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성경

지금, 이성경 - 자수를 놓은 시스루 상의 니나 리치 바이 10 꼬르소 꼬모(Nina Ricci by 10 Corso Como), 화이트 팬츠 제이어퍼스트로피(J Apostrophe), 링 젤라시(Jealousy).
자수를 놓은 시스루 상의 니나 리치 바이 10 꼬르소 꼬모(Nina Ricci by 10 Corso Como), 화이트 팬츠 제이어퍼스트로피(J Apostrophe), 링 젤라시(Jealousy).
지금, 이성경 - 블랙 상의 월포드(Wolford), 슈즈 메노드모쏘(Meno de Mosso), 쇼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블랙 상의 월포드(Wolford), 슈즈 메노드모쏘(Meno de Mosso), 쇼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지금, 이성경 - 레드 블라우스 쟈렛(Jarret), 화이트 쇼츠 곽현주(Kwak Hyun Joo), 슈즈 메노드모쏘(Meno de Mosso), 이어링 넘버링(Numbering).
레드 블라우스 쟈렛(Jarret), 화이트 쇼츠 곽현주(Kwak Hyun Joo), 슈즈 메노드모쏘(Meno de Mosso), 이어링 넘버링(Numbering).
지금, 이성경 - 블랙 상의 블루마린(Blumarine).
블랙 상의 블루마린(Blumarine).

이성경 인터뷰

배우 이성경의 행보에는 낭비가 없다. 단 세 작품, 3년 차 배우가 꾸려온 필모 그래피치고는 꽤 묵직하다. 데뷔작인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배우라면 한번쯤 소망하는 노희경 작가와 작업했고, 차기작 <여왕의 꽃>에서는 선배 김성령과 투 톱을 이뤄 50부작이라는 긴 호흡의 드라마를 이끌었다. 시어머니와 치인트를 합친 신조어 ‘치어머니’라는 두터운 팬덤을 지닌 2016년 상반기 최고 기대작 <치즈인더트랩>(이하 <치인트>)의 ‘백인하’라는 왕관을 쓰기까지 그녀는 ‘운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매일매일 엄청난 양의 재능과 끼가 수혈되는 배우의 세계에서 비슷한 함량의 행운이 한 사람에게 세 번이나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세 작품 속 이성경이 맡아온 캐릭터는 어딘가 닮아 있다. 여백 없이 쾌활한 에너지로 가득하지만 미세한 틈 속으로 파고들수록 드넓은 공간이 펼쳐지는, 양면을 가진 소녀와 여성이었다. 센 말투와 표정, 과장된 웃음으로 켜켜이 쌓은 위장은 회를 거듭할수록 서서히 벗겨졌다. <괜찮아, 사랑이야>의 ‘오소녀’가 그랬듯 <치인트> 속 백인하 역시 낯설고 생경했다. 하지만 6회를 남겨둔 지금 ‘어느 순간 내가 백인하를 기다리고 있더라’ 하는 등의 간증들이 슬그머니 터져 나왔고, ‘농약 같은 매력’, ‘표정 부자’ 같은 수식이 그녀 앞에 붙기 시작했다. 종영을 앞둔 지금 이성경은 조금 가벼워졌다.

“원작을 그대로 지키고 싶은 마음과 원작을 아끼는 만큼 기대가 큰 걸 알고 있어요. 극 초반의 전개와 제 연기가 원작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만족을 주지 못하고, 호감을 얻지 못한 사실도요. 하지만 이번 작품을 하며 크게 배운 게 있다면 천재지변이든 사고든 그 어떤 상황에서든 배우가 역할을 맡은 이상 거기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스스로 짊어지고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이죠. ‘아쉽다, 속상하다’ 같은 소리는 어릴 때나 하는 것이라는 걸요.”

그녀는 최근 영화 <브로커> 촬영을 위해 머리 색을 바꿨다. <공모자들> <기술자들>을 연출한 김홍선 감독의 작품으로 김영광 등 또래 연기자 외에도 천호진, 선종학, 고창석, 조달환 등 ‘연기 귀신’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그녀는 사건의 내막을 파헤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다혈질 국선 변호사 역을 맡았다. “무게와 기름기를 뺀 잘 만들어진 작품이 될 것 같아요. 시나리오가 재미있고 감독님과 이야기가 잘 통해요. 지금의 느낌이 좋다면 맞는 거겠죠? 아주 잘해보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치인트> 속 ‘오영곤’과 ‘손민수’ 같은 암유발자들 틈에 백인하가 등장할 때면 사이다를 연거푸 원샷했을 때의 통쾌함을 느꼈어요. 전무후무한 캐릭터를 받아들이기는 본인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어느 정도의 논란도 각오해야 했을 테고요.
연기는 물론 외모상으로도 현실에 없는 사람처럼 컨셉추얼하게 연출해야 했어요. 어느 날은 오드리 헵번처럼 단발 가발을 쓰기도 하고, 마릴린 먼로도 되어야 했죠. 저 역시 원작 속 냉철하고 도도한 백인하를 좋아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아쉬웠죠.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배우는 여러 상황과 다양한 목소리를 고려해야 하고, 때에 따라서는 욕심도 내려놔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한편으로는 원작 속 인하와 드라마 속 인하를 완전히 분리하는 것도 우리가 인하를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내가 사랑했던 원작 속 인하는 그 모습 그대로 웹툰 속에 남겨두는 거죠.

정식 연기 수업을 받지 않았기에 테크닉의 함정에서 자유롭죠. 하지만 이 점은 배우에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어요. 방식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최종 바람은 딱 하나예요. 연기로 많은 분들에게 신뢰를 주고 싶다는 것. 드라마를 보는 동안 이성경의 호흡이나 시선 처리에 불안을 느끼지 않고 편안하게 작품에 몰입할 수 있도록 연기하는 것이 당장의 꿈이고 목표예요.

작품을 거듭하면서 연기와 배우에 대한 고민도 커질 것 같아요. 또래 연기자들과 미니시리즈만 했다면 절대 몰랐을 것들을 주말극에서 배웠어요. 선생님들의 섬세하고 깊은 연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오랜 시간 볼 수 있으니까요. 또 가족 시청자가 주요 타깃인 주말극의 특성상 이야기 전개나 연기 방식 등을 새롭게 고민해야 했고요. 일상생활 중 틈만 나면 무의식적으로 작품 생각을 하는 저를 보면서 ‘아, 배우라는 직업은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고민하는 사람이구나, 그렇다면 나는 이제야 한 걸음 떼기 시작했구나’ 싶더라고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인가봐요. 지금을 즐기려고 하지만 적어도 일과 관련해서는 스트레스를 받아도 최선을 다해 매달리는 편이에요. 모델 시절에는 페이지 끄트머리에 발만 나와도 ‘메인 화보보다 더 잘해서 나중에 메인 화보 해야지’ 했거든요. 밤새 수십 컷을 찍을 때도 행복했어요. 왜냐하면 그것도 못 찍던 순간을 겪어봤으니까요. 물론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우울한 일만 떠올리자면 끝도 없어요. 마인드 컨트롤도 훈련이더라고요.

누구에게나 중요하지만 특히 부침이 심한 배우라는 직업에서 마인드 컨트롤은 더더욱 필요하죠. 말은 이렇게 해도 안 될 때도 많아요. 하지만 일 외에 일상생활에서 형식적인 노력은 안 하려고 해요. 마음을 추스르려다가도 하다 하다 안 되면 그냥 ‘안 해!’ 해버려요. ‘내가 거칠어 보여? 이렇게 거칠 수 도 있지만 그게 다는 아니야. 여성스럽기도 해. 착하기도, 못되기도 하고 여리기도 강하기도 하지. 사람은 다 그래.’ 해버리죠. 적어도 아닌 척 포장하지 않는 거예요. 혼자 있는 시간만큼은 솔직해지려고 하죠. 내 마음을 잘 알아야 인식하고, 제대로 인식해야 스스로에게 속아서 실수하고, 훗날 자책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야 실수와 자책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것 같아요. 곧 사진집이 나오는데 글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혼자 있을 때 적어두던 생각들을 짧게 넣게 됐어요. 대체로 방금 한 말 같은 글이에요. 맞는 말일 수도 틀린 말일 수도 있죠. 하지만 흉내 내지 않고, 생각이 흐르는 대로 머릿속에 있는 제 말투 그대로 적었어요.

배우라는 직업의 비극은 말과 글 등 모든 자료가 기록으로 남는다는 거죠. 어느 날 문득 흑역사가 되어 부끄럽게 만들 수도 있어요. 이미 해놓은 부끄러운 게 많으니까.(웃음) 지금은 세련되지만 나중에 촌스럽게 다가올 수도 있고, 유행이 돌고 돌아 10년 뒤에는 다시 멋스러워질 수도 있잖아요. 당연히 흑역사가 될 수도 있는데 그걸 걱정해서 현재를 못 누리는 것도 바보고요. 예전 화보들 보면 부끄러운 것들도 있는데 ‘이때 메이크업 트렌드가 이랬어.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 못생기게 나왔어’ 하고 웃어넘겨요. 숨기려고 한다고 숨겨지는 거 아니니까요. 이 역시 말은 이렇게 해도 잘 안 됩니다.(웃음)

LA 다저스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가 롤모델이라고요. 잘 알지 못하지만 그는 삶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사람이에요. 자신이 출전하지 않는 경기에도 벤치에서 자리를 지키며 동료들을 응원하죠. 그런 사소한 모습을 보면 깨닫는 게 많아요. ‘아, 나도 말 좀 조금만 해야지’ 하고.(웃음) 커쇼처럼 행동으로, 삶으로 증명하는 진실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오늘 보니 성경씨 호방한 여장군이네요. 배우로서 좋은 기운을 나누고 싶어요. 좋은 것들은 주변에 많이 이야기하는 편인데 사람들이 ‘너는 다 칭찬만 하니?’ 해요. 저는 좋은 것만 기억하는 사람이더라고요. 반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아주 별로였다는 의미예요.

오늘 인터뷰의 큰 주제가 ‘The Next Big Thing’이에요. ‘빅’이 되라고 응원해주시는 것으로 알겠습니다.(웃음)

 

지금, 이성경 - 레드 셔츠와 블랙 쇼츠, 이어링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레드 셔츠와 블랙 쇼츠, 이어링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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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자친구가 되어줘! 신비 & 소원

여자친구 화보

1603mcmabemd20_01 - 여자친구 신비 소원 화보
신비와 소원이 입은 원피스 모두 앤디앤뎁

Sweety Girls

신비는 블루와 핑크의 대비를, 소원은 그린과 오렌지의 대비를 보여주는 메이크업을 했다. 둘 다 눈꼬리를 길고 뾰족하게 빼서 그려 새침한 이미지를 더했다. 특히 신비의 블루 아이 메이크업에는 이번 시즌 가장 트렌디할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라인 메이크업 기법을 시도했다. 신비와 소원 모두 양 볼에 은은한 치크 메이크업을 더해 사랑스럽게 마무리했다.

 

원피스 라이 - 여자친구 신비 소원 화보
원피스 라이

Blooming Girl

얼굴이 희고 투명한 신비의 얼굴에서 가장 매력적인 곳은 앵두처럼 오동통하고 귀여운 입술. 평소 파스텔 핑크 계열의 립 메이크업을 즐겨 하는 그녀의 입술에 화사한 푸크시아 핑크 컬러의 글로시 틴트 립스틱을 꽉 채워 발랐다. 입술을 강조하기 위해 눈매는 아주 얇은 블랙 아이라인과 길고 가지런한 속눈썹으로 연출했으며, 눈썹의 결을 살려 자연스러움을 강조했다.

“이렇게 진한 립 컬러는 처음 발라봐요.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신한 것 같아서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마치 진짜 여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 SinB

 

셔츠 마리메꼬 여자친구 신비 소원 화보
셔츠 마리메꼬

Sun-kissed Girl

햇빛에 살짝 그을린 듯 건강해 보이는 피부 톤을 지닌 소원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컬러는 밝고 경쾌한 느낌의 코럴이다. 핑크 톤이 감도는 코럴 컬러로 양 볼과 입술, 손톱을 물들였더니 자연스럽게 컬러가 그러데이션되어 매력적인 피부 톤이 돋보였다. 특히 치크 메이크업은 애플존 위주로 부드러운 크리미 블러셔를 발라 매끈하면서도 촉촉한 볼로 표현하는 것이 관건.

“평소 오렌지와 코럴 컬러가 잘 어울린다는 소리를 자주 들어요. 볼이나 입술에 코럴 컬러로 메이크업을 하면 더 경쾌하고 건강해 보이는 것 같아 저도 마음에 들고요.” – So Won

 

여자친구 소원이 입은 스트라이프 원피스와 신비가 입은 스트라이프 톱 모두 막스마라
소원이 입은 스트라이프 원피스와 신비가 입은 스트라이프 톱 모두 막스마라

Dolly Girls

소원과 신비 모두 블랙 아이라인과 길고 풍성한 속눈썹으로 인형 같은 눈매를 연출했다. 커다란 눈망울을 강조하기 위해 입술에는 딸기 우유 빛의 립스틱과 립글로스를 섞어 바르고 치크 메이크업은 과감히 생략했다. 대신 은은한 오팔 펄이 느껴지는 하이라이팅 파우더를 이마와 콧등, 애플존, 턱 중앙에 가볍게 발라 입체감을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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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여배우들

시작된 길

<최고의 감독> 전여빈

 

유니크한 서스펜더 원피스 스포트막스 (Sportmax).
유니크한 서스펜더 원피스 스포트막스(Sportmax).

SNS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온통 아름답다. 좌절보다는 기쁨, 실패보다는 성공의 시간들로 채워진다. 문소리가 연출하고 주인공을 맡은 <최고의 감독>에서 그녀의 딸을 연기한 전여빈은 독립영화의 의미는 진짜 세상을 보여주는 데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큰 영화 중에도 재미있고 좋은 영화가 많아요. 하지만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어떨 때는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를 돌려 말해야 할 때도 있잖아요. 그런데 독립영화는 불쌍하면 불쌍한 대로, 멋이 없으면 없는 대로 세상을 거침없이 솔직하게 보여주는 힘을 지녔어요. 날것 그대로에 대해 말해주니까 오히려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어요. 마치 ‘네 인생만 힘든 게 아냐’라고 말해주는 것 같죠.” 독립영화 판에는 ‘고생을 사서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비록 누군가 봐주지 않을지라도 영화를 만들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그곳에 있다. “돈이나 학식이 많은 게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지금 이 순간을 의미 있게 생각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멋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독립영화를 만드는 현장에 가면 막 엔도르핀이 솟구쳐요. 비록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이란 걸 알고 있지만 그 길이 옳다고 확고하게 믿는 사람들이죠.”

그녀도 처음에는 보이지 않는 길 앞에 서 있었다. 의대에 가려다가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았고 방황하다 문득 영화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 방송연예를 전공했고, 그러다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좀 더 채워야겠다는 생각에 연극이나 뮤지컬 공연의 스태프로 일하며 그 보이지 않는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왔다. 그러다 갑자기 건강이 나빠져 한참 동안 하고 싶은 일을 못한 채 보내야 했던 적도 있다. “힘들었어요. 배우가 되기 위해 시간을 쌓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달려나가야 하는 시점에 누군가 발을 건 느낌이었어요. 많이 울기도 했고요. 그래도 끈을 놓고 싶지 않았어요. 그때 ‘어떻게 해야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많이 했어요. 난 분명 연기가 하고 싶은 사람인데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엎어지면 행복해질 수 없다는 대답을 얻었죠. 설령 내가 좋은 배우가 되지 못하더라도 일단 시작이라도 해보자고 마음먹었어요.” 그녀의 말마따나 배우의 길은 이제야 막 시작되었다. 지금은 전주국제영화제의 프로젝트 중 하나인 영화에 출연하고 있고 얼마 전에는 작은 역할이지만 김지운 감독의 <밀정>에도 출연했다. “함께 독립영화를 만들던 친구들과 수년이 지난 뒤에도 꿈을 잃지 않은 채 현장에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올해는 ‘전여빈’이라는 배우가 있다고 인사드리고 싶어요.”

나에게 용기를 주는 영화

<마카담 스토리> 너무 귀여운 영화예요. 세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는데 제일 좋아하는 에피소드는 어느 한물간 여배우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녀가 옆집에 사는 어린 소년과 함께 오디션 테이프를 만들기 위해 연기를 하는데 그때 그 아이가 말하거든요.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똑바로 연기하라’고. 그 얘기를 듣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잘 해내야 하는 거였어요.

 

문을 두드리며

<인허플레이스> 안지혜

러프한 텍스처가 매력적인 화이트 원피스 스타일난다(Style Nanda).
러프한 텍스처가 매력적인 화이트 원피스 스타일난다(Style Nanda).

임신한 10대 소녀, 임신한 딸이 낳을 아이를 버리고 싶은 여자, 그 아이를 데려가고 싶은 불임의 여자. 영화 <인 허 플레이스>는 이 세 여자의 이야기다. 아이를 두고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하는 그녀들은 서로에게 날을 세우고 위태로운 하루하루를 보낸다. 올해로 서른이 된 안지혜는 영화에서 임신한 소녀를 연기했다. “<인 허 플레이스>는 제 필모그래피를 채운 유일한 작품이에요.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즐겁게 연기했어요.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즐거웠던 이유 중 하나는 감독님의 작업 방식 때문이기도 해요. 제가 연기 경험이 없는 배우임에도 장면마다 제 생각을 물어봐 주셨죠.” 그렇게 스물여덟 나이에 열여덟 살 소녀를 연기한 안지혜는 아주 천천히 배우의 길에 발을 들여놓았다. “원래는 신문방송학을 전공했어요. 연극 동아리 활동을 하면 스무 살에 처음 연기를 하게 되었죠. 복수 전공으로 연기를 공부했고 그러다 보니 또래보다 졸업이 늦어졌어요.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오디션을 본 작품이 이번에 개봉하는 영화예요.” 얼마 전에는 ‘관객과의 대화’ 시간도 가졌다. 만만치 않은 내용을 풀어내는 영화이니만큼 <인 허 플레이스>는 본 사람 모두가 좋아할 만한 작품은 아닐지 모르지만 이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였다. 누군가는 최근 몇 년 새 본 영화 중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 해주었고, 또 누군가는 이 영화를 많은 사람들이 보면 좋겠다고 했다. “독립영화를 다양성 영화라고도 부르잖아요. 자본의 영향력이 개입되지 않은 만큼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감독이 마음껏 자신이 전달하고 싶은 특별한 지점을 분출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다양하다는 것은 좋은 거잖아요. 큰 영화들 사이에서 이런 다양성 영화들이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데뷔작을 찍고 개봉하기까지 2년이 흐르는 동안 ‘별일 없이’ 지냈다. 그러고 보면 그녀의 인생에서 20대는 배우의 길을 가는 시간이었다기보다는 언저리 어디쯤을 서성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기에 대한 가슴앓이로 점철되어 있던 때이기도 하다. “지금 제가 배우라고 말하기에는 경력도 적고 많이 부족하죠. 아직까진 배우 언저리를 맴돌고 있는 기분이에요. 이 길에 대한 확신이 있다고 하면 너무 거창한 것 같은데, 어쨌거나 이 길을 가기 위해 계속 애를 쓸 것 같긴 해요. 혹은 그 언저리를 계속 맴돌겠죠. 그런데 계속 문을 두드릴 것이라는 확신은 있어요.”

나에게 용기를 주는 영화

<걸어도 걸어도> 전 굉장한 포부를 가지고 희망차게 미래를 향해 살아가는 사람은 아니에요. 그런데 꼭 어떤 포부나 희망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이 영화를 보면 미래에 대한 대단한 기대가 없어도 계속 걷고 걸으며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냥 걷고 또 걷다 보면 인생의 의미를 알게 되지 않을까요.

 

단단한 마음

<스틸 플라워> 정하담

아이보리 슬리브리스 원피스, 실키한 소재의 오버핏 재킷 모두 캘빈 클라인 컬렉션(Calvin Klein Collection).
아이보리 슬리브리스 원피스, 실키한 소재의 오버핏 재킷 모두 캘빈 클라인 컬렉션(Calvin Klein Collection).

#마리끌레르 #marieclaire #korea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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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케시영화제 폐막식 #메이크업 #d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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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무게만큼이나 무거워 보이는 캐리어를 덜컹거리며 길을 걸어가는 소녀가 있다. 소녀를 대하는 세상은 차갑다. 혼자 일어서기 위해 궂은일이라도 해보려 하지만 신분이 확실하지 않다는 이유로 가게에서 쫓겨나기 십상이고 그러고 나면 쉴 곳, 잘 곳 없이 다시 추운 새벽녘 길을 걸어간다. 영화 <스틸 플라워>는 어느 꽃 같은 소녀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녀는 쉽게 꺾이는 꽃이 아니다. 자신을 둘러싼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파도 소리를 배경으로 탭댄스를 춘다. 그렇게 다시 꿋꿋하게 살아간다. 이 소녀를 연기한 정하담은 <스틸 플라워>로 서울독립영화제 2015에서 독립스타상을 받았다. “고등학교 때 연극반에 들어갔어요. 연기가 하고 싶었다기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어서였죠. 연극반에서 5분 남짓 길이의 공연을 만들어 올렸는데 사람들 반응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때 기분이 너무 좋더라고요. ‘아, 내가 연기를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 전까지는 한 번도 배우를 직업으로 삼게 될 거라고 생각한 적 없어요. 연기는 할수록 욕심이 많이 생겨요. 어떻게 해야 잘하는 건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렇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열심히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았다. “전 원래 게으르고 잠도 많고 느릿한 편이었어요. 무언가를 위해서라기보다는 그냥 어영부영 살아온 것 같아요. 그런데 연기를 시작하고 나서는 많은 게 달라졌죠.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찾고 싶어요.”

정하담에게 <스틸 플라워>는 특별한 작품이다. 이 영화로 독립영화제의 배우상을 수상했다거나 마르케시 국제영화제의 초청을 받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본의 힘이 아닌 오롯이 시나리오의 힘과 감독의 진정성, 그리고 배우의 연기만으로 영화를 완성해야 하기에 ‘하담’에게 온 힘을 다해 집중하며 연기했다. 그녀에게 영화 속 하담은 정말 멋진 인물이다. “제가 힘들 때 기운을 줄 수 있는 인물이에요. 가진 건 아무것도 없지만 아무리 힘든 일을 겪어도 자신을 탓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에 대한 자긍심이 있죠. 신념이 강한 인물이기도 해요. 배운 건 없지만 세상을 향해 굳건하게 서 있는 아이예요. 저보다 큰 인물이어서 연기하기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박석영 감독의 <들꽃>과 <스틸 플라워>는 그녀에게 배우로서의 시작점이 되어준 작품이다. “독립영화의 힘은 집중에 있는 것 같아요. 감독님도 배우의 생각을 많이 물어보고 존중해주시기 때문에 연기하는 캐릭터에 더 집중하게 돼요. 박석영 감독님의 <들꽃>과 <스틸 플라워>를 만나기 전까지 전 그냥 ‘배우 지망생’이었다면 이제야 비로소 배우가 된 것 같아요.”

나에게 용기를 주는 영화

<스틸 플라워> 영화 속 ‘하담’이는 강인하고 멋있는 아이예요. 3월에 개봉하면 꼭 보셨으면 좋겠어요. 영화는 자기한테 일어난 나쁜 일이 자기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고 말해요. 사람들이 자신을 좀 더 숭고하고 소중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평생의 연기

<그들이 죽었다> 이화

여성스러운 소매가 돋보이는 화이트 테일러드 재킷 로맨시크(Romanchic), 심플한 블랙 슬랙스 맥앤로건(Mag & Logan).
여성스러운 소매가 돋보이는 화이트 테일러드 재킷 로맨시크(Romanchic), 심플한 블랙 슬랙스 맥앤로건(Mag & Logan).

<그들이 죽었다>는 영화제의 레드 카펫을 밟겠다는 무모한 꿈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려고 도전하는 두 젊은 감독이 주인공이다. 결국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에 대한 영화다. 그렇다고 아름답거나 패기가 넘치거나 열정적이기만 한 청춘은 아니다. 그들은 지질하고 실패하고 넘어지고 부딪치고 좌절한다. 이화는 <그들이 죽었다>에서 이 두 감독과 자꾸만 우연히 마주치는 동명의 여자를 연기했다. “처음엔 그냥 우리끼리 재밌게 해보자고 만든 영화였어요. 작은 영화라서 개봉하고 얼마 가지 않아 극장에서 내릴 줄 알았죠. 그런데 많은 분들이 찾아주셔서 2월까지 상영할 수 있게 됐어요. 얼마 전 관객과의 대화를 했는데 지금은 직장맘으로 살고 있지만 자신도 한때 영화 연출을 전공했다는 40대 중반의 여자 관객이 당신들의 영화를 보고 다시 영화를 만들고 싶어졌다고 말씀해주셨어요. 보잘것없는 우리 영화가 어떤 사람의 마음을 진심으로 움직였다는 게 너무 감사했죠.” 아웃사이더로 지내던 대학교 3학년 때 처음 오른 연극 무대에서 ‘한 줄기 빛’을 보았다는 이화는 그제야 자신이 원하는 길이 배우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연극 <이기동 체육관> <하녀들> <백중사 이야기> 등의 무대에 올랐다. “<그들이 죽었다>를 찍기 직전엔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요. 그때 단막 드라마 한 편을 찍었는데 그동안 연극 무대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지 드라마 촬영에 적응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연기에 재능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러다 이재호 감독님이 <그들이 죽었다>를 함께 만들어보자고 해서 출연한 거예요. 그런데 정말 하길 잘한 것 같아요. 힘든 고비를 한번 넘으니까 연기가 더 재미있어졌어요.”

요즘은 한창 액션에 꽂혀 있다. 그래서 킥복싱을 배우고 있고 액션 연극도 한 편 만들어보려고 한다. 그녀는 시나리오도 쓰고 연출도 한다. 하고 싶은 작품이 있는데 아무도 자신을 선택해주지 않는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그렇게 자신만의 작품을 준비하는 중이다. 같은 꿈을 가진 사람끼리 서로 힘이 되고 도움을 주고받다 보면 좋은 작품을 하고 연기하며 살 수 있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예전에는 누군가 너에게 연기가 얼마나 소중하냐고 물으면 한번 생각하고 대답했어요. 지금은 주저 없이 답할 수 있어요. 평생 하고 싶은 일이라고요. 나도 모르는 새 그렇게 되어버렸어요. 배우로서 크게 유명해지고 싶다는 욕심은 없어요. 하지만 스스로에게 한계를 두지 않는 배우가 되겠단 욕심은 있어요. 꾸준히 다양한 역할을 연기하며 평생 연기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나에게 용기를 주는 영화

<델마와 루이스> 갑자기 이 영화가 떠올랐어요. 요즘 많이 보는 영화예요. 두 여자가 너무 멋지지 않아요? 저에게는 <그들이 죽었다>가 힘이 되는 영화예요. 내가 하는 일에 자신이 없거나 주춤거릴 때 이 영화를 보면 힘이 날 것 같아요. 작년 12월 31일, 20대에서 서른으로 넘어가는 날이었어요.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들이 죽었다>를 보러 갔는데 다시 힘을 얻었죠. 저에게는 용기와 자극을 주는 영화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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