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난 변화 고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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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터드 컬러 시스루 셔츠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

FILM
<독전>

너 그거 아냐? 어떤 한 인간을 미친 듯이 집착하다 보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신념 같은 게 생기거든.

“신념에 대한 문장이 멋지게 다가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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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브리스 실크 드레스 로로 피아나(Loro Piana), 이어링 넥트 바이 일레란느(NECT by ILLE LAN).

“지난 젠더프리 영상을 보면서 하나의 주제를 재미있게 푼 점이 무엇보다 좋았다. 주변에 그 영상을 본 친구가 많았는데, 배우로서 한번 해보고 싶은 기획이었다. 아직 영화나 드라마 속 캐릭터 중에는 주체적이고 어떤 중심이 되는 여성 캐릭터가 많지 않다. 누아르 영화를 보면 남자 배우가 하는 역할이 자꾸 탐나는 것도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남자 선배가 한 대사를 나만의 해석으로 할 수 있어 더 재미있는 작업으로 느껴졌다.” 언제부턴가 정치 문제나 사회 이슈에 관심을 갖게 되면 자기주장이 강해지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다. 애써 외면하고 싶은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한 시간도 있다. 하지만 요즘은 다양한 매개체를 통해 가치관이 쌓이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는 사람들 마음속 불을 타오르게 하는 것 같다.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기도, 반성하게 하기도 하지 않나. 나 역시 다큐멘터리 작품이나 시대를 반영한 영화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올해 나이가 서른에 접어들며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배우의 모습에 대한 생각에도 변화가 생겼다. “20대는 내가 만든 욕심과 독기 때문에 더 힘들고 지나치게 치열했다. 그런데 이제는 반짝이는 것을 좇는 대신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가 되고 싶어졌다. “세상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문제가 많아 보이지만, 과거에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을 이제야 인지하는 것 같다. 젠더 감성과 관련된 것뿐 아니라 침묵을 강요당한 문제를 고민하고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한 시대를 사는 사람끼리 차근차근 바꿀 수 있다면, 나 역시 좋은 변화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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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영화 문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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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수트 에스카다(Escada).

FILM
<올드보이>

있잖아. 사람은 말야. 상상력이 있어서 비겁해지는 거래. 그러니까 상상을 하지 말아봐. 용감해질 수 있어.

“보통 용감한 건 좋고 비겁한 건 좋지 않은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이 대사를 읽는 순간 그 반대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물론 극 중에서는 나쁜 놈이 말하는 궤변이지만 우리가 살면서 늘 용감할 수만은 없고 비겁할 때도 있어요. 용감함과 비겁함에 대한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 한 해 영화계에도 변화의 움직임이 일었다. 임순례 감독과 심재명 대표가 이끄는 한국영화성평등센터(이하 성평등센터) ‘든든’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응원하기도 했고, 성평등 문화 실태 조사를 위한 논문도 봤다. 많은 이들이 든든을 위해 힘쓰고 있으며, 또 든든을 통해 많은 사람이 법률 자문 등 도움을 받는다. 물론 페미니즘은 여전히 예민한 이슈다. 그렇다고 해서 피하기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생각하는 바를 잘 나누고 다른 의견도 듣고 조율하며, 좋지 않은 문화라고 생각하는 것을 개선한다면 더 나아지리라 생각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젠더프리(Gender-free) 기획을 함께한 배우 문소리는 지난 1년간 영화계에 일어난 변화를 말했다. 성평등센터 든든은 본격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고, 영화와 드라마 속 여성 배우가 연기하는 인물은 더욱 다양해졌다. “얼마 전 <뺑반>을 봤다. 만삭인 형사도 등장하고 여자 경찰 상사들이 줄줄이 나오는데, 이를 두고 익숙하지 않다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지금 낯선 것이 앞으로는 익숙해질 수 있다. 그런 것이 변화 아니겠는가.” 젠더를 대하는 변화의 움직임은 이뤄지고 있다. “얼마 전 딸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학생 번호를 정할 때 남자아이는 1번
부터, 여자아이는 끝 번호부터 매기는 것을 알았다. 오래된 학교라 예전 방식을 그대로 시행하는 거다. 숫자 자체에는 차별이 담기지 않았지만, 남자아이에게 당연히 1번을 부여하는 게 어린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 않겠나. 그런 와중에 다른 학부형들 모인 자리에 가게 되었고, 이를 얘기했더니 변화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이후 학교에 정식으로 건의를 했고 올해부터 방식을 바꾼다고 하더라. 아주 작은 일이지만 그렇게 조금씩 좋은 변화가 일고 있다. 어떤 사람은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부담스럽게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젠더에 관한 의견을 말하는 것이 그리 대단한 일인가 싶다. 우리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할 수는 없다. 나는 다만 지금의 움직임이 우리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며, 너무 큰 싸움이 일어나지 않고 의견을 말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으면 좋겠다.”

“영호 씨, 그 꿈이요. 좋은 꿈이었으면 좋겠어요.” 언젠가 문소리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대사로 영화 <박하사탕>의 이 대사를 꼽았다. 영화를 시작했을 때 지녔던 마음과 자신이 꾸는 꿈도 좋은 꿈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요즘 꾸는 좋은 꿈이라면, 의미 있는 것을 만들고 찾으며 살아야겠다 싶다는 거다. 예전에는 죽는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영원히 살 것처럼 정신없이 달렸는데, 이제야 비로소 언젠가 사람은 죽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 삶에 의미를 불어넣을 수 있는 꿈을 꾸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술을 하는 게 아닐까. 예술은 삶에 의미가 되기도 하고 또 위로를 주기도 하며 가장 재미 있는 방식의 공부다.” 그리고 예술은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지녔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마음이 움직여야 한다. 신영복 선생의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는 이런 글귀가 나온다. “머리 좋은 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은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은 발 좋은 것만 못한 법입니다.” 마음이 움직여 생각의 변화로 이어지고 실천하고 같이 움직여야 한다. <마리끌레르>의 젠더프리 같은 기획이 오랫동안 계속되다 보면 사람들 마음도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맥락의 일이 다양하고 더 재미난 방식으로 지속되어야 한다. 변한다고 우리의 삶이 큰 손해를 보는 건 아니다. 여러 사람과 행복하게 지낼 수 있으면 그게 좋은 일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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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상 김향기

FILM
<로미오와 줄리엣>

당신 사랑을 못 받는다면 이대로 들켜버리는 게 낫소. 당신의 사랑도 없이 지루하게 사느니 그들의 미움에 죽겠소.

““대사를 보는 순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사만 봤을 때는 남자의 대사인지 여자의 대사인지 티가 안 나잖아요. 원작에는 로미오의 대사지만 그 점을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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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링 네크라인 셔츠 원피스 2 몽클레르 1952(2 Moncler 1952), 화이트 스니커즈 컨버스(Converse).

“지난 젠더프리 영상이 큰 화제이지 않았나. 한 편의 작품은 아니지만 다양한 모습을 표현할 수 있는 게 좋았다. 마치 새로운 내 작품을 만드는 것처럼.”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젠더프리 리딩을 함께한 배우 김향기는 영화 <증인>에서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학생이자 살인 사건의 목격자 ‘지우’를 연기했다. “특징이 뚜렷한 인물이다 보니 영화에 잘 녹아들지 걱정이었다. 지우와 비슷한 상황의 친구나 그 가족이 봤을 때 마음이 불편할지 모른다는 부담감도 있었다.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으니까. 촬영에 들어가서는 감독님이 틀을 정하지 말고 지우를 표현해보라고 했다. 그래서 자폐 스펙트럼의 기본 특징만 파악하고 계산하지 않고 연기했다.” 김향기가 대본을 보고 중요하게 생각한 지점은 성장이었다. 지우와 소통하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며 함께 성장하고 싶었다. 그리고 극의 끝에서는 미소 지을 수 있는 인물을 만들고자 했다. “물론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지우뿐만 아니라 영화 속 많은 인물이 그렇지 않을까. 하지만 편견을 깨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생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출연한 두 작품인 <영주>와 <증인>은 모두 약한 존재가 주인공이다. 스무 살의 김향기가 경험하지 않은 생의 부분일 것이다. 그리고 항상 고민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연기는 혼자만의 작업이 아니니 감독님을 비롯한 스태프와 호흡을 맞추며 인물을 표현해 나간다. 그렇게 인물을 만들어가다 보면 희열감을 느끼게 된다. “차성덕 감독님이 연출한 <영주>는 다른 영화보다 짧은 기간에 촬영을 마쳤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완성한 작품을 처음 봤는데, 보는 순간 ‘차성덕 감독님 작품이구나’ 싶었다. 대사가 많지 않지만 감정이 중요한 작품인데 특유의 섬세함이 작품에 그대로 드러났다. 영주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 모두 상황만 봤을 때는 미울 법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상황과 감정을 만들어냈다.” 새로운 인물을 만나는 일은 힘들기는 해도 극복하고 싶고 소중한 일이다. “이 일을 직업으로 삼았건, 그러지 않았건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영화가 다루는 것이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니고, 오히려 새로운 것을 자유롭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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