품을 훔쳐다 친구들에게 판다. 친구에게 누명을 씌우고, 살아남기 위해 거짓을 말하는 건 일상이다. 이 열일곱 소년을 책임져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소년은 비겁하고 비열하며 구질구질하게라도 살아남기로 했다.

김태용 감독의 영화 <거인>은 사는 게 숨이 차도록 힘든 상처투성이 소년의 이야기다. 최우식이 그 소년 ‘영재’를 연기했고, <거인>으로 최우식은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하며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는 선뜻 하겠다고 하지 못했어요. ‘아니요, 안 할래요, 무서워요’라고 말했죠. <거인> 시나리오 초고는 지금보다 더 쌨어요. 영재는 악만 남은 아이였고, 엄마 아빠에게 쌍욕도 했죠. 고슴도치처럼 가까이 오는 사람을 모두 찔렀어요. 지금 껏 밝은 역할만 해왔고, 그런 모습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영재를 설득시킬 수 있을 지 걱정됐죠. 처음에는 겁이 나서 못하겠다고 했는데, 결국 도전하기로 결심한 건 제 개인적인 고민의 시기와 맞물렸기 때문이에요. <거인>을 제안받았을 때 제 연기에 대한 고민이 컸거든요. 뭐랄까, 제자리걸음하는 느낌이었어요. 내가 연기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카메라가 편해져서 편하게 까불고 있는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밝고 개구쟁이 같은 역할을 많이 하다 보니 전혀 다른 캐릭터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최우식 화보
박시한 네이비 라이더 재킷과 화이트 티셔츠, 팬츠 모두 그라운드웨이브(Groundwave)

하겠다고 선뜻 나서기 힘들었던 건 <거인>이 여러모로 다른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옥탑방 왕세자>의 잔머리 대마왕 ‘도치산’이나 구멍투성이인 엉뚱한 악역을 연기한 <운명처럼 널 사랑해> 속 최우식은 언제나 유쾌했고 밝고 웃기는 놈이었다. <마리끌레르>와의 인터뷰를 위해 스튜디오에 들어선 최우식은 딱 그런 남자였다. 이를테면 스
튜디오에 들어서자마자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게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네고, 스튜디오를 여기저기 구경하다 스케이트보드를 발견하고는 갑자기 타보거나 나무로 된 벽을 보며 ‘불이 나도 안전한 거냐’는 엉뚱한 질문을 던지는 남자. 그러니까,영재는 분명 그에게 큰 도전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보여준 캐릭터와 다른 것은 물론 영재는 최우식이 전혀 경험하지 못한 세상에서 자란 아이고, 상상해본 적 없는 삶을 사는 소년이니 말이다.

게다가 영재는 <거인>을 연출한 김태용 감독의 어린 시절 경험이 고스란히 투영된 캐릭터다. “굳이 제 자신이 감독님과똑같은 사람이 되려고 하지는 않았어요. 감정은 흉내 낸다고 생기는 게 아니고, 관객이 보게 될 사람은 저 자신이니까요.감독님이 제 연기를 보고 ‘야, 나는 그렇게 안 했어’하는 식으로 디렉션을 주었다면 연기하기가 더 힘들었을 거예요. 감독님이 저보다 딱 세 살 많아요. 그래서 촬영장이 마치 동네 형이랑 연기 지망생이 함께 졸업 작품을 찍는 현장 같았어요.

가끔 의견이 맞지 않을 때면 싸우고 짜증도 내고 욕도 하다가 술 한잔 마시면서 풀고, 그야말로 형제처럼 지냈어요. 감독님이 제 걱정을 많이 해주시거든요. 소소한 잔소리도 엄청 많이 하세요. 이를테면 ‘항상 인사 잘해야 한다.’’ “네 방은 알아서 잘 치워라.” 꼭 엄마 같죠. 이 일을 시작하고 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중에는 좋은 인연도 많았지만 김태용 감독님과는 특히 그 관계가 가깝고 깊어요. 촬영이 끝난 지금까지도요.”

<거인> 촬영장은 함께 연기한 배우는 물론 스태프까지 대부분이 또래였다. 현장의 모두가 서툰 사람들이고, 대신 모두의 꿈은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마지막 촬영이 끝나고 술을 마시는데 이상하게 씁쓸했어요. 내가 아무리 앞으로 경험이 많아지고 나이가 들더라도 이렇게 모두 친구처럼 지내는 현장은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아요.”

 

최우식 화보
퀼팅 코트와 그레이 니트 터틀넥 톱 모두 레이 바이 커드(Leigh by KUD).

길지 않은 그의 연기 인생에서 <거인>은 두 번째 도전이었다. 그의 첫 도전은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열한 살에 캐나다로 이민을 갔던 그의 원래 꿈은 영화감독이 되는 것이었다. 대학에서도 연출 관련 수업을 들었고, 언젠가 연기하는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그러다 친구가 한국에서 배우 오디션 볼 것을 권했다. 그렇게 어느 기획사의 오디션에 서류를 보냈고, 한국으로 오디션을 보러 오라는 답장을 받았다. 오디션 이틀 전에 비행기 티켓을 구입해 얼렁뚱땅 한국에 왔고 덜컥 배우가 되었다.

“철없는 스무 살의 무모한 도전이었어요. 그때 스물다섯 살만 되었더라도 아마 캐나다를 떠나지 못했을 거예요. 아주 많은 걸 버리고 와야 했거든요. 아무런 준비 없이 종이 한 장 들고 벌벌 떨며 오디션을 봤는데 합격했어요. 연기를 공부한 적도 없고 한국어 발음도 어색했죠. 지금보다 삐쩍 말랐고, 캐나다에서는 늘 땡볕에서 놀아 시커멓기까지 했어요. 그런 제가 오디션에 붙은 거예요.” 수업을 땡땡이치고 강에 가서 수영하고, 할 일이 없는 날에는 친구들이랑 뒷산에 올라 풀을 뜯으며 놀던 스무 살의 최우식은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배우가 되었다.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밤새도록 온갖 가게들의 네온사인이 켜 있고, 아무리 늦은 시간에도 술을 마실 수 있어,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난리’가 났었다. 그렇게 들뜬 상태로 시작한 한국 생활은 이제 많이 가라앉았다. “요즘은 술을 마시려면 친구와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조용하고 구석진 자리를 찾아요. 일이 없는 날에는 낚시도 다니고 청계산, 관악산, 아차산 등으로 등산도 가요. 그렇게 밖에서 에너지를 쏟지만, 정반대로 집에 가만히 틀어 박혀 있는 것도 좋아해요. 혼자서 술도 마시고, 그냥 조용히 있어요. 외로울 때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강아지 초코가 있어서 다행이죠.”

들떠 있던 한국 생활은 이제 안정되었고, <거인>을 향한 칭찬과 그 거인을 연기한 최우식에 대한 박수를 뒤로하고 그는 배우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영재를 연기하면서 나 안에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알았죠. 물론 제 연기를 본 사람이 열 명이면 열 명 모두 관계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단 세 명만이라도 내가 연기하는 새로운 캐릭터에 공감하고 마음이 움직인다면 만족해요. 그렇게 또 하나의 틀을 만드는 거죠.”

 

최우식 화보
버건디 컬러 스웨이드 블루종 아르마니 익스체인지(A/X), 화이트 셔츠와 블랙 티셔츠 모두 트룰리 유니크(Truly Unique), 그레이 팬츠 카이아크만(Kai-aakmann), 스니커즈 아디다스 오리지널스(adidas originals).

<거인>은 그에게 많은 첫 경험을 안겨주었다. 친형처럼 지내게 된 감독을 만났고,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았으며, 처음으로 캐릭터에 빠져든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고, 이제야 비로소 자신감이 생겼다. “솔직히 <거인> 이전에는 이렇게까지 연기가 재미있지는 않았어요. 요즘 더 재미있어진 거죠. 그리고 예전에는 없었던 기회가 좀 더 많이 생겼어요. 예전에는 드라마 감독님들만 겨우 저를 ‘아, 쟤 그 까불거리는 애’ 하는 정도로 알아봐주었다면 이제는 영화감독님 중에도 저를 알아보는 분들이 있거든요. 감독님에게,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제 다른 모습의 폴더가 늘어난 것 같아요. 물론 그만큼 부담도 많이 돼요. 당장 지금 하고 있는 드라마 <오만과 편견>도 잘 해내야 하고, 다음에는 어떤 작품을 할지, 그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작품이 들어오기나 할지 걱정도 물론 돼요. 앞으로 더 잘해나가야겠죠.”

<오만과 편견> 촬영이 한창인 와중에 그의 또 다른 영화 <빅 매치>가 개봉한다. 대사는 딱 하나 ‘60억!’. 모든 장면을 신하균과 함께했다.그래서 행복했다. “신하균 선배님과 단둘이 호흡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어요. 선배의 연기를 제가 잘 받아내야겠다고 생각했죠.” 요즘 그에겐 재미있는 일도, 행복한 일도 많아졌다. 그리고 20대가 가기 전에 이루고 싶은 목표도 생겼다. “얼마 전에 형이 <거인> 시사회를 보려고 캐나다에서 왔어요. 회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시는데 형이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부모님을 만날 날이 1년에 고작 2주밖에 안 된다’고 하는 거예요. 제가 늦둥이다 보니 아버지가 나이가 많으세요. 그래서 문득 20대가 가기 전에 배우로서 좀 더 안정된 위치에 자리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버지를 볼 날이 아주 많지는 않을 텐데, 그 전에 더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주인공에 대한 욕심을 말하는 건 아니에요. 내가 배우로서 잘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드리고 싶은 거죠.”

아마도 그의 바람은 실현될 것이다. 그는 요즘 부쩍 연기하는 것이 행복해졌고, 지금의 길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그로서는 확신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큰 짐을 던 기분이다. “일단 신발끈 매듭을 잘 지은 것 같아요. 이제부터 잘해야죠. 지금이 제일 위험한 시기인지도 몰라요. 포장은 잘해놓았으니 이제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포장 속을 잘 채워 넣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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