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싱키에서 발견한 취향 #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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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위빙의 품격

요한나 글릭센

텍스타일 크래프트 & 디자인

폭포수처럼 늘어뜨려져 있는 패브릭의 문양이 정갈하다. 안쪽으로 길게 이어진 공간에는 올해 20주년을 맞이한 ‘노르망디(Normandie)’ 패브릭이 바다 물결처럼 흔들린다. 섬유 예술가 요한나 글릭센이 디자인한 직물은 러그, 쿠션, 가방, 파우치, 테이블웨어 등 일상의 소품이 되어 핀란드뿐 아니라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중. 직조를 즐기고 디자인의 가르침을 주던 할머니의 영향도 있지만, 천연 소재에 대한 탐구와 편안한 색상, 단순하지만 정교한 직조를 고집하면서 기술적 고민을 멈추지 않는 글릭센의 열정이 한 땀 한 땀 스며 있다. 올해 5월 알바 알토 스툴의 동그란 받침대로 제작해 헬싱키 아르텍에서 20주년 기념 전시를 연 새로운 노르망디 컬렉션도 만날 수 있다. 1980년대 말 글릭센이 처음 작업한 사보이 레스토랑의 리넨 식탁보도 여전히 같은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으니 그녀가 헬싱키 섬유 디자인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 바쁜 와중에도 숍을 지키는 그녀의 설명을 들으며 다채로운 라인을 살펴보자. 무엇보다 글릭센은 소파 위에 그녀의 패브릭을 얹기만 해도 북유럽 가정집으로 탈바꿈할 것이라 조언한다.

주소 Fredrikinkatu 18, 00120 Helsinki
웹사이트 johannagullichs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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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프린트의 총집합

페이퍼숍

길고 긴 겨울과 혹독한 날씨를 견뎌야 하는 헬싱키 사람들에게 쉼터인 집을 꾸미고, 아끼는 친구들을 초대해 환대하는 일은 무척 중요해 보인다. 그들은 손으로 쓴 엽서를 모으거나 친구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하는 소소한 행위를 일상의 큰 즐거움으로 여기는데, ‘페이퍼숍’은 그러한 취향을 충족시킨다. 자매가 함께 소규모 가게로 시작해 헬싱키 대표적인 페이퍼워크 숍으로 성장한 경우로 헬싱키 출신 작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유럽과 미국의 제품을 함께 판매하며, 포옹으로 인사하는 단골들의 방문이 이어진다. 생활용품이나 동물, 꽃과 식물 등을 소재로 한 그림엽서, 달력, 노트, 포장지와 아트 프린트 등에서는 자연과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페이퍼숍에서 운영하는 프린트 스튜디오에서 청첩장이나 기념 카드 등 원하는 그림과 문구를 넣은 나만의 페이퍼워크를 의뢰할 수도 있다. “내 아들 친구 엄마가 그린 엽서 그림이에요.” 플라워 프린트 노트북을 들여다보는 기자에게 말을 건네는 한 손님의 말투에 흐뭇함이 묻어난다. 사랑스러운 그림 앞에서 지갑을 열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고.

주소 Fredrikinkatu 18, 00120 Helsinki
웹사이트 papershop.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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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패션의 취향

리케

‘리케’에서 만난 컬렉션은 현재 헬싱키 패션을 이끄는 새로운 디자인을 감지하게 한다. 남성복 브랜드 ‘프렌(FRENN)’의 공동 창업자이자 디자이너인 안티 라이티넨(Antti Laitinen)과 야르코 칼리오(Jarkko Kallio)가 이끄는 셀렉트 숍으로 프렌을 비롯해 더스티(Dusty), 야나 학실루오토(jaanahaaksiluoto), 마리타 후리나이넨(Marita Huurinainen) 등 총 7개의 로컬 디자이너 컬렉션을 선별해 선보인다. 공통점이라면 윤리적이고 지속 가능한 가치를 추구한다는 점. 대부분의 재료를 헬싱키에서 조달하고 헬싱키나 에스토니아의 소규모 공장에서 수공업으로 제작한다. 불필요한 가공을 하지 않고 현지의 좋은 재료를 친환경적으로 사용하려는 정직한 마음이 리케를 핀란드 패션의 중심으로 이끌었으리라. ‘헬싱키 남자의 라인’이라 불리는 프렌은 올해 9월 핀란드 디자인 페어인 하비타레(Habitare)에서 올해의 디자인 상(2017 Design Deed of The Year Award)을 받기도 했다. 캐주얼하면서도 고급스럽고 정갈한 재봉 라인을 보면 내 남자에게 당장 입히고 싶다. 자작나무 굽 디자인으로 한국에도 유명한 마리타 후리나이넨의 곡선이 아름다운 슈즈도 한참 들여다보게 된다.

주소 Fredrikinakatu 24, Helsinki
웹사이트 liike-sho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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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에서 물을 즐기는 방법

알라스 시 풀

호수의 나라 핀란드는 물과 불가분의 관계임이 분명하다. 얼음 수영 클럽이 사교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육지보다 물이 더 많은 레이크랜드 지역의 수변 마을에는 오두막에서 사우나 연기가 종일 뿜어져 나오니까. 사람들은 전통 사우나와 호수 수영을 반복하며 건강을 챙기고 휴식한다. ‘알라스 시 풀’은 이토록 일상에서 물을 떼어놓을 수 없는 핀란드인을 위한 종합 스포츠센터다. 사우나에서 요가를 하고, 겨울 수영 수업을 듣거나 크로스핏을 한 후 수영장 워크아웃(Cross Train Swim) 등을 즐기는 식인데 2천 7백 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꽤 크다. 수평선과 맞닿은 야외 시설은 크게 대수영장, 바다 수영장, 어린이 수영장으로 구성되고, 이 중 바다 수영장은 발트해의 바닷물로 채워져 있다. 수영장 온도를 실제 해수와 동일하게 유지해 여름에는 따뜻하게, 겨울에는 차갑게 수영할 수 있도록 했다. 알라스 시 풀에서 헬싱키 사람들과 사우나 사교를 하고 발트해 수영장에서 얼음 수영을 즐기며 진정한 헬싱키 문화를 경험해보아도 좋을 듯하다.

주소 Katajanokanlaituri 2a, 00100 Helsinki
웹사이트 allasseapool.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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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상품 디자인의 역사

이딸라 & 아라비아 디자인 센터

핀란드를 대표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이딸리아와 아라비아의 디자인 역사가 펼쳐지는 공간. 9층에 자리한 아라비아 디자인 박물관은 아라비아와 이딸라의 전설적 디자이너 카이 프랑크(Kaj Franck), 티모 사르파네바(Timo Sarpaneva), 루트 브뤼크(Rut Bryk)가 추구한 브랜드 스토리를 들려준다. 세대는 변했지만 여전히 감각적인 유리 공예와 도자기 빈티지 컬렉션은 특별한 영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특히 라플란드의 얼음이 녹는 형상에 영감을 받아 비르칼라가 디자인한 이딸라의 유리공예 ‘울티마 툴레’나 파도에 숨결을 불어넣은 듯한 알바 알토의 ‘알토 화병’은 핀란드 사람들의 생의 일부가 되어 사랑받는 제품들. 디자인 랩은 젊은 아티스트와 디자이너에게 열린 공간이다. 무료 디자인 전시와 여행자에게도 활짝 열려 있는 워크숍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 공간은 2003년 아라비아 미술팀이 설립한 아라비아 미술 부서 모임로 이어진다. 후지우 이시모토(Fujiwo Ishimoto), 헬리애 리우코순츠트룀 (Heljä Liukko-Sundström), 헤이키 오르볼라(Heikki Orvola)의 소속 작가를 두고 아틀리에를 제공하며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것. 정통성을 잃지 않으면서 새롭고 진보적 아이디어를 추구하는 브랜드 철학이 엿보인다. 이딸라와 아라비아 디자인 센터를 둘러보고 나면 두 브랜드의 제품을 총망라해 판매하는 2층 상점을 절대 지나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주소 Hämeentie 135A, 00560 Helsinki
웹사이트 designcentrehelsin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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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에서 발견한 취향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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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칸디나비아식 식탁

레스토랑 사리스토

헬싱키 남부에 자리한 클리판섬(Klippan island)의 유일한 레스토랑 ‘사리스토’로 가는 뱃길은 고작 5분 남짓이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핀란드식 휴양의 그림이 흘러간다. 붉은 오두막이 나지막하게 자리한 바위 섬과 사우스하버에 정박한 새하얀 요트 무리는 외딴섬으로 들어가는 착각이 들게 할 정도. 도심에서 불과 100미터 거리에 있는데 말이다. 제멋대로 자란 풀과 야생화, 굴곡진 바위 위에 우아하게 놓인 아르누보 양식의 흰색 건물은 1898년에 세워진 레스토랑으로 헬싱키에서 가장 정통 방식에 가까운 요리를 선보인다. 계절에 맞게 여름에는 가재, 가을에는 버섯과 베리, 겨울에는 야생동물 스테이크가 유명하며, 언제나 빠지지 않는 것은 전채 요리인 스칸디나비아 플레이트. 성인 손가락만 한 민물 생선 무이쿠(muikku, 흰송어)와 연어과에 속하는 화이트 피시(sika), 양념 청어(silli) 등을 신선한 채소를 곁들여 내놓는다. 북쪽으로 헬싱키 도심, 남쪽으로 수오멘린나(Suomenlinna) 요새의 성벽을 바라보며 스칸디나비아식 정찬을 경험해보길. 20분마다 사리스토피어에서 클리판섬으로 가는 배가 출발하며 매주 토요일은 프라이빗 파티를 위한 시간이다.

주소 Klippan island, 00140 Helsinki
웹사이트 ravintolasaaristo.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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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이 사는 디저트 카페

무민 카페 크루눈하카

무민이 그려진 기저귀를 차고 돌아다니는 아이, 무민이 그려진 그릇에 담긴 사료를 먹는 강아지 등 공간의 사소한 풍경마저 무민으로 가득한 무민 카페 ‘크루눈하카’. 인공 첨가물을 넣지 않고, 모든 재료를 핀란드에서 구해 완성한 페이스트리, 케이크, 쿠키, 샐러드, 아이스크림을 맛볼 수 있다. 카페 한편에 꾸민 키즈 공간에서 아이들은 폭신한 러그에 엎드려 무민이 알려주는 핀란드식 생활 방식을 자연스럽게 익힌다. 예를 들어 “우린 자연으로 돌아가야 해.” “편안하고 단순한 삶만큼 사랑스러운 것은 없어.” “모든 것이 예고 없이 갑자기 바뀌는 삶은 참 아름답지 않니?” 같은 무민의 말을 읽으면서 말이다. 그러니까 약간 과장해서 어른과 아이들을 위한 무민 책방이라 할 수 있다. 이곳에선 느긋하게 무민 시리즈를 읽으며 문장을 아로새기는 시간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주소 Liisankatu 21, 00170 Helsinki
웹사이트 muminkaff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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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인의 어번 라이프스타일

켈로할리

켈로할리는 ‘테우라스타모(Teurastamo)’, 직역하면 도축장이라는 섬뜩한 이름의 공유 공간 내에 있는 레스토랑이다. 천장이 높은 붉은 벽돌 건물은 헬싱키의 식품 산업을 이끌던 거대 도축 공장으로 1933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15년 전 독일에서 시작한 재생 건축물의 공적 자산 운동이 헬싱키에서도 뒤늦게 시작되어 어번 라이프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리노베이션을 거쳐 2013년에 대중에 공개한 너른 부지 안에는 켈로할리를 중심으로 로스팅 카페와 파스타 공장, 작은 바와 비즈니스 대학, 서점, 양조장 그리고 심지어 사우나 등 12개 업체가 들어서 있다. 켈로할리는 로컬 브랜드 식자재로 요리한 음식을 뷔페로 내며 사람들은 운동장 같은 너른 공간에 이웃해 앉아 음식을 즐긴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이곳 마당은 켈로할리의 야외 테이블과 헬싱키 주민의 공동 뒤뜰로 탈바꿈한다. 마당 한편에서 수염과 문신이 근사한 청년이 오래된 레코드판을 팔고, DJ 파티를 준비하는 이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켈로할리에서 오가닉 사과 음료를 주문해 잔디밭의 해먹에 누워 흔들거리거나 선베드에서 낮잠을 청하는 것만으로 이곳에 갈 이유는 충분할 듯!

주소 Työpajankatu 2, 00580 Helsinki
웹사이트 teurastam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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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 술의 맛

헬싱키 디스틸링 컴퍼니

높게 솟은 굴뚝이 인상적인 붉은 벽돌 건물은 비누 공장, 세차장, 미트볼 팩토리, 와인 셀러 등을 거쳐 양조장으로 재탄생한 핀란드의 증류 회사. 위스키 애호가인 세아무스 홀로한(Séamus Holohan)과 카이 킬피넨(Kai Kilpinen), 양조업자 미코 뮈캐넨(Mikko Mykkänen) 세 사람이 합작해 2013년 창업했다. 4년 남짓 된 젊은 기업이지만 1백여 년간 부진하던 영역에서 독자적인 로컬 브랜드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슈납스, 진, 리큐어, 사과 음료 등을 만들며 올해 9월 3년의 노력 끝에 첫 위스키를 생산했다. “헬싱키에서 나는 최고급 성분으로 만듭니다. 추운 날씨를 견디며 자란 노르딕 곡물과 핀란드 숲에서 자란 링곤베리, 고수 씨앗 등이 순수한 핀란드 물과 만나 완전히 다른 맛의 진을 만들죠.” 홀로한 대표가 헬싱키 드라이진을 권하며 한 말에서 자부심이 느껴진다. 헬싱키 드라이진은 올해 크래프트 스피릿 페스티벌인 데스틸레 베를린(Destille Berlin)에서 금메달을 수상하기도 했다. 양조장 내에 자리한 바에서 헬싱키 최고의 바텐더로 꼽히는 누라 뉘르힐래(Noora Nyrhilä)의 진토닉을 맛보길. 테이스팅을 위한 음식 메뉴도 마련되어 있다.

주소 Työpajankatu 2a R3, 00580 Helsinki
웹사이트 
hdco.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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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모던 헬싱키 푸드

레스토랑 그뢴

라우리 캐흐쾨넨(Lauri Kähkönen)과 토니 코스티안(Toni Kostian)이 마스터 셰프로 있는 모던 헬싱키 레스토랑 ‘그뢴’. 뒷자리 손님과 의자를 부딪으며 일어나야 할 만큼 협소한 공간에 테이블 대여섯 개가 다일 정도로 불친절해 보이지만, 예약 대기자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식자재를 유리 용기에 담아 쌓아 선반에 올린 것이 유일한 장식이고, 저러다 그릇이 깨지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만큼 비좁은 오픈 키친에는 감각적 스타일의 젊은 요리사들이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며 영민하게 움직인다. 스팟 조명 아래 섬세하게 플레이팅하는 풍경을 어깨너머로 보는 즐거움도 크다. 단품 메뉴도 있지만 스타터 2개, 메인 디시, 디저트로 구성한 4코스 요리 ‘그뢴 메뉴’를 맛보기를 추천한다. 가장 인상적인 점은 헬싱키 숲에서 막 딴 것 같은 초록색 식물의 재구성. 육회 타르트에 튀긴 케일을 올리거나 명이나물 장아찌와 맛이 흡사한 핀란드 산나물을 곁들인 고기 등은 특별한 풍미를 느끼게 한다. 코스가 나올 때마다 요리사가 직접 메뉴를 자세히 설명해주는데, 그 덕에 요리를 더욱 진지한 마음으로 대하게 된다. 헬싱키에서 단 한 곳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해야 한다면 주저 없이 레스토랑 그뢴을 고를 것이다.

주소 Albertinkatu 36, 00180 Helsinki
웹사이트 restaurantgr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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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자의 이력서

본인에게만 중요한 이력서 VS 면접으로 이어지는 이력서

“설마 그동안 이 이력서를 제출하신 거예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헤드헌터의 말에 완전히 주눅이 들었다. 그가 사용한 단어, 목소리 톤, 감지되는 웃음기와 분위기를 짐작했을 때 “에이, 아니죠”라는 답이 나와야 어색하지 않을 것 같았으나 절망적이게도 나의 답은 “네…”였으니까. 취재를 위해 헤드헌팅 기업인 ‘커리어케어’의 정은아 파트장에게 내 이력서를 샘플 삼아 내밀고 코멘트를 부탁한 차였다. 그는 먼저 한 직군에서 커리어를 쌓아왔고 다양한 경험이 있다는 점은 알겠으나 인사 담당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력 사항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의 말에 내 이력서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학생 기자, 에이전시 인턴십, 전시 기획자 등으로 활동한 ‘다양한’ 경험, 취업에 도움이 될까 싶어 따둔 각종 전공 관련 자격증을 기록한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내게는 의미 있는 경험이지만 경력직 지원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경력직 채용 담당자에게는 굳이 필요 없는 정보’이며 결과적으로 ‘가장 중요한 경력 사항에 대한 주목도를 떨어뜨린’ 주범이었다. 언젠간 피가 되고 살이 될 것이라 여기고 힘겨워하는 자신을 다독이며 모아온 내 아이템들이 순식간에 애물단지로 전락한 듯했다.

“이력서는 철저히 인사 담당자의 시각에서 생각해야 해요. 경력자의 이력서라면 학력, 회사 경력 및 업무 기술을 간추려 먼저 쓰고 그 뒤에 직무와 관련이 있는 기타 경력, 교육 수료 및 이수 내용, 자격증의 순서로 작성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인턴십 경험도 신입 혹은 주니어급 레벨 이상으로 지원할 경우에는 안 써도 무방하고요.” 그리고 취미나 특기에 대한 조언을 이어나갔다. “간혹 왕성한 동호회 활동을 경험을 기재하면서 자신의 외향적인 성격을 강조하는 분이 있어요. 다만 이 부분도 지나치게 다방면에 걸쳐 있거나 개수가 많으면 인사 담당자는 ‘워크와 라이프’의 균형에서 ‘라이프’에 더 치중하는 사람이라고 판단할 여지가 있습니다. 전문성이 있거나 직무와 연관 있는 취미 한두 가지만 언급하는 편이 좋아요. 워크와 라이프의 균형을 맞추면서 안정적으로 회사를 다닐 수 있는 지원자라는 인상을 주니까요.”

 

가장 중요한 경력 사항, 가장 위험한 공백기

다음으로 헤드헌터는 이직이 잦은 점에 우려를 표했다. 통상 이직이 잦은 업계라면 인사 담당자가 느 정도 감안하고 이력서를 검토하긴 하지만 어쨌든 이직 횟수가 많을수록 지원자에게 불리하다는 것이다. “고용보험에 가입된 적 없는 단기 경력은 기타 경력으로 정리하면 한결 정돈돼 보여요. 한 회사에 최소 2~3년은 재직해야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기지 않고 로열티를 가진 지원자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3년 이상 다닌 회사는 한 곳. 이직이 잦은 업계든 그렇지 않든 면접관이 경력자에게 가장 먼저 물어보는 부분은 ‘왜 직장을 옮기려 하는가?’일 것이다. 그간 내 이직의 이유는 뚜렷했다. 직군은 적성에 맞으나 입사할 때와 다른, 따로 원하는 분야가 있었다. 이에 대해 정은아 컨설턴트는 납득할 수 있는 이유라고 했고 그제야 숨통이 조금 트이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단기 경력은? 과감하게 지우는 편이 나을까?

“이력서에서 이직보다 더 부정적인 인상을 주는 부분이 공백기예요. 지원자의 커리어를 위해 필요한 이직이었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경력을 이어가면서 감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는 점을 어필해야 하죠. 아깝더라도 기타 경력으로 빼고 주요 경력 사항을 잘 정리하세요. 이직하면서 현재 지원한 회사의 포지션에 걸맞게 분야나 직무에 변화해 생겼다는 점을 인사 담당자가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하는 거죠. 연봉이나 직급이 오르는 것은 이직하는 중요한 이유이기는 해도 매번 그 부분이 이직의 이유가 되면 위험합니다. 자칫 직무에 열정이 덜해 보일 수 있거든요.” 그가 하는 말을 구구절절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왜 그동안 이직하면서 한 번도 이력서 컨설팅을 받을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자책하던 중 신입 시절에는 외려 선배나 전문가에게 부지런히 이력서를 보내며 한마디라도 더 피드백을 받는 데 적극적이었던 나를 떠올렸다. 몇 번의 이직과 짧지 않은 시간을 지나 나도 어느새 어엿한 ‘경력자’가 되었지만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목소리를 잊어간 동시에 나 자신은 내가 제일 잘 안다는 자만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이력서는 나 자신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나를 드러내는 수단 중 하나다. 그런 일에 전문가가 있다면 백번이고 도움을 받고 그의 조언을 따라야 한다. 다른 일도 아니고 내 목구멍을 책임지는 일자리가 걸린 문제가 아닌가.

 

수요보다 공급이 적은 포지션을 노릴 것

한 명을 뽑거나 적합한 지원자가 없을 경우 없던 일이 될 수도 있음을 의미하는 ‘채용 인원 0명’인 포지션에 수백 명의 지원자가 몰리는 작금의 구직 환경에서는 상냥한 어조로 냉철하게 조언하는 전문가인 헤드헌터의 손을 거친 이력서라하더라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 기업의 실무자로 숱하게 이력서를 검토했을 김신희 페르노리카코리아 디지털마케팅팀 팀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원자의 잦은 이직을 어떻게보는가?

“경력 연차에 따라 다른데 일단 10년 차 이상이라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아요. 특히 디지털 관련 직군이나 스타트업 위주로 경력을 쌓아왔다면 적당한 이직이 오히려 능력을 증명하는 지표가 되는 경우도 있고요. 하지만 이건 시대가 바뀌어서 이직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특수한 경우고, 아무리 연차가 높아도 짧은 경력이 많은 건 결코 좋지 않습니다. 지원자가 많다면 일차적으로 걸러지는 이력서에 속하죠.” 이직 횟수가 많은 이력서는 이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 충분히,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래도 방법이 없을까? 어렵게 전문가의 손길이 닿아 재정비된 이력서로 이직에 성공하는 방법 말이다.

“기업에서 사업 확장을 목적으로 신사업을 펼치면서 새로운 포지션을 만드는 경우가 있어요. 이를테면 유통 회사에서 컨텐츠 기획자를 필요로 하거나 반대로 매체사인데 데이터 마이닝 전문가를 영입해야 하는 상황이죠.” 김신희 팀장은 수요보다 공급이 적은 포지션을 노려볼 만하다고 조언한다. 회사의 전통적인 직무일 경우 자격 요건 열 가지 중 여덟 가지 이상 충족해야 합격이 가능한 반면 이런 포지션은 채용이 시급한데 주변에 적합한 사람이 없는 경우일 확률이 높기 때문에 열 가지 중 대여섯 가지만 충족하고도 합격할 수 있다는 말이다.

또 이직이 잦은 구직자라면 주변 인맥을 통한 이직이 효율적이고 결과도 좋으며, 퇴사 후 이직하는 경우에는 지원하는 회사의 인지도나 연봉을 전 회사에 비해 낮춰야 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모든 일이 그렇듯 이직도 결국은 타이밍이고 선택의 문제다. 정은아 파트장과 김신희 팀장 모두 현명한 이직만큼이나 자신이 지금 왜 이직을 원하는지를 한번 더 깊이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눈앞에 당신이 평생 쓸 수 있는 ‘이직 카드’가 있다. 당신은 지금까지 몇 장을 썼는가? 모두 적절한 순간이었나? 지금이 남은 카드 중 하나를 써야만 하는 일생일대의 순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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