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여진 성유빈
김여진 러플 디테일 블랙 드레스 유돈 초이(Eudon Choi), 블랙 드레스 에이치앤엠 스튜디오 컬렉션( H&M Studio Collection), 골드 이어링 알라인(Alainn).
성유빈 화이트 니트 스웨터 에이치앤엠 스튜디오 컬렉션( H&M Studio Collection).
성유빈
화이트 터틀넥 톱 캘빈 클라인 진(Calvin Klein Jeans), 체크 니트 스웨터 에이치앤엠 스튜디오 컬렉션( H&M Studio Collection), 키링 디테일 팬츠는 자라(Zara).

내 아이가 죽으면서 살려낸 아이와의 조우. 영화 <살아남은 아이>는 이 불편한 관계에서 시작한다. 물에 빠진 친구를 구하려다 죽은 ‘은찬’은 의사자로 지정되고 은찬의 부모는 웃지도, 마냥 울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인 채 일상을 꾸역꾸역 이어간다. 어느 날 두 사람 앞에 은찬이 살린 아이 ‘기현’이 나타나고, 서로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던 은찬의 부모와 기현은 은찬의 죽음을 둘러싼 새로운 진실을 알고 혼란에 빠진다. 은찬의 엄마 ‘미숙’ 역의 김여진과 살아남은 아이 ‘기현’ 역을 맡은 성유빈은 거미줄처럼 얽히는 감정을 극도로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고도의 공감과 몰입을 이끌어낸다. 신동석 감독의 첫 장편 <살아남은 아이>는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입증했고, 8월 30일에 대중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김여진
화이트 니트 터틀넥 스웨터와 가죽 스커트 모두 에이치앤엠 스튜디오 컬렉션( H&M Studio Collection), 싱글 드롭 이어링 엠주(mzuu).
김여진 성유빈
김여진 울 드레스 코스(COS), 실버 이어링 엠주(mzuu).
성유빈 와인색 터틀넥 톱과 블랙 진 모두 캘빈 클라인 진(Calvin Klein Jeans), 울 재킷 자라(Zara).

성유빈

요즘 가장 바쁜 10대가 아닐까 싶다. 어떻게 지내고 있나? 다음 영화와 대입 준비가 겹쳐서 좀 정신이 없다. 하하.

<살아남은 아이>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을 수상했다. 완성된 영화를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나? 부산에서 영화를 처음 봤는데 시나리오대로 잘 나왔다고 생각했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을 때 몰입이 무척 잘 됐다. 시나리오를 읽는 행위를 숨 쉬는 행위에 비유한다면 <살아남은 아이>는 마지막 장까지 다 읽었을 때에야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영화에서도 그런 느낌이 잘 살아서 좋았다.

‘윤기현’은 외롭고 마음에 상처가 난 인물이다. 연기하는 동안 가장 많이 한 생각은 무엇인가? 감독님과 기현이란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고 아주 사소한 것까지 고민을 많이 했다. 장면마다 기현이가 은찬의 가족과 어느 정도의 친밀감을 느끼며 행동하는지 가늠해보아야 했다. 왜냐하면 모든 등장인물의 감정이 층층이 쌓여가는 영화이기 때문에 감정의 완급 조절, 강약 조절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느꼈거든.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한 것이 도움이 됐다. 찍는 내내 우울한 느낌이 좀 들긴 했지만 일상에서는 오히려 밝게 지내려 했다. 원래 성격이 그렇기도 하고.(웃음)

내내 우울한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작품에서 연기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듯하다. 특히 표현하기 힘들었던 장면이 있나? 무엇 하나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장면이 없었다. 그래도 하나를 고르자면 사건의 진상을 미숙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할 때. 그 장면에서 여러 버전의 연기를 준비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감정을 터뜨릴 수도 있고 참으면서 할 수도 있을 텐데, 그 일이 실제라면 무척 힘든 일이기 때문에 감히 확신을 갖고 연기하기가 힘들었다. 완급 조절이라는 말을 하긴 했지만 나는 엄청난 실력을 가진 연기자가 아니기 때문에 어려웠다. 사실 정답은 없다. 어떤 연기를 할지 고민하는 것보다 어떻게 표현해야 이 영화의 맥락에 좀 더 잘 맞을지 가늠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은찬의 부모를 대하는 기현의 태도는 단순하지 않다. 기현의 마음을 해석하는 데 가장 도움을 준 건 무엇이었나? 감독님이 도움을 제일 많이 주셨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는 기현이의 배경을 설명해주셨다. ‘기현이에게 과거 이야기가 있다면 이러이러할 것이다, 기현이는 이러한 환경에서 자랐을 것이다’라고. 그런 배경을 알고 나니 기현이 은찬의 부모님에게 빠르게 마음을 열었던 것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은찬의 부모님과 기현은 영화가 끝난 후 어떻게 되었을 것 같나? 각자의 길을 가지 않았을까? 같이 무언가를 해나갈 수는 없을 것 같다. 기현이 먼저 연락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그것도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나 가능한 일 일것이다.

처음 연기를 해야겠다고 다짐한 순간은 언제인가? 처음 작품을 찍은 건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처음에는 마냥 신기하고 촬영할 때 왠지 모르게 재밌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좋아서 했는데, 연기를 어떻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한건 중학교에 들어간 이후다. 계기는 많다. 현장에서 혼난다든지(웃음) 그러면 오기가 생기거든. 그렇게 계속 촬영하면서 영화를 많이 보다 보니 자꾸 ‘나도 저 사람처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연기도 해보고 싶다’든지, 그렇게 슬금슬금 연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재미로, 호기심으로, 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영화 <아이 캔 스피크> <대호> 등 굵직한 작품에서 짧은 시간에 많은 경험을 쌓았다. 매번 느끼는 성장 포인트가 다를 것 같은데 <살아남은 아이>를 찍으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무엇인가? 사실 현장에 있는 것만으로도 배우는 것이 아주 많다. 현장 스태프들에게도 많이 배우고, 선배님들과 연기하는 때는 물론이고 옆에서 그분들의 생각을 엿듣는 것만으로도 내겐 큰 배움이다. 나는 엄청난 행운아다. 미리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앞서 생각해볼 수 있으니까.

앞으로 어떤 연기를 하고 싶나? 다양한 연기. 어떤 연기든 쉬운 건 없다. 평범한 캐릭터라고 해도 사실 그게 더 어려울 수 있다. 어떤 인물이든 잘 소화하며 내 연기로 사람들에게 재미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

김여진
체크 수트 재킷과 스트라이프 셔츠 모두 푸시버튼(pushBUTTON). 실버 이어링 엠주(mzuu).

김여진

<살아남은 아이>의 시나리오를 읽고 가장 먼저 무슨 생각이 들었나? 제목 때문에 시나리오를 펼쳐 보기가 두려웠다. 읽지를 못했다. 더 묵히면 안 될 것 같고, 같은 시기에 다른 영화가 잡혀 있기도 해서 거절할 이유를 찾으려고 읽었는데 마음을 완전히 빼앗겼다. 시나리오를 참 잘 썼다. 세 사람의 감정만 가지고 굉장한 스펙터클을 만들었다. 읽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숙’이라는 인물이 내 마음으로 훅 들어온 느낌이었다. 이 역할을 왜 나한테 줬는지 느껴졌고,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감정적으로 쉽지 않은 촬영이었을 것 같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어떤 장면인가? 대본이 잘 쓰여 있고 상황이 아주 촘촘하게 만들어져 있으면 사실 연기하기가 힘들진 않다. 오히려 감정 과잉이 될까 봐 조절하느라 애를 더 많이 썼다. 많은 장면이 기억에 남지만 최근에 부쩍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미숙이 병원에 있을 때 기현이 죽을 사서 찾아오는 장면. 기현을 미워하는 미숙의 감정이 완전히 꺾이고 기현에게 마음을 확 여는 모습이 표현되는 데, 내 감정도 딱 그랬다. 미숙도, 김여진도 기현이라는 인물에게 마음이 열리면서 아주 잠깐 행복했다. 그 전까지 그 누구와도 슬픈 감정을 공유할 수 없고 감정이 꽉 차서 체할 것 같던 사람이, 혼자 자고 혼자 먹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사람이 기현에게 함께 있어달라고 말하는 게. 시간이 지날수록 그때 참 행복했는데, 하고 생각이 난다. 그래서 후반부가 더 슬프긴 하지만.(웃음)

‘미숙’으로 사는 동안 김여진을, 혹은 미숙을 견디게 해준 건 무엇이었을까? 참 아이러니한데 굉장히 슬픈 연기를 하면서 나는 행복했다. 아주 오랜만에 영화 작업을 해서 그럴 수도 있고, 연륜이 쌓여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현장에서도 감독님과 즐겁게 이야기하다가 슛 들어가면 몰입하고, 왔다 갔다 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이 그나마 그 시간을 견디게 해준 힘이다. 또 다른 하나는 내가 엄마라는 사실. 집으로 돌아가면 그렇게 우울해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웃음) 일단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재하니까 그 전의 모든 것이 정지되고 당장 내 아이에게 집중하게 된다. 그런 부분이 육체적으로는 힘들지만 정신적으로는 크게 도움이 된다. 그 덕분에 사생활과 연기가 잘 분리된 것 같다.

김여진이 영화의 끝을 이어본다면 은찬의 부모와 기현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작품에 한창 빠져 있을 때, 기현이와 처음 만나는 장면을 비롯해 몇몇 신을 촬영하고 마음이 조금씩 열리는 감정을 느끼던 그때 꿈을 꿨다. 나는 결말을 알고 있는데 시나리오를 읽을 때마다 그 결말이 참 안타까웠나 보다. 꿈에서 기현이와 내가 희희낙락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지내는 모습을 봤다. 그만큼 그렇게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기현이도 너무나 외로운 아이고 미숙도 그렇다.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건 두 사람밖에 없다. 하지만 그럴 수 없겠지. 해피 엔딩이면 너무 좋겠다. 관객도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성유빈 배우와 호흡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촬영하는 동안 어떻게 보였나? 유빈 씨는 이미 아주 훌륭한 배우다. 처음 촬영을 할 때 내가 놀라서 “너 연기 되게 잘한다”라고 했다.(웃음) 처음 만나는 장면을 찍을 때였는데 어린 나이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툭 하는 느낌으로 연기하는데 무척 좋았다. 성인 배우들도 그렇게 하지 않거든. 자기 연기를 한다는 느낌이 있다. 유빈 씨는 그런 부분이 없고 그 덕분에 그와 함께하는 장면은 다 아주 쉽게 갔다. 뭘 해야겠다는 생각 없이 저절로.

감정이 진하게 묻어나는 작품을 끝내면 김여진 개인의 삶을 위해 환기가 필요할 것 같다. 새로운 것을 자꾸 배우는 타입이다. 지금도 아이가 다니는 태권도 학원에 같이 다니고 있다. 얼마 전에 노란 띠를 땄다. 아이는 빨리 시작해서 태극 노란 띠. 하하. 비슷한 시기에 성악도 배웠다. 개인 교습을 받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취미로 한다. 그러다 덕질도 하고.

어떤 덕질? 한동안 국카스텐에 엄청 빠져 있다가 최근에 뒤늦게 샤이니에 빠져서 그들의 음악을 열심히 듣고 있다.(웃음) 몸을 꾸준히 움직이는데 사실 뭘 잘하게 되기 전에 자꾸 바꾼다. 배우에게는 자기가 안 해본 걸 해보는 것이 아주 중요한 것 같다. 필라테스를 한다고 해서 필라테스 강사가 될 건 아니니까 필라테스 했다가 태권도 했다가 요가 했다가 춤도 췄다가 계속 왔다 갔다 하는 게 기분 전환이 된다. 그때 싹 발산하고 엄마로, 연기자로 다시 돌아온다. 그렇게 세 축으로 균형을 잡는 것이 내게 굉장히 중요하다.

그게 20년간 성실히 연기해온 비결이 아닌가 싶다. 예전에는 충동적이고 뭔가에 엄청 빠져서 허우적거려야만 멋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몰입할 때 확 몰입하고 바로 빠져나올 수 있는 탄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건강한 삶이다. 이 영화를 어떤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나? 누구나 아무에게도 위로받지 못하는 상실과 슬픔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위로해준다 해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내가 느끼는 것과 다른 사람이 느끼는 것은 또 다르니까. 그런데 아주 우연히 누군가에게 생각지도 못한 위로를 받는 때가 있다. 누군가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툭 뱉은 한마디에 심각하게 고민하던 문제가, 내 마음이 ‘아, 그렇지’ 하고 풀어질 때가 있다. 사람에게 위로라는 것이 뭘까. 사람의 마음은 어떻게 흘러갈까. 정말 말도 안 되는 곳에서 힘을 받을 수 있고, 그 부분 때문에 사랑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남모를 아픔 하나쯤 갖고 있는 모든 분이 미숙의 감정에 공감할 것 같다. 용서할 수 없는데 용서되고, 사랑할 수 없는데 사랑하게 되는 감정에. 참 신기한 것이 내가 했던 작품을 통틀어 한 작품에서 이렇게 많이 운 건 처음이다. 그런데 힘들지 않았고 연기를 하면서 위로받았다. 내가 내 마음을 꽉 잡고 있어서 힘든 것이다. 그것을 놓는 순간 위로가 된다. 미숙이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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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 김여진, 성유빈 Preview

성유빈
화이트 터틀넥 톱 캘빈 클라인 진(Calvin Klein Jeans), 체크 니트 스웨터 에이치앤엠 스튜디오
컬렉션(H&M Studio Collection), 키링 디테일 팬츠는 자라(Zara).
김여진
화이트 니트 터틀넥 스웨터와 가죽 스커트 모두 에이치앤엠 스튜디오 컬렉션(H&M Studio Collection), 싱글 드롭 이어링 엠주(mzu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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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선택

김재경
팬츠 수트 니나 리치(Nina Ricci), 안에 입은 입은 다크 그레이 스윔수트 프론트로우×렉토(Front
Row×Recto), 아이보리 뮬 스튜어트 와이츠먼(Stuart Weitzman), 이어링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재경
블랙 원숄더 톱 준지(Juun.J), 그레이 체크 팬츠 폴앤앨리스(Paul & Alice), 이어링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재경
스웨이드 소재의 베이지 오버사이즈 트렌치코트 골든구스 디럭스 브랜드(Golden Goose Deluxe
Brand), 그레이 체크 원피스 에이치앤엠(H&M), 블랙 레더 롱부츠 코치 1941(Coach 1941), 이어링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연기자로 부쩍 바빠졌어요. 얼마 전 <라이프 온 마스>를 끝냈고, <배드파파>에 합류하게 됐어요. 오디션에 붙어서 작품에 잘 어울리는 인물을 어떻게 만들어갈지 연구하며 촬영을 준비하고 있어요.

캐스팅되기 위해 오디션을 보려면 마음의 준비가 단단히 필요할 것 같아요. 예전에 웹드라마를 함께 했던 감독님이 외국에서는 메릴 스트립 같은 배우도 오디션에 참가해 캐스팅된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극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그 배역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을 찾는 최적의 방법이기 때문이죠. 그 말을 듣고 오디션을 보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어요. 혹여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시작부터 잘못된 거죠.

그동안 오디션에서 실패한 적도 있었겠죠? 많은 실패를 겪었죠. 실패할 때마다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나를 돌아보며 채워가려고 했어요. 레인보우 활동이 끝나고 인생의 새로운 단락이 시작되었는데 그 시작이 <라이프 온 마스>였어요. <라이프 온 마스> 오디션에 붙기 전까지 많은 오디션에서 떨어졌어요. 그때는 내가 가는 길이 과연 맞는가 하는 고민이 있었죠. 그러다 오디션에 붙었고 감독님이 ‘너 잘되겠다’라고 한마디해주시는데 그제야 고민에 대한 답을 얻었어요.

실패를 여러 번 겪으면서도 길의 방향을 바꾸지 않은 이유가 뭘까요? 살면서 늘 많은 생각을 하지 말자고 다짐해요. 떨어지면 내 것이 아닌가 보다 하고 훌훌 털어버리죠.

아이돌의 세계와 배우의 세계는 결이 좀 다르지 않아요? 크게 다르진 않아요. 오디션에 붙어야 하고 배역을 따내야 한다는 면에서 오히려 닮았죠. 다만 레인보우 때는 힘들면 기댈 6명의 어깨가 있었고 지금은 혼자 이겨내야 해요. 아, 오늘 레인보우 멤버들 만날 거예요. 며칠 후면 (조)현영이 생일이거든요.(웃음)

<배드파파>에서 연기할 ‘차지우’와 본인이 닮은 점이 있나요? <배드파파> 오디션을 보는데 대기실에서 ‘아빠 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어요. 그때 감독님이 들어오셨는데, 감독님을 만난 적 없는 터라 다른 배우의 매니저라고 생각했죠. 그렇게 별생각 없이 제 스태프들과 평소처럼 털털한 모습으로 이야기를 나눴어요. 오디션을 보러 들어갔더니 대기실에서 만났던 분이 감독님이더라고요. 감독님은 자신이 생각한 차지우의 모습과 평소의 김재경이 닮은 것 같다고 하셨어요. 차지우는 광역수사대의 에이스예요. 일을 잘해서 젊은 나이에 빨리 승진했고 워커홀릭이죠. 일을 사랑하지만 그만큼 가족도 사랑해요. 일을 사랑하고 본인이 매료된 것에 몰두하는 모습이 20대 초반의 저와 많이 닮았어요. 그때의 저는 앞만 바라보느라 바빴어요. 차지우는 새로운 파트너가 생기면 상대가 얼마나 버틸까 하는 생각에 정을 주지 않고, 타인에게 마음도 늦게 열죠.

20대 초반의 김재경과 지금의 김재경은 많이 다른가 봐요. 전에는 미래 를 바라보며 살았어요. 인생을 살아가는 데 미래를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죠. 현재의 나를 돌보거나 과거를 돌아보기보다 미래에 되고 싶은 모습을 위해 어떻게 달려가야 할지 고민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현재를 보며 살아요. 엉뚱하게 들릴 수 있지만 대자연의 힘을 느끼고 갑작스레 생긴 변화예요. 방송 촬영 때문에 파푸아뉴기니에 갔는데,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수도 시설도 없는 열악한 곳이었죠. 깨끗한 물을 마시고 시원한 바람을 맞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게 느껴졌어요. 그러다 문득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그토록 아등바등 살았나 싶더라고요. 그저 현재에 집중하며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느껴졌어요.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살고 그 하루가 모이면 분명 미래도 멋질 테니까요. 깨달음을 얻은 그 순간이 너무 감사하고 중요한 경험이 되었어요.

긴 머리를 짧게 잘랐어요. 단발머리를 해보는 것이 제 버킷 리스트의 하나이기도 했어요. 오디션을 보고 감독님에게 제가 생각하는 차지우의 모습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하면서 머리도 짧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감독님이 허락하면 자르고 오겠다고요. 오디션 때 온갖 준비를 다 해가는 편이거든요. 차지우에게 어울릴 헤어스타일, 옷, 행동을 이미지로 찾아 폴더별로 정리해두죠. 그런 준비 과정이 즐거워요. 찰흙으로 빚듯이 인물을 점점 만들어가는 느낌이에요.

<배드파파>를 앞두고 걱정되는 부분도 있겠죠? 차지우가 아닌 김재경이 보일까 봐, 그 점이 가장 걱정스러워요. 그래서 차지우로 변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보는데 제가 거슬리면 안 되니까요. 이야기의 큰 흐름을 제가 잘 타고 흘러가길 바라요. 연기자는 자신을 악기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 같아요. 내 몸이 좋은 악기가 아니면 좋은 소리가 나지 않을 테니, 항상 내 몸과 마음의 상태를 들여다봐야 하죠. 그 과정이 재미있더라고요. 그리고 상대 배우들과 어울려 만들어가는 과정도 재미있어요. 그 호흡이 기대되고 거기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죠.

일련의 이야기에서 긍정적인 기운이 느껴져요. 전 화를 잘 내지 않는 편이에요. 화가 잘 나지 않아요. 타인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아요. 저에 대한 상대방의 생각이 그렇다면 인정하죠. 아마도 저를 사랑해서 타인에게 관심을 두기보다 관심이 자신에게 쏠리는 것 같아요. 그리고 생각 없이 살려고 노력해요. 옳은 방향성을 가지고 깊이 생각하다 보면 물론 좋은 해답을 얻을 수 있죠. 그런데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 생각에 몰두하면 끝도 없는 구렁텅이로 빠질 수 있어요. 그래서 제 직관을 믿어요. 옳은 선택이라고 판단하면 주저하지 않고 행동하죠. 그러다 보니 실패했다고 자책하는 시간이 짧아요. 제 잘못이라고 생각하면 빨리 인정하죠. 사실 우리는 고민에 대한 답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잖아요. 다만 인정하기 싫을 뿐. 답을 알고 있으면서 뱅글뱅글 돌면서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최근에 가장 직관적으로 선택한 것이 있다면요? 설탕을 끊었어요.(웃음) 건강을 위해. 한 달 정도 됐는데 지금까지 왜 망설였나 싶어요. 몸을 움직이는 것도 재밌고 운동을 좋아해서 다이빙도 즐기고 필라테스도 좋아해요. 돌이켜보면 어릴 때부터 새로운 것을 해보는 데 주저하지 않았어요. 해보고 후회하고, 깨닫는 타입이죠.

쉬지 않고 계속 뭔가를 하나 봐요. 언젠가 SNS에서 직접 만든 소파를 본 적 있어요. 오래전부터 가구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집이 좁아 둘 자리가 딱히 없어 못 만들었는데 이사하면서 거실 공간이 생겨 만들었죠. 일에서만 성취감을 느끼기는 쉽지 않아요. 죽을 만큼 열심히 했는데 그만큼의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 때도 많고요. 성취감이 없으면 인생이 피폐할 것 같다는 생각에 다양한 취미를 가지게 됐어요. 가끔 후배들이 저한테 힘들다고 고민을 털어 놓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같이 운동을 하자고 하던가 공방에 함께 가자고 해요. 그런 데서 성취감을 느끼면 자존감이 회복되거든요.

자신을 채우기 위해 활동하지 않는 시간을 바쁘게 보내는 건 아닐까요? 전에는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뭔가를 배웠어요. 그런데 이제는 재미가 우선이에요. 요즘 승마를 배우고 있는데 해보고 싶은 단순한 마음이 먼저였어요. 해보고 나니 근육도 발달하고 언젠가 말을 타는 연기를 하게 된다면 도움이 될 테고 마인드 컨트롤에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건 아니에요. 인생의 우선순위가 바뀌었죠.

올해는 많은 활동으로 채워진 한 해가 되겠어요. 뷰티 예능 프로그램의 MC도 맡았으니. 감사한 일이 많은 한 해 그리고 마음까지 신나게 보낸 한 해가 될 거예요. 배우 입장에서는 오디션에 붙은 거지만 감독 입장에서는 자신이 그린 세계 안에 완벽하게 일치하는 누군가를 만들기 위해 고심 끝에 결정한 거잖아요. 그 결정에 저를 염두에 두고 믿어주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죠.

이번 드라마는 어떤 사람들을 위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드라마의 중심에 가족이 있어요. 나 하나 챙기기도 힘든 시대를 사는 우리가 가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드라마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본인에게 가족은 어떤 존재예요? 친구. 심심하거나 배고플 때 가장 먼저 엄마에게 전화해서 식사했는지 묻고, 보고 싶은 공연이 있으면 동생에게 보러 가자고 하거든요.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친구 같은 존재예요.

김재경
실키한 피치 컬러 롱 드레스 자라(Zara), 그레이 앵클부츠 쥬세페 자노티 (Giuseppe Zanotti), 이어링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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