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정한 김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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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 앤 드뮐미스터(Ann Demeulemeester), 티셔츠 티 바이 알렉산더 왕(T by Alexander Wang), 브레이슬릿 잔클레(Zancle).

조선시대의 가장 나쁜 악당은 누굴까? 죄질로 보나 지명도로 보나 아무래도 연산군, 장녹수, 장희빈 이상이 없을 것 같다. 자동적으로 연인이었던 연산군과 장녹수는 조선시대 최악의 중범죄자 커플인 셈이다. 파란만장하기로도 조선시대 톱클래스인 두 사람의 삶은 숱한 창작자들을 자극해왔다. 장르를 넘나드는 많은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재해석되면서, 둘은 조선을 대표하는 인간 망종의 표본 같은 존재로 온 국민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장녹수의 악행이 최고 권력자의 총애에 힘입어 극단적인 신분 상승을 이룬 여자의 비뚤어진 한풀이라고 한다면, 연산군의 폭정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해석과 상상을 낳는다. 시대를 거스르는 분방함과 폭발적인 에너지의 소유자였던 연산군은 당연하게도 많은 남자 배우들에게 언젠가 나를 찾아왔을 때 도저히 거절할 수는 없을 것 같은 마력의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리스신화나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등장할 법한 굴절된 내면, 현대적 상식과 윤리로는 결코 있을 없는 일들을 있는 대로 저질렀던 ‘문제적 인간’ 연산군과 김강우가 만났다. 영화 <간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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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 김서룡 옴므(Kimseoryong Homme), 네크리스 프리카(Frica).

김강우에게서 연산군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건 쉽지 않다. 연산군이 뿜는다면, 김강우는 품는다. 그가 연기해온 인물들은 어떤 상황에서든 쉽게 자신의 분노와 속내를 분출해내지 않을 때가 많았다. 감정을 드러낼 때조차도 마지막 한마디를 덧붙이기보다는, 마지막 한마디를 삼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세상 살면서 자기 감정을 확 드러내고 폭발시키는 순간을 다 합해봐야 한 시간도 안 될 것 같아요. 그런 게 스트레스잖아요. 참아야 하는 거. 저도 다혈질이지만 내색을 많이 하면서 살지는 않아요. 다들 그러지 않아요? 저는 그게 리얼리티라고 생각해요. 사극은 거기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에요. 이번 작품 하면서 그게 되게 좋았어요.(웃음)”

절제된 내면은 그의 연기뿐만 아니라 눈앞에서 얘기하고 있는 실제 모습에서도 감지된다. 소리 내서 웃고 있는데도 정적이다. 침울한 것과는 다르다. 김강우한테는 쉽게 들뜨거나 끓지 않는 사람의 정제된 다부짐 같은 게 있다. 부패한 관리를 암살하는 무사 역할이면 또 모를까, 민규동 감독은 무슨 생각으로 당신한테 연산군이 되라고 한 거냐고 물었다.

“저도 왜 나한테 이 캐릭터를 주셨는지 의아하긴 했어요. 아마 저 같은 사람이 하는 게 더 재미있다고 느끼신 것 같아요. 술자리에서 나를 택한 이유가 뭐냐고 물어봤으면 좋았을 텐데 감독님이 술을 안 드세요.(웃음) 영화 <결혼전야>를 같이 한 홍지영 감독님이랑 지방으로 무대인사 다니면서 수다 떨다가 나중에 무슨 캐릭터 해보고 싶으냐는 말에 연산군을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얘기한 적이 있어요. 민규동 감독님이랑 부부시잖아요. 작품 준비하면서 그 얘기가 나왔던 모양이에요. 그게 계기가 됐나? 아무튼 나도 모르게 내 안에 그런 욕망이 있었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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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 김서룡 옴므(Kimseoryong Homme), 팬츠 앤 드뮐미스터(Ann Demeulemee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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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 셔츠 돌체 앤 가바나(Dolce & Gabbana), 팬츠 김서룡 옴므(Kimseoryong Homme), 네크리스 앤 드뮐미스터(Ann Demeulemeester).

그와 만난 건, 첫 시사회가 열리기 직전이었다. 김강우 자신도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상태였다. 지금까지 많은 배우들이 보여준 연산군과 김강우의 연산군이 어떻게 다를지, 우리 둘 다 아직은 알 수 없었다.

“공부를 안 할 수가 없었어요. 실제 인물이잖아요. 다들 폭군으로 알고 있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봤고, 여러 배우들이 연기해왔고. 당연히 부담감을 느꼈죠. 내가 작품에 엄청난 누를 끼칠 수도 있는 거고. 그런데 이건 파고 팔수록 뭐가 나와요. 감자밭에서 감자 캐듯이 무궁무진하게 나오는 재미가 있어요. 혼자만의 시간을 완벽하게 갖지 않으면 백전백패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욕을 많이 먹을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방 하나를 일주일 정도 빌려서 나오지 않고, 밥도 거기서 먹고, 빛도 차단하고 거기서 살았어요. 술도 마시고 싶을 때 마시고, 시계도 없는 데서 미쳐가는 거죠. 작품 하면서 처음으로 전지 몇 장을 벽에 붙여서 설계도를 그렸어요. 생각나는 대로 연산군에 관해 이것저것 쓰고, 사진도 붙이고 하는 거죠. 범인 쫓듯이. 그러다 한계에 부딪혔고, 그다음부터 차라리 편해졌어요. 젠장, 걔 사는 거 본 사람 아무도 없잖아? 직접 만나본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서 내 식대로 연산군이 된 거죠.”

작품 끝나고 여행 한 번 다녀오면 싹 리셋돼 대사 하나까지 모든 걸 잊을 수 있었다. 이번엔 좀 다르다. 연산군을 추적하면서 만들었던 연기 설계도는 버리지 못한 채 돌돌 말아 보관해놓았다. 왜 그랬느냐고 물어보게 딱 한 번만 꿈에 나타나달라고 속으로 연산군을 불렀고, 평소에는 잘 듣지도 않으면서 혼자 있을 때는 우울한 음악을, 현장에 나갈 때는 펑키한 음악을 들었다. 이랬다저랬다 미친놈처럼 구는 연산군이 되려고 그랬다. 김강우는 정말 연산군이 되고 싶었다. 김강우의 연산군은 시대를 잘못 타고난 천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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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트 릭 오웬스(Rick Owens), 티셔츠 티 바이 알렉산더 왕(T by Alexander Wang), 나뭇잎 모티프 링 프리카(F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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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트 버버리 프로섬(Burberry Prorsum), 슈즈 처치스(Church’s).

“자기 욕망대로 살았고, 시 잘 쓰고, 춤 잘 추고, 노래 잘하는 예술가 기질이 넘치는 사람이었어요. 왕이 될 사람은 아니었다는 게 문제지. 유교 문화 잣대로는 미친 인간인 거고. 옆에서 자꾸 찌르니까 엇나가고 폭군이 됐지만, 그것도 폐위되고 신하들이 정당성을 얻기 위해 꾸며낸 부분이 많아요. 연산군의 눈빛은 포악스럽지 않아요. 장난감 던져줬을 때 아이같이 재미가 들린 눈이지. 당하는 사람은 미치는 건데, 연산군한테는 그 순간이 재밌거든요. 후반부로 갈수록 브레이크가 고장난 사람으로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자신이 가진 모든 감성을 하나도 절제하지 않고 다 표현하고 사는 사람.”

인터뷰가 끝나고 영화가 공개됐다. 인터넷에는 생각보다 노출 수위가 훨씬 높다는 기사부터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에로틱하다고 할 만한 장면은 없다. 살색과 핏빛으로 가득한 화면에는 섹스도 없다. 거기에는 가학적인 게임과 살아남기 위한 욕망, 공포심, 권력에의 의지가 있을 뿐이다. 진짜 대단한 건 온몸을 던진 배우들이다. 수없이 망설이고 몰래 울었을 것 같은 지독한 노출과 설정을 감수한 여배우들도 놀랍지만, 그만큼 대단한 건 김강우다. 이 영화를 보고 성적 흥분을 느낀 관객이 있다면, 자신의 성적 취향이 건강한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발가벗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연산군을 보면서 관객이 느끼는 건 가장 부끄럽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희화화된 인간의 모습을 볼 때의 모멸감과 불쾌감이다. 나쁜 놈, 웃긴 놈을 택하는 것과 우스운 놈이 되는 건 많이 다를 것이다. 옷 벗고 설치는 연산군은 우습다. 조소하게 만든다. 게다가 그게 연기든 뭐든 옷을 벗는 행위가 얼마나 인간을 연약하게 만들지 생각한다면 김강우의 노출 신은 참 지독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영화를 보고 나서 김강우는 어떻게 봤을지 궁금해졌다. 후회는 없을 것 같다. 헤어지기 전에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재미없었어요. 그냥 이건 오래 하지는 못하겠다는 생각? 현장 나가는 것도 좀 싫었지만, 흥미롭지 않았죠. 미치게 재미있다는 사람, 어릴 때부터 꼭 연기하고 싶었다는 사람들이 부러웠어요. 배우를 평생 하고 싶고, 너무 소중해요, 하는 사람들 보면 가식덩어리, 그렇게 생각했죠.(웃음) 그런데 그랬던 게 다행이에요. 어느 순간 배우를 당당하게 직업으로 인정하는 순간이 오면서 흥미가 생긴 것 같아요. 저는 연기가 좋아서, 영화가 좋아서 연기해요,가 아니라 저는 돈 벌 수 있어 해요, 거길 넘어가니까 다음 순간이 오는 것 같아요. 그게 몇 년 안 됐어요. 아, 이게 소중하구나, 재미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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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ko

키코를 만난 건 일본 최대 연휴인 골든 위크가 한창인 일요일 아침이었다. 촬영 전날 매니저는 드라마 촬영이 5시간 이상 지연돼 그녀가 잠을 제대로 못 잤을 거라는 소식을 전했다. 키코는 후지TV의 <마음이 부서지네요(心がポキッとね)>라는 드라마에서 스토커 기질이 있는 데다 정서가 매우 불안정한 ‘미야코’란 인물을 연기하고 있다. 이 역은 키코가 처음으로 맡은 주인공이다.

“이번 역할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내 주변엔 절대 없었으면 하는 캐릭터예요. 이런 친구가 있으면 무척 귀찮고 짜증스러울 것 같아요. 미야코의 불안정한 성격은 외로움에서 비롯되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이해해주길 바라고, 자신을 컨트롤하고 싶지만 그게 잘 되지 않는 데서 오는 외로움이요. 다소 과장된 캐릭터이긴 하지만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는 이런 외로움과 갈등이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보리 셔츠, 와이드 데님 팬츠 모두 비아플레인(Viaplain).
아이보리 셔츠, 와이드 데님 팬츠 모두 비아플레인(Viaplain).

긴소매 화이트 티셔츠에 몸에 꼭 맞는 데님 쇼츠, 발목까지 올라오는 하얀 양말을 신은 키코가 구주쿠리(九十九里) 해안가의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화장기 없는 말간 피부에선 피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고, 오히려 친구 집에 처음 놀러 온 틴에이저처럼 생기가 넘쳤다. 순간 에디터는 그녀가 수도 없이 들었을 법한 진부한 질문을 참지 못하고 입 밖에 내고 말았다. “그런 피부와 머리카락을 가지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 거죠?” 키코가 모범생처럼 대답했다. “염색을 하지 않으면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유지할 수 있어요. 지금 이 컬러가 실제 제 머리 색이에요. 피부는 젊을 때부터 지나치게 관리하는 게 오히려 피부를 잘못 길들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이 끝나면 서둘러 메이크업을 지우고, 땀을 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서 종종 반신욕을 하는 정도로 관리하죠. 피부가 건조하거나 햇빛에 그을렸을 때는 스팀 팩이나 화이트닝 마스크를 하기도 하지만, 가능하면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피부에 부담을 주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데님 재킷과 데님 팬츠 모두 미스치프.(Mischief), 블랙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데님 재킷과 데님 팬츠 모두 미스치프.(Mischief), 블랙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메이크업을 위해 테이블 앞에 앉았을 때, 키코는 제일 먼저 휴대폰의 플레이리스트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인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사이의 올드 뮤직을 좋아한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제 인생에서 음악을 떼어놓을 수 없게 만든 건 아버지예요. 어릴 땐 우리 아빠는 음악밖에 모르는 사람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어요. 퀸이나 비틀스 등의 록 음악을 좋아하셨고, 디스코와 소울 뮤직도 많이 들으셨죠. 반면 어머니는 클래식과 재즈를 즐겨 들었고, 전 힙합을 좋아했어요. 그런 분위기이다 보니 저와 제 여동생은 모든 장르의 음악을 들으며 자랐죠.” 키코는 과거의 한 시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1980년대의 마이클 잭슨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음악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내내 우리는 마이클 잭슨이 가장 빛나던 시절, 그의 콘서트장에 있는 듯한 기분 좋은 상상에 빠졌다.

그녀는 음악뿐만 아니라 패션에서도 과거에 대한 일종의 경외심을 간직하고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 드레스를 무척 좋아해요. 1990년대에 베르사체의 아틀리에 컬렉션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죠. 당시 진짜 크리스털로 제작한 꽤 무거운 드레스를 두 벌 소장하고 있어요. 그 옛날처럼 여성들이 한껏 차려입고 치명적인 매력을 드러내며 파티를 즐기던 문화가 다시 생겨났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스트리트 패션은 조금 지루해요.”

 

블루 터틀넥 니트 톱 루이 비통(Louis Vuitton).
블루 터틀넥 니트 톱 루이 비통(Louis Vuitton).

키코의 옷장을 채우고 있는 아이템들도 궁금해졌다. “터틀넥 풀오버와 스키니 진이 많아요. 제가 목이 올라오는 옷을 좋아하거든요. 최근 좋아하는 디자이너는 애덤 셀먼(Adam Selman)이에요. 딱 제 스타일이죠. 아, 일본 브랜드 중에서는 카즈마 데토(Kazuma Detto)가 전개하는 DTTK를 알려드리고 싶어요. DJ로도 활동하는 그는 스포티하면서 미래적인 옷을 만드는데, 지금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디자이너랍니다.” 마지막으로 모델이나 연기 이외에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가 있느냐는 물음에 키코가 오래전부터 생각해온 프로젝트를 들려주었다.

“진짜 심각하게 생각해온 문제가 있어요. 한국이나 일본이나 아이돌 스타들을 보면 죽을 만큼 일하면서 상당히 심한 규제 속에 놓여 있잖아요. 이렇게 현실을 모른 채 어른이 되면 경제관념을 키울 수도 없고 자기 관리도 어렵죠. 영화를 제작할 기회가 생긴다면 이런 아이돌 스타가 또래의 평범한 친구를 만나서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필요한 부분을 깨달아가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주인공은 길거리 캐스팅을 하는 게 좋겠네요. 감독은 고민되는데…, 추천해주세요.”

 

터틀넥 니트 풀오버, 데님 팬츠 모두 루이 비통(Louis Vuitton),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터틀넥 니트 풀오버, 데님 팬츠 모두 루이 비통(Louis Vuitton),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니트 톱, 시스루 스커트 모두 푸쉬버튼(pushBUTTON).
니트 톱, 시스루 스커트 모두 푸쉬버튼(pushBUTTON).
백리스 니트 톱 로우클래식(Low Classic), 와이드 팬츠 키옥(kiok),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백리스 니트 톱 로우클래식(Low Classic), 와이드 팬츠 키옥(kiok),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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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댄서, 엄지원

퍼플 컬러 그러데이션이 멋스러운 실크 드레스와 브라운 스트랩 샌들 모두 버버리(Burberry), 화이트 골드에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이어링 렉스다이아몬드(Rex Diamond).
퍼플 컬러 그러데이션이 멋스러운 실크 드레스와 브라운 스트랩 샌들 모두 버버리(Burberry), 화이트 골드에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이어링 렉스다이아몬드(Rex Diamond).

그녀의 인스타그램에는 아름다운 사진들이 많다. 지난해 건축가 오영욱과의 로맨틱한 결혼으로 더없이 행복해 보이던 배우 엄지원은 여전히 일상을 아름다운 것들로 채우고 있었다. 그녀는 많은 곳을 여행하고, 여행을 갈 때는 꼭 책을 챙겨가며, 아름다운 꽃들로 일상의 공간을 채운다. 요즘은 현대무용을 기반으로 하는 운동인 탄츠플레이에 푹 빠져 있다. 화보 촬영장에서 탄츠플레이의 우아한 동작을 보여주기도 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누가 그러지 않았나. 그녀는 확실히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쪽인 것 같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느끼고, 겪으며, 그 경험과 함께 점점 더 아름다워져가는 여자다.

 

입체적인 플라워 자수 디테일이 돋보이는 시스루 드레스 블루마린(Blumarine), 진주를 세팅한스터드 이어링 필그림(Pilgrim).
입체적인 플라워 자수 디테일이 돋보이는 시스루 드레스 블루마린(Blumarine), 진주를 세팅한스터드 이어링 필그림(Pilgrim).
과감한 슬릿이 눈길을 끄는 플리츠 디테일 롱 드레스 아르케(Arche), 가느다란 스트랩이 발등을 감싸는 샌들 버버리(Burberry), 물방울 모양 드롭 이어링 렉스다이아몬드(Rex Diamond).
과감한 슬릿이 눈길을 끄는 플리츠 디테일 롱 드레스 아르케(Arche), 가느다란 스트랩이 발등을 감싸는 샌들 버버리(Burberry), 물방울 모양 드롭 이어링 렉스다이아몬드(Rex Diamond).

탄츠플레이는 참 우아한 운동인 것 같다. 탄츠플레이의 매력은 무엇인가? 일반인이 접근할 수 있는 현대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나는 운동을 재밌게 해본 적이 거의 없고, 유연한 편도 아니었다. 그런데 탄츠플레이를 하며 처음으로 운동의 재미를 느끼게 됐다. 몸은 참 정직하다. 노력한 만큼 변한다. 쓸 줄 몰랐던 근육을 쓰게 되고, 몸이 열리는 것을 느낀다. 무용은 연기랑 닮은 점이 상당히 많다. 어찌 됐든 모두 감정이 아닌가. 동작 속에서 강약을 조절하는 법, 템포감, 시선을 처리하는 방식 등이 그렇다.

계속 무언가를 배우는 사람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탄츠플레이는 오랫동안 가져가고 싶은 취미인가? 몇 년 전 줄리엣 비노쉬와 안무가 아크람 칸이 함께 한 무용 공연을 보러 갔었다. 그때 줄리엣 비노쉬가 40대 중반이었다. 그녀도 몸을 사용할 줄 모르다가 아크람 칸과 인연을 맺으며 무용 공연까지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줄리엣 비노쉬에게 무용은 취미 이상의 작품 활동이 되었다. 나 역시 배우이다 보니까 그 공연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저렇게 다양한 움직임을 가진 배우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먼 미래의 일은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은 내 개인적인 성향과 탄츠플레이가 잘 맞는 것 같다.

 

블랙 홀터넥 톱과 풍성한 볼륨의 샤 스커트 모두 마르니(Marni), 크리스털 이어링 수엘(Suel).
블랙 홀터넥 톱과 풍성한 볼륨의 샤 스커트 모두 마르니(Marni), 크리스털 이어링 수엘(Suel).

6월에 개봉하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이하 <경성학교>)에 출연한 건 조금 의외다. 지금까지 해온 작품과 색깔이 많이 다른데, 출연을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 이해영 감독님과 <페스티발> 이후 두 번째로 함께 한 작업이다. 참 좋아하는 분이다. <경성학교>는 준비 단계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다. 농담으로 그 학교에 교장은 없느냐고, 내가 하면 안 되느냐고 말했는데 1년 후에 감독님이 진짜로 제안했다. 이번 영화는 한국에서 그동안 보지 못한 느낌의 영화일 것이다. 장르를 한정할 수 없는 미스테리 호러 스릴러다.

악역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흥미로운 캐릭터일 것 같다. 그 시대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상당히 똑똑하고 야망 있는 여자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사회인을 꿈꾸지 못하던 조선시대였기에 삐뚤어진 열정을 가지게 된 여자다. 상당히 복잡한 인물이지만, 촬영하면서 그녀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 것 같다. 나는 보통 마지막 촬영 때 잘 울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영화를 마칠 때는 눈물이 났다. 그 사람의 고독에 너무 빠져들어서.

과거의 인터뷰에서 “조금의 슬픔이나 어둠도 없는 사람들한테는 진심으로 마음을 주기 힘든 것 같다”는 말도 했었다. 다양한 경험을 해 여러 감정을 알고 있는 사람이 좋다.

지금은 배우 손현주와 함께 <더 폰>이라는 영화를 찍고 있는데, <경성학교>와 장르가 겹치지는 않나? 다르다고 생각한다. <경성학교>에는 미스터리하고 몽환적인 분위기, 영화 <디 아더스> 같은 분위기가 깔려 있다. <더 폰>은 <더 테러 라이브>처럼 계속해서 사건이 터지며 숨 쉴 틈 없이 달려가는 영화다. <더 폰>이 끝난 후의 작품도 결정되었는데, 그 작품 또한 내게 선물 같은 작품이어서 기대하고 있다.

 

레오타드를 연상시키는 니트 보디수트, 셔츠 스타일의 블랙 롱 드레스, 위빙 디테일을 가미한 스트랩 슈즈 모두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레오타드를 연상시키는 니트 보디수트, 셔츠 스타일의 블랙 롱 드레스, 위빙 디테일을 가미한 스트랩 슈즈 모두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인스타그램에서 ‘자존심의 꽃이 떨어져야 인격의 열매가 맺힌다’는 글귀를 봤다. 요즘의 화두인가? 아니, 그냥 써놓은 거다. 자존심은 연기를 시작하면서 아주 예전에 버려서 이제는 내게 화두가 되지 못한다. 지금의 관심은 온통 사람이 풍성해지기 위한 방법에 쏠려 있는 듯하다.

당신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우선 하나님. 믿음. 거기에서 채워지지 않으면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주는 입장이 될 수도 없을 것 같다. 책도 짬짬이 보고, 텔레비전도 많이 보고, 여행은 나이가 들어도 계속할 것 같다. 세계 일주도 하고 싶다. 어떨 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는 것 같지만(웃음), 그게 잘 안 된다.

남편인 건축가 오영욱도 여행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다. 함께 하는 여행의 좋은 점은 무엇인가? 훨씬 더 풍성하고 따뜻하다. 새로움을 환기시키고 싶어서 여행을 가는데, 혼자 여행하다 보면 여행지에서 또 외로움을 맞닥뜨리게 되지 않나. 어떨 때는 기껏 여행을 떠나왔는데 집에 돌아가고 싶을 때도 있고. 그런데 둘이 있으면 외로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게 되니까.

 

스포티한 메시 소재와 지퍼 장식이 어우러진 뷔스티에 톱과 미디스커트 모두 곽현주 컬렉션(Kwak Hyun Joo Collection), 실버 포인티드 토 펌프스 세르지오 로시(Sergio Rossi).
스포티한 메시 소재와 지퍼 장식이 어우러진 뷔스티에 톱과 미디스커트 모두 곽현주 컬렉션(Kwak Hyun Joo Collection), 실버 포인티드 토 펌프스 세르지오 로시(Sergio Rossi).

두 사람이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 비슷하다고 들었다. 서로 아주 많이 다르지만, 둘 다 창작 활동을 하기에 끊임없이 삶에서 영감을 받길 원한다. 그런 것들을 찾아가는 과정을 함께할 수 있어서 좋다.

두 사람이 함께 기획하고 진행 중인 ‘우연한 배낭여행’ 프로젝트는 흥미로운 시도다. 젊은이들에게 여행이라는 경험을 선물하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된 것인가? 우리는 둘 다 여행을 좋아하는데, 여행이라는 게 가본 사람만 계속 가는 것 같았다. 막상 다녀오면 돈이 없고 시간이 없어도 여행을 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세상에 대해서도 좀 더 많이 알게 되지 않나. 좀 더 많은 사람이 그런 경험을 즐겼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여행을 기부한다’는 개념을 생각하게 됐다. 지금은 ‘우연한 배낭여행’에 이어 ‘우연한 식당’이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 중이다. 요리에 관심 있지만 가게를 차리기 어려운 친구들에게 임대료를 받지 않고 공간을 제공해 식당을 운영할 수 있도록 도우려고 한다.

마지막 질문이다. 가난해도 우아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음, 어려울지도 모르겠다.(웃음) 그러나 행복하게는 살 수 있다고 믿는다.

 

화이트 코튼 드레스 디올(Dior), 크리스털이 귓불을 감싸는 이어링 수엘(Suel).
화이트 코튼 드레스 디올(Dior), 크리스털이 귓불을 감싸는 이어링 수엘(S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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