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윤아, 가을을 탐하다

고급스러운 테일러링이 돋보이는 옅은 베이지 울 코트 조르쥬 레쉬(Georges Rech). 버건디 롱 슬리브리스 니트 드레스, 미니멀한 블랙 로퍼 모두 코스(COS).
네크라인의 셔링 장식이 여성스러운 분위기를 살려주는 아이보리 블라우스 조르쥬 레쉬(Georges Rech). 베이지 스커트 르비에르(L’VIR).
미니멀한 디자인의 네이비 버튼 장식 롱 베스트 조르쥬 레쉬(Georges Rech). 그레이 오버사이즈 터틀넥 원피스, 기하학적 형태의 실버 이어링 모두 르비에르(L’VIR).
시크한 무드를 연출해주는 버건디 버튼 장식 코트 조르쥬 레쉬(Georges Rech). 화이트 라운드넥 셔츠, 그레이 체크 셋업 팬츠 모두 빈폴(Beanpole).
롱 & 린 실루엣이 돋보이는 버건디 버튼 장식 롱 베스트 조르쥬 레쉬(Georges Rech). 버건디 와이드 팬츠 코스(COS), 화이트 보 블라우스 빈폴(Beanpole), 베이지 페이턴트 스틸레토 힐 스튜어트 와이츠먼(Stuart Weitzman).
베스트와 코트를 세트로 연출할 수 있는 네이비 버튼 장식 코트, 네이비 버튼 장식 롱 베스트, 플라워 프린트 원피스 모두 조르쥬 레쉬(Georges Rech).
스티치 장식이 특징인 고급스러운 브라운 울 코트 조르쥬 레쉬(Georges Rech).
캐주얼한 느낌을 더한 블랙 스트링 장식 트렌치코트 조르쥬 레쉬(Georges Rech). 니트 스웨터 빈폴(Beanpole), 미니멀한 블랙 로퍼 코스(C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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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각본 주연 문소리

그레이 체크 롱 코트 스텔라 매카트니 (Stella McCartney), 블랙 실크 원피스 라 실루엣 드 유제니(La Silhouette de Eugenny), 블랙 스웨이드 앵클부츠 스튜어트 와이츠먼(Stuart Weitzman).
블랙 보디수트 와이씨에이치(YCH), 힐 크리스찬 루부탱(Christian Louboutin).
블랙 재킷 와이씨에이치(YCH).
화이트 셔츠 자크뮈스(Jacquemus), 앵클 부티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의 주인공 ‘문소리’는 18년 차 중견 여배우이자 한 가정의 엄마이며 아내이고 딸이자 며느리로 버겁게 산다. 선글라스를 벗지 못한 채 은행 대출 상담을 받고, 치과에서 할인을 담보로 한 사진 촬영을 해야 하며, 요양원에 있는 시어머니를 돌보고, 우는 딸을 달래 유치원도 보내야 한다. 일상 속 먹고살기의 팍팍함과 ‘여배우’는 젊고 예뻐야 하며, 매력도 넘치면서 연기도 잘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영화계가 그녀를 짓누른다.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는 문소리가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하면서 완성한 세 편의 단편 <여배우> <여배우는 오늘도> <최고의 감독>을 묶은 장편 개봉작이다. ‘여배우 문소리’를 소재로 만든 극영화로 일찍이 감독 문소리는 ‘굉장히 진심이지만 실화는 아닌 영화’라고 선을 그었다. 일하는 여성이자 40대 여배우의 삶을 이토록 적나라하게 담을 수 있었던 건 오로지 문소리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반가운 문제작이며 재능을 대범하고도 유연하게 쓸 줄 아는 신인 감독의 등장이다. 단언컨대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는 올해 개봉한 그 어떤 코미디 보다 웃기고 씁쓸하다.

문소리라는 사람이 이렇게 웃기는 사람이었나? 미처 몰랐다. 남편은 일찍이 알고 있었다. 그는 내가 웃겨서 좋다고 한다. 그도 되게 웃긴 사람이고.

장준환 감독이?(웃음) 굉장히 차분한 사람이지만 내가 만난 남자 중에 가장 웃기다. 서로 좀 웃기는 관계랄까. 내가 일을 하니까 다른 감독의 아내들처럼 챙겨주지 못한다. 어떤 감독들은 촬영장에 과일도 싸 오던데 우리 남편은 자기 손으로 밥 챙겨 먹으며 촬영을 다닌다. ‘여자가 꼭 해줘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라고 해버릴 수도 있지만 힘들 때 도움을 못 주니 안쓰럽다. 그럴 때마다 외려 뻔뻔하게 ‘남들 하는 거 못해줘도 내가 웃겨주잖아요’ 한다.(웃음)

개봉 전 유수의 영화제에서 호평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시사회에서는 왜 그렇게 민망해했나? 타고나길 부끄러움이 많다. 내 딸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내가 딸보다 더 부끄러움이 많았다고 하더라. 세상만사 부끄러워서 뭘 못 하고 살았다. 어릴 때는 학교에서 화장실 가고 싶다고 말을 못해 바지에 오줌 싸고. 실은 그게 더 부끄러운 일인데. 지금도 어지간한 일은 다 부끄럽지만 꾹 참고 하는 거다. 부끄러움은 내가 극복해야 하는 것이고 참자 하면 참을 수 있으니까. 그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을 하려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2014년과 2015년에 걸쳐 완성한 작품이니 시간이 꽤 흐른 뒤 개봉했다.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은데. 시간을 두고 다시 보니 나도 이전보다 좀 더 많이 웃었다. 당시에 마음에 안 들던 어떤 부분이 지나고 보니 작품 속에서 다른 기능을 하는 것 같더라. 산다는 게 지금은 내 계산이 다 맞는 것 같고, 내 계획대로 안 되는 것이 속상하기도 하지만 조금 지나고 보면 그게 또 다른 역할을 해주는 것같다. 삶의 오묘함을 새삼 느꼈다.

작품에 대해 ‘굉장히 진심이지만 실화는 아닌 영화’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극 중 주인공 이름이 문소리이고, 실제 문소리가 연기하며 남편인 장준환 감독도 직접 출연한다. 실제 문소리와 극 중 문소리 사이에서 발생할 오해와 혼동에 대한 걱정은 없었나? 굳이 이런 장치가 없다 해도 어차피 그렇게 될 일이기도 하다. 자전적인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나는 이런 삶을 살아왔다. 어떤 이들은 문소리가 세다고 하고, 그게 아니라 눈물 많고 여린 사람이라 하기도 하고, 실제로 보면 예쁘다는 둥 아니라는 둥(웃음) 나를 둘러싼 의견이 분분한데 나는 늘 그 앞에서 별다른 변명 없이 ‘제가 뭐 그렇죠’ 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인 거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진짜인지 가짜인지 헷갈리는 것을 영화적 요소로 가져다 썼다. ‘되게 진짜 같죠? 근데 아닐 수도 있는데’ 하는 거지. 영화 속 집으로 나온 공간도 우리 집이 아니라 세팅해서 찍은 거다. 그러면서 슬쩍 진짜를 숨겨놓기도 하고. 하지만 이런 장치들이 관객을 속이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 필요한 것만 모으다 보니 만들어진 것들이다.

블랙 실크 슬립 라 실루엣 드 유제니(La Silhouette de Eugenny), 와이드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블랙 수트와 앵클 부티 모두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

그럼 진실은 감독 문소리만 알겠다. 근데 나에 대한 진실은 나조차도 헷갈린다. 사실 다 그렇지 않나? 기억은 재구성되기 마련이고, 확신했지만 틀렸던 순간도 있지 않나. ‘당신 언젠가 나에게 그랬잖아요?’ 하고 물었는데 상대방은 아니라고 할 때도 있고. 아무도 확인해줄 수 없는 문제는 존재한다. 다만 사건의 정황은 불분명하지만 그때 내가 어떤 느낌이었고 그걸 통해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걸 영화화했다.

극 중에서 고군분투하는 문소리를 보면서 ‘문소리 안됐다’라기보다 ‘하이고, 나도 맨날 저러는데’ 하게 되더라. 자기 연민이나 자기 학대 없이 영화가 일정한 간격을 칼같이 지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느꼈다면 참 다행이다. 자기 연민이나 자기 학대가 심한 편이다. 배우라는 일을 하다 보면 그게 심해질 때가 꽤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연민이 영화에 묻어날 수 있으니까 그 거리 두기에 유난히 예민하게 신경 썼다. 앵글로 치면 1밀리미터까지 계산하며 이 거리가 맞나 틀리나 확인했다. 주변 스태프들에게도 ‘미친 아줌마 같아, 정상 같아?’ 하며 많이 물어봤고.(웃음)

한 인터뷰에서 임순례 감독이 ‘감독이란 넓은 시야로 객관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런 감독의 임무가 어렵지는 않았나? 넓은 시야로 보다보니 내 연기를 자꾸 놓쳤다.(웃음) 타고난 기질도 있지만 훈련받은 것도 작용 한 것 같다. 양가 집안의 첫째로 늘 맏이이자 큰언니로 살았다. 또래에 비해 어른들의 일도 빨리 깨쳤고 항상 동생들을 살폈다. 명절에 제를 지내려면 내가 나서서 아이들 할 일을 ‘오거나이즈’ 하고.(웃음) 결정적으로 <박하사탕>을 하던 당시 이창동 감독님이 나와 설경구 선배를 연출부 막내처럼 어디든 데리 고 다녔다. 아무래도 <박하사탕>은 대본만 읽고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영화가 아닌가. 게다가 스물여섯 살의 나라면 더더욱. 감독님은 영화를 어렵게 설명하기보다 우리를 연출부처럼 매일 출근시켜 제작 과정을 다 겪게 했다. 스태프 회의를 듣게 하고, 헌팅에도 데려가 뭐라도 먹였다. 감독님은 그 과정에서 작품이 내게 스밀 수 있도록 가르치지 않으며 가르친 거다. 그렇게 영화 만드는 전 과정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았다.

영화의 강약 조절도 탁월하다. 애써 힘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인상이다. 일상도 그런 편인가? 아니다.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다. 데뷔 때는 온몸을 긴장한 채 힘을 주고 살았다. 당시 나를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나를 두고 인상이 무섭다고 했다. 근데 내가 생각해도 무서웠을 것 같다.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건들면 죽이겠다는 심정으로 다녔으니까.

왜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무서워 그랬다. 이 판에 혼자 들어온 것이 무서워서. 매니저도 없이 영화 한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두려운 일이었다. 연극만 하다가 갑작스럽게 영화 데뷔를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맞닥뜨리니까 ‘여기가 좋은 곳일까’라는 생각을 하기 전에 겁부터 먹은 거다. 그 힘을 빼는 데 시간이 정말 오래 걸렸다. 어릴 때부터 힘을 툭 빼고, 자기 매력을 정확히 알아서 ‘저 이래요’ 하는 배우들을 신기해하고 부러워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알게 되고, ‘내가 여기 있어도 되는구나, 아무도 나를 해치지 않는구나’ 깨달으면서 영화 산업 안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됐다. 내가 원래 뭐든 좀 늦되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아이도 늦게 낳고···. 근데 하기는 다 해.

첫 번째 에피소드인 <여배우>에서는 여배우의 외모와 매력에 대한 언급이 잦다. 문소리에게 예쁘다, 아름답다라는 말이 오랜 생각거리였다고 추측하게 된다. 데뷔작인 <박하사탕>에서 2천 대 1이라는 경쟁률의 오디션을 거쳐 주연으로 뽑혔다. 조연도 안 해본 배우가 덜컥 주연이 됐으니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얼마나 궁금했겠나. 그런 나를 두고 ‘여배우치고 예쁘지 않다’는 말을 많이 했다. 여배우에게 예쁘다는 것, 아름답다는 것은 뭘까 궁금하더라. 당시 이창동 감독님에게 여배우는 얼마나 예뻐야 하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그 시간들을 지나고 보니 뻔한 답 같지만, 결론은 누구나 각자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이다. 나만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을 누구보다 내가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남들에게 없는 것. 이게 정말 귀한 건데 스스로 알기까지 쉽지 않다. 자신을 정확히 보는 눈이 있어야 하고, 스스로 힘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에 쉬운 문제는 아니다. 나 역시 어릴 땐 나를 잘 몰랐다.

이 역시 오래 걸렸나? 맞다.(웃음) 배에 힘을 주고, 지금 내가 내 힘으로 서있다고 느끼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떤 식으로든 자기 힘을 가지고, 자기의 눈으로 똑바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보게 된다. 비단 배우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많은 사람의 눈에 다양한 아름다움이 보였으면 좋겠다. 남녀를 떠나 아름답고자 하는 욕망이 왜 없겠나. 다만 각자 원하는 아름다움의 실체를 분명히 알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방식 역시 다양하게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어휴, 근데 나나 잘하지 이래라저래라 하는 게···. 나도 어릴 때 남의 말 안 들었다. 이런 말이 다 무슨 소용인가.

멋진 대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왜 ‘다 무슨 소용이야’ 하고 끝내버리나. 인터뷰 중에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 없으세요?’ ‘요즘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은요?’ 같은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럴 때면 ‘남의 말 듣지 마라’고 답한 다. 내 말도 듣지 마라. 자기 생각이 있으면 그 생각대로 하면 되는 거지 ‘저 사람이 저런 말을 했대. 나도 그러고 싶어’ 이런 태도도 별로이지 않나?

마지막으로, 영화를 왜 하는지, 영화가 우리 인생에서 무엇인지, 사람보다 더 중요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서 이 영화가 시작되었다고 했다. 이쯤 되니 답을 좀 얻었나? 얻어가는 중이다. 정답이 하나가 아닐 테고, 그 생각도 일을 하면서 바뀔 수도 있다. 어느 날 문득 영화계에 들어왔고, 모르니까 어떻게 해서든 알려고 애쓰고, 슬쩍 해보고 그만두기보다는 승부를 내고 싶은 마음으로 매달리다 보니 영화를 더 좋아하게 됐다. 이제 이 안에서 여러 인생들을 본다. 영화 때문에 이런 짓도 하고 저런 짓도 하는 걸 보면서 때때로 ‘도대체 이게 뭐 하는 건가, 영화 때문에 이게 무슨 난리인지’ 싶기도 하다. 그럴 때면 이런 질문들을 품었던 것 같다. ‘영화를 왜 하는 걸까, 사람들은 왜 영화를 보고 싶어 하고 우리는 왜 보여주려고 하는 걸까. 우리는 왜 이러고 사는 걸까’ 하고. 그런데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질 틈 없이 그저 잘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무작정 할 때가 많다. 남들이 하니까 따라 하고, 하다 보면 남들보다 잘하고 싶으니까 더 열심히 하고. 물론 배우는 과정에서는 그 마음도 중요하다. 하지만 평생 할 일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멈춰서 이런 원론적인 질문을 해야 할 때가 있는 것 같다. 지금의 이 일을 왜, 무엇을 위해 하는지, 내가 하는 이 일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나는 그 질문들을 영화 속에 작게나마 던져봤다. 이런 나의 질문을 관객이 웃는 사이에 받는다면 좋겠고, ‘저 사람 생각은 저렇구나. 그렇다면 나는?’이라는 다른 질문으로 확장시킨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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