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소설가 – 정세랑, 박민정

박민정 정세랑 소설가
정세랑 민트색 원피스 렉토(Recto), 구두 레이첼 콕스(Rachel Cox).
박민정 화이트 블라우스 자라(Zara), 스커트 앤 클라인(Anne Klein), 구두 레이첼 콕스(Rachel Cox) .

 

‘테이크아웃’ 기획의 어떤 점에 끌렸나? 정세랑(이하 정) 인접 영역에 누가 있는지 궁금했다. 일러스트레이터를 만날 기회가 없다 보니 어떤 일러스트레이터가 있는지도 알고 싶었다. 박민정(이하 박) 소설가에게는 한 권의 단행본이 나오는 기회가 소중하다. 하나의 단편이 한 권의 단행본으로 나온다는 것 자체로도 감흥이 컸다. 더불어 유지연 작가가 함께한다는 소식에 작가의 SNS를 찾아봤다. 색채가 굉장히 화려하고 펑키한 작품이 많더라. 내 글에 그런 그림이 더해지면 좀 더 기이한 느낌이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완성된 작품을 보니 흑백의 수채화였다. 의외이기도 했고, 소설의 인물에 초점을 맞춰 작업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 단편소설을 단행본으로 선택한 건가? 나는 새로 썼다. 이 이야기를 쓰고 싶었지만 나의 다른 단편과 묶이기에는 결이 맞지 않았다. 단독으로 쓰고 싶었는데 마침 기회가 왔다. <뷰티-풀>에는 마리화나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약을 하는 사람들을 구체적으로 넓게 쓰긴 어려웠고, 소설에 나오는 ‘네가 보는 세계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나도 보고 싶다’라는 문장처럼 약을 하는 사람이 등장하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뷰티풀’이란 어떤 영화에서 마리화나를 지칭하는 말로 쓰이기도 했고 ‘뷰티풀’을 제목으로 한 소설을 마침 쓰고 싶기도 했다. 한번도 무제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적이 없다. 늘 제목을 먼저 정한다. <뷰티-풀>은 기억의 미화에 대한 소설이 아닌가. 나는 매우 중의적인 제목이라 생각했다. 여러 결로 읽히는 좋은 소설이다. 박 맞다. 나는 그걸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강간이었나, 아니었나. 이런 기억. 이것 역시 <뷰티-풀>의 중요한 주제였다. 정 나는 발표했던 작품 중에 골랐다. 마지막까지 두 편을 고민했는데 그 중 한 편이 <섬의 애슐리>였고 마침 내 작품을 모두 읽은 친구도 <섬의 애슐리>를 권했다. 일러스트레이터와 함께 하는 작업이다 보니 비주얼로서 사람들에게 뭔가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를 선택했다.

단편소설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정 단편소설은 소설의 형식적인 아름다움이 매우 압축적인 형태로 드러날 수 있는 것 같다. 그것만의 매력 또한 있다. 형식은 압축돼 있지만 이야기를 발산한다. 장편소설이 어떤 경계 너머로 이야기를 보낸다면 단편소설은 발산한다. 하나의 세계를 보여줘야 하는데 보여줄 여백이 많은 장편에 비해 단편에서는 세계를 힐끔 보여줘야 한다. 그 점이 힘든 것 같다. 장편보다 단편을 많이 썼고 공부해왔는데 장편과 단편은 호흡과 리듬이 매우 다르다. 내가 가진 호흡이 과연 맞는지, 내가 하려는 이야기가 단편에 잘 흡수되어가고 있는지 역시 계속 고민하게 된다.

글보다 이미지가 주는 영향력이 점점 커지는 시대에 글은 계속 존재할 수 있을까? 박 글은 원래 힘이 없었다. 그러므로 가졌던 힘을 빼앗기지 않았다. 다만 이 시대에 기술의 발달로 좀 더 확산되고 큰 힘을 가진 매체가 등장한 것뿐. 텍스트가 가진 힘이 있긴 하지만 사람을 죽일 만큼 압도적이진 않다. 글은 늘 가지고 있던 만큼의 힘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도 놀라운 건 글을 쓰고 싶고, 글로 사랑받고 싶어 하는 청소년들이 꽤 있다는 거다. 얼마 전 청소년문학상 심사를 위해 천안에 다녀왔는데 예심을 위해 보낸 작품이 8백여 편에 달했다. 영상과 인터넷에 익숙한 21세기에 태어난 친구들이 글을 쓰고 싶어 하다니. 글과 책의 힘은 미약하나마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영상은 제작사나 방송사처럼 누군가 나서서 선택해서 만든다. 유튜브는 좀 다른 얘기이긴 하지만.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자본이나 힘이 필요 없다. 소설이라는 영역이 지닌 자유로움이 있다. 텍스트는 여전히 의미 있다.

무엇을 위해 글을 쓰는가? 정 날마다 달라지는데 어떨 때는 나만의 즐거움을 위해 쓰고, 또 다른 때는 동시대 사람들을 생각하며 쓴다. 작품마다 달라진다. 나의 즐거움을 위해 쓸 때 다른 사람도 더불어 좋으면 좋지만 아니면 할 수 없고. 때론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으로 쓰고. 나를 위해 쓴다. 그게 결국 모두를 위해 쓰는 것과 같다. 무엇보다 글을 쓰는 건 즐거운 일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글쓰기 캠프에서 학생들에게 소설 쓰는 것을 한번 시작하면 다른 건 못할 거라고 말했다. 그만큼 너무 재미있으니까.

한 편의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뭘까? 정 그 작품만의 공기가 가장 중요하다. 텍스트를 둘러싼 공기와 분위기. 텍스트가 오로지 텍스트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날씨와 냄새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눈으로 읽는 글이지만 소설 안에서 다른 감각이 느껴지는 거다. 각각의 소설이 지닌 공간성. 그 소설에 등장하는 공간이 중요하다. 그곳을 끊임없이 상상하고 실존하지 않는 공간을 있다고 말하는 것. 탄탄한 토대 위에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간이 가장 중요하다.

소설을 완성하기까지 가장 힘든 지점은 언제인가? 박 첫 문장이 나오고 다음 단락으로 넘어갈 때. 앞에는 일단 자유롭게 던지니까. 두 번째 단락으로 넘어갈 때 앞에 풀어놓았던 것을 다시 잘 쌓아야 하는데 쉽지 않다. 마지막 10매. 마지막에 한 번 때리고 끝내야 하는데 어렵다. 마지막이 오기 전까지 이야기를 잘 쌓아왔으면 괜찮은데 그렇지 않으면 매듭을 짓기가 힘들다.

완성된 소설을 가장 먼저 누구에게 보여주나? 박 문예창작과를 나온 터라 여전히 친구들에게 먼저 보여준다. 오늘 함께한 화길 씨에게 보여주기도 하고. 작가든 아니든 많이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르치는 고등학생에게도 보여줄 때가 있는데 학생들도 열심히 피드백을 준다. 오히려 타인이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을 잘 봐준다. 편집자. 편집자에게 보여줄 때 그렇게 떨리진 않는다. 비즈니스니까. 내가 속한 커뮤니티는 글을 쓰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더 그런 것 같다. 주변에 읽어줄 사람이 많은 점이 부러울 때도 있다.

언젠가 소설로 남기고 싶은 순간이 있었나? 정 보통은 과거에 경험한 이미지가 6, 7년이 지난 후 떠오른다. 얼마 전에 라디오 녹음을 위해 밤 11시에 방송사에 갔는데 사람으로 북적이던 로비에 아무도 없더라. 지금은 전혀 짐작할 수 있지만 6, 7년이 지난 후 한밤의 방송사 로비를 배경으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경험하는 특정 장면을 의식해본 적은 없다. 디테일한 기억력이 좋은 편이어서 뭔가를 쓰려고 할 때 과거의 기억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어느 장면보다는 인물에 대한 정보나 공간의 특징, 이런 것들을 기억하려고 한다.

소설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뭘까? 정 원고료 그리고 정신의 건강. 육체의 건강도 물론이다. 그리고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떤 때는 굉장히 비관적이고 어떤 때는 굉장히 낙관적인데,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물론 쉽지 않지만. 또 한 가지에 꽂히면 그 안으로 확 미끄러질 수 있는 집중력. 집중력과 이상하리만큼의 집요함을 가지고 추적하는 것. 중·고등학교 때에는 그런 성격이 학교 성적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의 단점이었는데 이제는 소설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탐정이 되었을 텐데.(웃음)

추석 해피 트립 – ② 파주

이번 추석 서울에 머무를 예정이라면 근교로 여행을 떠나보자.
차로 한 시간만 투자하면 닿을 수 있는 곳, 두 번째는 파주다.

EAT

아다마스 253

@cafe_adamas253

‘아다마스 253’은 헤이리 예술마을에 있는 이탈리안 다이닝 카페다.
회색 큐브를 쌓아 올린 듯한 외관으로 경기도 건축문화상을 받기도 했던 곳.
6년 넘게 꾸준히 사랑을 받는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지만, 끊임없이 신메뉴를 선보여서 아닐까?
최근에는 고기를 익히지 않은 채 숙성시킨 후 얇게 썰어 내는 요리인 카르파치오를 1+등급 한우와 오리엔탈 소스를 활용해 재해석한 메뉴가 인기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촬영 장소로도 잘 알려져 있다.
주소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47
문의 031-949-1296

DRINK

봉쥬르 다방

@bonjour_dabang

“구석진 곳까지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봉쥬르 다방은 파주 외곽의 한 상가 1층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밖에서 보면 하얗게 칠한 벽과 나무로 만든 문만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빈티지 소품이 가득하다.
바삭하게 구운 식빵에 팥 앙금을 바르고 버터를 통으로 잘라 올린 ‘앙버터 토스트’가 대표 메뉴.
‘봉쥬르’라는 카페의 이름처럼, 이곳은 매일 아침 9시부터 일찍이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니 파주 일정을 여기서 시작해도 좋겠다.
주소 경기도 파주시 순못길 21-9
문의 010-9809-5517

트헤즈에

@treize.et

서울에서 이미 유명한 카페, ‘이로공작’과 ‘가배도’의 주인장이 파주에 오픈한 카페.
짙은 색의 원목으로 꾸민 내부는 대체로 어둡지만 천장에서 달처럼 빛나는 조명 그리고 블라인드 사이로 강렬하게 비치는 햇빛 덕에 따뜻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가게 한 켠에는 나무와 돌, 유리 등 다양한 빈티지 오브제를 직접 수집해 전시 중이다.
개성 강한 컵에 담겨 나오는 음료도 매력적이라 인스타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곳이다.
주소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문향로 52-1
문의 031-952-4196

소키싸롱

@soki_salon

건축가 ‘소소’와 디자이너 ‘키치치’가 함께 ‘소키싸롱’을 오픈했다.
언뜻 보면 평범한 카페 같지만, 간판부터 내부의 조명과 테이블, 트레이까지 손수 제작하며 꾸민 공간이다.
가죽공예와 자수, 마크라메, 소이 캔들 등 취미로 삼기 좋은 분야의 클래스도 꾸준히 진행한다.
다양한 장르의 책도 꽂혀있고 음료 또한 커피와 차부터 맥주까지 알차게 갖췄으니 취향에 따라 문화생활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기 좋다.
주소 경기도 파주시 가재울로 100-9
문의 031-947-7579

STAY

메종 드 유유

@maisondeuu

‘여유가 있어 한가롭고 걱정이 없는 모양’을 뜻하는 사자성어 ‘유유자적’을 본떠 이름 지은 펜션 ‘메종 드 유유’.
심학산 중턱에 위치해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서해로 흐르는 장엄하면서도 고요한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2층에는 사계절 온수가 공급되는 수영장이 있는데, 투명한 창으로 1층을 내려다볼 수 있는 독특한 구조로 설계됐다.
주소 경기도 파주시 돌곶이길 173-41
문의 010-6837-3663

스튜디오 161 펜션

@studio161pension

‘스튜디오 161 펜션’은 조각가 부부가 운영하는 펜션이다.
1-2층과 3-4층 두 채로 나뉘어 있는데, 모두 임진강이 보이는 뷰다(물론 1-2층은 낮아서 덜 보이기는 하지만).
월넛과 오크 소재의 가구와 아늑한 분위기가 특징.
10인 이상 거뜬하게 머무를 수 있어 친구, 연인은 물론 대가족도 환영이다.
별채와 테라스에 모여 가을 바비큐를 즐기는 것도 물론 가능.
주소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새오리로161번길 13-29
문의 010-6659-0161

지지향 게스트하우스

www.jijihyang.com

‘종이의 고향’이라는 뜻을 가진 게스트하우스 ‘지지향’에서는 책의 향기가 느껴진다.
파주의 독서 공간인 ‘지혜의 숲’과 인접해 있어 독서를 하며 밤을 지새우기 좋고, ‘작가의 방’이라는 문화 공간에서는 국내 작가의 전집과 소장품을 둘러볼 수 있다.
객실 내부에 TV는 찾아볼 수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책으로 귀결되는 곳답게 TV 대신 책장이 있다.
이왕이면 핸드폰까지 멀리하고 사색을 즐겨보자.
주소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145
문의 031-955-0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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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소설가 – 전석순, 김학찬

소설가 전석순 김학찬
전석순 화이트 니트 스웨터 제이리움(Jrium), 스트라이프 재킷과 팬츠 모두 자라(Zara), 로퍼 카르미나 바이 유니페어(Carmina by Unifair).
김학찬 니트 스웨터 세인트 제임스(Saint James), 와이드 팬츠 와이엠씨(YMC), 스니커즈 라코스테(Lacoste).

 

‘테이크아웃’ 기획이 흥미로웠던 지점은 무엇인가? 전석순(이하 전) 어디에서든지 읽을 수 있도록 작고 가볍게 만들어졌다는 것. 독서를 딱딱하지 않고 좀 더 말랑말랑하게 해줄 것 같은 판형과 사이즈가 이번 기획에서 가장 좋았다. 처음에는 소설은 독서를 하며 이미지를 떠올려야 하는 작업인데 고정된 이미지가 나오면 책의 재미가 반감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기획에 참여하며 생각이 달라졌다. 일러스트레이터와 의견을 주고받지 않은 덕에 같은 내용을 두고 다른 이미지가 나와 소설이 더 풍부해진 느낌이다. 이미지가 제한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 부풀어 올랐다. 김학찬(이하 김) 나는 오히려 믿고 맡겼기 때문에 불안감이 더 컸다.(웃음) 책은 결국 언어로 소통한다. 작가가 언어를 통해 이야기하고 비평도 언어로 나오며 독자의 감성도 그렇다. 영화화되지 않는 이상 책이 이미지로 표현될 기회가 있다면 표지라고 생각한다. 표지가 없는 책은 없고, 한 권에 하나의 그림이 있는 셈인데 이번 <우리집 강아지>에는 10장의 그림이 실렸더라. 내 소설을 해석한 그림이 10장. 그림이 더 많았어도 좋았을 것 같다.

이번 기획을 위해 어떤 작품을 골랐나? 새로 썼다. 단편소설이 책으로 나오다 보니 결과물을 고칠 기회가 없지 않나. 그래서 새로 쓰고 싶었다. 한 작품을 쓰고 나면 다른 작품을 쓰기 위해 그 작품과 헤어져야 하지 않나. 그런데 그렇지 못한 작품이 있다. <아홉 개의 밤>은 탈고 후에도 가장 오랫동안 헤어지지 못한 작품이다. 여기에 감정 노동에 대한 관심이 맞물려 이 작품을 선택했다. 언젠가 실제로 소설에 등장한 감정 측정기가 등장하지 않을까? 그런 시대가 실제로 온다면 무서울 것 같다.

단편소설을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독자 입장에서 단편소설은 30분간 할 수 있는 극치의 무언가 같다. 30분 만에 이야기 하나를 온전히 들려준다. 무심결에 지나쳐버리는 사람 혹은 사물에 집중해서 바라보는 것. 가령 최은미 작가의 <정선>을 읽은 후라면 숟가락이 이상해 보일 것이다. 늘 쓰는 숟가락이 책을 읽은 후로 이상하고 낯설게 보이는 것처럼 평범했던 사물과 장면을 다른 방향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단편소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글보다 이미지가 중요한 지금의 시대에도 흔들리지 않는 글의 힘은 무엇일까? 영상은 이미지를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데, 소설은 텍스트 너머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나 스스로 이미지를 만들어내야 한다. 인물을 상상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고 소설을 제대로 느낄 수도 없다. 우리는 점점 생각할 시간도 없고 생각하기보다 시스템에 맞춰 급하게 살아가는 것 같다. 그런데도 그 시스템을 의심하지 않으며 뭔가를 떠올리지 않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소설이란 결국 시간 낭비처럼 보이는 과정을 지나야 느낄 수 있는 작업이다. 영상을 볼 때는 이해하지 못한 장면이 나오면 좀처럼 따라잡을 수가 없다. 이전 장면을 미처 이해하지 못했는데 진행돼버리면 힘들다. 그런데 텍스트로 이해하는 소설은 가장 정보가 없는 매체여서 이해의 폭이 자유롭다. 책은 보다가 멈춰도 다시 읽는데 문제가 없지만 영상은 어제 5분 보다가 오늘 5분 보라고 하면 못 보겠다. 정보가 가장 없는 게 글의 힘 아닐까.

무엇 혹은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가? 김 사회적 약자를 위해 쓴다고 생각했는데 나 자신을 위해 쓰더라. 자신을 위해 쓰면 결국 모두를 위해 쓰는 것이기도 하고. 내 소설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발랄하다고 생각하는데 실은 가장 힘든 순간에 쓴다. 가장 힘들 때 유머러스하게 쓰면 내게 도움이 되기도 하고. 나를 위한 이야기를 하는 게 가장 오래 글을 쓸 수 있는 방식이다. 언젠가 예술인 복지 재단에서 진행하는 심리 치유 캠프에서 심리 상담사가 내게 소설을 쓰는 이유를 물었다. 곰곰 고민하다 보니 소설만이 유일하게 내가 하는 일 중 오로지 나를 위한 일이더라. 습작을 쓰던 때는 나를 알기 위해 썼고, 그 뒤로 몇 년은 나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썼다. 우리는 일인칭 주인공으로 살고 있지만 다른 사람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쓰면 나에게서 벗어나게 되니까.

소설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김 재미. 이야기를 전달하는 수단이 많은데 왜 소설을 선택했느냐고 묻는다면 재미 때문이다. 읽을 때도, 쓸 때도. 재미없는 걸 읽으면 화가 나고 반대로 재미있는 걸 읽으면 기분이 좋다. 읽는 사람은 한 번 읽지만 쓰는 사람은 계속 고쳐야 하지 않나. 재미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차이. 그동안 있었던 것들과 무엇 하나라도 다른 점이 있어야 한다.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기까지 가장 큰 고비가 있다면 언제인가? 김 초고를 다 쓴 순간, 괜찮다고 생각될 때가 굉장히 위험하다. 착각일 테니까. 그런데 초고를 다 썼는데 망했다 싶으면 죽고 싶을 만큼 힘들다. 잘 써질 때. 문제가 있기 때문에 잘 써지는 거다. 잘 써지면 보통 어디서 듣거나 읽은 이야기다. 그런데 더 무서운 건 다 쓰고 나서 비슷한 이야기를 만났을 때. 책을 다 쓰고 나면 겹치는 제목이나 내용이 없는지 불안한 마음에 검색해보곤 한다.

초고가 완성된 후 가장 먼저 읽는 사람은 누구인가? 김 예비 아내. 아마 나를 만나는 것보다 내 소설을 읽는 게 더 짜증 나지 않았을까.(웃음) 처음엔 쓰자마자 보여줬는데 이제는 눈치 봐가며 보여준다. 언제 줘야 더 기분 좋게 읽을까 하는 마음으로. 초고를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무척 고마운 일이다. 해답을 얻길 바라기보다는 최소한 나만 읽은 게 아니라는 사실이 격려가 된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다. 부끄럽기도 하고, 글을 읽는 것도 노동이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다. 그러다 결국 편집자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게 된다. 가끔 고민을 상담하는 익명 게시판에 소설의 일부를 올릴 때도 있다. 가령 이런 줄거리의 소설이 있는데 아는 사람 있느냐는 식으로 질문하거나 주인공의 사연을 조금 변형해 올리기도 한다. 이에 대해 거짓말 아니냐는 댓글이 달리면 리얼리티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소설로 쓰고 싶은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전 부모님이 춘천에서 오랫동안 세탁소를 하셨는데 최근에 주변이 개발되며 건물을 헐었다. 세탁소에 달린 단칸방에서 나고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그곳에서 지냈다.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니 내게는 내심 든든한 공간이었다. 건물이 해체되고 세탁소의 기계가 빠지는 과정을 사진으로 남겼다. 부모님과 해체된 세탁소를 배경으로, 그리고 건물이 다 없어진 후 길이 되어버린 자리에서도 사진을 찍었다. 언젠가 아버지의 세탁소를 소재로 소설을 쓰고 싶다. 어려운 질문이다. 가장 중요한 건 보여주지 않고 계속 숨겨둔 채 그다음 것을 보여주려 한다. 그런데 지금 드는 생각은 내 소설 스타일이 장면을 잘 그리지 않는다는 거다. 등단할 때 심사평에서도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다소 이상하다’는 맥락의 평이 있었다. 내 소설은 구체적인 장면이 떠오르지 않아 이 질문이 더 어렵게 다가오는 것 같다.

소설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김 의심. 프로의심러가 되어야 한다. 인터뷰하는 사람은 무슨 생각으로 인터뷰하는 걸까, 이 질문은 왜 나온 걸까, 계속 의심하는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필요한 건 자신에 대한 의심이다. 호기심과는 다르다. 호기심보다 좀 더 어둡달까. 유연함. 몸도 마음도. 계속 앉아서 써야 하니 몸도 유연해야 하고 마음도 유연해야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나이 들수록 유연함이 점점 사라지지 않나. 그게 가장 위험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