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페스티벌 – 서울숲 재즈 페스티벌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해가 뜨고 서울숲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추운 듯 후덥지근한 이 계절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재즈가 울려 퍼졌다.
서울숲 재즈 페스티벌에서 펼쳐진 평화로운 풍경.
일상의 고민과 걱정을 모두 잊고 가을날을 만끽하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음악을 선물한 아티스트 5팀을 만났다.

전진희

@jinodanokino

고요함 사이의 호흡까지 섬세하게 전하는 싱어송라이터 전진희.
세션 피아니스트로, 그리고 밴드 ‘하비누아주’의 멤버로 페스티벌에 자주 참여했던 그녀는 이번에 처음으로 홀로 무대에 올랐다.
자신의 곡을 차분하게 연주하는 그녀를 박지윤이 지원사격했다.
작년 정규앨범 <피아노와 목소리>를 발매했으며, 곧 새로운 싱글앨범 작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마더바이브

@mother_vibes

거대한 실로폰처럼 생긴 비브라폰은 국내에서 접하기 어려운 악기다.
그리고 마더바이브는 몇 안 되는 한국의 비브라포니스트 중 하나다.
자이언티, 윤종신을 비롯한 여러 아티스트와 함께 곡 작업을 했던 그녀는 재즈와 클래식, 탱고 등 장르를 넘나들며 통통 튀는 맑은 선율을 연주한다.
10월 초 첫 싱글앨범 <Every Time You Call My Name>을 공개했고, 곧 정규앨범을 발매하는 그녀는 이번 페스티벌에서 신곡을 미리 공개했다.

정기고

@junggigo

재즈 페스티벌은 처음이라고 말했지만, 정기고의 공연에서는 재즈를 향한 열정과 애정이 동시에 느껴졌다.
피아노와 드럼, 베이스, 색소폰을 연주하는 뮤지션들과 함께 무대에 오른 그는 쳇 베이커의 명곡으로 서울숲의 오후를 감미롭게 물들였다.
이날 불렀던 곡들로 채운 리메이크 앨범 <songforchet>의 발매를 앞두고 있으며, 작은 재즈클럽에서도 자주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썸 오빠’의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

선우정아

@sunwoojunga

선우정아가 ‘고양이’를 부르니 관객들이 그녀의 스캣을 따라 하기 시작한다.
팬이라면 정확히 떼창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이번에는 난이도가 높아졌다.
‘봄처녀’, ‘순이’, ‘구애’ 등 잘 알려진 대표곡들을 재즈 페스티벌에 걸맞게 편곡을 해 익숙한 듯 신선한 느낌을 줬다.
재즈 보컬로 활동했던 경험이 있는 만큼, 그녀는 ‘선우정아’다운 무대 장악력과 독특한 목소리로 자유롭게 노래했다.

장필순

@jejusoony

1980년대에 음악을 시작한 장필순은 제주에 살며 여전히 음악을 한다.
지난 8월 정규앨범 <soony eight : 소길花>을 발표했고, 전국 곳곳에서 소극장 콘서트를 개최하며 잔잔한 감동을 전하는 중이다.
“내가 처음 너를 만났을 땐 너는 작은 소녀였고….”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제비꽃’을 부르는 그녀의 모습에 그 누가 탄성을 내뱉지 않을 수 있을까?
이틀간 이어진 서울숲 재즈 페스티벌의 마지막 무대에 오른 장필순은 피아니스트 임인건과 작년에 이어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추며 아름다운 끝을 선사했다.

자유로운 유리의 시간, 글로리 홀

 

오묘한 빛이 감도는 유리. 그중에 같은 색은 하나도 없다. 조명이라고 하기엔 퍽 근사한 모양을 한 전구들은 ‘글로리홀’ 박혜인의 작품이다. 글로리홀은 곁에 두고 바라볼 수 있는 빛을 조건으로 삼아 조명을 제작하고 있는 박혜인의 브랜드 이름이자 작가명이다.

대학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한 박혜인은 오래전부터 빛에 관심이 많아 관련 작품을 쭉 해왔고 졸업 후 조명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 포트폴리오 삼아 조명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글로리홀의 시작이 됐다. “주로 설치나 드로잉, 영상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유리’라는 매체는 조금 더 기술이 필요한, 따라서 접근하기 힘든 매체라고 생각했어요. 하다 보니 유리의 매력을 많이 알게 됐죠. 육체적인 노동이 들어가긴 하지만 유리는 만드는 순간 완성이 되잖아요. 나중에 좀 더 가공이 들어가긴 해도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바로 형태가 나타나는 매체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오는 재미가 강했어요. 그게 빛과 만났을 땐 굉장히 효과적이고요.”

글로리홀의 조명들은 대부분 우연에 기대어 탄생한다. 불과 유리가 만나는 순간 필연적으로 작업자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들이 생기는데 순간적으로 형태가 만들어지거나 굳고 녹는 과정, 또는 힘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유리의 자연스러운 특성을 박혜인은 있는 그대로 살린다. 그리고 그 과정을 유리 자체의 시간 또는 의지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탄생한 서로 다른 모양의 유리는 LED 조명을 품고 전구로 완성된다. 글로리홀의 조명이 내는 빛의 색깔 역시 그때그때 박혜인의 느낌에 따라 달라진다. “처음에는 기술이 숙달되지 않아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어요. 자투리 유리에 광섬유를 넣은 게 초창기 글로리홀 조명의 형태였고 유리를 조금 더 만질 수 있게 되면서 램프 워킹(유리를 토치로 녹이는 기법)이라는 기법을 활용해 전구를 만들었고 지금은 슬럼핑(틀 위에 유리를 놓고 그대로 가마에 넣어 틀과 같은 모양으로 유리를 주저앉히는 기법), 블로잉(녹은 유리를 공업용 긴 막대로 떠내 입으로 부는 기법) 등 할 수 있는 기법이 많아져서 작업의 폭도 넓어졌어요.”

유리공예는 보이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다. 뜨거운 불가마 앞에서 온몸을 땀으로 적시며 유리를 녹이는 것이 기본 작업이라 올 여름이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깨지는 순간 다시 쓸 수 없다는 것도 맹점이다. 아무리 공들여 만든 작품이라도 깨지면 즉시 버려야 한다. 아쉬워하는 감정이 아까울 정도로 빨리 다시, 혹은 다른 작업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점에서 보통의 인내심으로는 감당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박혜인이 이 작업을 놓을 수 없는 이유는 구매한 사람들의 삶 속에서 조명이 공존하며 생명을 이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학부 때 선생님들에게 배웠던 걸 전부 포기하고 처음으로 내가 만들고 싶은 걸 만든 것이거든요. 그걸 사람들이 더 좋아해주니까 신기했어요. 여기에 글로리홀을 하는 기쁨이 있는 것 같아 요. 그들의 삶에서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좋은 작가가 되기보다 그렇게 일상 속에서 오랫동안 사랑받는 조명을 만들고 싶어요.”

지금 박혜인은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곧 자신이 살게 될 집의 모든 조명을 글로리홀의 조명으로 달고 그 집을 일주일에 한 번씩 다른 이들이 숙박할 수 있도록 빌려 주는 것이다. 숙박하는 사람은 그 집에 머무는 동안 사고 싶은 조명이 있으면 바로 구입할 수 있다. 글로리홀의 쇼룸이자 모델하우스이자 작가가 사는 공간, 이 세 가지가 혼합되어 있는 프로젝트. 그 전에 글로리홀의 조명을 직접 보고 싶다면 9월 18일부터 도산공원 퀸마마 마켓에서 열리는 글로리홀의 판매 전시를 찾아가면 된다.

 

함께 살아요

동거 커플

 

동거의 나쁜 예

L과 나의 동거는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본가가 지방이라 학교 앞에서 자취하던 나와 달리 L은 집이 서울이었는데도 하루, 이틀 집에 안 들어가고 우리 집에서 자더니 그게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됐다. 처음에는 모든 게 재밌기만 했다. 꼭 신혼부부가 된 것처럼 모든 것을 ‘커플템’으로 사고 함께 장을 봐서 레시피를 찾아 음식을 해 먹는 게. 하지만 집에 오면 나를 제일 먼저 반기는 L이 벗어놓은 허물 같은 바지가 어느 순간부터 거슬리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를 잘 못 하는 나로서는 그냥 내가 치우는 수밖에 없었다. 합의하에 같이 살기로 했으면 역할 분담을 했을 테지만 그게 아니니까 ‘내 집이니 당연히 내가 치워야 되는 건가’ 하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 같이 장을 보러 가도 L은 절대 지갑을 열지 않았다. 생활비를 감당하기가 버거워져서 계속 이렇게 지낼 거면 앞으로 반씩 분담하자고 했더니 “네 집인데 당연히 네가 사야지. 솔직히 내가 주말에 집에 가거나 하면 이 집에 더 오래 있는 사람이 너잖아”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소한 스트레스가 겹겹이 쌓이던 차에 변기에 소변 자국이 심하게 나 있는 걸 보는 순간 폭발했다. L의 모든 짐을 모아 바깥에 내놓고 보니 그 양이 너무 작고 초라해서 더 ‘현타’가 왔다. 젓가락 하나만 물고 남의 생활에 편승하던 L, 지금도 그러고 있을까? K( 약사, 29세)

 

사랑보다 진한

동거 5년 차, 함께 보낸 여름이 다섯 번인데 올여름은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겨울쯤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나와 이사할 계획이라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았었다. 최악의 폭염을 경고하는 뉴스에도 두어 달만 버티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무시했는데, 아뿔싸 지옥문이 열렸다. 징후는 둘 다 귀가가 조금씩 늦어지는 것으로 시작됐다. 시원한 사무실 밖으로 나오는 순간 열리는 불구덩이가 다음 날 아침까지 지속된다고 생각해보라. 늦은 밤 집에서 만나면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동시에 욕실에 들어가 찬물로 샤워하고 물을 닦지 않은 채 그대로 나와 침대가 아닌 바닥에 누워 더위와 사투를 시작했다. 주말에는 이 패턴이 서너 차례 반복된다. 새벽까지 뜬눈으로 잠을 설치다 문득 눈을 뜨면 알몸으로 선풍기 앞에 양반다리를 한 채 멍하니 앉아 있거나 냉동실 문을 열고 힘없이 서 있는 여자친구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별의별 방법을 다 썼다. 냉동실에 있던 걸 전부 버리고 편의점에서 돌얼음을 사다 가득 채운 다음 서로의 몸에 뿌린 후 잠을 청하기도 했고, 내 작업실에 캠핑 침대를 두고 잔 적도 있었지만 소용없었다. 밤이 오는 게 무서울 지경이 됐을 때 우리는 도망치기로 했다. 이 더위를 피할 수 있다면 어디로든. 더 넓은 집으로 가기 위해 들던 적금을 깬 후 여자친구는 아끼던 월차를 썼고, 나 역시 일주일 정도 휴업한 후 둘이 남쪽 지방을 돌며 여행을 했다. 오래 동거하다 보니 집 밖에서 만나는 건 친구들과 술 마실 때 정도였던 여자친구를 낯선 곳에서 보니 이렇게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나 싶었다. 돌아오니 서울의 더위는 한풀 꺾여 있었다. 편하게 잠이 들 수 있을 만큼 시원해졌을 때 오랜만에 서로 꼭 끌어안고 누웠다. 이등병 때 느꼈던 전우애 같은 묘한 감정이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았다. M( 타투이스트, 35세)

 

동거도 사이즈가 맞아야

각자 자취를 하던 우리는 결혼을 결정하자마자 비용 절감을 핑계로 살림을 합쳤다. 따로 나가던 월세를 절약해 신혼여행이라도 더 좋은 곳으로 가자는 계획이었다. S의 집이 내 집보다 커서 나는 그 집에서 함께 살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S는 ‘조금이라도 월세가 더 적게 나가는 네 집에서 사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S가 혼자만 좋으려고 그렇게 하자는 것도 아니고, 잠시의 불편을 참으면 더 좋은 것이 기다린다는 마음으로 투 룸 같은 원룸인 우리 집에서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다. 동거를 시작하고 며칠간 야근이 많았던 나는 드디어 동거 후 처음으로 S와 저녁을 함께 먹을 수 있게 되자 모처럼 기분 좀 내고 싶었다. 집 앞 지하철 역에서 S를 만나 팔짱을 끼며 근처 새로 생긴 식당으로 가자고 했더니 S는 정색을 하며 “외식을 왜 해, 집에 먹을 게 천지던데”라고 말했다. “냉동실에 음식이 꽉 차 있던데 그것만 파먹어도 저녁 값 꽤 굳겠다.” 일단 ‘파먹는다’는 표현에 놀랐고 ‘밥값 굳는다’는 식의 어투를 S와 만나는 반년 동안 들어본 적 없어서 충격이었다. S는 “뭘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느냐”며 들어가서 맛있는 것 만들어주겠다고 나를 달랬다. 이튿날엔 퇴근 후 극장에서 영화나 보고 들어가자고 했더니 “그 영화 VOD로 떴던데 1만원이더라. 둘이 극장 가면 거의 2만원인데 집에서 같이 오붓하게 보자”는 답이 돌아왔다. 동거 전에 항상 하던 주말 데이트는 기다렸다는 듯 강제 종료됐다. “결혼해도 맨날 밖으로 싸돌아다닐 거야? 이렇게 집에서 데이트하는 법도 좀 익혀야지”라는 게 S의 논리였다. 가뜩이나 좁은 집에는 둘이라 더 많아진 빨랫감으로 빨랫대를 접을 새가 없고, 슈퍼싱글 침대에 성인 둘이 누워 극장 동시 상영 중인 영화를 보며 어제 끓인 김치찌개를 먹는 삶. 불현듯 결혼 후라고 지금과 얼마나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들며 아찔했다. 며칠 뒤 S와 차분히 앉아 대화를 했다. 그날의 대화를 요약 하면 나는 ‘현재를 포기하면서까지 미래를 위해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었고, S는 나와 정반대였다. ‘아껴야 잘 산다’.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이었기에 우리는 끝을 맺는 게 서로를 위해 좋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얼마 전 S의 결혼 소식을 들었는데 상대는 ‘회사원으로 1억 모으기’유의 책을 쓴 저자라고.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N(마케팅 회사 과장, 3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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