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스의 미학

밀란 편집숍 '엑셀시오르'에서 구입한 셀프 포트레이트 데이지 레이스 블라우스.
밀란 편집숍 ‘엑셀시오르’에서 구입한 셀프 포트레이트 데이지 레이스 블라우스.

밀란에 도착하자마자 에디터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바로 ‘엑셀시오르(Excelsior)’였다. 그리고 밀란에서 가장 핫하다는 이 초대형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급기야 일(!)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레이스 아이템만 추려놓은 섹션 한 켠을 가득 채운 셀프 포트레이트(Self-Portrait), 그 중 기퓌르 레이스 블라우스의 매력적인 자태에 홀린 것. 말레이시아 태생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한 총(Han Chong)이 레이스 디테일을 기반으로 로맨틱한 컬렉션을 선보이는 브랜드 셀프 포트레이트는 여심을 제대로 저격하며 승승장구하는 중이다. 섹션 하나를 통으로 사고픈 욕구를 꾹꾹 억누르며 스트리트를 누비는데 왠 걸! 사라 로제토(Sara Rossetto), 마야 말나르(Maja Malnar), 키아라 페라그니(Chiara Ferragni), 타무 맥퍼슨(Tamu Mcpherson) 등 옷 잘 입기로 유명한 패피들이 전부 곱디 고운 레이스 아이템들을 입고 등장한 것. 특히 하늘하늘한 레이스 원피스에 블랙 봄버 재킷을 걸친 채 아디다스 스탠스미스를 매치한 타무가 어찌나 쿨해 보이던지! 자, 종류도, 스타일링법도 이토록 다양하니 취향에 따라 고르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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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ht Delight

입체적인 플리츠 디테일이 독특한 블랙 재킷과 화이트 크롭트 톱, 화이트 쇼츠, 진주 장식 골드 네크리스 모두 디올(Dior).
입체적인 플리츠 디테일이 독특한 블랙 재킷과 화이트 크롭트 톱, 화이트 쇼츠, 진주 장식 골드 네크리스 모두 디올(Dior).

 

밑단에 플리츠 디테일을 가미한 네이비 베스트와 화이트 크롭트 톱, 짧은 플리츠스커트, 진주 장식 골드 네크리스, 버클 디테일 화이트 스트랩 슈즈 모두 디올(Dior).
밑단에 플리츠 디테일을 가미한 네이비 베스트와 화이트 크롭트 톱, 짧은 플리츠스커트, 진주 장식 골드 네크리스, 버클 디테일 화이트 스트랩 슈즈 모두 디올(Dior).

 

심플한 화이트 버튼으로 등에 포인트를 준 크롭트 톱과 동일한 소재의 화이트 쇼츠 모두 디올(Dior).
심플한 화이트 버튼으로 등에 포인트를 준 크롭트 톱과 동일한 소재의 화이트 쇼츠 모두 디올(Dior).

 

베이지 스트라이프 패턴 롱 베스트와 안에 입은 화이트 톱, 버클 디테일 화이트 스트랩 슈즈, 진주 스터드 이어링 모두 디올(Dior).
베이지 스트라이프 패턴 롱 베스트와 안에 입은 화이트 톱, 버클 디테일 화이트 스트랩 슈즈, 진주 스터드 이어링 모두 디올(Dior).

 

짙은 블루 컬러가 매력적인 니트 크롭트 톱과 화이트 쇼츠, 투명한 원석 싱글 이어링, 버클 디테일 화이트 스트랩 슈즈, 메탈 블루 컬러의 디올라마 백 모두 디올(Dior).
짙은 블루 컬러가 매력적인 니트 크롭트 톱과 화이트 쇼츠, 투명한 원석 싱글 이어링, 버클 디테일 화이트 스트랩 슈즈, 메탈 블루 컬러의 디올라마 백 모두 디올(Dior).

 

원피스처럼 연출한 롱 베스트와 안에 입은 화이트 톱, 스트라이프 베스트, 베이식한 실루엣의 쇼츠, 후프 모양 이어링 모두 디올(Dior).
원피스처럼 연출한 롱 베스트와 안에 입은 화이트 톱, 스트라이프 베스트, 베이식한 실루엣의 쇼츠, 후프 모양 이어링 모두 디올(D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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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과의 대화 #3

Sagan, Francoise - Schriftstellerin, Frankreich

#03

작가의 테이블

원고를 쓰려고 컴퓨터를 거실로 들고 나왔다가 방금 대형 사고를 내고 말았다. 무릎에 얹어둔 키보드가 미끄러지면서 그 모서리가 테이블을 쾅 내리찍은 것이다. 으악!!!!! 순간 소름이 끼쳤지만 이미 늦었다. 평평하던 탁자 표면에 손톱 크기만 한 흉터가 선명히 새겨지고 만 것이다. 넘어지거나, 잔을 깨거나, 버스를 놓치거나, 물을 엎질렀을 때 이런 느낌이겠지. 아아, 딱 10초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참나무와 티크로 만들어진 이 테이블은 2년 전 가을에 우리 집으로 배달되었다. 이사 와서 신나게 세간살이를 사들이던 무렵이었다. 빈티지 가구를 파는 성북동 모벨랩에 들렀다가 한편에 놓인 길쭉한 테이블에 시선이 멈췄다. 반듯하게 각지고 날씬한, 불그스름한 윤기가 잔잔히 흐르는 테이블은 아무 특징도 장식도 없었지만 너무 수수해서 오히려 도드라져 보였달까. 보자마자 이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한스 베그너(Hans Wegner)가 디자인한 거예요. 올해가 마침 베그너 탄생 1백 주년이라 더 의미가 있죠.” 베그너? 파파 베어와 셸 체어를 만들었다는 그 덴마크 디자이너? 대충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렇게 이름난 디자이너의 수식이 붙는 대가로 예산을 훨씬 웃도는 지출을 감행해야 할 테니 딱히 고마운 건 아니었다. 게다가 좋은 물건을 얻었다는 기쁨도 잠시 뿐, 집으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이 테이블은 책을 쌓아두거나, 와인과 커피를 엎지르거나, TV를 시청할 때 발을 올려놓는 등의 다양한 만행에 늘 혹사당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급기야 오늘은 고작 컴퓨터 자판 따위로 이 위대한 디자인 유산을 내리쳤으니, 베그너가 봤다면 관 뚜껑을 열고 벌떡 일어날 일 아니겠는가.

나는 2년 만에 처음으로 약간의 죄책감과 성의를 가지고 이 물건의 정체를 추적해보았다. 단서는 베그너와 소파 테이블이라는 단어 두 개. 검색한 바에 따르면 모델명은 AT12, 안드레아스 터크(Andreas Tuck)라는 코펜하겐의 가구회사에서 만든 것으로, 제작 연대는 1950년에서 1959년 사이로 추정된다. 그러니까 무려 60년 동안이나 북유럽 어느 댁 거실에서 안락하게 잘 지내왔는데, 이 먼 이국땅에서 모진 풍파를 겪으며 2년 만에 급격히 노화해버린 셈이 되나. 송구한 마음을 금할 길 없지만 어쩌겠는가, 가구는 스스로 운명을 정하지 못하는 걸. 가방이든 구두든 험하게 다루는 버릇을 가진 나로서는 모든 물건은 낡음으로써 거꾸로 역사와 생명력을 얻게 되는 것이라고 자위할 수밖에 없다. 낡았다는 건, 그만큼 내 피부와 자주 닿았고 항상 가까이에 있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니까.

한때 나의 롤모델이었던 프랑수아즈 사강은 재떨이를 옆에 두고도 늘 탁자 위에 대충 비벼서 담배를 끄는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주변의 증언에 따르면 그녀의 테이블은 수많은 ‘담배빵’의 흔적으로 성한 구석이 없었다고 한다. 작가의 테이블이란 원래 그렇게 고뇌의 흔적과 함께하는 것이다. 나도 테이블 걱정일랑 그만 하고 좋은 글 쓸 생각이나 더 해야 하는지 모른다. 혹시 나중에 누가 이 테이블을 보고 이렇게 얘기해줄 수 있다면 베그너에게 미안한 맘이 어느 정도 상쇄될지도. “그 작가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글 쓰는 버릇이 있었는데, 이게 바로 그 흔적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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