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세운 랜드마크

 

애플이 ‘꿈의 시총’ 1조 달러를 돌파했다.
기업이 보유한 주식의 개수와 주식가격을 곱해 산정하는 시가총액은 한 마디로 회사의 규모를 평가하는 지표다.
즉, 애플을 매수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돈이 필요하다는 뜻.
미국 상장회사로는 최초로 있는 일이다. 실로 대단한 업적이다.
스티브 잡스가 차고에서 만든 매킨토시로 시작된 회사가
세계 스마트폰 점유율 2위 (2018년 1분기 기준) 기업으로 성장한 데는 어떤 원동력이 있었던 걸까?
전 세계의 대도시에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애플스토어가 한 몫 하지 않았을까?

 

 

 

뉴욕 – 5번가 애플스토어(Apple Store Fifth Avenue)

뉴욕애플스토어 애플스토어

뉴욕 센트럴파크의 남동쪽에 위치한 매장.
‘큐브’라는 애칭에서 알 수 있겠지만 유리로 만든 정사각형 모양의 매장이다.
신제품 출시날은 물론 평소에도 사람들로 가득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매장 안이 새까말 정도.
전 세계 500여 개 매장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이 매장은 현재 보수공사 중.
올해 연말 즈음 재오픈할 예정이다.

 

 

 

밀라노 – 피아자 리버티 애플스토어(Apple Store Piazza Liberty)

밀라노애플스토어 애플스토어

지난 7월 26일 오픈한 ‘신상’ 애플스토어는 밀라노 번화가인
꼬르소 비토리아 엠마누엘(Corso Vittoria Emanuele) 근처 광장에 자리했다.
지상 플라자와 지하 매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플라자는 24시간 시민들을 위해 열려 있다.
매장에서는 사진, 영상, 음악 관련 강의를 비롯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
단순 제품을 판매하는 매장이 아닌, 지역 ‘커뮤니티’로 자리 잡겠다는 노력이 여실히 보이는 매장이다.
유리분수를 중앙에 세운 플라자에서는 예술의 도시, 밀라노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전시를 비롯해 다양한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상하이 – 푸둥 애플스토어(Apple Store Pudong)

상하이애플스토어 애플스토어

상하이 푸둥 지구에 있는 애플스토어는 ‘거대한 실린더’ 같다.
곡선형의 유리판 12개를 이어 붙이고 윗부분을 부채꼴 모양의 작은 유리판으로 덮어 완성한 형태.
실린더의 안으로 들어와 나선형 유리 계단을 내려오면 지하 매장에 들어설 수 있다.

 

 

 

시카고 – 미시간 애플스토어(Apple Store Michigan Avenue)

미시간 애플스토어는 매장과 도시의 경계를 최소화한 것이 특징이다.
건물 내부에 있는 4개의 기둥과 천장 외에는 전면 유리를 사용한 것.
건축의 도시라 불리는 시카고의 풍경, 매장 앞으로 흐르는 시카고 강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명소다.
탄소섬유 소재로 얇게 제작한 지붕은 맥북을 모티브로 디자인했다고.

 

 

 

 파리 – 카루셀 드 루브르 애플스토어(Apple Store Carrousel du Louvre)

파리의 카루셀 드 루브르 애플스토어는 루브르 박물관의 지하에 자리 잡았다.
건물의 기본 구조는 유지하되, 유리 파사드와 나선형 유리 계단 등을 활용해 애플스토어의 정체성을 살렸다.
매장 근처에 설치된 역피라미드 조형물 또한 애플스토어의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

 

 

 

서울 – 가로수길 애플스토어(Apple Store Garosug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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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에 약 7.6m 높이의 유리 파사드를 내세운 가로수길 애플 스토어.
빡빡하게 들어선 가로수길의 각종 건물들 사이에서 확연히 돋보이는 디자인이다.
유리 안쪽으로는 가로수와 비슷한 나무를 배치해 거리의 풍경과 조화를 꾀했다.
의자도 꽤 많아 지나가는 행인들이 쉬어 가기 좋은 곳.
단순 ‘판매’를 위한 스토어가 아닌 지역 사회를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애플스토어의 목표가 오롯이 드러나는 매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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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 프로젝트의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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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셰어 대표 최재원

최재원은 대기업 제품의 광고 전략을 짜 수주하면 론칭하는, 정신없이 바쁜 ‘광고쟁이’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늘 꿈꾸던 음악 엔터테인먼트 업계로 분야를 바꿔 음반을 매니징하는 ANR 업무를 맡았지만 자연스레 이전의 커리어를 살려 프로모션과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짜는 일을 도맡았다. 적지 않은 스트레스 속에서 업무를 수행해가며 부업으로 에어비앤비를 시작했고 이 작은 결심으로 커리어의 두 번째 장이 열렸다.

하고 싶던 음악 분야에서 자신의 강점을 찾아 일을 했다. 퇴사를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가? 광고 회사에서 음악 회사로 옮기면서 연봉이 좀 줄었다. 업계의 규모가 다르니 감내하고 왔는데 집안일로 그간 모은 돈을 전부 쏟아부어야 하는 일이 생겨서 금전적으로 휘청거리게 됐다. 돈을 더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에어비앤비 룸 셰어를 시작했다. 그때 살던 작은 투룸의 방 하나로 에어비앤비를 시작했는데 이상하게 잘됐다. 싸게 내놓기도 했지만 음악 분야에서 일하고 홍대에 살고 있는 30대 초반의 남자라고 소개해놓으니 독립된 방을 선호하는 유럽의 백패커들이 많이 왔다.

호스트와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따로 만든 건 아닌가? 인생이 고달픈 시기였다. 회사에서 잘해내고 싶지만 이 분야에서 커온 사람이 아니라 모르는 게 많아 자존감이 하락한 시기였다. 그런데 집에 가면 누가 있으니까 하소연을 하게 되더라. 완전한 이방인이기도 하고. 여행자들은 대부분 기분이 좋은 상태이지 않나. 캔맥주 나눠 마시며 그렇게 한두 시간 이야기하다 맘이 맞으면 집 근처에 내가 자주 ‘혼술’ 하던 곳으로 데려가 2차를 했다. 그런 생활이 참 특별하게 여겨졌다. 회사에서는 ‘지질이’인데 퇴근하면 나도 백패커가 된 것 같았다. 그들에게 우리 동네를 소개해주면서 나도 이곳을 여행하는 기분이 들더라. 그렇게 이중생활을 하다가 문득 이 시기를 기록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선물하는 기분으로. 1년 3백65일 쉬지 않고 일을 했으니까. 그렇게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이 나왔나? 책도 나왔고 에어비앤비에서 한국 대표 인기 호스트로 뽑혀 프랑스에도 다녀왔다. 회사 바깥에서 일이 잘되니까 회사 일에 집중이 안 되더라. 그래서 퇴사했다.

에어비앤비만 하기 위해서? 당시에 숙박업을 하는 소위 ‘큰손’들이 감언이설로 꾀는 일이 많았다. 투자할 테니 더 굴려보자고. 금전적으로는 잘됐는데 일하는 방식이 맞지 않아서 결국 정리당했다. 화병이 나서 3개월 정도 집에 틀어박혀 지냈는데 그때 스페인의 말라가라는 해안 도시에서 온 게스트가 있었다. 내 집에서 하는 에어비앤비는 유지하고 있었다.

그건 안정적인 수입원으로 자리 잡은 상태였나? 그런 건 아니었는데 그 재미까지 잃고 싶진 않아서 생기 있는 외국인 관광객을 계속 만나려 했다. 스페인 남부 휴양지 말라가에서 온 그 친구는 무척 즐거워 보였다. 서울에 오는 게 자기 버킷리스트의 일부라서 6개월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서 왔는데 서울이 아주 예쁘다고 했다. 그때 나도 버킷리스트를 준비하고 실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6년 가까이 쉬지도 않고 달려왔으니까. 그중 하나가 전처럼 누군가와 소탈하게 소통하고 싶다는 거였다. 이번에는 외국인 말고 한국 사람과 친해지면 어떨까 싶었다. 우리 집에 세 번이나 머문 독일 친구 루카스가 내게 알려준 것이 있다. 그는 가정의학과 의사인데 내가 게스트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며 치유받는 기분을 느낀 것이 낯선 사람과 대화하며 정신을 치유하는 유럽의 복지 프로그램과 같은 방식이라고 하더라. 나는 그걸 ‘라이프 셰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런 대화가 무척 그리웠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지금의 한국 사람들이 낯선 이에게 고민을 털어놓던가? 처음에는 페이스북에 5명 정도 모아서 해보고 싶다고 글을 올렸다. ‘그동안 외국인들과 해왔는데 너무 재미있었지만 지금은 그 재미를 잃었다. 서로 나이도 사는 곳도 묻지 않고 1박 2일 동안 우리 집에 머무르면서 이야기하자.’ 작은 기획인데 공유가 많이 됐다. 그런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았나 보다.

다들 만족도가 높았나? 물론이다. 새벽 3시에 올렸는 데 5분 안에 신청한 사람이 하나같이 여행 작가, 패션 브랜드 대표, 매거진 대표 등 유명인이었다. 걱정이 많아서 새벽 3시에 잠 못 드는 사람들.(웃음) 자주 할 순 없지만 못 불렀던 사람들을 위해 한 달에 한 번은 지속적으로 라이프 셰어를 이어나갔다. 그러다 보니 빠르게 성장했고 기업에서도 문의가 왔다. 작은 프로젝트였지, 사업을 목적으로 한 건 아니기 때문에 고민했다. 사실 1박 2일간 내 집에서 사람들을 관리하는 게 체력적으로나 금전적으로 꽤 지치는 일이어서 고민하던 차였다. 무엇보다 문의해온 곳이 포스코였다. 진행하기로 결심하고 이번에는 한옥을 빌려 좋은 시간을 보냈다. 이후 주변의 다른 회사들에서도 요청이 와서 기업 일이 많이 늘게 됐다.

그때부터 ‘라이프 셰어’를 사업 모델로 구축하기 시작한 건가? 교육 사업자와 동시에 ‘라이프 셰어’라는 이름으로 저작권과 상표권을 등록하면서 비즈니스로 구체화했다. 교보재도 개발했다. 많은 사람과 정량적으로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대화 카드인데, 그동안 다녀간 수백 명과의 대화 가운데 좋은 대화를 이끌어낸 질문이나 문장을 추리고 다시 시뮬레이션을 해서 만들었고 대화를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는 UI(User Interface)도 개발해서 시스템화하는 과정이다. 교보재만 있으면 누구나 호스트가 없어도 안정적으로 라이프 셰어를 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작가로서 방송과 강연 활동도 하고 있다. 프리랜서로서 자신의 몸값을 책정하는 노하우가 있나? 그런 노하우가 없어서 협상 관련 책을 많이 본다. 최근 <협상 바이블> 이라는 책을 보고 저자인 류재언 변호사와 함께 나 같은 1인 기업가를 대상으로 하는 6월 라이프 셰어 캠프를 진행했다. 모든 일이 자신의 경험에서 발현되고 그것을 일에 투영하는 것의 반복이다. 나의 니즈에서 출발한다. 그게 내가 그나마 제일 잘하는 일이다. 모든 사람을 상대할 필요는 없지 않나. 항상 행사를 진행할 만큼의 사람이 있더라.

직장 생활이 5~6년 차쯤 되면 회사 밖 삶을 꿈꾼다. 삶에 변화가 필요한데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 나는 스스로 부업 인생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모든 게 사이드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사이드 프로젝트가 직업이 되는 과정을 여러 차례 경험하면서 원리를 발견했다. 사이드 프로젝트에서는 쿨할 수 있다. 직업에 필요한 능력이 부족하면 스트레스를 받지만 사이드 프로젝트는 좀 못해도 괜찮다. 거기서 캐릭터가 잡힌다. 요즘은 얕고 넓은 시대이기 때문에 그 캐릭터를 2년 정도만 쌓아도 사람들이 주목한다. SNS 시대라 널리 알려지는 것도 금방이다. 사이드 프로젝트가 잘 안 됐다 해도 손해볼 건 없다. 직장에서 이미 매력적인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질적인 면이 있어야 직장에서도 나를 다른 시각으로 본다. 나도 에어비앤비를 하면서 오히려 회사에서 잘 풀렸다. 외국인과 새로운 플랫폼으로 뭔가를 즐기는 ‘덕후’로 보였던 거다. 하나의 세계가 생기니까 해외 아티스트를 관리해야 할 때는 무조건 내게 일이 오기 시작했다. 많은 직장인이 ‘뭐, 그렇게까지 하나’ 생각할 수도 있는데 요즘은 캐릭터가 생기면 더 매력적인 커리어를 만들 수 있다. 요리하는 의사처럼. 사이드 프로젝트의 마법을 믿는다.

당신의 냄새

냄세 연애 러브

 

흡연자는 흡연자끼리

그러고 보니 그랬다. 이 나이까지 몇 번의 연애를 했는데 흡연자는 S가 처음이었다. 연애 초에 S는 내게 자주 물었다. 자기가 담배 피우는 것이 괜찮으냐고. 나는 “담배는 기호식품인데 왜 나한테 허락을 구해. 나 그런 사람 아니야”라고 쿨한 척 말했다. 싫다고 할걸. 언제나 그렇듯 처음엔 지금과 같지 않았다. 나를 만나기 전 S는 양치질 후에 리스테린으로 가글까지 하고 나왔고 손도 깨끗이 씻어 어디에서도 담배 냄새가 나지 않았다. 입을 맞출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사귀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흡연하는 애인을 둔 내 친구들이 하던 말이 백번 수긍됐다. ‘담배 피우고 나서 카페라테를 마시면 입에서 똥 냄새가 난다’던 그 말. 카페라테를 마셨을 때만 그런 것도 아니다.

퇴근 후 같이 저녁을 먹으려고 만났을 때 공복 상태인 S의 입에서는 난생처음 맡아보는 썩은 냄새가 났다. 나는 진지하게 그게 폐가 썩어서 나는 냄새가 아닐까 생각한다. 담배 냄새는 생각보다 견디기에 힘겨웠고, 가뜩이나 냄새에 예민한 나는 점점 S에게 잔소리를 하는 여자친구가 되어갔다. 그때까지 누구에게도 그런 여자친구였던 적 없었는데. 내가 하도 싫어하니까 S는 얼마 전 담배를 아이코스로 바꿨다. 담배 고유의 냄새는 나지 않지만 이번에는 아이코스 특유의 찌는 냄새가 견딜 수 없이 역겨웠다. 흡연자는 보통의 비흡연자보다 입 냄새가 몇 배는 심하다는 사실을 난 S와 연애하며 알았다. S가 전보다 사랑이 식어서 비흡연자인 나를 배려하지 않는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S는 그냥 그런 사람인 것이다. 담배 냄새가 못 견디게 싫으면 헤어지는 것밖에 답이 없다. 만난 지 1년을 못 채우고 나는 S와 헤어졌다. 담배 냄새가 원인은 아니었지만 헤어지기로 결심하는 데 이 냄새 문제가 한몫했다는 건 분명히 밝힐 수 있다. 그렇게 다음 연애 상대의 조건이 또 하나 추가됐다. 비흡연자일 것. E(33 세, 치위생사)

 

 

날카로운 두통의 기억

때는 유난히 추웠던 어느 해 겨울, P의 집 수도는 한파를 버티지 못하고 동파됐다. 당시 나는 학교 앞에서 친구와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당장 샤워도 못 하게 된 P의 사정이 딱해 친구 몰래 우리 집에 하루만 묵을 수 있게 했다. 당시 주말이면 경기도에 있는 남친에게 내려가는 친구의 스케줄 덕분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눈앞에 P가 있고, 둘이 함께 음식도 해 먹으니 꼭 신혼부부가 된 것 같아 두근거렸다. 늦은 아침을 먹고 <출발 비디오 여행>을 보는데 설거지를 마친 P가 내 옆에 꼭 붙으며 “저 영화 재밌대. 개봉하면 보러 가자!”라고 말했다. 순간 토할 뻔했다. ‘가자’라고 말할 때 P의 입에서 나는 지독한 냄새가 훅 끼친 것이다. P는 늘 향수를 뿌리고 깔끔한 모습을 보여온 터라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하지만 자고 일어나면 누구라도 입 냄새가 난다. 그 사실을 주지하고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넘어갔다. 대신 “아, 양치해야겠다”라고 크게 말한 후 화장실로 들어갔다. 일부러 칫솔을 들고 거실을 돌아다니며 양치질을 하고 다시 P 옆에 앉았다. P는 잘했다는 듯 내 엉덩이를 툭툭 쳤지만 양치질을 하러 가지는 않았다.

그날 우리는 처음으로 함께 떠나는 여행을 계획했는데 나란히 엎드려 다이어리를 펴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P에게서 나는 지독한 입 냄새 때문에 점점 두통까지 느껴졌다. 어떻게 해야 P가 민망하지 않게 이를 닦게 할 수 있을까. 우리 서로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자고 에둘러 말해볼까, 껌이라도 씹게 할까 별 생각을 다 했다. 바로 그때, 삑삑삑삑 누군가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에 우리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 집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은 나와 친구뿐이고, 예정대로라면 친구는 밤에 돌아와야 했다. 현관문이 열리고 친구가 놀란 얼굴로 들어섰다. P는 벌떡 일어나 어색하게 친구에게 인사를 했다. 나 역시 민망하긴 마찬가지였지만 친구의 갑작스러운 귀환이 그렇게 반갑기는 처음이었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얼른 나가라고 P의 등을 떠밀었다. P가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종일 나를 짓누르던 두통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그날 일이 트라우마로 남았는지 P와 헤어지고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도 나는 강박적으로 양치질을 한다. 혹여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기억으로 남을까 봐. K(32세, 약사)

 

 

너 방금…

A는 나보다 일곱 살이 많다. 둘 다 음악을 좋아해 유난히 잘 통하는 우리에게 여름은 페스티벌이 있어 즐거운 나날이다. 지금처럼 무더운 여름이었고, 아마도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을 다녀오던 날 새벽이었을 것이다. 찬 술을 많이 마신 탓인지 아니면 음식을 잘못 먹었는지 차에 타는 순간부터 배에서 꾸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화장실에 갈 정도는 아니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채 가시지 않은 흥을 즐기며 음악을 크게 틀고 드라이브를 했다. 그런데 강변북로를 지날 무렵부터 속이 더 불편해졌다. 장이 꼬이는 느낌이었다. 시원하게 방귀를 뀌면 나아질 것 같았지만, 당시 만난 지 2년쯤 된 A와 나는 둘 다 트림이나 방귀를 트는 스타일이 아니다. 몇 킬로미터만 가면 우리 집, 조금만 더 참으면 되는 시점이었다.

그때 갑자기 A가 내가 한창 좋아하던 MGMT의 음악을 틀었다. 취기가 남아 있던 나는 그 와중에 또 신은 나서 팔을 올리고 춤을 췄다. 그리고 실패했다. 괄약근 조절에. 가슴이 철렁했지만 다행히 음향 조절은 사수했다. 하지만 몇 초 후 차 안에 스멀스멀 구린내가 퍼지기 시작했다. 놀란 와중에도 그는 냄새를 못 맡았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던 중 A가 말했다. “너 지금 방귀 뀌었어?” 차 안에 우리 둘뿐이니 아니라고 발뺌할 수도 없었다. 나는 대답 대신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고 A는 장난으로 “으악!” 비명을 지르며 창문을 내렸다. 미치도록 창피하고 민망한데 또 너무 웃겨서 둘이 한참을 웃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생각보다 별거 아니잖아? 4년이 지난 지금도 변한 건 없지만 그날 일은 우리 둘에게 유쾌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N(29 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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