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나는

책읽이웃 책 김하나 오은

책으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나는

<책읽아웃> 김하나ㆍ오은

취미란에 ‘독서’를 적는 일은 흔하지만, 책 읽는 사람은 점점 줄고 있는 이상한 때. 이들이 나누는 유쾌하고 다정한 대화를 가벼운 마음으로 듣다 보면, 문득 사람이 궁금해져 책을 펼치게 된다. <책읽아웃>은 인터넷 서점 예스24가 만드는 도서 팟캐스트다. 중고 서점 한쪽에 마련된 작은 스튜디오에서 작가 김하나와 시인 오은이 저자를 초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특유의 친근감과 세련된 진행 방식으로 편안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작가의 매력이 자연스레 드러난다. 책으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나는 이 대화는 <김하나의 측면돌파>와 <오은의 옹기종기>라는 이름으로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에 업로드되고 있다. 또 다른 코너인 <삼천포 책방>과 <어떤 책임>에서는 예스24의 웹진 ‘채널예스’의 기자들과 함께 공들여 찾은 보석 같은 책을 소개한다. 그렇게 달려온 지 어느덧 1년. 이를 기념해 얼마 전 개최한 공개방송에서 김하나와 오은은 가능하다면 머리가 하얗게 셀 때까지 <책읽아웃>과 함께하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아마도 별일이 없는 한 이들의 사려 깊은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고, 그렇게 곁에 둘 책도 한 권씩 쌓여갈 것이다.

얼마 전 방송 1주년을 맞아 공개방송을 했다고 들었다. 청취자와의 만남은 어땠나?
김하나 감동 그 자체였다. 방송에 달리는 청취자들의 댓글은 각자 개별적인 반응인 거고, 가끔 조회 수를 전해 듣기도 했지만 그건 숫자일 뿐이니까. 그런데 그분들이 눈앞에 진짜 앉아있는 거다. 서울도 아닌 부산에서 열렸는데도 말이다. 이전 방송을 들어야만 알 수 있는 말을 했을 때 다들 고개를 끄덕이니 그게 물결처럼 보이는 게 신기했다. 오은 서울과 포항, 광주에서 오신 분도 있었다. ‘그때 그 방송’이라 말하면 모두가 같은 순간을 떠올리는 거다. 같은 이야기를 아는 사람끼리 실제로 만나면 더 할 얘기가 많아지지 않나. 한 공간에서 같은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친한 느낌이 들어서 편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처음 본 사이지만 낯설게 느껴지진 않을 것 같다.
김하나 트위터에 이런 반응이 달린 적이 있다. 공개방송에서 청취자들끼리 각자의 아이디를 붙이고 서로 알아보고 인사하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수많은 팟캐스트 중에서 매주 이 방송을 듣는다는 건 어떤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것 아닌가. 우리뿐 아니라 청취자들도 서로 반가워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뭉클했다.

원래 팟캐스트를 자주 들었나? 진행자보다는 게스트 입장이 더 익숙했을 것 같다.
김하나 거의 듣지 않았다. 원래 라디오도 안 듣고 TV도 안 본다. 이전에 딱 한 번 팟캐스트에 게스트로 출연한 적이 있는데, 얼마 후 진행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의가 왔다. 팟캐스트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고 언제까지 할 수 있는 건지 등 많은 생각이 들더라. 그러다 작가를 인터뷰할수 있다는 점이 재밌겠다 싶어 고민 끝에 ‘일단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오은 초반에 김동영 작가가 <책읽아웃>을 진행했는데, 개인적 사정으로 그만두게 됐다. 그때 출연한 적이 있는데, 제작진으로부터 제안을 받아 시작하게 됐다. 그전까지 가끔 팟캐스트에 출연한 적은 있지만, 방송에서 내 목소리를 듣는 건 고역이었다. <책읽아웃> 첫 방송 때는 1시간짜리 방송을 4시간에 걸쳐 겨우 들었다. 이제는 좀 익숙해졌는데, 진행자로서는 오히려 자기 목소리를 더 들어야 할 필요를 느낀다. 듣다 보면 나의 버릇이나 고칠 점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요즘은 더 세심하게 들으려 한다. 그래야 좀 더 나은 방송이 나올 것 같다.

개인적인 모니터링뿐 아니라 청취자들의 피드백도 적극적으로 오가는 듯하다. 그걸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는 자세도 느껴진다. 특히 53화 ‘억양을 흉내 낸다는 것에 대하여’ 편에서 바로 이전 방송 중 외국어를 모사하는 과정에서 희화화했다는 지적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눴다.
오은 팟캐스트의 장점 중 하나는 칭찬하는 의견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거다. 내 경우, 종종 말이 빠르다는 피드백을 받는다. 가끔 청취자가 어떤 불편을 느낀다면 바로 반응이오는 게 나쁘지 않다. 좋게 좋게 넘어가지 않고 때에 맞춰 보내주는 지적이 함께 더 잘 만들자는 신호처럼 느껴져 달갑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들어도 불편 하지 않은 방송을 만들고 싶다. 말씀하신 방송의 경우는 백인 남성부터 시작해서 어떤 건 패러디가 되지만, 어떤 건 하면 안 된다는 논의가 물 흐르듯 세련 되게 진행됐다. 김하나 그런 반응이 왔다는 건 많은 분이 우리 방송을 듣는다는 의미이기도 한다. 아마 불편한 부분을 얘기해도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은 방송은 청취자들이 그런 피드백을 보내지도 않을 거다. 그런 면에서 더 신경을 쓰라는 의미로 좋게 받아들이고 있다.

많은 사람이 감각을 복합적으로, 그리고 빠르게 경험하려 애쓴다. 그런 면에서 귀로만 듣는 팟캐스트는 새롭지만 조금 느린 성질을 가진 매체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심지어 책을 이야기한다.
김하나 팟캐스트와 책은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다. 유튜브 같은 영상은 많은 걸 보여주지만, 팟캐스트는 듣기만 하면서 상상해야 한다. 글을 읽으면서 상상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화려하게 압도하는 건 없지만 조곤조곤 대화하면서 언어를 통해 생각을 주고받는 거다. 책에서 글자로 뭔가를 계속 풀어나가는 것과 맞닿는 느낌이 있다. 책 읽기가 동적인 활동은 아니지 않나. 팟캐스트도 나란히 앉아서 대화만 주고받지만, 그게 책과 호흡이 잘 맞는 것 같다. 오은 비슷한 생각이다. 듣는 건 상상하게 만들고 그 너머를 내다보게 한다. 하지만 책의 구절을 계속해서 읽는다거나 듣는 소설을 표방하는 건 아니다. 우리의 대화를 듣고, 듣다 보니 책을 읽어보고 싶고, 읽다 보니 이 책의 다음에 대해, 저자는 왜 이 책을 썼는지에 대해 상상하게 되는 거다. 자기 스스로 물음표를 늘려가면서 듣다 보면 그게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와 닿는 것 같다.

맞는 말이다. 방송을 듣다 영업당한 책이 몇 권 있다.
김하나 우리는 저자와 이야기를 주고받을 뿐인데 영업력이 장난이 아니라더라. “이 책 꼭 사세요”라고 말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계속해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오히려 책을 영업해야겠다는 마음이 없는 것 일 수도 있다. 오은 저자의 매력을 드러내면 그 사람이 궁금해진다. 하지만 확인할 방도가 없으니 책을 사 보게 된다. 결과적으론 윈-윈이다. 누군가의 삶을 듣고 나를 돌아보는 것, 책을 읽고 또 한 번 그 사람을 떠올리는 것. 두 번의 기회가 있는 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섭외력이 좋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든 회차에서 게스트 각자의 매력이 돋보인다.
오은 우리는 약간 발굴단의 느낌이 있다. 사람의 매력과 빛나는 포인트를 찾으려고 애쓰는 개미 같기도 하고. 특히 김하나 작가는 칭찬 폭격기다. 김하나 카피라이터 출신이다 보니 뿌듯하게 생각하는 점이다. 어떤 걸 왜 해야 하는지, 왜 좋은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직업이었으니 누군가의 호기심을 이끌어낸다는 점에 뿌듯함을 느낀다. 그리고 누군가의 좋은 점을 발견하고 쏟아부어 말하는 것 자체가 좋다.

예스24 중고 서점 한편에 마련된 작은 스튜디오에서 방송을 녹음한다. 거기엔 종종 ‘콧구멍만 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도 한다.
김하나 바로 어제 뇌 과학자이자 임상 심리 전문가인 허지원 교수님과 <김하나의 측면돌파>를 진행했다. 그분이 스튜디오에 들어오면서 한 첫마디가 “넓은데요?”였다. “생각보다 더 작네요”라는 반응만 계속 들어왔는데, 제가 방송에서 하도 ‘콧구멍만 한’ 사이즈를 강조했더니, 오히려 넓게 느끼신 것 같다. 오은 <오은의 옹기종기>에 김봉곤 작가님을 모셨을 때, 스튜디오를 ‘옹기종기 모여 앉기 좋은 사이즈’라고 하셨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군밤을 까먹듯이 단란하게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느낌이 드는 공간이라 방송을 더 사랑스럽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그게 작은 곳에서 일어나는 기적 같은 일을 떠올리게 하고. 물론 올여름엔 더위 때문에 고생 좀 했다.(웃음)

게스트와 나란히 앉아서 방송을 진행하는데, 여느 방송에서 볼 수 없는 아주 가까운 거리감이다.
김하나 더울 때만 아니면 이 거리감이 좋다. 나는 이제 적응이 됐는데, 처음 온 분들이 당황할까 봐 신경이 쓰인다. 오은 실제로 방송을 많이 해본 분들은 당황한다. 일반적인 녹음처럼 마주 보는 형식이 아니니까. 그런데 오히려 그게 더 좋다. 나란히 앉으면 부러 애써서 마주 보게 된다. 그럴 때 교감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싶다.

<책읽아웃>을 처음 듣는 사람에게 추천하는 회차가 있다면?
김하나 43화 ‘장혜영과 장혜정은 멋진 할머니가 될 거예요’를 추천한다. 지난 12월 13일, 개봉한 영화 <어른이 되면>과 동명의 책을 쓰신 장혜영 감독님과의 대화다. 오은 그 방송을 웃으면서 들었는데 듣고 나선 무언가 맺히는 게 있었다. 지금껏 방송을 듣다 운 적이 몇 번 있는데, 그중 한 번이 장혜영 감독님 편이다. <오은의 옹기종기>에서는 56화 ‘김소연 시인이 진짜 원해서 한 일’을 추천한다. 우리 방송은 시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이 나오니까. 김하나 근사한 목소리로 시를 읽어주셨는데, 나는 노을 질 무렵 그 방송을 들었다. 정말 좋았다.

얼마 전 오은 시인이 <어떤 책임> 코너의 몫에 대해 ‘좋아하는 책을 온몸과 온 마음을 다해 소개하는 일’이라 말한 걸 들었다. <책읽아웃>에서 두 분의 몫은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오은 내가 가진 장점 중 하나는 사람의 마음을 쉽게 열어젖히는 친근함이다. 그렇게 친근하게 시작했지만, 대화가 끝나고 갈 때쯤엔 게스트가 그저 좋은 사람과 만난 것으로만 느끼지 않고 자신도 몰랐던 ‘나’를 발견하게 되면 좋겠다. 우리는 스스로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도 모르는 내가 무수히 많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게스트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게 내 몫이라 생각한다. 김하나 비슷하다. 상대가 자신이 드러내고 싶은 모습이 아니라, 자신만이 가진 매력을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하고 세상 밖까지 전달되게 하는 거다. 그런 코너를 만들고 싶다.

<책읽아웃>이 어떤 방송이 되길 바라나?
김하나 글쎄, 바라는 게 없다. 지금까지는 아주 좋고 자연스러웠다고 생각한다. 일단은 이대로 한 발 한 발 내딛고 싶다. 오은 책이든 사람이든 다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있지 않나. 그 이유를 찾아주는 방송이 되길 바란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지만 그게 쌓이면 책 한 권마다, 사람 한 명마다 얼마나 빛나고, 소중하고 아름다운 존재인지 보여줄 거라 믿는다.

PODCAST

첫방송 2017년 10월
에피소드 61회
업로드 매주 목ㆍ금요일책 책읽아웃 팟캐스트 예스24

겨울 산도가 맛있는 집 6

구르미산도

녹은 치즈가 든 듯 부드럽고 달짝지근한 달걀말이 겉을 얇은 삼겹살로 여러 겹 감은 후 튀겨 낸 부타 산도는 ‘겉바속촉’의 정석이다. 스트레스를 잔뜩 받은 날 저녁, 뜨끈하고 기름진 부타 산도 한 입이면 금세 행복해질 것이 분명한 맛. 가격이 저렴해 가벼운 마음으로 캐주얼하게 테이크아웃해서 먹기 좋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연희로1길 29
문의 02-6053-9002

I Am Autumn

크림과 제철 과일로 만드는 후르츠 산도는 ‘카페 아이엠어텀’의 시그니처 디저트. 1백 퍼센트 동물성 생크림에 치즈를 포함해 여섯 가지 재료를 섞어 만드는 크림은 들어가는 과일의 당도에 따라 조금씩 배합을 달리한다. 여타 후르츠 산도보다 묵직하고 치즈의 풍미가 가득한 크림이 강렬하다. 평일 15개 수량 한정으로 판매하니 방문 전 전화로 확인할 것.

주소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로23길 62
문의 010-3390-6080

낙원테산도

‘낙원타코’에서 만든 두 번째 식당이다. 나폴리탄, 오믈렛, 샌드위치, 칵테일 등을 파는 일본 가정식 식당인데 카츠 산도는 돈가스처럼 로스와 히레 중 고를 수 있다. 돼지고기를 저온 숙성해 질기지 않고 촉촉한 식감이 살아 있으며 직접 만드는 코울슬로는 자칫 느끼할 수 있는 식사의 균형을 훌륭하게 잡아준다.

주소 서울시 강남구 봉은사로4길 36
문의 02-555-1540

카페 그리너티

일본에서 살다 온 남매가 그곳에서 먹던 따뜻한 샌드위치를 재현한다. 달걀, 마요네즈, 치즈가 들어가는 다마고 핫 샌드는 어릴 적 먹던 추억의 달걀 샌드위치와 다르지 않은 모습. 팥, 버터, 카야잼이 들어가는 앙버터 핫 샌드도 ‘카페 그리너티’에서만 맛볼 수 있는 메뉴다. 깔끔한 서비스에 기분도 훈훈해지는 곳.

주소 서울시 송파구 풍성로23길 17 1층
문의 010-2992-1691

카페 리에종

‘카페 리에종’은 지나치게 달거나 소스를 더해 자극적으로 만드는 여타 다마고 산도와 노선을 달리한다. 정직한 달걀 맛이 풍부한 이 곳의 다마고 산도는 오믈렛처럼 결이 살아 있고 부드러워 아침에 먹기에도 부담 없다. 자연스러운 노란색을 내기 위해 그날그날 골라 들여오는 신선한 달걀이 한 수.

주소 서울시 강남구 논현로26길 56
문의 02-574-3998

뭉실이산도

일본 유학 시절 5년간 샌드위치 가게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샌드위치를 만드는 ‘뭉실이 산도’. 제철 과일부터 아보카도와 연어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든 샌드위치를 맛볼 수 있다. 맛차 아즈키 산도에 들어가는 말차와 팥은 모두 주인이 직접 만들어 풍미가 깊다. 크림의 식감이 가벼워 디저트로도 좋다.

주소 서울시 용산구 신흥로 97-6 1층
문의 010-5923-1404

다르게 살아보려고요

가락몰종로상회 가락몰 유통인 영화마케팅 프로그래밍

영화인에서 유통인이 됐다고요. 15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하다 몇 달 전 회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가락동 농수산물 도매시장의 ‘종로상회’에서 어머니를 사장으로 모시고 일하고 있어요. 거기서는 상인들을 총칭해서 유통인이라고 불러요.

이전의 커리어 이야기를 잠깐 해볼까요? 대학교 졸업 직후 웹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자연스레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기획자가 됐고, 기획을 하다 보니 PM(마케팅부터 각종 프로그램 집행까지 제품 관련 모든 사항을 컨트롤하는 직책)이 됐어요. 그러다 아는 선배의 권유로 롯데제과 온라인 담당자로 들어갔죠.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마케팅 일을 하게 된 거네요. 그때부터 온라인 마케팅을 했죠. 거기서 2년 반 정도 일했는데 늘 마감에 시달리며 힘들게 일하다가 정시 출퇴근하는 곳으로 오니까 자유 시간도 많고 나름 내 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됐어요. 동시에 ‘슬슬 다른 것을 해봐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죠. 심심해서 뭘 할까 하다, 마케팅을 전공한 게 아니다 보니 제대로 배워봤으면 싶더군요. 학교는 학비가 비싸서 다른 곳을 찾아보다 ‘한겨레 문화학교’라는 곳을 알게 됐어요. 듣고 싶던 마케팅 분야는 이미 마감돼서 다른 것을 둘러보니 ‘영화 마케팅’이 있었어요. 기본적으로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고 ‘온라인 마케팅이나 영화 마케팅이나 비슷하겠지’ 하는 생각에 노느니 그걸 들어보기로 했죠. 수업이 끝나니까 배운 것을 써먹고 싶은 거예요. 그러다 극장 씨네큐브를 위탁 운영하는 ‘백두대간’이라는 회사에서 영화 온라인 마케팅 담당자를 뽑는다는 공고를 보게 됐어요. 주위에서 다들 말렸죠. 영화계는 박봉인데 연봉 깎여서 갈 거냐고요. 하지만 서른 초반이 넘은 당시의 삶이 좀 무료하기도 했고, 앞으로 쭉 무난하게 살게 되리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이때 아니면 언제 해봐?’라는 마음으로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연봉을 깎아서 백두대간으로 옮겼어요. 당시 대표님이 영화계에도 온라인 마케팅을 본격적으로 도입해보고 싶다며 제게 거는 기대가 컸어요. 홈페이지부터 정리하고, 배너도 달고 회원 가입을 적극 유치하니 효과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곧 영화 마케팅뿐 아니라 극장 마케팅도 하게 됐고, 그때부터 프로그래밍도 시작했죠.

어떤 걸 프로그래밍하는 거죠? 어떤 영화를 상영할지, 그 영화를 1관에 넣을지, 상영 회차는 몇 회로, 언제 넣을 것인지, 관객들에게는 어떻게 알릴 것인지. 이걸 혼자 다 했어요. 하다 보니 또 재밌더라고요. 잘되든 안 되든 내가 하는 일에 대한 피드백이 바로 오니까요. 잘되면 ‘더 해야겠다’, 안 되면 ‘이게 안 됐으니 다른 걸 해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잘됐을 때는 성취감도 큰 직종이에요. 온라인 프로 모션을 많이 하다 보니 회원 수도 늘고 그만큼 관객 수도 늘었어요. 18만 명에 머물던 수가 21만 명까지 됐죠. 당시 임원과 직원 가리지 않고 모두 재밌게 일했어요. 그러다 아트하우스 모모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맡게 됐는데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극심해 원형탈모가 왔어요. 더 하다가는 죽을 것 같아서 아트하우스 모모 개관해놓고 그만뒀어요.

힘들었지만 재밌기에 최선을 다한 시간으로 읽히네요.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관객들이 좋아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서 제가 잘못했을 때 미치는 영향이 굉장히 크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이미 씨네큐브는 개인의 소유물을 넘어 공공화된 장소예요.많은 사람들이 그 공간을 통해 예술 영화를 알게 되고 추억도 쌓았죠. 씨네큐브가 지닌 가치를 잘 알고 있으니 대충 할 수 없더군요. 그래서 최선을 다했어요. 내가 가진 모든 걸 쏟아부었죠. 그만두고 3~4개월을 편하게 놀다가 영화 배급회사에서 잠깐 일하던 와중에 씨네큐브를 새로운 회사인 티캐스트가 운영하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백두대간에서 하던 일을 급하게 인수인계해야 하는 상황이 됐고 그 일이 제게까지 왔어요. 그래서 다시 가게 됐죠. 그렇게 씨네큐브에서 2009년부터 작년까지 일했으니 9년 동안 몸담았네요. 영화인으로서는 12년을 보냈고요.

물론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퇴사를 마음먹은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퇴사 3년 전부터 스트레스가 극심했어요. 항상 좋은 관계에서만 일을 해왔는데 처음으로 인간관계에 대한 스트레스가 온 거죠. 나름 꽤 긴 인생을 살아왔지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종류의 스트레스였어요. 조금씩 퇴사를 생각하던 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갑자기 쓰러지셨죠. 일을 치르고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어요. 아버지는 건강하셨거든요. 나도 언젠가 이렇게 될 수 있다는 걸 실감했고 뭘 하는 게 삶에 의미가 있을지 생각해보게 됐어요.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편안하고 즐거운 것을 찾으면서 생활해야겠다는 생각이 조금씩 든 거죠. 그래서 퇴사했어요.

직장 생활 15년 차. 이직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 연차에 회사를 나오면 보통 무언가를 차리거나 만들죠. 전혀 관계가 없는 유통인의 삶을 떠올린 계기는 무엇인가요. 부모님이 30년 동안 같이 하시던 일이에요. 저도 어릴 때 바쁘면가게에 나가서 도와드리곤 했죠. 물건 나르고 상품을 예쁘게 진열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혼자는 하기 힘든데 오랫동안 해온 걸 쉽게 접을 수도 없었죠. 그래서 같이 하기로 했어요. 업으로 삼겠다는 큰 결심보다 한번 해보자는 느낌. 제 커리어의 모든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이 있다면, 앞서 경험한 모든 것은 다음 업종으로 전환했을 때 큰 토대나 바탕이 되어 새롭게 시작하는 업무에 보탬이 된다는 거예요. 해당 분야의 베테랑은 가지고 있지 않은 저만의 장점이기도 하죠. 여기서 나는 초보지만 숙련 단계에 이르러 잘됐을 때 이전에 경험한 것들을 여기에 첨가하거나 그때의 시각을 활용하면 잘할 수 있겠다는 이상한 자신감이 있어요.

경험을 통해 습득한 믿음인 거죠. 극장에서 전산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다들 어려워해요. 저는 이미 경험해봤기 때문에 프로그램이나 전산 하는 사람들의 언어로 문제를 볼 수 있고 훨씬 빨리 해결할 수 있었죠. 내 경험이 바탕이 된다는 믿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인스타그램으로 퇴근 일기를 포스팅하고 있어요. ‘다르게 살아보려고요’라는 해시태그가 마음에 와닿더군요. 학교 다닐 때 모범생으로 항상 그 기준에 맞춰 살아왔어요. ‘나는 자유분방한 사람인데 왜 그렇게 공부만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면서 이제까지 그렇게 살았으니 다르게 살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더군요. 그렇게 살다가 나랑 안 맞으면 또 다르게 살아가도 좋고요. 처음엔 물론 ‘과연 내가 후회하지 않고 이걸 잘할 수 있을까?’ 했는데 3개월 동안 해보니 괜찮은 것 같아요. 지금은 수습 기간이거든요.(웃음)

가락몰에 청년들이 꽤 많은 걸로 알고 있어요. 생각보다 많아요. 회사 그만두고 가업처럼 부모님의 가게에서 일하는 자제분도 많고요. 물건 양이 많고 배달을 해야 하니까 젊은 친구들이 새벽부터 근면 성실하게 일하고 있어요. 열심히 해서 돈 벌면 가게를 사고 또 집을 사는 식이죠. 정말 땀의 현장이에요. 자기가 열심히 일한 만큼 받거든요. 회사에서는 내가 노력한 것보다 적게 받거나 조금 일하고도 많이 받을 때가 있는데 여기는 입력한 만큼 출력돼요. 팔면 와요. 되게 정직한 거죠. 부지런히 움직여서 같은 물건을 더 싸게 사오면 이익이 되는 거고. 명확하고 확실한 선이 있어요.

일과는 어때요? 저녁 7시에 출근해요. 채소마다 경매 시간이 다른데 파 경매는 7시에 시작해요. 산지에서 물건이 올라오면 경매를 해서 그 물건을 사는 거죠. 7시 30분에 가게에 물건이 들어오고 진열을 해요. 8시부터 파를 까기 시작해서 10시에 나가는 손님에게 보내고 10시부터 또 까요. 다음 날 깐 대파가 나가야 하거든요. 겨울이라 요즘엔 쪽파도 많고요. 12시부터 3시까지 손님이 제일 많아요. 한바탕 바쁜 게 끝나면 새벽 3시부터 4시 사이에 점심을 먹어요. 어머니는 오후까지 계시기 때문에 잠깐 눈 붙이고 그동안 제가 물건을 팔아요. 아침 7시쯤 마무리하고 가면 어머니가 정리를 하죠. 들어와서 일어나면 보통 오후 1시나 2시예요.

주 5일도 아닌 걸로 알고 있어요. 주 6일이죠. 농산물은 하루만 지나도 엄청 자라요. 그럼 상품성이 떨어지니까 바로바로 뽑아줘야 해요.

라이프스타일도 많이 변했을 것 같은데요. 너무 소란스러운 곳에서 살다가 고요한 세상으로 온 것 같아요. 우선 저녁에 일하니까 사람 만나기가 여의치 않죠. 그래서 친구들은 주로 토요일 저녁에 만나요. 하고 싶은 것은 토요일에 몰아서 하고 평일 오후에는 집에 있거나 영화 보러 가요. 남들이 안 하는 걸 평일에 할 수 있으니까 그럴 땐 기분이 좋아요. 지금은 조금 정리 중인데, 11월은 힘들었어요. 친한 친구도 많고 그들을 주로 저녁에 만났는데 어느 순간 다 끊긴거예요. 친구들은 내가 잘까 봐 오후에는 연락을 못하고 주말에는 그동안 못 만난 사람을 몰아서 만나니까 생각했던 것만큼 사람을 만나는 게 원활하지 않아서요. 날씨 예보에 민감해진 것도 생활의 변화 중 하나예요. 농산물이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거든요. 아주 추운 날에는 농부들도 일하기 싫겠죠. 그러면 3천 단이 들어오던 파가 1천5백 단으로 줄어요. 그럼 물건값이 오르죠. 비가 와도 마찬가지고요.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머니를 보며 배우고 있어요. 가격은 항상 평균에 맞추고 제품을 몽땅 팔지 않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조금은 남겨놓는 식으로요.

3개월 동안 일해보니 어떤 점이 좋고, 어떤 점이 생각과는 다른가요? 앉아서 펜대만 굴리다가 직접적인 노동을 하는 이 생활이 좋아요. 파를 너무 까서 손가락이 두꺼워졌지만요.(웃음) 직접적인 노동이 들어가지 않으면 돈으로 바꿀 수 없는 세계예요. 물건을 사오고 봉투에 넣어서 손님에게 주는 일련의 모든 행위가 노동의 대가로 받는 거예요. 회사를 그만두면 귀농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이유도 몸을 움직여서 일하는 삶에 대한 동경에서였어요. 원래 돈은 먹고살 수 있을 정도만 벌면서 행복하게 사는 게 좋다고 생각해서 밤낮이 바뀐 것 빼고는 모든 것이 만족스러워요.

본인이 오고 나서 가게에 생긴 변화가 있나요? 다른 가게는 이미 홈텍스, 전자 세금계산서를 쓰는데 우리 가게는 종이 장부를 쓰고 있었어요. 그 방식이 불편해서 떠난 손님들도 있죠. 오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포스 기계를 놓는거였어요.(웃음) 그리고 온라인으로 다양하게 판매할 수 있는 방법을 공부 중이에요. ‘대파 한 뿌리’ 같은 건 이미 많은 곳에서 하고 있어 다른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있어요. 어머니 없이 혼자 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모색 중이고요.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아주 다르게 할 수 있는 곳이거든요. 지금은 파만 팔지만 다른 품목들을 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요즘은 다른 분들을 관찰하고 있어요. 저희 가게 앞에는 나물 가게가 있고 옆에는 우엉, 연근, 마를 파는 집이 있고, 쌈잎 쪽을 파는 분들도 있는데 각자 어떤 시스템으로 운영하는지 지켜봐요. 재밌어요, 신기하고.

직장 생활 5~6년 차에게는 이 이야기가 판타지처럼 들릴 수 있어요. 퇴사해도 이직을 생각한다든지 회사 밖에서는 답을 못 찾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런 분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가요? 제가 퇴사를 결정한 이유는 간단했어요.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그 전이라면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그럼 뭘 해야 하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계속 그 상태였다면 지금도 괴로워하면서 회사를 다니고 있겠죠. 그런데 여기서 이 괴로움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하니까 모든 것이 명확해지더군요. 그런 생각이 안 들면 명확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방법인 것 같아요. 지금 꼭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것만이 길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해요. 내 인생이 중요하지, 회사가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자신의 삶을 좀 더 풍요롭게 사는 게 훗날 인생을 돌아 봤을 때 더 행복하지 않을까요?

회사로 다시 돌아갈 일은 절대 없겠죠?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인턴 3개월 차라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는데, 어느 정도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면 어떤 시간이 올지는 모르겠네요. 옳다고 생각하면 가는 편이라서.(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