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 대화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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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SPEAK

“여성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찾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목소리를 갖고 있으니까요. 다만, 여성들은 스스로 목소리를 낼 권리가 있다고 느껴야 하며, 그 목소리를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유엔 여성기구에서 메건 마클은 여성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인상적인 연설을 남겼다. <공간을 장악하는 방법: 여성과 재치 있게 말하는 기술(How to Own the Room: Women and the Art of Brilliant Speaking)>의 저자이자 코미디언이기도 한 비브 그로스콥은 우리의 목표가 테드엑스(TEDx)의 다음 강연자가 되는 것이든 혹은 단순히 회의 시간에 발언하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든 마음에 새길 것은 단 하나라고 말한다. “남들 앞에서 말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런 일에 자신 있는 사람도 때로는 지치고 약해지는 날이 있다. 하지만 호흡을 가다듬고, 집중력을 발휘해 심신이 평온한 상태에 이르도록 하면 이 난관을 이겨낼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은 노출, 즉 최대한 많이 경험해보는 것이다.”

진정성

우리에게 영감을 준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의 연설 스타일이 제각기 다르다는 걸 깨닫을 것이다. 앙겔라 메르켈은 때때로 연설 중 극단적인 정적으로 허를 찌른다. 머리와 몸은 절대 움직이지 않고 만화 <심슨 가족>에 나오는 미스터 번스처럼 손가락을 공손히 모은다. 이런 동작은 앙겔라 메르켈에게 힘과 권위를 부여하지만, 다른 누군가가 이와 똑같은 행동을 한다면 일부러 꾸민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또 반대로 오프라 윈프리는 허물없는 태도로 자신만의 카리스마를 드러내는 인물이다.즉, 나만의 자연스러운 스타일을 찾아야 한다. 거울을 보고 말하는 연습을 하다 보면 자신만의 특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가령 강조하고 싶은 단어를 말할 때 취할 세련된 손짓을 연구하거나 중요한 단어를 말하기에 앞서 비장한 무기를 꺼내려는 듯한 표정을 짓는 식이다.

나를 듣자

우리는 종종 머릿속으로 자신이 말하는 모습이 어떨지 상상해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다른 사람들과 실제로 대화하다 보면 자신에 대한 상상이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괴로울 수 있겠지만, 자신의 모습을 녹화해서 보거나 카메라 앞에서 프레젠테이션하는 연습을 한 후 믿을만한 사람들의 평가를 들어보자. 이는 말하기 능력을 키우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다. 우리는 늘 타인의 모습에 집중하며 무엇이 강점이고 무엇이 단점인지 부지런히 파악하려고 하지만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이 별로 없다. 자신이 말하는 모습에 주의를 기울이며 본인의 습관, 장점, 단점을 파악해하다 보면 보다 매력적으로 말하는 자신을 만들어갈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청자의 반응을 잘 살피는 것이다. 시종일관 본인 얘기만 늘어놓는 사람은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없다. 내 얘기를 듣고 있는 청자가 지루해하는지, 여전히 흥미를 잃지 않고 있는지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나는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을 하면서 다양한 종류의 관중에 적응하는 방법을 배웠다. 술에 취한 청중에게는 일반 관객보다 더 많은 관심을 보여주어야 한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프레젠테이션에 앞서 청중을 한번 살펴보라. 가볍게 분위기를 풀어 이목을 집중시키고 발표를 이어가면 집중도를 높일 수 있다.

위험 감수하기

오피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때로 매우 과감해져야 한다. 스스로 이런 말을 해도 될까 싶은 것을 말하는 적극적인 화자가 돼보는 것도 좋다. 이야기에 나만의 개성을 더하거나 듣는 이의 취향을 자극할 만한 요소들을 담아보자. 말을 잘하기 위한 방법은 생각보다 다양하고 많은데, 이렇게 위험을 무릅쓰는 전략을 택하면 종종 대화가 진솔한 방향으로 더 빨리 풀린다. 내가 관심 없는 내용에 대해 말을 잘하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를 흥미롭게 이끌어가거나(그러면 듣는 사람도 관심을 갖는다) 혹은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다면 자신이 거기에 왜 있는지를 자문해보자. 하지만 적당한 선은 스스로 잘 찾아내야 한다. 혼자만 웃기고 마는 농담, 거부감을 줄 수 있는 저급한 단어 등을 쓰라는 것이 아니다. 유머 감각 역시 필요하다. 카를 구스타프 융은 유머는 오직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신성한 능력이라고 했다. 오피스 정글은 냉정한 곳이지만 결국 인간이 있는 곳이다. 동료와 유연한 관계를 맺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유머를 구사할 수 있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때 주의할 것은 자기가 먼저 웃으면 안 된다는 것.

미셸 오바마라면 어떻게 했을까?

연봉 인상 요구나 직원 질책처럼 말하기 곤란한 주제는 ‘행복한 상위층’이라는 아이디어를 이용해 해결할 수 있다. 그 완벽한 예가 바로 미셸 오바마다. 만약 레스토랑에서 주문과 다른 음식이 나왔다면, 혹은 누군가와 부딪쳤다면, 이럴 경우 미셸 오바마라면 어떻게 행동할지 상상해보는 것이다. 미셸 오바마라면 발끈해서 성질을 내지 않을 것이다. 대신 우아하고 차분하게 그리고 유머까지 더해 그 상황을 풀어나갔을 것이다. 나를 떼어놓고 침착하게 모든 관점을 살피며 어떠한 상황에라도 이 공식을 대입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면 된다. 물론 마음을 다스리는 것만큼 힘든 일은 없다. 오피스 대화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적절하게 거절하고 항의하는 것이다. 예스맨은 자신을 괴롭힐 뿐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거스르지 않고 이성적인 모습으로, 하지만 거부감이 들지 않을 만큼의 단호한 자세로 거절하고 항의하는 시뮬레이션을 반복해라.

허락을 기다리지 말자

만약 회사에서 회의 중 발언 기회를 얻기 위해 계속 손을 들고 있거나 아무도 내 말을 듣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계속 허락을 구하려 애쓰지 말고 자신만의 방식을 적용 해보자. 기회는 기다려주지 않는 법이다. 그렇다고 회의 시간에 말도 안 되는 기조연설을 하라는 게 아니다. 북 클럽을 만들어서 매주 말하는 연습을 하거나 일을 마친 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사람들끼리 토론 모임을 만들어보자. 그런 후 실전에 나가면 전보다 훨씬 더 준비돼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손을 들고 자신에게 발언 기회가 돌아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다가는 회사에서 영원히 존재감 없는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

 

HOW TO LISTEN

엄마의 자궁 속에서 자라는 태아에게 가장 빨리 발달하는 감각이 청각이다. 비록 태어난 이후에는 시각이 우선순위를 차지하지만, 입증된 사실에 따르면 청력은 가장 마지막까지 유지되는 감각이라고 한다. <듣기: 말에 담긴 진의 이해하기. 새로운 방법 찾기(Do Listen: Understand What’s Really Being Said. Find a New Way Forward)>의 저자 보베트 버스터는 듣기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한다. “요즘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대신 화면이나 스마트폰으로 접한다. 하지만 이건 분명 경청하거나 대화에 적극 참여하는 것과는 다르다.” 제대로 들어야 비로소 이해 할 수 있고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한 귀로 듣지 말 것

우리는 회사에서 자신을 피곤하게 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귀 기울여 듣지 않거나 말을 잘라버린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대신, 하던 걸 멈추고 경청해보라. 눈을 바라보며 그들이 한말을 그들에게 반복해보자. 다만, 내가 듣고 있다는 걸 그들도 알 수 있도록 나만의 단어로 바꿔서 이야기해야 한다. 이 방법은 대화를 단순화하는 효과가 있고, 대화의 속도를 줄여 서로 존중과 예의의 태도를 점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럼으로써 그 사람도 나의 말을 듣고 내가 한 말을 재현한다면 가장 이상적인 결과가 아닐까? 회사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동료와 맺는 관계다. 적대적인 관계는 스트레스만 만들어낼 뿐이다.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동료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동료의 말을 경청한다는 이미지는 서로 좋은 관계를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적절한 리액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멍하니 듣고 있지 말고 중간중간 추임새도 넣고, 해당 상황에 대한 자신의 의견도 말하며 ‘나는 당신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야 한다. 이는 상사와 대화할 때 특히 중요하다. 자신의 얘기에 주목하는 직원을 마다할 상사는 없다.

중립적 위치 찾기

만일 회사에서 어려운 주제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면 근본적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옥스퍼드 프로세스(Oxford Process)라는 프로젝트에서 제안한 의미 있게 듣는 방법을 살펴보자. 이 프로젝트는 감정적으로 흥분한 사람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대단한 방법은 아니다. 극적인 대립 상황에서 벗어나 창문이 있는 곳으로 가보자. 그곳에 서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을 가다듬는 것이다. 회사에서는 매점에 가거나 잠시 사무실에서 나와 안전한 중립적 공간으로 가는 것도 좋다. 흥분한 상태로 책상 앞에 앉으면 결국 다른 동료에게 감정을 드러내게 되고, 비이성적인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일단 자리를 피해 마음을 다잡을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멀티태스킹을 멈춰라

온갖 모니터와 기계가 많은 사무실에서 컴퓨터로 업무를 보거나 다른 일을 하면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전화를 받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대화할 때 컴퓨터 작업이나 통화를 멈추고 상대방에게 내가 온전히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자. 이야기를 경청할 때는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말하는 사람 쪽으로 몸을 돌려 눈을 바라본다. 다른 업무를 보면서 동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아예 듣지 않는 것만 못하다. 통화할 때도 마찬가지다. 통화하면서 계속 모니터로 업무를 보면 전화기 너머 상대방은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고 있음을 분명 알아챌 것이다. 상대방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배경 음악이 아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유심히 들어라. 적어도 듣는 척해라.

나를 대상으로 연습하기

듣기 연습을 위해 사무실을 잠시 벗어나보자. 또는 출퇴근을 하는 동안 바깥 풍경에 빠져들자. 정신없이 빠르게 흘러가는 이 시대에 속도를 늦춰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당장 내일부터 점심시간에 가벼운 산책이라도 해보자. 뜬금없이 왜 산책을 추천하느냐고?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다. 어딘가를 걸을때는 음악도 듣지 말고 자기 몸과 마음의 소리에 집중해라. 재정비와 회복의 시간이 되어줄 것이다. 늘 긴장한 채 잔뜩 스트레스 받는 표정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며 앉아 있는 사람을 좋아할 동료는 없다. 때론 사무실에서 편안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타인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스스로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입장 바꿔보기

듣기는 방향으로 이뤄지는 행위이므로 내가 상대방의 말을 경청했다면 상대방도 내 말에 귀 기울이게 해야 한다.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알려지면 이러한 점을 악용하려는 사람이 생길 것이고, 이로 인해 분노가 치미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아마도 어떤 날에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돌아가며 들어주느라 정작 자신의 업무는 제대로 마치지 못할지도 모른다. 만일 상대방이 본인의 이야기를 마친 후 내 이야기는 들어줄 시간이 없다고 하면 당당히 요구해도 괜찮다. 다만, 무례하거나 싸울 기세로 항의하지 말고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당신에게 줬으니 당신 역시 내게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해주면 좋겠다’ 정도로 말해보자. 나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틈틈이 표현해야 한다.

아직 있다

을지로3가역이 있는 대로변. ‘을지면옥’ 건물 옆으로 난 골목에 들어가면 색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을지로의 힙한 카페깨나 다녀본 사람이라 할지라도 눈이 휘둥그레 지는 이곳은 서울시에서 재개발구역으로 승인한 세운재정비촉진지구에 포함된 세운3구역이다. ‘성신볼-트’ ‘태광정밀’ 등 40년을 훌쩍 넘는 시간이 묻은 간판들과 그 시간을 고스란히 견딘 건물들은 넋 놓고 구경할 만큼 압도적이다. 싸늘할 것 같던 골목은 여전히 기계 돌아가는 소리로 바쁘다. 이미 재건축이 시작된 공사장 앞에서한 중년 남성이 공구를 사러 왔는데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묻는다. 안전모를 쓴 공사장 직원은 ‘아직’ 예전 그대로인 뒤쪽 골목을 가리켰다.

야무지게 묶은 커피 보자기를 들고 다닥다닥 붙은 가게들 사이를 부산히 오가는 아주머니가 돌아가는 ‘응접실 다방’도, ‘육칼’의 명가 ‘안성집’도 모두 근처의 공구상과 작은 공장을 중심으로 퍼져 있다. 이곳의 상인들이 ‘노포 상생을 위해 재개발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박원순 시장의 결정에 크게 기뻐하지 않는 이유다. 70여 년에 걸쳐 필요에 따라 자생적으로 넓어진 을지로3가 일대 제조업 단지는 건축, 조명, 공구, 미싱, 금속 등 도매상과 제조 공장들로 넓게는 평화시장까지 그영향력이 이어지며 오랜 시간 상생해왔다. “전부 다 연계돼 있는 거죠. 이웃집에서 물건을 받아 자기가 할 일을 하고 나한테 넘겨주면 내가 부속품을 깎아 가공해요. 그러고 옆집에 주면 그 집에서 광을 낸 후 또 다른 집에서 칠을 해요. 그렇게 같이 완성해서 납품하죠. 혼자서는 못 해요. 나만 다른 데로 이전하면 우선 재료 사는 데 시간이 걸리고 가공한 후 도장이나 착색 같은 후처리를 할 때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경비와 인건비가 늘어 단가가 올라갈 거예요.” 세운3구역 ‘태광정밀’에서 36년간 일한 조무호 장인의 말이다. 이 구역의 앞쪽 세운3-1구역은 이미 재개발이 시작돼 4백여 개의 가게가 밖으로 내쫓겼다. 몇몇은 문래동으로 이전했지만 일이 없어 손을 놓고 가게만 지키고 있다. “엄청 후회하더라고요. 일 없이 월세만 감당하다 보면 폐업하는 수밖에 없겠죠. 모두 연계돼야 하기 때문에 청계천, 을지로가 아니면 안 되는 거예요.”

앞쪽의 무너진 건물들은 잔해가 돼 바닥에 쌓여 있고 공사는 촬영 당일에도 계속됐다. 박원순 시장이 개발을 재검토하지 않았다면 태광정밀 역시 그 일부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1년간의 보류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일대 상인과 장인들이 원하는 것은 재개발 백지화다. “할 수만 있다면 젊은 청년들에게 내 기술을 전수하고 싶어요. 세운상가 양쪽을 리모델링해서 청년들이 창업하게 만들었잖아요. 그 사람들은 우리가 필요해요. 대학교수들도, 대기업에서도 계속 찾아와요. 그들의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게 우리 장인들이거든요. 이뿐 아니에요. 충무로 인쇄 기계에 들어가는 부품, 평화시장의 재봉틀 수리 전부 우리가 합니다. 공구상과 정밀 공장이 무너지면 이 일대가 전부 무너질 거예요.”

다음은 세운재정비촉진지구와 함께 재개발지구로 승인된 수표도시환경정비구역에서 퇴거 명령을 받고 60일 넘게 영업을 중단하고 있는 ‘두루통상’의 강문원 사장과 불안함 속에서 영업을 지속하고 있는 ‘동구종합상사’ 채수노 사장의 이야기다.

동구종합상사 채수노 을지로상가 을지로공구점

동구종합상사 채수노(53세)

여기서 30년간 일했습니다. 전기 공구나 기계 공구를 판매하고 수리까지 하고 있죠. 직장 생활 15년, 제 사업 15년 해서 올해가 딱 30년째예요. 스물네 살에 첫 이 일을 시작했으니 젊은 시절을 여기서 다 보낸 거죠. 다른 일은 한 번도 안 해봤어요. 제가 50대인데 이제 와서 업종을 바꾼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으니 여기서 나가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이곳만의 특징이 있어요. 목재가 필요하면 5가 쪽에 있는 목재상에 가면 되고 건재가 필요하면 저 뒤에 콘크리트나 시멘트 같은 자재를 파는 가게들이 즐비한 건재상에 가면 돼요. 공구가 필요한 사람은 우리 가게로 오면 되고 도배지나 비닐을 파는 방산시장도 가까이에 있어요. 청계천에서 구하지 못하는 건 없을 거예요. 기계도 마찬가지죠. 판매하면서 조금씩 용도에 맞게 개조해달라는 의뢰를 받아요. 옆 가게에 가서 설명하고 ‘이렇게 만들어주세요’ 하면 한 개라도 다 제작해줘요. 이런 게 가능한 곳은 전 세계에서 청계천 지역뿐일 거예요.

많이 고민했어요. 이걸 계속 끌고 가야 되나, 수표지구도 세운 지구처럼 무너지면 업종을 바꿔야 할까. 영업은 계속할 것이고 지속돼야 하지만 만약 재개발이 확정된다면 저는 포기하려고요. 다른 데 가서 다시 자리 잡는 게 어디 1, 2년에 가능한 일인가요? 최소한 5~10년은 걸릴 텐데 그 시간을 버티기가 겁나요. 가뜩이나 경기가 좋지 않은 지금 같은 때는 더욱 그렇죠. 다들 그렇게 생각 할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투쟁하는 거고요.

이번에 깜짝 놀랐어요. 젊은이들은 이 일에 관심을 갖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텐트에서 지켜보면 서명해주는 분 가운데 의외로 20대가 상당히 많아요. 지나가다 보고 서명해주더라고요. 청계천은 젊은이들이 들어와서 일하기에도 굉장히 매력적인 자리라고 생각해요. 젊은 아이디어로 같이 일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고 있습니다.

두루통상 강문원 공구 을지로공구점 을지로시위

두루통상 강문원(60세)

청계천에서 공구 장사를 하고 있는 강문원입니다. 올해 60이 됐고요. 제 가게는 63일째 영업을 안 하고 있어요. 지난해 11월 5일에 건물 주인이 찾아왔어요. 자신도 재개발에 동의해서 건물을 매각할 생각이라고 하더군요. 세운지구는 시행사의 갖은 협박을 이기지 못한 상인들이 두 손 들고 8개월 만에 무너졌거든요. 호소문을 써서 사람들에게 사인을 받고 12월 초순에 천막을 만들어 긴급하게 1인 시위를 시작했어요.

시나 구청에서는 공청회도 안 하고 일방적으로 통보했어요. 상인들 사이에서 ‘여긴 함부로 못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있었고요. 재개발이 이루어지려면 이 많은 사람들과 상의할 텐데 그럼 분명히 결렬될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밀어붙이기 식으로 진행해버릴 줄 몰랐어요.

이곳의 세입자들은 수십 년 동안 건물주와 암묵적으로 2년이 지나면 자동으로 계약을 연장했어요. 세입자 보호 대책은 5년이하의 경우에만 보호받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짧으면 10년, 길면 40년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세입자 보호 대책 대상이 아니에요. 건물주가 나가라고 하면 명도소송 당하고 그냥 나가야 하죠. 손해배상 청구도 못 하고요.

청계1가부터 8가까지가 공구 거리로 연결돼 있어요. 그 양편으로는 귀금속, 시계, 정밀, 인쇄, 스페이스 월, 철물, 도기 업체가 들어섰는데 전부 연관돼 있어요. 우리 공구가 없으면 그중 하나도 제대로 만들 수 없죠. 그 정도로 긴밀한 연관성이 있는데도 공구 쪽만 숟가락으로 떠내듯 다른 데로 이주시킨다는 발상 자체가 아주 나쁜 거예요. 우리 몸에서 간만 떼서 다른 데로 옮길 수 있어요? 신체에 비교하면 공구는 가장 중요한 장기나 마찬가지예요. 탁상행정의 표본이죠. 개발제한구역으로 30년 동안 묶어놓고 화장실도 고치지 못하게 하고 슬레이트 한 장 못 바꾸게 하니까 지붕이 새면 임시방편으로 우리가 천막을 덮어놨어요. 그게 오래되니까 지저분하고 슬럼화됐다고, 다시 지어야 한다며 원주민이나 마찬가지인 상인들을 내쫓는 것은 교묘한 국가권력의 횡포예요.

다른 점포들은 대부분 법을 모르기 때문에 마지못해 받아들였는데 내가 1인 시위를 시작한 후부터는 ‘지킬 수도 있겠다’는 기대 심리가 생겼는지 동조하기 시작했어요. 박원순 시장이 정책 결정을 번복하면서 상인들이 제게 많은 힘을 실어주고 있죠.하지만 재검토한다고 한 뒤로도 공사가 계속 진행되고 있어요. 그리고 재검토해봤더니 합리적으로 공사를 하는 게 맞다고 나오면 공사를 하는 거잖아요? 저는 전면 중단을 요구합니다. 이곳이 옛 모습을 다시 찾았으면 해요. 이미 부순 곳은 공익성을 가진 문화공간이나 관광지로 만들고 을지로와 청계천 일대를 보존해서 후세에게 가치 있는 정책 사업을 하면 좋겠어요. 우리나라가 역사상 최단 시간에 발전한 근본이 여기 있었고, 우리 대기업이 세계 일류기업으로 클 수 있는 바탕도 여기 있었어요. 주문만 하면 탱크고 인공위성이고 다 만들 수 있는 곳이 여기예요. 학생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장소고요. 가장 창의적이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지역을 아파트 몇 채 짓자고 때려 부순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개발 제한을 풀어놓으면 우리 스스로 다 고쳐서 쓸 수 있어요. 부분적으로 뜯어서 얼마든지 정화할 수 있습니다. 수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서울은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여야 하지, 과거는 묻어버리고 미래만 존재하는 도시가 돼선 안 돼요. 요즘 젊은 분들이 옛것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어요. 새것만 좋아하던 우리때와 다르죠. 과거를 바탕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바라보는 혜안을 갖고 살면 좋겠어요. 저는 스스로 삶을 영위하면서 이곳을 조금씩 고치고 보존해 후세에 남겨주고 싶어요. 그 이상은 바라는게 없어요.

작가 을지로 서울메탈 할로미늄 을지로상인

밀려나는 젊은 작가

‘문화’와 ‘예술’을 수없이 외치던 서울시는 어떻게 예술을 일시 정지시켰나. 을지로에 작업실을 둔 액세서리 브랜드 ‘서울메탈’의 조유리와 패션 브랜드 ‘할로미늄’의 이유미를 만났다.

을지로에서 작업한 지 얼마나 됐나? 조유리 같이 작업한 지는 2년 됐고, 이유미는 3년 동안 있었다.

왜 을지로로 오게 되었나? 이유미 원래 이곳은 내가 멤버로 있는 ‘우주만물’이라는 잡화점이었다. 우주 만물이 다른 곳으로 이사하면서 ‘할로미늄’의 작업실로 사용하다 조유리와 공유하게 됐다. 조유리 당시 보광동에 작업실이 있었는데 액세서리를 만드는 작업의 특성상 이곳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알다시피 금속공예와 관련된 거래처 대부분이 을지로나 청계천에 밀집해 있다. 일 때문에 매일 와야 했던 터라 이곳에 들어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금속공예를 전공해서 학부 때부터 학교보다 더 자주 을지로를 오갔다.

만드는 사람에게 을지로는 어떤 의미인가? 이유미 서울의 중심지라 어디로 가도 교통이 좋은데 무엇보다 동대문종합상가가 가깝다는 점이 가장 좋다. 전에는 효창공원 주변에서 작업했는데 동대문을 오가는 게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일을 잘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주변에 실크스크린 장인들도 많고 포장할 때 쓰는 비닐 재료를 파는 상인들도 을지로4가에 많으니 작업실 근처에서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여길 아주 좋아한다. 조유리 처음에는 재료 구하거나 일하는 데 편리한 것만 생각하고 이곳에 왔다. 이제 시작하는 젊은 작가들에게 재료 구하기 쉽고 어디든 가기 편하며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임대료로 오래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장점이다. 그래서 최근 몇 년 사이 많은 동료들이 을지로로 모여들었다. 그런데 이제 그 장점이 사라지게 됐다. 우리도 임대인에게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재개발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이유로 나가라는 건 아니지만 재개발로 이 일대 임대료가 크게 상승했고, 급하게 새 작업실을 알아보니 시세가 2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져 있었다. 을지로의 임대료가 낮았던 이유가 개발제한구역이었기 때문인데 그게 풀리려는 움직임이 있으니 앞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을지로에서 한 작업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나? 이유미 우주만물 안에 할로미늄 쇼룸을 만드는 데 집기가필요했다. VMD에게 맡기면 편하지만 형편상 내가 해야 해서 고민이 많았는데 옆 골목으로 가서 물으니 아는 만큼 알려주고 나머지는 저쪽 집 가보라 해서 갔다가 거기서도 아는 만큼 알려주고 나머지는 어느 집으로 가보라고 해서 다 해결했다. 거의 ‘마을’의 개념인데 이런 곳이 없었으면 나 같은 아마추어나 예산이 적은 상인들은 시작도 못할 것이다. 조유리 우리만 해도 시작은 했다. 어떤 방식으로 뭐가 필요하다는 걸 조금이라도 접한 상태라서 유지는 할 수 있을 텐데 우리 다음 세대는 시작하기가 더 힘들 수도 있다. 지나가다가 물어봐서 알 수 있는 정보가 전혀 없다. 정보의 빈익빈 부익부가 심각해질 것이다.

을지로의 상인이나 장인들과 가까이에서 소통해왔다. 을지로 재개발을 어떻게 생각하나? 이유미 배신감이 크다. 불과 1, 2년 전만 해도 이곳을 좀 더 부흥시키려고 많은 정책을 시행했는데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 모르겠다. 조유리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을지로 길 살리기’를 한다고 ‘을지 유람 지도’도 만들었었다. 을지로만의 특징을 살리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였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내가 학부생일 때 송파구 문정동에 ‘가든파이브’가 생겼다. 그때도 청계천 되살리기를 한다며 이곳 상인들을 그쪽으로 다 이주시켜 청계천 길도, 상인들도 살린다고 했다. 적은 수의 상인들이 그쪽으로 갔는데 몇 분은 폐업했고 아직 유지하고 있는 분들도 문정동으로 이주한 걸 후회한다. 가보면 그야말로 외딴섬 같다. 공구를 사러, 장인에게 뭘 맡기러 굳이 문정동에 간다고? 한번 시도해봤으니 다른 식의 부흥이 절대 불가능하다는 게 방증된 건데, 이번에는 되살리기도 아니고 갑자기 아파트를 짓는다니 정말 황당하다. 허물어지는 건물임에도 계속 남아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유미 다 흩어지면 아마 소비자가가 올라갈 거다. 조유리 우리가 걱정하는 게 그 점이다. 작업실을 옮기는 건 그냥 우리가 조금 불편하면 될 일이지만 이곳 상인들과 장인들이 흩어지면 소비자가가 올라가고, 그 전에 당장 우리부터도 그분들에게 일을 맡길 때 단가가 높아질 거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 내 일을 유지하는 데도 위협을 받게 된다. 먹이사슬처럼 다 연결돼 있다. 얼마 전 학생 때 찾아갔던 시보리집을 다시 찾았다. 10년전에도 왔는데 그간 어떻게 지냈느냐고 여쭤보니 자기만 남았다고 하시더라. 그분도 오래 버티지 못하겠지.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이제 나는 누구한테 맡기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와중에 내 걱정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아차 싶지만 그게 현실이니까.

나는 지금 정의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룬다티로이 페미니즘
아룬다티 로이

강한 자들과 힘없는 자들의 격차를 만들어내는 것은 개인의 힘으로는 극복하기 힘든 억압적인 사회·경제적 관습 때문이다.

부커상 수상작 <작은 것들의 신>의 저자인 아룬다티 로이. 사회의 제도와 관습에 의해 파괴돼가는 한 가족의 삶을 보여준 이 책에는 여성과 아이 등 나약하고 작은 존재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작은 것들의 신>은 전 세계 40개 언어로 번역돼 출간되었고, 소설가이자 사회운동가인 아룬다티 로이는 소설 집필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과 이를 위한 다양한 강연 활동을 이어가며 <타임>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아룬다티 로이, 우리가 모르는 인도 그리고 세계> <자본 주의: 유령 이야기> 등 저서를 통해 불의 앞에서 침묵하지 않으며 보다 많은 보통 사람의 연대를 꿈꾼다.

<작은 것들의 신>에는 거대한 사회제도 안에서 한 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 등장한다. 카스트가 뚜렷한 사회인 인도에서 힘없고 약한 존재들에 주목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내가 약한 사람들을 위해 말하거나 그들을 대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누군가의 입장이나 상황을 대변할 수는 없다. 나는 다만 소설이든 비소설이든 작가로서 이야기를 풀어갈 때 이 세계를 운영하는 시스템을 ‘정의’라는 프리즘을 통해 살펴본다. 나 역시 나만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나만의 세계관을 선전하지는 않는다.

한국은 인터넷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다. 그래서 특별한 이슈가 있을 때마다 인터넷에서 각자의 의견을 말하는데, 문제는 익명성에 기대 논란을 위한 논란, 반대를 위한 반대 의견도 무분별하게 쏟아낸다는 점이다. 젠더 이슈도 마찬가지인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토론이 아니라 서로 편을 가르고 대립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다. 인도 역시 서로 다른 계급, 종교 간 갈등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지는 지 궁금하다. 나는 인간 사회가 ‘E-페르소나(E-Persona)’를 겨우 파악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뇌는 전례 없이 많은 양의 데이터를 처리하고 있는데, 대개는 자질구레한 것들이다. 인터넷은 인간의 뇌 시스템처럼 사람과 사람을 서로 연결해주는 광범위한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인 셈이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을 편 가르기 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는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디지털 세계에서 집단 싸움을 야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류에서 추방되고 침묵을 강요당한 사람들이 자신만의 플랫폼을 발전시키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인도에서는 이런 현상조차 굉장히 편향적으로 나타난다.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수백만 명에 이르고,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다루지 못하는 사람도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한국 에서 나타나는 집단 간 대립은 잔인하게도 세계 어디에서나 일어나고 있다. 힌두 민족주의 정부를 둔 인도에서도 이러한 대립이 종교, 계층, 성별 간에 나타나고 있다. 이로 인한 끔찍한 범죄도 일어난다. 어떤 힌두 우월주의자가 무슬림 노동자를 도끼로 난도질해 죽인 사건이 있었는데, 그 모습을 영상에 담아 열광적인 관중을 위해 인터넷에 자랑스럽게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E-페르소나는 진화론적인 면에서 호모사피엔스와 인간 사회를 완전히 바꾸어놓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매우 빠르게 전개될 것이다.

인도는 여성 인권 의식이 약한 편이다. 당신 또한 그런 사회 분위기에서 약자에 속할 텐데도 사회운동가로서 목소리를 높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인도에는 여러 세기가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비범하고 강인하며 자유로운 여성들을 찾아볼 수 있는 반면 가장 핍박받고 억압당하는 여성들도 볼 수 있다. 세상에 정의가 무엇인지 알리고자 거침없이 활동하는 많은 여성 변호사, 선생님, 사회 운동가가 있다. 하지만 여아 살해와 여아 낙태가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결코 ‘약한 자’를 위해 싸우지 않는다. 내가 약한 자를 위해 싸운다고 말하면 그건 마치 그들의 불행이 그들 자체가 부족하거나 약하기 때문인 것처럼 암시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듯이 그들의 불행은 결코 그들 자신의 탓이 아니다. 강한 자들과 힘없는 자들의 격차를 만들어내는 것은 개인의 힘으로는 극복하기 힘든 억압적인 사회·경제적 관습 때문이다.

빈부의 격차는 비단 한 나라 안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에서도 그로 인한 문제가 일어난다. 이를테면 얼마 전 한국에서는 쓰레기를 외국에 수출하는 문제가 이슈화됐다. 강대국이 자신들의 쓰레기를 가난한 나라에 버린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그때 처음 알았다. 또 약소국의 여성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일하며 그 덕에 제품의 원가가 낮아진다. 착취의 악순환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 외국에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를 부끄럽고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점이 놀랍다. 씁쓸하지만 인도인은 한국인처럼 반응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인도는 카스트제도를 통해 잔인하게 사람들을 구분 짓고 이러한 계급화에 종교적 구속력을 부여하는 불공평한 사회다. 수백만 명의 달리트 계급 사람들은 ‘불가촉천민’으로 취급당하고 청소나 오물 처리 같은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카스트제도의 상위 계급 사람들은 자기 변기조차 한 번도 직접 닦은 적 없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 폐기물을 수출한다는 사실을 창피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 문제의 핵심은 물론 우리가 쓰레기를 너무 많이 만들어낸다는 데 있다. 자본주의와 그로 인한 소비를 지향하는 삶, 그리고 기후변화와 그로 인한 지구의 위기는 모두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문제다.

미투 운동이 계속되고 있다. 다만 미투 운동이 폭로에 그치고 젠더 의식의 큰 변화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든다. 인도 사회에서도 미투 운동이 활발한 편 인가? 그로 인한 변화가 체감되는가? 미투 운동은 일종의 폭발이다. 오랫동안 억압돼온 분노가 쏟아져 나온 거다. 하지만 이를 두고 혁명이라고 명명하기에는 이르다. 현재 인도 사회는 카스트제도와 많은 사람을 위협하는 국수주의가 지배하고 있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상위 계급 남성들은 달리트 계급 여성들을 강간하고 폭행하는 것이 자신들의 권리라고 여겼다. 안타깝게도 이에 대항하는 시위도 별로 없다. 마찬가지로 군사적으로 통치하는 카슈미르와 마니푸르 지역에서 인도 군인들이 여성을 성폭행하는 사건이 있었지만 이를 두고 사람들이 격분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렇게 분노라는 것은 선택적으로 나타난다. 그럼에도 변화를 위한 움직임이 조금씩 일고 있다.

과연 이 세계는 긍정적인 미래로 향하고 있는 걸까? 지구와 인류가 위험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면서 어떻게 그렇게 느낄 수 있겠는가? 긍정적인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물론 부정할 수 없다. 나, 어머니, 할머니를 떠올려보면 단 세 세대 만에 엄청난 해방을 이뤄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여전히 많은 것이 위기에 놓여 있다. 우리 인간은 생존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지구의 시스템을 빠른 속도로 파괴하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발전을 이야기한다. 이 발전이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지구를 개발 대상으로 보고 더 빠른 발전을 바라지만 과연 누구를 위한 발전을 기대하는 것인가? 그리고 그로 인해 우리가치를 대가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최근작 <The Ministry of Utmost Happiness>의 주인공은 히즈라다. 쉽게 말하면 여장을 한 남자지만 단편적으로 설명하기는 복잡하다. 트랜스젠더는 아니지만 여장을 한 채 구걸하며 살고 때론 종교 행사에 참여하기도 한다. 카스트에서는최하위 계급에 속한다. 왜 하필 히즈라를 등장인물로 선택했나? 소설 속 ‘안줌’이란 인물은 히즈라다. 하지만 그것이 그녀를 정의하는 유일한 정체성은 아니다. 그녀 역시 우리처럼 고유한 한 개인이다. 1950년대 올드 델리에서 태어난 시아파 무슬림이다. 사실 오늘날의 인도에서 안줌이 히즈라라는 사실보다 무슬림이라는 정체성이 그녀를 더 위협한다. 나는 소설을 통해 어떤 선언을 하거나 독자에게 특정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독자들이 내가 창조해낸 이야기 속 세계를 걷길 바라며 이를 위해 노력할 따름이다.

쉬지 않고 투쟁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지금까지 흔들리지 않고 정의를 위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자부심이란 건 단순한 감정인데 내겐 항상 너무 복잡하게 느껴진다. 나는 내가 하는 활동에 자부심을 느끼진 않는다. 다만 그저 원하는 대로 글이 써질 때 종종 행복하다고 느낀다. 그럴 때 느끼는 행복감이 지금까지 나를 이끌어온 것이 아닐까? 그러면 혈관 속 피가 더 자유롭게 흐르고 오장육부가 제자리를 지킬 수 있다. 앞으로 또 어떤 일이 불쑥 터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작가를 비롯한 예술가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작가마다 그 역할이 다르다. 예술가에게 특정한 역할을 규정하는 건 옳은 일이 아니다.

올해 어떤 일을 계획하고 있는가? 아직은 특별한 계획이 없다. 아마 조만간 무슨 일이든 생길 거다. 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