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in Ple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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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리단길 뒤편의 맛집 골목으로 부상한 회나무길. 남산으로 향하는 오르막을 따라 이리저리 뻗은 주택가 곳곳에 트렌디하면서도 아늑한 분위기를 내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자리하고 있다. 체크인플리즈(Checkinnplz)는 이런 회나무길에 자리한 게스트하우스다. 경리단길 주민으로 오래 지내온 주인은 단독주택의 2층과 3층을 정갈한 인테리어로 꾸며 객실로 만들고, 반지하 공간에 커피숍을 꾸려 자신의 동네와 꼭 어울리는 차분한 공간을 완성했다. 3층 옥상의 야외 공간에선 바비큐를 할 수도 있어 친구들와 홈 파티 느낌을 내기에도 좋다.

모난 여자들

시스루 원피스, 브라톱, 롱스커트, 화이트 샌들 모두 더 스튜디오 케이(The Studio K), 뱅글 케이트앤켈리(KatenKelly).
시스루 원피스, 브라톱, 롱스커트, 화이트 샌들 모두 더 스튜디오 케이(The Studio K), 뱅글 케이트앤켈리(KatenKelly).

우리는 지금 젖었지만 축축하지는 않다

<젖은잡지> 편집장 정두리

“우린 가능한 한 많은 독자들이 하루 종일 꼴려 있고 젖어 매일 방탕 한 성생활로 인생을 탕진하길 바란다.” <젖은잡지> 창간호 서문 속 정두리 편집장의 문장이다. 여성이 만드는 ‘에로 아트북’을 표방하며 금기의 영역으로 천진하게 뛰어든 발행인이자 편집장 정두리. 그녀는 수간(獸姦)부터 SM 플레이, 동성애 등 상상 이상의 수위를 넘나들며 널리 음란을 전파하고 있다.

2013년 총제작비 20만원으로 완성했던 창간호를 시작으로 이제 <젖은잡지>는 배포와 동시에 1천5백 부가 완판되는 어엿한 독립 잡지로 성장했다. 선구자의 행보가 그러하듯 지난해 정두리 편집장은 음란물 유포죄로 고소당하기도 하고(최종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악플러 1백50여 명을 고소하는 등 모난 날들을 보냈다.

“세상에는 이성애자 남성만 살고 있지 않다. 이성애자 여성은 물론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다양한 성적 취향을 지닌 이들이 있지만 성인물이라 유통되는 것 대부분이 이성애자 남성 입맛에 충실하다. 이들에게 섹시해 보이는 피사체가 내게는 전혀 야하게 와 닿지 않는 게 내내 불편했다.”

읽을거리에도 충실한데, 가령 본디지(bondage, 결박) 페티시를 주제로 화보를 기획하면 덧붙여 본디지 플레이를 하기 전 유의 사항과 응용하면 좋을 결박법을 설명하는 식이다. “음침한 시선은 거둬내고 페티시에 객관적으로 접근하고 싶다. 한국에는 ‘내게 이런 성적 환상이나 페티시가 있다’고 터놓는 문화도 없을뿐더러 페티시의 정의조차 정립되어 있지 않으니 소라넷 몰카나 리벤지 포르노(보복으로 과거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하는 것) 등 기형적인 형태들이 등장하는 거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성’ 같은 구성애 아줌마의 구호를 외치려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성인물에 등장하는 여성은 ‘밝히는 여자’ 정도로 단순화돼 있지 않나. 여성도 남성만큼 성욕이 있을 수 있다는 전제는 기본이고, 괴상하고 이상해 보일 법한 다양한 성적 취향을 지닌 존재임을 알리고 싶다.”

 

니트 톱 럭키슈에뜨(Lucky Chouette), 블루 패턴 스커트 곽현주(Kwak Hyun Joo), 네크리스 블랙뮤즈(Black Muse), 이어링 겟미블링(Get Me Bling), 펌프스 힐 슈콤마보니(Suecomma Bonnie), 헬멧 쇼에이 바이 바이크랩(Shoei by Bikelab).
니트 톱 럭키슈에뜨(Lucky Chouette), 블루 패턴 스커트 곽현주(Kwak Hyun Joo), 네크리스 블랙뮤즈(Black Muse), 이어링 겟미블링(Get Me Bling), 펌프스 힐 슈콤마보니(Suecomma Bonnie), 헬멧 쇼에이 바이 바이크랩(Shoei by Bikelab).

속도가 주는 순수한 쾌감에 사로잡히다

모터사이클 선수 이지혜

“모터사이클은 교감할 수 있는 기계다. 몸과 기계가 완전히 밀착하기 때문에 자동차보다 친밀감이 높다. 타이어와 지면의 느낌이 피부로 고스란히 전해지고 엔진의 움직임이 심장박동처럼 느껴진다. 모터사이클을 승마와 비교하는 이유다. 승마와 마찬가지로 지금 타고 있는 대상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모터사이클의 능력을 한계치 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곧 선수의 능력이다. 기계에 끌려다니지 않고, 호흡을 어떻게 나누는가가 관건이다.” 국내 유일의 여성 모터사이클 선수 이지혜. 모터사이클이 좋아 정비까지 섭렵했다.

“미용사인 어머니의 권유로 미용학과에 입학했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2010년 BMW 모토라드에 신입 미캐닉으로 입사했다. 미캐닉이야말로 철저히 남성 중심의 세계다. 입사했을 때 ‘저러다 그만두겠지’, ‘놀다가 가’ 식의 분위기가 있었고, 사수는 ‘왜 여기서 고생하느냐’고 혼도 냈다. 그래도 매일 밤 11시까지 남아 공구 쓰임새부터 익혔다. 작업복 한쪽 주머니에는 메모장, 다른 쪽에는 드라이버, 스패너 같은 공구를 꼽고 살았다. 엔진오일 교체하는 법을 익히는데만 6개월이 걸렸으니 초반에는 남성 미캐닉보다 확실히 진도가 안나가더라. 하지만 어느 순간 실력에 가속도가 붙었다. 3년 만에 주임으로 승진하게 됐다. 이례적인 인사다.(웃음)”

첫 레이스는 2012년 KSBK(코리아 슈퍼바이크 챔피언십) 로드 레이스. 이후 4년 만에 당당히 KSBK R3 루키 챌린지 B 클래스 3위를 차지하며 여성 최초로 포디움에 올랐다. 그녀의 가까운 꿈은 모터사이클로 세계 여행을 하는 것. 미캐닉을 시작한 것도 오지에서 바이크가 고장났을 때 혼자 힘으로 고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런던에서 동쪽으로 한없이 달려 뉴욕에 닿았던 이완 맥그리거가 떠올랐다. 몽골의 사막, 카자흐스탄의 바위산을 달릴 그녀를 상상해봤다. 시즌 2·3위를 목표로 하는 그녀의 올해 첫 경기는 3월 27일 KSBK 개막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왼쪽)최정윤_ 블라우스와 앞트임 스커트 에스이콜와이지(S=YZ), 스틸레토 힐 슈콤마보니(Suecomma Bonnie), 이어링 프란시스케이(Franciskay), 뱅글 블랙뮤즈(Black Muse). (오른쪽)곽유라_ 블라우스와 팬츠 에스이콜와이지(S=YZ), 스틸레토 힐 세르지오 로시(Sergio Rossi), 이어링 그렝드보떼(Grain de Beaute).
(오른쪽)최정윤_ 블라우스와 앞트임 스커트 에스이콜와이지(S=YZ), 스틸레토 힐 슈콤마보니(Suecomma Bonnie), 이어링 프란시스케이(Franciskay), 뱅글 블랙뮤즈(Black Muse). (왼쪽)곽유라_ 블라우스와 팬츠 에스이콜와이지(S=YZ), 스틸레토 힐 세르지오 로시(Sergio Rossi),
이어링 그렝드보떼(Grain de Beaute).

두 여자의 판타지

플레져랩 대표 곽유라·최정윤

중환자실을 담당하던 간호사, 해외 곳곳을 다니며 글을 쓰던 기자. 두 여자가 뭉쳐 특이한 사업을 벌였다. 그녀들이 만든 ‘플레져랩(Pleasure Lab)’이라는 공간은 언뜻 보기엔 아담한 디자인 소품 가게인 듯하지만 사실 딜도나 바이브레이터 등의 섹스 토이를 파는 세련된 성인용품점이다. 그리고 섹스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 특히 여성들이 가진 성에 대한 폐쇄적인 생각을 바꿔나가고자 하는 두 여자의 의지가 담긴 공간이기도 하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인용품점은 어둡고 음침한 곳이다. 남성의 욕망과 판타지에만 초점을 맞춘 가게들이 대부분이기도 하고. 성인용품은 변태가 파는 물건, 변태가 쓰는 물건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 ‘왜 여자의 쾌락을 위한 공간은 없을까? 왜 모든 성인용품 가게는 어두침침하며, 죄를 짓는 기분으로 몰래 드나들어야 하나?’라는 의문에서 출발해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여자의 판타지를 위한, 여자의 기쁨을 위한 예쁘고 밝은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었다.”(곽유라)

가게 문을 연 지 어느덧 1년이 다 돼간다. 한국 사회에 사는, 이제 갓 서른을 넘긴, 평범한 두 여자에게 서울 한복판에 성인용품 가게를 여는 건 예상대로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성인용품을 판매하는 소매업은 ‘향락업’으로 분류되어 정부의 창업 지원을 받을 수 없었고, 주변의 시선 또한 낯설기만 했다.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이런일을 하니 한국의 결혼 시장에서 점수가 떨어질 테고, 연애하기도 힘들 것이며, 어떤 이에게는 음란한 여자로 치부될 텐데 두렵지는 않으냐고. 하지만 난 걱정 안 한다. 오늘은 어제보다 섹스에 대해 솔직하고 명쾌하게 말하고 생각하는 여자들이 많다. 또 내일은 더 많아질거란 걸 안다. 스스로의 삶을 사랑하고, 욕구와 섹스, 자신의 몸과 쾌락을 이해하는 당당한 여자가 왜 숨어야 하나?”(최정윤)

 

블랙 시스루 블라우스 라펠라(La Perla), 블랙 오버올 캘빈 클라인 플래티늄(Calvin Klein Platinum), 스터드 장식 스틸레토 힐 크리스찬 루부탱(Christian Louboutin), 네크리스 블랙뮤즈(Black Muse), 이어링 엠주(mzuu).
블랙 시스루 블라우스 라펠라(La Perla), 블랙 오버올 캘빈 클라인 플래티늄(Calvin Klein Platinum), 스터드 장식 스틸레토 힐 크리스찬 루부탱(Christian Louboutin), 네크리스 블랙뮤즈(Black Muse), 이어링 엠주(mzuu).

느끼는 그대로를 표현하는 삶

퍼포먼스 아티스트 성규리

조금 특별한 일상을 사는 여자가 있다. 하루는 패션 화보 속 모델이 되고, 또 다른 날은 관객 앞에서 즉흥적인 음악을 만들고 공연을 벌이며, 어떤 날은 바텐더가 되어 칵테일을 만들기도 한다. 퍼포먼스 공연팀 ‘루프엑스’의 멤버 성규리는 그렇게 매일을 다르게 산다. “노래를 부르고 싶은 날엔 가수가 되고, 때론 춤도 추는 거다. 하고 싶은 일이 생각나고 또 그 일을 함께 도모할 사람이 떠오르면 어떤 분야든 일단 도전해보는 편이다. 자유롭고, 신나게 말이다. 10년 후에는 밴드를 결성해보고 싶고, 언젠가는 연극 무대가 있는 호텔도 만들 계획도 세웠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한 가지 직업, 하나의 단어로 규정짓고 싶지 않다. 스스로의 색깔을 하나씩 찾고 또 이를 표현하며 사는 걸 운명이라 느낀다. 늘 새로운 일을 꿈꾼다니, 멀리서 보면 현실과는 조금 동떨어진 듯 막연한 삶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가 추구하는 자유란 이렇다. 한순간 폭발하고 금세 사그라지는 신기루가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친 고민과 노력을 더해야만 비로소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것. 홀로 시작했지만 10년째 유지하며 지금은 제법 큰 규모의 극단 형태를 갖추게 된 공연팀 ‘루프엑스’가 바로 그녀가 자유를 좇아 만든 결과물 중 하나다.

루프엑스가 요즘 선보이는 공연의 제목은 ‘블랙 언더(Black Under)’다. 눈을 감은 상태에서 느껴지는 흐릿한 움직임, 희미한 빛의 형체, 스치는 소리 등 완벽한 어둠에 이르기 직전의 순간을 극적으로 표현해내는 무대다. ‘몸짓과 소리, 조명 장치를 이용해 눈을 감았을 때 느껴지는 것들의 형태를 추상적으로 그려낸다. 모호한 상태를 느끼는 그대로 표현하는 무대와 현실과 꿈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녀의 일상이 사뭇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이 공연을 낯설어하는 관객이 많다. 정확히 어떤 장르냐고 묻기도 하고. 글쎄, 공연에 대한 답을 내는 몫은 관객에게 맡겨두고 싶다. 한 단어로 정의 내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냥 보고 느낀 그대로가 공연의 주제 그 자체니까.”

 

레더 베스트 코치(Coach), 블랙 레더 쇼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오픈토 앵클 슈콤마보니(Suecomma Bonnie).
레더 베스트 코치(Coach), 블랙 레더 쇼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오픈토 앵클 슈콤마보니(Suecomma Bonnie).

몸 위에 그림을 새기는 보통 여자

타투이스트 그림

커다란 고래와 독수리, 화려한 날개를 펼친 나비, 줄기가 엉킨 꽃, 타오르는 촛불, 고양이와 주사위, 초록색 물고기, 서늘하게 날이 선 칼과 앙상한 야자수. 타투이스트 그림(Greem)의 몸에 새겨진 그림들이다. 저마다의 의미가 서로 연관 지어지지 않는 듯한 각각의 타투에는 그녀가 스쳐온 일상과 감정, 사랑, 아픔 그리고 성장이 함께 녹아 있다. 연인이 직접 새긴 고래와 고양이 타투,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난생처음 몸에 새긴 물고기부터 타투이스트로 진로를 정하며 자유로워지기 위해 적은 특별한 글귀까지. 기억하고픈 순간들을 담은 그림을 작고 아담한 몸 위에 가득 새겼다. “모든 타투에는 새길 당시의 추억이 담겨 있다. 타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마 어떤 기분인지 알 것이다. 하나씩 새기면서 한 부분씩 채워가는 그 맛. 하지만 오른쪽 다리는 아직 하얀 도화지로 남겨뒀다. 세계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좋아하는 타투이스트에게서 타투를 하나씩 받아 꽉 채워 넣을 생각이다.”

어린아이가 스케치북을 펼쳐 뽐내듯 예쁜 그림의 타투를 하나하나 내보이던 그녀의 순수한 열정과는 상관없이, 사회와 타인의 시선이 차갑게만 느껴지는 때도 있다. 시간이 갈수록 문신에 대한 인식이 유연해지고는 있지만 까만 잉크로 빼곡히 채워진 그녀의 모습이 어디서나 튈 수밖에 없는 건 사실이다. “길을 걸을 때나 지하철, 버스를 탈 때, 특히 어르신들이 많은 자리에 가면 아무래도 불편하다. 나를 향해 혀를 내두르기도 하고 심지어 손가락질을 하기도 한다. 사회의 편견을 혼자 깨부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 너무 얽매여 살고 싶지는 않다. 이렇게 문신이 많은 내가 오히려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면 또 새로워 보이지 않나? 나는 나쁜 여자가 아니라 그냥 타투이스트다.”

 

데님 블루종 럭키슈에뜨(Lucky Chouette), 스커트 마쥬(Maje), 스틸레토 힐 모노톡시 바이 모노바비(Monotoxic by Monobabie), 골드 네크리스와 앤티크한 뱅글 모두 블랙뮤즈(Black Muse), 블랙 가죽 골드 스터드 팔찌 케이트앤켈리(KatenKelly), 큐빅 골드 팔찌 겟미블링(Get Me Bling), 블랙 큐빅에 그레이실 꼬임 골드 뱅글 빈티지 헐리우드(Vintage Hollywood).
데님 블루종 럭키슈에뜨(Lucky Chouette), 스커트 마쥬(Maje), 스틸레토 힐 모노톡시 바이 모노바비(Monotoxic by Monobabie), 골드 네크리스와 앤티크한 뱅글 모두 블랙뮤즈(Black Muse), 블랙 가죽 골드 스터드 팔찌 케이트앤켈리(KatenKelly), 큐빅 골드 팔찌 겟미블링(Get Me Bling), 블랙 큐빅에 그레이실 꼬임 골드 뱅글 빈티지 헐리우드(Vintage Hollywood).

술만큼 맛있는 이야기 한 잔을 빚다

대동여주(酒)도 콘텐츠 제작자 이지민

국민 주모, 음주 전문가, 술의 여제, 술 골라 주는 언니··· 이지민 대표를 수식하는 말은 많다. LG와인사업부에서 근무하고 식음료 홍보 전문가로 활동하며 세상의 온갖 술을 탐험하다 전통술을 만난 그녀는 ‘전통주 덕후’를 자처하며 버튼만 누르면 전통술의 역사와 지역의 특징, 제조 에피소드를 술술 풀어놓는 전통주 전문가가 됐다.

“술 한 잔에 지역 식생활이 촘촘히 연결된 점이 전통주의 매력이다. 제주도에 가면 고소리술을 꼭 맛보길 추천한다. 벼농사가 어려운 제주에서는 주로 조 농사를 지었다. 점성이 없는 거친 곡물인 조로 오메기떡을 만들었는데 그 떡을 발효시킨 것이 오메기술이다. 그리고 그 오메기술을 증류한 게 고소리술이다. 한 잔 목으로 넘기면 화산섬 특유의 거친 느낌이 입 안 가득 퍼지는데 ‘안 마셔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마셔본 사람은 없다’는 말뜻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전통주는 그 지역 음식과 가장 잘 어울린다는 점도 흥미로운데 전주 한정식에는 전주의 이강주가 최고의 마리아주다. 이강주에는 배와 생강, 한약재인 울금이 들어가는데 알싸하고 쌉쌀한 맛이 전이나 부침 등 기름기 많은 음식과 기막힌 조화를 이룬다. 그래서 지인들에게 치맥이 아니라 치킨에 이강주, ‘치강’을 권하기도 한다.”

이지민 대표는 전통주 하면 연상되는 한복 입은 어르신 이미지의 정반대에 서 있다. 2015년 5월부터 친구 박초희와 함께 ‘대동여주(酒)도’라는 재기발랄한 간판을 내걸고, ‘두 명의 젊은 여자가 전국 술을 다 마시겠다’는 각오로 전국 도가를 누비고 있다. 이 사랑스러운 술꾼들의 생생한 이야기는 대동여주도 페이스북 페이지(www.facebook.com/drinksool)에서 만날 수 있다. “남루한 도가에 담겨 있는 이야기가 그저 좋더라. 고서 속 우리 술 이야기, 한평생 술만 빚은 명인들의 이야기를 밖으로 꺼내 보석처럼 가공하고 싶다. 고증할 수 있는 자료도 많지 않고, 양조장에서 문서화하지 않은 비법들도 많아 포스팅하는 데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돈 받고 하는 일도 아닌데 왜 이리 열심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좋은데 별수 있나.(웃음)”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기억

사진작가 사르커 프로틱(Sarker Protick) ‘Of River and Lost Lands’
‘Of River and Lost Lands’ 시리즈의 사진. 마을 중심부까지 차오른 파드마 강가에 남겨져 생활하는 주민의 모습과 음산한 분위기의 마을 전경.

흘러간 과거의 어느 한때를 찬찬히 머릿속에 떠올려본다. 그 순간 들려오던 일상의 소리, 코끝에 감돌던 공기, 그리고 눈앞에 비치던 햇빛의 잔상이 조금씩 되살아나면서 당시에 느꼈던 감정까지 생생하게 그려진다. 사진가 사르커 프로틱 (Sarker Protick)의 사진을 마주하면 이처럼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들이 하나둘 맞춰지는 듯한 묘한 감상이 든다. 방글라데시 출신의 젊은 사진가 사르커 프로틱 은 사라지기 직전의 것들을 사진에 담는다. 이제는 세상을 떠난 그의 조부모와 함께했던 시간과 그들의 흔적이 묻은 공간을 담은 작품 시리즈 ‘What Remains’, 전 세계 상업영화들의 틈에서 설 곳을 잃어가는 방글라데시 영화계의 모습을 그린 ‘Love me or Kill me’, 그리고 거대한 파드마 강(Padma River)의 물살에 침식되어 무너져버린 작은 마을과 그곳 사람들의 삶을 담은 ‘Of River and Lost Lands’. 사진가 사르커 프로틱 이 포착하는 사진 속 피사체들은 모두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거나, 서서히 사라져가는 것들이다. 하지만 흐릿한 빛을 고루 머금은 그의 사진에는 소멸하는 것들의 아련한 감성이 마치 시간을 멈춰놓은 듯 생생하게 살아 숨 쉰다.

사진작가 사르커 프로틱(Sarker Protick)
물안개가 자욱하게 낀 마을 한편의 모습. 침식에 의해 커다란 나무들의 뿌리가 물에 잠겼다.

사진가 사르커 프로틱(Sarker Protick)

2012년 국제 사진 예술계에 처음으로 등장한 사진가. 2014년 영국의 유서 깊은 사진 예술 매거진 에서 ‘주목해야 할 사진가’로 선정되고, 미국의 유명 매거진 <PDN(Photo District News)>에서 ‘올해의 사진가 30인’ 중 한 명으로 뽑히며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2014년과 2015년 두 해에 걸쳐 세계 보도사진 어워드(World Press Photo Award)에서 수상하며 현재 가장 주목받는 포토 저널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그의 사진 작품은 <뉴욕타임스>, <리버레이션>,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볼 수 있다. http://sarkerprotick.com/

사진작가 사르커 프로틱(Sarker Protick)
마을의 땅이 무너지면서 처참하게 부서져버린 마을 곳곳의 주택들과 거처를 잃은 마을 주민들의 모습.

사진가 사르커 프로틱 INTERVIEW

어떻게 사진가가 됐나? 대학에 다니던 어느 날, 카메라가 달린 휴대폰을 갖게 됐다. 그때가 내 생애 처음으로 카메라라는 도구를 접한 때다. 강의실에 앉아 있다가 커튼 사이로 햇빛이 반짝이는 모습을 찍었는데 그것이 내 첫 사진이다. 그날 이후로 사진의 매력에 푹 빠져 작업해오다 직업으로 삼게 됐다.

작품에 대한 영감은 주로 어디서 받는 편인가? 새로운 지역이나 낯선 공간을 찾았을 때 느끼는 감정이 가장 강력한 영감이 된다. 새로운 공간에서 사람들을 사귀고, 그곳의 분위기에 녹아들면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매 순간 느껴지는 감성에 푹 빠져 자연스럽게 작업을 시작하게 되는 과정을 즐긴다.

 

사진작가 사르커 프로틱(Sarker Protick) ‘Love me or Kill me’
‘Love me or Kill me’ 시리즈의 사진. 사랑과 증오, 복수에 대한 이야기를 연기하는 영화 <Big Brother>의 세트장.

빛이 퍼지는 듯한 효과와 파스텔 톤의 색감이 돋보이는 사진들이다. 렌즈의 조리개를 최대한 조여 빛이 조금씩 서서히 스며들게 하고, 노출 시간을 늘리는 기법을 주로 사용한다.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는 쨍쨍한 날보다는 흐린 날에 작업하는 걸 선호한다. 구름과 안개가 잔뜩 낀 날의 하얗게 번지는 햇빛을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눈에 보이는 색을 그대로 옮기 기보다는 카메라 앞에 놓인 광경의 감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색감을 선택하고 사진에 담는다. 화가들이 자신만의 색으로 채운 팔레트의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듯, 사진가 또한 렌즈로 투영되는 빛을 통해 저마다의 색으로 팔레트를 채워 사진을 찍는다.

 

사진작가 사르커 프로틱(Sarker Protick) ‘Of River and Lost Lands’
‘Of River and Lost Lands’ 시리즈의 사진. 마을 중심부까지 차오른 파드마 강가에 남겨져 생활하는 주민의 모습과 음산한 분위기의 마을 전경.

예술적인 영감은 물론, 철학적인 메시지까지 담아낸 사진들을 선보인다. 또한 환경과 사회에 대한 이슈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도 느껴진다. 나는 사진을 찍는 사진가이기 이전에 나만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과 현실에 대해 소신 있게 표현하는 작가이고 싶다. 사진이란 작가가 메시지와 의도를 표현하는 하나의 매개체일 뿐이다. 문학이나 음악, 미술처럼 말이다.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이미지보다는 작가의 고민을 거쳐 찾은 예술적 요소를 더해 감상의 여지를 두는 사진 작품을 선호한다.

 

사진작가 사르커 프로틱(Sarker Protick) ‘What Remains’
‘What Remains’ 시리즈의 사진. 작가 사르커 프로틱이 담은 조부모의 모습.
사진작가 사르커 프로틱(Sarker Protick)
세상을 떠나기 전 창가에 앉아 생각에 잠긴 할머니의 모습.

당신의 조부모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사진 시리즈 ‘What Remains’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작업을 진행하면서 어떤 기분이 들었을지 궁금하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시작한 작업이다. 그들의 집에 머물며 작업을 시작했는데 막상 함께 지내다 보니 공유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별로 없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기도 했고, 세대 차이가 느껴지기도 했다. 근사한 사진을 찍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들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일 또한 중요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나이 들어가는 것, 그리고 죽음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을 기록해 작품으로 남길 수 있다는 것, 사진가로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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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사르커 프로틱(Sarker Protick) ‘Of River and Lost Lands’
‘Of River and Lost Lands’ 시리즈의 사진. 방글라데시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파드마 강의 물살에 이쇼르디(Ishwardi) 근교의 작은 마을이 빠른 속도로 침식되고 있다.

‘Of River and Lost Lands’의 배경이 된 곳은 어디인가? 지난 2011년 말에 파드마 강을 기점으로 그 주변에 자리한 여러 지역을 여행하던 중 마주친 마을이다. 파드마 강의 유수량이 급격히 많아지면서 강과 맞닿은 땅이 빠르게 침식됐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집이 하나둘 땅과 함께 무너져갔다. 지금 사진 속 마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마을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작품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표현하고자 했나? 마을로 범람하는 강은 대자연을 의미하고, 갈곳을 잃어가는 마을 주민들은 인류를 상징한다. 자연은 모든 것을 내어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모든 것을 앗아가기도 하는 거대한 존재다. 한때 생존에 필요한 식량과 물을 내어주던 강은 어느새 사람들의 터전을 무너뜨렸다. 자연과 인류의 관계를 조명해보고자 진행한 작업이다.

 

사진작가 사르커 프로틱(Sarker Protick)
마을의 땅이 무너지면서 처참하게 부서져버린 마을 곳곳의 주택들과 거처를 잃은 마을 주민들의 모습.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과 지역을 담아낸 두 시리즈에 비해 작품 ‘Love me or Kill me’의 분위기는 비교적 밝아 보인다.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환상적인 세계를 담아내고 싶었다. <Big Brother>라는 제목의 영화를 촬영 중인 한 세트장에 찾아가 작업한 결과물인데, 영화는 사랑과 증오, 복수심 등의 감정을 극적으로 그려내는 스토리다. 나는 영화 촬영 현장의 모습을 더욱 선명한 색감과 구도로 연출해 사진에 담았다. 점차 쇠퇴하는 방글라데시 영화계의 현실을 비현실적인 분위기와 과장된 설정을 담은 사진을 통해 역설적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다.

주로 방글라데시에서만 사진 작업을 해온 것 같다. 앞으로도 방글라데시 곳곳을 다니며 더욱 다양한 작업을 진행할 생각이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를 새로운 시각으로 관찰하고, 또 겪어보지 않은 낯선 면면을 발견하는 일이 좋다. 이미 익숙한 문화를 더욱 깊게 파헤쳐 볼 수 있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방글라데시에서의 작업을 끝내고 또 다른 목적지로 향하게 된다면 어디로 가고 싶은가? 아이슬란드. 혹은 눈이 아주 많이 내려 온통 하얗게 뒤덮인 곳이라면 그 어디라도 좋다.

대부분의 작품 시리즈가 소멸에 관한 이야기다. 사라지는 것들을 주제로 삼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사실 나도 놀랐다. 모든 시리즈를 완성한 후에야 그것들이 모두 우연히 ‘소멸’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매번 작업을 진행할 때마다 그 순간 떠오르는 감정에 휩쓸려 사진을 찍었는데, 결과물을 모아보니 모두 사라지는 것들이었다. 사진 작업은 잃어버리고, 소멸하고, 지속되지 않는 것들에 유난히 마음이 끌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사라진 것들 중 당신에게 가장 큰 아쉬움을 남긴 것은 무엇인가? 나는 늘 친구와 가족처럼 가까운 사람들을 잃을 때, 그들의 존재와 관계가 흐려질 때 가장 큰 아쉬움을 느낀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그만큼 삶의 매 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