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 끝내버리는 영화

 

무더위가 빨리도 찾아왔다. 장마가 금새 끝난 탓이다.
미리 알기라도 했는지, 7월에 공포영화 기대작들이 연이어 개봉한다.
그 중 몇 작품을 뽑았다. 무더위같은 건, 하얗게 잊을 수 있을 것.

<킬링 디어>

<더 랍스터>의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킬링 디어>.
완벽한 삶을 살고 있던 외과 의사 스티븐에게 마틴이라는 이름의 소년이 찾아와 자신이 입은 상처에 대한 복수를 한다.
소중한 딸의 사지가 마비되는 것부터 시작된 비극은 그의 가정을 서서히 망가뜨리며 절망의 끝으로 이끈다.
BGM으로 바흐와 슈베르트의 엄숙한 선율이 흐르고 환자와 집도의의 허용 하에
실제 수술 영상을 촬영하는 과감한 시도를 한 덕에 더욱 피부에 와닿는 공포를 경험할 수 있다.
보는 내내 힘들어도, 포기할 수 없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또 다른 기대작.
12일 개봉.

 

 

 

<속닥속닥>

6명의 고등학생이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발견하게 된 오래된 놀이공원.
짜릿하고 즐거운 비명으로 가득해야 할 곳에서 들리는 것은 ‘죽음의 속삭임’.
<속닥속닥>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미로처럼 복잡하고 어두운 공간에서,
끊임없는 속삭임이 사람들을 괴롭힌다.
귀신에게서 벗어나 살아남는 방법은 쉴 새 없이 뛰고 숨고 도망 다니는 것뿐.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이야기는 지켜보는 이들까지 마음 졸이게 한다.
‘귀신의 집’은 괜히 ‘귀신의 집’이 아니다.
13일 개봉.

 

 

 

<피라냐 3DD>

강과 호수에서만 활동하던 피라냐가 이번에는 (어쩌다가?)워터파크에 출몰했다.
6년 만에 다시 관객을 찾아온 <피라냐 3DD>는 온갖 약품이 섞인 워터파크 물에서도 여전히 강력하고 사악하다.
심지어 이를 3D 영상으로 담아내 현실감은 배가됐다.
푸르게 물결치던 수영장은 핏빛으로 물들고, 여름을 만끽하던 사람들은 생지옥에 갇힌다.
앞서 개봉했던 <피라냐>에서 다리를 잃은 빙 라메스의 복수와
믿음직한 ‘피라냐 전문가’ 크리스토퍼 로이드의 활약도 관전 포인트.
올해 워터파크 갈 수 있으려나. 잘 모르겠다.
17일 개봉.

 

 

 

<맘 앤 대드>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공간인 집이 순식간에 충격과 공포의 공간으로 돌변한다.
<맘 앤 대드>에서 아이들의 생사를 위협하는 존재는 다름 아닌 부모다.
정체불명의 집단 히스테리에 걸린 이들은 하교 시간에 맞춰 본격 ‘자녀 사냥’에 나서고,
철없는 남매인 칼리와 조시는 거침없이 날아오는 흉기를 피해 아찔한 숨바꼭질을 한다.
<나 홀로 집에>를 연상시키는 유머러스한 장면들도 있지만,
살기를 품은 부모의 얼굴을 보면 마냥 웃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결론은 부모님들에게 잘하자.
18일 개봉.

여름날의 보사노바

 

JOÃO GILBERTO

O AMOR, O SORRISO E A FLOR(1960)

1958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보사노바를 탄생시킨 주앙 지우 베르투의 초기 오데옹(Odeon) 3부작 중 하나. 삼바를 구성하는 모든 타악기의 리듬을 기타 한 대로 표현한 혁신적인 그의 초기 보사노바 대표 곡들을 만날 수 있다. ‘사랑, 미소 그리고 꽃’이라는 앨범 타이틀과 단편소설 같은 곡 구성은 보사노바의 매력을 가장 잘 보여준다. 추천 곡 ‘Se é Tarde Me Perdoa’

 

 

CAETANO VELOSO & GAL COSTA

DOMINGO(1967)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브라질 아티스트 카에타누 벨로주와 가우 코스타의 데뷔작. 이후 브라질 대중음악계에 혁신을 가져온 운동인 ‘트로피칼리즈무’ 시기부터 사회 저항적인 음악을 잇달아 발표한 그들의 음악적 행보를 믿기 어려울 정도로 이 앨범에서는 아름다운 보사노바를 노래하고 있다. ‘일요일’이라는 앨범 타이틀처럼 나른한 일요일 오후를 편안하게 어루만져준다. 추천 곡 ‘Zabele’

 

 

NARA LEÃO

DEZ ANOS DEPOIS(1971)

‘보사노바의 뮤즈’ 나라 레앙이 브라질 군부독재 시절 망명지로 선택한 파리에서 부르고 싶었던 노래는 그때까지 자신의 앨범에 수록한 적 없던 보사노바라고 한다. 파리의 평온한 생활 속에서 부르는 노래에는 가장 찬란했던 시절의 고향의 햇살과 바람이 담겨 있다. 여름비 내리는 오전 보사노바와의 첫 만남으로 제격인, 리우데자네이루의 공기 같은 앨범. 추천 곡 ‘Desafinado’

 

 

ANTONIO CARLOS JOBIM

STONE FLOWER(1970)

도쿄에서 일과를 마치면 시부야의 조용한 골목에 자리 잡은 ‘바 보사(Bar Bossa)’라는 보사노바 바를 찾는다. 마스터와 하루의 일을 이야기하고 벽에 진열되어 있는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의 레코드를 바라보면서 음악을 듣는 순간을 사랑한다. 작열하는 햇볕이 아니라 조용히 비추는 달빛 같은 음악. 앞에 와인이 있다면 아마도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추천 곡 ‘Choro’

 

 

LUIZ BONF

LE ROI DE LA BOSSA NOVA(1962)

영화 <흑인 오르페>의 사운드트랙을 담당했던 루이즈 본파는 보사노바가 아니라 힙합을 만들어도 잘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실제로 많은 힙합 뮤지션이 자신의 음악에 그의 오래된 보사노바 곡을 샘플링하기도 했다. 무더운 여름, 도심 속 조용한 카페에서 아이스 라테를 마시며 듣고 싶은 앨범. 추천 곡 ‘Bonfa Nova’

 

 

PAUL WINTER WITH CARLOS LYRA

THE SOUND OF IPANEMA(1964)

브라질 보사노바 싱어송라이터와 미국 재즈 뮤지션의 만남. 1960년대 중반 보사노바가 미국을 거쳐 세계로 세를 확장한 결정적 순간이 담긴 앨범이다. 그래미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에 보사노바를 알린 계기가 된 <Getz/Gilberto> 앨범과 쌍둥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음악과 앨범 구성에서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카를루스 리라의 달콤한 목소리로 아름다운 이파네마 해변의 분위기를 느껴보자. 추천 곡 ‘Você e Eu’

지금 뭐라고 했니?

“누구랑 참 비교된다”

제아무리 잘나보았자 속세의 중생일 뿐인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항상 남과 나를 비교한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연인이 나를 누군가와 비교해 비난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이 발언이 나쁜 이유는 이어질 대화가 지극히 뻔하기 때문이다. ‘그럼 걔랑 만나지 왜 나랑 사귀느냐’는 반박에 지지않고 ‘그럴 걸 그랬다’고 확인 사살을 하는 흐름은 ‘너답지 않게 왜 이래’, ‘나다운 게 뭔데’에 이어 더 이상 드라마에서도 나오지 않는 대화로 이어진다. 연애는 둘만의 이야기일 때 가장 평온하다. 다툼도 포함해서 말이다. 그리고 솔직히 누가 부모님에게도 듣기 싫은 말을 연인에게 듣고 싶겠는가.

 

“그게 그렇게 서운해?”

이야기를 실컷 다 들어놓고도 예민보스 취급하는 데는 당할 재간이 없다. 자매품으로 ‘그게 그렇게 잘못이야?’가 있다.

 

“우리 헤어져”

습관성 이별 통보 증후군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연애 스토리의 끝은 사실 헤어지는 것이다. 그런 마지막을 두려워하는 감정은 당연하다. 그런 마음을 이용해 싸움의 주도권을 잡고자 하는 건 지극히 치사한 행동이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상대방이 알겠다며 순순히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 같으면 오히려 역정을 낸다. 애초에 상대가 잡아줄 걸 예상하며 한 발언이라는 증거다. 다툴 때 번번이 헤어지자고 으름장을 놓는 쪽이 당신이라면 깊이 반성해야 한다.

 

“네가 그래서 안 된 거야”

네가 그래서 승진 시험에 떨어진 거야, 네가 그래서 전 여친이랑 헤어진 거야, 네가 그래서 지금도 부모님에게 얹혀사는 거야, 네가 그래서 친구가 없는 거야 등. 싸움의 본론과 별 상관 없는 인신공격인 ‘네가 그래서’ 시리즈는 서로에 대한 쓸데없는 증오만 키운다.

 

“심한 욕”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내 부모에게도 들어본 적 없는 욕을 하는 인간은 상종하지 않는다.

 

“내 친구가 그러더라”

인용은 논문을 쓸 때는 필수다. 하지만 남자친구와 언성을 높일 때는 그다지 추천할 만하지 않다. 특히 한쪽의 잘잘못을 가리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친구 ◯◯도 네가 그러는 거 이상하다고 하더라, 내 동생이 너에 대해 한 말이 맞았다 등. 싸우다 보면 어떻게든 상대의 과오를 강조하고 싶기 마련이지만, 많은 경우 듣는 사람으로선 당신이 뒤에서 제삼자에게 둘 사이의 속사정과 치부를 미주알고주알 논했다는 원망스러운 마음과 수치심이 먼저 들고, 그 때문에 정작 잘못했다는 죄책감은 뒷전이 된다. 소위 사랑싸움도 때로는 전략적일 필요가 있다. 남의 말은 본질을 흐리는 사족일 뿐이다.

 

“그래 네가 이겼다”

계속 이어질 연애에서 오늘만 싸울 것이 아니기에, 어떻게 싸우느냐 만큼 어떻게 싸움을 끝낼지도 중요하다. 내 잘못이 더 크다면 제대로 사과하고 상대가 누그러지기를 바랄 일이고, 그건 아니지만 격앙된 분위기를 감당하기 힘들다면 지금은 계속 얘기해도 해결이 나지 않으니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중에 얘기하고 싶다고 휴전 요청을 하면 된다. 그럼에도 자존심 혹은 욱하는 마음에 비아냥거리듯 네가 이겼다는 식으로 말하며 싸움을 끝내려 한다면 안타깝게도 그건 지는 게 못내 분해 쏟아내는 지질한 복수처럼 들리는 데다 십중팔구 오만 정이 떨어진 상대의 표정을 마주하게 된다.

 

“왜 시비야”

다툼은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출발한다. 왜 짜증이 심한지, 왜 연락이 안 되는지, 왜 말을 그렇게 하는지, 얘기를 하다 보면 반드시 이유가 있고 대부분의 경우 결국 납득하게 된다. 연애는 서로에 대한 의문과 이해의 반복이다. 너와 나는 같지 않기에. ‘왜 시비야’는 그런 상대방을 한순간에 시비 터는 양아치로 만드는 마법의 문장이다. 물론 성미가 정말 고약해 사사건건 싸움을 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면 무슨 부귀영화를 위해 계속 사귀는지? 결국 이 말은 당신을 이해하고 싶어 나선 사람에게 따지지 말라고 윽박지르는 격이다. 이에 문장 중간 ‘또’를 넣으면 부아가 치미는 수준이 배가된다. 왜 또 시비야. 입씨름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쓸데없이 전투력을 상승시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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