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Youth

이민기 화이트 셔츠 오디너리 피플(Ordinary People), 네이비 울 테일러드 재킷과 슬랙스 모두 유니버셜 프로덕트 by 1LDK 서울(Universal Product by 1LDK Seoul). 정소민 인디 핑크 블라우스 에센셜(Essentiel), 벨벳 오버올 산드로(Sandro).
옐로 스웨터와 네이비 면 와이드 팬츠 모두 스튜디오 니콜슨 바이 1LDK 서울(Studio Nicholson by 1LDK Seoul). 모디파이드 펌프 스니커즈 베트멍 × 리복 바이 10꼬르소 꼬모(Vetements × Reebok by 10Corso Como).

 LEE MIN GI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서 연기할 ‘남세희’는 어떤 사람이에요? 잠시만요. 지난번에 남세희를 떠올리며 적어둔 글이 있어요. 아, 엄청 길게 적어놨네요.(웃음) 이 친구는 뭐든지 책임질 수 있는 정도만 해요. 짊어질 수 있을 만큼의 무게,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일. 인생을 칼로 자르듯이 산술적으로 보는 거죠. 자신이 정한 선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 하는 인물이죠.

원래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 캐릭터의 느낌을 손으로 직접 적어두나요? 매번 다른데 이번엔 손으로 쓰고 싶었어요.

손글씨를 좋아하나 봐요.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보다 손으로 쓰는 게 성격에 더 잘 맞아요. 다만 악필이어서 저만 알아볼 수 있죠.

남세희를 만들어가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어요? 주변 친구들과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결국 제 또래 젊은이들의 고민이 큰 줄기예요. 우리는 분명 우리만의 시대를 살고 있고 우리만의 생각이 있는데 인생을 살아가는 가치관은 여전히 부모 세대의 영향을 받잖아요. 가령 결혼만 해도 그래요. 복잡한 준비 과정을 거쳐야 하죠. 혹은 결혼 자체가 남녀의 의지만이 아니라 주변의 여러 여건에 의해 이뤄지기도 하고요.

그동안 일명 ‘쎈 캐’를 많이 맡았어요. 반면 이번 캐릭터는 우리 세상과 훨씬 가까워진 느낌이에요. 그 옷이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겠어요. 그보다는 3년만의 작품이다 보니 제 스스로 힘이 빠지지 않아요. 이민기라는 배우가 연기를 잘하고 싶어서 힘을 들이고 있어요. 극 중에서는 오로지 맡은 인물로 임해야 하는데 잘하고 싶은 욕심에 제 자신이 많이 개입되는 것 같아요. 어서 역할에 온전히 녹아들면 좋겠어요.

오랜만에 작품을 맡았으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보다는 이 드라마가 하려고 하는 이야기를 끝까지 잘 풀어냈으면 해요. 우리 세대의 고민을 이야기하니까요. 드라마가 정답이 아니라 고민을 던져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 드라마는 공간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해요. 타인의 공간과 나와의 거리를 지켜주는 게 매너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종종 타인의 공간을 쉽고 무례하게 침범해요. SNS도 마찬가지죠. 온라인에서 타인의 영역을 너무 쉽게 침범하곤 하잖아요. 그런 부분을 고민해볼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 되길 바라요.

<이번 생은 처음이라> 덕분에 하게 된 고민이 있나요? 인생을 살며 일차원적으로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윗 세대의 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결국 자기 생각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말하자면 세뇌처럼요. 그런 생각은 이전부터 많이 해왔어요. 가령 운전하고 가는데 누군가 클랙슨을 크게 누르고 제 차를 추월하면 엄청 화가 나잖아요. 그런데 조금 지나서 돌아보면 그 사람에게 혹시 급한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생각해볼 필요가 있더라고요. 모든 일은 한 번 더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 생기는 것 같아요.

네이비 하이넥 싱글브레스트 코튼 코트와 블랙 슬림 핏 슬랙스 모두 르메르 바이 무이(LeMer by MUI), 화이트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10여 년 전에 인터뷰한 적이 있어요. 오래전 일인데도 기억나는 게 있는데 어떤 캐릭터라도 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 말했어요. 그때는 뭐든지 경험하고 싶었어요.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작품을 통해 이런 사람, 저런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었죠. 제대로 공부하고 연기를 시작한 게 아니어서 무엇이든 경험해봐야 연기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때와 지금, 연기를 대하는 마음이 변했나요? 변했다기보다는 요즘은 좀 떨어져서 보게 돼요. 이전에는 대사 한마디 하려고 대본만 치열하게 파고들었다면 이제는 좀 더 떨어져서 대본이 하려는 이야기를 잘 전달하고 싶어요. 여전히 연기를 잘하고 있는지 물론 불안하죠. 하면 할수록 못하는 것 같아요. 어렵고. 나라는 도구는 하나인데 다른 걸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도 모르겠고. 가끔 지난 작품 속의 내가 더 낫다는 생각도 들어요.

누구에게나 자신을 평가하는 일이 가장 힘든 것 같아요. 성격 때문이기도 한 것 같아요. 뭘 조금만 해도 굉장히 잘했다고 평가하는 사람이 있고, 조금 모자라는 것에 집착하는 유형이 있고. 저는 후자예요. 그 모자란 부분을 어떻게 채워야 하나, 얼마나 모자라나, 이런 고민이 많아요.

뭘 더 채우고 싶어요? 너무 많아요. 전에 김혜수 선배가 나이는 들어가는데 그만큼 내 내면이 채워지고 있는가 하는 고민과 자꾸만 뭘 더 채우고 싶은 욕심때문에 밤마다 영화도 보고 책도 읽느라 잠잘 새가 없다고 하셨죠. 이제야 그 마음이 뭔지 알겠어요. 내가 좀 더 단단해지는 느낌이 들 때까지 채우고 싶어요.

채우는 만큼 비우는 것도 필요한 것 같아요. 내려놓고 싶은 욕심도 있나요? 몇 년 전 미니멀리즘과 관련된 책을 몇 권 읽었는데 그때까지 내가 겪은 스트레스의 근원을 알겠더라고요. 그 덕분에 비워내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했고 실행에 옮기기도 했어요. 짊어지는 게 적을수록, 그게 비록 작은 물건 하나일지라도 생각이 가벼워지더라고요.

앞으로 어떻게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어떤 어른이 되어야겠다거나 하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겠다 다짐하는 건 어려운 일 같아요. 그냥 잘 나이 들어가면 좋겠어요. 좋은 경험을 하며 사는 사람이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나쁜 사람을 겪으면 타인을 경계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사람을 많이 알게 될수록 상처 받는 일도 많고 그러면 힘이 든다는 걸 아니까 만나는 걸 피하게 되고. 말을 많이 해봐야 좋을 거 없다는 걸 아니까 말수가 점점 줄고. 좋은 사람과 좋은 환경에 있으면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민기 블랙 오버사이즈 면 셔츠 헤드 메이너 바이 1LDK 서울 (Hed Mayner by 1LDK Seoul).
정소민 터틀넥 니트 풀오버 마이클 코어스(Michael Kors), 쇼츠 잇미샤(It Michaa).
이민기 핑크 스트라이프 셔츠 베트멍 바이 10꼬르소 꼬모(Vetements by 10Corso Como).
정소민 안에 입은 화이트 셔츠 클루드클레어(Clue de Clare), 겉에 입은 화이트 셔츠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
핑크 시폰 톱 씨 바이 끌로에(See by Chloe), 그레이 체크 재킷 로맨시크(Romanchic).

JUNG SO MIN

생각보다 훨씬 빨리 돌아왔어요. <아버지가 이상해>가 끝나고 좀 쉬려고 했어요. 6개월간 이어진 작품이어서 보는 사람들도 저에게 지칠 수 있고 저 역시 많이 지쳤고요. 웬만하면 쉬려고 했는데 <이번 생은 처음이라>가 웬만하지 않았어요. 시놉시스만 보고 재미있다고 생각한 건 처음이었거든요.

캐릭터가 매력적이었나요? 전에는 제가 연기하게 될 캐릭터를 가장 중요하게 봤는데 지금은 전체를 보게 됐어요. 대본에 담긴 위트와 재치가 매력적이고 ‘윤지호’뿐만 아니라 그 친구들까지 너무 재미있고 사랑스러웠죠. 흥미로운 캐릭터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이야기가 펼쳐질지도 기대됐고요. 신기한 건 극 중 캐릭터와 제가 닮은 점이 무척 많다는 거예요. 지호는 늘 예상치 못한 선택을 해요. 교대에 가라는 아버지의 말을 따르지 않고 국문과에 입학하죠. 저도 그랬거든요. 아버지는 제가 무용과에 진학할 줄 아셨는데, 몰래 연기과에 원서를 냈어요. 드라마 속 친구들 캐릭터도 실제 제 친구들과 닮았어요. 저도 고등학교 때부터 십년지기 친구 둘과 삼총사인데 지호도 그렇죠. 부모님이 진주에서 자라셨는데 드라마 속 배경도 진주예요. 작가님이 마치 저를 보고 글을 쓴 것처럼 닮은 구석이 많아요.

예상치 못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나는 걸까요? 선택했을 때 제가 더 행복할 자신이 있으면 과감하게 행동하는 편이에요. 나를 더 즐겁게 해줄 수 있는 걸 택하죠. 그러기 위해서는 선택의 기준이 확고해야 해요. 20 대 초·중반의 저는 불안했어요. 많이 흔들리던 시기였는데 그때부터 인생의 가치관을 다져왔어요. 지금도 물론 삶의 가치관이 완성되진 않았지만 훨씬 여유가 생겼고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흔들리지 않게 되었어요. 이전에는 제 인생에서 배우라는 직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컸어요. 그런데 이제는 제 삶이 가장 중요하고 제 자신이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있어야 배우 정소민이 있는 거니까요.

자신과 닮은 구석이 많은 캐릭터는 연기하기 더 수월할 것 같아요. 세세하게 아주 많은 것이 닮았는데 이상하게 연기하긴 더 힘들어요. 내가 남을 봤을 때는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내가 나를 보는 것 같아 오히려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보통은 캐릭터의 틀을 잡고 연기를 하는데 그 틀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나는 어떤 사람이지? 나는 그냥 나인데? 이런 생각이 들고 무방비로 노출되는 느낌이에요.

<아버지가 이상해>에서는 상대 배우와의 케미가 좋았어요. 그 케미가 잊히기 전에 새로운 배우와 호흡을 맞춰야 하니 부담스러울 것 같기도 해요. 필요 이상으로 신경이 쓰여요. 다른 작품에서 연기하는 건데도 마치 바람을 피우는 느낌이랄까요?(웃음) 반면에 자신도 있어요. 이민기 씨와는 초·중반까지 ‘어색 미묘한’ 케미를 보여줄 거예요. 서로 끌림이 없는 건 아닌데 뭔가 어색한 사이거든요. 무엇보다 이민기 씨가 노련하게 많이 배려해줘요.

원래는 전작이 끝나고 뭘 하며 시간을 보내려고 했어요? 2~3년 동안 쉬지 않고 일했어요. 전에는 틈이 생기면 뭔가를 배웠어요. 새로운 걸 배우고 경험하는 걸 좋아했죠. 그런데 이제는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여유가 생기면 푹 쉬어요. 그 짧은 틈마저 어딘가에 정기적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답답하더라고요. 너무 달려서 그런가 봐요. 이젠 제 시간에 온전히 푹 쉬고 싶어요. 만약 지금 긴 휴식이 주어진다면 꼭 여행을 가고 싶어요. 원래 엄마와 여행을 가자고 약속했는데 두 번이나 못 지켰어요. <아버지가 이상해>를 끝내면 엄마와 유럽에 가려고 예약까지 해두었는데 결국 엄마 혼자 가셨죠.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고민이 이야기의 큰 줄기예요. 지호와 고민도 비슷한가요? 어떤 점에서는 비슷해요. 고민하는 이유는 결국 미래 때문이잖아요. 지호는 서울대를 졸업했지만 경제 적으로 어려운 10년 차 보조 작가예요. 당장 오늘을 살기 바빠 미래를 설계할 틈이 없죠. 미래를 설계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저도 비슷해요. 고민이 같지는 않아도 공감하는 부분은 많아요. 가령 직장생활을 하면서 겪는 을의 억울함 같은 거? 지호라는 인물이 좋은 이유는 그런 상황에서 사회생활을 유연하게 하면서도 자신의 신념에 어긋나는 일에는 늘 할 말 다하기 때문이에요. ‘이렇게까지 해야 하면 난 안 해.’ 이런 식이죠.

새로운 작품을 앞두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을 것 같아요. 그보다는 제가 연기하는 캐릭터로부터 꼭 뭔가를 배워요. 저와 다르기 때문에 뭔가를 배우기 마련이죠. 작품을 한다는 건 나와 다른 누군가를 배워가는 과정이기도 해요. 제게 없는 면, 하지만 닮고 싶은 면을 배우려고 노력하죠. 10년 가까이 연기하며 많은 캐릭터의 좋은 점이 제게 남았어요. 세상을 보는 관점도 좋은 쪽으로 바뀐 것 같고요.

지호에게 기대하는 건 뭔가요? 제일 닮고 싶은 건 이 친구의 ‘맑음’이에요. 누군가에게 억울하게 상처 받으면 참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얘기해요. 쌓아두거나 삭이는 법이 없죠. 자신이 갑이라 그런 것도 아니고, 멋있어 보이려고 하는 행동도 아니에요. 이제 촬영을 시작한 지 고작 열흘 정도밖에 안 됐지만, 작품을 하면서 지호의 그런 점을 꼭 체득하고 싶어요.

블루 스트라이프 셔츠, 그레이 니트 베스트 모두 이자벨 마랑(Isabel Mar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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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색의 류준열

라이더 재킷과 팬츠 모두 생 로랑 바이 무이(Saint Laurent by MUE), 티셔츠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터틀넥 스웨터 질샌더(Jil Sander), 팬츠 생 로랑 바이 무이(Saint Laurent by MUE), 슈즈 알든(Alden).

약혼녀가 살해당한 남자. 약혼녀의 살인 피의자로 지목된 그 남자의 딸. 피해자의 열성 팬인 다른 남자. 정지우 감독의 신작 <침묵>에서 류준열은 사건의 열쇠를 쥔 열성 팬 ‘동명’을 연기한다. <더 킹>의 ‘두일’을 시작으로 순박해서 그날의 일이 더 비극적으로 느껴지던 <택시운전사>의 ‘재식’과 집착과 순정이라는 상반되는 동시에 일맥상통하는 마음을 지닌 인물 ‘동명’ 그리고 3년에 걸친 프로젝트인 <리틀 포레스트>, 여기에 얼마 전 크랭크업한 <돈>과 촬영 중인 <독전>까지.

류준열은 일일이 나열하기도 숨 가쁜 속도로 쉬지 않고 연기하고 있다. 작품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제각각 다르고,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기대되는 감독의 차기작과 신인 감독의 첫 작품, 드라마와 장르영화까지.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선택의 기준을 짐작할 수 없는 다양한 작품으로 필모그래피를 채워가고 있다. “언젠가 경력이 아주 많이 쌓였을 때에도 저를 수식하는 일관된 색깔은 없으면 좋겠어요. 이런 작품도 하고 저런 작품도 해서 다음 작품을 미루어 짐작할 수 없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최근에 인터뷰한 것이 1년 전쯤인 것 같다. 열심히 하겠다.

<택시운전사>가 개봉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다음 작품인 <침묵>이 개봉한다. <침묵>에서는 어떤 역할을 맡았나? 이하늬 선배가 연기한 ‘유나’의 지나친 열성 팬, 동명이다. 등장인물 가운데 가장 순수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하는 행동 자체가 순수하다기보다는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앞뒤 재지 않고 실행한다는 면에서 순수하다.

정지우 감독과 작업하는 건 어땠나? 정지우 감독님은 배우의 생각을 잘 들어주고 그 생각을 적극적으로 반영해주신다. 감독님과 의견이 다르더라도 감독님이 원래 그린 그림에 잘 융화되도록 해주신다. 촬영하는 내내 감독님과 의견을 나누는 일이 즐거웠고, 현장에서 그런 소통이 반영되어 만들어지는 번뜩이는 장면들이 감각적으로 다가왔다.

배우 송강호에 이어 최민식까지 연이어 대선배들과 작업했다. 당연히 배우는 것이 너무나 많다. 선배들의 좋은 점을 조금씩 배우다 보면 류준열이라는 배우가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최민식 선배는 형 같은 분이다. 현장에서 오롯이 연기만 생각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덕분에 함께 연기하는 장면에서는 선배와 후배가 아닌 동료가 되어서 호흡을 맞출 수 있었다. 신선한 경험이었다.

오래전에 SNS에 ‘범 대 범’이라는 제목으로 최민식 배우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린 적이 있지 않나. 선배와 나 모두 호랑이띠다. 그 사진을 찍은 날이 선배를 처음 만난 날이었다. 그 전에는 시사회 때 잠깐 인사드린 것이 전부였다. 그날 처음 만났는데도 대화를 엄청 많이 나눴다.

출연 분량이 그리 많지 않은데 <침묵>을 선택한 이유 중에는 최민식 선배도 있었겠다. 물론이다. 나 역시 배우를 꿈꾸기 전부터 선배의 연기를 보고 자랐고, 최민식 선배는 젊은 배우라면 누구나 함께 연기하고 싶어 하는 배우일 것이다.

나 홀로 돋보이는 캐릭터에 대한 욕심은 없었나? 아마도 자기 혼자 돋보이기 위해 연기하는 배우는 없을 것이다. 무대에서 뒤로 갈수록 잘 보인다는 말이 있다. 치기 어린 마음에 앞으로 나오려고만 하면 오히려 잘 보이지 않는다. 작품에서 나 혼자 튀는 건 좋은 게 아니다. 나는 그저 작품 속에 잘 섞여 있고 싶다. 잘 섞여서 류준열이라는 배우가 잘 보이지 않더라도 작품의 일부가 되고 싶다. 나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연기하겠다는 생각은 지금껏 한 적이 없다. 다만 내게 주어진 몫을 잘해내고 싶다. 역할의 경중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더 킹>에서 호평을 받은 데 이어 <택시운전사>는 올해의 첫 천만 관객 영화다. 지금껏 큰 실패를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미래가 두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다 잘되는 사람은 하나도 없지 않나. 반대로 뭐든지 안되기만 하는 사람도 없다. 아마 나도 언젠가는 실패를 맞닥뜨리겠지. 하지만 그게 자연스러운 순리라고 생각한다. 괜히 앞서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연기를 계속 잘해내고 싶은 생각은 물론 있다. 그런데 연기라는 건 잘해보겠다고 뭔가를 자꾸 하려고 해서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이를테면 외국어 공부를 하듯 단어를 외울 수도 없으니 말이다. 다만 연기란 계속해서 배우는 일인 것은 분명하다. 배움에는 끝이 없고. 어릴 때 그런 걸로 많이 혼났다. 부모님이 ‘공부 다 했어?’라고 물었을 때 다 했다고 답하면 ‘다 한 게 어디 있느냐고’ 혼났다. 그 뒤론 ‘다 했다’는 표현을 잘 쓰지 않는다. 아직까지 같은 감독님과 두 번 작업해 본 적 없고 모든 이야기의 색은 다르며 연기하는 상대 배우도 다르니 매번 새롭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스웨이드 재킷 김서룡 옴므(Kimseoryong Homme), 팬츠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 슈즈 알든(Alden).
스웨이드 재킷 김서룡 옴므(Kimseoryong Homme), 팬츠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
니트 스웨터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
니트 스웨터와 팬츠 모두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

작품을 선택할 때 일관된 기준이 있나? 시나리오가 재미있으면 끌린다. 그런데 아직 류준열의 스타일이 뭐라고 단정 짓기에는 내 연기 경력이 너무 짧다. 이제 막 필모그래피를 쌓기 시작했으니 작품을 고르는 기준에 대해 거창하게 말할 단계는 아니다.

오늘 유독 대답들이 겸손하고 조심스럽게 들린다.(웃음) 내 주변에는 장점을 얘기해주는 사람들만 있어서 그런가 보다.(웃음) 내가 원래 주변에서 잘한다고 응원해주면 더 잘하는 성향이긴 한데, 그래도 가까운 사람들의 좋은 평가만을 믿고 연기하면 안되지 않나. 오늘 화보 촬영만 해도 그렇다. 계속 멋지다, 좋다고 말해주는데 스태프나 사진가들의 노력과 능력에 비해 내가 못 따라가지 않았나 싶다. 실은 오랜만에 화보를 촬영하는 거라서 아침부터 운동을 열심히 했는데 과했나 보다.(웃음) 그런 식으로 나 자신을 담금질하는 것 같다. 그렇게 나 자신을 단련해야지.

작품을 쉬지 않고 하고 있다. 이토록 바쁜 요즘은 하루를 어떻게 마무리하나? 첫 인터뷰 때는 일기를 쓰며 하루를 마무리한다고 했었다. 여전히 일기를 쓰는 날도 있고, 요즘은 주로 책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요즘 읽는 책은 여러 명의 집을 보여주는 책인데, 그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꿈은 무엇이며,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 공간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과 취향 등이 담겨 있다. 책을 보고 있으면 잠이 잘 온다. 그런데 ‘책 좀 볼까’ 하는 마음이 들 때는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는 때다.

바쁜 와중에 잊지 않고 챙기는 것이 있다면? 나만의 시간이 예전만큼 많지는 않다. 내 시간을 가지려면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 촬영을 마치면 잠을 자고 쉬기 바쁜데, 그 시간을 쪼개어 내 시간을 내야 하니 말이다. 그런데 또 남는 시간을 쉬는 데 다 써버리면 그야말로 일만 하게 된다. 체력적으로 힘들어도 이전에 하던 일을 계속 하려고 애쓴다. 축구도 하고, 다른 운동도 하고 친구들 만나서 수다도 떨고. 친구들과 게임을 많이 하거든. 다트나 보드게임 같은 거. 피곤하다는 이유로 친구들과 만날 약속을 미루기 시작하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만날 수가 없다. 그럼 자연스레 멀어지지 않겠나. 그렇게 일상을 확보하지 않으면 금방 지쳐버릴 것 같다. 하고 싶은 연기를 마음껏 하고 있으니 분명 행복한 일인데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고. 연기하고 오늘처럼 화보를 촬영하는 게 무척 감사한 일이지만 그것만 하면 행복하지 않은 순간이 있을 수 있다. 소중한 일도 그것만 하면 소중함을 느끼지 못할 수 있으니 말이다.

바빠서 그런지 SNS도 아주 가끔 업데이트되는 것 같다. 예전에는 고민해서 짤막한 글귀도 쓰고 그랬는데 요즘은 그럴 여유가 없다. 대신 사진을 찍는다. 그냥 지나치기 아쉬운 순간이나 장면들을 사진으로 찍어 남긴다. 얼마 전에 팬들에게 카메라를 선물 받았는데 그 카메라로 좋은 사진을 찍어 팬들과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여유가 생긴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여전히 여행.

그래도 쉬지 않고 작품을 할 수 있는 건 배우로서 좋은 일이다. 그래서 행복하다. 오랜만에 인터뷰하는 것도 하고 싶은 연기를 하는 것도 날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모두. 촬영장도 늘 행복했으면 좋겠다. 거창한 마음가짐 같은 거 없어도 나를 포함해 촬영장에 있는 사람들이 행복하면 된 거다.

1년 만에 촬영했더니 화면에서 부쩍 다른 얼굴이 느껴진다. 세월을 맞았다.(웃음) 세월의 바람에 다듬어지는 것 같다. 나는 빨리 나이 들고 싶다. 지금 내가 횡설수설하는 걸까? 그런데 그냥 이렇게 횡설수설 말하는 게 진짜 같다. 똑 떨어지는 대답은 뭔가 틀을 너무 정해놓은 것 같지 않나? 재미도 없고.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이런 점, 저런 점. 모두 내 안에 있는 것들이니.

코트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 슬리브리스 티셔츠 피어오브갓(Fear of God), 팬츠 생 로랑 바이 무이(Saint Laurent by M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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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나무에서 태어났다고 믿으며 푸른 피를 연구하는 과학도를 연기했다. ‘재연’이라는 인물의 첫 느낌은 어땠나? 시나리오를 읽는 순간부터 재연이라는 캐릭터가 좋았다. 캐릭터를 이해하고 그에 공감한 때문인지 배우로서 표현해보고 싶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욕망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두 마음이 섞여 단번에 매혹됐다. 마음을 완전히 빼앗긴 상태에서 시작했다.

재연은 어떤 사람인가? 순수한 사람이다. 하지만 재연이 보여주는 순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순수는 아닐 수도 있다. 이 작품을 하면서 순수가 굉장히 위험하고 무서운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재연의 대사 중에 ‘순수한 건 오염되기 쉽죠’라는 말이 있는데 순수하기 때문에 오염 될 수 있고 오염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 같다. 더러운 상태에 얼룩 하나 더해 진다고 그걸 오염이라고 하지는 않으니까. 극도로 깨끗한 상태에서만이 오염이 가능하고 너무 순수하기 때문에 무언가 조금만 닿아도 그 전부를 흡수해 버리는 힘을 가진다.

<유리정원>은 그간 <명왕성>이나 <마돈나> 등을 연출하며 자신만의 색을 만들어온 신수원 감독의 새 작품이다. 지금껏 보여준 신 감독의 작품은 다소 어둡고 때로 거칠다. 신수원 감독님의 작품이 어둡고 세고 약간은 섬뜩하게 느껴질 수 있다. 어딘가 찐득찐득하고 음침한 분위기도 있는데, 나는 이상하게 그 작품들을 보는 내내 따뜻한 무언가를 느꼈다. 그 점이 참 신기했는 데 감독님을 만나보니 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알 것 같았다. 작품 이전에 감독님 자체가 기본적으로 따뜻함을 지닌 분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신이 궁금하다. 엔딩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 그 이유는 아직 말할 수 없다.(웃음) 그 이유를 유추하며 영화를 감상해도 좋을 것 같다.

필모그래피를 보면 어느 순간부터 배우 문근영 본인의 주관과 의지로 작품을 선택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다르게 말하면 대중성과 거리가 먼 작품도 선택해왔다. 내 의지대로 작품을 선택하는 건 맞다. 다만 그 의지가 대중성을 기준으로 발휘된 건 아니다. 지금까지 대중적인 캐릭터도 꽤 했지만 단지 대중적이라는 이유로 연기한 건 아니니까.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캐릭터를 좋아한다. 단지 감정적으로 즐겁고 신난다는 의미의 재미가 아니라 애정과 애착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는 역할에 끌린다. 내가 가진 에너지를 다 쓴다고 해도 아깝지 않게 느끼는 작품을 선택해왔다.

그 때문일까, ‘국민 여동생’ 이후의 행보가 부담스러웠을 텐데 외려 더 자유로워 보인다. 사실 더 자유롭게 선택하고 싶었다. 큰 성공으로 만들어진 좋은 이미지가 주는 장점도 있지만 단점이라 할 수 있는 어떤 한계가 존재한다. 내가 처한 상황이나 위치 때문에 스스로 원한 만큼 자유롭지는 못했다. 크게 매력을 느끼는 캐릭터를 만나도 ‘사람들이 아직 받아들이지 못할 거야’라는 생각에 포기한 적도 있고, 주인공이 아니라 서브 캐릭터에 꽂혀서 하고 싶었지만 방송국이나 제작사에서 ‘왜 그러시냐’며 거절한 적도 있었다.

자유롭겠다는 의지는 때로 사람들의 기대를 배반하는 일을 만들기도 한다. 만약 그랬다면 ‘내가 모자라서 그렇겠지’라고 생각한다. 연기를 정말 잘했다면 기대를 배반했더라도 관객은 ‘아, 이런 것도 이렇게 할 줄은 몰랐네’ 하고 생각했을 텐데 ‘거 봐, 안 어울리잖아’ 하는 반응이 나온다면 그건 다 내가 모자랐기 때문 아니었을까.

머스터드 컬러 니트 풀오버와 팬츠 모두 유돈 초이(Eudon Choi).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려는 욕심이 강해 보인다. 인생 캐릭터를 남겨야겠다는 마음이 있나? 인생 캐릭터를 너무 많이 갖고 싶어 하는 게 문제다. 인생 캐릭터라는 말은 ‘내 인생에서 딱 하나만 있어도 되는 캐릭터’를 의미하지 않나. 모든 캐릭터를 그런 마음으로 대하는 게 내 문제다.

매 작품과 역할을 그런 태도로 임하는 건 배우 본인에게는 가혹한 일이 아닐까? 아무래도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 인물이 좋으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문근영만이 할 수 있는 나만의 캐릭터로 만들어야지 하는 생각이 고된 상황을 극복하게 한다. 이제는 고생 속에서 나름의 즐거움을 만들려고도 하고.

안전한 선택을 피해가는 건 배우 문근영만의 매력이다. 근데 이제는 그게 매력이 되면 안 될 것 같다.(웃음) 그동안 연기하며 안전한 상태에 있을 때 불안해했다. 차갑거나 뜨거워야 하는데 미지근한 상태에 있으면 불안한 생각이 드니까 그게 싫어서 위험을 선호한 적도 있다. ‘편하게 하자, 나를 조금 덜 괴롭히는 선택을 하자’고 늘 마음먹는데도 그게 잘 안 된다. 어려운 캐릭터나 작품에만 끌리니까. 꽂히는 작품을 안 할 수는 있다. 포기하면 되니까. 하지만 문제는 꽂히지 않는 걸 억지로 했을 때 오는 후폭풍이 어마어마하다는 거다. 실제로 그랬던 적도 있었고. 작품이 잘되건 못되건 내게 남는 게 없으니 몰려오는 허무감이 나를 괴롭히더라. 분명히 열심히 촬영하고 있으면서도 그 전에 내가 더 열정적으로 빠져들었던 작품과 비교하면서 ‘지금 왜 더 열심히 하지 않지?’ 하며 나 자신을 괴롭히니까.

<유리정원> 다음 작품은 조금 쉽게 갔으면 좋겠다.(웃음) 다음 작품은 정해졌나? 근영 씨의 건강을 걱정하는 팬이 많다. 건강을 조금 더 회복하고 다음 작품을 선택할 것 같다. 건강은 아주아주 많이 좋아졌다.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그린 코듀로이 수트 노앙(Nohant), 버건디 캐시미어 터틀넥 맨온더분(Man on the Boon).

김태훈

영화 <유리정원>의 ‘지훈’은 소설가이자 관찰자다. 지훈은 일련의 사건으로 주류 문학계에서 도태된 남자다. 한동안 소설을 쓰지 못하고 지내던 중 안면경직이라는 진단을 받은 그는 얼굴이 굳어가는 현상이 마치 나무와 닮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우연히 재연이 써놓은 ‘나는 나무에서 태어났다’라는 글귀를 발견하고 흥미로워하며 재연을 찾아가 그녀를 관찰한다.

그렇게 관찰하며 쓴 글이 지훈을 베스트셀러 작가로 재기하게 만든다. 그런데 나는 지훈이 처음 재연을 찾아간 의도가 글을 쓰고 스타 작가가 돼야겠다는 욕심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훈 역시 외롭고 고립된 사람이고, 자신과 비슷한 감정과 생각을 지닌 누군가를 자연스럽게 찾아갔던 것이라고 본다. 동질감을 느끼고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테고.

소설가라는 직업을 표현하는 면에서도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영화에서 직업보다는 지훈이라는 인물이 지닌 전사와 처한 환경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인물 내면에 더 집중하려고 했다. 흔히 누군가 1년간 아주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고 하면 마르거나 피폐해졌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나. 이 부분을 더 고민했다. 마침 신수원 감독님이 이 상황에서 오히려 살을 찌워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셨다. 방치된 처지를 표현하는데 좋은 방법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살찌우는 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웃음)

지훈이라는 인물에게 특히 공감한 부분이 있나? 나 역시 무명 배우로 지낸 기간이 길었고, 이 일을 거듭할수록 고민과 욕심이 많아진다. 잘 표현해내고 싶다는 생각도 강해진다는 점에서 공감했다. 소설가와 배우 모두 대중의 반응과 평가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도. 소설가 역시 자기 내면을 표현하는 직업이고, 주류가 되지 못할 때 생기는 고민이 있지 않나. 그때 느끼는 외로움에 대해 생각했다.

영화 <아저씨>로 주목 받은 후 <도리화가>의 비열한 오 진사, <설행: 눈길을 걷다>의 알코올 중독자 등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장르와 배역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많은 작품에 출연해왔다. 단 하나의 캐릭터로 대중에게 뚜렷한 인상을 남기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경험하지 못한 것에 도전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다양한 캐릭터를 맡아왔다. 연기를 오래 하고 싶기 때문에 특정한 이미지를 갖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고. 이미지가 고정되지 않았다는 점은 지금까지는 장점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다만 상업 영화 안에서 어떤 성향의 캐릭터를 이야기할 때 딱 떠오를 만큼의 인상 강한 배우라면 지금보다 더 폭넓게 작품을 선택할 수는 있었겠지.

이번 영화에 임하며 그 속으로 잘 녹아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무리해서 돋보이고 빛나려는 것을 경계하며 연기하는 편인가? <유리정원>뿐만 아니라 어느 작품이건 그 안에 잘 녹아 들어가길 바란다. 그렇게 잘 녹아들면 결국 배우는 빛이 날 수밖에 없다. ‘나는 절대로 빛을 안 내겠어!’ 이런 마음은 아니다.(웃음) 작품에 희생하고 헌신하겠다는 의미와도 다르다. 그저 작품에서 나만 커 보여야겠다고 나서지 않는 거다. 그런 의도가 작품에 불편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 진짜 같고 날것 같은 연기는 결국 배우가 작품에 완전히 빠져 들어갔을 때 가능한 일인 것 같다.

연극에서 시작해 독립영화를 거쳐 상업 영화로 드라마에까지 나아갔다. 이쯤 되니 배우라는 직업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것 같나? 아니, 내가 그렇게 적응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요즘은 새삼 촬영 현장과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얼마 전 <러브슬링>이라는 영화를 찍었다. 큰 역할은 아닌데 유해진 선배와 함께 작업하는 과정이 참 즐거웠다. 뭐랄까, 유해진 선배는 상대를 배우이자 동료로서 잘해준다는 차원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크게 열려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다.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함께 촬영하며 저런 선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흔히 말하는 현장이 주는 에너지라는 걸 크게 느낀 적이 없었다. 당장 해내야하는 연기와 역할에 비중을 두고 현장에서 집중했던 터라 현장이 주는 에너지를 느낄 여력이나 여유가 없던 것 같다. 새삼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란 결국 소통을 위한 표현이자 이야기가 아닌가.

훗날 <유리정원>이 본인에게 어떤 작품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은가? <유리정원>이 개봉할 때가 돼서 그런지 나무나 숲이 좋다. 집이 청계산 바로 밑에 있는데, 숲속에 있으면 참 좋다. 자연이 주는 위로의 힘을 새삼 느낀다. <유리정원> 역시 숲이라는 공간이 주는 에너지가 특별했던 작품이다. 그 속에서 외로운 지훈에게 온전히 마음을 실었던 시간으로 기억될 것 같다.

문근영 멀티 체크 코트와 스커트 모두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슈즈 토즈(Tod’s).
김태훈 타탄 체크 수트 곽현주 컬렉션(Kwak Hyun Joo Collection), 블랙 니트 터틀넥 아르마니 익스체인지(A/X), 슬립온 에스티 듀퐁(S.T. Dup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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