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살아보려고요

가락몰종로상회 가락몰 유통인 영화마케팅 프로그래밍

영화인에서 유통인이 됐다고요. 15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하다 몇 달 전 회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가락동 농수산물 도매시장의 ‘종로상회’에서 어머니를 사장으로 모시고 일하고 있어요. 거기서는 상인들을 총칭해서 유통인이라고 불러요.

이전의 커리어 이야기를 잠깐 해볼까요? 대학교 졸업 직후 웹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자연스레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기획자가 됐고, 기획을 하다 보니 PM(마케팅부터 각종 프로그램 집행까지 제품 관련 모든 사항을 컨트롤하는 직책)이 됐어요. 그러다 아는 선배의 권유로 롯데제과 온라인 담당자로 들어갔죠.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마케팅 일을 하게 된 거네요. 그때부터 온라인 마케팅을 했죠. 거기서 2년 반 정도 일했는데 늘 마감에 시달리며 힘들게 일하다가 정시 출퇴근하는 곳으로 오니까 자유 시간도 많고 나름 내 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됐어요. 동시에 ‘슬슬 다른 것을 해봐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죠. 심심해서 뭘 할까 하다, 마케팅을 전공한 게 아니다 보니 제대로 배워봤으면 싶더군요. 학교는 학비가 비싸서 다른 곳을 찾아보다 ‘한겨레 문화학교’라는 곳을 알게 됐어요. 듣고 싶던 마케팅 분야는 이미 마감돼서 다른 것을 둘러보니 ‘영화 마케팅’이 있었어요. 기본적으로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고 ‘온라인 마케팅이나 영화 마케팅이나 비슷하겠지’ 하는 생각에 노느니 그걸 들어보기로 했죠. 수업이 끝나니까 배운 것을 써먹고 싶은 거예요. 그러다 극장 씨네큐브를 위탁 운영하는 ‘백두대간’이라는 회사에서 영화 온라인 마케팅 담당자를 뽑는다는 공고를 보게 됐어요. 주위에서 다들 말렸죠. 영화계는 박봉인데 연봉 깎여서 갈 거냐고요. 하지만 서른 초반이 넘은 당시의 삶이 좀 무료하기도 했고, 앞으로 쭉 무난하게 살게 되리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이때 아니면 언제 해봐?’라는 마음으로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연봉을 깎아서 백두대간으로 옮겼어요. 당시 대표님이 영화계에도 온라인 마케팅을 본격적으로 도입해보고 싶다며 제게 거는 기대가 컸어요. 홈페이지부터 정리하고, 배너도 달고 회원 가입을 적극 유치하니 효과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곧 영화 마케팅뿐 아니라 극장 마케팅도 하게 됐고, 그때부터 프로그래밍도 시작했죠.

어떤 걸 프로그래밍하는 거죠? 어떤 영화를 상영할지, 그 영화를 1관에 넣을지, 상영 회차는 몇 회로, 언제 넣을 것인지, 관객들에게는 어떻게 알릴 것인지. 이걸 혼자 다 했어요. 하다 보니 또 재밌더라고요. 잘되든 안 되든 내가 하는 일에 대한 피드백이 바로 오니까요. 잘되면 ‘더 해야겠다’, 안 되면 ‘이게 안 됐으니 다른 걸 해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잘됐을 때는 성취감도 큰 직종이에요. 온라인 프로 모션을 많이 하다 보니 회원 수도 늘고 그만큼 관객 수도 늘었어요. 18만 명에 머물던 수가 21만 명까지 됐죠. 당시 임원과 직원 가리지 않고 모두 재밌게 일했어요. 그러다 아트하우스 모모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맡게 됐는데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극심해 원형탈모가 왔어요. 더 하다가는 죽을 것 같아서 아트하우스 모모 개관해놓고 그만뒀어요.

힘들었지만 재밌기에 최선을 다한 시간으로 읽히네요.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관객들이 좋아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서 제가 잘못했을 때 미치는 영향이 굉장히 크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이미 씨네큐브는 개인의 소유물을 넘어 공공화된 장소예요.많은 사람들이 그 공간을 통해 예술 영화를 알게 되고 추억도 쌓았죠. 씨네큐브가 지닌 가치를 잘 알고 있으니 대충 할 수 없더군요. 그래서 최선을 다했어요. 내가 가진 모든 걸 쏟아부었죠. 그만두고 3~4개월을 편하게 놀다가 영화 배급회사에서 잠깐 일하던 와중에 씨네큐브를 새로운 회사인 티캐스트가 운영하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백두대간에서 하던 일을 급하게 인수인계해야 하는 상황이 됐고 그 일이 제게까지 왔어요. 그래서 다시 가게 됐죠. 그렇게 씨네큐브에서 2009년부터 작년까지 일했으니 9년 동안 몸담았네요. 영화인으로서는 12년을 보냈고요.

물론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퇴사를 마음먹은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퇴사 3년 전부터 스트레스가 극심했어요. 항상 좋은 관계에서만 일을 해왔는데 처음으로 인간관계에 대한 스트레스가 온 거죠. 나름 꽤 긴 인생을 살아왔지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종류의 스트레스였어요. 조금씩 퇴사를 생각하던 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갑자기 쓰러지셨죠. 일을 치르고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어요. 아버지는 건강하셨거든요. 나도 언젠가 이렇게 될 수 있다는 걸 실감했고 뭘 하는 게 삶에 의미가 있을지 생각해보게 됐어요.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편안하고 즐거운 것을 찾으면서 생활해야겠다는 생각이 조금씩 든 거죠. 그래서 퇴사했어요.

직장 생활 15년 차. 이직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 연차에 회사를 나오면 보통 무언가를 차리거나 만들죠. 전혀 관계가 없는 유통인의 삶을 떠올린 계기는 무엇인가요. 부모님이 30년 동안 같이 하시던 일이에요. 저도 어릴 때 바쁘면가게에 나가서 도와드리곤 했죠. 물건 나르고 상품을 예쁘게 진열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혼자는 하기 힘든데 오랫동안 해온 걸 쉽게 접을 수도 없었죠. 그래서 같이 하기로 했어요. 업으로 삼겠다는 큰 결심보다 한번 해보자는 느낌. 제 커리어의 모든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이 있다면, 앞서 경험한 모든 것은 다음 업종으로 전환했을 때 큰 토대나 바탕이 되어 새롭게 시작하는 업무에 보탬이 된다는 거예요. 해당 분야의 베테랑은 가지고 있지 않은 저만의 장점이기도 하죠. 여기서 나는 초보지만 숙련 단계에 이르러 잘됐을 때 이전에 경험한 것들을 여기에 첨가하거나 그때의 시각을 활용하면 잘할 수 있겠다는 이상한 자신감이 있어요.

경험을 통해 습득한 믿음인 거죠. 극장에서 전산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다들 어려워해요. 저는 이미 경험해봤기 때문에 프로그램이나 전산 하는 사람들의 언어로 문제를 볼 수 있고 훨씬 빨리 해결할 수 있었죠. 내 경험이 바탕이 된다는 믿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인스타그램으로 퇴근 일기를 포스팅하고 있어요. ‘다르게 살아보려고요’라는 해시태그가 마음에 와닿더군요. 학교 다닐 때 모범생으로 항상 그 기준에 맞춰 살아왔어요. ‘나는 자유분방한 사람인데 왜 그렇게 공부만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면서 이제까지 그렇게 살았으니 다르게 살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더군요. 그렇게 살다가 나랑 안 맞으면 또 다르게 살아가도 좋고요. 처음엔 물론 ‘과연 내가 후회하지 않고 이걸 잘할 수 있을까?’ 했는데 3개월 동안 해보니 괜찮은 것 같아요. 지금은 수습 기간이거든요.(웃음)

가락몰에 청년들이 꽤 많은 걸로 알고 있어요. 생각보다 많아요. 회사 그만두고 가업처럼 부모님의 가게에서 일하는 자제분도 많고요. 물건 양이 많고 배달을 해야 하니까 젊은 친구들이 새벽부터 근면 성실하게 일하고 있어요. 열심히 해서 돈 벌면 가게를 사고 또 집을 사는 식이죠. 정말 땀의 현장이에요. 자기가 열심히 일한 만큼 받거든요. 회사에서는 내가 노력한 것보다 적게 받거나 조금 일하고도 많이 받을 때가 있는데 여기는 입력한 만큼 출력돼요. 팔면 와요. 되게 정직한 거죠. 부지런히 움직여서 같은 물건을 더 싸게 사오면 이익이 되는 거고. 명확하고 확실한 선이 있어요.

일과는 어때요? 저녁 7시에 출근해요. 채소마다 경매 시간이 다른데 파 경매는 7시에 시작해요. 산지에서 물건이 올라오면 경매를 해서 그 물건을 사는 거죠. 7시 30분에 가게에 물건이 들어오고 진열을 해요. 8시부터 파를 까기 시작해서 10시에 나가는 손님에게 보내고 10시부터 또 까요. 다음 날 깐 대파가 나가야 하거든요. 겨울이라 요즘엔 쪽파도 많고요. 12시부터 3시까지 손님이 제일 많아요. 한바탕 바쁜 게 끝나면 새벽 3시부터 4시 사이에 점심을 먹어요. 어머니는 오후까지 계시기 때문에 잠깐 눈 붙이고 그동안 제가 물건을 팔아요. 아침 7시쯤 마무리하고 가면 어머니가 정리를 하죠. 들어와서 일어나면 보통 오후 1시나 2시예요.

주 5일도 아닌 걸로 알고 있어요. 주 6일이죠. 농산물은 하루만 지나도 엄청 자라요. 그럼 상품성이 떨어지니까 바로바로 뽑아줘야 해요.

라이프스타일도 많이 변했을 것 같은데요. 너무 소란스러운 곳에서 살다가 고요한 세상으로 온 것 같아요. 우선 저녁에 일하니까 사람 만나기가 여의치 않죠. 그래서 친구들은 주로 토요일 저녁에 만나요. 하고 싶은 것은 토요일에 몰아서 하고 평일 오후에는 집에 있거나 영화 보러 가요. 남들이 안 하는 걸 평일에 할 수 있으니까 그럴 땐 기분이 좋아요. 지금은 조금 정리 중인데, 11월은 힘들었어요. 친한 친구도 많고 그들을 주로 저녁에 만났는데 어느 순간 다 끊긴거예요. 친구들은 내가 잘까 봐 오후에는 연락을 못하고 주말에는 그동안 못 만난 사람을 몰아서 만나니까 생각했던 것만큼 사람을 만나는 게 원활하지 않아서요. 날씨 예보에 민감해진 것도 생활의 변화 중 하나예요. 농산물이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거든요. 아주 추운 날에는 농부들도 일하기 싫겠죠. 그러면 3천 단이 들어오던 파가 1천5백 단으로 줄어요. 그럼 물건값이 오르죠. 비가 와도 마찬가지고요.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머니를 보며 배우고 있어요. 가격은 항상 평균에 맞추고 제품을 몽땅 팔지 않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조금은 남겨놓는 식으로요.

3개월 동안 일해보니 어떤 점이 좋고, 어떤 점이 생각과는 다른가요? 앉아서 펜대만 굴리다가 직접적인 노동을 하는 이 생활이 좋아요. 파를 너무 까서 손가락이 두꺼워졌지만요.(웃음) 직접적인 노동이 들어가지 않으면 돈으로 바꿀 수 없는 세계예요. 물건을 사오고 봉투에 넣어서 손님에게 주는 일련의 모든 행위가 노동의 대가로 받는 거예요. 회사를 그만두면 귀농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이유도 몸을 움직여서 일하는 삶에 대한 동경에서였어요. 원래 돈은 먹고살 수 있을 정도만 벌면서 행복하게 사는 게 좋다고 생각해서 밤낮이 바뀐 것 빼고는 모든 것이 만족스러워요.

본인이 오고 나서 가게에 생긴 변화가 있나요? 다른 가게는 이미 홈텍스, 전자 세금계산서를 쓰는데 우리 가게는 종이 장부를 쓰고 있었어요. 그 방식이 불편해서 떠난 손님들도 있죠. 오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포스 기계를 놓는거였어요.(웃음) 그리고 온라인으로 다양하게 판매할 수 있는 방법을 공부 중이에요. ‘대파 한 뿌리’ 같은 건 이미 많은 곳에서 하고 있어 다른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있어요. 어머니 없이 혼자 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모색 중이고요.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아주 다르게 할 수 있는 곳이거든요. 지금은 파만 팔지만 다른 품목들을 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요즘은 다른 분들을 관찰하고 있어요. 저희 가게 앞에는 나물 가게가 있고 옆에는 우엉, 연근, 마를 파는 집이 있고, 쌈잎 쪽을 파는 분들도 있는데 각자 어떤 시스템으로 운영하는지 지켜봐요. 재밌어요, 신기하고.

직장 생활 5~6년 차에게는 이 이야기가 판타지처럼 들릴 수 있어요. 퇴사해도 이직을 생각한다든지 회사 밖에서는 답을 못 찾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런 분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가요? 제가 퇴사를 결정한 이유는 간단했어요.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그 전이라면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그럼 뭘 해야 하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계속 그 상태였다면 지금도 괴로워하면서 회사를 다니고 있겠죠. 그런데 여기서 이 괴로움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하니까 모든 것이 명확해지더군요. 그런 생각이 안 들면 명확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방법인 것 같아요. 지금 꼭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것만이 길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해요. 내 인생이 중요하지, 회사가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자신의 삶을 좀 더 풍요롭게 사는 게 훗날 인생을 돌아 봤을 때 더 행복하지 않을까요?

회사로 다시 돌아갈 일은 절대 없겠죠?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인턴 3개월 차라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는데, 어느 정도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면 어떤 시간이 올지는 모르겠네요. 옳다고 생각하면 가는 편이라서.(웃음)

디지털 스토킹 리포트

35세의 작가 자라는 남자친구 게리가 자신을 조종하려 든다는 사실을 인스타그램을 하면서 알게 됐다. “올려도 되는 사진과 안 되는 사진을 정해줬어요. 본인이 느끼기에 ‘허세 셀카’ 같거나 야해 보이면 못 올리게 했죠.” 자라가 올린 게시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게리는 곧바로 ‘가식적’이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친구들과 밤에 외출한 사진이라도 올리면 왓츠앱(WhatsApp)으로 비난 메시지를 보냈다. 헤어진 후, 외국으로 떠난 게리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라를 계속 스토킹했다. “지난해 끔찍한 일이 있었어요. 게리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링크드인 등 온갖 채널을 통해 폭언의 메시지를 보내왔어요. 심지어 제가 만난 남자에게도 메시지를 보냈고요. 유령 계정을 만들어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훔쳐보기도 했죠. 이후 너무 불안한 나머지 베타 차단제(β-아드레날린 수용체를 차단하는 약물)를 복용해야 잠들 수 있었고 그가 온라인상에서 나를 쫓아다니며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상상하면 상상할수록 끝없는 불안에 시달려야 했어요.

”어떤 형태로든 한 해 스토킹을 경험하는 사람만 5백만 명에 이르고, 이 중 73퍼센트가 디지털 스토킹을 경험한다.* 그리고 피해자의 80퍼센트가 여성이다. “오늘날 우리는 온라인 안에서 생활하죠. 그 세계에서 한 일이나 방문한 곳의 흔적이 모두 남아요.” 디지털 폭력 피해자를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안티 스토킹 단체인 팔라딘(Paladins)의 설립자 로라 리처드는 말한다. “스토커가 피해자의 행적을 추적할 수 있고 이를 제지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어려운 문제입니다.” 또 자선단체 수지 램플로 트러스트(Suzy Lamplugh Trust)에 따르면 디지털 폭력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도, 피해자 중 단 9퍼센트의 사람만이 이를 범죄로 인식해 경찰에 신고한다고. 즉, 밝혀지지 않는 디지털 스토킹 피해가 더 많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디지털 스토커 역시 여타 성범죄자처럼 스토커 등록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과거 남자친구였던 스티브와 주고받은 사소한 말싸움으로 심각한 상황까지 겪어야 했던 32세의 클로이는 누구보다 스토커 등록제를 환영한다. 2년 전, 처음 데이팅 앱 오케이큐피드(OKCupid)를 통해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만 해도 스티브는 매력적인 남자였다. 그는 의대생이었고 둘은 매주 주말을 함께 보냈다. 하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그는 클로이를 통제하려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때때로 복종에 대한 보상을 주기도 했어요.” 연애 초기, 두 사람이 멕시코로 휴가를 떠날 계획을 세우던 당시를 떠올리며 클로이는 말했다. 클로이가 비키니 왁싱을 하라는 그의 요구를 거부하자 스티브는 클로이의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졌다”며 클로이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졸라대는 통에 클로이가 결국 정기적으로 왁싱을 받기로 하자 스티브는 고마움의 표시로 애정 공세를 퍼부었다. “나를 데리러 와서 키스 해대던 일이 생각나네요. 그때는 좋았으니까 그런 스티브의 잘못된 행동을 어떻게든 합리화했죠.” 스티브가 클로이에게 성형수술 위시 리스트를 보내면서 마침내 일이 터지고 말았다. “가슴 성형, 뱃살 제거, 다이어트, 레이저 제모가 차례로 적혀 있고, 그걸 하면 내가 더 매력적일 것 같다고 하더군요. 스티브가 전부터 다이어트로 압박을 준 탓에 자존감이 산산조각 난 상태였고 거식증까지 생겼어요.” 클로이는 스티브와 헤어진 후 소셜 미디어에서 그를 차단했다. 그때부터 디지털 스토킹이 시작됐다. “피트니스 앱 스트라바(Strava)에서 내 활동을 팔로하더니 제가 데이팅 앱 해픈(Happn)에 가입했더니 거기서도 날 찾아냈어요.”

스토커들은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 없이 홀로 지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이유로 보통 연휴 기간에 이들의 범죄가 더 악화되기도 한다. 웨스트 미들랜드 경찰에 따르면 스토킹 신고 건수는 2017년 12월에 4배나 증가했다고 한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가해자들이 인터넷에 연결된 잠금장치, 스피커, 자동 온도 조절기, 전구, 카메라 등을 이용해 피해자를 괴롭히고 감시하거나 복수 및 제어의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기사를 다뤘고, 이는 스마트 홈 기술의 발전이 또 다른 패턴의 가정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시사한다. 리처드는 자신을 보호하고 싶다면 스마트폰이나 휴대 기기의 GPS 기능을 꺼두라고 조언한다. 수동으로 위치 정보 시스템을 끄지 않으면 많은 경우 애플리케이션이 자동으로 우리의 위치를 추적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리처드는 스토커들이 심지어 가정 내 와이파이 망, 휴대전화 결제 시스템, 포인트 카드를 해킹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2018년 초, 수지 램플로 트러스트는 아마존이나 이베이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도청 장치를 이용해 피해자의 집을 도청하는 스토커들을 경고하기도 했다.

 

나 차단했어?

디지털 스토킹 피해자의 절반은 강제적으로 회사를 그만 둘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스토커의 75퍼센트가 피해자의 직장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클로이의 경우 역시 그랬다. 어느 날 밖에 찾아온 스티브 때문에 클로이는 자정까지 사무실에 남아 있어야 했다. “해픈 앱에서 내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다고 했어요. 그러더니 근처 공중전화기로 내게 전화를 걸었죠.” 결국 그녀는 스티브의 모친에게 전화를 할 수밖에 없었고 스티브는 모친의 설득 끝에 돌아갔다. “그 후로 혼자 집에 가는 게 죽을 만큼 무서워졌어요.” 스티브는 클로이의 구글 캘린더와 이메일을 해킹해 그녀의 연락처에 있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보냈다. 그리고 지난 크리스마스에 그녀는 스티브로부터 무시무시한 메시지를 받았다. ‘파리까지 가서 자전거를 타다니 대단한걸’이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클로이는 스티브에게 이에 대해 이야기한 적도 없고, SNS는 전혀 하지 않으며 온라인에 올리는 내용을 신중하게 걸렀다. “마치 스티브가 ‘나는 늘 널 지켜보고 있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아요.”

 

당장 답해

2018년 11월, 영국의 하원의원 사라 울러스턴은 국회에 스토킹 방지 법안을 제출했다. 경찰에게 더 막강한 힘을 부여해 스토킹 피해자들을 보호하려는 법이다. 울러스턴은 스토커는 소셜 미디어나 이메일을 이용해 피해자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피해자의 친구, 가족, 동료 등 주변인까지 타깃으로 삼는다고 주장하며 이 법안이 스토커들의 인터넷 사용을 감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리처드는 접근 금지 명령 등의 조치는 금세 허점이 생길 것이고, 가해자들은 쉽게 단념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동안 제정한 강제성이 약한 법안은 종잇조각에 불과해요. 집착적인 사람들은 이런 종이 따위에 연연하지 않죠.” 현재로서는 스토커 등록만이 경찰에게 필요한 데이터를 제공해 사전에 범죄를 예방하고, 처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리고 이 제도는 잉글랜드와 웨일즈 여성두 명을 살릴 수 있는 길이기도 했다. 우려했던 끔찍한 일이 17세이던 제이든 파킨슨의 가족에게도 현실로 일어나고 말았다. 2013년 12월 파킨슨은 자신의 전 남자친구 벤블레이클리에게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말한 후 살해당했다. 살인을 벌이기 전 블레이클리는 그녀에게 인터넷상에 리벤지 포르노를 올리겠다고 협박하며 자살하라고 비웃었다. 파킨슨은 블레이클리를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블레이클리가 다리에서 파킨슨을 던져버리겠다고 협박한사실이 명백함에도 사건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직전에 딸의 시체를 확인해야 했죠. 그 모습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아요.” 파킨슨의 어머니 사만타 슈루즈버리는 말했다. “블레이클리는 그날 밤 세 번이나 아이의 목을 졸랐다가 다시 깨어날 때까지 방치하는 일을 반복 했죠. 그런데 단 한 번도 딸에게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았어요. 부모라면 절대 보고 싶지 않은 모습입니다.”스토커 등록은 성범죄자를 감시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연쇄 스토커를 추적하고 감시할 수 있게 해줄 것이며 이들의 미래 연인들에게 위험을 경고해줄 것이다. 결론적으로 스토커 등록은 파킨슨과 같은 여성들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죽음 이후 블레이클리가 과거 연인들을 학대하고 심각한 협박을 일삼은 연쇄 스토커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경찰은 데이터가 없는 까닭에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대부분의 스토커는 연쇄 학대범이므로 더 많은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들을 감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여성 웹사이트 브로들리(Broadly)가 팔라딘과 협력해 언팔로 미(Unfollow Me)라는 캠페인을 시작한 후, 15만7천 명이 스토커 등록법 도입 청원에 지지하는 서명을 했다.

 

증거 수집

만일 전 연인이나 낯선 사람이 자신을 스토킹하는 것 같다면 사건 일지를 작성한다. 전화는 녹취하고 메시지와 이메일은 저장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기록한다. 이 모든 것이 경찰에게 귀중한 증거가 될 것이다.

 

신고하기

가족, 친구, 동료와 경찰에 알려라. 소셜 미디어에서 스토커를 차단하고 스토킹 방지 단체에 연락해 도움을 구하자.

 

정보 차단

온라인상의 비밀번호를 자주 바꾸고 타인이 나에 대한 어떤 정보를 볼 수 있는지 검색해보자. 절대 일정을 온라인상에 공유하지 말자.

 

본능을 믿어라

위험에 처한 것 같다면 곧바로 112를 누르자.

 

위기 대처하기

만일 연인이 소셜 미디어를 통제하려 든다면 연인이 모르는 계정을 만들고 비밀번호를 바꾼다. 그리고 위치 정보를 끄자. 가해자들이 모르도록 현금으로 지불한 휴대전화를 장만한다.

인재 예측 보고서 #아트

회화 김세은

김세은은 2017년 영국 왕립예술학교(RCA) 졸업 이후 런던을 기반으로 작업하는 회화 작가다. 최근 전시 <하루 한 번>에서 보여준 작품은 2018년 8월 런던 말보로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Potholing>에서 처음 소개한 작품 3점 외에는 모두 신작이다. 김세은은 자신이 과거에 직접 본 이미지를 재료로 그림을 완성한다. 이런 이미지는 도시와 부도심에 거주하면서 본 실제 풍경이기도 하고, 실제로 일어난 사건의 인상을 포착한 것이기도 하다.

입체·설치 정지현

정지현은 작가 이주요와 함께 2015년부터 2017년까지 프로젝트 <Dawn Breaks>를 이어왔다. 이 프로젝트는 뉴욕 퀸즈 미술관, 광주비엔날레, 런던의 쇼룸에서 소개됐는데, 이후 솔로로 작품을 소개하기는 오랜만이다. 정지현은 버려져 특정한 쓰임이 사라진 산업 자재를 재료로 조각 작품의 실마리를 얻고 작품을 제작한다. 이 과정에서 사물의 기능이 아닌 재료 자체의 특성이 스스로 의미를 갖게 된다. 정지현은 새해 3월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개인전을 열 예정이다.

입체·설치 최하늘

조각보다는 설치가 더 익숙한 동시대 미술 현장에서 최하늘은 ‘조각’을 다시 고민하기 시작하는 듯하다. 삼차원 공간을 점유한다는 필연적인 조건에서 출발한 그의 조각은 전통 조각의 물성과 존재 양태, 원본과 복제의 문제를 모색하고 대범하게 이차원과 접속을 시도한다. 디지털 시대에 ‘덩어리’를 인식하는 방식, 나아가 그것을 경험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이 청년 작가의 실험은 여전히 낯설고 난해하지만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영상 김희천

데뷔작 <바벨(Lifting Barbell)>(2015)부터 최근작 <메셔(Every Smooth Thing through Mesher)>(2018)에 이르기까지 김희천의 작업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매개로 세상의 이편과 저편 그리고 그 경계를 거침없이 가로지른다.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매혹적인 그의 영상이 더욱 탁월한 것은, 존재와 세계에 대한 근원적인 질
문, 이미 용도 폐기되었다고 간주되던 오래된 그 질문들을 아직 존재하지 않은 방식으로 변주해내기 때문이다.

회화 박정혜

모든 화가에게 캔버스 화면은 어쩌면 또 하나의, 자신만의 완벽한 세계다. 그래서 모더니스트 화가들은 그 화면 속에 스스로를 가두어버렸을까? 그러나 박정혜는 캔버스를 통해 지금, 여기의 세상을 갈망한다. 종이를 오리고 접으며 차원의 전이를 시도하고, 패턴을 분할하며, 소실점을 조정하는 등 부단한 실험으로 축적된 막대한 분량의 작업은 전시장 공간을 점유하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감각하며 현실로의 잠입을 시도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