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정아의 또 다른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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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코트, 트렌치 뷔스티에, 벨트 모두 콜라보토리(Collabotory), 로즈 골드 드롭 이어링 디디에
두보(Didier Dub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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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레더 베스트, 브라운 스웨이드 스커트 모두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

며칠 전 영화 <미성년>의 편집본을 봤다는 배우 염정아는 인터뷰를 마친 후 잠시 아무 말 없이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한 눈빛을 하고 앉아 있었다. 좋은 감독과 스태프, 애틋한 동료 배우들과 호흡이 유독 좋았던 현장의 어느 한때를 회상하는 중일 수도 있고, 지금쯤 ‘영주’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해하는 마음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한참 후 그녀가 말했다. 아주 좋은 작품이 나온 것 같다고. 영화에 담긴 그 감정을 많은 사람이 느꼈으면 좋겠다고. 좋은 작품을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가득한 봄날을 맞은 것 같다는 염정아의 봄에는 <미성년>이 함께한다.

오늘 공개된 영화 <미성년>의 스틸 컷을 봤다. 사진에는 화장기 없고 메마른 표정의 영주가 담겨 있더라. 첫 촬영 날 찍은 스틸 컷이다. 나에게는 가장 아쉬운 날이기도 하고. 촬영감독님은 그날이 가장 좋았다고 하는데 난 다시 찍고 싶었다. 스틸 컷의 모습처럼 화장도 매트하게 하고 색조 화장은 아무것도 안 하고 나온다.

영화 <미성년>은 배우 김윤석의 감독 데뷔작이다. 배우 출신 감독과 작업하는 현장은 여느 촬영장과 다를 것 같다. 김윤석 감독은 배우로서 지금까지 많은 작품에서 마초 이미지가 강조되지 않았나. 하지만 감독으로서는 놀랄만큼 섬세했다. 이런 분인지 전혀 몰랐다. 아마 영화를 보면 배우 김윤석을 보며 전혀 상상할 수 없던 감성의 결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감독으로서 더 빛날 거라는 확신도 든다. 그의 첫번째 연출작에 함께할 수 있어 좋았다.

맞다. ‘김윤석 감독이 연출한 영화 <미성년>’이라는 문장만 봤을 때는 스릴러인가 싶었다. 그러니까. 뭔가 셀 것 같고. 첫 촬영 날에는 내가 긴장을 많이 했다. 어쩐지 감독님이 내 속을 다 들여다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날 촬영이 끝난 뒤에야 마음이 편해졌다. 촬영하며 확신이 들지 않거나 내가 틀리진 않았는지 헷갈리는 부분을 감독님이 정확하게 짚어주셨다.

오늘이 영화 <미성년>과 관련한 첫 인터뷰라고 들었다. 크랭크업한 지 1년 정도 지났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현장이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 함께한 배우들이 모두 좋았다. 김소진 배우는 연기를 너무 잘하고. 정말 잘한다. 이번 작품은 함께한 사람들이 모두 성격이 구수하다고 해야 하나,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처럼 편했다. 현장에 가는 하루하루가 좋았고 촬영이 끝나가는게 아쉬울 정도였다. 매일 현장에 가고 싶었고, 회차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연기하는 게 너무 재밌었다.

연기를 오래 했는데도 여전히 연기하는 게 즐겁고 연기를 대하는 마음이 뜨겁다는 건 부러운 일이다. <미성년>은 정말 잘해내고 싶었다.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연기하기 쉽지 않은 역할이라 그런 마음이 더 들었던 것 같다.

영주는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는다. 한 사건에 대해 덤덤한 태도를 보이는데 배우로서는 오히려 표현하기 힘든 감정의 온도일 수 있을 것 같다. 영주는 상황상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드러낼 수 없는 인물이다. 어떤 톤으로 연기해야 할지 감을 잡아가는 데 감독님이 많이 도와주셨다. 촬영감독님도 그렇고.

배우는 작품마다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지 않나. <미성년>을 통해 해내고 싶었던 숙제가 있다면 뭔가? 누가 되지 않는 것. 자신 있게 내가 하겠다고 했는데 혹시 영화에 누가 될까 봐 걱정했다. (김)소진이가 연기를 정말 잘한다. 감독님도 그렇고. 그래서 첫 촬영 때 더 떨렸다. 감독님이 나에게 기대하는 게 있는데 못 해낼까 봐.

이번 작품에 유독 마음이 간 이유는 뭔가? 시나리오를 받고 하루 만에 하겠다고 전화했다. 이야기 자체가 매력적이고, 인물이 감정의 기복이 크지 않은데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다. 시나리오 속 영주를 내가 연기하고 김윤석 감독님이 연출을 통해 이끈다면 어떤 모습이 나올지 궁금했다. 지금까지와 다른 염정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영주뿐만 아니라 소진이나 두 딸의 심정도 모두 이해됐다. 동정심이 드는 부분도 있고. <미성년>에는 못된 사람이 없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이 작품이 아주 괜찮다는 거다. 편집본을 봤는데 인물들의 감정을 떠올리면 아직도 여운이 남는다. 흥행을 떠나 많은 분들이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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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원숄더 원피스 막스마라(MaxMara), 골드 이어링 지넷 뉴욕(Ginette NY), 스틸레토 힐 스튜어트 와이츠먼(Stuart Weitz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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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셔츠 포츠 1961(Ports 1961), 블랙 베스트 수트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골드 링 이어링 지넷 뉴욕(Ginette NY), 블랙 스틸레토 힐 스튜어트 와이츠먼(Stuart Weitz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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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몇 여성 배우를 인터뷰했는데 많은 배우가 드라마 <SKY캐슬>에 대해 얘기했다. <SKY캐슬>은 오랜만에 많은 여성 배우들이 능동적으로 극을 끌어가는 작품이어서 더 반가웠다. 그러고 보면 얼마 전 영화 <뺑반>에서는 경찰 내사과 과장을 연기했다. 영화 <카트>에서는 비정규직 마트 직원을 연기 했고. 사회의 약자가 되기도 하고, 능동적인 여성 캐릭터를 연기하기도 했는데 본의 아니게 책임감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다.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된 것 같다.(웃음) 더 많은 배우가 더 많은 무대에서 활동하길 바란다. 나 하나로 인해 대단한 변화가 생기지는 않겠지. 하지만 <SKY캐슬>이 인기를 모은 후 드라마 기획이 달라지고 있는 걸 체감한다. 이제까지와 다른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이 많아지고 있다.

염정아는 늘 쉬지 않고 연기했다. 그중에는 <완벽한 타인>처럼 흥행한 작품도 있고 대중의 호응을 얻지 못한 작품도 있다. 그런 부침에서 자유로운 편인가? 난 덤덤한 편이다. 평소 잘 울지 않고 기쁜 일이 있어도 크게 기뻐하지도 않는다. 그만큼 감정의 기복이 크지 않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애쓴 적은 없는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SKY캐슬>의 반응에도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놀라긴 했어도 들뜨지는 않았다. 이런 작품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싶다. 좋은 작품을 계속 만나고 좋은 분들과 계속 작업하겠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이 호응해주는 작품을 만나다니. 지금까지 늘 그렇게 좋은 날만 있지는 않았다. 원하는 작품을 만날 수 없어 자존감이 떨어지기도 했고. 그럼에도 버틸 수 있었던 건 가족 때문이다. 늘 마음 한구석이 따뜻하고 기댈 곳이 있다는 것. 아, 가만 보면 난 연기자 생활을 무척 좋아한다.(웃음) 연기할 때 굉장히 행복하고.

어쨌든 지금 좋은 시절을 보내는 중인 건 틀림없다. 좋은 작품을 많이 만난 시간이었다. 그런데 사실 나는 대단한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런 성격도 아니고. 다만 지금까지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고 연기하는 게 참 좋았다. 운도 따랐고. 아무리 하고 싶어도 뜻대로 되지 않기도 하지 않나. 내가 선택한 작품의 반응이 좋았으니 운이 좋았던 거지. 물론 지금까지 좋은 시절만 있었던 건 아니다. 하고 싶은 작품을 못 만나 답답한 시절도 있었고. 그런데 다 지나간다. 지나고 나면 뭔가 오고. 잘 버티면 좋은 일이 생기고.

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와 지금 연기를 대하는 온도가 같은가? 전혀. 젊을 때는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즐거웠다. 그래서 예능 프로그램 사회도 보고 노래도 많이 부르고 춤도 추고 끼를 막 발산했다. 그런 게 재밌었고. 그때의 나를 칭찬하고 싶은 건 꾸준히 작품을 했다는 점이다. 30대가 된 후에는 배우의 길을 좀 체계적으로 가고 싶었다. 작품 하나하나를 고를 때도 그렇고. 여성 영화 제작자와 만날 기회가 많았는데 그때 조언을 많이 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연기를 잘하고 싶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작품을 계속 찾게 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고, 이전 작품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 그러기 위해 고민하고, 그런 시간 자체가 즐겁고.

과거에는 어떤 배우가 되고 싶었나? 한때 한 시대를 빛내는 배우가 되겠다고 마음먹기도 했었다. 이제는 지금처럼 꾸준히 계속 작품을 하고 싶다. 그거면 됐다.

이 세계에 들어온 초기에도 지금처럼 쉬지 않고 연기할 수 있을 거라 예상했나? 아니. 결혼하면 그만둘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안 하면 마는 거지 뭐, 이렇게. 지금은 나이가 아주 많이 든 후에도 계속 연기하고 싶다. 언제부턴가 촬영 현장에 가는 것 자체가 즐겁고 나이 먹으며 늙어가는 내 얼굴이 두렵지 않다. 할머니가 되어 할머니 얼굴로 연기를 계속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전에는 젊은 내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나이 든 모습을 보여주면 부끄러울 것 같았다. 연기는 해도 해도 또 다른 역할이 있다. 그간 많은 인물을 연기했지만 연기할 수 있는 인물이 여전히 많이 남았다. 그게 바로 연기의 매력 아닐까?

세월이 염정아에게 좋은 변화를 가져다준 것 같다.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차분해지고 너그러워졌으며 인상도 부드러워졌다. 아이들도 커가고.

촬영장에서 에너지를 다 쏟아부은 날에는 집에 돌아가면 아이들에게 소홀해지지 않나? 엄마로서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다. 챙겨주지 않으면 아이들 생활에 구멍이 나는 일들. 어제는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갔더니 아이들이 가방과 준비물을 가지런히 챙겨놨더라. 얼마나 예쁘던지. 물론 촬영이 유독 지치고 힘든 날이 있다. 그럴 때 집에 돌아와 와인 한 잔 마시고 잘 자면 그게 그렇게 행복하다. 잘하고 돌아온 날도 그렇지. 내가 생각해도 참 잘 넘어간 날.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있는 내 일이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오늘은 어떤 일상을 보내고 스튜디오에 왔나? 별다를 것 없었다. 아침 일찍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오늘은 정리할 것이 많아 신발장이며 집 안 이곳저곳을 정리했다. 아이들이 학기 초라 작성해야 하는 서류가 많아서 그것도 하고.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아이들이 가져오지 않은 서류도 챙기고. 운동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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