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이원근

이원근
안에 입은 화이트 셔츠와 베이지 톱 모두 오디너리 피플(Ordinary People), 블루종 닐 바렛(Neil Barrett).

이원근이 입을 열면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말이 느리고 크진 않지만 묵직한 목소리 때문에 자연스레 집중하게 된다. 키 크고 얼굴 작은 전형적인 요즘 남자의 모습에 느릿한 말투로 혼자 극장에 가는 것을 좋아하고 꽃꽂이를 배우고 연극을 보러 다니며, 빠르게 달리기보다는 천천히 생각하며 걷는 걸 더 좋아한다고 자신의 취향을 이야기한다. 겉모습을 보고는 좀처럼 짐작할 수 없는 취향들. <여교사>의 김태용 감독은 이원근을 캐스팅한 이유 중 하나로 ‘속내를 알 수 없는 얼굴’을 들었다.

그렇게 그는 진심을 알 수 없는 얼굴로 영화 데뷔작에서 두 여교사의 팽팽한 심리 싸움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언제고 끊어질 것 같은 불안감은 아마도 그로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데뷔작부터 제 몫을 너끈히 해낸 이원근은 자신을 달리는 토끼를 쫓아가는 거북이에 비유했지만 그의 발걸음은 꽤 빠르다. 지난해 김기덕 감독의 <그물>에 이어 올해에는 <환절기>와 <괴물들>, <그대 이름은 장미>가 연이어 개봉하고 조만간 새로운 드라마도 시작할 참이다. 지금껏 연기한 작품과 앞으로 보여줄 작품에서는 배우는 배우로, 자신이 선택한 길이 옳다는 믿음을 가지고 후회 없을 20대를 그렇게 살아가는 중이다.

 

이원근
스트라이프 셔츠 J.W. 앤더슨(J.W. Anderson), 네이비 팬츠 웨일스 보너(Wales Bonner), 구두 닥터마틴(Dr. Martens).

인스타그램 포스트의 대부분이 영화에 관한 얘기다. 오래전부터 영화를 좋아했다. 성격이 차분한 편이어서 그런지 가만히 앉아 무언가 하는 걸 좋아한다. 드라마 보는 것도 좋아하고. 학창 시절부터 극장에 가는 걸 좋아 했는데 그래서 연기를 시작한 건 아니다. 영화의 일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다. 영화를 보고 나서 재미있다, 재미없다, 좋다, 나쁘다 정도만 생각했지. 이제야 좀 다른 관점으로 영화를 보고 있기는 하다. 나라면 저런 상황에서 이렇게 해봐야지, 이런 식으로.

영화를 보는 것만큼 연기하는 것도 즐거운가? 어렵다. 배우는 다른 사람을 연기한다는 면에서 일종의 특권을 누리는 것 같다. 내가 나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다른 인물을 보여주니 말이다. 모든 사람이 각자 고유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그 성격을 감춘 채 다른 인물의 감정을 채워가며 만들어내야 한다는 점이 힘들긴 하다. 뭐든지 배우는 건 쉽지 않으니까. 어떤 직업을 가졌건 배움을 멈추면 성장할 수 없다. 배우도 마찬가지다. 나는 늘 배우는 배우이고 싶다. 경험 많은 선배뿐 아니라 어린아이에게도 배울 것은 늘 있다. 여전히 배울 것이 많은 연기가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즐겁다. 재미를 느끼는 것과는 좀 다른 의미인 것 같다. 그러기에는 부족한 것이 많다. 다만 또 다른 나를 하나씩 알아가는 것에 만족한다. 재미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기는 아직이르다.

배우가 되고 나서 영화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겠다. 전에는 캐릭터들의 연기가 보였다면 이제는 주변 요소가 조금씩 보인다. 미술 소품도 보이고 촬영감독은 왜 저 장면을 저렇게 찍었나 궁금하기도 하고. 왜 저 인물은 저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는지 알고 싶을 때도 있고 조명에도 관심이 생긴다. 다른 배우의 연기를 눈여겨보기도 한다. 어떤 배우가 영화에서 어떤 감정일 때 눈을 만지면, 비슷한 감도의 감정 연기를 할 때 그 배우의 연기를 참고하는 거다.

최근에 좋게 본 영화는? <녹터널 애니멀스>. 세 번 봤다. 너무 좋았다. 영화 자체도 좋고 배우의 연기는 말할 필요도 없고. 궁금한 게 많아 GV(관객과의 대화)에도 갔다. 영화를 보면 강조되는 색이 있는데 그 이유가 알고 싶었다. 긴장감 넘치면서도 왠지 모르게 외로운 음악도 좋았다. 언젠가 내가 연기하고 싶은 정서와 닮은 지점이 있는 영화다.

 

이원근
셔츠 김서룡 옴므(Kimseoryong Homme), 구두 알도(Aldo),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배우가 아닌 오롯이 관객으로서 영화의 매력이 뭔가? 친구들과 시끌벅적 놀다가도 영화 보러 가자고 한다. 술 마시다가도 술 마셨으니 영화 보러 가자고 한다. 상영 전에 나오는 광고도 없앴으면 좋겠다. 너무 산만하지 않나. 예술영화 전용관에 가면 광고 없이 고요히 있다가 암전이 된 후 영화가 시작되어 좋다. 불이 꺼졌다가 영화가 시작되는 그 순간이 참 좋다. 떨리고 설레고.

활동적인 취미는 없나? 음… 없는 것 같다. 눈으로 자연과 교감하는 것도 좋아한다. ‘너의 앙상한 나뭇가지는 어쩌고….’ 이런 생각을 하는 거지. 감정 기복이 별로 없어 화를 잘 내지 않는데 남들이 보기엔 재미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정작 나는 재미있다. 조용한 시간을 좋아해서 대본도 이른 새벽에 보는 편이다. 새벽 서너 시의 기운이 마음에 든다. 너무 조용하면 이명이 느껴져서 음악을 작게 틀어 놓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꽃꽂이 학원에 다녔다. 부산에서 영화 촬영을 끝내고 돌아와 한 달 정도 다녔는데 봄이 오면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화사한 색깔의 꽃을 만지고 싶었는데 겨울이어서 원하는 색감의 꽃이 없었다. 뭐든지 혼자 하는 데 거부감이 없다. 혼자 영화 보는 건 물론이고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거나 뭔가를 배우거나, 혼자 잘한다. 연기를 시작하고 내 기운이 점점 좋아지는 것 같다. 꿈이 특별히 없었을 때에는 그냥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싶었다. 그런데 배우가 되고 나니 해보고 싶은 것이 많아졌다. 해보고 싶은 게 생겼을 때 느껴지는 기운이 좋은 것 같다. 물을 무서워해서 수영을 할 줄 모르는데 올여름에는 스킨스쿠버도 배워볼 작정이다.

얼마 전에 <환절기>에 함께 출연한 배종옥 선배의 연극을 보러 갔던데, 작품을 하면서 만난 배우들과 인연이 이어지는 편인가? 늘 인간관계에 고민이 많다. 배종옥 선배님은 주말 드라마에 이어 <환절기>에서 한 번 더 함께 연기했다. 연기뿐 아니라 삶 자체와 나의 길에 대해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신다. 그렇다고 어느 한쪽에 치우친 얘기를 하시는 건 아니다. 선배가 내 나이일 때 느꼈던 것들, 내가 지금 느낄 만한 것들을 하나하나 말씀해주신다. 길을 알려주기보다 늘 편히 생각하라고 하신다. 배종옥 선배님은 참 편하고 좋으신 분이다. 선생님이 출연한 연극 <꽃의 비밀>을 혼자 보러 갔다.

많은 이야기 중에 유독 마음에 와 닿는 조언이 있었겠지. 처음 모습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연기하며 많은 배우를 보셨을 테고 그중에는 좋은 배우도 있지만 아쉬운 배우도 있었을 것이다. 연기나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나 본래 심성이 변하면 변화를 인지한 나 자신도 그렇지만 주변 사람들이 안타깝지 않겠나.

이원근은 어떤 심성을 지닌 사람인가? 의사 표현을 확실히 하지도 않고 잘 못 한다. 작은 말에 상처받고 상처를 훌훌 털어 내지도 못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고 시끄러운 것보다 조용한 걸 더 좋아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보다 편한 장소에 머무는 게 좋다. 누군가에게 선뜻 먼저 다가가지도 못한다. 내가 다가가면 괜히 상대방이 불편하지는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먼저 다가가 말을 건네면 좋을 텐데 그러질 못하니 답답할 때도 있다.

 

요즘 가장 큰 고민이 뭔가? 내가 말을 잘 안 한다. 이상하게 말하는 게 어색하다. 말을 하지 않으니 생각이 많아지고 더 차분해지면서 더 말을 안 하게 된다. 아마 혼자 다니기 좋아하고 집에서도 혼자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누군가를 만나도 전처럼 막 반가워하질 못하겠다. 곧 드라마를 시작해 대본 연습도 해야 하는데 걱정이다. 그간 너무 우울한 영화만 해서 그런 걸까?

연기를 시작하고 가장 신난 때는 언제인가? 내가 나온 영화를 처음으로 볼 때. 엄청 떨리는데 자꾸 웃음이 나오고 좋다. 만감이 교차한달까.

아직은 서툰 모습이 많이 보일 때다. 서툰 자신을 보기 두려울 수도 있겠다. 사람이 매번 옳은 길로 갈 수 없다. 지름길인 줄 알고 갔는데 그 길 끝에 도착했을 때 다시 양 갈래 길이 나올 수도 있다. 다만 내가 잘 가고 있다는 확신이 있으면 된다. ‘토끼와 거북이’를 보더라도 그렇다. 토끼가 매우 빠르고 유능하지만 저 멀리서 거북이가 기어오는 모습을 보고 방심하면 어느 순간 거북이가 그 대단한 토끼를 앞지르는 거다. 옳은 길로 가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꾸준히 걸으면 되는 거다. 나도 마찬가지다. 옳은 길로 가는 나를 발견 할 수 있다면, 길을 잃지 않으면 만족할 거다.

이 길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배우로서 불안한 시기일 것 같다. 고민이 없을 순 없다. 하지만 하지 않으려고 한다. 고민의 근원이 열등감이든 아니든 편히 생각하는 중이다. 다른 배우를 질투하고 시기하고 비교하는 건 의미 없다. 나보다 더 좋은 에너지를 갖췄기에 잘되는 것 아니겠나. 삶을 대하는 지금의 태도를 잃지 않으면 나도 가질 수 있는 에너지라고 생각한다. 슬로 스타터라는 말도 있지 않나.

20대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나? 후회 없이 살고 싶다. 언제고 뒤돌아 보더라도 나의 20대는 후회 없이 살았노라, 최선을 다했노라 확신할 수 있을 만큼. 있는 힘을 다해 20대를 치열하게 보낸다면 30대의 시작이 좋지 않겠나. 지금 충분히 치열한가? 당연하다. 치열하지 않으면 안 되고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재능 있는 사람이 아니어서 계속 뭔가를 해야 한다. 생각하며 느끼고 배우고. 그래야 한다.

 

이원근
라이더 재킷과 안에 입은 티셔츠, 팬츠 모두 문수권(Munsoo kwon), 블랙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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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이지훈

이지훈
화이트 셔츠 코스(cos), 블랙 니트 스웨터 탑텐(TopTen). 화병 이딸라(Iittala).

촬영을 마치고 배우 이지훈과 마주 앉으니 밤 12시였다. 단 몇 시간 동안 목격한 그는 타고나길 살뜰한 남자다. 늦은 시간에 촬영하게 된 데 대해 양해를 구하고, 스태프들의 다음 날 출근 시간까지 물어본 뒤 ‘많이 웃겨드리겠다’고 말하며 자기가 먼저 웃었다. 일상에서 살뜰하게 타인을 대하는 방식 그대로 배우 이지훈은 극 중 캐릭터의 결 하나하나를 사려 깊게 읽어나간다.

그런 이유로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의 ‘허치현’은 그가 연기했기 때문에 ‘악인이자 악인이 아닌’ 인물로 탄생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어머니를 향한 애증과 새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싶은 간절함, 이복동생에게 느끼는 열등감을 온순한 얼굴 뒤에 숨긴 채 들끓는 감정 변화를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 역할에 대한 해석도, 쌓아온 필모그래피도 차분하다는 말에 그는 “천천히 올라 갈게요. 저는 급하게 갈 생각이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보이지 않는 지름길을 찾으려 시간을 허비하기보다 방향감각을 잃지 않은 채 같은 속도로 앞으로 밀고 나아가는 것. 지금 배우 이지훈이 가장 잘하고 있는 일이다.

이지훈
레드 스웨터 랙앤본 바이 비이커(Rag & Bone by Beaker), 그레이 터틀넥 일레븐티(Eleventy).

함께 일한 사람들이 왜 한결같이 칭찬하는지 알겠어요. 촬영 현장에서 사람들과 편해지려고 노력하는 편이죠? 현장에서 불편함을 느끼거나 주눅들면 말리는 타입이에요. 연기가 뜻대로 되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아무리 대선배님이라 해도 무조건 먼저 가서 비벼요.(웃음) 선‘ 배님 저 좀 잘 봐주세요. 연기 잘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하는 거예요. 어딜 가도 비타민 같은 사람이 있잖아요. 보이지 않으면 오‘ 늘은 걔 안 오니?’ 하며 찾게 되는 사람. 현장에서 환영받아야 내가 그만큼 편히 연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기운을 나눠주는 유형의 사람 같아요. 작품은 공동 작업인데 내가 그 사람 기 빨아서 뭐하겠어요. 모두의 기가 잘 섞이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내 기운만 세면 물론 나는 잘 보이겠지만 그 신은 망하는 거니까요.

‘순둥순둥해’ 보이지만 <푸른 바다의 전설>을 촬영하면서 12kg을 감량했어요. 독한 면이 있네요? 연기 욕심이 커요. 부잣집 아들로 무탈하게 살아온 인물이라 초반에는 살을 많이 찌웠어요. 극이 진행되면서 큰 감정 변화를 겪고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시점부터는 급격히 살을 뺐죠.

극이 진행될수록 인물을 입체감 있게 만들어나갔어요. 악역인데 어딘가 짠하기도 했어요. 대학생 때 히키코모리와 관련한 심리학 수업을 들은 적이 있어요. 당시 교수님이 히키코모리라고 해서 하루 종일 우울하거나 움츠려 있는 것이 아니다. 밖에 나오지 않을 뿐이지 집 안에서는 웃으며 즐겁게 지내는 사람도 있다고 하셨죠. 사람의 결이 그만큼 다양하다는 이야기일 거예요. 허치현도 그렇게 해석하려고 했죠. 아픔과 열등감이 있다고 해서 좋아하는 여성 앞에서까지 늘 주눅 들어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녀 앞에서는 수줍지만 싫어하는 사람을 두고는 죽여버리겠다고 마음먹을 수도 있는 사람이라고 봤죠.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그 속까지 지레짐작하지 않는게 중요한 것 같아요. 작품 안에서든, 밖에서든.

차분하고 꾸준하게 필모그래피를 쌓고 있어요. 한 인터뷰에서 말했던 ‘소처럼 일하겠다’는 다짐을 잘 실천하고 있는 것 같아요. 밑천이 드러날 것이 두려워 소처럼 일하는 거예요. 조금이라도 쉬면 연기가 정체될 것 같아서 어떤 역할이든 불러주시면 가리지 않고 다 했어요. 연기를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초반에는 혼자 스타니슬랍스키의 <배우 수업>이나 <연기론> 등 ‘연기의 정석’ 같은 책을 보며 공부했어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은데 물어 볼 데도 없으니 막히기도 많이 막혔죠. 현장에서 감독님들에게 혼도 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연기를 배웠어요. 속상하니까 자책도 많이 했고요. 그래도 요즘은 조금씩 제 연기가 정돈되고 있다는 느낌이 와요.

자책하면서도 왜 연기를 놓지 못했어요? 그러지 않아도 1년 정도 쉰 적이 있어요. ‘계속 이렇게 연기를 해도 되나?’를 시작으로 ‘내가 재능이 있기는 한가?’,  ‘온전히 노력만으로 연기를 터득해야 하는 사람은 아닌가?’ 등 스스로에게 비관적인 질문을 많이 한 시기죠. 한 3개월을 그렇게 지내니까 고민이고 뭐고 다 필요 없고 연기가 하고 싶어 미치겠더라고요. 부족함을 느끼더라도 현장에서 느끼고 싶고 혼나더라도 현장에서 혼나고 싶어졌어요. 그 순간부터 욕심이 생기고 마음이 요동쳤죠. ‘나 지금 왜 집에 있지? 빨리 감독님 만나고 촬영장 가야 하는데’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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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강렬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나니 각오가 단단해지던가요? 저 이제 죽을 때까지 연기 할 거예요. 할 줄 아는 다른 것도 없어요. 축구로 시험을 봐서 대학에 입학했고 축구 선수가 꿈이었는데 축구를 못 하게 됐거든요. 축구 다음으로 이만큼 하고 싶은 일이 연기밖에 없어요.

승부욕이나 근성 같은 운동선수의 기질이 배우라는 직업에도 영향을 주나요? 군대에서 동기나 간부들이 ‘네가 무슨 배우냐, TV에 나오겠다고?’ 하면 ‘에이, 저 꼭 할 겁니다’ 웃으며 답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어디 두고 봐, 무조건 할 거야’ 했어요. ‘잘생긴 건 아니지만 못생기지도 않았다. 얼굴이 나처럼 도화지 같아야 어떤 역할을 해도 잘 흡수하지, 나는 뭔가 될 거 같다’고 말하고 다녔어요. 그러니 사람들이 더 미친놈이라고 했고요.(웃음)

혼자 앓은 시간이 길었던 만큼 하고 싶은 일도 많죠? 요즘 이전 영화들을 다시 보는 중인데 최근 본 영화가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이에요. 신체적 지체가 있는 사회적 약자를 대변할 수 있는 역할을 조심스럽게, 잘해보고 싶어요. 지금까지 실생활에서 약자를 대변하며 살지 못했기 때문에 작품에서 만큼은 메시지가 있는 역할을 맡고 싶고요. 돈도 많이 벌어서 무료 급식소도 운영하고 싶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관심이 많네요. 20대에는 나 하나 챙기기 바빴고, 이제 조금씩 사랑도 받고 있으니 책임 있는 행동을 하고 싶어요. 가끔 ‘지금보다 잘되면 어떤 인생을 살게 될까’ 하고 생각해보는데 설사 톱스타가 된다고 해도 매일 집에 숨어 나만의 시간을 보내지는 않을 것 같아요. 저는 성격상 그런 인생은 못 살아요. 숨어 지내지 않겠다는 생각을 항상 해요.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하정우 선배님을 무척 좋아하는데, 낮에 강아지랑 잠원 한강공원을 산책하다가 익숙한 분을 본 거예요. 멀리 떨어져 있어서 처음에는 잘못 봤나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하정우 선배님이었어요. 티셔츠 차림에 가방 하나 메고 여의도까지 혼자 걸어가시더라고요. 의식하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며 걷는 모습에서 산책을 즐길 줄 아는 분이라는 걸 느꼈죠. 대낮에,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 하정우가 한강을 걸었다니까요. 그 모습을 보고 연기하는 사람은 세상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다시금 생각했어요. 저 역시 그렇게 믿어왔기 때문에 선배님한테 더 반했던 것 같고요.

세상 구경하러 또 어디에 자주 가요? 잠실 롯데월드몰이요. 매달 2일이 나 3일에 정산이 되는데 자라(Zara)의 신상이 나왔다는 메시지를 받으면 친구들이랑 옷 사러 가요. 큰돈 들이지 않고 자신에게 선물을 주는 거죠. 가서 사람 구경하고, 알아보고 알은체해주시면 같이 사진도 찍어요. 친구들이랑 풋살 하러도 자주 가고요.

연기 모범생인 줄만 알았는데, 일상도 재미있게 즐기는 것 같아서 좋아보여요. 외로워서 그래요. 친구들과 어울리며 세상을 보는 게 나에게 맞는 삶의 모습이고, 인간 이지훈을 이루는 아주 중요한 요소인 것 같아요. 혼자 사는 건 너무 외롭잖아요.

 

이지훈
데님 재킷 생 로랑(Saint Laurent), 블랙 팬츠 리바이스(Lev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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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 깅엄 체크 블라우스 39만원 마르케스 알메이다 바이 분더샵(Marques´ Almeida by BoonThe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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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솜
컬러 블록 퍼 코트, 연보라색 니트 터틀넥 모두 가격 미정 미우미우(Miu Mi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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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린느 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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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가지 색이 조합된 롱 셔츠플리츠 드레스 가격 미정, 드롭 이어링 1백3만원 모두 셀린느(Celine), 붉은색 스타킹은 에디터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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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퍼프소매 가죽 톱, 블루 데님 팬츠 모두 가격 미정 생 로랑(Saint Laur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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