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생 여자사람 ①

뮤지션 예지 페미니즘
ⓒLYDO LE

예지 뮤지션 1993

페미니즘? 누구나 평등한것. ‘woman’이든, ‘womxn’(man에서 파생된 단어인 woman의 대안용어. 여성은 남성의 일부가 아님을 언어로 재정의함)이든, 퀴어든, 트랜스젠더든, 논-바이너리(non-binary)든, 그 누구라도.

여성스럽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 외에도 다양한 사람이 존재한다. 그 차이를 인정하고 재정의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 인권과 권리를 이야기할 때 ‘아름다운(beautiful)’ 또는 ‘여성적(feminine)’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편견과 규정을 만들 뿐이다. 실제로 위 단어들이 여성 인권을 ‘지지하는’데 사용되었더라도 말이다. 서로 배우고, (잘못 배웠던 것들은)의식적으로 잊으며 우리를 규정짓는 틀에서 벗어나길 소망한다.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어디에서 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뉴욕은 한국보다는 조금 더 진보적이다. 가령 나이에 따라 판단받는 일이 적다. 그렇다고 차별이 없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미국에서 젊은 한국인 여성으로 사는 것 역시 그만의 어려움이 있다.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정체성이 각인된 순간 지금으로서는 여성이라는 사실을 자각할 만한 경험은 없다. 대신 나를 불편하게 하는 타인에 대해 의식적으로 생각하려 한다. 어떤 차별적 순간을 경험했을 때 나의 잘못과 문제가 아님을 인지하려 한다. 구시대적인 관점을 지닌 건 바로 그들이니까.

사회가 요구하는 성 역할에서 해방됐던 계기 가장 먼저 보수적인 미국과 한국에서 자라면서 배웠던 모든 것을 의식적으로 잊으려 노력했다. 과거 사회가 우리 부모님을 가르쳤고, 부모님은 내게 여자는 이래야 한다, 남자는 이래야 한다, 퀴어는 잘못된 것이라 가르쳤다. 과거의 사고 방식을 뇌에 각인하고 규범으로 정착시키려 한 것이다. 하지만 이게 규칙이라고 그 누가 규정할 수 있나? 둘째, 다른 사람에게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해 생각하기를 그만 두고,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들을 보기 시작했다. 한국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스스로를 작은 존재로 만들었던 과거의 습관에서 벗어나려고도 애썼다. 대신 나를 작아지게 하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그들이 왜 그러는지를 더 많이 생각했다. 셋째, 다양한 피부색의 여성들, 퀴어, 트랜스, 논-바이너리, 논-스트레이트 메일(non-straight male) 등 다양한 친구를 만났다. 그들은 내게 솔직하고 주체적인 삶을 사는 방식에 대해 가르쳐줬으며, 어떤 성 정체성에 대해서든 자유롭게 표현해도 좋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일상 속 실천 내가 속한 커뮤니티 안에서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려한다. 부모님과도 성평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양한 인종의 여성이 주최하는 행사에 더 많이 참여하려 하고, 그들을 지지하고, 목소리를 내고 응원하려 한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습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성평등 의식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낀 사건이나 순간 성평등과 인권 감수성이 통하는, 친밀한 커뮤니티가 있는 뉴욕에 산다는 건 행운이다. 내가 있는 이곳은 한국보다는 진보적이다. 비록 정치적인 면에서는 더 혼란스럽지만 적어도 열린 마음을 지닌 개개인이 모여 집단을 이루고 있다. 요즘 또래의 한국 여성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한국 역시 조금씩 희망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느낀다.

나의 위대한 여성 ‘모든 드래그 퀸은 위대하다!’고 외치고 싶다.

녹색당공동운영위원장 신지예 페미니즘

신지예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1990

성평등 의식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낀 사건이나 순간 최근 불법 촬영 및 유포 범죄로 자살을 택한 여성들을 위한 추모제를 진행했다. 규모가 큰 행사는 아니었지만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참석해 진심으로 추모했다. 안희정 비서 성폭력 사건의 2심 결과도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협소하게 해석해온 기존 판례를 뒤집는 결과였다. 바뀌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천천히 확실히 바뀌긴 바뀌는구나 싶었다.

페미니즘? 가부장제와 성폭력, 성차별과 싸우는 철학. 젠더 불평등은 오래전부터 공고하게 이어져온 구조적 억압이기 때문에 인식조차 하기 어렵다. 가부장제 속에서 남성이 아닌 존재들은 타자로서 존재할 뿐이다. 페미니즘은 주체와 비체를 가르는 이분법적 구분을 전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보이지 않거나 별것 아닌 것으로 여겨졌던 젠더 불평등에 저항하고, 끊임없이 권력 구조를 재해석하는 살아 있는 철학이기도 하다.

여성스럽다 ‘여성스럽다’라는 범주에는 성격이 부드럽다, 조용하다, 성숙하다, 조신하다 등 수많은 표현이 존재한다. 이런 말들은 생물학적인 특징, 염색체 XX를 설명하는말이기보다 사회가 규정한 젠더 규범을 설명하는 표현이다. 페미니즘이 꿈꾸는 사회가 도래해 젠더 규범에서 해방되는 순간을 상상해보자. 단순히 ‘여성스럽다’라는 범주 안에 통속적 의미로서 정반대 표현만을 채워 넣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젠더 규범으로 이뤄진 정체성에 대한 해체, 더 이상 정형화된 여성이나 남성의 구분이 없는 세상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여성스럽다는 말의 의미는 텅 비어 있고, 없다고 말하고 싶다.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강도가 다를지라도, 차별의 언어와 억압은 늘 여성에게 존재했다. 여성으로 태어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두려움에 떨며 밤거리를 걷지 않아도 될 것이다. 혼자 무전 여행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을 것이다. 옷매무새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더 크게 걷고 더 크게 웃고 게걸스럽게 먹을 수 있다. 임신중절이 불법이고, 홀로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이 사회에서 임신은 더 이상 공포가 아닐 것이다. 페미니즘을 공부할수록 나보다는 엄마나 할머니의 삶이 떠오른다. 억압과 차별 속에서 살아온 여성들이 경이롭게 느껴진다. 그리고 뒤이어 살아갈 다른 여성들의 삶이 상상된다. 설사 내 삶 속에서 성차별과 억압의 구조가 모두 없어지지는 않더라도 앞으로 태어날 여성들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란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사는 일은 고통을 직시하며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다.

듣고 싶지 않은 말 여자는 아기를 낳아야 몸이 완성된다.

가장 아름다운 나 푹 자고 일어나서 기운 넘칠 때.

#탈코르셋 벗어 던지는 것은 옷이나 머리칼이 아니라 여성이라면 으레 해야 한다던 사회 규범이다.

 

남소라 경제지 기자 1990

페미니즘?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모든 것.

여자다움, 여자답다 나고 자라면서 습득한 나의 모습을 그대로 숨김없이 드러낸 당당함.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고,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정체성이 각인된 순간 생리를 시작한 것. 나는 아이를 낳고 싶지 않고 낳을 생각도 없는데, 앞으로 수십 년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나고 불만스러웠다.

듣고 싶지 않은  ‘여자니까’.

일상 속 실천 성차별적 단어 사용을 지양하고, 대화 중 타인이 사용할 경우 이를 지적하기.

주목하는 젠더 이슈 스포츠계 성범죄 사건들. 조재범부터 시작해 다른 피해자의 목소리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가해자로 지목된 자들에 대해 빠른 조사가 이뤄져 올바른 죗값을 치르길 바란다.

성평등 의식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낀 사건이나 순간 성범죄 사건을 이야기하다 피해자를 탓하는 발언이 나오면 모두 한마음으로 지적하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지우는 행동이 2차 가해임을 지적하는 모습을 일상에서 목격했을 때. 페미니즘이나 정치·사회적 성격을 띠지 않는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가장 아름다운 나 살아 있는 자는 모두 아름답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매 순간 어떤 모습이든 아름답다.

나의 위대한 여성 서지현 검사가 안태근 전 검사장을 성추행으로 고발한 지 1년. 그동안 우리는 수없이 많은 성범죄 가해자를 고발하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서지현 검사가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전히 눈을 가리고 귀를 막은 채 보고도 보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며 살았을 것이다. 주간지 <시사인> 589호에서는 ‘2018 올해의 인물’로 서지현 검사를 꼽았다. 서 검사는 <시사인>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원더우먼처럼 찍어달라고 말했다.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했던 한국 사회와 맞짱 떠 승리하고 있는 서지현 검사를 존경한다.

#노브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있지만 한 번만 해본 사람은 없을걸.  #유리천장 유리 천장 위에 있는 사람들이 왜 자꾸 유리 천장이 없다고 하는지?

 

이길보라 영화감독·작가 1990

‘몸 간수 잘해라’ ‘잘 처신해라’ 최악이다. 모든 잘못은 내 몸에 있다는 말이 아닌가.

여성스럽다 의미를 재정의한다 해도 나는 이 말을 쓰고 싶지는 않다. ‘여성’과 ‘남성’으로 모든 것을 구분할 수 없다. 인터섹스 같은 간성이 분명히 존재하고, 지금 유학 중인 네덜란드에서는 지난해부터 젠더 중립 여권을 발급하기 시작했다. 홈페이지 등에 가입할 때도 성별을 표기하고 싶지 않다면 젠더 중립 혹은 미표기를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여성스럽다’ ‘남성스럽다’라는 말보다 ‘이길보라스럽다’ ‘ㅇㅇㅇ스럽다’라는 개인의 고유성을 넣은 표현을 쓰고 싶다. 페미니즘은 개인의 고유성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한국에서 20대 여성이자, 장애인의 자녀로 사는 건 나를 늘 성찰하게 하는 계기였다. 어딜 가나 차별과 차이를 직시할 수밖에 없는 소수집단에 속했으니까. 그 경험이 다른 사람의 아픔과 경험에 공감할 수있는 감수성을 주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만큼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정체성이 각인된 순간 중학교에 들어가니까 치마를 입어야 하더라.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고 싶어 학교 갈 때만 체육복 바지를 입으면 안 되느냐고 학교에 문의했더니 절대 안 된다고 했다. 그럼 교복 바지를 만들어달라고 했더니 그것 또한 절대 안 된다고 하고. 남동생은 매일 학교에 자전거를 타고 갔는데 말이다. ‘내 몸은 왜 그의 몸처럼 자유로울 수 없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듣고 싶지 않은 말 ‘몸 간수 잘해라’ ‘잘 처신해라’ 최악이다. 모든 잘못은 내 몸에 있다는 말이 아닌가.

사회가 요구하는 성 역할에서 해방됐던 계기 유럽 여행을 처음 했을 때.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다. 당시 나는 삭발을 하거나 쇼트커트를 했는데 한국에서는 화장실에 갈 때마다 사람들이 깜짝깜짝 놀랐다. ‘여기 여자 화장실인데요’ 하는 말도 많이 들었다. 네덜란드에서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더라. 내가 무엇을 입든 어떤 머리를 하든. 해방감이 들었다. 이런 세상이 존재할 수 있구나 싶었다.

일상 속 실천 네덜란드에서는 노브라가 흔하다. 노브라에 원피스를 입고 힐을 신은 채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 나 역시 그렇게 지내다 한국에 오니 약간 눈치가 보이더라. 심지어 엄마는 지난여름에 네덜란드에서 노브라 상태인 나를 봤을 때는 아무 말 안 했는데 한국에 오니까 왜 브래지어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운동적인 측면에서 정치적인 의미를 담아 노브라에 민소매 티를 입고 다녔다. 일을 하러 갈 때나 지하철을 탈 때도. 누가 쳐다보거나 말을 걸면 미친년처럼 싸워야겠다는 생각으로. 그게 정말 큰 변화였다.

나는 몸 을 꽉 죄는 그 어떤 것도 입지  않습니다. 

성평등 의식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낀 사건이나 순간 미투 운동, 그리고 미투 운동을 둘러싸고 미디어가 피해자 이름을 거론하지 않고 가해자 이름을 따 ‘안희정 성폭행 사건’ ‘조재범 성폭행 사건’이라고 부르는 걸 봤을 때. 무언가를 어떻게 부르느갸가 그것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의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의 얼굴과 이름을 계속 언급해 그를 피해자화하지 말자고,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사건을 인식하는 방법을 고쳐먹자고 움직인 순간이니까.

나의 위대한 여성 지금 공부하고 있는 네덜란드 필름 아카데미의 여성 학장 미커(Mieke) 그리고 여성학을 전공한 여성 조교인 크리스(Kris)와 사빈(Sabien). 슈퍼 페미니스트 그룹으로 조교실 한쪽 벽에 영화 <델마와 루이스> 포스터가 붙어 있다. 여성주의를 바탕으로 만들어가는 석사과정 자체가 성적으로 평등하고 수평적인 곳이다. 매일 마주치는 이들을 보며 많은 것을 배운다.

페미니즘 나연 예술행동가

나연 예술행동가(ARTIVIST) 1994

여성스럽다 재정의 과정을 거쳐 결국에는 사라졌으면 하는 말. 인간을 이루는 한 부분인 성별이 존재 전체를 뒤덮는 일이 더 이상 생기질 않길 바란다. 궁극적으로 성별이라는 것이 동물처럼 생식 기능 외에는 아무 의미를 지니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사회가 요구하는 성 역할에서 해방됐던 계기 누드 사진을 찍으면서부터. 그 전까지 나는 내 몸을 싫어했고, 혼자 있을 때도 내 나체를 보는게 불편했다. 내 몸이 단순히 여성의 몸으로 대상화돼 존재한다는 걸 알았기에 은연중에 그랬던 것 같다. 그동안 접한 여성의 누드가 언제나 남성의 ‘자위용’으로만 소비되는 것을 목격해왔으니까. 이제는 그들의 폭력적인 시선이 문제임을 안다. 우리는 모두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로 태어났고, 몸에는 죄가 없다. 내 몸은 그저 살과 뼈일 뿐, 이를 저열한 욕망의 논리에 끼워 맞춰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내 몸을 제대로 보면서 깨닫기 시작했다.

일상 속 실천 누구를 만나건 페미니스트라고 말한다. 이 사실을 밝힐 때 상대방이 조심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또 페미니스트가 이 세상에, 그것도 당신 주위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페미니스트를 ‘일베’처럼 악마화된 소수집단으로 여기는데 이는 그들의 착각일 뿐이다. 세계 모든 곳에 페미니스트가 있고 우리는 결코 소수가 아니다.

나는 남성 권력에 고개를 숙이지 않습니다.

주목하는 젠더 이슈 한국의 임신중절 합법화.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임신중절 처벌에 대한 위헌 여부를 논의하고 있다. 당연히 위헌이라고 결론 내리길 기다리고 있다. 100% 피임법이 존재하지 않는 현 상황에서 여성은 원치 않는 임신과 출생이란 덫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여성 역시 자신의 인생을 위해 주체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인간인데 정부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성평등 의식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낀 사건이나 순간 사회가 페미니스트들에게 응답할 때. 제도적인 측면이 변화할 때. 최근 아일랜드에서 임신중절이 합법화되었는데 이처럼 사회 인식이 바뀌는 걸 목격하는 순간, 지치지 말고 나아가야 함을 다시금 느낀다.

나의 위대한 여성 윤리학자 캐럴 길리건. 기존 도덕 발달 이론이 지극히 남성 중심적이라는 점을 비판하며 여성을 기준으로 한 새로운 이론을 제시한 학자다. 여성성과 결부되는 가치를 긍정적으로 재평가했다. ‘여성스럽다’는 단어와 가치에 함축된 것을 재정의하며 여성의 존재를 긍정하는 데 공을 세운 학자다.

연관 검색어
, ,

대학가 카페 ①혜화

저렴한 가격에, 바로 테이크아웃해서
강의실로 내달릴 수 있는 카페도 좋지만,
가끔은 공강에 짬을 내 들르기 좋은
매력적인 카페도 찾길 권한다.

개강 시즌을 맞아 일부러라도 찾아가고 싶은
대학가 카페를 지역별로 소개한다.
첫 번째는 혜화다.

메종 드 아베크엘

후암동 아베크엘 숍 앤 카페가 올해 초
동숭동에 2호점 메종 드 아베크엘을 오픈했다.
이전보다 넓은 공간을  마련해 흰 커튼과 조명으로 꾸미고
그림이나 책, 커피잔 등 작은 소품을 곳곳에 놓아둔 덕분에
어느 자리든 포토존으로 손색없다.
메뉴는 1호점과 같은데, 사과 주스를 넣은
시그니처 음료 링고 라떼 그리고 베리베리 토스트,
스트로베리 쉬폰 샌드, 딸기 소다 등 딸기를 사용해
시즌 한정으로 선보이는 메뉴들이 최근 가장 인기가 많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동숭4길 30-3
문의 070-7626-0425

MRD

대학로의 좁은 골목에 위치한 MRD는 붉은 벽돌을 쌓아 만든
외관과는 달리 내부는 흰색과 검은색으로 깔끔하게 꾸민 카페다.
‘카페의 본질은 커피’라는 마음을 담아
수많은 테이스팅 끝에 원두를 고른 후 음료를 만드는 곳.
추천 메뉴는 우유와 에스프레소 샷이 산뜻하게 어우러져
에스프레소 특유의 독한 맛을 잡아주는 아이스 플랫 화이트다.
말차와 치즈 두 가지 종류의 테린느를 디저트로 판매하는데,
생초콜릿처럼 쫀득한 식감이 특징이다.
밤이 되면 와인도 맛볼 수 있으며 인스타그램을 통해
일주일간 카페에서 틀었던 음악 리스트까지 공유한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성균관로7길 32
문의 010-3511-2727

마띠에르

민트색 대문이 시선을 사로잡는 마띠에르.
마치 가정집처럼 촛대와 접시를 비롯한 여러 소품과
앤틱한 가구들을 들여놓은 카페다.
내부 한가운데에 있는 긴 테이블 위에는
매일 갓 구운 베이커리가 진열되는데,
딸기 타르틀레트, 체리 레몬 구겔호프,
살구 피스타치오 스콘 등  신메뉴도 꾸준히 선보인다.
플랫 화이트 위에 크림을 가볍게 올린
플랫 화이트 크림을 함께 곁들여 먹어볼 것.

주소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11길 41-6
문의 02-745-9717

블루룸

블루룸재즈 음악이 잔잔하게 흐르는 조용한 카페다.
짙은 파란색과 초록색을 활용해 한쪽 벽을
간결하게 꾸민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곳으로
간판조차 없지만 찾아오는 손님이 많다.
커피와 밀크티를 포함한 논알코올 음료는 물론
맥주, 와인, 위스키까지 즐길 수 있다.
소량으로 공수해 온 술을 맛볼 수 있는 것 또한 장점.
사이드 메뉴로는 세 가지 종류의 치즈 케이크그린 올리브를 판매한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대명1길 16-7
문의 010-2702-1496

칠린

카페 겸 바 칠린을 찾으면 낮이든 밤이든
자신의 취향에 맞는 휴식을 즐길 수 있다.
커피와 에이드부터 50여 가지 칵테일까지 알차게 마련돼 있기 때문.
원목과 대리석, 녹색 식물이 조화를 이루는
인테리어로 편안한 분위기도 살렸다.
대표 음료는 수제 민트 생크림을
카페 모카 위에 올린 민트 크림 모카 그리고
우유, 녹차, 커피를 활용한 칵테일 시그니처 칠린.
유기농 밀가루로 만든 앙버터와 프레첼,
치즈 플레이트 등 디저트도 다양하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11길 41-8
문의 010-3492-0327

홍콩 샤워

카페 이름이 적힌 빨간 네온사인을
카운터 위에 크게 걸어둔 카페 홍콩 샤워.
회색 공간을 거울, 조각상 등의 소품으로 꾸며
빈티지 갤러리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커피, 에이드까지 다양한 음료를 판매하는데,
지난 12월 말 리뉴얼 오픈하며 생딸기라떼,
딸기 요거트 케이크 등 제철 과일을 활용한 메뉴를 추가했다.
치즈 초코 티라미수는 오랜 시간
꾸준히 사랑받는 디저트.

주소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29길 36
문의 010-8383-0180

웰컴 투 페미니즘, 영화 7

남성의 이름이 역사의 정도가 아니라는 확신이 든다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2019)

18세기 초 영국을 통치했던 앤 여왕을 주인공으로 한 시대극. 이렇게 말하면 머릿속에 자동적으로 어떤 그림이 떠오른다. 사치스러운 차림새로 화려한 왕궁을 드나드는 왕족과 귀족들. 한데 이 영화에는 그 익숙한 풍경을 처음 보듯 새롭게 느끼게 하는 힘이 있다. 이 영화는 철저히 앤 여왕(올리비아 콜맨)과 오랜 심복 사라(레이첼 와이즈), 여왕의 관심을 새롭게 받는 하녀 애비게일(에마 스톤), 세 여성의 삼각관계에 주목한다. 욕망과 권력과 애정이 소용돌이치고, 인간의 나약함과 어리석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삼각관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아무리 여왕의 시대라해도, 여성 캐릭터 대다수가 권력가 남성 사이에서 희생되거나 그 침대를 노려야 하는 기존의 시대극과 확실히 다르다. 이 영화의 세 여성은 그들의 성적, 정치적 욕망을 서슴없이 드러낸다. 여왕이 사라에게 “난 그 애(애비게일)가 입으로 해주는 게 좋아!”라고 할 정도니 말 다 했다. 자신의 성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남성을 내세울 필요가 없다. 그 풍경이 이렇게까지 새롭고 짜릿하게 느껴지다니. 페미니즘은 결국 지금껏 차별받은 존재의 가치를 되돌아보는 인간적인 행위다. 최근 한국의 사극영화가 꽤 지겹게 느껴졌는데, 이 영화에서 희망을 봤다. 교과서를 가득 채운 남성의 이름이 역사의 정도가 아니라는 확신이 든다. 어느 시대든 숱한 여성들이 살았고, 각자 욕망을 품었고, 그걸 이루기 위해 부단히 움직였다. ‘남자들의 시대’라는 꼬리표에 더 이상 숨지 말고, 그들의 이야기를 발굴하라. writer 장성란(영화 저널리스트)

페미니즘 페미니즘영화 페미니즘영화추천 와즈다 와즈다페미니즘

영화가 무력하다고 생각하는가?
<와즈다>(2012)

리지 보든, 아그니에슈카 홀란트 같은 선구자들이 만든 페미니즘 영화를 허겁지겁 삼키듯 찾아 보던 시절이 있다. 그러면서 얻은 건, 젠더 이슈에 무지했던 이전의 나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강력한 예감이다. 동시에 바람도 생겼다. 보다 대중적인 화법의 페미니즘 영화를 만날 순 없을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날아온, 심지어 그 나라 최초의 장편인 <와즈다>는 그 바람을 이뤄준 작품이다. 여성이 자전거를 타는 것이 금지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자전거로 씽씽 달리고 싶은 열 살 소녀의 이야기다. 소녀가 자전거를 사기 위해 쟁취하려는 건, 깜찍하게도 교내 코란 경전 퀴즈 대회의 우승 상금이다. 자전거를 타는 것도 불가능한데 영화를 찍는 게 가당키나 한가. 이 작품을 연출한 여성 감독 하이파 알 만수르는 살해 위협에 시달리며 차량 안에 숨어서 무전기로 현장을 지휘했다. 금기의 벽을 부수고 달려 나가려는 의지로 똘똘 뭉친 이 유쾌한 영화의 힘은 놀랍다. 개봉 이후의 반향 덕분에 율법이 바뀐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들은 2013년 4월부터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됐다. 영화가 무력하다고 생각하는가? 영화는 세상을, 여성의 삶을 바꿀 수 있다. <와즈다>는 그 짜릿한 증거다. writer 이은선(영화 저널리스트)

진짜 공포는 지선이 ‘엄마답지 않다’는 관객의 이의 제기였다
<미씽: 사라진 여자>(2016)

페미니즘이 성별에 대한 낡은 사고를 새롭게 바라본다는 의미라면 내게 그런 계기를 준 영화는 <미씽: 사라진 여자>다. 일하는 여자에게 워킹맘은 이미 현실이거나 닥쳐올 현실. 이혼한 워킹맘인 주인공 지선(엄지원)이 믿고 의지하던 보모 한매(공효진)에게 어린 딸이 유괴된다는 설정부터 오싹했다. 하지만 진짜 공포는 지선이 ‘엄마답지 않다’는 관객의 이의 제기였다. 퇴근하자마자 급히 남은 일을 처리하느라 아이가 사라진 사실을 뒤늦게야 아는 것을 두고 하는 지적이다. 격무에 시달리는 워킹맘이 그날 따라 바쁜 사정이 있었다는 묘사가 충분했음에도 말이다. 이런 반응이 마치 엄마인 여성이 단 한순간이라도 모성애 외의 다른 동기로 움직였다는 사실 자체에 화를 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남성이 주인공이었어도 같은 장면에서 비난받았을까? 이 영화를 준비하며 이언희 감독은 어떤 남성 영화인에게 “남편한테 밥 안 해주죠?” 란 말을 들었단다. 이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뼈저리게 드러난다. writer 나원정(중앙일보 영화 담당 기자)

생사를 다투는 순간 앞에 남성과 여성이 아닌 오직 인간만이 있을 뿐이다
<버드 박스>(2018)

맬러리(샌드라 블록)는 때로 거칠게 아이들을 몰아붙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버드 박스>는 공기 중에 퍼진 무언가에 노출된 모든 사람이 곧바로 자살하는 괴현상에서 살아남아 두 아이를 지키는 맬러리의 이야기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에 흔히 나오는 ‘가족을(지구를) 지키는 남자, 아이들을 챙기며 뒤에 서있는 여자’의 구도는 이 영화 어디에도 없다. 영화는 시작점에서부터 설명한다. 냉정하게 출산을 기다리는 미혼모이자 화가인 맬러리에게 전형적인 엄마의 모습은 기대할 수 없을 거라고. 이후 감독 수잔 비에르는 여성인 맬러리가 아닌 재난 이후의 생존 과정에 집중하며 재난영화의 본분에 충실한다. 생사를 다투는 순간 앞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아닌 오직 인간만이 있을 뿐이니까. 인근의 유일한 생존자가 된 맬러리는 최후의 수단으로 급류 위에서 나룻배를 타고 안전하다고 믿는 곳으로 떠난다. 눈을 가리고 오직 감각에만 의지한 채 외부의 모든 것으로부터 자신과 유일한 미래일지 모르는 아이들을 지켜내며. 맬러리에겐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에단 헌트’처럼 뛰어난 신체적 능력이 없다. 그는 단지 약한 자를 보호하는 사람, 생존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 동시에 사고의 유연성을 잃지 않으며 위급할수록 행동에 신중을 기하는 똑똑한 인간이다. 밋밋한 서사 위에 ‘강한 여자’ 캐릭터만 우뚝 솟아 있던 근래의 여성 중심 영화들이 못내 아쉽던 차에 수잔 비에르와 샌드라 블록이 <버드 박스>를 넷플릭스에 내놓았다. 넷플릭스 가입자의 3분의 1이 이 영화에 열광했다. 넷플릭스에서는 이외에도 강한 여성이 이끌어가는 매력적인 서사를 제작 중인데 그 풍부한 라인업에 비해 한국의 극장가가 이다지도 빈곤한 이유는 깊이 고민해야 한다. writer 김소영(<마리끌레르>피처 에디터)

당신이 옳았다고, 나도 당신처럼 싸울 거라고
<더 포스트>(2017)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일찍이 <더 포스트>를 페미니즘 영화라고 밝혔고, 각본은 1985년생의 여성 작가 리즈 해나가 썼다. 남성 중심 사회와 업계에서 여성 발행인으로서 신념을 지켜나가는 캐서린(메릴 스트립)은 존재 자체로 일하는 여성들을 고양시킨다. 설사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던 관객일지라도 없는 사람으로 취급되던 캐서린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마침내 관철시키는 과정을 담은 <더 포스트>를 보면 영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영화의 후반부, 법정에서 나오는 캐서린을 둘러싼 젊은 여성들의 선망과 긍지, 설렘이 뒤섞인 눈빛이 이 영감의 결과를 말해준다. 당신이 옳았다고, 나도 당신처럼 싸울 거라고. 여성의 이야기가 부족하고, 무언가를 성취해내는 여성의 이야기는 더 부족한 현실에서 캐서린, 그리고 그와 연대한 여성들은 페미니즘과 젠더 이슈를 환기하기에 충분하다. writer 이지혜(영화 저널리스트)

여성의 자리는 어떤 방식으로 위협받고 대체되는가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1962), <행복>(1965)

페미니즘이라는 시대적 요청을 자신의 영화 세계로 적극적으로 끌어 안은 아녜스 바르다. 바르다 영화가 본격적으로 페미니즘의 시선으로 독해된 건 1970년대 이후지만 초기작에서도 바르다 특유의 감각으로 여성의 시간과 내면을 그린 지점을 읽을 수 있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를 보자. 클레오(코린 마르샹)는 병원에서 검진을 받고 결과를 기다리며 두려워한다. 오후 5시부터 결과가 나오는 7시까지 파리 곳곳을 누비며 두려움을 견딜 것이다. 영화의 러닝타임과 클레오가 극 중에서 보내는 시간은 거의 일치하며 이로써 관객은 클레오의 두려움과 방황을 함께한다. 다행스러운 결과를 받아든 클레오. “이젠 겁나지 않아요. 행복한 것 같아요.” 이야기는 아주 단순하지만 바르다는 파리를 헤매며 삶과 죽음을 생각했을 클레오의 복잡한 심경을 세밀히 그렸다. 이어서 바르다는 <행복>에서 여성의 행복과 불행, 활기로 충만한 삶과 절망에 압도된 죽음에 집중한다. 더없이 행복해 보이는 프랑수아(장 클로드 드루오)와 테레즈(클레어 드루오) 부부의 소풍길. ‘여기, 이들의 행복이 있다’고 속삭이듯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오중주가 흐르고 형형색색의 색감이 영화를 가득 메운다. 하지만 프랑수아가 낯선 여인 에밀리(마리 프랑스 부아예)와 사랑에 빠지고 테레즈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테레즈의 자리에 에밀리가 오고 프랑수아의 새 가족은 또다시 행복한 소풍을 떠날 것이다. 영화는 무심히도 ‘여기, 이들의 행복이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가부장, 이성애 부부 중심의 가족 내에서 여성의 행복은 어떻게 성취되고 좌절되나. 여성의 자리는 어떤 방식으로 위협받고 대체되는가. 당대 여성의 심리와 관계도에 대한 바르다식 통찰이다. writer 정지혜(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