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당하는 연애

“대체 왜!” 고개를 숙이고 소리를 질렀다.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또 먹혔다. 나는 호날두로 분해 플레이를 하고 있는데, 연달아 졌다. 이길 수가 없었다. 이상했다. 화면을 뚫어져라 봐도 나의 패스는 번번이 상대 수비수에게 끊겼 고, 친구 놈은 드리블로 나를 농락하며 골을 넣었다. 나는 지는 게 싫다. 너무 싫어서 화가 날 정도였다. 하지만 모두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특히 여자친구에게는 더더욱 그러기 어렵다. 그녀는 내가 화를 낼 수 없게 하니까.

그녀가 처음부터 어려웠던 건 아니다. 우리가 처음 만난 1년 하고 한 계절 전 그녀는 어린 고양이 같았다. 쓰다듬어주길 기다리는 듯, 애처로운 눈빛과 소소한 애교로 내 마음을 녹였다. 수은처럼 녹아버린 내 마음은 그녀를 만날 때마다 온도가 높아졌다. 하지만 나는 달아오를수록 말수가 줄었다.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는 나이를 먹어도 쑥스러웠다. 나는 질문보다 대답을 많이 하는 남자친구였다. 그 대답도 매우 짧거나, 느리거나, 고개를 끄덕이거나 눈을 감았다 뜨는 것으로 대신했다. 왜냐하면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녀의 농담에 어떻게 반응해야 그녀가 웃을지 생각했다. 그렇다고 매끄러운 알고리즘을 거쳐 적당한 답변을 토해내는 건 아니었다. 생각할 마음만 먹을 뿐 머릿속은 재부팅되고 있었다. 가벼운 시사 이야기를 나눌 때도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며 내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빙빙 에둘러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나의 의사 표현 방식을 선호하지는 않았다. 아니, 매우 싫어했다. 그녀는 직설적인 대답을 원했다. 내가 상황과 분위기, 30분 뒤 그녀의 감정 상태를 고려한 대답을 찾는 동안 그녀의 수은은 온도를 높였다. 그녀는 나의 다정함이 지루함으로 바뀌고 있다고 얘기했다. 내가 한숨을 쉬고, 내 마음을 선량하게 변호하기 위한 답변을 찾는 동안 그녀 역시 한숨을 쉬었다. 먼저 가겠다는 그녀를 지하철 개찰구까지 바래다주었다. 그리고 나의 호날두는… 공격을 못 했다.

“착하면 안 돼.” 친구는 시소에 쭈그리고 앉아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 핥으며, 착하게 살면 바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 앞에만 서면 작아졌다. 그녀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게 됐다. 무엇을 먹을지, 먹고 나서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할지 그녀의 의견을 구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점차 우리 관계에서 내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독단적으로 결정했다. 나는 그녀가 먹고 싶은 걸 먹었고, 초특급 SF 액션 블록버스터 에로 무비 대신 유럽 예술영화를 관람했다. 그녀의 회사 앞에서 그녀를 픽업하고, 집까지 모셔다드리는 것 역시 내 업무 중 하나였다. 카톡으로 데이트 신청을 하고, 밥은 먹었는지 물어보는 것 역시 내 중요한 일과였다. 카톡이 소홀해지면 그녀는 애정이 식었다고 했고, 그럼 나는 준비한 대답이 없어 머릿속에서 새로운 알고리즘을 짜야만 했다. 아기 고양이 같던 그녀는 너무 빨리 맹수가 되어버렸다. 내가 그녀의 눈치를 보는 동안, 그녀도 나를 생각할까? 더 좋아하는 사람이 ‘을’이라는데, 내가 더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연애는 그녀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나는 단지 수평적인 연애를 원했을 뿐이다. 드라마에서 말수 적은 남자는 묵직한 카리스마가 있는 존재인데, 왜 나는 가벼운 남자친구인가? 그녀 역시 내 눈치를 보게끔 만들고 싶었다. 갑과 을의 관계를 청산하고 동등한 연인의 관계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저 솔직해지기로 했다. 이기적인 나쁜 남자가 되기로 말이다. 기분이 상하면 기분 나쁘다고 말하고, 운전대를 홱 꺾으며 짜증을 내기도 하고, 삐치면 말을 안하기도 했다. “그럴 필요 없어. 안 어울려.” 나의 치밀한 행동들은 모두 그녀에게 읽혔다. 이쯤에서 화를 내야 정상이겠지만, 나는 역시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녀가 다시 고양이로 돌아오기를, 머리를 들이밀며 사랑해달라고 애원하기를 바랐지만 그녀는 엄숙히 콧김을 내뿜는 맹수였다. 그녀는 덧붙여 말했다. 솔직하라고, 감정을 표현하고, 말을 하라고. 그녀는 우리 관계의 기울기를 수평으로 되돌릴 방법을 알고 있었다. 알면서 기다렸던 것이다. 우리가 마음을 터놓을 관계에 이르기를 말이다.

나를 드러낸다고 해서 그녀는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를 떠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나는 대단한 사람도 아닐뿐더러 솔직한 내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란다. 우리는 그동안 참고 억누르는 관계를 지속해왔다. 조금 더 감정을 드러내는 솔직한 사람이 갑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더 솔직해질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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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의 파도를 타는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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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의 남쪽 연안에 위치한 거대한 빙산이 작은 빙하로 떨어져 나와 형성된 바트나예퀴들(Vatnajökull) 지방에서는 수많은 얼음덩어리와 파도가 부딪치는 독특한 풍경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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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르의 서쪽으로 떠난 3명의 여성 서퍼들. 사진 왼쪽에 서 있는 킴벌리 던롭은 잘게 부서지는 파도를 주로 즐기는 롱보드 전문 서퍼다. 가운데에 서서 포즈를 취한 이야 게스츠도티르는 빙하가 녹은 차가운 물결 위에서 서핑을 즐긴다. 오른쪽에 선 리앤 커런은 최근 서핑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선수다.

“난 그저 아이슬란드의 바람을 좋아하는 것뿐이에요. 차가운 눈보라 때문에 피부가 얼얼해지는 그 느낌까지 사랑해요. 모두 태풍을 피해 안전한 곳을 찾아 떠날 때도 난 이곳에 머물렀어요.”

모든 여행에는 이르고자 하는 목적지가 있기 마련이다. 이번 여행의 목표는 아이슬란드 서부의 피오르에서 목장을 운영하는 베티 피에튀르스도티르(Betty Pe′tursdottir)와 그녀가 만난 서퍼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프랑스 출신 여성 서퍼 리앤 커런 (Lee-Ann Curren)은 3년 전 우연히 베티를 처음 만나 금세 가까운 사이가 됐다. 20대 초반의 금발 머리 젊은 여자와 아이슬란드 시골에 사는 50대 중년 여자가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니 그녀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해안가에 자리 잡은 목장에서 2백 마리의 양을 키우며 딸과 단둘이 지내는 베티는 차로 40분 남짓 달려야 겨우 이웃을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외진 지역에 산다.

피오르에서 활동하는 서퍼들은 아이슬란드 곳곳을 자유롭게 탐험한다.
피오르에서 활동하는 서퍼들은 아이슬란드 곳곳을 자유롭게 탐험한다.

리앤은 서퍼들 사이에서 전설로 통하는 톰 커런(Tom Curren)의 딸로 알려져 있는데, 얼마전부터는 스포츠 패션 브랜드 록시(Roxy)가 그녀를 후원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제법 쌀쌀한 기온에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던 초 가을의 어느 날, 리앤이 가장 먼저 아이슬란드에 도착했다. 그녀를 주축으로 서핑을 즐기기 위해 이곳을 찾은 아이슬란드 출신의 서퍼들이 레이캬비크 (Reykjavik)에 자리한 작은 카페로 속속 모여들었다. 서른두 살의 엘리 소 르(Elli Thor)는 스노보드 선수 출신의 사진작가다. 그의 어시스턴트인 스물한 살의 헤이다르 로이이(Heiðar Logi)도 함께 도착했다. 널따란 서프보드를 어깨에 지고 카페에 들어선 이 두 남자는 여느 전문 서퍼들처럼 금발의 긴 머리에, 몸에 꼭 끼는 서핑 수트까지 갖춰 입고 있었다.

사진작가 엘리의 여자친구인 서퍼 킴벌리 던롭(Kimberly Dunlop) 은 멸종 위기에 처한 고래를 보호하는 환경 기구에서 일한다. 서핑을 즐기다가 순수한 아이슬란드에 매료된 그녀는 요즘 피오르 지역 특유의 전통과 문화를 배우는 데도 깊이 빠져 있다. 엘리의 친구인 이야 게스츠도티르(Yja Gestsdòttir)는 엘리와 마찬가지로 스노보드 선수 출신이며 작은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그녀는 아이슬란드에서 태어난 서퍼들로 이뤄진 커뮤니티에서 유일한 여성 멤버로 활동할 만큼 열정적인 서핑 마니아이기도 하 다. 심지어 임신 8개월에 배가 불룩하게 나온 상태에서도 서프보드에 올라 파도를 탔고, 출산한 지 2주 만에 다시 바다로 나갈 정도였다. 리앤이 이야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였다.

“무서운 게 없는 여자예요. 아이를 데리고 한겨울의 서핑 여행에 합류했을 정도니까요. 파도를 타다가 물 밖에 나와 모유를 먹이고 다시 물속으로 뛰어들곤 했어요.” 리앤의 말을 들은 이야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너무 추워서 양털로 만든 가슴 보호대를 차고 있었어요. 모유 가 얼어버리면 어쩌나 해서요.(웃음)”

그렇게 엄마 배 속에서부터 파도의 흐름에 익숙해진 그녀의 아이는 매일같이 서프보드에 오르는 엄마의 품, 그리고 바다와 대자연의 품에 안겨 아름다운 아이슬란드를 닮은 아이로 성장하고 있다. “난 그저 아이슬란드의 바람을 좋아하는 것뿐이에요. 차가운 눈보라 때문에 피부가 얼얼해지는 그 느낌까지 사랑해요. 모두 태풍을 피해 안전한 곳을 찾아 떠날 때도 난 이곳에 머물렀어요. 오히려 맹렬한 추위를 겪으면서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추위를 견디기 위해 겹쳐 입은 패딩 재킷의 표면이 얇게 얼어붙을 정도로 아이슬란드의 겨울 날씨는 매섭다. 하지만 그녀들에겐 강추위 또한 서퍼로서 즐기는 모험의 일부다. 극한의 날씨에 도전하는 서핑은 일종의 익스트림 스포츠다. 아이슬란드의 서퍼들은 비키니를 입고 하얀 모래사장을 거닐며 피부를 까맣게 태운 전형적인 서퍼와 확연히 다르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펼쳐진 휴양지의 파도와 빙하가 넘실대는 아이슬란드의 파도가 빛깔이 전혀 다르듯이 말이다. 피오르를 등지고 펼쳐진 이 해변에서는 하얀 눈과 푸른 빙하, 어두운 빛깔의 화산재가 어우러진 환상적인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다. 북위 66도에 위치한 아이슬란드의 광경은 마치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 먼 행성으로 떠나온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이슬란드에서의 여정을 시작하자마자 우리를 가장 먼저 맞이한 건 북극에서 불어오는 날카로운 바람이었다. 베티가 정한 첫 번째 목적지는 피오르 협곡 서쪽의 산 정상이다.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로 손꼽히는 이곳에 가기 위해 무려 6시간 동안 차를 타고 산길을 달렸다. 구불구불한 산맥을 따라 오르는 우리의 모습이 멀리서 보면 마치 고집 센 개미 떼가 온갖 장애물을 넘으며 아등바등하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차 안에는 서프보드, 식량이 되어줄 바나나와 단백질이 풍부한 아이슬란드식 요구르트인 스퀴르가 가득했다.

피오르 사이로 햇살이 내리쬐는 가운데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맞으며 달리다 보니 어느새 정상에 다다랐다. 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자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운 경관이 눈앞에 펼쳐졌다. 달의 표면처럼 황량해 보이다가도 한곳을 응시하고 있자면 생명력 넘치는 자연의 흔적이 눈길을 사로잡았고, 웅장한 대자연에 두려움이 엄습하면서도 몽롱한 기분에 사로잡혀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겨울에는 이끼와 바위가 곳곳에 엉켜 만들어 낸 알록달록한 색채까지 덧입혀진다.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신비로운 풍경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수천 헥타르의 넓은 산악 지역을 지나면 비로소 마을에 들어서게 된다.

프랑스의 소설가 쥘 베른의 작품 <지구 속 여행>은 스나에펠스네스(Snaefellsnes) 반도의 북쪽 지방을 배경으로 한다. 아이슬란드 서부의 피오르에서는 쥘 베른의 소설 속 묘사가 그대로 재현된 듯한 바위와 절벽이 만드는 아찔한 절경이 펼쳐진다. 바다는 청회색을 띠다가 어느새 새파란 청색으로 변하는데 바람의 방향에 따라,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색깔이 비친다. 이곳에는 수천 마리의 바다표범과 북극새들이 떼 지어 살고 있다.

우리는 늦은 밤이 되어서야 움푹 파여 울퉁불퉁한 외길을 따라 15km 정도 떨어진 베티의 목장으로 향했다. 환하게 빛나는 달빛을 받아 깎아지르는 듯한 절벽의 실루엣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베티의 목장은 외뉜다르피외르뒤르(O¨ nundarfjo¨ rður) 협곡 근처의 마을 소에볼( Soebol)에 있다. 걸어서 해안가에 도착할 수 있을 만큼 바다와 가까운 곳인데, 목장의 울타리에 기대앉아 해안으로 밀려드는 파도를 보고 있노라면 절로 감탄이 새어 나온다. 오늘 이곳의 기온은  3℃다. 리앤은 베티의 딸 크리스틴( Christin)이 손수 털실로 짠 벙어리장갑을 끼고 있다. 장갑에는 아이슬란드 서부의 피오르를 상징하는 무늬가 수놓여 있다. 베티가 따뜻한 눈빛으로 리앤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우린 서로 통하는 게 있어요. 리앤이 아이슬란드를 찾아올 때마다 가족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서로 의지하며 지내죠.” 베티는 리앤처럼 얼음으로 뒤덮인 아이슬란드의 바다를 찾아 떠나온 여러 서퍼들과 인연을 맺으며 뜨거운 우정과 든든한 위로를 나눈다.

10월이 되자 두 달 전 내린 눈이 서서히 녹기 시작했다. 지구온난화의 심각한 현실을 눈앞에서 목격하게 된 것이다. 화산을 덮고 있던 아이슬란드의 빙산이 녹기 시작하면서 대륙의 지각층이 점점 뒤틀리고 있다. 심지어 지층의 변화로 잠잠하던 화산이 다시 불타기 시작한 곳도 있다. 지난  2010년 아이슬란드 남부에 자리 잡은 커다란 빙하인 에이야피아들라예퀴들( Eyjafjallajo¨ kull)에서 화산이 분출하면서 유럽 대륙이 온통 화산재로 뒤덮이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일을 계기로 향후 수십 년 사이에 아이슬란드 전역의 화산활동이 재개될 것이라 예견하는 전문가들도 많아졌다. 오랜 세월 피오르 곳곳을 누벼온 베티는  20여 년 전부터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각종 환경문제가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몸소 체감하고 있다. “그린란드의 빙하를 이루는 피오르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늦은 밤까지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야는 아이슬란드 북서부 지방의 볼룽가르비크( Bolungarvik)에서 캐나다 출신의 해양학자인 대니( Danny)가 서핑을 하다가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대니가 물에 들어 가자마자 경찰들이 뒤따라 들어갔어요. 마을 주민들이 서핑을 하러 바다에 뛰어든 대니를 보곤 그가 물에 빠진 거라 오해한 거예요. 아이슬란드의 오래된 전설 중에 바다의 요정과 괴물이 바다에 뛰어든 사람들을 집어삼킨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현대에 이르러서도 아이슬란드 사람들에게 바다는 수많은 자원을 제공하는 자비로운 존재인 동시에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이죠.”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파도의 폭이 적당하지 않아 서핑을 할 수 없었다. 리앤과 이야, 헤이다르는 플라테이리( Flateyri) 마을로 이어지는 언덕길에서 스케이트를 탔다. 오후가 되어 베티의 목장으로 돌아온 세 사람은 절벽 밑에 부딪히는 거센 파도를 보며 기뻐했다. 바다의 수온은 무려 영하  10℃까지 내려갔지만 헤이다르는 가장 먼저 물속에 몸을 던졌다. 두툼한 서핑 수트를 갖춰 입은 리앤과 이야는 바다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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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앤과 이야가 피오르 해변에 마련한 텐트 옆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일반 서퍼들이 경험해보지 않은 특별한 파도를 만날 수 있어요. 이게 바로 서퍼의 진정한 모험이죠. 우리는 매일 새로운 바다를 개척하는 탐험가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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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앤, 킴벌리, 이야가 스티키스홀뮈르(Stykkisholmur)라는 이름의 작은 등대섬 근처 자연 온천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온천수의 수온은 40℃를 웃돌지만 바깥 기온은 약 5℃밖에 되지 않는다.

3명의 서퍼들은 한 시간 반 동안이나 차가운 물속에 머물렀다. 리앤은 지금껏 살면서 만난 파도 중 가장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서핑을 하다 가만히 멈춰 풍경을 감상하기도 했어요. 넓은 바다 위에 일렁이는 물결과 수면에 비쳐 흔들리는 하늘이 어우러졌죠. 파도를 정면이 아닌 측면에서 본 적 있나요? 잘게 부서지는 물방울, 햇빛에 반짝이는 파도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헤이다르는 파도의 강력한 움직임이 발밑에서 생생히 느껴지는 감각을 만끽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게 서핑이에요. 충분히 타고 물 밖에 나와도 또다시 먼 바다로 나가고 싶어져요.” 그는 더 이상 서핑 실력을 겨루며 경쟁해야 하는 스포츠 경기에 참가하지 않기로 했다. 좋아하는 파도, 가고 싶은 파도만 찾는 ‘프리 서핑족’으로서 신념을 지키기로 한 것이다. “점수를 더 잘 받기 위해 기술을 쓰는 일은 그만하고 싶어요. 파도를 탈 때 제 마음이 그렇지가 않으니까요. 아이슬란드에서는 일반 서퍼들이 경험해보지 않은 특별한 파도를 만날 수 있어요. 이게 바로 서퍼의 진정한 모험이죠. 우리는 매일 새로운 바다를 개척하는 탐험가들이에요. 이곳의 바다는 사람들의 손길이 많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라 더욱 근사하죠.” 이야가 피오르의 반대편의 접근이 불가능할 정도로 가파른 절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분명 저 너머에도 굉장한 파도가 칠 거예요.”

서핑을 마친 그녀들에게 바다를 떠나 시내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찾아왔다. 킴벌리와 이야는 이제 본업을 위해 일상으로 돌아가고, 리앤은 남쪽 연안의 새로운 파도를 찾아 다시금 여행을 떠난다. 전 세계 곳곳의 이름 없는 빙하 꼭대기에 올라 서프보드를 꺼내 드는 자유로운 서퍼 리앤, 서핑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곳으로라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킴벌리와 이야. 매일같이 거친 파도를 향해 떠나는 그녀들의 여행이 자유를 갈망하는 다른 이들에게는 아름다운 영감이 된다.

야해서 웃긴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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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돔을 써야 하는 수많은 이유는 콘돔 광고에 다 나와 있다.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만 아는 다정한 이모, 삼촌으로 살 수 있게 해주고, 좀처럼 내놓고 자랑할 기회가 없는 그것의 사이즈도 XXL사이즈의 콘돔을 구매하면서 은근한 과시의 수단이 된다. 기발한 상황 설정과 유머 감각으로 웃음을 주는 전 세계 콘돔 광고의 목적은 하나다. 브랜드를 기억하도록 하는 것. 사람들이 콘돔을 고르는 기준은 생각보다 단순해서 곧장 익숙한 브랜드의 제품을 집어 들기 때문이다.

영국의 듀렉스는 끊임없이 기발한 광고를 내놓는 대표적인 브랜드다. 무엇인지 모를 커다란 것을 입에 넣다가 다친 여자의 입술 사진이나 다리가 세 개 달린 남자 화장실 표지판 등 허풍의 차원이 남다르다. 올 해 터키 이스탄불에서 선보인 듀렉스 광고의 배경은 기차역, 아직 기차는 들어오지 않았는데 전광판에는 윌리엄과 제니퍼의 이름이 써 있다. 그리고 우리는 비보를 접하게 된다. 윌리엄은 방금 역(오르가슴)에 도착했지만 불행히도 제니퍼는 지금 막 취소되었다는 소식이다. ‘Come at the same time’이라는 슬로건 아래 모두가 오르가슴이라는 종착역에 도착하게 돕겠다는 듀렉스의 광고는 이제 기발함을 넘어 기특한 경지에 올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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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미지로 눈길을 사로잡는 콘돔 광고도 있다. 투명한 비닐 안에 발가벗은 남녀가 뒤엉켜 있고 진공포장을 한 듯 그들의 몸에 밀착된 비닐은 적나라한 포즈를 그대로 보여준다. 웅크린 남자가 자신의 몸 위에 비슷한 자세의 여자를 태우고 있는가 하면 69라는 숫자를 몸소 완성한 커플도 보인다. 남자가 여자의 벌린 다리 사이에 허벅지를 올린 채 안긴 과감한 자세는 볼수록 에로틱하다. 이 독특한 이미지들은 성인용품 숍 콘돔 마니아의 일본 광고로 할(Hal)이라는 이름의 포토그래퍼가 실제 커플을 섭외해 촬영했다. ‘Preserve the love. Wear the condom’이라는 슬로건으로 각종 근심과 위협으로부터 섹스를 지켜내겠다는 콘돔의 의지, 그 숭고함이 강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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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단순한 이미지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콘돔 광고도 많다. ‘The End’라는 글씨로 영화의 끝을 알리던 옛날 영화 화면이 콘돔 광고에 등장한 것이다. 뭉게 뭉게 피어오른 구름 사이로 끝을 알리는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다. 살짝 커닝을 하자면 ‘Long time before the orgasm’. 섹스에는 길수록 칭찬받을 만한 것들이 있는 법. 끝날 듯 끝나지 않는 네버 엔딩이 곧 해피 엔딩일 수도 있다는 벨기에의 콘돔 광고도 단순하지만 유혹적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이렇게 상상력을 자극하고 환상을 불어넣는 콘돔 광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콘돔은 기호품이 아닌 의료 기기라서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켜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대신 성병이나 피임 예방을 위한 기구로 그려지는데 그마저도 보수적인 국내 정서상 눈치 볼 것이 많다. 하지만 이 좁은 틈을 비집고 활약 중인 인물이 있으니 무슨 말을 해도 야릇한 상상을 불러 일으키는 신동엽이다. 국산 콘돔의 대표 주자 유니더스는 그의 얼굴을 제품 전면에 부착하고 영화 <킹스맨> 의 명대사를 차용해 이런 멘트를 실었다. ‘매너가 사람을 안 만든다’. 모처럼 고개를 든 콘돔 광고가 반가우면서도 피임 외의 그 어떤 상상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이 철벽 수비가 씁쓸하다. 피임과 성병 예방이라는 콘돔의 역할을 언제까지 다 큰 성인들에게 주입해야 할까. 일차원적인 공익광고에서 진일보한 발칙명랑한 콘돔 광고를 대한민국의 버스정류장과 극장에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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