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는 장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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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사이즈 셔츠 로우클래식(Low Classic).

FILM
<비스티 보이즈>

이 어지러운 세상. 사랑과 정열을 위해 파이팅 하자.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늘 혼돈스럽고 어지럽고 고민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럼에도 파이팅을 외쳐야죠. 짧고 간결한 문장이지만 요즘의 제 정서에 확 와닿았어요.”

 


 

“우연히 젠더프리 리딩 영상을 본 적 있는데, 여자 배우들이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웠다. 남자 배우들이 한 대사를 각각 다른 배우들이 원작과 전혀 다른 느낌으로 자신의 색깔대로 표현하는 점도 매력적이었고. 영화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다. 소통하며 치유받기도 하고. 그래서 인간의 마음을 직접 움직일 수도 있다. 이번 영상도 비슷한 맥락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배우 장영남에게 가장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는 캐릭터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틸다 스윈턴이 연기한 인물이다. 분량이 많지 않았음에도 차 안에서 사랑한다고 말한 뒤 아쉬움 가득한 눈빛을 보내고 떠나는데, 짧은 순간 관객에게 감정을 각인하는 연기가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다. “그간 강인한 인물을 많이 연기했다. <증인>의 자폐아 엄마도, <협상>의 형사도 그렇고. 지금보다 더 다양한 역할에 대한 갈증도 있다. 그런데 영화계에서 이건 하나의 구조적 문제이기에 쉽게 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새로운 작품과 캐릭터가 끊이지 않고 나오고, 그런 캐릭터가 하나 둘 많아지면서 관객의 호응으로 이어지다 보면 더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겠지. 급변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희망은 품고 있다.”

오랜 시간 배우의 길을 걸어온 선배로서 이제 배우 세계에 들어온 이들에게 흔들리지 말고 이 길을 나아가라 말하고 싶다. “사람이니까 흔들릴 수 있고 약해질 수도 있지 않나. 그런 순간에도 자기 중심을 잃지 않으면 좋겠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애정과 중심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환경이 달라지다 보니 여러 가지로 혼란스럽고 복잡한 때가 있었다. 오늘 젠더프리 리딩으로 준비한 대사처럼 ‘어지러운 세상’으로 느껴졌다. 결국 나를 믿어줄 사람은 나 자신이다.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 직업이지만 나 자신이 사랑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견디기 어려운 순간이 오더라도 그것만은 지킬 수 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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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난 변화 고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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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터드 컬러 시스루 셔츠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

FILM
<독전>

너 그거 아냐? 어떤 한 인간을 미친 듯이 집착하다 보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신념 같은 게 생기거든.

“신념에 대한 문장이 멋지게 다가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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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브리스 실크 드레스 로로 피아나(Loro Piana), 이어링 넥트 바이 일레란느(NECT by ILLE LAN).

“지난 젠더프리 영상을 보면서 하나의 주제를 재미있게 푼 점이 무엇보다 좋았다. 주변에 그 영상을 본 친구가 많았는데, 배우로서 한번 해보고 싶은 기획이었다. 아직 영화나 드라마 속 캐릭터 중에는 주체적이고 어떤 중심이 되는 여성 캐릭터가 많지 않다. 누아르 영화를 보면 남자 배우가 하는 역할이 자꾸 탐나는 것도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남자 선배가 한 대사를 나만의 해석으로 할 수 있어 더 재미있는 작업으로 느껴졌다.” 언제부턴가 정치 문제나 사회 이슈에 관심을 갖게 되면 자기주장이 강해지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다. 애써 외면하고 싶은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한 시간도 있다. 하지만 요즘은 다양한 매개체를 통해 가치관이 쌓이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는 사람들 마음속 불을 타오르게 하는 것 같다.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기도, 반성하게 하기도 하지 않나. 나 역시 다큐멘터리 작품이나 시대를 반영한 영화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올해 나이가 서른에 접어들며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배우의 모습에 대한 생각에도 변화가 생겼다. “20대는 내가 만든 욕심과 독기 때문에 더 힘들고 지나치게 치열했다. 그런데 이제는 반짝이는 것을 좇는 대신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가 되고 싶어졌다. “세상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문제가 많아 보이지만, 과거에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을 이제야 인지하는 것 같다. 젠더 감성과 관련된 것뿐 아니라 침묵을 강요당한 문제를 고민하고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한 시대를 사는 사람끼리 차근차근 바꿀 수 있다면, 나 역시 좋은 변화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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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영화 문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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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수트 에스카다(Escada).

FILM
<올드보이>

있잖아. 사람은 말야. 상상력이 있어서 비겁해지는 거래. 그러니까 상상을 하지 말아봐. 용감해질 수 있어.

“보통 용감한 건 좋고 비겁한 건 좋지 않은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이 대사를 읽는 순간 그 반대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물론 극 중에서는 나쁜 놈이 말하는 궤변이지만 우리가 살면서 늘 용감할 수만은 없고 비겁할 때도 있어요. 용감함과 비겁함에 대한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 한 해 영화계에도 변화의 움직임이 일었다. 임순례 감독과 심재명 대표가 이끄는 한국영화성평등센터(이하 성평등센터) ‘든든’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응원하기도 했고, 성평등 문화 실태 조사를 위한 논문도 봤다. 많은 이들이 든든을 위해 힘쓰고 있으며, 또 든든을 통해 많은 사람이 법률 자문 등 도움을 받는다. 물론 페미니즘은 여전히 예민한 이슈다. 그렇다고 해서 피하기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생각하는 바를 잘 나누고 다른 의견도 듣고 조율하며, 좋지 않은 문화라고 생각하는 것을 개선한다면 더 나아지리라 생각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젠더프리(Gender-free) 기획을 함께한 배우 문소리는 지난 1년간 영화계에 일어난 변화를 말했다. 성평등센터 든든은 본격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고, 영화와 드라마 속 여성 배우가 연기하는 인물은 더욱 다양해졌다. “얼마 전 <뺑반>을 봤다. 만삭인 형사도 등장하고 여자 경찰 상사들이 줄줄이 나오는데, 이를 두고 익숙하지 않다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지금 낯선 것이 앞으로는 익숙해질 수 있다. 그런 것이 변화 아니겠는가.” 젠더를 대하는 변화의 움직임은 이뤄지고 있다. “얼마 전 딸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학생 번호를 정할 때 남자아이는 1번부터, 여자아이는 끝 번호부터 매기는 것을 알았다. 오래된 학교라 예전 방식을 그대로 시행하는 거다. 숫자 자체에는 차별이 담기지 않았지만, 남자아이에게 당연히 1번을 부여하는 게 어린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 않겠나. 그런 와중에 다른 학부형들 모인 자리에 가게 되었고, 이를 얘기했더니 변화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이후 학교에 정식으로 건의를 했고 올해부터 방식을 바꾼다고 하더라. 아주 작은 일이지만 그렇게 조금씩 좋은 변화가 일고 있다. 어떤 사람은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부담스럽게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젠더에 관한 의견을 말하는 것이 그리 대단한 일인가 싶다. 우리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할 수는 없다. 나는 다만 지금의 움직임이 우리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며, 너무 큰 싸움이 일어나지 않고 의견을 말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으면 좋겠다.”

“영호 씨, 그 꿈이요. 좋은 꿈이었으면 좋겠어요.” 언젠가 문소리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대사로 영화 <박하사탕>의 이 대사를 꼽았다. 영화를 시작했을 때 지녔던 마음과 자신이 꾸는 꿈도 좋은 꿈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요즘 꾸는 좋은 꿈이라면, 의미 있는 것을 만들고 찾으며 살아야겠다 싶다는 거다. 예전에는 죽는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영원히 살 것처럼 정신없이 달렸는데, 이제야 비로소 언젠가 사람은 죽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 삶에 의미를 불어넣을 수 있는 꿈을 꾸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술을 하는 게 아닐까. 예술은 삶에 의미가 되기도 하고 또 위로를 주기도 하며 가장 재미 있는 방식의 공부다.” 그리고 예술은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지녔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마음이 움직여야 한다. 신영복 선생의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는 이런 글귀가 나온다. “머리 좋은 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은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은 발 좋은 것만 못한 법입니다.” 마음이 움직여 생각의 변화로 이어지고 실천하고 같이 움직여야 한다. <마리끌레르>의 젠더프리 같은 기획이 오랫동안 계속되다 보면 사람들 마음도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맥락의 일이 다양하고 더 재미난 방식으로 지속되어야 한다. 변한다고 우리의 삶이 큰 손해를 보는 건 아니다. 여러 사람과 행복하게 지낼 수 있으면 그게 좋은 일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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