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의 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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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효섭(김의성)

홍상수 영화의 지질남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효섭으로부터 시작된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비겁한 부류다. 삼류 소설가 효섭은 선후배 문인들에게 무시당하자, 한식집 종업원에게 화풀이를 한다. 소리 지르고 물건을 부수는 등 난동에 가까운 꼴사나운 짓을 저지른다. 그렇게라도 목소리를 내서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한 것이다. 폭력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는 건 가장 질 낮은 비겁한 짓이다. 게다가 효섭은 술이 깨고 나서도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한식집 종업원의 실수를 탓하며 자기변호를 한다. 약자에게 자신의 열등감을 표출하는 모습은 김수영의 시를 연상시킨다. 아, 김수영은 반성이라도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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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문수(이선균)

교수인 문수는 학생 해원과 불륜 관계다. 불륜을 숨기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문수는 늘 불안하다. 하지만 숨겨야만 하는 상황이 해원에게는 부담스럽다. 그래서 해원은 못 참겠다고 하고, 문수는 이해해달라고 조른다. 학생들은 그런 둘의 관계에 무심하지만, 문수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해원은 문수를 견디기 힘들어 한다. 문수는 해원이 누구보다 힘든 걸 잘 안다. 하지만 자신의 욕심을 억누를 생각은 없다. 손해 보기 싫고, 나쁜 남자도 되기 싫은 문수는 우리 주변의 흔한 지질남의 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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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수정> 재훈(정보석)

남자들이 전부 비겁한 것은 아니다. <오! 수정>의 재훈처럼 귀여운 남자도 있다. 그는 수정(이은주)을 보고 첫눈에 반한 뒤 우연을 가장하며 그녀에게 접근한다. 이 귀요미 로맨티스트의 목적은 순수한 처녀인 수정과의 섹스다. 섹스에 성공하기 위해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거나 결혼을 언급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재훈은 애걸복걸한다. 진심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지금 당장 섹스가 하고 싶어 안달난 사람처럼 행동한다. 그래서 성공했느냐고? 수정의 혈흔이 묻은 침대보를 간직하겠다고 칭얼거릴 때는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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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이문호(유지태)

남자는 짐승이다. 그가 아무리 학식이 높다 한들 남자는 본능에 휘둘리는 짐승이다. 이문호는 조금 전 선화(성현아)와 헌준(김태우)이 섹스를 한 사실을 알고, 선화에게 오럴 섹스를 요구한다. 여기에 도달하기까지 두 남자는 경쟁하듯 지질한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선화는 개의치 않고 이문호의 요구를 들어준다. 다음 날 문호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짐승이 되기 싫지만 짐승임을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해변의여인

<해변의 여인> 김중래(김승우)

우리는 종종 서양 남자에게 열등감을 표출하는 한국 남자들을 발견한다. 김중래처럼 말이다. 그는 술자리에서 문숙(고현정)이 독일 유학을 다녀왔다는 얘길 듣고, 독일 남자와 사귀어본 적 있느냐고 묻는다. 문숙이 두세 명이라고 말하자, 김중래는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한다. 서양 남자와 사귀는 여자들을 폄하하면서 온갖 비난을 퍼붓는다. 이 분노의 본질은 서양인의 페니스에 대한 열등감과 문숙에 대한 고정관념이 뒤섞이면서 발생한 감정이다. 이렇듯 열등감은 지질함을 낳는다. 그리고 홍상수 영화답게 서로를 힐난한 둘은 섹스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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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발견> 경수(김상경)

경수는 뻔뻔한 남자다. 그는 “사람은 되기 힘들어도 괴물은 되지 맙시다”라는 명대사를 사람들 만날 때마다 날리지만, 정작 괴물이 되어가는 것은 본인이다. 그는 상대방의 사정보다 자신의 욕망이 먼저인 남자다. 자신을 도와준 선배의 썸녀와 섹스를 하고, 그게 자신의 탓이 아닌 것처럼 돌려 말하는 철면피이기도 하다. 후반부에는 자신의 욕망을 사랑으로 포장하는 전형적인 스토커의 기질도 보여준다. 남의 명언을 자신이 한 말인 것처럼 내뱉는 것도 뻔뻔한 괴물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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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지도 못하면서> 구경남(김태우)

구경남은 잘못이 없다. 그는 잘 모르니까. 알려고 한 것뿐인데, 그게 화가 되어 구경남에게 돌아온다. 그런 점에서 구경남은 홍상수 영화의 남자들 중 가장 불쌍하다. 심지어 구경남은 비겁하거나 지질한 인물도 아니다.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짓을 하지 않았고, 말과 행동이 다르지도 않다. 그런 그가 겪는 일이라고는 배신과 비난뿐이다. 왜 구경남의 인생이 그런지 우리는 모르고, 구경남도 끝까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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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문경(김상경)

홍상수 영화 중에서도 이 영화의 남자들은 조금 더 유약한 존재들이다. 영화평론가 방중식(유준상)은 우울증 약을 먹고, 마음 기댈 여자를 찾아 통영에 갔다. 문경은 도피 유학을 결심하고 통영에서 우연히 성옥(문소리)을 만났다. 성옥의 애인 정호(김강우)에게 맞고 나서 소심한 복수도 계획한다. 문경은 마마보이에다 살찌고 미련하며, 성옥을 갖기 위해 정호의 뒷담화를 하는 등 온갖 지질한 짓을 일삼는다. 하지만 성옥은 그런 문경을 향해 살찐 뱀이라고 한다. 기어봤자 둔한 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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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방향> 성준(유준상)

성준은 어색한 남자다. 그가 영화과 학생들에게 은근히 잘난 척을 하고, 인생에 대해 설교할 때도 어딘지 어색하다. 영화감독이지만 성공했다고 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 성준은 인간관계도 어색하다. 그래서 그는 우연히 만난 여배우에게 인사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한다. 그런 성준의 자존감은 느닷없는 피아노 연주나 영화감독이라는 타이틀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여주인에게 잘 보이기 위한 어필이다. 이 외의 성준이 북촌에서 맺는 관계는 모두 어색하다. 그가 솔직하지 못해서일까? 아니, 솔직할 수가 있을까?

지드래곤은 여행지에서 어디에 묵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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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말, 지드래곤이 에어비앤비(airbnb)의 호스트가 되었다는 깜짝 소식이 들려왔다. 그가 연습생 시절을 보낸 홍대의 덕양 스튜디오를 아시아 5개국에서 초청한 투숙객들에게 숙소로 제공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그 특별한 경험을 할 행운의 주인공 5명이 선정되었다. 지드래곤의 호스팅을 받을 기회는 놓쳤지만 대신 그가 사심을 담아 뽑은 전 세계의 에어비앤비 위시리스트를 공개했다니 호기심이 동한다. 그의 대담하고 아티스틱한 취향이 드러나는 리스트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미러 하우스, 바르셀로나의 아트 갤러리, 담양의 한옥과 제주도의 돌집 등 국내외 흥미로운 공간이 고루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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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패션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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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로네, 보츠와나 (Gaborone, Botswana)
컬러 인 더 데저트 패션위크(Colour in the Desert Fashion Week) 기간에 진행된 브랜드 블랙트래시(Black Trash)의 화보 촬영 현장을 찾았다. 아프리카 각지의 스타일리스트들은 패션위크 기간이면 모두 보츠와나의 수도 가보로네로 몰려든다.

잔혹한 전쟁의 잔해, 끔찍한 질병, 배고픔에 고통받으며 슬픈 눈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어린아이들. 언제부턴가 우리는 아프리카 하면 이런 어두운 이미지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아프리카의 현실은 불행하기만 한 걸까? 스웨덴 출신의 사진작가 페르-안데르스 페테르손(Per-Anders Pettersson)은 사람들이 세계 각국의 다양한 매체가 실어 나르는 아프리카의 열악한 모습에 익숙해졌고, 결국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깊이 자리 잡게 된 것이라 생각했다. 무려 20년에 걸쳐 아프리카 대륙을 여행하며 사진 작업을 해오던 그는 지난 2009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 중산층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그곳의 생동감 넘치는 패션 트렌드와 문화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때 받은 영감이 계기가 되어 아프리카의 새로운 모습,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건강한 움직임을 담아낸 사진을 선보이게 된 것이다. “이제는 아프리카에 대한 경쾌한 이미지 또한 조명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들만이 가진 특유의 풍성하고 화려한 색감과 통통 튀는 트렌드를 사진에 담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 아프리카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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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는 분명 여전히 수많은 사회적 문제가 벌어지고 있다. 인권 유린이나 종교적 갈등,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발한 전쟁, 가난과 질병 등 우리가 뉴스에서 자주 접하던 슬픈 사건들 말이다. 반면 뉴스에 자주 등장하지 않지만 아프리카에서는 행복하고 기분 좋은 일들 또한 벌어진다. 서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급격히 부상한 중산층이 다져온 소비 시장을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가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프리카의 중산층을 이루는 사람들은 디자이너 브랜드의 옷을 사는 데 큰돈을 쓰기도 하고, 유럽에서 들여온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기도 한다. “아프리카에 패션 열풍이 불기 시작한 건 그들의 경제적 상황이 점점 좋아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소비문화가 발전하면서 시장이 넓어졌어요.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유명한 브랜드의 제품을 갖고 싶어 하죠. 독일의 자동차 회사인 메르세데스-벤츠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패션위크를 공식적으로 후원하고 있고, 음료 브랜드인 베일리가 나이지리아 패션위크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케냐의 패션 시장에도 세계적인 회사들이 대거 참여하기 시작했어요.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진출하는 유럽의 패션 브랜드들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고요. 아프리카의 패션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걸 알 수 있죠. 저는 몇 년 안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패션 트렌드가 전 세계 시장에 큰 영향을 끼칠 거라고 확신해요. 마치 중국이 1980년대를 거치며 빠르게 성장한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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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패션계와 마찬가지로 아프리카 패션계에도 다양한 스타일과 트렌드가 존재한다. 아프리카 대륙의 특이한 기후와 자연환경이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이 되어 아프리카에서만 볼 수 있는 패션 트렌드가 생겨난다. 특히 풍부한 자원과 수준 높은 수공예 기술을 바탕으로 한 소재의 다양성은 디자이너들에게 더욱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선사하기도 한다. 가나에서 만들어진 직물과 에티오피아에서 생산된 전통적인 직물을 바탕으로 새로운 원단을 개발했고, 그렇게 탄생한 소재에 디자이너의 감각이 더해지며 신선한 패션 스타일이 완성됐다.

아프리카에서 만들어지는 독특한 소재는 유럽의 디자이너들에게까지 전해져 패션계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켰다. 스텔라 진, 폴 스미스, 버버리, 모스키노 등 세계적인 브랜드들이 서아프리카에서 만들어진 다채로운 색감의 소재를 즐겨 사용하며, 영국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오래전부터 아프리카 패션에서 받은 영감을 표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지난 컬렉션 의상들은 아프리카 서부에 위치한 나라 부르키나파소에서 생산된 원단과 케냐의 마사이족이 만든 전통 구슬 장식으로 디자인해 눈길을 끌었다. 또한 그녀가 발표한 가방인 ‘스퀴글 레오퍼드 러너 홀돌(Squiggle Leopard Runner Holdall)’와 ‘스퀴글 쇼퍼(Squiggle Shopper)’는 케냐의 전통 수공예 기술로 만들어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이제 서구 패션 시장을 장악하는 꿈을 꾸기 시작했어요. 이미 진출에 성공한 디자이너도 제법 많죠. 아프리카 남부 모잠비크에서 활동하던 젊은 디자이너 타이부 바카르(Taibo Bacar)는 유럽의 패션 시장에서 전도유망한 디자이너로 주목받았어요.” 디자이너 타이부 바카르는 아프리카의 감성을 풍성하게 담아내면서도 여성스러운 디자인이 돋보이는 컬렉션을 선보이며 아프리카를 넘어 포르투갈, 프랑스, 영국의 패션 시장에서 활발하게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디자이너 라두마 엥조콜로(Laduma Ngxokolo)는 아프리카의 전통적인 문양을 패션에 적용한다. 그의 독특한 디자인은 오슬로, 베를린, 뉴욕 컬렉션에서 호평을 받았고 런던의 패션 피플이 사랑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아프리카의 패션계의 흐름을 보면 그곳의 문화 수준과 경제 상황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 세차게 불고 있는 패션과 트렌드의 뜨거운 열풍이 세계시장에 어떤 형태로 혹은 어느 정도의 규모로 영향을 끼치게 될지는 아직 모를 일이다. 다만 그들이 오랜 세월 겪어온 아픔을 딛고 쌓아온 전통과 에너지를 바탕으로 전 세계를 흔들 만한 거대한 움직임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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