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생 여자사람 ②

 박서희 박서희화보 박서희페미니즘 페미니즘

박서희 모델 1996

듣고 싶지 않은 말 ‘예쁘다.’ 누구나 그렇듯 칭찬은 기분 좋은 일이다. 나 역시 ‘예쁘다’를 칭찬으로 잘못 생각했다. ‘예쁘다’는 평가다. 우리는 칭찬을 위장해 타인을 쉽게 평가하고 평가받는다. 노력과 자질로 바꿀 수 없거나 선천적으로 가진 부분에 대한 칭찬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악의가 없든 순수한 의도든 좋은 마음이든 알겠고 감사하다. 그렇지만 단순히 외모가 예쁘다는 칭찬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페미니즘? 온전하게 ‘나’의 시각으로 세상을 살아가며 주체로서 결정하고 판단하며 사유하는 것.

여성스럽다 뿌리 깊은 성불평등 사회에서 성평등을 외치며 나아가는 여성들의 당당한 모습을 칭하는 말이라고 새롭게 정의하고 싶다.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올해 스물네 살이 됐다. 성인이 된 지난 4년을 돌아보면 새로운 인연을 만나 배우고 얻는 것들로 인해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내 인생을 스스로 만들어간다는 보람도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누군가 나를 예쁘지 않다고 생각할까 두려워 스스로 외모의 단점을 찾아내고 가리기에 바빴고, 밤늦게 혼자 집에 들어가는 길은 두려웠으며, 공중화장실에는 몰래카메라가 있지 않을까 불안했고, 술집에서 혼자 화장실 가는 것이 무서웠으며, 자취방에서는 혼자 사는 여자임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정체성이 각인된 순간 어린 시절,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해 13층의 집까지 걸어 올라 다녔으며 화장실 문을 꽉 닫지 못했다. 초등학교 4학년, 주택에 살 때 혼자 샤워를 하다가 화장실 창문으로 나를 훔쳐보던 남자와 눈이 마주친 다음부터 내내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으니까. 그때부터 나는 나를 보호하려 드는 어른들로부터 ‘너는 여자이고, 여자는 몸을 조심해야 한다. 남자는 여자의 몸을 보려하고, 궁금해한다, 위협할 수 있다. 그러니 여자인 네가 좀 더 조심했어야 한다’ 등으로 잘못 배웠다. 그래서 나는 당시 그 사건은 나를 훔쳐본 남자가 아닌 내가 여자여서 그런 일이 생겼다고 (잘못) 생각했다. 그때 내 생물학적 정체성이 여자임을 처음 인식했다.

일상 속 실천 탈코르셋. 남들은 관심도 없는 단점을 가리기 위해 거울 앞에 앉아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되고 나를 멋대로 평가하려는 남자들의 기준에 맞춰 나를 재단하지 않아도 된다. 오늘 내가 입은 코르셋은 오늘 태어난 여자아이에게 고스란히 물려주는 코르셋이라 생각한다. 오늘의 예쁠 나를 위해 모든 여성들이 꾸밈노동을 강요받길 원하지 않는다. 교복 재킷 안쪽에 틴트 주머니가 생기는 것을 우려하고, 7세용 화장품 장난감에 반대한다. 모델로서 일을 할 때는 코르셋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이 부분은 내가 풀어가야 할 아주 어려운 숙제다.

 

이창주 그래픽 디자이너 1992

#탈코르셋 우리가 벗지 않는 코르셋은 일상에서 전시되고, 다음 세대에 대물림된다. 우리가 시작해야 ‘여성이 꾸미는 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다음 세대를 볼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우리 사회에서 20대 여성은 예뻐야 하고, 스물다섯 살이 넘으면 꺾였다고 표현하고, 연애는 꼭 해야 하고, 남자 잘 만나 결혼하는걸 인생의 지표쯤으로 여기며, 서른이 넘으면 인생이 끝나는 것처럼 군다. 그저 내가 살아갈 인생 중 ‘10년’일 뿐인데, 남인 나에게 바라는 게 너무 많다. 내 인생이 ‘완벽하게 짜인 여자의 인생’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기를 바라는 것 같다.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정체성이 각인된 순간 어릴 적 나는 남자애들과 어울려 (사회적 통념으로) ‘남자애들처럼’ 뛰어놀며 자랐다. 어느 날 후미진 골목길에서 한 아저씨가 나를 콕 찍어 “혼자 와서 강아지와 놀고 가” 하며 불렀다. 무리의 틈에 숨듯이 끼어서 골목을 지나왔고, 내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아저씨는 계속 나를 불렀다. 무리 중 내가 딱 하나 다른 건 성별이었다. 줄곧 ‘남자아이’처럼 지내던 내가 그 순간부터 ‘힘없는 여자아이’가 돼버렸다.

가장 많이 들었던 말 기가 세다, 드세다, 무섭다. 내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뚝심 있고 과묵하고 진중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일상 속 실천 불편한 발언에 내 의견을 설명한다. 반사적으로 화내기보다 내 생각을 차근차근 이야기하려 노력한다.

나는 불편함에 침묵하지 않습니다. 주목하는 젠더 이슈 여성 대상 약물 성범죄. 범죄로 이용되는 약물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도 문제인 데다가 오래전부터 본 사람, 들은 사람, 당한 사람이 수없이 많음에도 아무도 처벌받지 않고 있고, 이에 따른 예방 노력이나 수사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암묵적인 강간 문화가 뿌리박혀 있다는 사실이 경악스럽다.

성평등 의식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낀 사건이나 순간 최근 TV CF 속 여성을 전에 비해 능동적으로 그린다는 것을 느낄 때. 미디어가 그려내는 여성상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늘었음을 느낄 때.

가장 아름다운 나 내가 맡은 일을 잘해낼 때. 내가 가진 다른 요소가 아니라 순수하게 내가 가진 능력으로 인정 받을 때.

나의 위대한 여성 캐나다 인상주의 화가 헬렌 맥니콜. 색감과 묘사 방식, 그림에서 풍기는 고요한 느낌을 좋아 한다.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던 시기에 주로 여성 노동자, 아이들을 그리며 여성들의 세계를 따뜻하게 표현해낸 화가이기도 하다. 당시 사회가 주목하지 않던 약자의 모습에 집중했다는 점이 마음에 남았다. 시대가 그녀를 주목했다면 더 위대한 예술가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든다.

#가스라이팅 내가 중학생 때 ‘된장녀’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고, 이후 ‘OO녀’라는 말이 미디어에서 계속 들려왔다. 어릴 때부터 미디어의 주도하에 스스로 자기
검열에 빠져 살아온 것 같다.

 

슬릭 래퍼 1991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난도가 너무 높다. 다른 나라에서 다른 연령으로, 다른 성별로 직접 살지는 않았지만 대한민국 20대 여성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무수히 많은 지표에서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가장 절망적인 부분은, 미디어가 그려내는 20대 이후 여성의 삶이란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정체성이 각인된 순간 태어났던 그 순간. 물론 그때의 나는 의식할 수는 없었지만 당시 작명소에서 받아온 내 이름은 다음 아이를 남자아이로 태어나게 만들어준다는 이름이었다. 여성이라는 성별은 나의 존재 가치와 정체성, 자존감을 남동생의 절반만큼만 갖게 했다.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여자세요, 남자세요?’라는 질문. 여성 혐오가 만든 프레임 때문에 그 틀 안에 얌전히 들어가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늘 받아야 하는 무례한 질문이다. 내가 여성이면 혹은 남성이면 뭐가 어떻다는 거지? 내 성별을 인지하고 나면 뭐가 달라지는 건지, 왜 궁금한지 이해할 수 없다.

일상 속 실천 언어 사용을 굉장히 조심하고 있다. 성평등뿐 아니라 모든 차별과 대상화는 언어 사용과 유기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생각한다. 특히 가사를 쓰는 사람으로서 어떤 말들이 어떤 맥락을 가지는지, 어떻게 읽히는지 공부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페미니즘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과 친구 하지 않습니다.

주목하는 젠더 이슈 성별, 성 지향성, 성 정체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어릴 때부터 인지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회가 오길 바란다. 지금은 위 세 가지 개념에 대한 정의조차 공유되지 못하고 있다. 나 역시 과거에 이 개념들이 제대로 자리 잡지 않아 고통과 비극의 시간을 겪어야 했다.

성평등 의식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낀 사건이나 순간 최근에 읽었던 기사 중 ‘20대 여성 두 명 중 한 명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한다’는 헤드라인. 멋진 변화라고 생각한다.

가장 아름다운 나 아름다운 나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아름답지 않아도 상관없다.

나의 위대한 여성 지금 살아 있는 여성들 모두. 끝까지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란다.

 

노가은 카피라이터 페미니즘 맨스플레인 가스라이팅

노가은 카피라이터 1994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피곤하다.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이 매일 일어나고, 그 대상이 내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자유로운 사고를 가둔다. 수많은 잣대와 타인의 말에 흔들리지 않게 스스로를 지키는 일도 소홀해선 안 된다. 감옥에 갇혔으면서도 변변찮은 무기 없이 보초를 서고 있는 꼴이랄까.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정체성이 각인된 순간 초등학교 1학년 때, 난 노씨인데도 정원이 30명 정도 되는 반에서 25번이었다. 남자아이 먼저, 그다음 여자아이 순으로 번호가 배정됐기 때문이다. 그게 내가 여성이어서 겪은 최초의 불평등이다.

나는 여자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여자를 미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 사회는 너무도 쉽게 여자를 미워하는 것 같다. 각종 미신과 단어들로 말이다. 이 사람이 남자였다면 욕먹을 일인가? 여자라서 더 나쁘게 보이는 것은 아닐까? 의심한다. 이기적이고, 제멋대로 굴고, 욕망하는 여자들을 좀 내버려둘 필요가 있다. 나 스스로도 마찬가지다.

성평등 의식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낀 사건이나 순간 생리를 ‘그날’이 아닌 생리라 말하는 광고가 만들어지고, 성폭력 사건 재판에서 어느 정도 납득할 판결문이 나오고, 여자 아이돌이 탈코르셋의 내용을 담은 노래를 부르는 걸 보면, ‘조금씩 바뀌고 있구나’라고 생각한다.

#맨스플레인 #가스라이팅 “아갈머리를 확!”

 

이지원 IT 업계 매니저 1992

페미니즘? 남성 중심 사회를 청산하고 여성 중심 사회로 재편하고자 하는 여성 중심 사회 운동. 으레 페미니즘을 성평등 운동이라 정의하는데 사실은 그게 맞다. 하지만 나는 2분의 1을 원하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을 원한다. 이런 이유로 나는 ‘여성 중심 사회를 지향하는 운동’으로 정의하고자 한다.

여성스럽다 관철하다(본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소신대로 끈기 있게 나아가다)라는 동사의 유의어였으면.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사람이기 전에 여성으로 살아간다.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여성’이다. 남성에게 성적으로 매력적이어야 하고 항상 웃어야 하며 소위 ‘빻은’ 말을 들어도 공격하지 않고 우회적으로 말해 현명하다는 평을 들어야 하는, 임신이 가능한 상태인지 아닌지 측정당하는 젊고 싱싱한 여성. 고유의 개성을 지닌 개인으로 보지 않는다.

듣고 싶지 않은 말 ‘시집가야지’. 20대 후반이 되면서 결혼 얘기를 듣는데 정말 듣기 싫다. 결혼 생각도 없을뿐더러 나는 결혼 말고도 하고 싶은 일, 할 일이 많다.
결혼 얘기를 듣는 순간부터 내 인생을 커다란 허들이 가로막은 것 같다.

나는 지랖^^이 넓지 않습니다. 남의 인생에 심각하게 오지랖 넓게 참견하는 사람들을 만난 적 있다. 이런 사람들은 꼭 타인의 결혼, 애인, 옷차림 등 사생활에 관심을 갖는다. 이들을 보며 확실히 다짐했다. 누군가의 삶에 참견하는 일은 전에도 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더더욱 하지 않겠다고. 윤리적, 사회적,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행동을 하거나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닌 이상 남의 인생에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

성평등 의식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낀 사건이나 순간 매 순간. 하루하루 터져 나오는 이슈들이 이를 방증한다. 이전에는 몰랐던 것, 알아도 눈감았던 것, 차마 눈감지 못해 목소리를 내면 아무도 관심 갖지 않던 젠더 이슈가 하나둘 수면 위로 올라온다. 이제 우리는 생각하고 행동하고 소리 지른다. 아무도 가지 않은 눈길 위에 발자국을 내는 기분이다.

나의 위대한 여성 딱 한 명은 아니고 불특정 다수. ‘메갈리아’ 등장 이전부터 비혼의 길을 걸은 분들. 결혼이 여성 삶의 디폴트 값이었던 때에 비혼을 생각하다니. 나처럼 사회체제에 의심 없이 순종하는 사람은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 개인의 생각이 사회의 영향을 직간접으로 크게 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요즘 들어 더욱 존경스럽다. 혜안이 있다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탈코르셋 밖에서 가끔 탈코르셋을 한 자매들을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표현을 못했지만 이 지면을 통해 말하고 싶어요. 반가워요. 고마워요. 우리 서로에게 용기를 주도록 해요.

#백래시 나도 아직 힘겹게 싸우고 있다. 다른 것이 그러했듯 이것 또한 시간을 들여 천천히 떼어내야겠지.

90년생 여자사람 ①

뮤지션 예지 페미니즘
ⓒLYDO LE

예지 뮤지션 1993

페미니즘? 누구나 평등한것. ‘woman’이든, ‘womxn’(man에서 파생된 단어인 woman의 대안용어. 여성은 남성의 일부가 아님을 언어로 재정의함)이든, 퀴어든, 트랜스젠더든, 논-바이너리(non-binary)든, 그 누구라도.

여성스럽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 외에도 다양한 사람이 존재한다. 그 차이를 인정하고 재정의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 인권과 권리를 이야기할 때 ‘아름다운(beautiful)’ 또는 ‘여성적(feminine)’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편견과 규정을 만들 뿐이다. 실제로 위 단어들이 여성 인권을 ‘지지하는’데 사용되었더라도 말이다. 서로 배우고, (잘못 배웠던 것들은)의식적으로 잊으며 우리를 규정짓는 틀에서 벗어나길 소망한다.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어디에서 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뉴욕은 한국보다는 조금 더 진보적이다. 가령 나이에 따라 판단받는 일이 적다. 그렇다고 차별이 없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미국에서 젊은 한국인 여성으로 사는 것 역시 그만의 어려움이 있다.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정체성이 각인된 순간 지금으로서는 여성이라는 사실을 자각할 만한 경험은 없다. 대신 나를 불편하게 하는 타인에 대해 의식적으로 생각하려 한다. 어떤 차별적 순간을 경험했을 때 나의 잘못과 문제가 아님을 인지하려 한다. 구시대적인 관점을 지닌 건 바로 그들이니까.

사회가 요구하는 성 역할에서 해방됐던 계기 가장 먼저 보수적인 미국과 한국에서 자라면서 배웠던 모든 것을 의식적으로 잊으려 노력했다. 과거 사회가 우리 부모님을 가르쳤고, 부모님은 내게 여자는 이래야 한다, 남자는 이래야 한다, 퀴어는 잘못된 것이라 가르쳤다. 과거의 사고 방식을 뇌에 각인하고 규범으로 정착시키려 한 것이다. 하지만 이게 규칙이라고 그 누가 규정할 수 있나? 둘째, 다른 사람에게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해 생각하기를 그만 두고,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들을 보기 시작했다. 한국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스스로를 작은 존재로 만들었던 과거의 습관에서 벗어나려고도 애썼다. 대신 나를 작아지게 하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그들이 왜 그러는지를 더 많이 생각했다. 셋째, 다양한 피부색의 여성들, 퀴어, 트랜스, 논-바이너리, 논-스트레이트 메일(non-straight male) 등 다양한 친구를 만났다. 그들은 내게 솔직하고 주체적인 삶을 사는 방식에 대해 가르쳐줬으며, 어떤 성 정체성에 대해서든 자유롭게 표현해도 좋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일상 속 실천 내가 속한 커뮤니티 안에서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려한다. 부모님과도 성평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양한 인종의 여성이 주최하는 행사에 더 많이 참여하려 하고, 그들을 지지하고, 목소리를 내고 응원하려 한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습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성평등 의식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낀 사건이나 순간 성평등과 인권 감수성이 통하는, 친밀한 커뮤니티가 있는 뉴욕에 산다는 건 행운이다. 내가 있는 이곳은 한국보다는 진보적이다. 비록 정치적인 면에서는 더 혼란스럽지만 적어도 열린 마음을 지닌 개개인이 모여 집단을 이루고 있다. 요즘 또래의 한국 여성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한국 역시 조금씩 희망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느낀다.

나의 위대한 여성 ‘모든 드래그 퀸은 위대하다!’고 외치고 싶다.

녹색당공동운영위원장 신지예 페미니즘

신지예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1990

성평등 의식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낀 사건이나 순간 최근 불법 촬영 및 유포 범죄로 자살을 택한 여성들을 위한 추모제를 진행했다. 규모가 큰 행사는 아니었지만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참석해 진심으로 추모했다. 안희정 비서 성폭력 사건의 2심 결과도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협소하게 해석해온 기존 판례를 뒤집는 결과였다. 바뀌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천천히 확실히 바뀌긴 바뀌는구나 싶었다.

페미니즘? 가부장제와 성폭력, 성차별과 싸우는 철학. 젠더 불평등은 오래전부터 공고하게 이어져온 구조적 억압이기 때문에 인식조차 하기 어렵다. 가부장제 속에서 남성이 아닌 존재들은 타자로서 존재할 뿐이다. 페미니즘은 주체와 비체를 가르는 이분법적 구분을 전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보이지 않거나 별것 아닌 것으로 여겨졌던 젠더 불평등에 저항하고, 끊임없이 권력 구조를 재해석하는 살아 있는 철학이기도 하다.

여성스럽다 ‘여성스럽다’라는 범주에는 성격이 부드럽다, 조용하다, 성숙하다, 조신하다 등 수많은 표현이 존재한다. 이런 말들은 생물학적인 특징, 염색체 XX를 설명하는말이기보다 사회가 규정한 젠더 규범을 설명하는 표현이다. 페미니즘이 꿈꾸는 사회가 도래해 젠더 규범에서 해방되는 순간을 상상해보자. 단순히 ‘여성스럽다’라는 범주 안에 통속적 의미로서 정반대 표현만을 채워 넣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젠더 규범으로 이뤄진 정체성에 대한 해체, 더 이상 정형화된 여성이나 남성의 구분이 없는 세상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여성스럽다는 말의 의미는 텅 비어 있고, 없다고 말하고 싶다.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강도가 다를지라도, 차별의 언어와 억압은 늘 여성에게 존재했다. 여성으로 태어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두려움에 떨며 밤거리를 걷지 않아도 될 것이다. 혼자 무전 여행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을 것이다. 옷매무새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더 크게 걷고 더 크게 웃고 게걸스럽게 먹을 수 있다. 임신중절이 불법이고, 홀로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이 사회에서 임신은 더 이상 공포가 아닐 것이다. 페미니즘을 공부할수록 나보다는 엄마나 할머니의 삶이 떠오른다. 억압과 차별 속에서 살아온 여성들이 경이롭게 느껴진다. 그리고 뒤이어 살아갈 다른 여성들의 삶이 상상된다. 설사 내 삶 속에서 성차별과 억압의 구조가 모두 없어지지는 않더라도 앞으로 태어날 여성들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란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사는 일은 고통을 직시하며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다.

듣고 싶지 않은 말 여자는 아기를 낳아야 몸이 완성된다.

가장 아름다운 나 푹 자고 일어나서 기운 넘칠 때.

#탈코르셋 벗어 던지는 것은 옷이나 머리칼이 아니라 여성이라면 으레 해야 한다던 사회 규범이다.

 

남소라 경제지 기자 1990

페미니즘?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모든 것.

여자다움, 여자답다 나고 자라면서 습득한 나의 모습을 그대로 숨김없이 드러낸 당당함.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고,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정체성이 각인된 순간 생리를 시작한 것. 나는 아이를 낳고 싶지 않고 낳을 생각도 없는데, 앞으로 수십 년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나고 불만스러웠다.

듣고 싶지 않은  ‘여자니까’.

일상 속 실천 성차별적 단어 사용을 지양하고, 대화 중 타인이 사용할 경우 이를 지적하기.

주목하는 젠더 이슈 스포츠계 성범죄 사건들. 조재범부터 시작해 다른 피해자의 목소리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가해자로 지목된 자들에 대해 빠른 조사가 이뤄져 올바른 죗값을 치르길 바란다.

성평등 의식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낀 사건이나 순간 성범죄 사건을 이야기하다 피해자를 탓하는 발언이 나오면 모두 한마음으로 지적하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지우는 행동이 2차 가해임을 지적하는 모습을 일상에서 목격했을 때. 페미니즘이나 정치·사회적 성격을 띠지 않는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가장 아름다운 나 살아 있는 자는 모두 아름답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매 순간 어떤 모습이든 아름답다.

나의 위대한 여성 서지현 검사가 안태근 전 검사장을 성추행으로 고발한 지 1년. 그동안 우리는 수없이 많은 성범죄 가해자를 고발하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서지현 검사가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전히 눈을 가리고 귀를 막은 채 보고도 보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며 살았을 것이다. 주간지 <시사인> 589호에서는 ‘2018 올해의 인물’로 서지현 검사를 꼽았다. 서 검사는 <시사인>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원더우먼처럼 찍어달라고 말했다.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했던 한국 사회와 맞짱 떠 승리하고 있는 서지현 검사를 존경한다.

#노브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있지만 한 번만 해본 사람은 없을걸.  #유리천장 유리 천장 위에 있는 사람들이 왜 자꾸 유리 천장이 없다고 하는지?

 

이길보라 영화감독·작가 1990

‘몸 간수 잘해라’ ‘잘 처신해라’ 최악이다. 모든 잘못은 내 몸에 있다는 말이 아닌가.

여성스럽다 의미를 재정의한다 해도 나는 이 말을 쓰고 싶지는 않다. ‘여성’과 ‘남성’으로 모든 것을 구분할 수 없다. 인터섹스 같은 간성이 분명히 존재하고, 지금 유학 중인 네덜란드에서는 지난해부터 젠더 중립 여권을 발급하기 시작했다. 홈페이지 등에 가입할 때도 성별을 표기하고 싶지 않다면 젠더 중립 혹은 미표기를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여성스럽다’ ‘남성스럽다’라는 말보다 ‘이길보라스럽다’ ‘ㅇㅇㅇ스럽다’라는 개인의 고유성을 넣은 표현을 쓰고 싶다. 페미니즘은 개인의 고유성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한국에서 20대 여성이자, 장애인의 자녀로 사는 건 나를 늘 성찰하게 하는 계기였다. 어딜 가나 차별과 차이를 직시할 수밖에 없는 소수집단에 속했으니까. 그 경험이 다른 사람의 아픔과 경험에 공감할 수있는 감수성을 주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만큼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정체성이 각인된 순간 중학교에 들어가니까 치마를 입어야 하더라.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고 싶어 학교 갈 때만 체육복 바지를 입으면 안 되느냐고 학교에 문의했더니 절대 안 된다고 했다. 그럼 교복 바지를 만들어달라고 했더니 그것 또한 절대 안 된다고 하고. 남동생은 매일 학교에 자전거를 타고 갔는데 말이다. ‘내 몸은 왜 그의 몸처럼 자유로울 수 없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듣고 싶지 않은 말 ‘몸 간수 잘해라’ ‘잘 처신해라’ 최악이다. 모든 잘못은 내 몸에 있다는 말이 아닌가.

사회가 요구하는 성 역할에서 해방됐던 계기 유럽 여행을 처음 했을 때.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다. 당시 나는 삭발을 하거나 쇼트커트를 했는데 한국에서는 화장실에 갈 때마다 사람들이 깜짝깜짝 놀랐다. ‘여기 여자 화장실인데요’ 하는 말도 많이 들었다. 네덜란드에서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더라. 내가 무엇을 입든 어떤 머리를 하든. 해방감이 들었다. 이런 세상이 존재할 수 있구나 싶었다.

일상 속 실천 네덜란드에서는 노브라가 흔하다. 노브라에 원피스를 입고 힐을 신은 채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 나 역시 그렇게 지내다 한국에 오니 약간 눈치가 보이더라. 심지어 엄마는 지난여름에 네덜란드에서 노브라 상태인 나를 봤을 때는 아무 말 안 했는데 한국에 오니까 왜 브래지어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운동적인 측면에서 정치적인 의미를 담아 노브라에 민소매 티를 입고 다녔다. 일을 하러 갈 때나 지하철을 탈 때도. 누가 쳐다보거나 말을 걸면 미친년처럼 싸워야겠다는 생각으로. 그게 정말 큰 변화였다.

나는 몸 을 꽉 죄는 그 어떤 것도 입지  않습니다. 

성평등 의식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낀 사건이나 순간 미투 운동, 그리고 미투 운동을 둘러싸고 미디어가 피해자 이름을 거론하지 않고 가해자 이름을 따 ‘안희정 성폭행 사건’ ‘조재범 성폭행 사건’이라고 부르는 걸 봤을 때. 무언가를 어떻게 부르느갸가 그것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의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의 얼굴과 이름을 계속 언급해 그를 피해자화하지 말자고,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사건을 인식하는 방법을 고쳐먹자고 움직인 순간이니까.

나의 위대한 여성 지금 공부하고 있는 네덜란드 필름 아카데미의 여성 학장 미커(Mieke) 그리고 여성학을 전공한 여성 조교인 크리스(Kris)와 사빈(Sabien). 슈퍼 페미니스트 그룹으로 조교실 한쪽 벽에 영화 <델마와 루이스> 포스터가 붙어 있다. 여성주의를 바탕으로 만들어가는 석사과정 자체가 성적으로 평등하고 수평적인 곳이다. 매일 마주치는 이들을 보며 많은 것을 배운다.

페미니즘 나연 예술행동가

나연 예술행동가(ARTIVIST) 1994

여성스럽다 재정의 과정을 거쳐 결국에는 사라졌으면 하는 말. 인간을 이루는 한 부분인 성별이 존재 전체를 뒤덮는 일이 더 이상 생기질 않길 바란다. 궁극적으로 성별이라는 것이 동물처럼 생식 기능 외에는 아무 의미를 지니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사회가 요구하는 성 역할에서 해방됐던 계기 누드 사진을 찍으면서부터. 그 전까지 나는 내 몸을 싫어했고, 혼자 있을 때도 내 나체를 보는게 불편했다. 내 몸이 단순히 여성의 몸으로 대상화돼 존재한다는 걸 알았기에 은연중에 그랬던 것 같다. 그동안 접한 여성의 누드가 언제나 남성의 ‘자위용’으로만 소비되는 것을 목격해왔으니까. 이제는 그들의 폭력적인 시선이 문제임을 안다. 우리는 모두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로 태어났고, 몸에는 죄가 없다. 내 몸은 그저 살과 뼈일 뿐, 이를 저열한 욕망의 논리에 끼워 맞춰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내 몸을 제대로 보면서 깨닫기 시작했다.

일상 속 실천 누구를 만나건 페미니스트라고 말한다. 이 사실을 밝힐 때 상대방이 조심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또 페미니스트가 이 세상에, 그것도 당신 주위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페미니스트를 ‘일베’처럼 악마화된 소수집단으로 여기는데 이는 그들의 착각일 뿐이다. 세계 모든 곳에 페미니스트가 있고 우리는 결코 소수가 아니다.

나는 남성 권력에 고개를 숙이지 않습니다.

주목하는 젠더 이슈 한국의 임신중절 합법화.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임신중절 처벌에 대한 위헌 여부를 논의하고 있다. 당연히 위헌이라고 결론 내리길 기다리고 있다. 100% 피임법이 존재하지 않는 현 상황에서 여성은 원치 않는 임신과 출생이란 덫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여성 역시 자신의 인생을 위해 주체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인간인데 정부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성평등 의식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낀 사건이나 순간 사회가 페미니스트들에게 응답할 때. 제도적인 측면이 변화할 때. 최근 아일랜드에서 임신중절이 합법화되었는데 이처럼 사회 인식이 바뀌는 걸 목격하는 순간, 지치지 말고 나아가야 함을 다시금 느낀다.

나의 위대한 여성 윤리학자 캐럴 길리건. 기존 도덕 발달 이론이 지극히 남성 중심적이라는 점을 비판하며 여성을 기준으로 한 새로운 이론을 제시한 학자다. 여성성과 결부되는 가치를 긍정적으로 재평가했다. ‘여성스럽다’는 단어와 가치에 함축된 것을 재정의하며 여성의 존재를 긍정하는 데 공을 세운 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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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카페 ①혜화

저렴한 가격에, 바로 테이크아웃해서
강의실로 내달릴 수 있는 카페도 좋지만,
가끔은 공강에 짬을 내 들르기 좋은
매력적인 카페도 찾길 권한다.

개강 시즌을 맞아 일부러라도 찾아가고 싶은
대학가 카페를 지역별로 소개한다.
첫 번째는 혜화다.

메종 드 아베크엘

후암동 아베크엘 숍 앤 카페가 올해 초
동숭동에 2호점 메종 드 아베크엘을 오픈했다.
이전보다 넓은 공간을  마련해 흰 커튼과 조명으로 꾸미고
그림이나 책, 커피잔 등 작은 소품을 곳곳에 놓아둔 덕분에
어느 자리든 포토존으로 손색없다.
메뉴는 1호점과 같은데, 사과 주스를 넣은
시그니처 음료 링고 라떼 그리고 베리베리 토스트,
스트로베리 쉬폰 샌드, 딸기 소다 등 딸기를 사용해
시즌 한정으로 선보이는 메뉴들이 최근 가장 인기가 많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동숭4길 30-3
문의 070-7626-0425

MRD

대학로의 좁은 골목에 위치한 MRD는 붉은 벽돌을 쌓아 만든
외관과는 달리 내부는 흰색과 검은색으로 깔끔하게 꾸민 카페다.
‘카페의 본질은 커피’라는 마음을 담아
수많은 테이스팅 끝에 원두를 고른 후 음료를 만드는 곳.
추천 메뉴는 우유와 에스프레소 샷이 산뜻하게 어우러져
에스프레소 특유의 독한 맛을 잡아주는 아이스 플랫 화이트다.
말차와 치즈 두 가지 종류의 테린느를 디저트로 판매하는데,
생초콜릿처럼 쫀득한 식감이 특징이다.
밤이 되면 와인도 맛볼 수 있으며 인스타그램을 통해
일주일간 카페에서 틀었던 음악 리스트까지 공유한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성균관로7길 32
문의 010-3511-2727

마띠에르

민트색 대문이 시선을 사로잡는 마띠에르.
마치 가정집처럼 촛대와 접시를 비롯한 여러 소품과
앤틱한 가구들을 들여놓은 카페다.
내부 한가운데에 있는 긴 테이블 위에는
매일 갓 구운 베이커리가 진열되는데,
딸기 타르틀레트, 체리 레몬 구겔호프,
살구 피스타치오 스콘 등  신메뉴도 꾸준히 선보인다.
플랫 화이트 위에 크림을 가볍게 올린
플랫 화이트 크림을 함께 곁들여 먹어볼 것.

주소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11길 41-6
문의 02-745-9717

블루룸

블루룸재즈 음악이 잔잔하게 흐르는 조용한 카페다.
짙은 파란색과 초록색을 활용해 한쪽 벽을
간결하게 꾸민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곳으로
간판조차 없지만 찾아오는 손님이 많다.
커피와 밀크티를 포함한 논알코올 음료는 물론
맥주, 와인, 위스키까지 즐길 수 있다.
소량으로 공수해 온 술을 맛볼 수 있는 것 또한 장점.
사이드 메뉴로는 세 가지 종류의 치즈 케이크그린 올리브를 판매한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대명1길 16-7
문의 010-2702-1496

칠린

카페 겸 바 칠린을 찾으면 낮이든 밤이든
자신의 취향에 맞는 휴식을 즐길 수 있다.
커피와 에이드부터 50여 가지 칵테일까지 알차게 마련돼 있기 때문.
원목과 대리석, 녹색 식물이 조화를 이루는
인테리어로 편안한 분위기도 살렸다.
대표 음료는 수제 민트 생크림을
카페 모카 위에 올린 민트 크림 모카 그리고
우유, 녹차, 커피를 활용한 칵테일 시그니처 칠린.
유기농 밀가루로 만든 앙버터와 프레첼,
치즈 플레이트 등 디저트도 다양하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11길 41-8
문의 010-3492-0327

홍콩 샤워

카페 이름이 적힌 빨간 네온사인을
카운터 위에 크게 걸어둔 카페 홍콩 샤워.
회색 공간을 거울, 조각상 등의 소품으로 꾸며
빈티지 갤러리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커피, 에이드까지 다양한 음료를 판매하는데,
지난 12월 말 리뉴얼 오픈하며 생딸기라떼,
딸기 요거트 케이크 등 제철 과일을 활용한 메뉴를 추가했다.
치즈 초코 티라미수는 오랜 시간
꾸준히 사랑받는 디저트.

주소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29길 36
문의 010-8383-0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