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사단길에서 만난 건강한 목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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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 한가운데 욕조가 자리하고 있어 깔끔한 화이트 톤 욕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공간. 핸드메이드 욕실 제품을 판매한다. 현재는 케이크를 컨셉트로 한 사랑스러운 파스텔 톤의 핸드메이드 비누와 왁스 태블릿을 주로 판매하지만, 보디 제품과 타월 등 전반적인 욕실 제품도 선보일 예정이다. 카카오와 단호박, 시어버터를 넣어 보습과 탄력 강화에 좋은 달콤한 ‘카카오 어게인’, 장미와 포도씨 오일이 들어 있어 미백 효과가 뛰어난 시트러스 향의 ‘멘디스 핑크’ 외에도 항균, 피지 조절 등의 효과가 있는 9가지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며 세트 상품도 마련돼 있다. 모든 제품은 100% 천연 오일로 만들어 4주 이상 숙성시킨 것으로 계면활성제를 첨가하지 않아 피부에 좋은 것은 물론 세정력도 뛰어나다.

주소 용산구 우사단로10길 87
영업시간 13:00~20:00(금~일요일만 영업), 월~목요일 휴업
문의 02-3785-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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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 편집숍 퀸마마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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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 편집숍 퀸마마마켓 오너 강진영, 윤한희
옷을 사는 여자와 그릇을 사는 여자 사이의 간극은 결코 좁혀질 수 없을 것 같지만 모든 건 변한다. 살다 보면 충분히 옷을 사본 여자는 유행한다고 아무 옷이나 사들이는 대신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옷만 사게 되고, 생전 관심이 없을 줄 알았던 요리를 하고, 그릇을 산다. 트렌드를 좇기보다 일상에 자신만의 스타일을 입히고, 누리고, 치유받고 싶은 사람들이 늘어나는 즈음에 맞춰 돌아온 사람들이 있다. 디자이너 윤한희-강진영 커플이 도산공원과 맞닿아 우거진 숲의 기막힌 전경을 공유하는 곳에 라이프스타일 셀렉트 숍 ‘퀸마마마켓’을 오픈했다. 오브제, 오즈세컨, 와이앤케이, 하니와이 등의 브랜드로 패션 디자이너로서 성공의 정점을 맛본 이들이 대중의 시선 밖에서 보낸 7년간의 공백이 진공이 아닌 숙성의 시간이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이다. 퀸마마마켓이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공간을 끌어가는 사람은 윤한희다. 강진영은 ‘어번 보헤미안’을 컨셉트로 한 브랜드 ‘진케이’로 자신의 디자인 세계에 심도와 밀도를 더하는 데 보다 열중하고 있다. 어번 그린 라이프 문화 공간을 표방하는 퀸마마마켓에서 정식 오픈을 앞두고 퀸마마 윤한희와 만났다.

공백이 길었다. 오브제를 떠난 지 7년이 됐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휴가를 보낸 것 같은, 긴 잠을 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브제가 우리한테 뭐였을까?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해보니 훈장이자 멍에였고, 내 삶의 무게이기도, 자존심이기도 했던 복잡하고 다양한 의미였더라. 그동안 내가 외면하거나 방치했던 나는 누구지? 뭘 좋아하는 사람이지? 거기에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을 만큼만 하면 좋겠다. 물론 아주 팽팽하게 긴장되었던 끈을 놨을 때 처음에는 그 방향성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나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패션의 속도에 맞춰 살았는데 실생활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는 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꽤 한참 갈지자로 걸었다. 안 하면 어떨까?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뭘 한다는 게 그렇게까지 필요한 일일까? 그러다 보니 결론은, 내 몸에서 원하는 일을 재미있을 때까지만 해야겠다는 거였다. 예전에 우리가 살던 곳은 뉴욕이었지만, 나중엔 LA로 훨씬 더 자주 다닌 것 같다. 따뜻한 날씨, 여유로운 사람들. 뉴욕하고 LA가 뭐가 달라요, 누가 물어봐서 LA는 카페에서 먹고 가는데 뉴욕은 다 들고 나간다고 했다. 우리는 왜 뉴욕에서 빨리 먹고 빨리 사무실에 들어가야 한다는 강박에 싸여 살았을까? 그러니까 뉴욕은 젊음의 도시인 것 같고, 웨스트코스트는 그 이후의 도시인 것 같다. 한낮의 뙤약볕은 아니지만, 바람도 불고, 날씨도 따뜻하고, 조금만 나가면 바다가 있고, 굉장히 도시적인 삶이기는 하지만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거기 있더라. 아, 결국은 자연과 가까이 지내면서 어번을 벗어나지는 않는 것. 이게 어번 라이프구나. 내 몸이 필요로 하는 건 그린이구나. 그래서 우리가 컨셉트를 잡은 게 어번 + 그린 + 라이프스타일 숍이다. 패션에서 스타일이 굉장히 중요한 단어였다면, 삶에서는 라이프스타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게 많지 않은 것 같았고, 라이프스타일이 보이는 비즈니스를 하는 브랜드도 많지 않은 것 같았다. 어렸을 때 샌프란시스코에서 공부하면서 경험했던 히피 무드로 뜨거웠던 뉴욕의 삶, 그리고 지금 우리가 추구하는 조금은 느려도 되고, 조금은 한가해지고 싶고, 조금은 편안하게 널브러져 있는 라이프스타일까지 한 공간에 모아보면 너무 재미있겠다. 그래서 시작했다.

바쁘게 산다는 건 일종의 중독이다. 갑자기 멈추긴 쉽지 않다. 오브제가 뭐였지? 했을 때 그게 결국 사람이더라. 사람이 변해가는 것을 바라보는 게 더 괴로웠다. 오브제를 통해 맺은 많은 인연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사회를 통해서 맺은 것들이 얼마나 가벼울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많이 느꼈던 시간이고, 반면에 그래도 끝까지 남아 있던 것도 사람인 것 같다. 가장 좋았던 건, 내 것인지 남의 것인지가 구분이 됐던 거다. 그러고는 굉장히 쉽고 빠르게 편안해졌다. 우리 아버지는 항상 나를 전업주부로 키우고 싶어 하셨는데, 우연히 강진영씨와 결혼을 하고, 그의 권유로 디자인을 하게 됐다. 나는 타고난 것 같지는 않지만, 좋은 눈을 가지려고 노력한 디자이너였던 것 같다. 디자이너가 내 천직인 것 같지는 않은 거다. 디자인을 안 했으면 뭘 잘했을까 생각하면 광고도 재미있을 것 같고, 작가도 재미있을 것 같고, 그 너머의 세계에 대해 굉장히 궁금해했다. 반면에 강진영씨에게 디자인은 종교였다. 그러니까 그는 오브제 다음에는 공부를 선택했다. 내가 그동안 왜 그런 옷을 디자인했는지 한번 찾아봐야겠어. 그 이유가 뭘까? 이런 생각을 한 것 같다. 그에게는 스님들이 화두 하나를 잡는 것처럼 화두를 찾아서 노력했던 시간이었다.

왜 라이프스타일이었나? 내 삶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것들은 잘 모르는데 그걸 원하는 순간 내 것이 됐던 것 같다. 강진영씨가 내 브랜드에 내 이름을 건 브랜드를 꼭 갖고 싶어. 그래서 오브제 강진영으로 시작한 거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 어머니가 쇼가 끝나고 나한테 오시더니 너는 왜 다른 디자이너들이랑 무대에 안 나오느냐고 하시더라. 그러자 강진영씨가 그럼 오브제 동생을 해. 그래서 오즈세컨을 하게 됐다. 강진영씨가 마흔이 됐을 때, 나는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하고 마치 애처럼 말했다. 황당했지만 뉴욕에서 쇼를 하고 싶다고 해서 또 부랴부랴 갔다. 뉴욕에서 돈을 벌어서 써야겠어. 그럼 조금 더 쉬운 라인을 하자. 그래서 하니와이를 한 거다. 즉흥적이고, 정신과 몸이 반응해서 시작한 일들이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디자이너가 레이 카와쿠보다. 정말 내 몸에서 내가 원하는 걸 단호하게 선택해온 것 같다. 그리고 될 때까지 했던 것 같다. 잘해서가 아니라. 그런데 내가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화분도 가져다 놓고, 집도 꾸며놓고, 밥솥도 새로 사면서 느끼는 재미가 너무 컸다. 남들은 스물 몇 살, 서른 몇 살에 느꼈을 재미를 나는 바쁘다는 이유로 오브제를 떠나고 느꼈는데, 이 일상이 패션을 더 하는 것만큼이나 큰 기쁨이고 즐거움을 주는구나. 그러니까 조금 더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이 이 일을 하면, 이 공간에 오시는 분들은 쉽게 쇼핑을 하면서 내가 경험했던 여러 시행착오를 겪지 않아도 되겠구나. 이건 어떻게 보면 지름길 같은 거고, 지난 수십 년의 출장으로 경험했던, 사고 싶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혹은 너무 부피가 커서 사지 못한 많은 것을 한자리에 모아 놓은 집약판 같은 거다.

퀸마마는 누구인가? 이게 말 그대로 여왕마마다.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것이냐에 대해 점점 진지해진 부분이 있다. 우리는 가로수길에서 15평 남짓한 작은 가게로 시작했고 그게 지금 이 공간이 됐다. 우리가 굉장히 큰 혜택을 받은 디자이너구나. 알게 모르게 너무 많은 걸 받았구나. 이제 우리는 뭘 해야 하지? 깊이 고민하게 된다. 퀸은 아주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다. 그 절대 권력이 아주 선하게 쓰이면 무척 좋을 것 같았다. 퀸마마마켓이란 이름을 대니까 가족들이 넌 참 꿈도 크다고 하더라.(웃음) 그게 누구니? 했을 때 나한테는 그게 레이 카와쿠보다. 한국에서는 진태옥 선생님이 그런 분이다. 우리에게 디자이너가 누구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을 하게 해주신 등대 같은 분. 정확하게 맞는 얘긴지 모르겠지만 카를라 소차니만 해도 당시에 편집숍을 하겠다고 한, 파이오니어적이고 파괴적인 인물이다. 동화 작가 타샤 튜더는 살아 계실 때 못 본 게 한이다. 그분이 가꾼 정원이 80만 평이란다. 세상에 이렇게 기여할 수도 있구나. 그렇다고 하면 내 후배들에게는 누가 퀸마마일 수 있을까. 그렇게 되고 싶다. 바른 먹거리, 바른 소비, 이런 아주 단순한 것부터 시작해보자.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패션이든, 디자인이든, 식물이든 내가 속해 있는 분야에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그런 퀸마마들이 많아졌으면, 그리고 그게 모여서 하나의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고, 운동이 되고, 그러다 보면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아지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퀸마마마켓은 어떻게 구성된 공간인가? 지하 1층은 부엌, 1층은 정원, 메자닌 층은 몸에 바르고 집에 두는 향을 생각하며 꾸몄다. 2층은 강진영씨의 공간이다. 그는 나에게 엄마 밥처럼 편하고 따뜻한 존재다. 디자이너로서의 강진영씨는 충분히 인정할 만한 인물이기도 하다. 작가주의적이기도 하고, 매우 진지하고 노력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디자인을 사랑한다. 오롯이 이 층은 강진영씨의 에스프리를 잘 표현했으면 좋겠다. 다만 S/S, F/W 컬렉션이란 이름으로 매 시즌 뭔가를 팔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그건 버리기로 했다. 소비자들이 이제 이번 옷은 살 만큼 샀다고 하면 나머지 기간에는 그 공간을 비워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주자. 그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표현할 공간으로 이 공간을 제공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 그리고 3층은 퀸마마마켓이란 이름을 붙일 만큼 마켓적인 것들을 위한 공간이다. 우리 정서 중에 흥이 있지 않나. 장터가 참 흥겨운 것 같다. 조명 옆에서 식물을 팔 수도 있고, 비싼 옷과 싼 옷을 나란히 놓고 팔 수도 있다. 대신 에디팅을 해서 주제의 일관성을 주면 될 것 같았다.

옷 얘기를 해보자. 진케이와 퀸마마 스튜디오는 어떻게 다른가? 강진영씨는 본인의 이름이 들어가면 진지해지는 것 같다. 지금까지 언제나 경쟁적인 공간에서 옷을 팔았기 때문에 이기기 위한 디자인을 해야 했다. 나는 당신이 하고 싶은 걸 하는 브랜드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고, 그가 잡은 화두는 어번 보헤미안이었다. 보헤미안적인 터치가 들어가지만, 조금은 도회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그의 여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여성보다 더 여성적이다. 어떨 때는 리얼이 아닐 때도 많다. 퀸마마 스튜디오의 옷은 일도 해야 하고, 전철도 타야 하는 여자들의 옷이다. 다만 스타일을 포기하지는 않는 옷이다. 우리의 취향을 보여줄 수 있는 옷으로 구성했다. 지금까지의 디자인은 더하는 거였는데, 이제는 빼는 작업이구나, 이번에 브랜드를 만들면서 배우게 됐다. 여기까지 끝. 중용의 도를 찾아야 한달까. 디자인 작업에서도 우리에게 그런 점이 요구된다는 걸 느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부훌렉 형제는 <메종>과의 인터뷰에서 당신네 집 인테리어가 궁금하다고 하자 집에서만큼은 디자인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답했다. 만약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관심도 시들해지면 그다음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너무 쉽게 싫증을 내는 존재들이니까 말이다. 살아보니까 그때는 그렇게 재밌고 아찔했던 게 1년만 지나면 다 잊어버리게 되더라. 이 공간을 나에게 덮어씌우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이렇게 해놨는데, 좋아해주신다, 그럼 더 잘해야지?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한 거다. 이 공간을 오픈하면서 잘해야지 강박이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 준비 없이 오브제와 헤어졌던 경험을 한 것처럼 무엇을 놓아야 할지 아는 게 훨씬 더 중요한 것 같다. 운명이란, 내가 쥐려고 하면 도망가고, 내가 놓는 순간, 한쪽 문이 막히면 다른 문이 열리는 거니까. 이 공간에 함몰되지 않겠다는 게 내 영원한 숙제다. 편의점 옆에 퀸마마슈퍼가 들어서서 예쁜 식물과 두부와 티셔츠를 팔고 라이프스타일이 편의점에 들어가서 경직되지 않는 것처럼 내 삶을 조금이라도 좋은 가격에 꾸밀 수 있다면 그걸로 내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할 것 같다. 몸도 가볍고, 정신도 가볍다. 더 잘하려고 용쓰지 말자. 힘들면 오래 하겠어?(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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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남자친구의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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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금요일 새벽이었다. 나는 맥주를 마시며 TV 속 축구 경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여자친구 J가 이불을 뒤집어쓰며 소리 좀 낮추라고 말했다. 나는 재빨리 볼륨을 낮추고 그녀의 엉덩이를 톡톡 두드리며 다정하게 말했다. “미안, 좋은 꿈 꿔.” 그러자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나 정말 피곤해.” J는 요즘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연애 초기의 J는 씩씩하고 발랄했다. 둘 다 취준생이던 우리는 가난한 만큼 적게 먹고, 튼튼한 만큼 많이 걷는 데이트를 즐겼다. 당시의 그녀는 결코 지치지 않았다. 영화는 조조로 봤고, 오후엔 무료 전시회를 다녔으며 밤이면 숙박 대신 대실을 선택하곤 했다.

몇 개월 뒤, J가 취업에 성공했다. 그녀는 내게 성공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싶어 했다. 이력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무언지 짚어줬고, 내가 쓴 자기소개서를 상세히 검토했다. 가끔은 답답해하면서 내가 쓴 문장들을 지우고 직접 써주기도 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난 자존심이 상했다. 신입사원 J는 나를 만날 때마다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시시콜콜한 것까지 이야기했다. 팀장의 꼰대 마인드를 비난했고, 과장이 무책임하게 일을 떠넘긴다며 분노했다.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에게 모든 일을 털어놓는 어린아이처럼 사소한 것부터 디테일한 업무까지 이야기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그녀의 고충을 묵묵히 들어줬다. 그런데 어느 날, J가 내게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더 이상 힘든 일을 내게 털어놓을 수가 없다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이유가 무어냐고 묻자 그녀가 대답했다. “너는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더 많으니까.” 그녀의 말이 맞다. 나는 사내 정치가 얼마나 힘든지, 회식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지 알 수가 없었다. J는 회사생활의 고충은 회사원들만이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담담한 목소리로 그런 얘길 꺼내는 그녀의 모습에 불쑥 화가 치밀었다. 아니, 억울했다. 나는 시무룩한 얼굴로 밥풀 묻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이날 저녁 밥값은 J가 계산했다. 내게 다 잘될 테니 걱정 말라며 많이 먹고 힘내라고 했다. 여자친구가 밥값을 내는 날이 잦아질수록 나는 점점 더 작아졌다. 내가 투정 부릴 때면 J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토라진 날 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나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나는 J를 사랑했지만 철이 없었다. 남자의 경제력은 곧 그 남자의 미래라고들 한다. 그렇다면 나는 미래가 없다. J를 만나는 일이 점점 더 괴로워졌다. ‘그녀도 다른 여자들처럼 애인의 차를 타고 집에 가고, 근사한 호텔 레스토랑에도 다니고 싶겠지? 든든하게 결혼 자금을 마련해둔, 아파트 청약통장을 준비해둔 남자를 만나야 더 행복해질 거야’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녀에게 짐이 되진 않을까 걱정됐다. 한편으로는 내게 이런 자괴감을 느끼게 하는 J가 미웠다. 혼란스럽고 슬펐다.

어느 날 J는 내가 들어갈 수 있을 만한 회사들, 도전해볼 법한 자리들을 추천해줬다. 화가 났다. 나는 그녀의 친절한 권유를 강요로 받아들였다. 결국 그녀에게 짜증을 부렸다. 몇 시간 뒤 J는 기다리다 보면 다 잘 풀릴 거라며 나를 다독거렸다. 나는 현실적인 조언을 하는 J에게 허황된 이야기로 답했다. “취업은 힘들 것 같아. 그런 전쟁터에 뛰어들고 싶지 않다고. 대학원에 갈까? 이참에 공부를 더 하지 뭐. 아니면 다시 소설을 써볼까? 영화 시나리오를 써서 잘되면 평범한 월급쟁이보다 훨씬 더 많이 벌 수 있다던데. 어차피 취직해도 다들 금세 뛰쳐나오더만.” J는 내 허무맹랑한 투정을 경청했다. 웃어주고 공감해줬다. 그날 이후로 그녀는 내게 회사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대신 J는 회사 사람들과 자주 술을 마셨다. 거래처 사람을 만나는 날도 있었고, 불금에 회식을 할 때도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내게 거리를 두고 있었다.

J가 회사생활에 익숙해지고 나는 백수 생활이 무감각해질 때쯤, 내 생활 패턴은 온전히 J의 스케줄에 맞춰져 있었다. 그녀의 퇴근 시간에 맞춰 회사 앞 카페로 찾아가 그녀를 기다리면서 이력서를 쓰기도 하고, 책을 읽거나 휴대폰 게임을 하기도 했다. J가 약속이 있어서 만날 수 없는 날에는 방학 맞은 학생처럼 모든 일을 제쳐두고 친구들을 만났다. 혹은 집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는 날도 있었다. 매일이 일요일이었다. 내가 무책임해서 백수가 된 건지, 백수여서 무책임해진 건지 헷갈렸다. 그렇게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J에게 전화가 왔다. 그녀는 회식이나 모임을 끝내고 술에 취한 채로 내 자취방에 찾아오곤 했다. 다음 날 출근하기 가깝다는 이유에서였다. J와 익숙한 섹스를 하고 나서는 나는 다시 게임을 하고 그녀는 피곤하다는 말을 잠꼬대처럼 중얼거렸다. 그렇게 우리의 설레고 뜨거웠던 시절이 지나갔다.

J가 대리로 승진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내 취업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내가 이해를 하건 못 하건 상관없이 그녀는 다시 회사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매우 피곤하다는 불평과 함께. 난 공감할 수 없어 지루하지만 그냥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다. 우리는 J의 월급날마다 고급진 데이트를 하고, 그녀가 늦게까지 회식을 하고 내 방에 온 날엔 섹스를 한다. 무능력한 남자친구라는 열등감은 사라졌다. 아니, 익숙해졌다. 현재 그녀의 마음이 어떤지는 모르겠다. 나는 돈 버는 여자친구를 둔 백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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