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아의 봄

화이트 시폰 블라우스 허환 시뮬레이션 바이 디누에, 네이비 팬츠 문탄
핑크 드레스 레하 바이 디누에

ROSE PETAL

입술과 뺨을 분홍빛 장미 꽃잎처럼 여린 색으로 물들인 청초한 로즈 메이크업. 라이프 컬러 팔레트 아이 #4 네스의 리치코르크를 눈두덩에 펴 발라 눈매를 그윽하게 표현하고, 코튼코랄을 눈 밑에 좁게 펴 발라 화사함을 더한다. 볼은 라이프 컬러 팔레트 치크 #4 키라팝의 피오니페탈과 클리어체리를 섞어 브러시에 묻혀 광대뼈를 중심으로 둥글리듯이 바른다. 입술에는 마른 장미 빛깔의 라이프 컬러 립 크러쉬 매트 #12 라이더 자켓 온을 입술 안쪽에 바르고 립 브러시를 이용해 입술 바깥쪽으로 퍼뜨린다. 제품은 모두 잇츠스킨.

화이트 드레스 부리, 베이지 오간자 스커트 문초이
화이트 드레스 부리

WARM PEACH

복숭앗빛으로 물든 뺨과 생기 있는 로즈 코럴 톤 입술이 밝고 화사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피치 메이크업. 라이프 컬러 팔레트 아이 #4 네스의 플랫 화이트를 눈두덩에 얇게 바르고, 라이프 컬러 팔레트 치크 #4 키라팝의 댄디피치를 볼에 넓게 펴 바른다. 입술에는 로즈 코럴 컬러의 라이프 컬러 립 크러쉬 매트 #15 댓츠노웨이를 연하게 발라 물들인 듯한 느낌으로 표현한다. 제품은 모두 잇츠스킨.

블랙 오프숄더 드레스 지컴퍼니 바이 디누에

PURE RED

투명한 피부와 번진 듯한 붉은 입술이 어우러진 청순한 레드 메이크업. 라이프 컬러 팔레트 아이 #4 네스의 플랫화이트를 눈두덩에 연하게 펴 바른 다음 브러시에 라이프 컬러 팔레트 치크 #4 키라팝의 댄디피치를 묻혀 볼을 가볍게 쓸어준다. 입술은 브릭 레드 컬러의 라이프 컬러 립 크러쉬 매트 #18 덤애스를 입술 안쪽에 바르고 립 브러시로 자연스럽게 그러데이션한다. 제품은 모두 잇츠스킨.

핑크 드레스 레하 바이 디누에

대한민국 국민 중 단 한순간도 김연아의 팬이 아니었던 사람이 있을까. 피겨스케이팅 선수로 최정상의 자리에서 은퇴한 지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김연아는 평창동계올림픽의 홍보대사로, 영원한 피겨 여왕으로 우리 곁에 남았다. 올림픽 개막을 한 달여 앞두고 막바지 홍보 활동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김연아를 만났다. 미세먼지로 하늘이 온통 희뿌옇던 전날과 달리 촬영 날은 모처럼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말간 얼굴에 긴 코트와 청바지 차림의 김연아가 스튜디오에 들어섰다. 수줍게 인사하는 모습이 스무 살 소녀 같았다. 시간이 비켜 가기라도 한 것처럼 4년 전 그 모습 그대로였다. 늘 변함없는 모습을 유지하는 비결을 묻자 수줍게 웃는 그녀. “알게 모르게 늙어가고 있어요.(웃음) 한창 선수 생활을 할 때는 성장기여서 체중 조절을 해야 했는 데 스무 살 이후로는 식욕이 줄고 체중도 거의 변함이 없어요. 운동을 쉬면 근육이 쉽게 빠지는 타입이라 은퇴 이후에는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집에서 혼자 근력 운동을 해요. 근데 점점 귀찮아져서 요즘은 거의 안 하고 있어요.”

잠시 뒤, 촬영 준비를 마친 김연아가 카메라 앞에 섰다. 아이처럼 자그마한 얼굴을 장밋빛으로 물들이고 곱슬거리는 웨이브 헤어를 더하자 살아 움직이는 인형 같다. 김연아는 잠시 긴장한 듯했지만 촬영이 시작되자 능숙하게 포즈를 취했다. 은퇴 후에도 CF 퀸의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화보 촬영은 여전히 낯설다고 했다. “헤어피스를 잔뜩 붙이고 인형처럼 머리를 부풀린 모습을 거울로 처음 봤을 때는 조금 무서워 보였는데 사진으로 보니 마음에 들어요. 의상도 평소 잘 입지 않는 디자인이 많아서 걱정했는데 새로운 걸 시도해보는 게 즐거워요. 평소에는 아주 편한 스타일의 옷만 입거든요(웃음).”

아침에 시작된 촬영이 해 질 무렵이 되어 끝이 났지만 데뷔 때부터 함께 해온 스태프들과 같이 한 때문인지 촬영장 분위기는 따스하고 편안했다. “오랜 시간 서로 신뢰가 쌓이면서 만들어지는 관계를 소중히 생각하는 편이에요. 가족이든, 친구든, 함께 일하는 분들이든 제가 진심으로 대했을 때 상대방도 믿음을 주면 내가 잘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김연아의 앳된 얼굴만 보면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지만 올해로 스물아홉 살이 되었다. 피겨스케이팅 선수로 은퇴하기 전부터 참여해왔던 평창동계올림픽 개막도 이제 코앞으로 다가왔다. “많은 분이 마음을 모아 준비한 만큼 잘 치러야 할 텐데 하는 걱정 반, 기대 반이에요. 은퇴하고 나서 후배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을 지켜 보는 마음은 제가 선수일 때랑은 또 다르더라고요. 국가대표로 선발되기까지의 힘든 과정을 너무 잘 아니까 올림픽 출전이 결정된 선수들을 보면 기특하고, 아쉽게 탈락한 선수들을 보면 얼마나 간절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안쓰러워요. 무엇보다 출전한 선수들이 부상 없이 올림픽을 잘 마쳤으면 좋겠어요. 출전하지 못하는 선수들도 올림픽이 전부는 아니니까 남은 선수 생활을 즐겁게 잘 마치기를 바라고요.”

평창동계올림픽 이후의 계획을 묻자 김연아는 잠시 쉬고 싶다고 했다. “올림픽이 끝나면 홀가분하게 잠시 쉬고 싶어요. 사람들은 제가 굉장히 바쁠 거라고 짐작하는데 사실 직장을 다니는 건 아니기 때문에 틈틈이 여유를 즐기고 있어요. 쉴 때는 음악을 듣거나 영화나 공연을 보는 걸 좋아해요. 여행도 종종 다니고요. 특히 음악을 들으면서 위로도 받고, 행복감을 느껴요. 은퇴한 직후에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는 걸 주저했는데 막상 가보니 아무도 저한테 신경 쓰지 않더라고요.(웃음) 그 사실을 깨달은 뒤로는 공연도 자주 보러 다니고 국내 여행도 많이 다녔어요. 은퇴 후 지난 4년간 자유 시간을 충분히 누린 것 같아요.”

20대에 누구보다 많은 것을 이룬 김연아. 그에게 20대의 마지막 해를 맞은 기분을 물었다. “10대부터 20대 초반까지가 제 인생에서 굉장히 강렬했던 시기라 아직까지 그때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스물아홉이라는 사실이 실감 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특별하지는 않아요. 피겨스케이팅 선수라는 직업의 특성상 성공도 은퇴도 다른 사람보다 이른 시기에 찾아왔지만 그렇다고 남은 삶을 놓아버리고 살 수는 없으니까요. 전에는 내가 유명해지려고 운동 한 것도 아닌데 유명세 탓에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힘들게 느껴진 때도 있었어요. 지금은 진심으로 저를 응원하고 아껴주시는 주변 분들이 있어 감사해요. 행복과 성공의 기준은 저 자신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으면 행복한 것이 아닐까요? 목표한 일에 최선을 다해 미련이 남지 않고 스스로 만족하면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해요.”

오버사이즈 재킷과 화이트 와이드 팬츠 모두 문초이, 화이트 톱 레하 바이 디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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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der Free – 문소리

그레이 드레스 파비아나 필리피(Fabiana Filippi).

문소리의 고민

“사회 여러 층에서 성폭력에 대한 폭로가 줄을 잇고 있는데 이러한 움직임이 발전적으로 이어져야 하지 않겠나. 오래된 문제라 하루아침에 달라지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폭로가 피해자에게 최선의 자기표현 수단이며 극복 방법인 것은 분명하다. 좋지 않은 일을 겪고도 지금껏 입밖에 내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용기를 내 털어놓았으면 한다.” 얼마 전 ‘미래의 여성지도자상’을 받은 배우 문소리는 수상 소감에서 영화계 성폭력을 비롯한 젠더 이슈에 대해 개인적으로 어떤 행동을 할지 고민 중이라 밝혔다. 그리고 그런 고민이 영화인들의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영화제작사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와 임순례 감독은 영화판의 변화와 성장을 위해 ‘든든’이라는 성폭력 상담 창구의 대표를 맡아 성폭력 피해 영화인과 함께 고민하고 업계의 문제를 해결해나가기로 했다. “배우로 20년 가까이 살아오며 이 업계가 여성에게 얼마나 폭력적이고 위험한 곳인지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점은 여성 영화인뿐만 아니라 남성 영화인도 공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변화를 만들어나가야 할 때고 그러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요즘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같은 여성으로 화가 나기도 하고 지금껏 방관한 건 아닌가 하는 자기반성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긴 시간을 배우로 살아왔기에 페미니즘이나 젠더 이슈에 관심을 갖고 공부할 의지가 생긴 것은 분명하다. “영화와 함께해온 삶은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고, 나를 성장하게 해주었으며, 즐거움을 주었다. 배우로 살아오며 연기를 통해 경제적 보상과 성취감을 얻은 것 외에도 삶에 관해 여러 가지를 배웠고, 그러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기도 했다. 내 인생은 연기 활동으로 조금씩 성장해온 셈이다. 어쩌면 그저 운명일 수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배우의 세계에 발 디딘 초반에는 지금만큼의 부담감이나 책임감은 없었지만 오히려 여성이라 느끼는 두려움이 컸다. “두려움을 안고 일하면 에너지 소모가 클 수밖에 없다. 앞으로는 이 세계에 막 진입한 배우들이 두려움으로 소진하는 에너지를 오롯이 연기에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어찌어찌 지금껏 잘 헤쳐왔지만 그렇게 끝낼 문제가 아니다. 이제 중견 영화인의 자녀들이 부모의 뒤를 이어 영화계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도 딸을 가진 엄마로 젠더에 대한 고민의 폭을 나와 내 주변인으로 한정하지 않고 그 고민이 더 나은 앞날을 위해 다음 세대까지 아우를 수 있도록 노력하려 한다.”

한두 사람의 전사 혹은 혁명가만으로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변화란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야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다. “쇼 비즈니스 업계는 섹슈얼리티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그게 돈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속성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또 이 업계는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고, 서류로 업무상의 전달을 하고, 퇴근하면 각자의 삶이 있는 직종과는 다르다. 촬영이 끝나고 주변의 누군가와 술을 한잔 할 수도 있고 작업실에서 만나 의견을 나눌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이 범죄 행위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며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어서도 안 된다. 일어날지 모르는 위험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

북유럽에서는 영화를 제작할 때 참여하는 여성 영화인 수를 쿼터제로 보장하고 영화마다 젠더 감수성 등급을 매긴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유럽에 비해 젠더 이슈를 둘러싼 변화의 속도가 더디다. 그나마 희망적인 점은 유럽에서 이러한 변화가 시작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독일의 페미니스트가 쓴 책을 읽었는데 30년 전의 독일 사회는 젠더적 관점에서 상상 이상으로 구시대적이었다. 하지만 지금 독일에 살고 있는 지인의 얘기를 들어보니 그 나라는 여성이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혼자 낳아 키우는 데 불편함이 전혀 없다고 하더라. 독일도 지금의 변화를 이룬 게 오래되지 않았다는 거다. 그렇다면 우리도 해낼 수 있지 않겠나. 그러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많다. 물론 사회가 쉽게 변하진 않겠지만 변화를 갈망하는 의지가 모이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다. 열심히 고민하고 목소리를 내고 행동해야 할 때다. 그러다 보면 내 딸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훨씬 나아져 있겠지.”

네이비 수트 파비아나 필리피(Fabiana Filip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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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가 번지는 세상

티셔츠 프리마돈나(Fleamadonna), 샤 톱 와이씨에이치(YCH), 장갑 발렌시아가(Balenciaga).

오직 위스키와 담배만을 사랑하는 ‘미소’는 담뱃값이 2천원 오르자 지출을 줄이기 위해 친구들 집을 전전하며 가사도우미로 살아간다. 이 매력적인 한 줄의 시놉시스만으로 좋은 소문이 난 영화 <소공녀>는 그간 상영할 때마다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으며 3월 정식 개봉을 앞두고 있다. 다소 판타지적인 미소라는 캐릭터와 그를 둘러싼 이 사회의 현실적인 단면은 좋은 균형을 이루며 깊은 공감을 자아내고, 엔딩 크래딧이 올라갈 때 즈음 관객은 어딘가에서 사랑하는 작은 것들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을 미소를 향해 빙긋이 웃음 짓게 된다. 미소로 분한 이솜과 감독 전고운은 ‘위로’처럼 거창한 단어를 쓰기보다는 단 한 사람이라도 이 영화에 공감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꼭 미소처럼 말했다.

원피스와 니트 톱 모두 준지(Juun.J), 슈즈와 니삭스 모두 니나 리치(Nina Ricci), 이어링 엠주(mzuu).
원피스 벨앤누보(Bell & Nouveau), 헤어핀 사이먼 로샤 바이 분더샵(Simone Rocha by BoonTheShop).

이솜

영화에서 이솜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어떤 장면인가? 볼 때마다 다른데 마지막에 미소의 모습이 언뜻 나오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을 보면 내 캐릭터지만 그립다, 미소가. 그 장면을 제일 좋아한다.

촬영하는 내내 혼자 다녔다고 들었다. 현장에 혼자 다녀보고 혼자 스케줄을 관리하는 것을 한번쯤 해보고 싶었다. 회사나 매니저에게 너무 익숙해지는 것 같아서. 그러기에 딱 좋은 작품이 <소공녀>였다. 쉽진 않았다. 스태프들과 가까워지면서 현장 분위기를 너무 잘 알게 된다는 게 장점이자 단점이 되기도 했다. 캐릭터나 장면에만 몰입해 있어야 할 때에도 그 외의 것들이 보이니까. 하지만 추운 날씨에 대기할 장소가 없어서 스태프들과 같이 대기하기도 하고 내 차에 스태프들을 태워서 현장을 이동하거나 장비를 옮겨주거나 하는 것들이 재미있었다.(웃음) 옷도 캐릭터 의상을 입고 퇴근해서 그대로 입고 출근했다. 혼자 다닐 만하던데?

전고운 감독님의 작품이라면 무조건 함께 하고 싶다는 인터뷰를 봤다. 무엇이 와닿았나? 일단은 그 전에 <소공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고 전작인 <범죄의 여왕>이 끝날 때 나오는 쿠키 영상을 보기도 했다. ‘위스키와 담배를 좋아하는 30대 여자’라는 캐릭터 얘기를 들었을 때 굉장히 흥미로웠다. 누가 할지 궁금했는데 시나리오가 내게 들어왔다. 일단 ‘광화문 시네마’라는 믿음이 있는 상태에서 시나리오를 보니 안 할 이유가 없었다. 미소는 굉장히 드문, 좋은 캐릭터다. 보통은 술, 담배를 하는 캐릭터가 부담스러울 수 있는데 내겐 그런 것들이 유니크하게 다가왔고 감독님의 스타일을 아니까 머릿속에 떠올린 것들이 좋은 작용을 한 것 같다.

전고운 감독의 연출은 어떤 방식인가? 워낙 짜인 대로 하는 것을 안 좋아하셔서 배우들의 이야기를 잘 받아들여 주셨고 그런 면에서 서로 호흡이 좋았다. 등장하는 캐릭터가 많기 때문에 호흡이 잘 맞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대본에 있는 대로 하되 배우들이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게 있으면 감독님에게 의견을 냈고 그렇게 자연스러워지도록 감독님이 많이 유도했다. 그 덕분에 캐릭터들의 사이가 더 끈끈해졌다.

배우 이솜의 필모그래피에 오랫동안 기억될 이름이 아닐까 싶다. 미소를 연기하는 동안 미소가 이솜의 인생에 끼친 영향이 있나? 당시에는 미소와 아주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미소를 알고나서는 좀 더 여유를 찾을 수 있는 느낌이었다.

현실의 이솜은 위스키와 담배를 포기하느니 집을 포기하겠다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나? 사실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다. 나는 집이 너무 좋거든.(웃음) 그런데 생각을 해봤다. 정말 오로지 자기 인생을 위해서라면 집을 포기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미소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진 삶을 꾸리려 노력한다. 미소처럼 단출하게 살 수 있다면 이솜의 삶은 어떤 것들로 이루어질까? 어렵다. 나도 미소처럼 민폐 끼치는 걸 꺼리고 친구들을 정말 좋아한다. 친구들이 재워달라고 하면 미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재워줄 수 있다. 내 삶은 맛있는 음식, 산책, 영화, 모닝커피만 있으면 충분할 것 같다.

미소의 남자친구 ‘한솔’의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안재홍과의 호흡은 어땠나? 재홍 오빠는 정말 같이 하고 싶은 상대 배우 일 순위였다. 잘 몰랐을 때 시상식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너무 재밌고 인간적이어서 좋은 인상으로 남았다. 연기할 때도 역시 그랬다. 무엇보다 ‘광화문 시네마’라는, 자기가 좋아하는 제작사와의 의리를 지키는 모습과 정말 좋아하는 것을 위해 최선을 다해준 것이 매우 고마웠다. 상대 배우로서는 말할 것도 없고.

유난히 몸을 많이 쓴 촬영이 아닌가 싶다. 큰 짐을 들고 다니며 가사도우미의 일을 하고 추위에 떨어야 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 체력이 좋아서 그런 것은 괜찮았는데 담배를 많이 피우는 것이 힘들었다. 거의 한 신에 반 갑 이상은 피웠으니까. 게다가 담배는 미소가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여서 감독님이 맛있게 피워야 한다고 집요하게 요구하셨다. 어지러워서 힘들었던 기억이 있고, 안 그래도 짐이 많은데 의상을 잔뜩 겹쳐 입어야 하는 것이 버겁기도 했다. 촬영 당시 내 별명이 덩치 큰 해그리드였다. 하하.

그래도 좋은 기억이 많이 남은 현장이었을 것 같다. 애정이 정말 큰 작품이었다. 현장에서 매 회차 폴라로이드를 직접 찍었는데 현장 스틸 기사님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열정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작년에 그 사진들을 모아 앨범을 만들었다.

그런 열정이 모여 만든 <소공녀>를 어떤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나? 작은 것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고 싶은 분들. 특히 청년들이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많을 것이다.

오프화이트(Off-White), 팬츠 로우클래식(Low Classic), 이어링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원피스 블루마린(Blumarine), 트렌치코트 완다 나일론 바이 매치스패션닷컴(Wanda Nylon by matchesfashion.com), 슈즈 스튜어트 와이츠먼(Stuart Weitzman).

전고운 감독

<소공녀>가 스웨덴 예테보리 국제영화제에 초청돼 다녀왔단 소식을 들었다. 분위기가 어땠나? 해외 영화제는 처음 가봤는데 규모가 크고 사람이 바글바글한 부산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동네의 작고 귀여운 극장에서 진행됐는데 관객들의 연령대가 높아서 놀랐다. 극장이 1백 년이나 된 건물이라 극장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그 극장에서 상영하기가 쉽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운이 좋았다. 나는 내 영화를 보는 것을 진짜 싫어하는데 외국인들 반응이 궁금해서 같이 봤다. 잘 웃고 재미있게 보셔서 신기했다. ‘한국 문화 코드 때문에 웃긴 게 많은데 왜 웃지? 이렇게 잘 사는 나라 사람들이?(웃음)’ 그런 것들이 재미있었다.

미소를 보면서 <바그다드 카페>의 ‘야스민’이 떠올랐다. 자신의 상황보다 다른 사람을 위하는 따듯한 사람. 서울이 워낙 과열된 도시니까 ‘미소’ 같은 인물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착한 사람. 내가 생각하는 착함이 뭔지에 대해 고민하다가 우선 사람이 멋이 있어야 호감이 가니까 멋에 대해 생각했고, 멋이 있으려면 자신의 욕망을 잘 알아야 된다고 생각해 만들다 보니 미소가 나왔다. 필요한 사람을 만들고 싶었다.

이솜을 미소로 캐스팅한 이유가 궁금하다. 저예산 영화라 배우에게 페이를 충분히 줄 수가 없다. 하지만 무엇이든 서로 주고받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솜이 씨에게 내가 얻을 것은 분명히 있었다. 인지도가 적당하고 모델 출신이라 예쁘기도 한데 연기는 아직 안 보여준 면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런 면을 <소공녀>에서 보여준다면 서로 좋은 작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솜이 씨를 두고 외모와 내면 그리고 내가 실질적으로 줄 수 있는 것까지 아주 다양하게 생각했다.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미소가 30대 중·후반이었다고 들었다. 성인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어른들이 보기에 좋고 재미있는 영화. 그래서 주름이 잘 보이고 노화가 보이는 영화를 찍고 싶었는데 아마 그랬다면 영화의 느낌이 아예 달랐을 것이고 지금만큼의 호응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영화를 만드는 게 쉽지가 않더라.

의도와는 달랐더라도 완벽히 다른 매력을 가진 미소가 나왔다. 그래서 아쉽지 않다. 영화라는 작업이 정말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이솜 배우를 포함해 의상 등 모든 스태프가 그렇게 미소를 만드는 데 더 좋거나 덜 좋은 문제를 떠나 캐릭터가 처음과는 다르게 탄생하는 과정 자체가 좋았다.

미소는 왜 하필 위스키를 좋아할까? 제일 가까운 이유는 내가 위스키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다른 술은 못 마신다. 몸에서 안 받거든. 외적인 의미를 만들자면 사치스러운 양주의 이미지를 가져가고 싶었다. 기술적인 이유로 가난한 나라에서는 높은 도수의 술을 만들 수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소설을 보면 전쟁이 났을 때 결국 사람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게 술과 담배라는 게 인상 깊게 남았다. 인간에게 술, 담배가 차지하는 비중이 생각보다 크다. 어딘가에 중독되어 사는 것에 대한 상징이기도 하다.

낭만적이면서도 굉장히 현실적인 영화다. 광화문 시네마 특유의 과장된 느낌이 빠져 있는 것도 좋았다. 낭만적인 캐릭터와 현실의 균형을 잡는 과정에서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지나치게 궁색해 보이지 않도록. 그 고민이 가장 컸다. 미소는 결국 솜이 씨가 하는 역할이니 솜이 씨에게 매달렸던 것 같다. 본인도 그걸 알고 있었던 것 같고. 둘이 영화도 같이 보러 다니고 대화도 하면서 시간을 많이 보냈는데 다행히 성향이 잘 맞았다. 갑자기 친해진 친구처럼. 그런 친구 믿으면 안 되는데.(웃음) 현장에서는 배우들이 머리로 분석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경직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솜이 씨와 시간을 많이 보냈기 때문에 미소가 판타지적인 캐릭터인데도 사람 같아 보인 것 같다. 솜이 씨가 다했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상황이 짠하다고 느껴질 때의 필연적인 동정심이 들지 않았다.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구성된 덕분이기도 하지만 배우들의 힘이기도 하다. 웃기게 해석될 여지도 있는 장면에서도 관객 대부분이 우는 걸 봤다. 연출 의도와 달랐는데 오히려 더 좋게 나온 부분이 있었나? 솔직히 내 의도보다 모든 게 못하다. 영화 가편집본을 보고 정말 우울했다. 누구나 이상형이 있지 않나. 나는 미카엘 하네케를 생각했다.(웃음) 그렇게 연출력이 위대한 감독들의 작품을 보다가 내 첫 작품을 보니 얼마나 가소롭던지. 너무 경직되어 있어서 왜 좀 더 가지 않았을까 자책했다.

그렇게 느끼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을 거다. 내가 느껴야 한다. ‘와, 정말 신선하다, 이 영화!’ 사실 내가 모든 면에서 만족의 기준이 높은 편이긴 한데 다행인 건 이 영화가 꼴 보기 싫지는 않다는 점이다. ‘좀 아쉽지만 그래도 귀여워’ 이런 느낌이다. 이게 내가 나에게 할 수 있는 칭찬이다.

늘 직접적인 이유와 해명이 필요한 이 사회에서 미소 같은 사람이 나오는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대놓고 위로를 하려는 영화가 아닌데도. 내가 항상 위로를 느낄 때는 영화든 사람이든 공감을 될 때였던 것 같다. 아무도 안 만들어줄 것 같았던 이야기를 만들어주면 그게 그렇게 위로가 됐다. <소공녀>도 만들면 누군가에게는 공감이 일으켜 작은 위로를 전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몇 명에게라도 전달이 되면 좋겠다.

어떤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나? 사실 내 친구들 보라고 만들었다. 친구들이 다 미소처럼 가난하기 때문에 ‘야, 우리 그냥 살자!’라는 의미로 만들었다. 내 친구들 같은 사람들이 이 사회에 많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이 보면 좋지 않을까?

전고운 셔츠와 스커트 모두 막스마라(MaxMara), 이어링 벨앤누보(Bell & Nouveau).
이솜 블라우스 이자벨 마랑(Isabel Marant), 원피스 캘빈 클라인 바이 무이(Calvin Klein by MUE), 초커 벨앤누보(Bell & Nouveau), 스타킹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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