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투 페미니즘, 영화 7

남성의 이름이 역사의 정도가 아니라는 확신이 든다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2019)

18세기 초 영국을 통치했던 앤 여왕을 주인공으로 한 시대극. 이렇게 말하면 머릿속에 자동적으로 어떤 그림이 떠오른다. 사치스러운 차림새로 화려한 왕궁을 드나드는 왕족과 귀족들. 한데 이 영화에는 그 익숙한 풍경을 처음 보듯 새롭게 느끼게 하는 힘이 있다. 이 영화는 철저히 앤 여왕(올리비아 콜맨)과 오랜 심복 사라(레이첼 와이즈), 여왕의 관심을 새롭게 받는 하녀 애비게일(에마 스톤), 세 여성의 삼각관계에 주목한다. 욕망과 권력과 애정이 소용돌이치고, 인간의 나약함과 어리석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삼각관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아무리 여왕의 시대라해도, 여성 캐릭터 대다수가 권력가 남성 사이에서 희생되거나 그 침대를 노려야 하는 기존의 시대극과 확실히 다르다. 이 영화의 세 여성은 그들의 성적, 정치적 욕망을 서슴없이 드러낸다. 여왕이 사라에게 “난 그 애(애비게일)가 입으로 해주는 게 좋아!”라고 할 정도니 말 다 했다. 자신의 성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남성을 내세울 필요가 없다. 그 풍경이 이렇게까지 새롭고 짜릿하게 느껴지다니. 페미니즘은 결국 지금껏 차별받은 존재의 가치를 되돌아보는 인간적인 행위다. 최근 한국의 사극영화가 꽤 지겹게 느껴졌는데, 이 영화에서 희망을 봤다. 교과서를 가득 채운 남성의 이름이 역사의 정도가 아니라는 확신이 든다. 어느 시대든 숱한 여성들이 살았고, 각자 욕망을 품었고, 그걸 이루기 위해 부단히 움직였다. ‘남자들의 시대’라는 꼬리표에 더 이상 숨지 말고, 그들의 이야기를 발굴하라. writer 장성란(영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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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무력하다고 생각하는가?
<와즈다>(2012)

리지 보든, 아그니에슈카 홀란트 같은 선구자들이 만든 페미니즘 영화를 허겁지겁 삼키듯 찾아 보던 시절이 있다. 그러면서 얻은 건, 젠더 이슈에 무지했던 이전의 나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강력한 예감이다. 동시에 바람도 생겼다. 보다 대중적인 화법의 페미니즘 영화를 만날 순 없을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날아온, 심지어 그 나라 최초의 장편인 <와즈다>는 그 바람을 이뤄준 작품이다. 여성이 자전거를 타는 것이 금지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자전거로 씽씽 달리고 싶은 열 살 소녀의 이야기다. 소녀가 자전거를 사기 위해 쟁취하려는 건, 깜찍하게도 교내 코란 경전 퀴즈 대회의 우승 상금이다. 자전거를 타는 것도 불가능한데 영화를 찍는 게 가당키나 한가. 이 작품을 연출한 여성 감독 하이파 알 만수르는 살해 위협에 시달리며 차량 안에 숨어서 무전기로 현장을 지휘했다. 금기의 벽을 부수고 달려 나가려는 의지로 똘똘 뭉친 이 유쾌한 영화의 힘은 놀랍다. 개봉 이후의 반향 덕분에 율법이 바뀐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들은 2013년 4월부터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됐다. 영화가 무력하다고 생각하는가? 영화는 세상을, 여성의 삶을 바꿀 수 있다. <와즈다>는 그 짜릿한 증거다. writer 이은선(영화 저널리스트)

진짜 공포는 지선이 ‘엄마답지 않다’는 관객의 이의 제기였다
<미씽: 사라진 여자>(2016)

페미니즘이 성별에 대한 낡은 사고를 새롭게 바라본다는 의미라면 내게 그런 계기를 준 영화는 <미씽: 사라진 여자>다. 일하는 여자에게 워킹맘은 이미 현실이거나 닥쳐올 현실. 이혼한 워킹맘인 주인공 지선(엄지원)이 믿고 의지하던 보모 한매(공효진)에게 어린 딸이 유괴된다는 설정부터 오싹했다. 하지만 진짜 공포는 지선이 ‘엄마답지 않다’는 관객의 이의 제기였다. 퇴근하자마자 급히 남은 일을 처리하느라 아이가 사라진 사실을 뒤늦게야 아는 것을 두고 하는 지적이다. 격무에 시달리는 워킹맘이 그날 따라 바쁜 사정이 있었다는 묘사가 충분했음에도 말이다. 이런 반응이 마치 엄마인 여성이 단 한순간이라도 모성애 외의 다른 동기로 움직였다는 사실 자체에 화를 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남성이 주인공이었어도 같은 장면에서 비난받았을까? 이 영화를 준비하며 이언희 감독은 어떤 남성 영화인에게 “남편한테 밥 안 해주죠?” 란 말을 들었단다. 이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뼈저리게 드러난다. writer 나원정(중앙일보 영화 담당 기자)

생사를 다투는 순간 앞에 남성과 여성이 아닌 오직 인간만이 있을 뿐이다
<버드 박스>(2018)

맬러리(샌드라 블록)는 때로 거칠게 아이들을 몰아붙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버드 박스>는 공기 중에 퍼진 무언가에 노출된 모든 사람이 곧바로 자살하는 괴현상에서 살아남아 두 아이를 지키는 맬러리의 이야기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에 흔히 나오는 ‘가족을(지구를) 지키는 남자, 아이들을 챙기며 뒤에 서있는 여자’의 구도는 이 영화 어디에도 없다. 영화는 시작점에서부터 설명한다. 냉정하게 출산을 기다리는 미혼모이자 화가인 맬러리에게 전형적인 엄마의 모습은 기대할 수 없을 거라고. 이후 감독 수잔 비에르는 여성인 맬러리가 아닌 재난 이후의 생존 과정에 집중하며 재난영화의 본분에 충실한다. 생사를 다투는 순간 앞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아닌 오직 인간만이 있을 뿐이니까. 인근의 유일한 생존자가 된 맬러리는 최후의 수단으로 급류 위에서 나룻배를 타고 안전하다고 믿는 곳으로 떠난다. 눈을 가리고 오직 감각에만 의지한 채 외부의 모든 것으로부터 자신과 유일한 미래일지 모르는 아이들을 지켜내며. 맬러리에겐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에단 헌트’처럼 뛰어난 신체적 능력이 없다. 그는 단지 약한 자를 보호하는 사람, 생존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 동시에 사고의 유연성을 잃지 않으며 위급할수록 행동에 신중을 기하는 똑똑한 인간이다. 밋밋한 서사 위에 ‘강한 여자’ 캐릭터만 우뚝 솟아 있던 근래의 여성 중심 영화들이 못내 아쉽던 차에 수잔 비에르와 샌드라 블록이 <버드 박스>를 넷플릭스에 내놓았다. 넷플릭스 가입자의 3분의 1이 이 영화에 열광했다. 넷플릭스에서는 이외에도 강한 여성이 이끌어가는 매력적인 서사를 제작 중인데 그 풍부한 라인업에 비해 한국의 극장가가 이다지도 빈곤한 이유는 깊이 고민해야 한다. writer 김소영(<마리끌레르>피처 에디터)

당신이 옳았다고, 나도 당신처럼 싸울 거라고
<더 포스트>(2017)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일찍이 <더 포스트>를 페미니즘 영화라고 밝혔고, 각본은 1985년생의 여성 작가 리즈 해나가 썼다. 남성 중심 사회와 업계에서 여성 발행인으로서 신념을 지켜나가는 캐서린(메릴 스트립)은 존재 자체로 일하는 여성들을 고양시킨다. 설사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던 관객일지라도 없는 사람으로 취급되던 캐서린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마침내 관철시키는 과정을 담은 <더 포스트>를 보면 영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영화의 후반부, 법정에서 나오는 캐서린을 둘러싼 젊은 여성들의 선망과 긍지, 설렘이 뒤섞인 눈빛이 이 영감의 결과를 말해준다. 당신이 옳았다고, 나도 당신처럼 싸울 거라고. 여성의 이야기가 부족하고, 무언가를 성취해내는 여성의 이야기는 더 부족한 현실에서 캐서린, 그리고 그와 연대한 여성들은 페미니즘과 젠더 이슈를 환기하기에 충분하다. writer 이지혜(영화 저널리스트)

여성의 자리는 어떤 방식으로 위협받고 대체되는가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1962), <행복>(1965)

페미니즘이라는 시대적 요청을 자신의 영화 세계로 적극적으로 끌어 안은 아녜스 바르다. 바르다 영화가 본격적으로 페미니즘의 시선으로 독해된 건 1970년대 이후지만 초기작에서도 바르다 특유의 감각으로 여성의 시간과 내면을 그린 지점을 읽을 수 있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를 보자. 클레오(코린 마르샹)는 병원에서 검진을 받고 결과를 기다리며 두려워한다. 오후 5시부터 결과가 나오는 7시까지 파리 곳곳을 누비며 두려움을 견딜 것이다. 영화의 러닝타임과 클레오가 극 중에서 보내는 시간은 거의 일치하며 이로써 관객은 클레오의 두려움과 방황을 함께한다. 다행스러운 결과를 받아든 클레오. “이젠 겁나지 않아요. 행복한 것 같아요.” 이야기는 아주 단순하지만 바르다는 파리를 헤매며 삶과 죽음을 생각했을 클레오의 복잡한 심경을 세밀히 그렸다. 이어서 바르다는 <행복>에서 여성의 행복과 불행, 활기로 충만한 삶과 절망에 압도된 죽음에 집중한다. 더없이 행복해 보이는 프랑수아(장 클로드 드루오)와 테레즈(클레어 드루오) 부부의 소풍길. ‘여기, 이들의 행복이 있다’고 속삭이듯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오중주가 흐르고 형형색색의 색감이 영화를 가득 메운다. 하지만 프랑수아가 낯선 여인 에밀리(마리 프랑스 부아예)와 사랑에 빠지고 테레즈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테레즈의 자리에 에밀리가 오고 프랑수아의 새 가족은 또다시 행복한 소풍을 떠날 것이다. 영화는 무심히도 ‘여기, 이들의 행복이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가부장, 이성애 부부 중심의 가족 내에서 여성의 행복은 어떻게 성취되고 좌절되나. 여성의 자리는 어떤 방식으로 위협받고 대체되는가. 당대 여성의 심리와 관계도에 대한 바르다식 통찰이다. writer 정지혜(영화평론가)

로버트 폴리도리의 베르사유

Chambre de Madame Victoire, (55) CCE.01.053, Corps Central – R.d.C, 1986, kodak endura chromogenic photographic paper, 101.6 x 127 cm, ed 1 of 10
Vestibule, (73) AMI.01.009, Salles Empire, Aile du Midi – R.d.C, 1985, kodak endura chromogenic photographic, 101.6 x 127 cm, ed.9of10

프랑스를 가지 않고도 베르사유 궁전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면? 또는 베르사유 궁전의 복원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이런 기회가 얼마나 될까라고 생각하지만 운이 좋게도 기회는 찾아 왔다. 3월 5일부터 3월 19일까지 2주간 박여숙화랑에서 세계적인 사진작가 로버트 폴리도 사진작가의 <베르사유, Versailles> 전을 선보인다. 캐나다계 미국인 로버트 폴리도리는 1980년대 초반부터 베르사유 궁전의 복원 과정을 카메라에 담으며 변화하는 풍경을 담아 왔다. 그의 사진에는 공사 중인 어수선하고 텅 빈 베르사유의 공간은 물론 오랜 시간 동안 견고하게 살아 남은 건물들의 상처가 새겨진 인테리어들을 볼 수 있다. 또한 바로크 풍의 부조 장식과 같은 바로크의 잔재들과 신고전주의의 이미지 등으로 베르사유 과거의 유적들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은 건축 공간에 녹아 든 인간의 역사를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작이자 복원 과정을 거치며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세계관이 하나의 프레임으로 포착되어 시간적 역설을 드러낸다. 대형 뷰 카메라로 느린 셔터 속도를 사용해 생기는 아름다움과 고요함, 명상의 품질 그리고 보기 드문 선명도와 초점으로 베르사유의 복원 과정을 생생하게 담아낸 이 사진들은 총 3권의 사진집으로 발간됐다. 미술계뿐만 아니라 건축계에서도 호평을 받은 이 작품들은 절대 놓쳐서는 안될 전시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주소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 461 네이처 포엠
문의 02-549-7575

Escalier des Salles de l’Afrique, ANR.02.037, Aile du Nord – 1er etage, 1985, kodak endura chromogenic photographic paper, 101.6 x 127 cm, ed 3of10

 

얼음 아래 챔피언

얼음 아래 챔피언 요한나 노르드블라드

날이 저물어가면서 차가운 겨울빛이 구름 낀 잿빛 하늘 사이로 비치고 있다. 스칸디나비아의 짧은 오후가 지나고 이제 밤이 찾아올 것이다. 소나무 가지를 흔드는 바람 한 점도, 호수의 수면 위를 살랑거리는 잎사귀 한 장도 없다. 그 무엇도 이 끝없이 광활한 나무, 얼음 그리고 눈을 방해하지 않는다. 이런 자연 풍경에 감탄하며 나는 처음으로 절대적 고요라는 것을 경험했다. 나는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서 북동쪽으로 1백70킬로미터 떨어진 소나넨 호숫가의 단출한 사냥꾼 오두막에서 프리 다이버 요한나 노르드블라드(Johanna Nordblad) 그리고 그녀의 자매이자 사진작가인 엘리나(Elina)와 함께 사흘을 보냈다. 도시의 리듬은 저 멀리 뒤로한 채 우리의 하루는 눈을 쓸고, 땔감을 모으고, 저녁을 먹은 후 겨울 정원 촛불 주위에 모여 앉아 긴 시간 수다를 떠는 것으로 채워졌다. 이 황량하고 신비로운 호숫가에서 요한나가 말한 이곳 만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엘리나와 저는 시간이 날 때마다 이곳에 와요. 저는 이 자연적인 환경, 이 호수를 사랑해요. 프리 다이빙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물이 깊어 까맣게 보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전 바로 그 점 때문에 프리 다이빙을 무척 좋아해요. 물속에는 색도 소리도 없어요. 아무것도 없죠. 완벽히 저 혼자뿐이에요.” 요한나는 내가 일을 하면서 만난 사람 중 가장 매력적이고 다재다능한 사람이다. 오만 가지 재주를 가진 그는 한 때 심각한 사고를 당했지만, 오히려 그 일을 새로운 종목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기회로 삼아 절망을 이겨낸 세계적인 운동선수다. 현재 세계기록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어릴 때 살던 동네에는 4미터 깊이의 큰 수영장이 있었어요. 잠수해서 수영장 바닥까지 내려가 물 위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을 올려다보곤 했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사람들이 물고기처럼 보였어요.” 요한나는 여섯 살 때 생애 첫 수영용 핀을 선물받았다. 너무 기쁜 나머지 몇 달간 그 핀을 신고 잠들기 일쑤였다. 여러 해 동안 스쿠버다이빙 기술을 익힌 요한나는 1999년 첫 프리 다이빙에 나섰다. 당시 느낀 가벼움은 곧 자유로움으로 다가왔다. 장비의 무게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물속을 유영할 수 있다는 점에 매료됐다. 그리고 그 이후 요한나는 계속해서 성공을 이뤄갔다. 2004년 요한나는 무호흡 핀 잠영 다이내믹 부문에서 여성 세계기록을 세웠고, 지속적으로 세계 최고의 다이버 순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요한나노르드블라드 스쿠어다이빙 다이빙 다이버

그러던 2010년, 끔찍한 사고가 그녀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내려가고 있었어요. 미끄럽고 복잡한 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갑자기 자전거가 미끄러졌어요. 특별히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는데 제가 운이 없었죠. 페달이 움직이지 않았고 왼쪽 다리뼈가 산산조각 났는데, 마치 비틀어진 나뭇가지 같았어요.” 서둘러 병원으로 옮겨진 그녀는 괴사를 막기 위한 복잡한 수술을 받았다. 부종과 골절이 심각해 여러 번에 걸쳐 수술을 받았다. 고통스럽고 힘든 재활은 1년 반 이상 이어졌고 요한나는 점점 활력을 잃어갔다. 그래픽 디자이너였던 요한나는 자신의 에이전시를 팔고 함께 일하던 13명의 직원을 내보냈다. 그리고 다시 1년이 지나고서야 요한나는 마침내 지팡이 없이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다리 신경이 심각하게 손상돼 그 고통이 끈질기고 날카롭게 그녀를 괴롭혔다. “너무 아파서 제대로 잘 수도 없었죠. 그때 의사가 냉수 요법을 권했어요. 처음에 4℃의 물에 다리를 담갔을 때는 1분도 못 버텼죠. 하지만 고통이 바로 사라지긴 했어요. 그리고 마침내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되었죠”라고 그녀는 말했다. 몇 달이 지나자 요한나는 하루라도 냉수 요법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차가움에 익숙해졌다. 그러다 다른 쪽 다리를 물에 담가보기 시작했고, 그다음에는 몸 전체를,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머리까지 담그게 되었다. “그 느낌이 좋았어요. 그때 얼음 밑으로 다이빙을 할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죠. 이런 시도를 하기에 핀란드보다 좋은 곳이 또 어디에 있겠어요?”

엘리나가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요한나는 호수로 연결된 자그마한 나무 선창에 앉아 지난 며칠간 물 표면에 생긴 얇은 얼음층을 부지런히 깼다. 깨진 얼음 조각들을 밀어내고 그녀는 물속으로 이어진 나무 계단을 비추기 위해 초를 켰다. 몇 시간 후면 마침내 이번 시즌 첫 다이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요한나는 몇 주 동안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 “다이빙할 때 손가락 사이로 느껴지는 물의 느낌이 좋아요. 물 밑에 있을 땐 절대로 실수해서는 안 돼요. 믿을 거라곤 오로지 자신밖에 없죠. 긴장을 푸는 동시에 통제할 수 있어야 하고요. 프리 다이빙은 신체적으로 많은 노력이 필요해요. 하지만 정신적 훈련이 그 이상으로 중요하죠. 물속 깊이 들어가는 것이 전부가 아니에요. 두려워하거나 당황하지 않아야 합니다.” 요한나의 수중 무호흡 개인 기록은 6분 35초. “시간이 흘러가는 걸 느끼는 일이 가장 어려워요. 2~3분이 지난 후부터는 수면 위로 올라가야 하는 수십, 수백 가지 이유를 마음속으로 꼽게 되거든요.” 미리 거리를 재서 얼음에 구멍을 내놓은 사이로 다이버들이 수평으로 움직여야 하는 다이빙을 할 때는 좀 다른데 낮은 온도에 순응하는 첫 단계가 지나면 그 후로 상당한 평화가 찾아온다. 2015년 요한나는 수영복과 수경만을 착용한 채 50미터를 헤엄쳐 이 종목에서 세계기록을 세웠다. 물의 온도는 겨우 2℃였다. 얼음 밑으로 다이빙을 할 때는 또 다른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시야 확보가 그중 하나인데, 수면에 있는 두꺼운 얼음층과 눈이 다이버의 시야를 방해하기도 한다. 그래서 관계자들이 구멍 사이의 안전선을 확대하기도 했다. “심지어 제 손도 안 보일 때가 있어요. 그 정도로 물속은 어두울 수 있죠. 실제 응급 상황이 생길 때를 대비한 제 계획은 수면 6미터 밑으로 헤엄치는 거예요. 그래야 두 개의 구멍에서 비추는 빛을 볼 수가 있고, 어디로 나가야 할지 알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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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밑에 있을 땐 절대로 실수해서는 안 돼요. 믿을 거라곤 오로지 자신밖에 없죠. 긴장을 푸는 동시에 통제할 수 있어야 하고요. 프리 다이빙은 신체적으로 많은 노력이 필요해요. 하지만 정신적 훈련이 그 이상으로 중요하죠. 물속 깊이 들어가는 것이 전부가 아니에요. 두려워하거나 당황하지 않아야 합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요한나는 깊은 곳을 무서워한다. 프리 다이빙을 할 때나 50미터 깊이의 핀란드 호수 바닥을 헤엄칠 때마다 바다 괴물이나 심연에 사는 알 수 없는 생명체를 떠올리곤 한다. “제가 도달한 가장 깊은 지점은 바로 이런 제 두려움을 억제하고자 하는 능력의 궁극적 한계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더 깊이 갈 수 있겠죠.” 밝은 에너지가 넘치고 호기심이 많은 요한나는 흔치 않은 부류의 성공한 운동선수이자, 자연을 만나는 순간 자신이 꿈꾸던 환상을 현실로 만드는 여자다. 요한나는 일상의 리듬, 업무, 가족에 대한 책임감(열여섯 살 난 아들이 있다)에서 빠져 나오자마자 자신의 절친한 친구이자 믿을 만한 조력자인 엘리나와 짧지만 소중한 시간을 보낸다. 두 사람은 성격이 매우 다르지만 매우 심오하고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둘 중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한 명도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할 정도다. 그녀들이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마치 그들이 만든 비밀스럽고 마법 같은 자그마한 세계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엘리나는 오랫동안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생활했다. 두 사람 모두 서로 멀리 떨어져 지내는 것이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고 한다. 이제 둘은 함께 사진을 찍고 책을 내고 다이빙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유럽 곳곳을 돌아다닌다. 얼음 다이빙 기록도 갖고 있지만 요한나에게 프리 다이빙은 경쟁자를 ‘무찌르려는’ 욕망 그 이상의 무언가가 되었다. “경쟁이 우선이면 다이빙하는 순간을 즐길 수 없어요. 어릴 때는 경쟁을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아요.” 마흔두 살의 요한나는 다이빙과 수중 무호흡을 의무가 아닌 그 이상의 것으로 경험하고 있다. “우승하고 나면 주변에서는 자연스레 더 많은 기대를 하게 돼요. 굉장히 다양한 기회가 열리기 때문에 스스로 인생에서 무엇을 원하고 이 스포츠에서 진정으로 열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파악해야 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2006년 요한나는 핀란드의 비올림픽 선수에게 주어지는 세 개의 정부 보조금 중 하나를 받게 되었다. 그해는 그녀가 훈련을 가장 적게 한 해였다. “그때는 수영장에 가는 일이 즐겁지 않았어요. 동기를 잃었죠. 저는 몇 시간 동안 컴퓨터 화면을 보는 것보다 자극을 주는 무호흡 다이빙이 더 좋아요. 하지만 다른 일처럼 이 일이 직업으로 변하고 있다고 느꼈죠. 제 인생에서 특히 아름다운 순간 중 하나는 재활 직후였어요. 저는 야외에서 2년이란 시간을 보냈죠. 그때 카약을 끌고 헬싱키 주변 섬을 탐험했어요. 그곳에는 수백 개의 섬들이 있는데 5분만 노를 저으면 완벽히 자연 속에 놓이곤 했죠”.

올해 또 다른 다이버가 요한나의 기록을 깨기 위한 시도를 할 것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엘리나는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요한나에게 확고하고 진지하게 다시 도전할 이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에는 성공에 대한 집착 없이 말이다. 요한나는 마치 게임을 하듯 차분히 도전에 임할 것이다. 때때로 놀라운 성과는 이렇게 이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