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해피 트립 – ② 파주

이번 추석 서울에 머무를 예정이라면 근교로 여행을 떠나보자.
차로 한 시간만 투자하면 닿을 수 있는 곳, 두 번째는 파주다.

EAT

아다마스 253

@cafe_adamas253

‘아다마스 253’은 헤이리 예술마을에 있는 이탈리안 다이닝 카페다.
회색 큐브를 쌓아 올린 듯한 외관으로 경기도 건축문화상을 받기도 했던 곳.
6년 넘게 꾸준히 사랑을 받는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지만, 끊임없이 신메뉴를 선보여서 아닐까?
최근에는 고기를 익히지 않은 채 숙성시킨 후 얇게 썰어 내는 요리인 카르파치오를 1+등급 한우와 오리엔탈 소스를 활용해 재해석한 메뉴가 인기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촬영 장소로도 잘 알려져 있다.
주소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47
문의 031-949-1296

DRINK

봉쥬르 다방

@bonjour_dabang

“구석진 곳까지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봉쥬르 다방은 파주 외곽의 한 상가 1층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밖에서 보면 하얗게 칠한 벽과 나무로 만든 문만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빈티지 소품이 가득하다.
바삭하게 구운 식빵에 팥 앙금을 바르고 버터를 통으로 잘라 올린 ‘앙버터 토스트’가 대표 메뉴.
‘봉쥬르’라는 카페의 이름처럼, 이곳은 매일 아침 9시부터 일찍이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니 파주 일정을 여기서 시작해도 좋겠다.
주소 경기도 파주시 순못길 21-9
문의 010-9809-5517

트헤즈에

@treize.et

서울에서 이미 유명한 카페, ‘이로공작’과 ‘가배도’의 주인장이 파주에 오픈한 카페.
짙은 색의 원목으로 꾸민 내부는 대체로 어둡지만 천장에서 달처럼 빛나는 조명 그리고 블라인드 사이로 강렬하게 비치는 햇빛 덕에 따뜻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가게 한 켠에는 나무와 돌, 유리 등 다양한 빈티지 오브제를 직접 수집해 전시 중이다.
개성 강한 컵에 담겨 나오는 음료도 매력적이라 인스타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곳이다.
주소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문향로 52-1
문의 031-952-4196

소키싸롱

@soki_salon

건축가 ‘소소’와 디자이너 ‘키치치’가 함께 ‘소키싸롱’을 오픈했다.
언뜻 보면 평범한 카페 같지만, 간판부터 내부의 조명과 테이블, 트레이까지 손수 제작하며 꾸민 공간이다.
가죽공예와 자수, 마크라메, 소이 캔들 등 취미로 삼기 좋은 분야의 클래스도 꾸준히 진행한다.
다양한 장르의 책도 꽂혀있고 음료 또한 커피와 차부터 맥주까지 알차게 갖췄으니 취향에 따라 문화생활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기 좋다.
주소 경기도 파주시 가재울로 100-9
문의 031-947-7579

STAY

메종 드 유유

@maisondeuu

‘여유가 있어 한가롭고 걱정이 없는 모양’을 뜻하는 사자성어 ‘유유자적’을 본떠 이름 지은 펜션 ‘메종 드 유유’.
심학산 중턱에 위치해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서해로 흐르는 장엄하면서도 고요한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2층에는 사계절 온수가 공급되는 수영장이 있는데, 투명한 창으로 1층을 내려다볼 수 있는 독특한 구조로 설계됐다.
주소 경기도 파주시 돌곶이길 173-41
문의 010-6837-3663

스튜디오 161 펜션

@studio161pension

‘스튜디오 161 펜션’은 조각가 부부가 운영하는 펜션이다.
1-2층과 3-4층 두 채로 나뉘어 있는데, 모두 임진강이 보이는 뷰다(물론 1-2층은 낮아서 덜 보이기는 하지만).
월넛과 오크 소재의 가구와 아늑한 분위기가 특징.
10인 이상 거뜬하게 머무를 수 있어 친구, 연인은 물론 대가족도 환영이다.
별채와 테라스에 모여 가을 바비큐를 즐기는 것도 물론 가능.
주소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새오리로161번길 13-29
문의 010-6659-0161

지지향 게스트하우스

www.jijihyang.com

‘종이의 고향’이라는 뜻을 가진 게스트하우스 ‘지지향’에서는 책의 향기가 느껴진다.
파주의 독서 공간인 ‘지혜의 숲’과 인접해 있어 독서를 하며 밤을 지새우기 좋고, ‘작가의 방’이라는 문화 공간에서는 국내 작가의 전집과 소장품을 둘러볼 수 있다.
객실 내부에 TV는 찾아볼 수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책으로 귀결되는 곳답게 TV 대신 책장이 있다.
이왕이면 핸드폰까지 멀리하고 사색을 즐겨보자.
주소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145
문의 031-955-0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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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소설가 – 전석순, 김학찬

소설가 전석순 김학찬
전석순 화이트 니트 스웨터 제이리움(Jrium), 스트라이프 재킷과 팬츠 모두 자라(Zara), 로퍼 카르미나 바이 유니페어(Carmina by Unifair).
김학찬 니트 스웨터 세인트 제임스(Saint James), 와이드 팬츠 와이엠씨(YMC), 스니커즈 라코스테(Lacoste).

 

‘테이크아웃’ 기획이 흥미로웠던 지점은 무엇인가? 전석순(이하 전) 어디에서든지 읽을 수 있도록 작고 가볍게 만들어졌다는 것. 독서를 딱딱하지 않고 좀 더 말랑말랑하게 해줄 것 같은 판형과 사이즈가 이번 기획에서 가장 좋았다. 처음에는 소설은 독서를 하며 이미지를 떠올려야 하는 작업인데 고정된 이미지가 나오면 책의 재미가 반감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기획에 참여하며 생각이 달라졌다. 일러스트레이터와 의견을 주고받지 않은 덕에 같은 내용을 두고 다른 이미지가 나와 소설이 더 풍부해진 느낌이다. 이미지가 제한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 부풀어 올랐다. 김학찬(이하 김) 나는 오히려 믿고 맡겼기 때문에 불안감이 더 컸다.(웃음) 책은 결국 언어로 소통한다. 작가가 언어를 통해 이야기하고 비평도 언어로 나오며 독자의 감성도 그렇다. 영화화되지 않는 이상 책이 이미지로 표현될 기회가 있다면 표지라고 생각한다. 표지가 없는 책은 없고, 한 권에 하나의 그림이 있는 셈인데 이번 <우리집 강아지>에는 10장의 그림이 실렸더라. 내 소설을 해석한 그림이 10장. 그림이 더 많았어도 좋았을 것 같다.

이번 기획을 위해 어떤 작품을 골랐나? 새로 썼다. 단편소설이 책으로 나오다 보니 결과물을 고칠 기회가 없지 않나. 그래서 새로 쓰고 싶었다. 한 작품을 쓰고 나면 다른 작품을 쓰기 위해 그 작품과 헤어져야 하지 않나. 그런데 그렇지 못한 작품이 있다. <아홉 개의 밤>은 탈고 후에도 가장 오랫동안 헤어지지 못한 작품이다. 여기에 감정 노동에 대한 관심이 맞물려 이 작품을 선택했다. 언젠가 실제로 소설에 등장한 감정 측정기가 등장하지 않을까? 그런 시대가 실제로 온다면 무서울 것 같다.

단편소설을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독자 입장에서 단편소설은 30분간 할 수 있는 극치의 무언가 같다. 30분 만에 이야기 하나를 온전히 들려준다. 무심결에 지나쳐버리는 사람 혹은 사물에 집중해서 바라보는 것. 가령 최은미 작가의 <정선>을 읽은 후라면 숟가락이 이상해 보일 것이다. 늘 쓰는 숟가락이 책을 읽은 후로 이상하고 낯설게 보이는 것처럼 평범했던 사물과 장면을 다른 방향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단편소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글보다 이미지가 중요한 지금의 시대에도 흔들리지 않는 글의 힘은 무엇일까? 영상은 이미지를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데, 소설은 텍스트 너머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나 스스로 이미지를 만들어내야 한다. 인물을 상상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고 소설을 제대로 느낄 수도 없다. 우리는 점점 생각할 시간도 없고 생각하기보다 시스템에 맞춰 급하게 살아가는 것 같다. 그런데도 그 시스템을 의심하지 않으며 뭔가를 떠올리지 않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소설이란 결국 시간 낭비처럼 보이는 과정을 지나야 느낄 수 있는 작업이다. 영상을 볼 때는 이해하지 못한 장면이 나오면 좀처럼 따라잡을 수가 없다. 이전 장면을 미처 이해하지 못했는데 진행돼버리면 힘들다. 그런데 텍스트로 이해하는 소설은 가장 정보가 없는 매체여서 이해의 폭이 자유롭다. 책은 보다가 멈춰도 다시 읽는데 문제가 없지만 영상은 어제 5분 보다가 오늘 5분 보라고 하면 못 보겠다. 정보가 가장 없는 게 글의 힘 아닐까.

무엇 혹은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가? 김 사회적 약자를 위해 쓴다고 생각했는데 나 자신을 위해 쓰더라. 자신을 위해 쓰면 결국 모두를 위해 쓰는 것이기도 하고. 내 소설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발랄하다고 생각하는데 실은 가장 힘든 순간에 쓴다. 가장 힘들 때 유머러스하게 쓰면 내게 도움이 되기도 하고. 나를 위한 이야기를 하는 게 가장 오래 글을 쓸 수 있는 방식이다. 언젠가 예술인 복지 재단에서 진행하는 심리 치유 캠프에서 심리 상담사가 내게 소설을 쓰는 이유를 물었다. 곰곰 고민하다 보니 소설만이 유일하게 내가 하는 일 중 오로지 나를 위한 일이더라. 습작을 쓰던 때는 나를 알기 위해 썼고, 그 뒤로 몇 년은 나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썼다. 우리는 일인칭 주인공으로 살고 있지만 다른 사람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쓰면 나에게서 벗어나게 되니까.

소설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김 재미. 이야기를 전달하는 수단이 많은데 왜 소설을 선택했느냐고 묻는다면 재미 때문이다. 읽을 때도, 쓸 때도. 재미없는 걸 읽으면 화가 나고 반대로 재미있는 걸 읽으면 기분이 좋다. 읽는 사람은 한 번 읽지만 쓰는 사람은 계속 고쳐야 하지 않나. 재미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차이. 그동안 있었던 것들과 무엇 하나라도 다른 점이 있어야 한다.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기까지 가장 큰 고비가 있다면 언제인가? 김 초고를 다 쓴 순간, 괜찮다고 생각될 때가 굉장히 위험하다. 착각일 테니까. 그런데 초고를 다 썼는데 망했다 싶으면 죽고 싶을 만큼 힘들다. 잘 써질 때. 문제가 있기 때문에 잘 써지는 거다. 잘 써지면 보통 어디서 듣거나 읽은 이야기다. 그런데 더 무서운 건 다 쓰고 나서 비슷한 이야기를 만났을 때. 책을 다 쓰고 나면 겹치는 제목이나 내용이 없는지 불안한 마음에 검색해보곤 한다.

초고가 완성된 후 가장 먼저 읽는 사람은 누구인가? 김 예비 아내. 아마 나를 만나는 것보다 내 소설을 읽는 게 더 짜증 나지 않았을까.(웃음) 처음엔 쓰자마자 보여줬는데 이제는 눈치 봐가며 보여준다. 언제 줘야 더 기분 좋게 읽을까 하는 마음으로. 초고를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무척 고마운 일이다. 해답을 얻길 바라기보다는 최소한 나만 읽은 게 아니라는 사실이 격려가 된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다. 부끄럽기도 하고, 글을 읽는 것도 노동이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다. 그러다 결국 편집자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게 된다. 가끔 고민을 상담하는 익명 게시판에 소설의 일부를 올릴 때도 있다. 가령 이런 줄거리의 소설이 있는데 아는 사람 있느냐는 식으로 질문하거나 주인공의 사연을 조금 변형해 올리기도 한다. 이에 대해 거짓말 아니냐는 댓글이 달리면 리얼리티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소설로 쓰고 싶은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전 부모님이 춘천에서 오랫동안 세탁소를 하셨는데 최근에 주변이 개발되며 건물을 헐었다. 세탁소에 달린 단칸방에서 나고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그곳에서 지냈다.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니 내게는 내심 든든한 공간이었다. 건물이 해체되고 세탁소의 기계가 빠지는 과정을 사진으로 남겼다. 부모님과 해체된 세탁소를 배경으로, 그리고 건물이 다 없어진 후 길이 되어버린 자리에서도 사진을 찍었다. 언젠가 아버지의 세탁소를 소재로 소설을 쓰고 싶다. 어려운 질문이다. 가장 중요한 건 보여주지 않고 계속 숨겨둔 채 그다음 것을 보여주려 한다. 그런데 지금 드는 생각은 내 소설 스타일이 장면을 잘 그리지 않는다는 거다. 등단할 때 심사평에서도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다소 이상하다’는 맥락의 평이 있었다. 내 소설은 구체적인 장면이 떠오르지 않아 이 질문이 더 어렵게 다가오는 것 같다.

소설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김 의심. 프로의심러가 되어야 한다. 인터뷰하는 사람은 무슨 생각으로 인터뷰하는 걸까, 이 질문은 왜 나온 걸까, 계속 의심하는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필요한 건 자신에 대한 의심이다. 호기심과는 다르다. 호기심보다 좀 더 어둡달까. 유연함. 몸도 마음도. 계속 앉아서 써야 하니 몸도 유연해야 하고 마음도 유연해야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나이 들수록 유연함이 점점 사라지지 않나. 그게 가장 위험한 것 같다.

소설, 소설가 – 최은미, 황현진

소설가 소설
최은미 니트 원피스 마인(Mine), 샌들 토리 버치(Tory Burch).
황현진 버건디 벨트 원피스 쁘렝땅(Prendang), 구두 헬레나 앤 크리스티(Helena & Kristie).

‘테이크아웃’ 기획이 어떤 점에서 흥미로웠나? 최은미(이하 최) 단편소설 한 편이 한 권의 책이 된다는 것. 보통 여러 편의 단편소설이 책 한 권으로 묶이기 때문에 장편보다 단편이 독자의 접근이 제한적이다. 황현진(이하 황) 일러스트를 더한다는 기획의 결과물이 무척 궁금했다. 다른 장르의 예술에 호기심도 조금 생기고 다른 장르의 사람들은 어떻게 작업할지 알고 싶었다. 함께 작업한다고 하니 즐겁기도 하고, 기대도 되고.

한 명의 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가 한 권의 책을 완성했다. 최 글과 일러스트의 비중이 비슷하다. 이전에는 소설에 삽화가 들어가는 것에 큰 관심이 없었다. 소설은 언어 자체로 완결성이 있기에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그림이 들어간 책의 완성본을 보고 소설의 분위기나 정서가 얼마나 확장될 수 있는지 실감했다. 일러스트가 소설과 잘 맞았다. 나의 글을 다른 형태로 경험해서 새로웠다. 조금 의지가 되기도 했다. 나의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는 점이 힘이 되었다.

테이크아웃 시리즈를 위해 이번 단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전에 발표한 작품 중 한 편만으로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전달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 여러 단편을 묶어서 낼 때와 선택의 기준이 달랐다. 소설에 사람의 이야기를 담는 것을 좋아하는데, 한 사람의 삶에 대해 단편으로 쓸 때는 삶 전체를 드러내기보다 부분을 들여다보려고 한다. <부산 이후부터>는 한 사람에 대해 비교적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을 골랐다. 발표 작품 중 사람들이 좀더 같이 읽어주었으면 하고 애정이 가는 작품이 <정선>이었다.

단편소설이란 뭘까? 초등학생 사이에서 슬라임이 유행하지 않나. 바닥 풍선을 만들어 뾰족한 것으로 찌르면 형태가 으스러지는데 단편소설도 그런 것 같다. 어느 한 부분을 딱 꼬집었는데 갑자기 나를 둘러싼 세계의 색깔이 순간적으로 달라지는 경험을 담은 것이 단편소설 아닐까? 한 지점을 포착하거나 꼬집었을 때 환기되는 것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한 형식이다.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인데, 단편소설은 뭔가를 터뜨리는 도구 같다. 풍선이라는 세계가 있으면 누군가는 손으로 뜯어서, 누군가는 힘을 줘서 터뜨리는데 그 도구가 단편소설인 거다.

글보다 이미지가 중요한 시대가 아닌가. 그럼에도 글이 가진 힘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글을 읽고 쓰는 것은 즉각적인 감각을 통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 과정을 한 번 거친다. 그 과정이 주는 자유로움이 있다. 영화를 보는 것도, 음악을 듣는 것도 좋아하지만 글을 읽을 때만 나를 대입하게 된다. 영화를 볼 때는 그 주인공이 나라고 가정하지 않고 재미있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반면, 글은 타인의 이야기란 걸 알면서도 내 이야기인 것처럼 읽게 된다. 주인공이 존재하는 공간이 좀 더 직접적으로 느껴진다. 읽은 후에도 계속 잔상과 함께 질문도 남고.

무엇 혹은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가? 나 자신을 위해. 내가 나를 긍정할 수 있을 때가 글을 쓸 때이다. 전에 잠깐 심리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데 시간이 지난 뒤 상담 선생님께 내 단편소설집을 보내드린 적이 있다. 책을 읽은 선생님이 ‘은미씨가 자신을 알기 위해 여전히 애쓰는 게 느껴졌다’는 말을 해주셨는데 그때 생각했다. 나는 나를 알아가기  위해 글을 쓰고 있구나. 쓰지 않거나 읽지 않으면 내가 나를 싫어할 것 같다. 작가가 되기 위해 등단하고자 노력했고, 계속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소설을 쓰는 그 순간에는 누구도 위하지 않는 느낌으로 쓰려고 한다.

한 편의 소설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작가의 색깔. 비록 완성도가 떨어지더라도 그 작가만의 뭔가가 느껴지면 그 소설이 좋다. 우리는 보통 타인에게 엄격하다. 작은 실수나 잘못 혹은 죄가 될 수도 있는데 소설로 얘기한다면 그런 행동에 대한 이유까지는 아니어도 정당성이 있어야 한다. 인물의 맥락, 행동의 논리.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기까지 가장 큰 위기가 있다면? 맥락과 이어지는 얘긴데, 소설 속 인물을 지나치게 보호해서는 안 된다. 행동에 대해 맥락을 짚는 것이 아니라 설명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아무도 위하지 않는 마음과 방식으로 써야 하는데 구구절절 변명하려고 할 때가 고비다. 나에게 실망스러운 순간이기도 하고. 갑자기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이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재미있는 생각을 아무도 안 했을 리가 없어. 누군가 분명 썼을 거야.’ 글을 쓰는 행위가 부질없게 느껴지면서 허무감과 고립감이 찾아올 때도 좀 위험해지는 순간이다.

소설을 완성한 후 가장 먼저 누가 읽나? 문예창작과 다닐 때 하던 습관 때문에 초반에는 친구들에게 보여줬다. 그런데 글을 쓰다 회의감이 드는 시기가 있다. 그럴 때면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반영하지 않고 내가 오롯이 책임지겠다는 마음으로 몇 년을 붙들고 있을 때가 있다. 그럴수록 자신감은 더 떨어진다. 요즘은 끝까지 붙들고 있지 않고 마지막으로 넘기기 일주일 전, 3일 전쯤에 함께 공부했던 친구 딱 한 명에게 보여준다. 완성된 소설을 누군가에게 통째로 보여주는 경우는 별로 없다. 대신 한 장면이나 단락을 가족에게 읽어주곤 한다. 어떨 때는 스마트폰 음성 메모에 녹음해서 한번 들어본다. 전체는 아니고 짧은 단락 단락을.

최근에 경험했던 일 중 소설로 남기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1980년대쯤인 것 같은데, 초여름에 시멘트 담장 앞에서 찍은 누군가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본 적이 있다. 누구 집에나 있을 법한 어린 시절 사진이었는데 그 사진 속 여자아이에 대해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름 카메라를 들고 다닐 때가 많은데, 한번은 필름을 현상했더니 내가 찍지 않은 사진이 들어 있었다. 물속인 것 같았고 명확하게 무엇이 찍혔는지 알 수 없는 사진이었는데, 인물은 다들 외국인이었다. 현상소에 전화해 내 것이 아니라고 했더니 그럴 리 없다며 내 것이 맞다고 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그 문장이 주는 위압감도 있고. 낯설고 기이했던 그 순간을 글로 쓰고 싶었는데 일기로만 남겨두었다. ‘소설로 써야지’ 하고 마음먹으면 이상하게 잘 써지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병원에 갈 일이 있었는데 모니터에 떠 있는 대기 환자들의 이름을 봤더니 모두 생소한 이름이었다. 그 이름의 주인에게는 실례일 수도 있지만 언젠가 소설에 등장시키고 싶어 적어두었다.

소설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뭘까? 지금 쓰는 이야기를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 않는 것. 아는 이야기, 아는 사람을 쓰는 것이 아니라 소설을 쓰며 인물에게 일어나는 변화와 삶을 자꾸 확인하고 들여다봐야 한다. 내가 모르는 것을 쓰면서 알아간다고 생각하며 쓴다. 소설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이야기에 대한 욕구가 아닐까. 쓰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어떤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