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의 보사노바

 

JOÃO GILBERTO

O AMOR, O SORRISO E A FLOR(1960)

1958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보사노바를 탄생시킨 주앙 지우 베르투의 초기 오데옹(Odeon) 3부작 중 하나. 삼바를 구성하는 모든 타악기의 리듬을 기타 한 대로 표현한 혁신적인 그의 초기 보사노바 대표 곡들을 만날 수 있다. ‘사랑, 미소 그리고 꽃’이라는 앨범 타이틀과 단편소설 같은 곡 구성은 보사노바의 매력을 가장 잘 보여준다. 추천 곡 ‘Se é Tarde Me Perdoa’

 

 

CAETANO VELOSO & GAL COSTA

DOMINGO(1967)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브라질 아티스트 카에타누 벨로주와 가우 코스타의 데뷔작. 이후 브라질 대중음악계에 혁신을 가져온 운동인 ‘트로피칼리즈무’ 시기부터 사회 저항적인 음악을 잇달아 발표한 그들의 음악적 행보를 믿기 어려울 정도로 이 앨범에서는 아름다운 보사노바를 노래하고 있다. ‘일요일’이라는 앨범 타이틀처럼 나른한 일요일 오후를 편안하게 어루만져준다. 추천 곡 ‘Zabele’

 

 

NARA LEÃO

DEZ ANOS DEPOIS(1971)

‘보사노바의 뮤즈’ 나라 레앙이 브라질 군부독재 시절 망명지로 선택한 파리에서 부르고 싶었던 노래는 그때까지 자신의 앨범에 수록한 적 없던 보사노바라고 한다. 파리의 평온한 생활 속에서 부르는 노래에는 가장 찬란했던 시절의 고향의 햇살과 바람이 담겨 있다. 여름비 내리는 오전 보사노바와의 첫 만남으로 제격인, 리우데자네이루의 공기 같은 앨범. 추천 곡 ‘Desafinado’

 

 

ANTONIO CARLOS JOBIM

STONE FLOWER(1970)

도쿄에서 일과를 마치면 시부야의 조용한 골목에 자리 잡은 ‘바 보사(Bar Bossa)’라는 보사노바 바를 찾는다. 마스터와 하루의 일을 이야기하고 벽에 진열되어 있는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의 레코드를 바라보면서 음악을 듣는 순간을 사랑한다. 작열하는 햇볕이 아니라 조용히 비추는 달빛 같은 음악. 앞에 와인이 있다면 아마도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추천 곡 ‘Choro’

 

 

LUIZ BONF

LE ROI DE LA BOSSA NOVA(1962)

영화 <흑인 오르페>의 사운드트랙을 담당했던 루이즈 본파는 보사노바가 아니라 힙합을 만들어도 잘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실제로 많은 힙합 뮤지션이 자신의 음악에 그의 오래된 보사노바 곡을 샘플링하기도 했다. 무더운 여름, 도심 속 조용한 카페에서 아이스 라테를 마시며 듣고 싶은 앨범. 추천 곡 ‘Bonfa Nova’

 

 

PAUL WINTER WITH CARLOS LYRA

THE SOUND OF IPANEMA(1964)

브라질 보사노바 싱어송라이터와 미국 재즈 뮤지션의 만남. 1960년대 중반 보사노바가 미국을 거쳐 세계로 세를 확장한 결정적 순간이 담긴 앨범이다. 그래미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에 보사노바를 알린 계기가 된 <Getz/Gilberto> 앨범과 쌍둥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음악과 앨범 구성에서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카를루스 리라의 달콤한 목소리로 아름다운 이파네마 해변의 분위기를 느껴보자. 추천 곡 ‘Você e Eu’

지금 뭐라고 했니?

“누구랑 참 비교된다”

제아무리 잘나보았자 속세의 중생일 뿐인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항상 남과 나를 비교한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연인이 나를 누군가와 비교해 비난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이 발언이 나쁜 이유는 이어질 대화가 지극히 뻔하기 때문이다. ‘그럼 걔랑 만나지 왜 나랑 사귀느냐’는 반박에 지지않고 ‘그럴 걸 그랬다’고 확인 사살을 하는 흐름은 ‘너답지 않게 왜 이래’, ‘나다운 게 뭔데’에 이어 더 이상 드라마에서도 나오지 않는 대화로 이어진다. 연애는 둘만의 이야기일 때 가장 평온하다. 다툼도 포함해서 말이다. 그리고 솔직히 누가 부모님에게도 듣기 싫은 말을 연인에게 듣고 싶겠는가.

 

“그게 그렇게 서운해?”

이야기를 실컷 다 들어놓고도 예민보스 취급하는 데는 당할 재간이 없다. 자매품으로 ‘그게 그렇게 잘못이야?’가 있다.

 

“우리 헤어져”

습관성 이별 통보 증후군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연애 스토리의 끝은 사실 헤어지는 것이다. 그런 마지막을 두려워하는 감정은 당연하다. 그런 마음을 이용해 싸움의 주도권을 잡고자 하는 건 지극히 치사한 행동이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상대방이 알겠다며 순순히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 같으면 오히려 역정을 낸다. 애초에 상대가 잡아줄 걸 예상하며 한 발언이라는 증거다. 다툴 때 번번이 헤어지자고 으름장을 놓는 쪽이 당신이라면 깊이 반성해야 한다.

 

“네가 그래서 안 된 거야”

네가 그래서 승진 시험에 떨어진 거야, 네가 그래서 전 여친이랑 헤어진 거야, 네가 그래서 지금도 부모님에게 얹혀사는 거야, 네가 그래서 친구가 없는 거야 등. 싸움의 본론과 별 상관 없는 인신공격인 ‘네가 그래서’ 시리즈는 서로에 대한 쓸데없는 증오만 키운다.

 

“심한 욕”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내 부모에게도 들어본 적 없는 욕을 하는 인간은 상종하지 않는다.

 

“내 친구가 그러더라”

인용은 논문을 쓸 때는 필수다. 하지만 남자친구와 언성을 높일 때는 그다지 추천할 만하지 않다. 특히 한쪽의 잘잘못을 가리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친구 ◯◯도 네가 그러는 거 이상하다고 하더라, 내 동생이 너에 대해 한 말이 맞았다 등. 싸우다 보면 어떻게든 상대의 과오를 강조하고 싶기 마련이지만, 많은 경우 듣는 사람으로선 당신이 뒤에서 제삼자에게 둘 사이의 속사정과 치부를 미주알고주알 논했다는 원망스러운 마음과 수치심이 먼저 들고, 그 때문에 정작 잘못했다는 죄책감은 뒷전이 된다. 소위 사랑싸움도 때로는 전략적일 필요가 있다. 남의 말은 본질을 흐리는 사족일 뿐이다.

 

“그래 네가 이겼다”

계속 이어질 연애에서 오늘만 싸울 것이 아니기에, 어떻게 싸우느냐 만큼 어떻게 싸움을 끝낼지도 중요하다. 내 잘못이 더 크다면 제대로 사과하고 상대가 누그러지기를 바랄 일이고, 그건 아니지만 격앙된 분위기를 감당하기 힘들다면 지금은 계속 얘기해도 해결이 나지 않으니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중에 얘기하고 싶다고 휴전 요청을 하면 된다. 그럼에도 자존심 혹은 욱하는 마음에 비아냥거리듯 네가 이겼다는 식으로 말하며 싸움을 끝내려 한다면 안타깝게도 그건 지는 게 못내 분해 쏟아내는 지질한 복수처럼 들리는 데다 십중팔구 오만 정이 떨어진 상대의 표정을 마주하게 된다.

 

“왜 시비야”

다툼은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출발한다. 왜 짜증이 심한지, 왜 연락이 안 되는지, 왜 말을 그렇게 하는지, 얘기를 하다 보면 반드시 이유가 있고 대부분의 경우 결국 납득하게 된다. 연애는 서로에 대한 의문과 이해의 반복이다. 너와 나는 같지 않기에. ‘왜 시비야’는 그런 상대방을 한순간에 시비 터는 양아치로 만드는 마법의 문장이다. 물론 성미가 정말 고약해 사사건건 싸움을 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면 무슨 부귀영화를 위해 계속 사귀는지? 결국 이 말은 당신을 이해하고 싶어 나선 사람에게 따지지 말라고 윽박지르는 격이다. 이에 문장 중간 ‘또’를 넣으면 부아가 치미는 수준이 배가된다. 왜 또 시비야. 입씨름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쓸데없이 전투력을 상승시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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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틀리지 않았다

조혜정 Cho Hye Jeong

여성과 정치, 문화는 조혜정의 작품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조혜정 작가는 2000년부터 시작해 17년 동안 꾸준한 호흡으로 한국 현대사 속 여성의 삶을 작품으로 표현해왔다. 때로는 역할극으로, 퍼포먼스와 무용을 결합한 다차원적 비디오로, 비디오 다큐멘터리, 영상 포엠 등으로 장르를 변주해왔지만 그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한국에서 여성으로 사는 일’로 수렴된다. 공식적인 첫 전시작인 <사회적 몸-젠더와 제스츄어, 공간에 관한 실험>(2001)을 통해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행동 양식에 대해 새롭게 조명한 그는 이후 2004년 동료들과 함께 부산 초량동 윤락가를 담은 영상 <부산 텍사스>를 제작하며 여성 개인의 삶으로 파고든다. 이듬해 의정부 동두천을 홀로 찾아가 매춘 여성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들을 취재, 인터뷰하며 <리틀 시카고, 동두천>을 완성했다. 신여성이자 대한민국 최초의 페미니스트로 일컬어지는 나혜석과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이자 인권운동가 문옥주[<위대한 타자들>(2007)], 유관순 열사[<재구성의 경로들>(2011)], 박정희 정부 당시 국가 권력에 희생당한 배우 김삼화[<밀실과 장치>(2017)] 등을 작품 속으로 소환해 여성 개인의 사건과 시대 전체의 비극을 연결시킨다. 조혜정 작가의 최근 전시는 코리아나미술관 스페이스 씨에서 열린 <히든 워커스 Hidden Workers>. ‘여성의 노동’을 주제로 국내외 작가들이 모인 이 자리에서 2014년 김숙현 감독, 현대무용가 임샛별과 공동 작업한 <감정의 시대: 서비스 노동의 관계미학>을 전시했다. 스튜어디스, 간호조무사, 어린이집 교사, 콜센터 상담원 등 21세기를 사는 여성 노동자의 생생한 증언과 퍼포먼스를 한데 담은 복합 영상이다.

2001년 첫 전시부터 지금까지 줄곧 여성을 주제로 한 작품을 해왔다. 학생 시절 접한 작품들이 이후 개인 작업에도 영향을 미치기 마련인데 주로 1980~90년대의 신디 셔먼이나 바바라 크루거 등의 해외 여성 작가 작업들에 고무되고 영향을 받았다. 여성 작가라면 누구나 여성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고, 그 고민이 자연스럽게 작품으로 드러나게 된다. 다만 이 고민과 관심에 대해 공식적으로 밝히고, 여성주의 작품이라는 타이틀을 붙이는 것은 선택의 문제다. 내 경우에는 여성주의 작품을 하는 작가임을 밝히는 것을 선택했고, 지금까지 작업을 이어왔다.

페미니스트 혹은 여성주의 작가로 호명되는 데 대한 우려나 주저함은 없었나? 1990년대 이불 작가와 조경숙 선생의 작업을 무척 좋아했다. 당시 그런 분들에게 여성주의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여성주의를 선택하는 건 내게 멋있는 일이었다.(웃음)

당시 페미니즘에 대한 미술계, 한발 더 나아가 문화계의 분위기는 어땠나? 2000년 중반부터 2010년 초반까지 근 10년 동안은 페미니즘을 작업화 하는 것이 굉장히 촌스러운 일로 취급됐다. 페미니즘 운동이 한차례 뜨겁게 일었기 때문에 그 이후에는 ‘이미 우리는 페미니즘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했어. 이제 한물간 주제야’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었다. 문화계 전체 분위기가 그랬다. 왜‘ 아직도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냐’라고 반문했으니까.

여성주의 작품을 호의적으로 보지 않을 때에도 작업을 꾸준히 이어갔다. 그렇게 2004년 <부산 텍사스>를 시작으로 대한민국 현대사 속 여성의 삶에 집중한다. 부산 초량동은 조선시대에는 일본인들이 살던 곳이고, 6.25전쟁을 기점으로 한동안은 미군 전용 윤락가였다. 그다음 화교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1990년대 초반부터는 러시아 선원들이 모여들면서 외국인 상가로 변화하며 러시아 여성들의 매춘도 성행했다. 유흥과 환락이라는 밤의 풍경이 아닌 비교적 건전한 상업자본이 움직이는 낮의 텍사스 거리를 중심으로 거주민들을 인터뷰하면서 부산 텍사스를 비추고자 했다. 인터뷰 작업과 함께 별도의 퍼포먼스 영상을 더했다. 총 4명의 여성 동료가 모여 완성한 작품 인데 당시 ‘프리챌’에서 스터디를 정말 열심히 했다.

이듬해 발표한 <리틀 시카고, 동두천>은 이 작업의 연장선처럼 느껴진다. 누구의 소개도 없이 맨몸으로 동두천에 갔다. 동네를 몇 번 들락날락하다 ‘하선애’라는 언니를 만나 친해지게 됐다. 언니가 얼굴 나오는 건 원치 않아서 육성만 따고 이후 영상을 추가한 작업이다. 당시 동두천에서 미군이 한국 여성을 끔찍하게 살해한 사건이 벌어진 터라 혼자 다니기에 안전한 동네는 아니었다. 언니를 따라 동네 곳곳을 다니면서 많은 이야기를 듣고 인터뷰하면서 내용이 풍부해졌는데 가슴 아픈 이야기가 많다. 본인은 의식하지 못하지만 그녀 자체가 한국 현대사 비극의 한 조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부모에게 버림받아 글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이다. 사기도 많이 당하고, 결혼도 여러 번 하고, 아이도 많이 낳았지만 그중 어느 아이와도 연결돼 있지 않고···. 그 비참한 삶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누구라도 그 상황에서라면 그녀처럼 살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2007년 <위대한 타자들>부터는 나혜석이나 문옥주 등 비교적 알려진 여성을 주제로 작업을 만들어갔다. <위대한 타자들>은 나혜석, 문옥주, 그리고 나의 할머니까지 세 여성이 등장한다. 같은 연배이지만 각기 다른 삶을 산 여성에 대한 영상 포엠을 만들고 싶어서 시작했다. 인터뷰를 넣고 회상 시대마다 맞는 사운드를 넣으며 비디오 필름처럼 만든 작업이다. 세 분의 삶을 비교하면서 그 어느 삶도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음을, 명석했지만 시대적으로 버려질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담게 됐다.

<감정의 시대: 서비스 노동의 관계미학>의 한 장면.

역사와 함께 여성의 삶을 조명한 작업 중 가장 최신작인 <밀실과 장치>에서는 작고한 영화배우 김삼화를 소환한다. 우연히 과거 김현철이라는 재미 언론인이 미국에서 발행하는 <한겨레저널>에 쓴 칼럼을 봤다. 미국으로 이민 갔던 배우 김삼화를 인터뷰한 자료를 근거로 한 그의 칼럼에 따르면 박정희 정권 시절 촉망받던 배우 김삼화가 갑자기 청와대에 불려가 박정희에게 강간을 당하고 성노예가 됐다는 내용이다. 이후 박정희에 의해 강제로 미국으로 쫓겨난 김삼화는 평생 동안 고통받다가 사망한다. 사건의 진위를 떠나서 김삼화 씨가 아니더라도 이와 관련한 유사한 사건들이 많지 않나. 김삼화 씨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다큐멘터리로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어 그녀가 당시 느꼈을 공포에 집중해 퍼포먼스 영상을 짜고, 그가 출연한 영화 <양산도>를 변주하는 등 다차원적 비디오를 제작했다. 사실 이 작업은 박근혜 정권 당시 이뤄졌는데 그때만 해도 박정희와 관련된 주제를 다루는 것은 무서운 일이었다. 단지 1970년대에 대한 작업을 하는 것만으로도, 그 시절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용기를 내야 했다. 그럼에도 한 시대를 살아낸 인물들에게 관심이 가고, 작가로서 이성적으로 접근하려 하지만 작업을 이어가며 결국 감성적으로 공감하게 된다. 연대감이 생기기도 하고.

돌아보면 지금까지 작업한 인물들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 것 같나? 누군가를 반드시 해야겠다고 정해놓지는 않지만 시대의 격랑 속에 있고, 그 속에서 아픈 일을 겪어야 했던 여성에 대한 어떤 끌림이 있는 것 같다.

가장 최근의 전시는 코리아나미술관 스페이스 씨의 개관 15주년 국제 기획전인 <히든 워커스 Hidden Workers>다. ‘여성의 노동’을 주제로 국내외 작가들이 의기투합한 이 전시에서 2014년에 작업한 <감정의 시대: 서비스 노동의 관계미학>을 선보였다. 당시 한 대기업 상무가 비행기에서 라면 때문에 승무원을 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이후 스튜어디스의 감정 노동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나 역시 관심을 갖던 차에 기획한 작업이다. 관심과 동시에 다행히 펀딩을 받아 완성할 수 있었다. 김숙현 감독, 현대무용가 임샛별과 셋이서 공동 작업했다. 갤러리 상영용 영상 외에 역할극만 한 영상도 있고, 안무 공연도 하고, 2시간 분량의 인터뷰 음성 파일을 전시장에 그냥 틀어놓기도 하는 등 다양한 형식과 방법으로 풀어냈다.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작업하며 굳어진 생각, 혹은 변화된 생각이 있다면 무엇인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틀리지 않았다’라는 확신이다. 중간에는 나 역시 흔들렸다. ‘내가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서 세상을 보는 것은 아닐까?’ 하고 회의도 하고, 의심도 가진 적이 있다. 주변의 말처럼 ‘여성 주의적 시각은 더 이상 예술로서 재미없는 걸까?’라고도 자문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다행히 나는 틀리지 않았다.

작가로 살아오면서 가장 뜨겁고 전투적인 때는 언제였던 것 같나? 지금이다. 예전에는 기운이 좋았겠지만 정신적으로는 지금이 더 당당한 것 같다. 뭐, 자기 최면을 거는 면도 없지 않은데 그렇지 않으면 작업을 계속하지 못할 것 같아서다. 스스로 힘내지 않으면 누구도 나에게 작업을 하라고 권하지 않으니까. 내가 아티스트로서 작업을 하는 것보다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을 양육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지금도 집에 가면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집은 순식간에 더러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사를 뒤로 미루고 작업에 집중하려면 내가 나에게 최면을 걸지 않으면 할 수 없다. 경제적인 이유를 비롯해 힘든 여건들이 있지만 정신적인 것에 비하면 부차적인 어려움 같다.

요즘 페미니즘 운동의 모습 혹은 여성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완전 긍정적이다. 완전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이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조금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지만 어느 시대건 사회적 틀을 깨는 건 매우 중요하다. 우리 때 페미니즘 운동은 지금처럼 행동으로 보여주지는 못한 것 같다. 상의 탈의 시위 같은 건 실제로 하지는 못했고, 오로지 작업을 통해서만 했던 것 같다. 이들의 행동이 진짜 작업이고, 예술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20대 친구들과 같이 작업해보고 싶다.

요즘 가장 관심 가는 시대적, 젠더적 사안은 무엇인가? ‘남혐’, 여‘ 혐’ 등 혐오 정서에 대해 작업하고 싶다. 예전보다 혐오를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고, 그 강도도 세다. 지금 자료 조사 중인데 며칠 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섀넌 선-히긴슨 감독의 <방해 말고 꺼져! 게임과 여성>이라는 작품을 봤다.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온라인과 게임 내에서 벌어지는 성희롱과 성폭력에 대해 작업한 다큐멘터리인데 이 작품을 만든 감독이 미국에서 활동하는 프로게이머이자 페미니스트 이론가라고 하더라. 젠더, 인종, 세대, 계층 간의 혐오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