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의 부탁을 거절해야 할 때 VS 부탁을 들어줘야 할 때

대기업 연구소 팀장으로 재직 중인 P는 언제 보아도 기분이 좋아지고 편안한 선배다. 그런데 P는 누구에게도 선뜻 말하지 못하는 고민을 가지고 있다. 바로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거절하지 못해서 다른 사람의 뒤치다꺼리를 도맡고, 밤을 새워 일을 하는데 본인 일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본인의 업무가 뒷전이니 야근하는 날이 하루이틀이 아니다. 거절하지 못하는 건 사적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다. 할 일이 많은 날에도 동료들과 커피 브레이크 때 빠져나오지 못해 시간이 훅 지나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P는 그 순간이 행복하다고 하지만 본인의 업무 시간을 빼앗기고 정신적으로 피곤하니 ‘착한 선배’라는 평판도 무의미해졌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문제는 주변인들의 반응이었다. “이거 팀장님 아니면 못 하는 일이에요.” “팀장님 요즘 무슨 일 있으세요? 왜 맨날 일만 하세요?” 이런 말을 듣게 되니 마음이 보통 불편한 게 아니다.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바로 이런 말을 듣기 싫어서 힘들게 남의 부탁을 들어주는데 이때 잘 참고 견뎌야 한다. 그 상태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다면 동료의 부탁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기준을 동료들과 공유하라. 그러면 동료들은 무리한 부탁을 하지 않을 것이며 한 번 거절한다 해도 ‘나쁜 사람’이라고 평가하기보다는 ‘맺고 끊는 게 확실한 동료’로 보게 될 것이다. 물론 내가 정한 기준에 합당한 부탁이라면 열일을 제쳐놓고 들어줘야 한다. 중요도와 우선순위를 따져서 팀의 목표에 부합하는 것일 때라면 말이다.

“나 지금 이거 당장 처리해야 하거든.” “지금 이야기 나누기 조금 어려워. 1시간 뒤에 볼까?”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아무도 당신을 나쁜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다.

바람 남녀

금사빠 인정?

남자친구와 1년 넘게 만나고 있다. 장거리 연애를 하는 우리는 규칙적으로 주말에만 만나고 나머지 시간은 항상 카톡으로 연결 돼 있다. 내가 일주일에 세 번 수영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올봄쯤. 퇴근 후 천근만근인 몸으로 수영을 배운다는 게 쉽지 않았지만 기꺼이 수영장으로 몸을 이끈 데에는 수영 강사의 힘이 컸다. 큰 키에 강다니엘처럼 넓은 어깨.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설레었다. 그렇게 몇 번 강습을 받다가 그가 나와 같은 대학 수영 선수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며칠 후 그가 내게 “학교 앞에 ○○ 파전집, 거기 진짜 맛있잖아요”라고 말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맞아요. 오늘처럼 흐린 날에 가면 제격인데”라고 대답했다. 사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이었다. 내 말에 그는 “예, 회원님.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라고 답했다. 그런데 그날 밤, 그에게서 카톡이 왔다. “조심히 들어가셨죠? 언제 한번 파전에 막걸리 한잔해요!” 그제야 참았던 갈증이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나는 바로 ‘칼답’을 했다. “그럼, 이번 주 일요일 밤 어때요?” 남친에게는 가족끼리 외식하러 나왔다고 말하면 될 일이다. 이 모든 걸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여동생이 혀를 끌끌 찼지만, 심심해서 대학 동문이랑 술 한잔 마시는 게 뭐 잘못된 일인가? S( 약사, 29세)

 

 

아이돌이라서

우선 그 아이돌이 아니다.고등학교부터 대학 때까지 한 밴드에 푹 빠져 있었다. 그 전까지 국내 밴드는 밴드로 치지도 않던 내가 이 팀을 알게 된 건 고등학교에 들어와 만난 남자친구 A덕분이다. A와 나는 나란히 실용음악과에 입학했고, 드디어 그 팀의 공연을 눈앞에서 보기로 한 날이 왔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건물 뒤로 돌아가 담배를 피우려던 나는 순간 놀라 고꾸라질 뻔했다. 밴드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멤버인 B와 다른 멤버가 그곳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감춘 채 천천히 담배를 입에 물었다. 몇 초가 슬로모션처럼 지났다. 공연이 시작된 후에도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무대 위의 B와 몇 번이나 눈이 마주친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평소의 나 같았으면 이 일련의 느낌에 대 해 A에게 하나도 빠짐없이 이야기했겠지만 그날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며칠 뒤 카페에서 잠깐 담배를 피우러 밖에 나왔다가 건너편 빌딩의 지하 스튜디오에서 나오던 B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B는 일행과 잠깐 이야기하는가 싶더니 내게 성큼성큼 다가와 담배를 꺼내며 말했다. “담배 너무 많이 피우는 거 아니에요?” 그렇게 말문을 튼 우리는 자연스럽게 연락처를 교환했고 이후에는 믿을 수 없는 일의 연속이었다. A는 같이 있을 때 정신이 나가 있는 나를 이상하게 여기기 시작했고, 결국 내가 B와 연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A와 헤어지고 싶지 않았지만 당시에는 B와 나 사이의 일이 전부 운명처럼 느껴졌다. 나는 A에게 큰 상처를 남기고 B에게 갔다. B와의 연애는 건조했고 금방 끝이 났다. 7년이 지난 지금 더 자주 떠오르는 건 첫사랑 A지만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다. 어렸고, 그는 나의 아이돌이었으니까. M( 스튜디오 엔지니어, 31세)

 

 

다 괜찮다며!

전 여자친구 C는 어디를 데리고 가든 단 한 번도 내 어깨가 으쓱하지 않았던 적이 없다. SNS에 사진을 올려도 여자친구 예쁘다는 말만 자동 댓글처럼 달릴 정도였으니까. 눈길을 끄는 외모 때문인지 C는 주변에 아는 오빠도 많고 어릴 때부터 친한 남자 사람 친구도 많았다. 처음에는 솔직히 이해가 안 됐다. 친구를 만난다는데 그게 남자고, 약속 시간이 저녁이라는 게. 내가 있는데 왜 다른 남자를 만나느냐고 하나 마나 한 질문을 던졌더니 C는 정색을 하고 이렇게 말했다. “오빠는 애인이잖아. 얘는 내 친구야. 오빠 친구는 전부 남자밖에 없어?” 더는 할 말이 없었다. 정말로 남녀를 가리지 않고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라고 이해하고 넘어가는 수밖에.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여자친구는 애인보다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고, 그러다 보니 사귀는 기간이 길어져도 둘 사이에 쌓이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관계를 정리했어야 하는데 당시에는 나도 ‘이렇게 예쁜 여자를 어디서 만나나’ 싶은 생각에 하루하루 흘려보냈다. 연애를 하는 데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나 역시 술 마시자는 친구들의 연락을 피하지 않았다. 후배 D를 만난 것도 그렇게 나간 술자리에서였다. 나란히 앉아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대화가 급물살을 탄 우리는 헤어지면서 연락처를 주고받았고, 이후 배터리가 방전될 때까지 매일 밤 통화를 했다. 여자친구가 있는데, 연애는 D와 하는 느낌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친구가 D의 존재를 알게 됐다. 함께 있을 때 휴대폰을 두고 화장실에 간 사이 D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C는 울면서 말했다. “대체 누구야? 나보다 예뻐? 집에 돈이 많아?” 이게 우리의 마지막이었다. D와는 올해로 연애 3년 차에 접어들었다. N( 디자이너, 3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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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시

‘매일매일 찾아오지만 우리가 미처 감지하지 못한 기적들에 대한 기록’. 시인 이은규가 이지혜의 시를 두고 남긴 말이다. 이지혜가 기록하는 순간은 오늘 당신이 본 풍경과 다르지 않다. 정류장과 버스 안, 극장과 공원에서 사진 찍듯 마음에 담은 찰나를 산문으로 풀고, 이내 시를 완성한다. 이지혜는 그렇게 쌓아온 산문과 시를 나란히 한 권에 담은 새로운 형식의 책 <조각의 유통기한>을 발표했다. 그는 산문집인지 시집인지 우왕좌왕하는 이들을 위해 이 책을 ‘노트’라 부른다. 이런 이유로 <조각의 유통기한>은 서점의 산문 코너에도, 시집 코너에도 진열돼 있다.

시마다 덧붙은 산문을 먼저 읽으며 시가 탄생하는 순간을 목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새롭다. 시와 가깝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읽기의 즐거움을 새삼 깨칠지도 모른다. 나아가 시는 시대로, 산문은 산문대로 읽어도 무방하다. 하지만 ‘시의 풀이’ 혹은 ‘시의 사연’이라 할 만한 글을 시 바로 옆에 둔다는 건 시인에게 꽤 큰 모험임이 분명하다. 누군가는 해석에 담을 치고, 시를 가두는 일이라 염려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려를 뛰어넘는 건 대중과 시가 더 가까워졌으면 좋겠다는 시인의 바람이다. 그녀가 직조한 매일의 시를 누군가 단 몇 조각만이라도 매일 읽기를 바라는 마음. 서른을 넘긴 젊은 시인이기에 가능한 시도이기도, 마음이기도 하다.

‘이제야’라는 필명으로 활동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등단할 때 나와 동명의 시인이 두 명이나 있었다. 무엇보다 시를 쓰는 순간에는 다른 이름을 쓰고 싶었다. 늘 글을 쓰지만 시를 쓸 때는 유독 다른 사람이 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시에 접근하는 태도 때문인 것 같다. 아무래도 시는 산문과 달리 상태와 감정을 오랜 시간 바라봐야 한다는 장르적 특성이 있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시는 늘 ‘비로소’ ‘이제야’ 완성된다. ‘이제야’는 내가 좋아하는 단어다. ‘말하고 있는 이때에 이르러 비로소’라는 사전적 뜻이 시를 쓰는 일과 밀접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 책 <조각의 유통기한>은 본명으로 발표했다. 이제야라는 이름으로 등단한 지 올해로 6년째인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뭐 하나만 봐도 시로 얽고 싶어 하고, 시어를 짜내서 뭐든 만들려고 하더라. 시에 대한 강박이 심상치 않던 차에 시집이자 산문집인 이 책을 작업하게 됐다. 완전히 시집이라 할 수 없으니 시도 긴장도 잠시 내려놓고 본래의 내 이름을 붙였다.

작가 노트라 할 수 있는 산문이 시마다 붙어 있다. 이런 형식의 책이 과거에 있었나? 없는 걸로 안다. 주변에서 만류도 했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형식으로 책을 묶은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시를 쓸 때는 그 시를 쓰게 만드는 이야기가 있다. 시가 되는 이야기들을 늘 메모하는데 이를 작가 노트처럼 묶고 싶었다. 둘째 이유가 결정적인데 시를 좋아하지만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집이 인기 있다고 하지만 정작 많은 사람이 어려워하고 끝까지 읽지 못한다. 이들에게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가고 싶다. 시와 산문을 함께 내밀며 시와 산문을 같이 혹은 각각 따로 읽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시를 만나길 바랐다. 그게 젊은 시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도 생각했고.

하지만 시는 태생적으로 오해의 장르다. 같은 문장이라 해도 저마다 이해하는 것이 다르고, 그 다름이 시를 매력적으로 만들기도 하는데 작가 노트가 자칫 해석의 즐거움을 막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나? 밤새워 고민했던 부분이다. 시의 이런 특성 때문에 나 역시 시를 좋아하고, 쓰게 됐으니까. 내가 시를 가두는 것은 아닌지, 산문이 자칫 해설집이 되는 것은 아닌지 고민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짝지어 놓은 시와 산문이 완전히 같은 내용이 되지 않도록 했고 중복되는 단어는 삭제했다. 산문은 머릿속에 그려지는 장면 정도로만 그 기능을 하게끔 정리했다. 독자들은 어떻게 읽고 있는지 궁금하다.

독자들이 시를 낯설지 않게 느끼도록 부단히 노력하는 책 같다. 인스타그램에서 내 책을 두고 #시입문서 #초급반시 등의 해시태그를 붙이더라. 흔히 시를 두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나. 이는 우리가 처음 시를 접한 방식의 문제인 것 같다. ‘해야 솟아라’ 하면 ‘해’에 동그라미 치고 ‘조국의 독립을 상징’ 이렇게 쓰지 않았나. 뭘 자꾸 해석하려 하는 것이 시를 더 어렵게 느끼도록 만드는 것 같다. 하지만 시에는 읽는 것 자체만으로도 좋은 문장들이 있다. 정확히 어떤 뜻인지 모르지만 외우고 싶은 문장을 발견하는 것. 이게 시 읽기의 즐거움이고 이 기쁨을 많은 이들이 같이 느꼈으면 좋겠다.

매일의 글을 정리해 시로 완성하는 과정에서 본인만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인가? 탈고 후 고치지 않는 편이다. 보통 함축적이면서도 새로운 표현을 하기 위해 단어를 많이 바꾼다. 한 번 뒤틀어보고 다른 단어를 넣고, 어순을 바꾸고 해체하고 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하는 거다. 그런데 나는 이런 작업을 잘 하지 않는다. 탈고를 할수록 당시 내 감정이 사라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뜻 모를 거창한 단어를 가져다 쓰기보다 솔직한 단어로 숨통을 틔우고 문은 닫지 않는, 그런 시를 쓰고 싶다.

반면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인 시를 선호하는 문단 내 분위기도 무시할 수는 없다. 젊은 시인의 실험적인 시에 대해 문단이 기대하는 바가 크고 특정적이다. 난해하고 파괴적이고 독창적이며 어려운 시. 젊은 시인만이 잘 쓸 수 있는 스타일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20대, 30대에만 가질 수 있는 특정한 감성, 혹자는 오글거린다고 할 수도 있는 젊은 서정이 있는데 그걸 애써 숨기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등단 초기에는 선배들에게 ‘20대의 시가 왜 이렇게 말랑말랑해?’ ‘시가 쉽다’는 말도 들었다. 그런 의견에 힘들어할 때 또 다른 선배들은 두리번거리지 말고 가던 길 쭉 가라고 했다. 그 말을 믿고 계속 썼다. 물렁하고 부드러운 지금 감성을 잃지 않고 싶다. 10년이 지나면 쓰고 싶어도 못 쓰게 될 테니까. 그 때문인지 또래 독자들의 메일도 받고, 인스타그램으로 응원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잘 팔리고 있다. 출간한 지 한 달 반이 지났는데 1쇄를 넘겼다고 들었다. 인스타그램 마케팅의 효과도 크다. 표지를 홀로그램지로 했는데 독자들이 표지를 이리저리 움직여 빛 물결을 만들고 이를 짧은 영상으로 찍어 올리더라. 사실 표지에 얽힌 비화가···. 처음에는 표지가 좀 단조로운 것 같아서 마음에 안 들었다.(웃음)

분홍색 테두리에 홀로그램지를 넣은 팬시한 시집이라니. 의아한 사람들도 있을 거다. 하지만 상품으로서 고민을 많이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봤다. 어느 자리인가 한 독자에게 시가 신비로운 것이 좋으냐, 신비롭지 않은 것이 좋으냐라는 질문을 받았었다. ‘신비롭게 혼자 읽으려면 저 혼자 골방에서 쓰겠죠’라고 답했다. 산문과 시를 함께 담았다는 것 자체가 상업성을 고려한 거다. ‘나는 시인이야, 시집만 있으면 돼’라고 생각하기보다 북스타그램 해시태그가 달려 한 명이라도 더 읽었으면 좋겠다. 책 나오고 나서 편집자들에게 표지 반대했던 거 사과했다.(웃음)

최근 시로 써봐야겠다고 마음먹은 일상의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 요즘 날씨가 좋아지니 버스킹을 많이 한다. 한강에서 한 남자가 혼자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근데 이 사람이 눈을 감고 있으니까 자신 앞에 관객이 얼마나 있는지 모른 채 계속 노래를 하는 거다. 그리고 노래가 끝났다. ‘박수를 쳐야 하나?’ 박수를 치면 나밖에 없는 게 티가 나고. 안 치려니 그가 너무 외로워보이고 고민이 되더라. 근데 다행히 부드럽게 다음 곡으로 넘어갔다. 찰나의 순간인데 그에게 위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수를 칠까 말까 하던 순간을 생각하며 집에 오면서 메모를 했다. 왜 사람과 사람이 대화를 할 때 침묵이 흐를 때가 있지 않나. 누군가와 소통하고 마음을 나눌 때 일일이 답을 할 때가 있고, 대답하지 않은 채 들어야 하는 순간도 있지 않나. 노래가 끝나고 다음 곡이 시작될 때까지 20~30초. 그 순간에 대한 시를 써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