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인국은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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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트 스웨터 발렌시아가 바이 분더샵(Balenciaga by BoonTheShop).

사이코패스에게 아버지를 잃고 동생이 납치당한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자라 범죄를 분석하는 프로파일러가 되었고 계속 궁금해했다. 그는 복수심이나 울분, 원망, 분노를 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이코패스가 아버지를 죽인 이유를 알고 싶었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너를 기억해>에서 서인국은 이 이상한 남자, ‘이현’을 연기했다. <너를 기억해>에는 사이코패스인 동생과 동생을 납치한 또 다른 사이코패스, 비밀을 하나씩 간직한 사람들까지 온통 이상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16부 내내 이현은 감정을 꾹꾹 눌러 감추다가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이 폭발시켰고, 또다시 감정을 눌렀다. 모든 게 처음이어서 무섭기만 했던 <사랑비>를 시작으로 멋모르고 덤볐기에 오히려 즐거웠던 <응답하라 1997>, 연기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된 <고교처세왕>과 억울하게 누명을 쓰는 극한의 상황에서 감정을 폭발시켜야 했던 <왕의 얼굴>을 거쳐 <너를 기억해>에 이르러 서인국은 캐릭터를 고민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는 매번 다른 허들을 넘으며 달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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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트 풀오버 우영미(WooYoungMi), 팬츠 폴 스미스(Paul Smith), 스니커즈 컨버스(Converse).

<너를 기억해>가 끝나고 뭘 하며 지냈나? 그냥 푹 쉬었다. 친구들 만나서 술도 마시고 웨이크보드도 타고. 지난 주말에도 웨이크보드를 타러 갔다 왔다.

쉽지 않은 작품이었을 것 같다. 작품은 잘 보내주었나? 솔직히 지금도 힘들다. 지금 힘든 건 캐릭터로 인한 후유증이라기보다는 촬영하면서 생긴 습관 때문이다. 3개월 넘게 밤샘 촬영을 하며 버티던 생활 패턴이 아직 남아 있어서 두세 시간 자면 눈이 번쩍 떠진다. 요즘은 몸이 계속 힘든 상태다. 작품을 하는 동안에는 이현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이질감 때문에 힘들었다. 이번에 연기한 이현이라는 캐릭터는 진짜 이상한 남자다. 어릴 때 자식인 자신을 사이코패스로 여기는 아버지 때문에 정체성이 혼란스러웠던 때문인지 그는 자기 눈앞에서 아버지가 죽는 모습을 지켜보았으면서도 슬퍼하거나 아버지 를 죽인 사람에 대한 증오나 복수심을 키우는 대신 그가 아버지를 죽인 이 유를 궁금해했다. 어떤 현상을 대하는 접근 방법이 나와 완전히 상반된 캐릭터였다. 한번은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동생을 납치한 범인을 마주하고 식사를 하는 장면을 찍는데 뒷골이 땅기고 혈압이 오르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캐릭터에게 이질감을 느낀다는 건 캐릭터를 이해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인 것 같다. 지금껏 내가 살아오며 생긴 내 윤리관과 좀처럼 맞지 않는 이현을 연기하는 순간에는 엄청 몰입했지만, 컷 사인이 떨어지면 온몸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도 무사히 잘 마쳤다. 16부를 이끌어오며 힘들 때면 어떻게 버텨냈나? 연기하는 순간에는 무척 신이 났다. ‘내가 언제 이런 캐릭터를 만나보겠나’ 하는 마음이었다. 어떤 장면에서는 연기하면서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숨이 가쁠 정도로 감정이 격해지기도 했다. 그런 순간이면 이상하게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그러다 그 장면을 끝내면 다시 캐릭터와 나 사이의 괴리감때문에 힘들어졌다. 힘든 순간을 잘 버텨낼 수 있었던 건 결국 연기할 때의 카타르시스 때문인 것 같다. 참 이상하지. 입 속이 늘 헐어 있을 만큼 몹시 힘들었는데, 또 엄청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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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와 니트 스웨터 모두 프라다(Prada).

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와 지금, 연기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 것 같나? 많이 변했다. 처음 데뷔했을 때는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신나기만 했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연기가 어려워졌다. 문득 내가 너무 익숙한 연기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이전 작품에서 했던 걸 끄집어 낸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 그런데 이제는 순수하게 내가 지금 맡은 역할만 생각하는 법을 익혔다. 그간 쌓아온 경험들 덕분에 하나부터 열까지 따질 수 있게 되었다. 그 경험들이 고맙다.

벌써 스물아홉이다. 20대의 마지막 해를 잘 마무리하고 있나? 큰 것을 하나 해냈다는 생각이 든다. 살아오며 힘든 순간이 분명 더 많았을 텐데, 시간이 지나면 다 잊혀지지 않나. 그래서 <너를 기억해>를 할 때가 특히 힘들었고, 잘해냈다는 생각을 한다. 내 20대는 후회 없이 열심히 산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정말 열심히 일했다. 대중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는 시간에도 항상 내 직업에 충실하며 살았다. 가끔 요즘 왜 앨범을 내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는데, 사실 음악을 놓은 적이 없다. 오히려 음악에 대한 욕심이 커지고 있다. 이제는 프로듀서가 되어 앨범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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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 언더커버 바이 무이(Undercover by MUE), 셔츠 김서룡 옴므(Kimseoryong Homme), 데님 팬츠 아르마니 진(Armani Jeans), 구두 닥터마틴(Dr. Martens).

의외다. 음악보다는 연기에 더 집중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직업이다 보니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제작 편수로만 보면 앨범보다 드라마가 많으니 말이다. 하지만 기타 수업도 받고 작사, 작곡 공부도 하며 음악을 계속 하는 중이다.

새로운 앨범은 언제 만날 수 있는 건가? 때가 되었다는 이유로 앨범을 내고 싶지는 않다. 시기를 정해놓으면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없을 것 같다. 장르를 굳이 제한할 생각도 없다. 다만 음악에 내 얘기를 담고 싶다. 내가 부르는 노래에 담긴 멜로디와 가사가 내 얘기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 안에 쌓아둔 걸 끄집어내겠다는 말이 아니다. 그런 것 있지 않나. 비가 오는 날엔 막걸리가 생각날 때도 있고 소주가 당길 수도 있고, 그도 아니면 나가기 귀찮을 때도 있다. 같은 상황에도 매번 다른 기분. 어느 순간 내가 느낀 즉흥적인 기분을 음악에 담아내고 싶다. 그야말로 솔직한 내 얘기와 내 기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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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트 터틀넥 풀오버 엠피 디 마시모 피옴보 바이 쿤(MP di Massimo Piombo by KOON), 팬츠 알테아(ALTEA).

지금부터 당신의 오늘에 대해 물어보려고 한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한 일은? 아침 8시쯤 일어났는데 너무 배가 고파서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 안에 돼지 목살이 있길래 꺼내서 아주 매운 청양고추, 쌈장이랑 먹었다. 참 달걀말이까지 만들어 먹었다.

오늘 들은 음악은? 뭐였더라. 아, 존 메이어의 ‘그래비티’.

오늘 왜 그 옷을 골라 입었나? 어제 반바지를 입어서 오늘은 긴 바지를 입고 싶었다. 패션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냥 그때그때 입고 싶은 걸 꺼내 입는다. 쇼핑도 계절이 바뀔 때 한 번씩 하는 게 전부다. 여름에는 여름옷, 겨울에는 겨울옷.

자기 전엔 뭐 할 건가? 남은 게임 해야지. 플스 게임을 하는데 스토리가 있는 게임이라서 한 번 깨려면 며칠 걸린다. 요즘은 배트맨 게임을 하고 있다. <너를 기억해>가 끝나고 별생각 없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보내는 중이다. 영화도 감정적으로 기복이 큰 작품 말고 <미니언즈>처럼 집중해서 보지 않아도 되는 것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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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와 니트 스웨터, 팬츠 모두 프라다(Prada), 구두 처치스(Church’s).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서인국은 우리가 보는 서인국과 많이 다른가? 완전히 다르다. 친구랑 있을 때는 너무 편하니까. 오늘 같은 화보 촬영장에 와서 장난스럽게 사람들을 툭툭 치면서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친구와 함께 있으면 행동, 표정, 말투 모든 게 달라진다. 그리고 대화의 수준도 어려지는 느낌이다.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 친구들끼리 모이면 시끌벅적 떠들 때도 있지만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각자 웹툰을 보다가 생각나면 술잔을 부딪히는 식이다.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아지트는 어디인가? 주로 우리 집에서 모인다. 메뉴는 거의 치맥. 노래방에도 자주 간다.

가수도 노래방에서 노래를 열심히 하나? 말이라고! 엄청 열심히 부른다. 잘 부르려고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막 신나게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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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이드 재킷 김서룡 옴므(Kimseoryong Homme), 헨리넥 니트 스웨터 발렌시아가 바이 분더샵(Balenciaga by BoonTheShop), 팬츠 알테아(ALTEA), 구두 알든 바이 유니페어(Alden by Unipair).

촬영 현장에서의 당신은 어떤가? 데뷔 당시와 지금의 서인국은 달라졌을까? 변하지 않는 사람은 바보 같다. <사랑비>를 찍을 때만 하더라도 아무 것도 모르고 무섭기만 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상당히 방어적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때부터 연기에 미친 듯이 빠져들었다. <사랑비>를 할 때는 <슈퍼스타K>로 연예계라는 곳에 발을 들인 지 2년쯤 지난 때였다. 지금껏 살아온 세상과 판이하게 달라 무척 힘든 시절이기도 했다.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도 없고 친구에게 얘기하자니 괜한 소문이 날까 두려워 속에 쌓아두기만 했다. 그러다 <사랑비>의 ‘김창모’를 만나, 비록 내 진짜 감정이 아닐지언정 감정을 표출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내가 연기라는 것을 하며 살 수 있게 되어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연기를 그만둘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나? 단 한 번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무궁무진하게 다양한 연기를 해보고 싶다. 아마 평생을 하더라도 하고 싶은 연기가 남아 있을 것만 같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해가며 오랫동안 연기를 하고 싶다. 가늘고 길게.(웃음)

마지막 질문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청춘은 어떤 모습인가? 나이와 상관 없이 다음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면 청춘이 아닐까? 나는 고등학생 때 가수가 되고 싶어 쉬는 시간마다 노래를 부르고 학교가 끝나면 음악 학원에 가서 또 노래를 불렀다. 지금은 내가 만들고 싶은 앨범과 하고 싶은 연기를 위해 또 열심히 살아가는 중이다. 그 시간이 모두 청춘의 순간이 아닐까? 나는 내 청춘을 잘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이정재가 사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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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트 스웨터와 팬츠 모두 발렌티노(Valentino), 코트와 구두 모두 구찌(Gucci).

이정재를 인터뷰하고 돌아오니 후배가 이런 말을 했다. “전 드라마 <느낌> 보면서 대학교 가면 선배들이 다 이정재처럼 생긴 줄 알았어요.” 나도 그랬다. 엄마 몰래 비디오로 <젊은 남자>를 보고 반해서는 아예 비디오테이프를 사기도 했었다. 오락실에서 사랑을 나누던 <정사> 속 짧은 머리 이정재도 잊을 수 없다. 그렇게 작품 속에서 늘 청춘이 표상일 것 같던 그는 이후 도전을 거듭했다. <선물>에서는 시한부 삶을 사는 아내를 위해 울며 웃기는 코미디언이 되었고, <오! 브라더스>에서는 난데없이 눈물 나게 웃겼다. 그리고 작정하고 멋졌던 <신세계>나 세상을 집어삼킬 호랑이처럼 보이던 <관상>까지. 그러고 보면 꽤 오랜 시간 우리는 이 남자의 영화와 함께했다. 그러는 동안 그는 오늘의 이정재가 되었다. <암살>에서 이정재가 연기한 ‘염석진’은 유일하게 시대를 관통하는 인물이다. 무서울 게 없던 스무 살을 지나 동료를 배신하고, 그 사실 때문에 불안해하며 간신히 세월을 버텨온 그는 비쩍 마르고 배만 나온 노인이 되어 자신의 상처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자신이 얼마나 정의로웠는지에 대해 항변한다. 이제 이정재는 어떤 시간을 배경으로 두고 있어도 자신의 시대로 만들어버리는 배우가 되었다.

<암살>이 천만 영화가 되었다. 의미 있는 영화가 흥행이 잘되어 좋다.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 무엇을 기대했나? 사실 독립군의 활약을 다룬 영화가 별로 없다. 그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기대가 됐다. 배우로서는 부담이 많이 됐다. 그래서 좀 더 준비를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에서 노인 분장을 위해 10kg 넘게 살을 빼고, 아편 방에 있는 장면을 위해서는 일부러 48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촬영했다. 육체적으로도 꽤 힘든 작업이었겠다. 내가 연기한 염석진은 독립운동가였다가 변절하는 사람이다. 독립운동가를 기억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사실 악행을 저지른 사람도 잊지 말아야 하지 않나. 그러기 위해 좀 더 많은 준비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살도 빼고 심리적인 부분을 묘사하기 위해 과거에 해보지 않았던 시도를 했다. 나는 염석진이라는 인물의 불안감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나 자신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이 괴롭혔다. 그렇게 나를 못살게 굴면 지금껏 해보지 못한 연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자신을 괴롭힌 건가?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장면을 상상해봤다. 염석진의 10대는 어땠을까, 부모가 없다면 왜 없을까, 어린 나이에 부모가 없는 심정은 어떤 걸까? 독립운동가가 되어 춥고 배고픈 시절을 겪는 건 어떤 기분일까? 일본군에게 잡혀 고문을 받을 땐 얼마나 두렵고 고통스러웠을까? 옆에서 죽어가는 동료들을 보며 느끼는 불안감은 어땠을까? 이런 것들을 계속 생각하며 불안감을 드러내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표현된 염석진을 보며 관객들이 ‘과연 나라면 독립군으로 살 수 있을까, 아니면 염석진처럼 되었을까’ 자문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역전의 날>을 촬영하고 있다. 중국 영화다. 100% 한국에서 촬영하는 중국 영화다. 영화에서 나는 한국 형사고, 중국 여배우가 연기하는 심리학자와 함께 한 범인을 쫓는 액션영화다.

<빅매치>만큼 액션이 강한 영화인가? <빅매치> 촬영 때는 어깨 인대가 끊어지는 사고까지 겪었다. 그런 사고는 배우가 겪을 수 있는 수많은 경우 중 하나이니 뭐, 어쩔 수 없다. 그만큼 액션의 강도가 대단한 영화였다. <역전의 날>은 그 정도의 액션은 아니지만 속도감은 <빅매치> 못지않을 것이다.

대사의 절반 정도가 중국어라고 들었다. 새로운 도전이었겠다. 좀 더 안정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배우에게 안정적인 환경이란 없는 것 같다. 결국은 항상 도전해야 한다. 왠지 안정적이란 말은 배우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 같다. 연기자는 항상 불안하다. 내가 인물을 잘 표현하고 있는 건지,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의 심리를 내가 잘 이해한 건지 확신도 없다. 그리고 배우는 좋은 시나리오를 만나야 비로소 연기를 할 수 있다. 아무리 많은 시나리오가 들어와도 할 만한 게 하나도 없을 때가 있다. 항상 좋은 작품만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게 현실이니까. 시나리오를 보고 출연을 거절할 때는 내가 이걸 안 하면 얼마나 쉬어야 할까 싶어 걱정되기도 한다. 최고의 시나리오를 골랐다 해도 과연 얼마만큼 내가 잘해낼 수 있을지 또 불안하다. 배우의 삶은 결국 그렇게 불안의 연속인 것 같다.

20대를 지나는 배우들은 연기를 공부하듯이 하는 것 같다.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와 지금, 작품을 준비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 같은가? 나는 오히려 반대인 것 같다. 20대와 30대에는 정말 많이 놀았다. 작품에 들어가면 준비를 많이 하기보다는 본능적인 부분에 많이 기댔다. 오히려 지금 치열하게 공부하고 준비한다. 자료를 참고하거나 캐릭터와 관련된 인터뷰를 읽거나 연습을 하면서 캐릭터에 매달린다. 아마도 연기를 하면 할수록 더 욕심이 생겨 연기에 접근하는 내 태도 자체가 달라진 것 같다. 그리고 자꾸 새로운 것을 찾으려고 한다. 또 새로운 것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려니 열심히 공부하지 않을 수 없다. 연기 공부는 아무리 해도 끝이 없다.

연기는 아직도 어렵나? 물론이다. 연기는 하면 할수록 더 진짜처럼 하고 싶고, 보이는 것도 더 많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면 경험도 쌓이고 살면서 느끼는 것도 많으니, 연기를 할 때도 이전보다 더 많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보이는 것만큼 욕심도 커지고 준비하고 싶은 것도 많다.

연기하면서 가장 두려운 건 뭔가? 내가 보여주는 것들이 더 이상 신선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내가 보여주는 것들이 식상하지 않도록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유행하는 것, 그리고 대중의 생각을 알려고 노력한다. 그러려면 평소에 눈과 귀를 활짝 열고 있을 수밖에 없다. 배우는 결국 사람을 연구하는 직업이다. ‘왜 저 사람은 이 상황에서 이렇게 행동할까?’ 왜 저런 말을 할까?’ 하는 걸 계속 생각한다. 연구 아닌 연구인 셈이다. 아쉬운 건, 그러다 보면 오히려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거다. 배우의 삶은 나보다는 다른 사람의 생각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작품을 하며 수많은 삶을 살아왔다. 당신이 연기한 수많은 인물 중 그리운 사람이 있나? 많다. <태양은 없다> <정사> <시월애>…, 그중에서도 내 첫 영화인 <젊은 남자>는 특히 그립다. <젊은 남자>의 ‘이한’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인물 아닌가. 그러고 보면 20대의 나는 내 연기에 대한 확신에 차 있었던 것 같다. 본능적으로 빨리 반응했다. 고민해서 하는 연기라기보다는 ‘이렇게 해야 해’ 혹은 ‘이렇게 하고 싶어’ 하는 내 본능에 따라 연기했다. 지금은 인물을 해석할 때 이성적으로 생각한다. 뭔가 더 정리되고 매끄럽고 안정적인 맛은 있는데, 에너지가 더 많이 들어간 것 같지는 않다.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더 파괴적이라고 해야 할까? 젊을 때는 연기가 좀 더 번뜩였던 것 같다.

배우를 선택한 건 잘한 일인 것 같나? 그건 잘 모르겠다. 예전에는 부자로 사는 것과 가난한 사람으로 사는 것 중에 무엇이 더 좋으냐고 물으면 당연히 부자를 택했다. 하지만 요즘은 풍족하지 않더라도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굉장히 가난하게 살았던 사람이기 때문에 한때는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앞뒤 안 가리고 일을 열심히 한 적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돈이 없다는 게 꼭 불행한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다만 마음가짐에 달렸을 뿐. 배우가 되지 않았더라도 평화롭게 산다면 그 또한 괜찮은 인생이겠지.

지금은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사는가? 일이 재미있어졌다. 예전보다 훨씬 더. 오히려 젊을 때는 연기의 재미를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렇다고 지금 연기의 재미를 엄청나게 많이 아는 것도 아니다. 다만 조금 더 알게 된 것만으로도 이전보다 훨씬 연기가 재미있어졌다.

연기는 당신에게 고통을 주는가, 기쁨을 더 많이 주는가? 기쁨이 더 많다. 고통이라기보다는 어려움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다. 다만 어려움 때문에 고통스럽지는 않다. 물론 연기를 하다 보면 고통을 느껴야만 비로소 다다를 수 있는 캐릭터도 있다. 염석진이라는 인물이 고통까지 경험해야 했던 인물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고통에 둔감한 편이라 덜 괴로운 걸 수도 있겠다.

당신 인생의 전성기는 이미 왔는가? 아니면 앞으로의 전성기를 기대하는가? 슬럼프에 빠져 있건, 한창 일을 많이 할 때건 나에겐 항상 지금 이 순간이 전성기다.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전성기 아닐까? 지금껏 배우로 살아오며 인기가 아주 많았을 때도 있었고, 주춤했던 시기도 있었다.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다만 일을 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전성기다.

수트와 셔츠 모두 톰포드(Tom Ford).

혼자 사는 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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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트 스웨터 마르니 바이 쿤 청담(Marni by Koon Chungdahm), 팬츠 유밋 베넌 바이 쿤 청담(Umit benan by Koon Chungdahm), 화이트 셔츠와 슈즈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청소는 청소기가 한다지만 자꾸 미루게 되는 건 플러그 꽂는 게 귀찮아서예요. 막상 밀기 시작하면 별것 아닌데 청소기를 꺼내고 콘센트에 꼽는 과정이 번거롭죠. 무선 청소기를 가까이 두고 수시로 사용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만 유선 청소기로 청소해도 집이 항상 깨끗해요. 설거지는 설거지거리가 나오는 즉시 하는 게 맞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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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과 팬츠 모두 플러스 바이 커드(Flus by Kud), 티셔츠와 슈즈, 행거치프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혼자 살아본 ‘경력’은 꽤 중요한 결혼 조건이 될 수 있음을 결혼 후 살면서 깨달았다. 삼시 세끼를 제 힘으로 챙겨본 남자는 적어도 ‘청소는 청소기, 빨래는 세탁기가 하지 않나?’ 하는 식의 ‘망언’은 하지 않는다. 샤워 후 머리카락을 정리하는 것 같은 올바른 습관도 자동 탑재돼 있을 확률이 높다. 티 안 나는 집안일에서 동반되는 사소한 짜증을 공감한다는 것만으로도 ‘혼자남’은 사랑받기에 충분하다. 1년 차 혼자남 강민혁은 요즘 살림의 노하우를 하나씩 깨치는 중이다.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를 접하기 전까지 그가 이토록 ‘야무진’ 청년인지 몰랐다. 동시에 이렇게 담백한 남자인지도 미처 몰랐다. 씨엔블루의 이름으로 전 세계를 돌며 콘서트를 하고 거대한 팬덤을 거느린 그지만 요리를 하기 앞서 블로그를 검색하고, 홀로 추어탕집에 들어가 뚝배기에 담긴 추어탕 한 그릇을 시원하게 비운다. 함께 사는 고양이 두 마리를 살뜰히 챙기고, 정기적으로 꽃꽂이를 한다. 촬영 당일 강민혁은 약속 시간에 정확히 등장했다. 촬영 소품인 전정가위와 빗자루 등을 유심히 살피던 그는 “집에 이 가위 두 개 있어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심지어 준비해둔 꽃들의 이름을 모두 알고 있었다.

“연습생 기간까지 포함하면 멤버들과 7년을 함께 살았어요. 지난해 10월 숙소 계약 기간이 만료돼, 상의 끝에 전원이 동시에 독립했죠. 또래에 비해 일찍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지만 완벽한 의미의 독립은 아니었으니까 설레더라고요. 사람들은 대부분 혼자 사는 데 로망이 있잖아요. 집도 예쁘게 꾸미고 살 것 같았는데 잘 안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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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과 팬츠 모두 발렌티노 바이 무이 청담(Valentino by MUE Chungdahm), 터틀넥 풀오버 산드로 옴므(Sandro Homme), 슈즈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질문을 하니 높낮이의 변화가 크지 않은 목소리, 차분한 표정으로 솔직한 얼굴을 드러내 보인다. “<나 혼자 산다>는 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어서 편안해요. 즐겁게 하고 있어요. 예능 프로그램은 나와 잘 맞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의도적인 요소가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거부감이 들고 신경을 쓰게 되더라고요. 기획된 프레임 안에서 연출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 방송임을 알고 있지만 여전히 쉽지 않아요. 아직까지는 그냥 ‘진짜’가 좋아요. 모니터링을 하다 보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 같은 게 눈에 보일 때가 있어요. 그리고 그 부자연스러움 때문에 때로 제가 바보같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자신 앞에 놓인 기회와 꿈, 재능과 적성 등 20대 청년의 건강한 고민이 담담히 전해졌다. 그는 자신이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변화하는 자신의 감정도 명료하게 표현할 줄 안다.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인데 소리가 바깥으로 안 나와요. 혼자서 부글부글.(웃음) 스스로 재능이나 끼가 많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준비를 예민하게 하는 편이에요. 잘할 수 없는 것을 해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스트레스도 받고요. 승부욕이 강해서 그런 것 같아요. 우리동네 예체능 같은 경우는 다른 사람들보다 운동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예능감이 뛰어난 것도 아니니 쉽지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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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님 팬츠 아미(Ami), 뱅글 모리(Moree), 화이트 셔츠와 뱅글은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음악만큼이나 그에게 확신을 주는 것이 연기다. 2010년 영화 <어쿠스틱>을 시작으로 같은 해 드라마 <괜찮아 아빠딸>, 2011년 <넌 내게 반했어> 등의 작은 역할에서 출발해 40%의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자신의 얼굴을 전 국민에게 알렸다. 그리고 2013년 <상속자들>로 SBS 연기대상에서 ‘뉴스타상’을 수상했다.

“욕심을 부린 만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요. 그리고 욕심과 여유를 함께 가져야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요. <넝쿨째 굴러온 당신>까지 욕심만 있었다면, <상속자>부터는 욕심과 여유를 함께 갖게 된 것 같아요. 연기가 점점 재미있어요. 연기에는 정답이 없잖아요. 자유롭게 답을 채워가고, 언젠가 내 연기가 누군가에게 답이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고요. 모니터링 하면서 ‘저렇게 연기해도 되나?’ 의심이 들 때도 있지만, 연기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복이라고 생각하고 즐기려고 해요.” 강민혁은 음악만큼 오랫동안 연기를 할 생각이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자신의 바람대로 사이코패스나 살인마 같은 지독한 악당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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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 아미(Ami), 팬츠 세인트 제임스(Saint James), 화이트 셔츠와 스카프, 슈즈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드라마와 예능을 고루 해내지만 강민혁이 최대출력을 내는 자리는 드럼 앞이다. 본래의 자리를 잊지 않고 있다는 듯 드럼 스틱을 잡는다. 2009년 일본 인디 신에서 EP 앨범 〈Now or Never, Voice〉를 발매하며 데뷔한 씨엔블루는 당시 길거리 공연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강민혁은 일본에서 쌓은 경험을 미화하지 않으려는 눈치다. “일본에서 시작했다는 것 외에는 특별한 게 없어요. 다 그렇게 시작하니까요. 대부분의 밴드가 클럽에서 소규모 공연을 하다가 메이저 기획사와 계약하고 방송을 시작하잖아요.” 그는 여전히 밴드 음악이 좋다. “댄스 그룹은 만약 한 명이 자리를 비우면 다른 춤이 될 뿐 미완성은 아니잖아요. 하지만 밴드는 무대 위 4명 중 한 명이라도 빠지면 음악이 완성될 수 없어요. 공연 준비를 완벽하게 할수록 재미있어요. 불안 요소가 있으면 그만큼 즐길 수 없으니까 신나게 놀기 위해 철저하게 연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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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셔츠 푸쉬버튼(pushbutton), 데님 재킷과 팬츠, 슈즈 모두 디올 옴므(Dior Homme).

씨엔블루는 지난 9월 14일 정규 2집 앨범 <투게더(2gether)>를 발표했다. 1년 7개월 만이다. 타이틀곡 ‘신데렐라’를 포함 ‘숨바꼭질’ ‘롤러코스터’ ‘히어로’ 등 자작곡 11곡을 담았다.

“씨엔블루를 아이돌로 보는 사람들에게 6년이라는 활동 기간은 꽤 긴 시간이죠. 늘 새로운 아이돌 그룹이 등장하니까요. 소위 저물어가는 그룹이라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뭐, 괜찮아요. 우리가 기대 이상으로 오랫동안 밴드 음악을 할 것이라는 의미를 담아 이번 앨범을 완성했습니다. 가진 역량 내에서 최선을 다했어요. 모든 곡이 좋으니 반드시 전곡을 들어보세요. 트랙 순서대로 들으면 적어도 중간에 끊을 일은 없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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