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클래스 #엮음 편

새로운 ‘남성성’을 정의해야 할 때

모니카 트로이트 Monika Treut

1970년대 중반 비디오아트로 시작한 모니카 트로이트 감독은 1985년 첫 번째 장편영화 <유혹: 잔인한 여자>를 시작으로 <버진머신>(1988), <부정한 여자>(1992), <젠더넛츠>(1999), <빛의 전사>(2001) 등을 선보이며 퀴어 시네마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했다. 모니카 트로이트는 작품에서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분방하고 비행적인 여성을 그리면서 성 정치학에 꾸준히 일조하며 문제를 제기해왔다.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운영진은 모니카 트로이트 감독을 심사위원으로 위촉하는 동시에 회고전을 열어 여성주의에 눈과 귀를 연 이들에게 영감과 자극을 불어넣었다.

방금 페미니즘 콘퍼런스에 참여하고 오는 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논의가 한창이던가? ‘미투 운동’.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미투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퍼졌다. 페미니즘의 제4의 물결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1980년대부터 실험적인 퀴어 영화를 만들어왔다. 규범적인 여성상을 뒤집고 거침없는 성적 해방을 외치게 만든 계기가 궁금하다. 나의 어머니는 아주 재능 있고 똑똑한 분이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독일은 여성의 권익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었다. 당시 어머니는 사업을 하고 싶어 했는데 많은 반대에 부딪혀 할 수 없었다. 내가 보기엔 오히려 아버지보다 더 사업 감각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가정주부로 불행하게 사셨다. 어렸지만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부당하다고 느꼈고, 나는 저렇게 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어머니 역시 뼈저린 경험을 바탕으로 내게 늘 말씀하셨다. 결혼은 하지 말고 돈을 직접 벌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라고.

현재 독일의 페미니즘에서는 어떤 문제가 대두되고 있나? 좋은 질문이다. 서양에서는 지금까지 세 번에 걸친 페미니즘 운동이 있었다. 첫 번째는 영국과 독일에서 20세기 초반에 일어난 참정권 획득을 위한 움직임이다. 1960년대에 일어난 두 번째 물결에서는 낙태를 할 권리, ‘여자의 몸에 대한 권리는 여자에게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일터에서의 평등에 대한 주장도 그때 시작됐다. 독일에서도 여전히 평균적으로 남자보다 여자가 15퍼센트 더 적은 임금을 받고 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말이다. 한국은 이보다 더 차이가 극심하지 않을까 싶다. 독일 페미니즘의 세 번째 물결은 1980년대 말에 시작됐는데 여성들의 성적 해방을 위한 움직임이었다. 여성을 위한 포르노그래피를 만든다던가, 여성의 성적인 자기표현을 자유롭게 하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그리고 네 번째 물결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독일을 포함해 현재 세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미투 운동이다. 표면적으로 주된 메시지는 일터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희롱, 성폭력을 당하지 않을 권리를 주창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여성이기 때문에 남성으로부터 받는 시선들에 대한 부정이 담겼다. ‘저 여자는 옷을 왜 저렇게 입었어?’, ‘노처녀라서 히스테리를 부리네’ 등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여자라는 이유로 또 다른 프레임을 통해 보여지는 관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현재 독일도 미투 운동이 한창이다.

지금 한국의 여성들은 페미니즘을 깊게 인식하고 체득하려 노력한다. 여성들은 기득권층인 남성들에게 쌓인 분노를 마음껏 표출하고 남성들은 그런 여성들의 태도를 불편하게 여긴다. 이 과정에서 서로를 향한 혐오가 거세지고 있다. 독일에서도 여성 혐오적인 발언을 하는 남성들이 있다. 하지만 여성들은 무시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인 데다, 여자친구도 없는 루저들이 하는 말이라고 치부하고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다.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는 ‘남혐’, ‘여혐’이 중요한 이슈인 이유는 페미니즘에서 여성만 변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남성들이 참여해서 변해야 하고, 남성들과의 대화를 지속시켜야만 진정한 페미니즘 운동이 될 수 있다. 독일에서는 최근 남성의 육아휴직이 고무적인 현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나와 함께 일하는 에디터와 카메라맨은 30대 커플인데 에디터는 재능 있고 일 욕심이 많은 여성이라 아이는 남편에게 맡기고 일터로 나가 열심히 일을 한다. 육아휴직을 한 남편은 집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무척 즐거워한다. 이런 트렌드가 독일의 신세대 사이에서 많이 눈에 띄는데, 그 안에서 남성들은 이전의 남성들이 하려고 하지 않던 새로운 기술인 설거지나 청소 등의 집안일을 습득하면서 더 부드러워지고 여성을 깊이 이해하게 된다. 여기에 우리의 희망이 있다.

한국에도 아내 또는 여자친구를 위해 행동하는 남성들이 많지만 페미니즘이라는 단어 자체에 지레 겁을 먹는 남성이 더 많다. 포털사이트에는 ‘내 여자친구가 페미니스트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같은 질문이 태반이다. 하하. 남성들은 스스로 ‘남성성’이 무엇인지 다시금 고민해봐야 할 때다. 전 세계적으로 사회가 무척 빠르게 변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다. 남성이 사냥을 해야 했던 과거에는 힘이 세고 근육도 큰 전통적인 ‘남성성’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우리는 소통 능력이나 대접하고 내어줄 줄 아는 부드러운 기술이 필요한 사회에 살고 있다. 남성들은 이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전통적으로 배워온 남성성은 무너지고 있다. 남성 스스로도 남성성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하며 변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껴야 한다. 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저 변화가 두려운 것이다. ‘페미니즘’ 자체가 그들에게는 변하고 있는 이 세상과 자신들의 전형적인 성 역할에 대한 위기라고 여긴다. 그래서 남성들은 화풀이하듯 익숙하게 여성들에게 손가락질을 한다. ‘너희 때문이야!’라고. 한국에도 대중에게 이러한 사회 변화와 더불어 새로운 성 역할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릴 사람이 필요하다. 철학자나 문화평론가 같은 사람 말이다. 그렇게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나와 친한 미국의 한 철학가는 “현대 페미니즘에는 강한 여성과 강한 남성이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강한 남성은 자신의 정체성을 기꺼이 고민하고 바꿀 의지가 있는 남성이다. 여성들은 이미 여성성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하지만 남성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제 그걸 해야 할 차례다. 아마 좋은 롤모델이 없기 때문에 생긴 현상일 것이다. 남성들에게도 이해심과 배려심이 많고 상냥한 성격을 갖는 것이 곧 남성성을 잃는 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려주고 새로운 남성성으로 정의할 만한 롤모델이 필요한데 전 세계적으로 부족하다. 학교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남자는 여자를 보호할 만큼 강인해야 한다’라고 배우지 않나. 학교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당신이 말한 것처럼 여성들은 이미 여성과 여성성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정립했고, 심지어 끊임없이 수정해나가고 있다. 한국의 페미니즘에서는 ‘탈코르셋 운동’이 대두되고 있다. 나를 옭아맨 모든 여성스러운 치장을 그만둠으로써 사회가 강요하는 여성성을 거부하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탈코르셋’에 참여하는 여성들은 긴 머리를 자르거나 가지고 있던 화장품들을 모아서 버리는 모습을 찍은 인증샷을 찍어 SNS에 올린다. 올바르고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이 남성보다 자본주의에 더 많이 희생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화장품을 사거나 외양을 꾸미는 데 드는 돈이 어마어마하지 않나. 남성들중에서 화장품을 사용하는 사람도 물론 있지만 탐폰부터 시작해 여성 위생용품에 쓰는 돈까지 다 더하면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많은 돈을 쓰고 있다. 돈뿐만 아니라 시간도 그렇다. 여성이 상업성의 노예가 된 또 다른 이유는 사회가 여성에게 외모에 대한 압박을 많이 주기 때문이다. 밖에 나갈 때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신경 쓰거나 그 시선에 부응하려면 어‘ 제 입은 옷을 오늘 입으면 안 되기’ 때문에 들이는 시간의 총량이 어마어마하다. 외출할 때의 내 모습이 예뻐 보이면 더 자신감이 붙는 것은 물론 이해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이나 자의식에서 ‘예뻐 보여야 한다’, ‘꾸며야 한다’라는 생각이 너무 커진 나머지 강박적으로 외모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실 탈코르셋 운동은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도 문제적 이슈다. 일부에서는 탈코르셋을 하는 페미니스트들이 그렇지 않은 페미니스트들을 비난하고, 탈코르셋을 하는 페미니스트 사이에서는 선크림을 바를지 말지를 놓고 갑론을박을 펼친다. 소모적인 갈등이다. 여성들 스스로 여성들끼리의 차이점을 인정해야 한다. “저 사람은 페미니스트라면서 왜 화장을 해?”라는 식으로 먼저 판단을 내리면 남성들이 여성들의 외모에 대해 바보 같은 판단을 내리는 것과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모든 것을 포용하며 열린 마음으로 다가서야 하고, 대화를 통해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를 알고 싶어 하는 여성이 되어야 한다. 이런 상황은 전혀 불필요한 갈등이고, 어떤 결과라는 것도 없을 것이다. 빨리 이 시기를 벗어나 생산적인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한국에는 또 하나의 케케묵은 논제가 있다. 지난달 낙태를 처벌하는 현행 형법이 위헌인지를 가리는 첫 공개 변론이 있었다. 여성들은 주말마다 광장에 나가 낙태죄를 폐지하라는 시위를 한다. 독일에서는 낙태가 합법인 것으로 알고 있다. 먼저 설명하고 싶은 건 낙태죄 폐지를 원한다고 해서 그 여성이, 또는 내가 낙태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낙태까지 가는 상황을 막는 것이 최우선이다. 어떤 여성이 낙태를 하고 싶어 하겠나. 하지만 여성인 우리의 몸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정한다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낙태죄를 처벌하기 이전에 언제나 누구든 필요하면 피임약과 피임 도구를 무료로 받을 수 있도록 사회적인 장치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 사후 피임약 또한 필요하면 무료로 받을 수 있도록 해서 원치 않는 임신 자체가 없도록 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그래서 교육이 필요하다. 피임에 대한 교육뿐만 아니라, 낙태를 허용하라는 입장에 대해 단순히 ‘그럼 당신은 아기를 죽이는 것을 옹호하느냐’ 같은 말을 하는 무지가 없도록 교육해야 한다. 그리고 이 논의에서 교회는 완전히 배제해야 한다. 종교와는 무관하다. 종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낳으면 키울 수 없는 상황에서 입양을 보내게 되고, 그렇게 되면 엄마도 입양된 아이의 인생도 큰 시련과 비극의 연속일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피임 도구와 피임과 관련한 성교육이 모두 무료로 제공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성들의 의식 제고도 당연히 뒷받침돼야 한다. 아이가 생기는 건 당연히 남성도 함께 한 일이지 않나. 그 상황에서 ‘임신은 저 여자가 했으니 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피임과 안전한 섹스에 대한 교육이 중요한 이유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현행법상 낙태죄로 처벌받을 경우 남성은 그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오직 낙태를 한 여성과 시술한 의사만 처벌 대상이다. 하하하. 여성을 동정녀 마리아로 보나 보다. 반대 세력들이 모두 가톨릭 신자들인가?

종교 때문이 아니어도 보수적인 남성 가운데 무조건 ‘생명 옹호’를 외치는 사람이 많다. 그럴 때 여성들은 ‘그 생명이 바로 나’라고 대답하고 있다. 정확하다. 노령화 문제로 많은 국가에서 출생률을 높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낙태죄를 통해 출생률을 높이려는 생각은 일찌감치 집어치워야 한다. 독일은 낙태 죄가 폐지됐지만 되레 출생률이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는 생후 6개월 이후부터 갓 돌이 된 아기를 아침부터 오후까지 무료로 보낼 수 있는 보육원의 역할이 크다. 워킹맘들이 일을 하면서도 육아를 할 수 있게 제도적으로 도움을 주기 때문에 출생률이 올라가는 것이지, 낙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며칠간 서울에 머물고 있는데 당신이 만난 한국 여성들은 어떤가? 한국에 처음 왔기 때문에 섣불리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여기 있는 동안 느낀 것은 한국 여성들이 무척 강인하고, 똑똑하고, 진화하려고 하고, 호기심이 많고, 영역을 확장하려는 욕구가 아주 크다는 것이다. 여성 영화제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기 때문에 스태프 대부분이 여성이라 한국 남성들과 대화해볼 기회가 없었던 건 조금 아쉽다. 한 가지 의아하다고 생각한 건 GV를 할 때 남녀 관객의 성비가 1:6 정도 되는데 이상하게 늘 첫 번째 질문은 남성들이 한다는 점이다. 어쩌면 아직도 여성들이 대중 앞에서 뭔가를 이야기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한국의 페미니스트는 여성 혐오자들과도 싸우지만 20~30여년간 이 나라에서 살며 사회적 통념에 익숙해진 자신과 싸우기도 한다. 탈코르셋도 해보고, 시위에 나가 다른 페미니스트들을 만나기도 하면서 더듬더듬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로 향하고 있다. 평생 페미니스트로 살아온 당신에게 조언을 듣고 싶다. 역시 보수적인 독일에서 태어나 살면서 나 자신과도 싸워야 했다. 나는 그때 답답한 독일 사회가 싫어서 미국으로 갔다. 당시의 미국은 독일보다 여성의 권익이 10년 정도 앞서 있었고 그녀들이 쟁취한 것의 결과가 슬슬 보이는 단계였다. 여성 영화인도 많았고 학계나 각종 직업군에서 두드러지게 높은 자리에 여성들이 많았다. 그곳에서 자매 같은 조력자들을 만나 힘을 얻었다. 더 많은 자유를 얻었고, 나를 더 강인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러고 난 후 독일로 돌아와 보니 독일 사회도 그사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좀 단순한 답일지 모르겠지만 젊은 여성 페미니스트들이 다른 나라로 여행을 많이 다녔으면 좋겠다. 내가 속한 문화에서 벗어나 다른 나라의 여성들이 어떻게 권익을 찾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그간 우리 안에서의 충돌이 얼마나 사소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여성과 남성 간의 대립이 아니라 여성 사이에서도 사회 계급 간의 차이와 갈등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항상 중산층 여성들만을 대상으로 페미니즘 운동을 해온 것이 아닐까? 아티스트 여성들에게만 통용되는 페미니즘은 아니었을까? 한곳에 오래 있다 보면 시야가 좁아질 수 있으니 시각을 넓혀 여러 사회적인 계급과 무리를 볼 수 있는 아량과 여유를 길러야 한다. 기회가 된다면 여행을 넘어 그 나라에서 일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겉에서 보는 것과 실제로 느껴보는 것은 차이가 크니까. 지금은 페미니스트 네트워크가 잘돼 있으니 그와 연계해서 일을 해볼 수 있는 통로도 잘 마련돼 있다.

민제와 대니

성민제 자켓과 팬츠 모두 김서룡 옴므(Kimseoryong Homme), 티셔츠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스니커즈 컨버스(Converse).
대니 구 셔츠 시스템 옴므(System Homme), 팬츠 르메르(Lemaire), 스니커즈 컨버스(Converse).

어제 펀치가 두 번째 공연을 했다.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관객이 앙코르를 서너 번 하더라. 성민제(이하 민제) 기존 클래식 공연보다 표현하는 방식이 아무래도 젊다. 그러다보니 관객이 마음을 열고 들어주는 것 같다. 대니 구(이하 대니) 작년에 민제 형의 리사이틀 공연에서 처음 같이 연주했는데 그때 반응이 좋아서 둘이 듀오로 활동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펀치가 고작 3주 전에 탄생했기 때문에 어제 우리도 참 감사했다.

서로의 연주를 존중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듀오를 결성하기 전 서로의 음악을 어떻게 들었나? 민제 내 음악이 많이 유연한 편인데 대니가 나와 비슷하게 같이 움직여줘서 편하게 잘 맞출 수 있었다. 음악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위화감이 없다. 대니 둘 다 실내악 공연을 많이 했지만 나는 더블베이스와 듀오를 한 건 처음이다. 민제 형처럼 모든 테크닉을 다 잘 구사하는 더블베이시스트는 없다.

성민제는 더블베이스의 줄을 켜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퉁기기도 하고 손바닥으로 몸체를 치기도 한다. 이런 테크닉을 모두 가진 더블베이시스트가 많지 않다는 이야기인가? 민제 더블베이스라는 악기는 아주 다루기가 어렵다. 크기가 큰 데다 줄도 바이올린의 다섯 배 이상 굵다. 움직이는 것 자체가 체력적으로, 물리적으로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기술적으로 유연한 연주자가 별로 없고 특히 솔로로 연주하기에는 버거운 악기다. 클래식에서 더블베이스를 켜는 사람은 보통 오케스트라에 들어간다. 대니 솔로로 활동하는 사람이 전 세계에 5명도 안 될 거다. 민제 보통 더블 베이스는 오케스트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한다. 바이올린은 솔로를 많이 하지 않나. 우리가 하는 두 악기의 캐릭터 자체가 이렇게 다르다. 보통 바이올리니스트와 더블베이시스트가 협연하면 더블베이스 소리가 묻히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는 그런 부분에서 화합이 잘돼 서로 더 즐겁게 하고 있다.

성민제는 대니 구의 연주를 어떻게 받아들였나? 민제 대니는 성격처럼 음악도 밝다. 그래서 그의 바이올린 소리가 음역대가 낮은 더블베이스 소리를 잘 받쳐줄 수 있을 것처럼 친근하게 느껴졌고 더블베이스의 음색과 닿았을 때 역시나 따뜻하게 들렸다. 원래부터 알았던 것 같았다. 대니 맞다. 처음부터 오랫동안 같이 연주해온 사이 같았다. 그건 서로 잘 맞는다는 증거다.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은 자신이 연주하는 악기와 비슷해진다는 말이 있다. 민제 비슷해진다. 내가 느끼기에 더블베이스 연주자들은 이미지가 푸근하고 외모도 뚱뚱한 사람이 많다. 예민한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런데 나는 솔로를 하다 보니까 특이하게 예민해진 케이스다. 혼자 무대에 올라가서 나를 책임져야 하니까. 대니는 전형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의 느낌이 나긴 한다. 약간 예민하고 클래식 음악가의 전형적인 스타일이다. 의외로 보수적이기도 하고.

 

성민제 자켓과 팬츠 모두 김서룡 옴므(Kimseoryong Homme), 티셔츠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스니커즈 컨버스(Converse).
대니 구 셔츠 시스템 옴므(System Homme), 팬츠 르메르(Lemaire), 스니커즈 컨버스(Converse).

둘이서 공연을 할 때는 성민제가 편곡을 주로 한다고 들었다. 여러 악기로 연주하는 곡을 더블베이스와 바이올린만으로 편곡하면 어떤 느낌이 나나? 민제 나는 제일 저음을 맡고 바이올린은 제일 고음을 맡는다. 중간이 없다. 보통 이런 구성이라면 피아노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피아노가 없으니까 내가 중간을 할 때도, 바이올린이 중간을 할 때도 있다. 드물고, 어떻게 보면 듣기 좋지 않은 조합일 수도 있다. 대니 너무 낮고 너무 높으니까. 민제 대중적이지 않은 조합이고 장르이기 대문에 대중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 편곡하려고 노력한다.

성민제만의 편곡 스타일이 있다면? 민제 일단 화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블베이스가 둥둥거리는 이미지인데 활로 빨리 연주할 수도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은 게 우리의 취지이기 때문에 화려한 속주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바이올린 역시 음역대가 높긴 하지만 낮은 음도 할 수 있게 서로 왔다 갔다 하면서.

이런 스타일의 곡이 대니 구에게는 어떻게 들리나? 대니 아주 좋다. 형은 클래식 베이시스트지만 즉흥연주를 무척 잘한다. 형이 편곡한 곡에도 그런 부분이 많다. 어제 앙코르 공연에서도 즉흥적으로 연주한 부분이 있었다. 사실 클래식 공연에서는 그런 게 없기 때문에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민제 대니가 이해할 거라고 생각하고 내가 치고 나온 건데 받더라. 대니 형이 편곡하는 방식이 창의적이어서 좋다.

클래식 음악계에서 최초의 듀오 조합이다. 마음가짐이 다를 것 같다. 민제 최대한 긍정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를 잡아줄 선생님도 없고, 우리가 가는 방향이 곧 길이기 때문이다. 모델이 없지 않나. 계속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임감이 클 것 같다. 대니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 듀오로 공연을 하는 경우는 많지만 이렇게 팀으로 매일 둘이 붙어서 연주하는 듀오는 거의 없을 거다. 바이올린과 더블베이스의 조합은 특히 없다. 민제 클래식계가 워낙 좁아서 우리가 듀오로 연주한다는 사실이 많이 알려졌을 것이다. 따라 하려는 사람이 있겠지만 못 따라 한다. 세계적으로 우리 밖에 할 수 없는 연주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니 더 열심히 해야지. 앨범도 내고 영상을 찍어 유튜브에도 올리고.

각자 스물여덟, 스물아홉의 평범한 청년일 때는 어떤 모습인가? 대니 운동을 좋아한다. 자기 관리가 중요하다. 연주하는 것도 일종의 스포츠이기 때문에 좋은 공연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다. 그 외 시간에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책을 읽고. 별건 없다. 공연할 때 많은 곳을 오가니까 쉴 때는 집에만 있는 게 좋다. 잠옷 입고 바이올린을 연습하거나 텔레비전 볼 때가 사실 제일 좋다. 민제 나는 연주 외에 음악 비즈니스에도 관심이 있어서 밤낮없이 거의 일만 한다. 하지만 혼자 연습하는 게 곧 쉬는 거라서 축복받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연주했던 공연장 중에서 잊지 못하는 장소가 있다면 어디인가? 대니 어제 공연했던 예술의전당 IBK 챔버홀. 소리가 너무 좋다. 고맙게도 티켓이 매진됐고 분위기도 좋았다. ‘우리가 펀치로 정말 시작했구나’ 하는 느낌이 확실히 들었다. 민제 더블베이스 합동 공연으로는 베이스 콰르텟이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메인 연주한 일. 내가 리더로 있고 독일을 베이스로 활동하던 우리 팀이 미국에 초대받았기 때문에 여러모로 뜻깊었다. 솔로로는 루브르 박물 관에서 연주한 일이 기억에 남는다. 대니 (서툰 한국어로) 어제라고 말해야지. 내가 어떻게 돼. 민제 어제 공연도 물론이다.(웃음)

대니 구는 미국에서 ‘여성 런치 콘서트’의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는 등 재능기부나 자선 활동도 많이 하고 있다. 대니 집이 없는 여자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이 있다. 매달 뮤지션을 모아서 그곳에서 연주하는데 이런 활동을 많이 하면 내가 처음에 음악을 하고 싶었던 이유를 되새기게 된다. 열 일곱 살 때 한 뮤직 페스티벌에 갔다가 사람들이 흘러나오는 음악에 좋은 영향을 듬뿍 받는 모습을 보고 나도 저런 음악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이 길의 시작이었다. 재능기부를 많이 하면 ‘내가 이런 기분 때문에 음악을 시작했구나’ 하는 초심을 잊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으면 좋지 않나.

성민제는 학생들에게 더블베이스를 가르치고 있다고 들었다. 민제 교육과 연주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교육할 때는 학생의 심리까지 짚어야 한다. 한국은 음악을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환경이 좋지 않다. 미국이나 독일처럼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시스템이 별로 없기 때문에 아이들을 다독이면서 이 악기로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도록 가르쳐주려고 노력한다. 살면서 이 악기를 통해 자신감을 얻을 수 있도록.

그러고 보면 성민제의 삶은 쭉 프런티어였다. 민제 내가 가는 길이 다 처음이었다. 펀치도 마찬가지고. 나를 좋게 보지 않는 시선이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나는 정말 음악이 좋고 더블베이스라는 악기를 대중화시키기 위해서는 나를 알리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열심히 하는 것뿐이다.

각자의 올해 계획은 뭔가? 민제 올해에 앨범이 나온다. 스무 곡 정도가 수록될 이 앨범으로 오래 활동할 예정이고 내년 초에는 베이스 콰르텟이 내한 공연을 할 것 같다. 그러면서 펀치로 선보일 곡도 정해야 한다. 대니 미국으로 돌아가면 한동안 꽤 바쁠 것 같다. 볼티모어, 뉴욕, 런던 위그모어 홀에서 공연이 잡혀 있다. 디지털 싱글을 녹음했는데 언제 나올지는 모르겠다. 그것도 기대해줬으면 좋겠다.

펀치의 미래는 어떨까? 성 펀치의 매력은 계획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대니 지금 레퍼토리를 짜고 있지만 다듬는 시간이 필요하다. 앞으로 앨범도 내겠지만 우선은 둘이서 재밌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여느 클래식 팀과 다른 점은 실제로 친하다는 것이다. 클래식 아티스트들이 개인적인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이런 관계가 별로 없는데 내가 미국을 가도 우리는 계속 메시지를 나누고 영상통화도 자주 한다. 그렇게 해야 우리의 음악이 살아 있고 바뀔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민제 맞다. 우리, 갑자기 노래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