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정의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룬다티로이 페미니즘
아룬다티 로이

강한 자들과 힘없는 자들의 격차를 만들어내는 것은 개인의 힘으로는 극복하기 힘든 억압적인 사회·경제적 관습 때문이다.

부커상 수상작 <작은 것들의 신>의 저자인 아룬다티 로이. 사회의 제도와 관습에 의해 파괴돼가는 한 가족의 삶을 보여준 이 책에는 여성과 아이 등 나약하고 작은 존재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작은 것들의 신>은 전 세계 40개 언어로 번역돼 출간되었고, 소설가이자 사회운동가인 아룬다티 로이는 소설 집필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과 이를 위한 다양한 강연 활동을 이어가며 <타임>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아룬다티 로이, 우리가 모르는 인도 그리고 세계> <자본 주의: 유령 이야기> 등 저서를 통해 불의 앞에서 침묵하지 않으며 보다 많은 보통 사람의 연대를 꿈꾼다.

<작은 것들의 신>에는 거대한 사회제도 안에서 한 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 등장한다. 카스트가 뚜렷한 사회인 인도에서 힘없고 약한 존재들에 주목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내가 약한 사람들을 위해 말하거나 그들을 대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누군가의 입장이나 상황을 대변할 수는 없다. 나는 다만 소설이든 비소설이든 작가로서 이야기를 풀어갈 때 이 세계를 운영하는 시스템을 ‘정의’라는 프리즘을 통해 살펴본다. 나 역시 나만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나만의 세계관을 선전하지는 않는다.

한국은 인터넷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다. 그래서 특별한 이슈가 있을 때마다 인터넷에서 각자의 의견을 말하는데, 문제는 익명성에 기대 논란을 위한 논란, 반대를 위한 반대 의견도 무분별하게 쏟아낸다는 점이다. 젠더 이슈도 마찬가지인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토론이 아니라 서로 편을 가르고 대립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다. 인도 역시 서로 다른 계급, 종교 간 갈등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지는 지 궁금하다. 나는 인간 사회가 ‘E-페르소나(E-Persona)’를 겨우 파악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뇌는 전례 없이 많은 양의 데이터를 처리하고 있는데, 대개는 자질구레한 것들이다. 인터넷은 인간의 뇌 시스템처럼 사람과 사람을 서로 연결해주는 광범위한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인 셈이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을 편 가르기 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는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디지털 세계에서 집단 싸움을 야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류에서 추방되고 침묵을 강요당한 사람들이 자신만의 플랫폼을 발전시키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인도에서는 이런 현상조차 굉장히 편향적으로 나타난다.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수백만 명에 이르고,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다루지 못하는 사람도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한국 에서 나타나는 집단 간 대립은 잔인하게도 세계 어디에서나 일어나고 있다. 힌두 민족주의 정부를 둔 인도에서도 이러한 대립이 종교, 계층, 성별 간에 나타나고 있다. 이로 인한 끔찍한 범죄도 일어난다. 어떤 힌두 우월주의자가 무슬림 노동자를 도끼로 난도질해 죽인 사건이 있었는데, 그 모습을 영상에 담아 열광적인 관중을 위해 인터넷에 자랑스럽게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E-페르소나는 진화론적인 면에서 호모사피엔스와 인간 사회를 완전히 바꾸어놓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매우 빠르게 전개될 것이다.

인도는 여성 인권 의식이 약한 편이다. 당신 또한 그런 사회 분위기에서 약자에 속할 텐데도 사회운동가로서 목소리를 높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인도에는 여러 세기가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비범하고 강인하며 자유로운 여성들을 찾아볼 수 있는 반면 가장 핍박받고 억압당하는 여성들도 볼 수 있다. 세상에 정의가 무엇인지 알리고자 거침없이 활동하는 많은 여성 변호사, 선생님, 사회 운동가가 있다. 하지만 여아 살해와 여아 낙태가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결코 ‘약한 자’를 위해 싸우지 않는다. 내가 약한 자를 위해 싸운다고 말하면 그건 마치 그들의 불행이 그들 자체가 부족하거나 약하기 때문인 것처럼 암시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듯이 그들의 불행은 결코 그들 자신의 탓이 아니다. 강한 자들과 힘없는 자들의 격차를 만들어내는 것은 개인의 힘으로는 극복하기 힘든 억압적인 사회·경제적 관습 때문이다.

빈부의 격차는 비단 한 나라 안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에서도 그로 인한 문제가 일어난다. 이를테면 얼마 전 한국에서는 쓰레기를 외국에 수출하는 문제가 이슈화됐다. 강대국이 자신들의 쓰레기를 가난한 나라에 버린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그때 처음 알았다. 또 약소국의 여성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일하며 그 덕에 제품의 원가가 낮아진다. 착취의 악순환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 외국에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를 부끄럽고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점이 놀랍다. 씁쓸하지만 인도인은 한국인처럼 반응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인도는 카스트제도를 통해 잔인하게 사람들을 구분 짓고 이러한 계급화에 종교적 구속력을 부여하는 불공평한 사회다. 수백만 명의 달리트 계급 사람들은 ‘불가촉천민’으로 취급당하고 청소나 오물 처리 같은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카스트제도의 상위 계급 사람들은 자기 변기조차 한 번도 직접 닦은 적 없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 폐기물을 수출한다는 사실을 창피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 문제의 핵심은 물론 우리가 쓰레기를 너무 많이 만들어낸다는 데 있다. 자본주의와 그로 인한 소비를 지향하는 삶, 그리고 기후변화와 그로 인한 지구의 위기는 모두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문제다.

미투 운동이 계속되고 있다. 다만 미투 운동이 폭로에 그치고 젠더 의식의 큰 변화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든다. 인도 사회에서도 미투 운동이 활발한 편 인가? 그로 인한 변화가 체감되는가? 미투 운동은 일종의 폭발이다. 오랫동안 억압돼온 분노가 쏟아져 나온 거다. 하지만 이를 두고 혁명이라고 명명하기에는 이르다. 현재 인도 사회는 카스트제도와 많은 사람을 위협하는 국수주의가 지배하고 있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상위 계급 남성들은 달리트 계급 여성들을 강간하고 폭행하는 것이 자신들의 권리라고 여겼다. 안타깝게도 이에 대항하는 시위도 별로 없다. 마찬가지로 군사적으로 통치하는 카슈미르와 마니푸르 지역에서 인도 군인들이 여성을 성폭행하는 사건이 있었지만 이를 두고 사람들이 격분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렇게 분노라는 것은 선택적으로 나타난다. 그럼에도 변화를 위한 움직임이 조금씩 일고 있다.

과연 이 세계는 긍정적인 미래로 향하고 있는 걸까? 지구와 인류가 위험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면서 어떻게 그렇게 느낄 수 있겠는가? 긍정적인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물론 부정할 수 없다. 나, 어머니, 할머니를 떠올려보면 단 세 세대 만에 엄청난 해방을 이뤄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여전히 많은 것이 위기에 놓여 있다. 우리 인간은 생존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지구의 시스템을 빠른 속도로 파괴하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발전을 이야기한다. 이 발전이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지구를 개발 대상으로 보고 더 빠른 발전을 바라지만 과연 누구를 위한 발전을 기대하는 것인가? 그리고 그로 인해 우리가치를 대가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최근작 <The Ministry of Utmost Happiness>의 주인공은 히즈라다. 쉽게 말하면 여장을 한 남자지만 단편적으로 설명하기는 복잡하다. 트랜스젠더는 아니지만 여장을 한 채 구걸하며 살고 때론 종교 행사에 참여하기도 한다. 카스트에서는최하위 계급에 속한다. 왜 하필 히즈라를 등장인물로 선택했나? 소설 속 ‘안줌’이란 인물은 히즈라다. 하지만 그것이 그녀를 정의하는 유일한 정체성은 아니다. 그녀 역시 우리처럼 고유한 한 개인이다. 1950년대 올드 델리에서 태어난 시아파 무슬림이다. 사실 오늘날의 인도에서 안줌이 히즈라라는 사실보다 무슬림이라는 정체성이 그녀를 더 위협한다. 나는 소설을 통해 어떤 선언을 하거나 독자에게 특정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독자들이 내가 창조해낸 이야기 속 세계를 걷길 바라며 이를 위해 노력할 따름이다.

쉬지 않고 투쟁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지금까지 흔들리지 않고 정의를 위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자부심이란 건 단순한 감정인데 내겐 항상 너무 복잡하게 느껴진다. 나는 내가 하는 활동에 자부심을 느끼진 않는다. 다만 그저 원하는 대로 글이 써질 때 종종 행복하다고 느낀다. 그럴 때 느끼는 행복감이 지금까지 나를 이끌어온 것이 아닐까? 그러면 혈관 속 피가 더 자유롭게 흐르고 오장육부가 제자리를 지킬 수 있다. 앞으로 또 어떤 일이 불쑥 터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작가를 비롯한 예술가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작가마다 그 역할이 다르다. 예술가에게 특정한 역할을 규정하는 건 옳은 일이 아니다.

올해 어떤 일을 계획하고 있는가? 아직은 특별한 계획이 없다. 아마 조만간 무슨 일이든 생길 거다. 분명.

꽃 찾아 #봄여행

날씨가 풀리고 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3월 초부터 5월까지 주말에 찾아가기 좋은
전국 곳곳의 꽃 축제를 모았다.
산과 바다, 작은 마을과 도시 어디든
꽃이 만개했다면 이 계절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광양 매화축제 | 3월 8일~17일

봄 여행 꽃
www.gwangyang.go.kr

매년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전남 광양 매화 축제.
섬진강 근처의 매화마을을 중심으로 흰 매화꽃이
길가와 백운산 자락에 서서히 피어나기 시작한다.
특히, 청매실농원 주변의 꽃은 한옥과 함께
고즈넉한 봄기운을 느끼게 한다.

주소 전남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 414 (청매실농원)

구례 산수유축제 | 3월 16일~24일

봄 여행 꽃
한국관광공사

3월 중순이면 산수유꽃전남 구례지리산을 수놓는다.
사랑을 맹세하기 위해 산수유꽃과 열매를
연인에게 선물했다는 풍습도 전해져 내려오는 지역.
산수유 생산량이 전국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나무마다 가득 핀 노란 꽃이 새봄의 정취를 전한다.

주소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 상관1길 45 (지리산온천관광단지 주변)

제주 왕벚꽃축제 | 3월 말

봄 여행 꽃
www.visitjeju.net

벚꽃 구경을 서두르고 싶다면 제주로 향해보자.
제주의 자생종 왕벚꽃이 3월 말부터  피어나는데,
일반 벚꽃보다 꽃잎이 커 더욱 화사하게 거리를 채운다.
제주시 전농로, 애월읍 장전리, 제주대학교 입구가 손꼽히는 명소.

주소 제주시 전농로, 제주시 애월읍 장전리, 제주시 제주대학로 102 (제주대학교)

진해군항제 | 4월 1일~10일

봄 여행 꽃
@changwon_city

경남 창원에서 열리는 진해군항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얼을 추모하는 행사이자
30여만 그루왕벚나무가 선사하는 대규모 벚꽃 축제다.
여좌천 로망스 다리, 경화역 철길 등
지역 곳곳에서 벚꽃을 발견할 수 있으며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하는 것도 추천한다.

주소 경남 창원시 진해구 충장로 (진해역 주변)

여의도 봄꽃축제 | 4월 5일~11일

봄 여행 꽃
Facebook @HappyYDP

서울의 대표적인 봄나들이 장소로 꼽히는 여의도.
1천8백여 개의 왕벚나무부터 진달래, 개나리, 조팝꽃까지
10여 종의 꽃들이 한강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연인, 가족, 친구들 어느 누구와도 함께 하기 좋은 축제.

주소 서울 영등포구 여의서로 (국회의사당 뒤편)

석촌호수 벚꽃축제 | 4월 5일~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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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pa_official

석촌호수 또한 서울을 벗어나지 않고
벚꽃을 즐기기 좋은 장소 중 하나다.
4월쯤 호수 둘레에 피는 벚꽃은 롯데월드타워를 비롯한
고층 건물과 어우러져 훌륭한 포토존을 완성한다.
벚꽃이 흩날리는 산책로를 걸으며 도심 속 휴식을 취하기에도 제격.

주소 서울시 송파구 석촌호수로, 잠실로 (석촌호수 주변)

경포 벚꽃축제 | 4월 초·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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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gpfestival.kr

강원도 강릉에서도 4월 초·중순부터 벚꽃 잔치가 개최된다.
관동팔경 중 하나인 경포대의 진입로는 벚꽃길로 재탄생하고
경포호수 주변 또한 벚꽃 개나리, 수선화
여러 종류의 꽃이 다채롭게 피어난다.

주소 강원 강릉시 경포로 365 (경포대)

태안 세계 튤립축제 | 4월 13일~5월 12일

충남 태안 꽃지해안공원에 핀 형형색색의 튤립이 반기는
태안 세계 튤립 축제가 4월 중순부터 한 달간 진행된다.
키코마치, 잭팟 등 무려 200여 종에 달하는 튤립은 물론
알리움, 겹벚꽃, 무스카리 등 독특한 매력을 드러내는
꽃 사이에서 봄의 절정을 경험할 수 있다.

주소 충남 태안군 안면읍 꽃지해안로 400 (코리아 플라워 파크)

팔공산 벚꽃축제 | 4월 중순

팔공산 벚꽃축제가 열리는 대구 팔공산 동화지구 일대는
매년 봄마다 영산홍벚꽃으로 붉게 물든다.
병풍바위를 포함한 암석과 계곡이 많아 등산코스로 좋지만
벚나무가 만들어낸 ‘벚꽃 터널’을 따라
드라이브를 하기에도 손색없다.

주소 대구시 동구 (팔공산 동화지구 주변)

군포 철쭉축제 | 4월 24일~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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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gunpofestival.org

4월 말 경기도 군포의 철쭉동산 일대에서 진행되는  군포 철쭉 축제.
약 백만 그루에 달하는 철쭉이 만개하면
마치 물감을 칠한 듯 화려한 진분홍색 꽃물결
봄을 제대로 만끽하게 해준다.

주소 경기도 군포시 고산로 (철쭉동산 주변)

여성들이여, 여성의 동지가 되어라

여성혐오를혐오한다 우에노치즈코 페미니즘 페미니스트

지치지 않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동지다. 고립은 최대의 적이다. 주위에 함께하면 기분 좋은 사람들을 늘리자. 그리고 때로는 약한 소리를 하고 기대기도 하면서 서로 의지가 돼주자. 여성들은 이런 일이 특기다. 이를 악물고 버티는 것만이 투쟁은 아니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의 저자로 알려진 일본의 사회학자 자 페미니스트 우에노 치즈코. 2012년 국내에 발행된 이 책은 핀셋으로 현실을 낱낱이 파헤친 듯한 날카로운 지적으로 남성들에게는 불편한 진실을, 여성들에게는 사고의 전환을 제시하며 대표적인 페미니즘 입문서로 자리 잡았다. 비혼 여성이기도 한 우에노 치즈코는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싱글, 행복하면 그만이다> 등 저서를 통해 이성애,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치 있는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다. 그는 일본에서 지금까지 페미니스트로 살아갈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으로 ‘동지’를 꼽는다. ‘연대’만이 지치지 않고 즐겁게 투쟁하는 길이라고 페미니즘 인생 70년 차의 선배가 말한다. 현재 우에노 치즈코는 일본 국내의 여성 활동 지원과 단체 간 연결을 위해 설립한 NPO 법인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가 한국에서 이룬 소기의 성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람들이 내 책을 읽는 건 기쁜 일이지만, 반면 안타깝기도 하다. 이 책이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한국 사회가 책에서 그리는 현실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특히 강남역 살인 사건을 계기로 이 책이 많이 읽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안타까웠다.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강남역 살인 사건을 ‘정신이상자가 일으킨 사건’이라고 하지 않고 ‘여성 혐오 살인’이라고 이름 붙이게 된 데 이 책이 영향을 미쳤다고 들었다. 한 사건을 어떻게 이름 짓는 가는 ‘정의(定義)의 정치’다. ‘여성 혐오 살인’이라고 정의함으로써 강남역 살인 사건 현장에 수많은 여성이 모여들고 수많은 메시지를 남긴 움직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여성 혐오는 일본에서도 익숙하지 않은 말이었는데 이 책 덕분에 널리 정착했다. 이 책의 제목에는 ‘페미니즘’도 ‘젠더’도 없지만 내용은 페미니즘 그 자체다. 페미니즘을 몰랐던 젊은 세대는 이 책을 읽고 ‘신선했다’, ‘이런 사고방식이 있었다니 놀랍다’ 등 감상을 전해주었다. 페미니즘이 세대를 넘어 이어지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이 책을 입문서로 삼아 다시 배우게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방식은 제각기 다르다. 과격하게 ‘미러링’을 하기도 하고 미디어와 기득권(남자)의 시선으로 고착된 외적인 아름다움에 동조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탈코르셋’을 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종종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이를 비난하기도 한다. 어떤 방식으로 페미니즘을 지지하든 중점에 두어야 하는 생각은 무엇일까? 페미니즘에는 역사가 있다. 연상의 여성들의 경험에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러링은 남성이 하는 행위를 남성과 같은 방식으로 되돌려주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남성처럼 되고 싶은 것이 아니며 남성을 흉내 내고 싶은 것도 아니다. 미러링이 일시적으로 임팩트는 있을지 모르나 남성의 어리석은 행동을 모방하는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봐서는 자제하는 편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탈코르셋 하면 떠오르는 것은 여성해방운동 초기에 브래지어를 불태 우던 미국 여성해방운동가들의 퍼포먼스다. 브래지어도 코르셋도 분명 여성을 옥죄는 것이지만, 그것을 버린 여성이 버리지 않는 여성을 뒤떨어졌다거나 열등하다고 서열화하는 것은 탐탁지 않다. 그것은 하나의 척도로 진보했다거나 뒤떨어졌다고 판정하는 새로운 권위주의, 일종의 페미니즘 원리주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투쟁 방식에는 다양성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은 여전히 소수의 이야기다. 얼마 전 한국에서는 한 여자 아이돌이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을 들고 있었다는 이유로 하루 종일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에 올랐고, 또 다른 걸 그룹 멤버는 자신의 SNS에 ‘Girls Can Do Anything’이라고 적힌 휴대폰 케이스 사진을 올렸다는 이유로 주목받았다. 페미니즘 담론의 판을 더 넓히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82년생 김지영>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소식을들었다. 예외가 없을 정도로 많은 탤런트와 아이돌이 “나도 읽고 있습니다 #MeToo”라고 말하면 되지 않을까? 임신중절이 금지되었던 1970년대 프랑스에서는 시몬 드 보부아르를 비롯한 사람들이 “나도 임신중절 경험자입니다 #MeToo”라며 시위를 했다. 성폭력에서도 미투(#MeToo) 운동이 일어났다. 주위 여성들은 비난받는 여성이 고립되지 않도록 노력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페미니즘은 현재 어떤 상태인가? 한국과 일본 양국의 페미니즘은 그 양상이 어떻게 다른가? 일본에서는 제2차 페미니즘 물결을 주도했던 사람들이 고령화해 세대교체가 큰 과제다. 젊은 페미니스트도 등장했지만 소수에 그치고 있다. 그렇지만 ‘여성해방운동’이나 ‘페미니즘’이라는 명칭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세대 대신, 정보가 없는 만큼 터부 의식이 없는 젊은 세대가 생겨나고 있다. 무엇보다 페미니즘이나 젠더라는 말을 알든 모르든, 남녀평등 의식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 젊은 여성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 덕분에 사회 전체가 성폭력과 성차별에 민감해지고 허용도가 낮아졌다. 한국에서는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를 터부시하지 않 고 젊은 여성들이 페미니즘 움직임에 나서고 있는 점이 좋아보인다.

당신은 폭력 포르노를 삭제하라는 주류 페미니스트의 기조에 반대한다. 폭력 포르노는 상상의 산물이기에 표현의 자유를 허해야 하고 그 제작 행위를 단속할 수도 없다고 했는데, 한국에서 가장 기승을 부리는 포르노는 ‘몰카’다. 이는 종종 ‘리벤지 포르노’가 되기도 한다. 이 역시 그 양이 엄청나 단속하기 힘들 정도인데, 몰카를 포르노로 소비하는 한국의 상황에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어떤 방식으로 단속이 가능할지, 일본에 선례가 있었는지도 알려주기 바란다. 몰카는 일본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성폭력의 하나다. 영어로 피핑 톰(Peeping Tom)이라고 하는 것처럼, 자신은 타인에게 노출하지 않고, 몸의 안전을 확보한 채 그저 바라보는 주체가 되어 타자(여성)를 보여지는 객체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남성의 가장 비열한 성적 환상 중 하나이며 포르노의 정석이다. 모델이 있는 실사는 명백한 인권침해지만, 만화나 회화 등 제2차 제작물 속 포르노를 단속하는 것은 지나친 감이 있다. 범죄를 단속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상상력은 단속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국가권력에 의한 단속이 아니라 ‘보지 않을 자유’나 조닝(Zoning) 등을 통해 시민사회 차원의 대항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과장을 보태 ‘일본에도 페미니스트가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예능 프로그램에서조차 남성성이 과하게 강조돼 상대적으로 여권이 높지 않다고 인식되는 일본에서 페미니스트로서 제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용기를 낼 수 있었던 당신의 신념은 무엇인가. 오랫동안 유럽과 미국의 페미니스트들에게 “일본 여자들은 순종적이고 남자의 세 발짝 뒤에서 걷지 않나? 그런 일본에 여성해방운동이나 페미니즘이 있나?”라는 말을 들어왔다. 한국도 같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야말로 오리엔탈리즘이다. 어떤 사회에도 여성이 목소리를 낼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일본의 여성이 목소리를 높여 싸운 기록은 <자료 일본 우먼리브사>를 비롯해 각종 미니 커뮤니케이션에 증거로 남아 있다. WAN(Women’s Action Network) 사이트(wan.or.jp/dwan)에서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내가 여성해방운동을 할 수 있었던 건 분노와 동료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립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동료가 없으면 만들면 된다. 그 배경에 있던 신념은 나와 다 른 여성들의 운명이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여성에 대한 공감과 신뢰다.

당신은 비혼주의자이기도 하다. 한국에도 비혼을 선언하는 여성들이 많지만 ‘저러다 언제 결혼할지 모른다’는 조소를 받기도 한다. 비혼으로 지내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나 맞닥뜨린 상황은 무엇인가? 이 사회는 결혼하지 않는 편보다 하는 편이 여러 면에서 유리하도록 만들어져 있으며, 결혼은 여전히 남성 중심 사회에 등록되었다는 증표이기에 여성이 부득이하게 결혼을 바라는 면이 있을 것이다. 기혼자는 지금도 압도적 다수이며 사회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 비혼을 옹호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옹호가 필요할 정도로 억압돼왔기 때문이다. 1970년대 이전에는 비혼이 성관계가 없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지만, 성 혁명 이후 비혼과 성관계 여부는 전혀 관계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비혼 싱글이 살아가기 쉬워진 배경에는 결혼과 섹스의 배타적 연결이 (특히 여성에게서) 사라진 점이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비혼이라는 이유로 불편을 느낀 적 없다. 그렇지만 일본에서는 결혼 여부보다 어머니인지 아닌지가 여성의 가치를 정하는 더 큰 요소다. 어머니는 여성의 완성이며, 어머니가 되지 못한 여성은 여성으로서 한 사람 몫을 다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한다. 어머니가 되기만 하면 비혼 싱글맘이든 이혼 싱글맘이든 여성으로서 풀코스를 거친 셈이 된다. 내가 가장 상처받은 말은 같은 여성이 이렇게 말한 것이다. “어머니가 돼본 적 없는 당신이 진정한 여성에 대해 무엇을 아나?” 이 사회는 결혼과 비혼, 일하는 것과 일하지 않는 것, 어머니냐 아니냐로 여성을 나눈다. 여성은 이런 구분을 넘어 서로 연대하며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일본군 ‘위안부’가 돼본 적 없는 여성은 일본군 ‘위안부’의 마음을 알 수 없다’는 말도 가능한 것 아닌가? 물론 어떠한 여성들의 경험도 둘도 없는 고유의 경험이지만, 그것을 넘어 ‘여자’라는 집합적인 정체성에 집중했기에 페미니즘이 태어났다. #MeToo는 그 공감의 징표다.

비혼 옹호를 기혼 혐오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소수파의 주장을 자신을 향한 비난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아마 자신의 결혼 생활에 내심 불만이 있을 것이다.(웃음) 혐오와 증오는 때때로 자기 안에 있는 약점을 찔렸을 때 나타나는 감정이니 말이다.

페미니스트로 사는 것은 페미니즘을 알기 전 내 모습과 끊임없이 싸우는 일이기도 하다. 가부장제 문화에서 자란 당신도 계속해서 스스로를 검열하는지 궁금하다. 또 여성 혐오적 발언을 ‘나쁜 의도 없이’ 하는 남성을 마주할때 어떻게 행동하는가? 아무도 자기가 태어난 사회나 문화를 선택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평생 자기 점검(검열이 아닌)을 되풀이하는 것은 필요하며 중요한 일이다. 성차별의 영역만이 아니라, 내버려두면 분수도 모르고 “일본이 제일 좋다”, “일본 최고”라며 잘난 척하는 악의 없는 무지한 자기중심적 발언을 하는 사람도 다수파라면 하나하나 자기 점검을 하는 것이 좋다. 여성 혐오 발언을 악의 없이 내뱉는 남성은 스스로가 다수파에 속한다는 사실을 의심해본 적 없는 무지하고 둔감한 남성일 것이다. 그럴 때는 바로 그때, 그 자리에서 상대가 알 수 있도록 하나 하나 친절하게 알려주는 수밖에 없다. 그런 여성은 귀찮은 존재로 여겨지겠지만, 조금 귀찮은 여자로 보이는 것이 상책이다. 무신경한 모욕을 감내하기보다 그 사람을 대할 때는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편이 나으니까.

페미니즘 안에서도 다양한 논의가 있다. 현재 당신이 가장 주의 깊게 연구하고 있는 주제는 무엇인가? 현재 내 연구 테마의 중심은 케어다. 케어는 역사적으로 여성이 담당해온 과제다.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지는 페미니즘에서 큰 문제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늙고 약자가 되어간다. 강자가 되려고 하기보다 약자가 약자인 채로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이 나의 과제다.

때로는 이 사회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절망감도 든다. 나는 이미 노인이다. 인생을 70년이나 살아왔다. 70년이 흐르는 동안 변한 것도 변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여성의 삶은 크게 변했다고 생각한다. 젊은 여성은 권리 의식을 지니고 있으며 선택의 기회도 늘어났다. 투쟁은 지치는 일이 아니라 즐거운 일이다. 그렇지만 지치지 않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동지다. 고립은 최대의 적이다. 주위에 함께하면 기분 좋은 사람들을 늘리자. 그리고 때로는 약한 소리를 하고 기대기도 하면서 서로 의지가 돼주자. 여성들은 이런 일이 특기다. 이를 악물고 버티는 것만이 투쟁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