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로 떠난 루이비통의 크루즈 쇼

“아름다운 건축물과 숲이 우거진 신비로운 우림으로 떠나는 여행을 즐겨보길 바란다.” 루이 비통 회장 마이클 버크(Michael Burke)의 말처럼 루이 비통의 2018 크루즈 컬렉션 쇼는 마치 다른 세계로 떠나온 듯한 환상을 불러일으켰다. 내부를 금속으로 마감한 거대한 터널, 미래적인 출렁다리, 웅장한 숲속에 위치한 미호 박물관은 이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자아냈다.

루이 비통의 아티스틱 디렉터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이곳을 쇼장으로 선택한 이유를 이렇게 전한다. “루이 비통은 매년 브랜드 철학을 드러내는 건축물과 장소를 발굴해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팜스프링스의 사막, 리우데자네이루의 바다에 이어 푸른 숲의 바다를 소개하고 싶어 미호 박물관을 쇼장으로 선택했다.”

이번 크루즈 컬렉션 쇼는 일본 전통과 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모델들의 메이크업은 일본의 전통 연극인 가부키 배우들의 독특한 화장을 떠올리게 했고, 사무라이 갑옷과 일본의 전통 프린트 등 일본의 특색을 보여주는 요소가 컬렉션 곳곳에 등장했다. 1970년대 패션계를 풍미했던 일본 패션 디자이너 야마모토 간사이와 협업한 의상과 가방이 특히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길을 끈 건 루이 비통의 뮤즈인 한국 배우 배두나의 깜짝 등장이었다. 브랜드 광고 캠페인 최초의 한국인 모델로 크고 작은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던 그녀가 이번엔 피날레 모델로 초청받아 런웨이에 섰다. 그녀는 당당히 쇼의 마지막을 장식했고, 한국 톱 모델 최소라, 정호연, 박희정도 함께 런웨이에 등장하며 코리안 모델 파워를 입증했다.

디올의 내밀한 순간들

©Time

1957년 3월 4일, <타임> 표지

“그의 책에도 나와 있듯 크리스찬 디올은 사람들이 자신을 장인으로 기억해주길 원했습니다. 이 가위 역시 그런 의미죠. 장인이 존재하기에 디올과 같은 패션 하우스가 특별해집니다. 사람들은 디올을 그저 하나의 브랜드라고 생각하지만, 디올이 오트 쿠튀르 하우스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New York Daily News/Getty Imageskorea

1996년 12월 10일, 뉴욕 현대미술관을 찾은 다이애나 비

“디올의 액세서리는 절 매혹시켰죠. 이 백을 보면 늘 페레가 이끌던 시절의 디올이 생각나요. 어떤 대상이 아이콘으로 기억될지는 시간만이 말해줄 수 있습니다. 한 시즌용으로 만든 아이템이 두 시즌 이상 살아남는 것도 대단한데, 20년이 넘도록 사랑받는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죠.”

 

©in Dior by Avedon, Justine Pidardie, Olivier Sailard, éditions Rizzoli, 2015, photo Thiery Legay

1955년 8월, 리처드 애버던이 촬영한 ‘도비마와 코끼리 그리고 겨울 서커스’

“처음 패션계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전 애버던의 사진에 완전히 매료됐어요. (당시 디올의 조수였던) 이브 생 로랑의 드레스와 그걸 둘러싼 이미지 자체가 너무나 강렬했거든요. 코끼리, 헤어스타일, 도비마의 포즈까지도요. 서커스 속의 이 오트 쿠튀르 드레스는 디올 하우스가 펼치는 남다른 미학의 정수를 포착한 작품이죠.”

 

©Photo Regina Gelang, ©Münchner Stadtmuseum, Samlung Fotografie, Archiv Relang

1947년, 파리

“잘록한 허리와 풍성한 힙 라인을 강조한 1947년의 코롤 라인(Corolle line)은 파리라는 도시, 그리고 에펠탑의 라인과 대응되죠. 인체 구조도 마찬가지고요.”

 

©Horst P. Horst/Vogue Paris

1949 F/W 오트 쿠튀르 컬렉션의 주노 드레스

“무슈 디올은 건축가와도 같아요. 형태와 구조로 기억되거든요. 그렇지만 그게 그가 가진 능력의 전부는 아닙니다. 디올은 가볍고 섬세한 아름다움이라는 면모 역시 갖추고 있었어요. 멜랑콜리한 색조를 보면 알 수 있죠.”

 

©Dior Home, Spring Summer 2002

에디 슬리먼

“에디 슬리먼은 디올에 머물며 남성복의 실루엣을 바꿔놓았습니다. 패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게 얼마나 중요한 사건인지 알 거예요. 디올의 이름은 이브 생 로랑, 마크 보앙, 지안프랑코 페레, 존 갈리아노, 에디 슬리먼, 라프 시몬스 등 여러 디자이너의 명성 위에 세워진 길고 풍부한 역사라고 할 수 있어요. 저는 마치 디올의 유산을 관리하는 큐레이터가 된 것 같은 책임감을 느낍니다.”

 

©Eugene Kamerman/Gama-Rapho

막대기를 들고 작업 중인 크리스찬 디올

“크리스찬 디올이 들고 있는 막대기는 쿠튀리에가 그의 팀을 이끄는 인물이라는 걸 보여주죠. 마치 지휘자가 지휘봉으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처럼요. 리더가 되려면 비전과 열망을 가지고, 또 그걸 나눠야 해요. 반대로 팀은 그러한 리더를 지지하고 공동의 목표를 함께 이뤄가죠. 무언가를 혼자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Sex and the City 2, Michael Patrick King, 2009, Warner Bros

<섹스 앤 더 시티>

“‘디올을 사랑해(J’adore Dior)’는 존 갈리아노의 모토였고, 사람들의 입에 끝없이 오르내렸어요. 사라 제시카 파커가 이 티셔츠를 입고 등장했던 <섹스 앤 더 시티>의 한 장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주 멋졌죠.”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와의 인터뷰

아틀리에에서 팀과 함께 작업 중인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

패션계의 슈퍼스타들이 으레 그렇듯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에게도 자신만의 시그니처 룩이 있다. 옆 가르마를 타 뒤로 빗어 넘긴 블론디 헤어와 올 블랙의 옷차림, 그리고 짙은 스모키 메이크업이 그것. 마리냥 거리에 위치한 디올 하우스 라운지에서 그녀는 종종 큰 소리로 웃으며 경쾌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자신 앞에 놓인 여러 가지 난관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게 뭐든 이미 극복했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경쾌함을 사랑한다.

2016년 9월, 디올 여성복 컬렉션의 아트 디렉터로 선 첫 무대에서 그녀는 소설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글귀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We should all be feminists)’를 새긴 티셔츠를 선보이며 명품업계 에 페미니즘이라는 주제의식을 환기했고, 새로운 컬렉션에서는 페미니즘 서적인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Women Who Run with the Wolves)> 을 언급하며 여성들이 자신의 직감을 믿어야 한다고 역설했으며, 존 갈리아노가 남긴 문구 ‘디올을 사랑해(J’adore Dior)’를 재해석해 ‘J’ADIOR’를 선보이기도 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환호했고, 이는 곧 그녀의 상징이 되었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다양한 모습을 지녔다. 세계 패션의 흐름을 바꿀 정도의 카리스마와 타로 카드 해석을 즐기는 독특한 취미 모두 그녀의 일부다. 그런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와 길지 않은 대화를 나눴다. 슈퍼맨을 의미하는 듯한 이니셜 S자 형태의 목걸이가 그녀의 목에서 유독 빛나고 있었다.

 

패션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나요? 전 열두 살 때 이 길을 걷기로 마음먹었어요. 어머니는 제가 땋은 머리에 리본 장식을 한 작은 인형처럼 보이는 옷을 입길 원하셨죠. 그러나 전 벼룩시장에 가서 청바지와 군용 재킷을 사 왔어요. 어머니는 싫어하셨겠지만 옷을 입는 건 저고, 거울에 비친 모습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어머니가 여성성에 관해 어떤 시각을 깨우쳐주었나요? 할머니처럼 아주 독립적인 여성이 되라는 것이었죠. 어려서부터 자율적으로 행동하도록 가르침을 받아왔기 때문에 지금의 저 역시 아이들에게 같은 입장이에요. ‘레이첼, 니콜라! 지금 바로 일을 시작해야 해!’라고 소리치죠.

정신분석학자인 클라리사 핀콜라 에스테스의 책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이 디올 2018 크루즈 컬렉션의 출발점이라고 언급했는데, 이 책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로마의 가족 품을 떠나 파리에서 새로운 모험을 시작했을 때부터 이 책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한때는 의구심으로 인한 무력감에 빠져 있었거든요. 한 사회의 문화적 분위기가 누군가의 직감을 아주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을까요? 이 책은 저를 강하게 만들었어요. 제 직감을 믿게 됐고, 위험을 감수할 결심을 했죠.

책에서 얻은 페미니즘의 가르침 중에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내용이 있나요? 여성들이 자신의 직감을 잘 살피고 따라야 한다는 점입니다. 사회는 여성을 어린 나이부터 억압하고, 스테레오타입의 여성성을 강요하죠. 하지만 동요될 필요가 없어요.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게 무엇인지 생각하고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디올의 2018 크루즈 컬렉션에 언급된 또 다른 인물 조지아 오키프는 옷을 통해 캐릭터를 창조하고 권위를 부여한 인물이죠. 본인의 모습을 정의하는 데 도움을 준 디올의 아이템은 무엇인가요? 재킷과 코트입니다. 저는 여러 분위기의 옷을 혼합하는 방식을 즐겨요. 무겁고 견고한 재킷에 가벼운 스커트를 매치하는 식이죠. 제가 바라는 ‘개성 있는 태도’를 위해 균형을 맞추는 겁니다. 이러한 대비가 디올의 룩에도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거라고 생각해요.

‘여성성’에 관해 바꾸고 싶은 인식이 있나요? 제가 쉽게 말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여성 스스로 자신을 정의해야 한다는 것 하나만은 분명합니다. 누군가 그 역할을 대신하게 해서는 안 되죠. 저는 젊은 세대가 그럴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그들은 똑똑해요. 제 아이와 아이의 친구들은 명확한 의견을 가지고 스무 살의 어리석었던 저보다 훨씬 더 멋진 청춘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밀레니얼 세대를 보며 세대 차이를 실감한 적이 있나요? 인스타그램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예를 들어볼까요? 한번은 딸아이가 포스팅을 하고 있길래 ‘그건 좀 위험할 것 같구나’ 하고 말했더니, 자신이 무엇을 보여줄지는 스스로 결정하고 관리할 수 있다고 답하더군요. 아이들은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고, 소셜 미디어와 그 언어를 해석하는 능력도 뛰어납니다. 오히려 이런 부분에 신중해야 할 사람은 제 세대죠. 그 세계의 문법을 잘 모르니까요.

딸 레이첼의 의견을 참고하는 이유는 무언가요? 레이첼은 제 마음에 들려고 하지 않아요. 그저 자신의 생각을 정직하고 분명하게 말할 뿐이죠. 지금 제겐 그런 의견이 필요해요. 그것이 제가 밀레니얼 세대와 소통할 수 있도록, 또 디올이 젊은 세대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도우니까요. 물론 아이의 말이 제 생각을 아예 바꾸는 건 아닙니다. 저도 고집이라면 만만치 않거든요. 그저 레이첼이 제 일에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거죠.

딸의 시각이 어떻게 다른가요? 저는 다른 문화를 참조하며 작업하는 편이에요. 반면 레이첼은 문화적 전유(cultural appropriation, 타인의 것을 동의 없이 도용하는 것) 현상에 관심이 많아 혹시라도 그렇게 보일 위험이 있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당부하죠. 여행 중에 제가 그 지역의 의상을 구입 해 그 속에서 새로운 스타일을 찾으려고 하면 딸아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런웨이에 기모노를 내놓으면 그건 문화적 전유야. 엄마가 디올의 디자이너가 아니라면 상관없겠지만.” 다른 문화를 알아보기 위해 아프리카나 페루의 전통 의상과 기모노를 가지고 있던 어린 시절의 저와는 사뭇 다른 사고방식이죠.

딸의 그런 이야기에 동의하나요? 꼭 그렇지는 않지만 딸과의 시각 차이 덕분에 이 주제에 대해 많은 자료를 찾아보게 된 건 사실입니다. 패션업계에서 분명히 토론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지금은 다문화 시대니까 주의를 더 기울여야 하죠.

여성들과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들었습니다. 글로벌 브랜드가 되려면 여러 문화를 포용하고 다양한 여성과 공감해야 해요. 저는 이탈리아인이고,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나이지리아인이고, 낸 골딘은 미국인이죠. 자라 온 환경과 그로부터 얻은 경험은 사고방식에 분명한 영향을 미쳐요. 그렇게 다른 성향을 가진 여성 아티스트들이 여성에 대해 가지는 생각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성을 위한 회사’라는 아이디어와 목표는 제게 아주 중요하거든요.

2017 F/W 컬렉션에 타로 카드 모티프가 등장한 걸 보면, 크리스찬 디올처럼 당신도 타로점을 좋아하는 것 같네요. 다들 마법을 좋아하지 않나요? 제게는 가벼운 꿈 같은 것이랄까요. 물론 매일 타로점을 보지는 않지만 저는 종종 그 상징에 매혹됩니다. 제일 좋아하는 카드는 ‘죽음’인데, 키워드와 반대로 부활을 나타내기도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고 매력적인 카드죠.

디올의 첫 여성 수석 디자이너가 되기 전, 발렌티노에서 피에르 파올로 피치올리와 함께 7년간 작업했죠. 남성과 여성의 창의성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발현된다고 생각하나요? 창의성은 성별을 가리지 않아요. 그러나 제가 느낀 차이가 있다면 남성은 여성을 이상화하는 반면 여성은 상상 속 여성을 투사하지 않고 현실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발렌티노에서 만들어냈던 작업물에 비해 당신의 디올 컬렉션에서는 로맨틱한 무드가 덜 느껴져요. 친구인 알버 엘바즈가 이런 말을 한 기억이 나네요. “당신의 첫 번째 쇼를 봤을 때는 ‘마리아 그라치아가 전쟁에 나가는 사람 같군’ 하고 생각했고, 두 번째 기성복 컬렉션을 보고 나서는 ‘마리아 그라치아가 여전히 전쟁 중이군’ 하고 생각했으며, 프리폴 시즌에는 ‘마리아 그라치아가 다시 꿈을 꾸겠다고 결심한 모양이군’ 하고 생각했다.” 알버의 감상 덕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됐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느껴요. 제 컬렉션은 강하면서도 섬세합니다. 여성이 존재하는 방식과 같죠. 이게 바로 제가 정의하는 로맨틱함입니다. 발렌티노가 추구하던 로맨틱과는 조금 다른 방향이에요. 사람들은 종종 제게서 강인함을 보거나 기대하지만, 저는 스스로 섬세하다고 생각하고 믿는 대로 표현할 뿐이에요. 그들의 말 때문에 제가 강한 여성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