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반대의 사람과

연애 사랑 연인 정반대

싸우기만 하면

B와 나는 연인이지만 둘 사이의 같은 점을 찾는 것보다 다른 점을 찾는 게 쉬울 것이다. 연애한 지 6년이 된 터라 다른 것은 그럭저럭 맞춰가고 또 닮아가는 부분도 많이 생겼는데 아직도 접점을 찾지 못한 부분이 있다. 다투고 나서 화해하는 법. 나는 속에 감추는 거 없이 다툼의 원인을 찾아 끝까지 밝히고 풀어야 발 뻗고 잘 수 있는 성격이다. 그런데 B는 싸울수록 점점 더 말이 없어지다가 나중에는 마음속 ‘자기만의 방’으로 들어가버린다. 그러고 나면 단 한 마디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처음에는 이런 그의 성격 때문에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 B의 말로는 그때 자기가 더 이야기하면 싸움만 길어지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나는 ‘대화’라고 생각하는 것을 B는 ‘싸움’으로 여기는 것이 우리가 화해하기 어려운 근본 원인인 듯하다. 이 사실을 안다고 해서 두 사람이 평생 싸우지 않고 살 수도 없을 테지만. 결혼을 앞둔 지금 지난 6년 동안 극복하지 못한 이 문제를 우리가 얼마나 덮어두고 살 수 있을지 솔직히 조금 막막하다. S(영업 사원, 36세)

 

미식의 역습

나는 소문난 빵순이다. 서울의 웬만한 빵집은 섭렵했고 여행을 떠날 때도 빵집을 중심으로 ‘빵 투어’를 계획할 정도니 전국의 유명한 빵집은 안 가본 데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연히 만나 짧은 시간에 사랑에 빠진 A와 나는 맛집에 가는 걸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첫 데이트 날 나는 A를 가보고 싶던 새로 생긴 빵집에 데리고 갔다. 케이크가 유명한 곳이었다. 생딸기가 들어 있는 쇼트케이크가 나온 후 나는 정신없이 먹는데 A의 표정이 어딘가 불편해 보이더니 한두 입 깨작거리다 포크를 내려놓았다. “왜, 어디 안 좋아?” 하고 물으니 A는 “케이크는 느끼해서 한 입 이상 못 먹겠어” 하고 대답했다. 알고 보니 A는 청국장, 돼지갈비, 냉면 맛집을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가는 토종 한국인 입맛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요즘엔 노포 투어에 빠져 있다며 나를 데리고 을지로를 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재밌었지만 전날은 등뼈찜, 오늘은 제육볶음, 다음 날은 육개장을 먹으러 다니는 데이트에 점점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그사이에 빵집에 몇 번 데리고 간 적 있었지만 단 한 입도 입에 대지 않는 A를 보면서 나까지 입맛이 떨어졌다. 먹는 걸 너무나 좋아하는 내게 먹고 싶은 걸 먹지 못하는 만남은 전혀 즐겁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잠에서 깼는데 입 안에 지난밤 칼국수와 함께 먹은 김치의 마늘 맛이 남아 있었다. 순간 짜증이 솟구쳐서 A에게 전화해 헤어지자고 말했다. A는 황당해했는데 그러면서도 끝내 빵을 같이 먹어주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지금 나는 함께 맛있게 빵을 먹어주는 내 친구들과 데이트하느라 매일 설레며 보내고 있다. S(대학원생, 27세)

 

하나부터 열까지

누군가를 사귄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나와 다른 점도 다르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콩깍지가 씌었는지 내가 모르는 것도 많이 알고 있구나 하고 감탄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외향적인 C는 일주일에 두세 번은 사람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그럴 때 나는 혼자 집에서 영화를 봤다. 처음 몇 번은 그가 그 자리에 데리고 가서 함께 즐기라고 권했지만 내향적인 성격을 가진 나는 그 자리에서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된 기분이 들어 다음부터는 따라가지 않았다. 둘이 같이 있을 때 C의 휴대폰은 쉴 새 없이 알람이 울린다. 그럴 때면 나는 C밖에 없는데 C는 내가 없어도 즐겁겠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이 가라앉는다. 밝고 긍정적인 C를 만나니 내부정적인 성향이 더 도드라지는 것 같았다. 싸울 땐 이 모든 다른 점을 들어 서로를 공격했다. 다른 점이 이렇게 많은데도 지기 싫어하는 면모는 똑같아서 싸움이 6시간씩 이어진 적도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귀는 동안 한 번도 헤어진 적 없다. 그렇게 1년, 2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똑같은 사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야 테트리스처럼 딱 맞는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걸. 지금 나는 C의 긍정 바이러스에 완전히 전염됐고 진지한 이야기는 간지러워서 못 하겠다던 C는 매일 퇴근 후 내게 오늘 하룻동안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조잘조잘 이야기한다. 비혼주의자이던 내가 요즘 들어 C와 함께라면 결혼해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Y( 디자이너, 3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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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한 연대

심재명 영화제작자 든든 명필름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 내가 여성이라는 점, 여성 영화인이라는 정체성을 중요시 여기게 됐다. 어떤 영화를 만들고, 어떤 영화적 지향점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후배 여성 영화인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남성 중심의 업계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독자적 성취를 이룬 ‘여성 위인’들이 있지만, 그들 사이에서도 영화 제작자 심재명은 결을 달리한다. 적어도 그는 자신의 위치와 위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그 힘에 수반되는 무게와 책임을 아는 이다. 사회 전체적으로 미투 운동이 일던, 고백과 고발이 쏟아지던 지난해 3월 1일, 그는 임순례 감독과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을 개소하고, 공동 센터장으로서 자신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렇게 지난 한 해 동안 든든은 성희롱·성폭력 예방 교육과 캠페인을 진행하고, 성폭력 피해자의 제보를 받아 피해자 상담과 조사, 법적·의료적 지원을 했다.(그 피해 접수만 69건에 달한다.) 지난해 12월, 든든은 수많은 전문가와 오랜 시간 함께 준비한 ‘성희롱·성폭력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문제의 심각성을 다시 공론화했다. 기사를 쓰는 지금, 심재명 대표는 든든을 통해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개막작으로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선정한 것에 대한 공식 유감 성명을 발표했다.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의 개소 1주년을 앞두고 있다. 지난 1년을 어떻게 평가하고 싶은가? 든든이 많은 사람의 힘과 뜻을 모은 조직이자, 시대적으로 중요한 사안을 다룬다는 점에서 큰 책임을 느낀 해였다. 함께 센터장을 맡은 임순례 감독과 사단법인 여성영화인모임의 최윤희 대표, 자문위원회와 전문 조사위원회 등 많은 이들이 협력해 힘쓰고 있다. 출발 단계에서 시행착오도 겪었고 갈 길도 멀지만, 든든은 음악·미술·출판·방송 등 대중문화 예술계 안에서 현업 종사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첫 단독 기구라는 점에서, 그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든든이 조직되기 전까지는 영화계 내에서 성범죄가 벌어졌을 때 처리하고 해결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피해자가 신고하고 피해를 호소할 수 없을 때는 한국여성민우회나 한국성폭력상담소의 도움을 받아야 했지만, 이제 든든이 있으니 사건에 대한 대응이 보다 수월해졌다고 생각한다.

시기적으로 미투 운동이 한창일 때 개소한 든든은 문화 예술계 전반의 여성에게 직간접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뜻을 같이하는 공식 기관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힘이 되는 일이니까. 미투 운동이 본격화되기 2년 전부터 #영화계_내_성폭력 해시 태그 운동이 있었다. 성폭력 예방과 성폭력 없는 영화 현장 조성, 여성 영화인 입지 등에 대한 논의를 하면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포럼을 통해 스웨덴, 영국, 호주 등 여성 영화인에 대한 정부 차원의 공적 지원 제도와 선진화된 정책에 대한 사례를 공부하고, 많은 이들과 공유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미투 운동이 일었고 나 역시 문제의 심각성과 사안의 위중함을 느꼈다. 이를 위한 센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현재 든든에서 가장 첨예한 화두는 무엇인가? 성폭력 피해자가 사건을 신고 접수하면 든든은 사안에 대해 법률·의료적 지원을 하거나 또는 가해자에게 사과를 이끌어내거나 공론화하는 등 대응 방식을 달리하고 있다. 한데 막상 진행해보니 어떤 사건도 한 번에 쉽게 끝나지 않더라. 재판도 몇 개월이 걸리고, 그 과정에서 언론과 주변 사람들로 인한 2차, 3차 가해도 일어난다.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종결하지못한 사건도 있다. 개인이 용기를 내는 일도, 이를 바로잡는 일도 어려운 일임을 새삼 체감한다.

명필름 창립 작품 <코르셋>(1996)은 외모 탓에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이다. 개봉한 지 20년이 넘었는데도 영화 개봉 당시와 현재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의문이 든다. 지금 어느 때보다 꾸밈 노동과 탈코르셋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기도 하고. <코르셋>이 명필름의 첫 영화여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나?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공동 대표이자 남편인 이은 대표와 명필름을 만들던 1990년대 중반 ‘미시맘’이라는 용어가 생겼다. 군화를 신은 엄마가 한 손으로 아기를 안고 있는 분유 광고 같은 것이 만들어졌는데, 지금으로 치면 걸 크러시와 의미가 비슷한 용어다. 씩씩한 미시맘이라는 개념을 담은, 기혼 여성 이야기를 준비했는데 잘 안 됐다. 그러던 중 <코르셋> 시나리오를 대종상 영화제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봤는데, 이 역시 여성이 주인공이고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라는 점, 여기에 로맨틱 코미디라는 상업적 장르 안에서 유쾌하게 풀 수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맥락이라 보고 제작을 진행했다.

제작 당시 분위기는 어땠나? 투자 회사에 가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면 회의실에는 전부 중년 남자만 있었다. 농담조로 ‘술집에 가도 못생긴 여자보다 뚱뚱한 여자가 더 싫다’, ‘누가 돈 내고 뚱뚱한 여자 이야기를 보러 가느냐’는 등 지금으로 치면 굉장히 위험한 발언들을 했다. 어쨌든 어렵게 완성됐고, 흥행이나 완성도 면에서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지만, 한쪽에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소재의 영화라는 평도 들었다. <코르셋>이 나오고 얼마 뒤 호주에서 영화 <뮤리엘의 웨딩>이라는, 마찬가지로 뚱뚱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나왔다. 우리로서는 나름 앞서간 기획이었다.

‘자연스럽게 그리 됐다’고 회고하기에는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첫 상업영화부터 모험을 감행한 셈이니까. <코르셋>도 그랬고, 두 번째 영화인 <접속>도 당시에는 이전의 한국 영화와는 결이 다른 작품이었다. <공동경비구역JSA>도 마찬가지고. 의도하거나 의식한 건 아니지만 누군가 ‘되게 위험한 이야기인데’, ‘저런 건 좀 모험 아닌가’라고 하면 그 소재와 주제에 더 끌렸다. 청개구리처럼. 그렇게 얻은 결과물에 긍지와 자부심을 가졌고, 보람도 느꼈다. 타고난 성향이.(웃음)

지난 20여 년간 여성 제작자로서 권한과 책임에 대해 오래 고민해왔을 것 같다. 명필름이 내년이면 25주년이다. 20년이 넘는 동안 영화를 통해 사회의 다양한 이슈를 경험하고 배우고,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내 성 정체성, 영화 산업 안에서 여성 영화인으로서 위상 등에 대한 생각과 심지가 처음부터 굳건한 건 아니었다. 도리어 영화를 만들고 영화사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좋은 선후배를 통해 자연스럽게 의식화된 것도 있다.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 내가 여성이라는 점, 여성 영화인이라는 정체성을 중요시 여기게 됐다. 여성 영화인과 일하려 노력하고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카트> 등 여성주의적 시각의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 아마 우리가 어떤 영화를 만들고, 어떤 영화적 지향점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후배 여성 영화인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제작자가 영화만 잘 만들면 되는 것 아니냐’ 또는 ‘그렇게 까지 해야 하느냐’는 식의 이야기를 들은 적 없는가? 그보다 격려를 받았다. ‘먹고사는 것도 힘든데 이런 공적 영역까지 책임지니 안쓰럽지만 근데 고맙다’는 식의 말을 많이 들었다. 반면 ‘영화라는 것이 결국에는 자금이 투입되고 상업적 성공을 반드시 이뤄내, 누군가 손해 보지 않고, 수익을 창출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 산업인데, 영화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거나 교훈적인 메시지를 담아내는 것은 아니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뭐, 그런가?’라고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재미와 의미라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남초 집단에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이 명예 남성화된 경우를 어렵지 않게 봐왔다. 영화 산업 역시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그 안에서 여성이라는 정체성과 자의식을 분명히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패밀리 비즈니스라는 울타리 안에서 힘들거나 혼란스러워 할 때 의지가 된 동지들이 있었다. 운이 좋았다. 그 덕분에 다행히 명예 남성 소리 듣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자기 역할 제대로 하고, 남들이 봤을 때 성공했다는 여성들로 부터 ‘나는 이 일을 하면서 단 한 번도 내가 여성이라는 생각을 의식적으로 한 적이 없다’라는 말을 들으면 굉장히 화가 난다. 본인이 여성이 아니면 남성인가? 우리 사회에서, 특히 사회생활을 할 때 소수이고 약자인 여성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 성공한 사람이 취할 태도가 아닌가 싶다.

그 책임 의식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카트> 등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으로도 이어졌다. 제작 과정에서 가장 예민하게 생각한 것, 또는 지양하려고 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적어도 명필름에서 만드는 영화의 여주인공은 성적으로 왜곡됐거나, 학대 당하거나, 잘못 묘사되는 일이 없도록 신경 썼다. 가끔 놀랄정도로 시대착오적인 영화가 있지 않나. 그런 영화들이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나는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도 여성 영화라고 생각한다. 남성 서사가 중심인 영화들 속에서 그 작품이 어떤 기회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여자가 주인공인 영화가 없었으니까 차별화된다고 여겼다. 잘 만들고, 정확하게 마케팅하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어떤 작품도 망할 거라 생각하고 만들지는 않는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도 남이 시도하지 않은 이야기이고, 소재였기에 잘될 수 있었다.

창조해온 여러 여성 캐릭터 중 가장 사랑하는 인물을 꼽자면 누구인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영화 속 캐릭터에 대한 애정도 크지만 그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여성 배우들이 정말 노력했다. 지금까지도 그들이 자랑스럽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주인공 ‘잎싹’도 굉장히 매력적이다.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짓고, 알을 품겠다고 양계장을 탈출하는가 하면, 청둥오리를 키우며 ‘이종 입양’ ‘다문화 가족’을 꾸려내는 주체적이고 용감한 암탉이다.

여성 인권뿐만 아니라 노동자(<카트>), 청년 실업(<7호실>), 대안 가족(<당신의 부탁>) 성 소수자(<환절기>), 청소년(<박화영>) 등 사회적 소수자의 이야기도 꾸준히 해왔다. 완벽한 인간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는 매력이 없다. 유독 명필름이 결핍을 지닌 소수의 이야기를 고집한다는 것이 아니라 영화 속 주인공 대부분은 어딘가 부족한 존재에서 출발한다. 결핍된 존재가 영화적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극한직업>만 봐도 다 허당 형사들이잖나. 그 형사들이 치킨집을 운영한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상업영화로서 재미도 출발하는 거다. 흔히 그런 소수의 이야기는 장사가 안 될 것이다? 그건 아닌 것 같다. <건축학개론>은 첫사랑에 실패한 사람이었고, <아이 캔 스피크>는 일본군 성 노예 피해를 숨기고 사는 할머니였지 않나.

장애인 형제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후반 작업은 끝났고 마케팅 준비 중이다.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인데 지금까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앞세운 영화가 많았다면, 이 작품은 장애인과 장애인이 조합을 이룬다. 약한 이들이 서로 돕고 살면 힘이 된다는 따뜻한 휴먼 코미디다.

미투 운동이 발화된 지 1년, 대한민국은 성별로 인한 혐오의 정서가 형성되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본래 의미로 쓰기보다 악의적이고도 부정적 의미로 사용하려는 시도도 있다. 현 상황을 어떻게 보나? 먼저 ‘남성 혐오(남혐)’라는 말은 성립이 안 된다. 흑인이 백인을 혐오할 수 있나? 그것이 가능한가? 소수자, 약자가 하는 건 혐오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남혐’이라는 말은 없다고 말하고 싶다. 젊은 여성 친구들이 의사 표현을 과격하게 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글쎄. 나는 그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 오랫동안 고통 받아왔고 당해왔기 때문이라고 본다.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한다. 젊은 페미니스트에게 나 역시 많은 걸 배운다. 그들을 통해 새로운 생각이나 시각을 갖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작년에 새로 만들어진 워딩 중 가장 화가 난 게 ‘빚투’다. ‘미투’가 단지 ‘나도 당했다’가 아니지 않나. ‘빚투’ 같은 용어를 쓰는 걸 보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약자와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아쉽고 바뀔 것은 많다. 페미니즘이야말로 어떤 사회 운동보다 어려운 운동인 것 같다. 혁명을 이루는 것보다 더 어려운 문제일 수도 있다. 페미니즘이 제대로 구현되는 사회가 민주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 가운데 조금씩 나아간다고 느낄 때도 있나? 서지현 검사, 심석희 선수 등 우리 사회 안에서 용기를 내어 자기 목소리를 표출했을 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 큰 힘이 되었다. 한데 이 용기를 훼손하거나 폄하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그럴수록 우리가 더 연대해야 한다. 든든을 운영하면서도 마음이 무거울 때가 있다. ‘우리가 이만큼 열심히 했습니다’라고 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면이 많다. 함께 책임질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오피스 대화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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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SPEAK

“여성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찾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목소리를 갖고 있으니까요. 다만, 여성들은 스스로 목소리를 낼 권리가 있다고 느껴야 하며, 그 목소리를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유엔 여성기구에서 메건 마클은 여성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인상적인 연설을 남겼다. <공간을 장악하는 방법: 여성과 재치 있게 말하는 기술(How to Own the Room: Women and the Art of Brilliant Speaking)>의 저자이자 코미디언이기도 한 비브 그로스콥은 우리의 목표가 테드엑스(TEDx)의 다음 강연자가 되는 것이든 혹은 단순히 회의 시간에 발언하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든 마음에 새길 것은 단 하나라고 말한다. “남들 앞에서 말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런 일에 자신 있는 사람도 때로는 지치고 약해지는 날이 있다. 하지만 호흡을 가다듬고, 집중력을 발휘해 심신이 평온한 상태에 이르도록 하면 이 난관을 이겨낼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은 노출, 즉 최대한 많이 경험해보는 것이다.”

진정성

우리에게 영감을 준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의 연설 스타일이 제각기 다르다는 걸 깨닫을 것이다. 앙겔라 메르켈은 때때로 연설 중 극단적인 정적으로 허를 찌른다. 머리와 몸은 절대 움직이지 않고 만화 <심슨 가족>에 나오는 미스터 번스처럼 손가락을 공손히 모은다. 이런 동작은 앙겔라 메르켈에게 힘과 권위를 부여하지만, 다른 누군가가 이와 똑같은 행동을 한다면 일부러 꾸민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또 반대로 오프라 윈프리는 허물없는 태도로 자신만의 카리스마를 드러내는 인물이다.즉, 나만의 자연스러운 스타일을 찾아야 한다. 거울을 보고 말하는 연습을 하다 보면 자신만의 특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가령 강조하고 싶은 단어를 말할 때 취할 세련된 손짓을 연구하거나 중요한 단어를 말하기에 앞서 비장한 무기를 꺼내려는 듯한 표정을 짓는 식이다.

나를 듣자

우리는 종종 머릿속으로 자신이 말하는 모습이 어떨지 상상해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다른 사람들과 실제로 대화하다 보면 자신에 대한 상상이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괴로울 수 있겠지만, 자신의 모습을 녹화해서 보거나 카메라 앞에서 프레젠테이션하는 연습을 한 후 믿을만한 사람들의 평가를 들어보자. 이는 말하기 능력을 키우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다. 우리는 늘 타인의 모습에 집중하며 무엇이 강점이고 무엇이 단점인지 부지런히 파악하려고 하지만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이 별로 없다. 자신이 말하는 모습에 주의를 기울이며 본인의 습관, 장점, 단점을 파악해하다 보면 보다 매력적으로 말하는 자신을 만들어갈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청자의 반응을 잘 살피는 것이다. 시종일관 본인 얘기만 늘어놓는 사람은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없다. 내 얘기를 듣고 있는 청자가 지루해하는지, 여전히 흥미를 잃지 않고 있는지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나는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을 하면서 다양한 종류의 관중에 적응하는 방법을 배웠다. 술에 취한 청중에게는 일반 관객보다 더 많은 관심을 보여주어야 한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프레젠테이션에 앞서 청중을 한번 살펴보라. 가볍게 분위기를 풀어 이목을 집중시키고 발표를 이어가면 집중도를 높일 수 있다.

위험 감수하기

오피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때로 매우 과감해져야 한다. 스스로 이런 말을 해도 될까 싶은 것을 말하는 적극적인 화자가 돼보는 것도 좋다. 이야기에 나만의 개성을 더하거나 듣는 이의 취향을 자극할 만한 요소들을 담아보자. 말을 잘하기 위한 방법은 생각보다 다양하고 많은데, 이렇게 위험을 무릅쓰는 전략을 택하면 종종 대화가 진솔한 방향으로 더 빨리 풀린다. 내가 관심 없는 내용에 대해 말을 잘하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를 흥미롭게 이끌어가거나(그러면 듣는 사람도 관심을 갖는다) 혹은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다면 자신이 거기에 왜 있는지를 자문해보자. 하지만 적당한 선은 스스로 잘 찾아내야 한다. 혼자만 웃기고 마는 농담, 거부감을 줄 수 있는 저급한 단어 등을 쓰라는 것이 아니다. 유머 감각 역시 필요하다. 카를 구스타프 융은 유머는 오직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신성한 능력이라고 했다. 오피스 정글은 냉정한 곳이지만 결국 인간이 있는 곳이다. 동료와 유연한 관계를 맺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유머를 구사할 수 있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때 주의할 것은 자기가 먼저 웃으면 안 된다는 것.

미셸 오바마라면 어떻게 했을까?

연봉 인상 요구나 직원 질책처럼 말하기 곤란한 주제는 ‘행복한 상위층’이라는 아이디어를 이용해 해결할 수 있다. 그 완벽한 예가 바로 미셸 오바마다. 만약 레스토랑에서 주문과 다른 음식이 나왔다면, 혹은 누군가와 부딪쳤다면, 이럴 경우 미셸 오바마라면 어떻게 행동할지 상상해보는 것이다. 미셸 오바마라면 발끈해서 성질을 내지 않을 것이다. 대신 우아하고 차분하게 그리고 유머까지 더해 그 상황을 풀어나갔을 것이다. 나를 떼어놓고 침착하게 모든 관점을 살피며 어떠한 상황에라도 이 공식을 대입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면 된다. 물론 마음을 다스리는 것만큼 힘든 일은 없다. 오피스 대화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적절하게 거절하고 항의하는 것이다. 예스맨은 자신을 괴롭힐 뿐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거스르지 않고 이성적인 모습으로, 하지만 거부감이 들지 않을 만큼의 단호한 자세로 거절하고 항의하는 시뮬레이션을 반복해라.

허락을 기다리지 말자

만약 회사에서 회의 중 발언 기회를 얻기 위해 계속 손을 들고 있거나 아무도 내 말을 듣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계속 허락을 구하려 애쓰지 말고 자신만의 방식을 적용 해보자. 기회는 기다려주지 않는 법이다. 그렇다고 회의 시간에 말도 안 되는 기조연설을 하라는 게 아니다. 북 클럽을 만들어서 매주 말하는 연습을 하거나 일을 마친 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사람들끼리 토론 모임을 만들어보자. 그런 후 실전에 나가면 전보다 훨씬 더 준비돼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손을 들고 자신에게 발언 기회가 돌아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다가는 회사에서 영원히 존재감 없는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

 

HOW TO LISTEN

엄마의 자궁 속에서 자라는 태아에게 가장 빨리 발달하는 감각이 청각이다. 비록 태어난 이후에는 시각이 우선순위를 차지하지만, 입증된 사실에 따르면 청력은 가장 마지막까지 유지되는 감각이라고 한다. <듣기: 말에 담긴 진의 이해하기. 새로운 방법 찾기(Do Listen: Understand What’s Really Being Said. Find a New Way Forward)>의 저자 보베트 버스터는 듣기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한다. “요즘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대신 화면이나 스마트폰으로 접한다. 하지만 이건 분명 경청하거나 대화에 적극 참여하는 것과는 다르다.” 제대로 들어야 비로소 이해 할 수 있고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한 귀로 듣지 말 것

우리는 회사에서 자신을 피곤하게 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귀 기울여 듣지 않거나 말을 잘라버린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대신, 하던 걸 멈추고 경청해보라. 눈을 바라보며 그들이 한말을 그들에게 반복해보자. 다만, 내가 듣고 있다는 걸 그들도 알 수 있도록 나만의 단어로 바꿔서 이야기해야 한다. 이 방법은 대화를 단순화하는 효과가 있고, 대화의 속도를 줄여 서로 존중과 예의의 태도를 점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럼으로써 그 사람도 나의 말을 듣고 내가 한 말을 재현한다면 가장 이상적인 결과가 아닐까? 회사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동료와 맺는 관계다. 적대적인 관계는 스트레스만 만들어낼 뿐이다.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동료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동료의 말을 경청한다는 이미지는 서로 좋은 관계를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적절한 리액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멍하니 듣고 있지 말고 중간중간 추임새도 넣고, 해당 상황에 대한 자신의 의견도 말하며 ‘나는 당신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야 한다. 이는 상사와 대화할 때 특히 중요하다. 자신의 얘기에 주목하는 직원을 마다할 상사는 없다.

중립적 위치 찾기

만일 회사에서 어려운 주제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면 근본적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옥스퍼드 프로세스(Oxford Process)라는 프로젝트에서 제안한 의미 있게 듣는 방법을 살펴보자. 이 프로젝트는 감정적으로 흥분한 사람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대단한 방법은 아니다. 극적인 대립 상황에서 벗어나 창문이 있는 곳으로 가보자. 그곳에 서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을 가다듬는 것이다. 회사에서는 매점에 가거나 잠시 사무실에서 나와 안전한 중립적 공간으로 가는 것도 좋다. 흥분한 상태로 책상 앞에 앉으면 결국 다른 동료에게 감정을 드러내게 되고, 비이성적인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일단 자리를 피해 마음을 다잡을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멀티태스킹을 멈춰라

온갖 모니터와 기계가 많은 사무실에서 컴퓨터로 업무를 보거나 다른 일을 하면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전화를 받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대화할 때 컴퓨터 작업이나 통화를 멈추고 상대방에게 내가 온전히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자. 이야기를 경청할 때는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말하는 사람 쪽으로 몸을 돌려 눈을 바라본다. 다른 업무를 보면서 동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아예 듣지 않는 것만 못하다. 통화할 때도 마찬가지다. 통화하면서 계속 모니터로 업무를 보면 전화기 너머 상대방은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고 있음을 분명 알아챌 것이다. 상대방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배경 음악이 아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유심히 들어라. 적어도 듣는 척해라.

나를 대상으로 연습하기

듣기 연습을 위해 사무실을 잠시 벗어나보자. 또는 출퇴근을 하는 동안 바깥 풍경에 빠져들자. 정신없이 빠르게 흘러가는 이 시대에 속도를 늦춰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당장 내일부터 점심시간에 가벼운 산책이라도 해보자. 뜬금없이 왜 산책을 추천하느냐고?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다. 어딘가를 걸을때는 음악도 듣지 말고 자기 몸과 마음의 소리에 집중해라. 재정비와 회복의 시간이 되어줄 것이다. 늘 긴장한 채 잔뜩 스트레스 받는 표정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며 앉아 있는 사람을 좋아할 동료는 없다. 때론 사무실에서 편안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타인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스스로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입장 바꿔보기

듣기는 방향으로 이뤄지는 행위이므로 내가 상대방의 말을 경청했다면 상대방도 내 말에 귀 기울이게 해야 한다.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알려지면 이러한 점을 악용하려는 사람이 생길 것이고, 이로 인해 분노가 치미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아마도 어떤 날에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돌아가며 들어주느라 정작 자신의 업무는 제대로 마치지 못할지도 모른다. 만일 상대방이 본인의 이야기를 마친 후 내 이야기는 들어줄 시간이 없다고 하면 당당히 요구해도 괜찮다. 다만, 무례하거나 싸울 기세로 항의하지 말고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당신에게 줬으니 당신 역시 내게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해주면 좋겠다’ 정도로 말해보자. 나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틈틈이 표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