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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LF UV-CUT 스트라이프 스웨터, 스마트 스타일 앵클 팬츠 모두 유니클로(Uniqlo).
U 오픈 칼라 셔츠 유니클로(Uniqlo).
U 롱 셔츠, 스마트 스타일 앵클 팬츠 모두 유니클로(Uniqlo), 슈즈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U 롱 셔츠 유니클로(Uniqlo), 슈즈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IDLF 레이온 랩 프론트 원피스 유니클로(Uniqlo).
EFC 셔츠, U 시어서커 캐미솔 원피스 모두 유니클로(Uniqlo).

언젠가 배우 김고은이 모자를 푹 눌러쓰고 통기타를 치며 ‘소격동’을 부르는 동영상을 본 적 있다. 연쇄살인범과 싸우는 미친 여자, 복수를 위해 검을 휘두르는 여인, 빛보다 어둠에 익숙한 삐딱한 여고생, 혹은 도깨비의 신부까지, 차분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영상 속 김고은에게는 작품에서 보여준 그 어떤 모습도 없었다. 다만 슬렁슬렁 동네 산책을 나온 듯 편한 옷을 입고 차분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이가 있었다. 돌이켜 보면 작품이 아닌 다른 곳에서 김고은을 보기란 흔치 않다. 가끔 개인 SNS로 전하는 근황이 전부인데, 얼마 전 이준익 감독의 영화 <변산> 촬영이 끝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번 마리끌레르와의 인터뷰는 드라마 <도깨비>가 끝난 후 하는 오랜 만의 인터뷰였다. 그렇게 대중에게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동안 그녀는 평범하고 자유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배우의 세계에 들어오기 전과 다를 바 없이 여전히 편한 차림으로 친구들을 만나거나 노래를 부르며 스트레스를 지우고 자신만의 시간을 온전히 누리며 자유롭게, 그렇게.

소프트 코튼 레이스 블라우스, IDLF 리넨 코튼 턱 스커트 모두 유니클로(Uniqlo).

지난해 11월에 이준익 감독의 영화 <변산>이 크랭크업했다. 촬영이 주로 변산 지역에서 이루어졌겠다. 부안과 춘천, 두 곳에서 촬영했다. 촬영 일정이 빡빡하지 않은 편이라 여유로웠다. 작품을 위해 7kg 정도 살을 찌웠는데, 그래서 더 행복했다.(웃음) 주로 걸으며 이동했고 틈틈이 동네 맛집도 찾아다녔다. 어느 가게에 가면 배우들이 있고, 또 멀지 않은 곳에 감독님이 있고 그랬다. 촬영장이 마치 동네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곳처럼 편했다.

지금까지 주로 배우 윤여정, 김혜수, 전도연처럼 대선배와 작업했는데 이번에는 선배이긴 하지만 또래에 가까운 배우 박정민이 상대역이니 현장에서 책임감이 달랐을 것 같다. 이준익 감독님이 현장을 워낙 편하게 이끌어주었다. 책임감으로 어깨가 무겁지 않았고 함께한 배우와 스태프 모두 친구처럼 편하게 마음을 열고 즐기며 촬영했다. 위안과 치유가 되어준 촬영장이었다.

영화 <몬스터>나 <협녀, 칼의 기억> <차이나타운>에서 강한 캐릭터를 연기해왔다. 필모그래피를 어떤 식으로 채워야겠다는 자신만의 목표가 반영된 건가? 데뷔하고 4, 5년 동안은 필모그래피의 방향을 생각했다기보다는 좋은 선배님들과 작품을 하며 성장해야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배우로서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잘하는 것만 좇다 보면 관객이 나에게 다른 것을 기대할 때 용기 있게 도전하기 어렵지 않겠나. 그래서 신인 배우일 때 다양한 캐릭터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나에게 더 냉정하고자 했고 스스로를 끝으로 몰아갔다. 어쩌면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데 대한 책임감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배우인데 연기를 형편없이 할까봐 두려웠다. 물론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지만.

그동안 여성 캐릭터가 극을 이끌어가는 작품을 주로 선택해왔다. 그런 작품들에 눈길이 많이 가는 편인 것 같다. 제안받은 작품 중 하고 싶은 작품을 선택했는데 돌이켜보니 여성 캐릭터가 극의 중심이 되는 작품의 비중이 높았다. 아마도 그런 작품에 더 큰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어느 작품이던 현장에 가는 건 즐겁고 연기하는 것도 참 재미있다. 배우가 아니었다면 뭘 했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실은 그때그때 눈길이 가는 작품이 다르다. 작품을 제안받은 당시의 내가 느꼈던 무언가가 그 작품에 담겨 있으면 운명인 것 같고 그렇다. 하지만 늘 변치 않는 기준도 있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잘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욕심나더라도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작품은 선택하지 않는다.

용기 있는 선택을 하는 데 여전히 두려움이 없나? 없다. 그래도 이제는 안전한 선택과 도전을 좀 번갈아 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껏 ‘용감하게’에만 초점을 맞춰 선택해온 건 아니다. 다만 도전해보고 싶었고 다양한 연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

연기를 하지 않을 때는 주로 뭘 하며 시간을 보내는 편인가? 일상과 일을 분리하려고 노력한다. 친구도 많이 만나고 많이 돌아다니고 맛있는 음식도 즐기고 영화도 보고 노래방도 가고, 할 수 있는 걸 다 하며 산다.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드라마 <도깨비>가 워낙 잘돼서 얼굴을 많이 알아봐주신다. 그런데 그런 시선에서 빗겨 서려고 나 자신을 꽁꽁 싸매기보다는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면 자연스레 내 행동이 자유로워진다. 그런 시선이 부담스럽거나 힘들지 않다. 화장도 하지 않고 트레이닝복에 점퍼만 걸치거나 어떤 때에는 머리도 감지 않고 다니는 내 모습을 보면 오히려 친구들이 그렇게까지는 하고 다니지 말라고 한다.(웃음)

애써 배우의 삶과 김고은의 삶을 분리하려는 이유가 있나? 그렇지 않으면 더 힘들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다보면 더 고립된 삶을 살게 되지 않겠나. 나 자신을 자 유롭게 두고 일상을 영위해야 작품에 들어갈 때 더 큰 에너지가 생긴다.

돌이켜보면 데뷔한 지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그럼에도 힘들었던 시간이 있었나? 최근에 감정적으로 힘든 순간이 찾아왔다. 처음이었다. 나라는 사람은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단순한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실은 힘들다는 감정이 사치라고 여겼던 거다. 나를 어르고 달래가며 살아야 하는데 자신을 다그치며 쉬지 않고 연기하며 지내온 시간이 힘든 감정이 되어 돌아왔다. 이제부터라도 나의 내면을 돌보고 잘 들여다볼 것이다. 내 인생의 모토는 ‘행복하게 살자’니까.

배우를 시작했을 때 꿈꾼 모습과 오늘의 김고은이 닮은 점이 있는가? 닮았다. 무언가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쭉 해왔다. 배우이기 때문에 특정 이미지를 고수할 필요도 없고 어떤 식으로 비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다만 작품마다 다르게 보이면 좋겠다. 배우라는 직업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늘 자리 잡고 있다.

김고은이라는 배우는 언제나 청춘이 어울린다. 세월은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시간이 지날수록 세월이 나의 얼굴과 말투, 태도에 모두 묻어났으면 한다.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그런데 부모님에게는 늘 아이같이 어리광 피우는 막내딸이고 싶다. 얼마 전에 강아지를 데리고 엄마와 함께 운동장에 갔는데 엄마가 강아지더러 뛰는 모습이 꼭 표범 같다고 했다. 그 말에 내가 표범 흉내를 냈다.(웃음) 그랬더니 엄마가 언제까지 아이처럼 그럴 거냐고 웃으며 말하길래 중년이 되어서도 그럴 거라 답했다. 괜스레 서운하기까지 했다. 부모님에게 나는 나이가 들어도 막내딸이니 영원히 막내딸이고 싶다. 그것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다.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부모님과 가족만큼 소중한 존재도 없다. 맞다. 너무 사랑하는 존재다. 얼마 전 조카가 생겼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미치도록 예쁘다.

자신이 가장 빛날 때는 무엇을 하고 있을 때인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있을 때. 내가 은근히 웃긴다.(웃음) 농담을 하거나 재미있는 행동을 했을 때 상대방이 숨도 못 쉴 만큼 웃으면 뿌듯하다. ‘아, 나 역시 안 죽었네’ 이러면서.

당신이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이 궁금하다. 삶이 아무리 치열하고 각박하더라도 나 자신이 가장 편하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숨 쉴 구멍을 열어두며 살려고 한다. 난 옷도 내추럴하면서 멋스러운 게 좋다. 옷장에 옷도 많지 않은데 지난번 유니클로 광고 촬영 때 입고 간 내 옷을 보니 고등학교 1학년 때 산 유니클로 청바지였다. 10년, 20년이 지나도 근사한 옷이 좋다.

이번에 모델로 활동하게 된 유니클로의 옷을 영화 관련 행사 때도 입어 화제가 된 적 있다. 평소 즐겨 입던 브랜드의 모델이 되어 기분이 특별할 것 같다. 영화 제작 보고회에 참석하기 위한 의상을 준비하는데 베이식한 화이트 터틀넥 니트 스웨터라면 심플하면서도 멋지게 스타일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도 큰 고민 없이 선택했다. 옷 자체의 화려한 디자인만으로 평가하거나 브랜드를 보고 옷을 고르기보다는 나의 라이프스타일과 어울리는 옷에 끌린다. 평소에도 유니클로에 대해 내 옷장 안에 있는 옷들과 잘 매치할 수 있는 옷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무엇보다 소재가 좋다.

<마리끌레르> 코리아 창간 25주년 기념호를 위한 촬영이다. 스물다섯의 김고은은 어떤 모습이었나? 음, <차이나타운> 때였다. <차이나타운>은 정말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감독님과 스태프들, 그리고 김혜수 선배를 비롯해 함께한 배우들과 합이 너무 좋았다. 내가 심각한 영화를 이렇게 즐겁게 찍어도 되느냐고 말했을 정도로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올해는 어떤 작품의 당신을 보게 될까? 우선 <변산>이 개봉할 테고 작품을 하게 된다면 좀 더 본질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을 만나고 싶다. 아직 좀 막연한데 스토리 중심의 작품이 아니라 어떤 하나의 본질을 탐구하는 영화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U 스트라이프 크루넥 T, IDLF 리넨 트윌 팬츠 모두 유니클로(Uniq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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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도지한

네이비 수트 휴고 보스(Hugo Boss),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드라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마친 배우 도지한은 지인과 방콕으로 여행을 다녀왔고 그동안 미뤄둔 약속을 하나씩 지켰다. 작품 하나를 끝내고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미래를 확신할 수 없는 불안정한 시간이 한때는 초조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연기를 하지 않는 시간도 즐기려고 노력해요. 특별한 계기로 변했다기보다는 인생이 항상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에요. 욕심부린다고 안 될 일이 되는 법도 없고, 제가 할 일은 어느 순간 다가오기 마련이더라고요. 그렇다고 욕심 없이 살 수는 없죠. 다만 힘들지 않을 만큼의 욕심만 가지려고요. 지나치지 않고 삶의 원동력이 될 만큼이면 충분해요. 이제 작품이 끝나면 조급해하지 않고 오늘 하루를 어떻게 즐겁게 보낼까 생각해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을 날, 친구들을 만나 술 한잔하면 좋을 날, 혼자 있으면 좋을 날처럼 오늘을 즐겁게 살며 작품을 하는 동안 무언가를 채웠던 나를 비워내는 거죠.”

드라마 <빠스껫 볼>과 <화랑> 그리고 얼마 전 종영한 작품 등을 거치는 동안 냉정하거나 혹은 뜨거운 반응을 지켜보며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고 있다. “뭘 하든, 어떤 일이 닥치든 지치지 않고 싶어요. 지치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를 재미있게 살려고요. 어느 날은 느닷없이 친구를 불러 바람을 쐬러 돌아다니고, 또 마음에 들어온 영화 포스터가 있으면 당장 그 영화를 찾아보고. 그렇게 오늘을 살고 또 좋은 다음의 오늘을 사는 거죠. 호기심에 연기를 시작한 10대를 지나 20대가 되었으니 앞으로 오랫동안 배우로 살아가고 싶어요.” 많은 기회나 작품을 만나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지나온 길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지금은 어떤 역할이든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저는 아직 잃을 게 별로 없잖아요.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제 안의 더 많은 것을 표현하고 싶어요. 그리고 일단 올해는 딱 한 작품을 하더라도 열심히 성실하게 잘 만들어가야죠.”

앙고라 니트 스웨터 앤더슨 벨(Anderson Bell), 팬츠 시스템 옴므(System Homme), 스니커즈 컨버스(Conve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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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패니즈 브렉퍼스트, 꿈의 팝송

아까 메이크업을 받을 때 깔깔 웃으며 재미있어하던데. 메이크업을 받는 건 내게 생소한 일이어서 항상 재밌다.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이 메이크업은 쿨하다. 아메리칸 스타일의 메이크업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건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핑클’ 같고 좋다. 하하.

서울에서 첫 공연을 마친 소감이 어떤가? 재미있고 의미 있었다. 북미부터 유럽,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비행기를 타고 투어를 다니며 1백20회 넘게 공연하는 것이 무척 지치는 일이기도 했지만 서울 공연은 매우 특별했다. 막연하게 늘 서울에 오고 싶었지만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이 프로젝트는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시작한, 나 자신을 위한 작은 프로젝트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난 종교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꼭 어머니가 지켜봐주시는 것처럼 신기한 우연의 일치로 느껴진다. 음악은 오래전부터 해왔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모든 일이 술술 풀렸고 그래서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공연을 하면서 특히 좋았던 건 항상 나에게 “네 회사는 어디니? 보수는 어떻게 받니?”라고 물어보던 큰 이모에게 증명할 수 있었다는 점. 공연 도중에 큰이모에게 ‘이 관객들이 내 회사’라고 농담을 했었다.(웃음)

첫 앨범 <Psychopomp>는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는 의미의 자신만의 작업이라고 생각했었나? 맞다. 많은 레이블에 그 앨범을 보냈지만 아무도 원하지 않았고 아주 조그만 ‘옐로케이 레코드’라는 레이블에서 그걸 음반으로 내주겠다고 했다. 나는 투어 공연은 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걸었다. 이 프로젝트를 하기 전에 난 펑크 밴드의 기타리스트였고 3년 동안 투어 공연을 했지만 돈도 못 벌고 사람들의 관심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몹시 지친 상태였다. 음악을 그만두기로 마음먹고 뉴욕에서 마케터로 일하는 동안 피치 포크 등 많은 매체에서 <Psychopomp>에 대한 좋은 평이 들리기 시작했다. 마케터 일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뒀다. 하루 종일 열심히 일했지만 퇴근할 때면 늘 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 같은 텅 빈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음악을 만드는 일이 내 직업이 됐고, 난 24시간 일을 하지만 절대 시계를 보지 않는다. 내 꿈의 직업이다.

2집을 준비하는 마음은 1집 때와 분명히 달랐을 것이다. 1집은 온전히 혼자서 작업했기 때문에 오랜 시간에 걸쳐 이것저것 시도할 수 있었다. 내 침실에서 녹음하고 믹싱을 해서 사운드도 로파이다. 새 레이블에 소속돼 만들기 시작한 2집은 마감 날짜와 예산의 제한이 있었다. 각각 자신의 역할을 맡아 정해진 시간 내에 빠듯하게 작업했기 때문에 훨씬 더 구조적이다. 질 좋은 스튜디오에서 작업해 사운드도 훨씬 하이파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2년 가까이 되었을 때 2집이 나왔는데 작업에 착수하기 전 투어를 돌면서 나처럼 엄마나 아빠를 잃은 어린 친구들을 많이 만났고 이런 일이 내게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나 자신에게, 그들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할까 고민하면서 이 일을 딛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야겠다고 생각하며 2집에 착수했다.

2집은 1집에 비해 정돈되고 차분하며 세련된 느낌이다. 앨범의 구조를 정해가면서 자신을 가장 크게 지배했던 감정은 무엇인가? 1집은 취약한 나를 그대로 드러냈다. 이게 나라는 느낌으로. 2집을 작업할 때는 1집의 스타일을 유지하되 질적으로 더 높은 성취를 이루는 데 신경 썼다. 내가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더 좋은 작품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핵심적인 감정을 꼽으라면 ‘성숙’이다. 그래서 내겐 어느 정도 기념비적인 앨범이다.

전에 몸담았던 ‘리틀 빅 리그’는 펑크 밴드였다. 당시의 음악이 지금과 어떻게 달랐는지 궁금하다. 나는 미국 서부 출신이고 리틀 빅 리그의 나머지 세 남자는 동부 출신이다. 배경이 서로 달랐기 때문인지 음악을 만들 때도 차이가 많이 났다. 그때부터 보컬 멜로디, 기타 리듬, 가사를 다 내가 썼기 때문에 리틀 빅 리그의 음악을 들으면 재패니즈 브렉퍼스트 느낌이 난다고 할 수 있지만, 당시 사운드가 훨씬 강렬하고 터프하다. 반면에 재패니즈 브렉퍼스트는 팝적인 부분이 많다. 내 음악은 사람들에게 ‘듣기 좋다’는 반응을 얻기 쉽지만 리틀 빅 리그의 음악은 워낙 사운드가 세 호감을 얻기가 쉽지 않았다. 펑크 밴드의 여자 멤버로서 평가절하되는 부분도 많았다. 사람들 앞에서 ‘나는 여자애지만 기타를 이렇게 잘 칠 수 있어’라고 늘 증명해야 했다. 재패니즈 브렉퍼스트로 활동하면서는 그걸 증명하는 과정이 없어도 되니까, 내가 내 음악을 하는 거니까 더 좋다. 나는 그냥 내가 좋아하는 팝 뮤직을 만들고 싶다. 가족들도 ‘듣기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음악.

어릴 때 체스 챔피언이었다는 기사를 봤다. ‘Cool Nerdy’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인데 음악과 관련이 없는 행위 중에 음악적 영감이 되는 행위가 있나?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많은 걸 배우게 했다. 피아노, 축구, 발레, 승마 등을 했고 게임을 좋아해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라는 게임을 앱으로 만들기도 했다. 대학에서는 글쓰기와 영화를 전공했다. 또 필름 프로덕션을 배워서 내 뮤직비디오를 직접 연출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내 영감의 원천이다.

한 인터뷰에서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말도 했었다. 그래서 서울에 오래 있는 거다. 지금 책을 쓰고 있다. 어머니와 한국 음식에 대한 에세이. 아팠던 어머니가 아니라 어머니가 만들어준 음식을 생각하면서 건강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글로 남기고 싶다.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인가? 이런 국제적인 밴드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에 설명하기 힘들다. 한국에서는 특히 더 예민한 문제라는 걸 안다. 설명하자면 내가 자란 오리건주에는 아시아인이 별로 없다. 아시아 문화라고 했을 때 가장 쉽게 떠오르는 것이 일본 문화다. 나는 일본에서 만든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을 많이 접하고 일본 음식을 먹으며 자랐기 때문에 일본 문화에 자연스레 호기심이 생겼다. 그리고 ‘재패니즈 브렉퍼스트’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지 않나. 깔끔하고 정갈한 느낌. 하지만 ‘코리안 브렉퍼스트’라고 했을 때 미국인들에게 떠오르는 이미지가 분명치 않다. 단순히 하나의 이미지로 생각한 것이다. 이름 때문에 오해를 받는 일이 있어서 나는 일본인이 아니고 아침도 안 먹는다고 항상 말한다. 내 트위터 프로필에는 PS. Korean이라고 써 있다.

서울에 있는 동안 뭐 하고 지냈나? 매해 여름 한국에 와서 외가 식구들을 만난다. 이번에는 큰이모와 시간을 보내고 아, ‘예지’와도 만나기로 했다.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조만간 서울에 온다고 해서 문자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글 쓰는 작업을 할 계획이다. 주기적으로 와서 팬들과 만날 기회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숙달되어서 TV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 나가고 싶다.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음악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곡을 하나 추천한다면? 이번 앨범에서 내가 좋아하는 곡은 ‘Road Head’다. 여태까지 선보인 곡과 달리 일렉트로닉을 살짝 가미한 곡이라 이 곡을 출발점으로 이전의 음악도, 이후의 음악도 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드레스 포에버21(Forever21). 목걸이와 스타킹은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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