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생 여자사람 ③

에디터 패션에디터 이세희

이세희 패션 매거진 에디터 1990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가부장적 기성세대와 열린 생각을 하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 어떤 것을 받아들이고 어떤 것에 얼만큼 의견을 밝혀야 일이 유연하게 흐를지 가늠하는 생각과 판단의 연속. (내가 남자라면 이런 걱정도 안 할 테지.)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정체성이 각인된 순간 어릴 때 엄마가 나를 수영 학원을 보내려 했더니 아빠가 여자아이가 어깨 넓어지면 못쓴다고 해서 여자는 어깨가 넓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듣고 싶지 않은  계집애들이, 계집애같이.

사회가 요구하는 성 역할에서 해방됐던 계기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왜 남녀 사이에 임금 격차가 있고, 왜 여자는 아이를 낳으면 복직하기 힘든지, 왜 여자는 경력 단절을 겪어야 하는지 많이 생각했다. 이후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운좋게도 여자가 90퍼센트 이상인 업계에서 일하며 성 역할에서 해방됐다. 유리 천장은 없고 여자라서 안되는 일도 없다. 맨스플레인도 당연히 없다. 일할 때 단 한 번도 성 역할에 구애받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느낀 것은 성 역할은 결국 주변 환경이 만든 것이고,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

나는 패션 기자로서 ‘여성스럽다’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려 노력 합니다.

주목하는 젠더 이슈 패션과 뷰티에 관련한 일을 하다 보니 페미니즘과 탈코르셋의 영향과 결과에 관심이 간다. 색조 화장품의 판매량이 떨어지거나 성 정체성이 드러나지 않는 옷차림이 유행하고, 패션 브랜드에서 남성과 여성 컬렉션을 통합하며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 등장하고 보디 포지티브 운동이 벌어지는 등 변화를 코앞에서 지켜보니 흥미롭다.

나의 위대한 여성 이화여대 김혜숙 총장. 2017년 한일간지에 실린 김혜숙 총장의 인터뷰를 보고 많은 생각을 했다. ‘여대의 최종 목표는 자기 소멸’이라는 말. “이화여대가 자기 목적을 달성한 순간엔 여자 대학이 있을 필요 없는 그런 세상이 되는 거니까요. 그러니 여자들이 진짜 성과를 낼 때까지 몸을 태워서 달려가야 해요.” (기사 발췌)

#백래시 나의 선택과 자기표현은 쇼핑몰에서 쇼핑하는 권리에 그치지 않는다. 남이 허락해준 당당함에 만족하지 말 것.

 

홍정은 방송 PD 1991

‘여성스럽다’를 정의하자니, 그렇다면 ‘남성스럽다’는 무엇으로 정의해야 하는가

페미니즘? 모든 성이 사회적으로 평등해지기 위한 사상 혹은 가치관, 그에 따른 행동. 여기에는 남성, 여성뿐만 아니라 LGBT 등 다양한 성 정체성이 포함된다.

여성스럽다 ‘여성스럽다’라는 단어는 ‘섬세하다’ ‘배려심이 많다’처럼 떠오르는 이미지가 한정적이다. 여성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그러하고, 내가 아직도 그 단어의 틀에 갇혀 있기 때문인 듯하다. ‘여성스럽다’를 정의하자니, 그렇다면 ‘남성스럽다’는 무엇으로 정의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점이 남아 차마 정의 내리지 못하겠다.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옷, 화장등 스스로 가꾸고자 하면 꾸밀 것도 많고, 클럽과 술등 음주가무를 즐기고자 하면 놀 것도 많고, 여행이나 영화, 책 등 배우고자 하면 배울 것도 많아 즐기기엔 더없이 좋지만 여기에는, 너무 많아도 너무 적어도, 뒤따라오는 걱정과 우려, 질타가 있다.

일상 속 실천 무거운 물건 함께 들기. 웬만하면 ‘남자가’ 혹은 ‘여자가’처럼 성별에 따라 고착화된 특징이나 성격 등을 말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주목하는 젠더 이슈 은행권과 공공기관에서 문제가 되는 성차별 채용 비리. 서류, 면접 점수 등을 조작해 뽑혀야 할 여성 지원자가 탈락하고 남성 지원자가 뽑히는 채용 비리가 있었다. 블라인드 채용을 하고 있다지만 한국 기업에는 아직 남성을 우대하는 관행이 남아 있는 듯하다. 취업준비생으로서 보고 느낀 것이 있어 그 문제에 가장 공감하고 관심이 갔다.

나의 위대한 여성 엄마. ‘대단하다’ ‘멋지다’라고 느낀 사람은 몇몇 있지만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존경을 표할 사람은 엄마밖에 없었다. 나보다 힘든 상황에서 나고 자라 많이 교육받지 못했지만, 3남매를 흠 없이 키워낸 점이 대단하다고 느낀다. 여자가 능력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요즘 세상에’ 결혼, 출산이 무슨 대수냐고 말할 때면 든든함(?)까지 느낀다.

#탈코르셋 여기서 코르셋은 어떠해야 한다고 틀을 만들고 규정지은 사회적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코르셋이라는 말은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에게도 적용될 것이다. 남자, 여자 혹은 제3의 성이라는 이유로 어떠해야 한다고 규정할 수 없다. 하지만 탈코르셋을 위해 모든 것을 코르셋으로 정의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화장하는 걸 진짜 좋아해서 매일 공들여 화장하는 여자가 있을 수 있고, 땀 흘리는 게 좋아서 매일 근육운동을 하는 남자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코르셋이란 개인에 따라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다.

미디어아티스트 뮤지션 최영

최영 미디어 아티스트·뮤지션 1990

가장 아름다운 나 몸과 마음 모두 편안하고 유연한 상태에 있을 때 아닐까? 좋아하고 욕심 내는 일에 몰입한 순간이나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순간을 떠올려봤다.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을 자신에게 적용하는 일은 어색하지만 즐겁다. 유한한 삶의 매 순간, 스스로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느낄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셀카를 한 장 찍어보겠습니다.

페미니즘? 여성에게 질문하고 그 대답을 경청하는 일.

여성스럽다 매력적이다, 멋지다라는 말로 폭넓게 사용할 수 있었으면 한다.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자신과의 싸움을 멈출 수가 없다. 다양한 강박과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기가 왜 이렇게 힘든가?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정체성이 각인된 순간 미성년자 신분으로 성폭행당했을 때. 당시 ‘이것은 나의 책임이고 수치스러운 일이며 비밀이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친구와 가족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평소 잘 따르던 여자 선생님께 찾아가 크게울고 나서 겨우 한마디를 했던 것이 기억난다. 병원에 좀 같이 가달라고.

듣고 싶지 않은 말 몇 살이냐는 질문. 그리고 그 질문 뒤에 따라오는 멘트로는 ‘의외로 많네?’ ‘적네?’ ‘큰일이네?’ 등으로 다양하다.

일상 속 실천 눈치 보지 않는 것. 나는 이것이 단순하지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젠더 이슈를 넉넉히 품는 삶의 태도 역시 중요하다. 좌우명처럼 늘 마음에 새기려고 한다.

성평등 의식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낀 사건이나 순 안희정 비서 성폭행 사건의 2심 유죄 판결.

나의 위대한 여성 아직도 나는 서지현 검사의 TV 인터뷰를 보던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 개인의 용기가 얼마나 뜨겁고 밝게 빛날 수 있는지 확인한 사건이다. 정말 멋지고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소설가 우다영

우다영 소설가 1990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가 사랑하게 될 사람들이 모두 어쩔 수 없이 잘못된 젠더 가치관을 세습받은 불행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시간. 물론 불행한 사람에는 나 자신도 포함된다. 그런 스스로와 주변의 모두를 미워하거나 혐오하지 않고 함께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정체성이 각인된 순간 남자가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 한 어른이 나를 혼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나는 화가 나기보다 왜 그게 나의 역할인지 궁금했다. 오히려 화가 난 사람은 그 어른이었고 끝까지 내가 설거지를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때 그런 이야기를 처음 들었는지 알 것 같다. 스무 살 이전에 나는 보호받아야 하는 ‘어린아이’에 속해 있다가 성인이 되면서 설거지를 해야 하는 ‘여자’가 된 거다.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살면서 여성스럽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그냥 나다운 건데 그들끼리 지레짐작하고 흡족해하다가 내가 자신들의 예상을 벗어나면 깜짝 놀라곤 한다. 때로는 순수한 호의로 그런 말을 한다고 느껴지는 사람도 있다. 단지 내 특징들을 칭찬하는 의미로. 그럴 때는 그 사람과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는데, 그런 모습을 조용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한 여자라는 듯이. 왜 여성스럽다는 말이 이토록 불쾌한 말이 되었을까?

일상 속 실천 조금 사소하면서도 용기가 필요한 규칙인데, 나는 잘못된 성 인식의 발언을 한 사람에게 그 발언을 그대로 돌려준다. ‘걔 여자친구 싹싹하고 괜찮더라.’ 그래도 상대가 눈치를 못 채면 이번에는 성을 바꿔서 다시 말한다. ‘걔 남자 친구 싹싹하고 괜찮더라.’ 친구의 여자친구가 싹싹하게 굴어야 한다고 생각한 스스로의 인식을 깨닫고 그게 옳은지 다시 생각해보길 바라는 마음에서 조금이라도 이전과는 달라지도록, 그 사람이 영원히 무뢰한 사람으로 남지 않도록 말이다. 더 이상 이런 시도도 하지 않고 사람에게 실망하고 포기하게 될까 두렵다.

주목하는 젠더 이슈 젠더 갈등. 젠더 갈등은 특정 대상이나 경험에 대한 분노를 일정 젠더 집단에게 보복하려는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너무 단순하게도 여자는 남자를, 남자는 여자를 적으로 간주하는 거다. 하지만 진짜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은 형체도 무게도 없이 압력을 행사하는 뿌리 깊은 부당함이고, 그 부당함은 남성이나 여성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역사 안에서 작용하며 우리의 눈을 가리고 우리의 행동을 제약한다. 그 분명한 사실을 잊지 않고 분노에 현혹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위대한 여성 리베카 솔닛의 모든 글을 좋아한다. 솔닛은 여자들이 여성에 대해 하고 싶어 하는 말을 거의 다 했고, 우리가 어렴풋이 마음속에 품고 있었으나 언어화하지 못했던 많은 의혹들을 정확하고 아름답게 이야기했다. 한 여자의 딸로서, 또한 글을 쓰는 한 명의 여자로서 살아가는 작가의 에세이 <멀고도 가까운>을 추천하고 싶다.

#가스라이팅 남자가 여자에게, 여자가 스스로에게, 그리고 엄마가 딸에게 물려주는 지겨운 연쇄를 끊어낼 때까지.

#노브라 한 아이돌의 노브라 사진에 달린 ‘한두 번이어야 봐주지 적당히를 모른다’는 댓글을 봤는데, 이 세상 어디에도 타인의 허락이 필요한 가슴은 없음.

#GirlsCanDoAnything 여자는 물론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이. 남자가 비난받지 않고 그런 의지를 품듯이.

 

이영경 재무회계팀 인턴 1995

낙태 합법화 운동. 이 이슈는 개인이 아닌 사회가 공유하는 성차별적 인식의 집합체다.

페미니즘? ‘Just the way you are’. 브루노 마스의 노래 제목을 빌려서 말하고 싶다. 사회적으로 정의되는 모습이 아니라 우리의 모습 그대로를 인정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 물질적인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 또한 중요한 목표다. 마치 영화 <히든 피겨스>에서 화장실을 얻어냈듯이.

여성스럽다 70억 인구의 모든 변수를 무시하고 생각의 편리를 위해 이분하는 방식.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혼란스럽다. 내 주위 남자들은 그러지 않을 거라 믿으면서도 여자인 친구들이 겪은 데이트 폭력, 학교나 직장 내 성희롱, 유리 천장 등에 관해 들을 때. 누굴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그 속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정체성이 각인된 순간 남자가 한 손으로 여자인 내 두 손목을 너무나 쉽게 제압할 때. 2차 성징이 일어나는 중학생 때, 남자인 친구와 장난치다가 처음 제압당했을 때 굉장히 당황했다. 물리적인 힘 앞에서 무력함을 느꼈달까. 지금도 가끔 애인과 장난치다가 제압당할 때면 속으로 조금 놀란다.

나는 성별을 앞세운 칭찬을 하지 않습니다. 여성스럽다, 남자답다기보다 강인하다, 주체적이다, 섬세하다 등 개인이 지닌 장점을 칭찬하려고 노력한다.

주목하는 젠더 이슈 낙태 합법화 운동. 이 이슈는 개인이 아닌 사회가 공유하는 성차별적 인식의 집합체다. 해당 여성은 물론 의사도 책임을 지는 임신과 출산에서 오직 남성만 배제돼 있다. 여성의 정신적, 금전적 상황은 무시하고 임신과 출산을 여성의 숙명으로 강요하는 등 문제가 많다. 성취할 것이 많아진 여성들의 요구에 사회는 적극적으로 반응해야 한다.

가장 아름다운 나 목표를 세우고 꾸준히 달성하는 모습에서 스스로 자존감을 올린다. 요즘 새벽 운동 후 출근하고, 퇴근 후에는 근처 카페에서 공부를 하다가 귀가하는데 야근의 고비에도 두 달 가까이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나의 위대한 여성 (외)할머니. 내가 여성 차별적 인식에 불편함을 느끼고, 개인적 성취를 추구할 수 있는 것은 그 시절에도 아들딸 차별 없이 기르신 할머니의 깨어 있는 생각 덕분이다. 자식들의 출가 후, 면학하신 것도 정말 멋지다. 이런 할머니 아래서 자란 어머니도 나를 차별 없이 키웠고, 할머니 역시 손주들을 차별 없이 대하신다.

90년생 여자사람 ②

 박서희 박서희화보 박서희페미니즘 페미니즘

박서희 모델 1996

듣고 싶지 않은 말 ‘예쁘다.’ 누구나 그렇듯 칭찬은 기분 좋은 일이다. 나 역시 ‘예쁘다’를 칭찬으로 잘못 생각했다. ‘예쁘다’는 평가다. 우리는 칭찬을 위장해 타인을 쉽게 평가하고 평가받는다. 노력과 자질로 바꿀 수 없거나 선천적으로 가진 부분에 대한 칭찬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악의가 없든 순수한 의도든 좋은 마음이든 알겠고 감사하다. 그렇지만 단순히 외모가 예쁘다는 칭찬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페미니즘? 온전하게 ‘나’의 시각으로 세상을 살아가며 주체로서 결정하고 판단하며 사유하는 것.

여성스럽다 뿌리 깊은 성불평등 사회에서 성평등을 외치며 나아가는 여성들의 당당한 모습을 칭하는 말이라고 새롭게 정의하고 싶다.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올해 스물네 살이 됐다. 성인이 된 지난 4년을 돌아보면 새로운 인연을 만나 배우고 얻는 것들로 인해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내 인생을 스스로 만들어간다는 보람도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누군가 나를 예쁘지 않다고 생각할까 두려워 스스로 외모의 단점을 찾아내고 가리기에 바빴고, 밤늦게 혼자 집에 들어가는 길은 두려웠으며, 공중화장실에는 몰래카메라가 있지 않을까 불안했고, 술집에서 혼자 화장실 가는 것이 무서웠으며, 자취방에서는 혼자 사는 여자임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정체성이 각인된 순간 어린 시절,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해 13층의 집까지 걸어 올라 다녔으며 화장실 문을 꽉 닫지 못했다. 초등학교 4학년, 주택에 살 때 혼자 샤워를 하다가 화장실 창문으로 나를 훔쳐보던 남자와 눈이 마주친 다음부터 내내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으니까. 그때부터 나는 나를 보호하려 드는 어른들로부터 ‘너는 여자이고, 여자는 몸을 조심해야 한다. 남자는 여자의 몸을 보려하고, 궁금해한다, 위협할 수 있다. 그러니 여자인 네가 좀 더 조심했어야 한다’ 등으로 잘못 배웠다. 그래서 나는 당시 그 사건은 나를 훔쳐본 남자가 아닌 내가 여자여서 그런 일이 생겼다고 (잘못) 생각했다. 그때 내 생
물학적 정체성이 여자임을 처음 인식했다.

일상 속 실천 탈코르셋. 남들은 관심도 없는 단점을 가리기 위해 거울 앞에 앉아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되고 나를 멋대로 평가하려는 남자들의 기준에 맞춰 나를 재단하지 않아도 된다. 오늘 내가 입은 코르셋은 오늘 태어난 여자아이에게 고스란히 물려주는 코르셋이라 생각한다. 오늘의 예쁠 나를 위해 모든 여성들이 꾸밈노동을 강요받길 원하지 않는다. 교복 재킷 안쪽에 틴트 주머니가 생기는 것을 우려하고, 7세용 화장품 장난감에 반대한다. 모델로서 일을 할 때는 코르셋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이 부분은 내가 풀어가야 할 아주 어려운 숙제다.

 

이창주 그래픽 디자이너 1992

#탈코르셋 우리가 벗지 않는 코르셋은 일상에서 전시되고, 다음 세대에 대물림된다. 우리가 시작해야 ‘여성이 꾸미는 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다음 세대를 볼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우리 사회에서 20대 여성은 예뻐야 하고, 스물다섯 살이 넘으면 꺾였다고 표현하고, 연애는 꼭 해야 하고, 남자 잘 만나 결혼하는걸 인생의 지표쯤으로 여기며, 서른이 넘으면 인생이 끝나는 것처럼 군다. 그저 내가 살아갈 인생 중 ‘10년’일 뿐인데, 남인 나에게 바라는 게 너무 많다. 내 인생이 ‘완벽하게 짜인 여자의 인생’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기를 바라는 것 같다.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정체성이 각인된 순간 어릴 적 나는 남자애들과 어울려 (사회적 통념으로) ‘남자애들처럼’ 뛰어놀며 자랐다. 어느 날 후미진 골목길에서 한 아저씨가 나를 콕 찍어 “혼자 와서 강아지와 놀고 가” 하며 불렀다. 무리의 틈에 숨듯이 끼어서 골목을 지나왔고, 내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아저씨는 계속 나를 불렀다. 무리 중 내가 딱 하나 다른 건 성별이었다. 줄곧 ‘남자아이’처럼 지내던 내가 그 순간부터 ‘힘없는 여자아이’가 돼버렸다.

가장 많이 들었던 말 기가 세다, 드세다, 무섭다. 내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뚝심 있고 과묵하고 진중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일상 속 실천 불편한 발언에 내 의견을 설명한다. 반사적으로 화내기보다 내 생각을 차근차근 이야기하려 노력한다.

나는 불편함에 침묵하지 않습니다. 주목하는 젠더 이슈 여성 대상 약물 성범죄. 범죄로 이용되는 약물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도 문제인 데다가 오래전부터 본 사람, 들은 사람, 당한 사람이 수없이 많음에도 아무도 처벌받지 않고 있고, 이에 따른 예방 노력이나 수사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암묵적인 강간 문화가 뿌리박혀 있다는 사실이 경악스럽다.

성평등 의식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낀 사건이나 순간 최근 TV CF 속 여성을 전에 비해 능동적으로 그린다는 것을 느낄 때. 미디어가 그려내는 여성상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늘었음을 느낄 때.

가장 아름다운 나 내가 맡은 일을 잘해낼 때. 내가 가진 다른 요소가 아니라 순수하게 내가 가진 능력으로 인정 받을 때.

나의 위대한 여성 캐나다 인상주의 화가 헬렌 맥니콜. 색감과 묘사 방식, 그림에서 풍기는 고요한 느낌을 좋아 한다.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던 시기에 주로 여성 노동자, 아이들을 그리며 여성들의 세계를 따뜻하게 표현해낸 화가이기도 하다. 당시 사회가 주목하지 않던 약자의 모습에 집중했다는 점이 마음에 남았다. 시대가 그녀를 주목했다면 더 위대한 예술가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든다.

#가스라이팅 내가 중학생 때 ‘된장녀’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고, 이후 ‘OO녀’라는 말이 미디어에서 계속 들려왔다. 어릴 때부터 미디어의 주도하에 스스로 자기
검열에 빠져 살아온 것 같다.

 

슬릭 래퍼 1991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난도가 너무 높다. 다른 나라에서 다른 연령으로, 다른 성별로 직접 살지는 않았지만 대한민국 20대 여성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무수히 많은 지표에서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가장 절망적인 부분은, 미디어가 그려내는 20대 이후 여성의 삶이란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정체성이 각인된 순간 태어났던 그 순간. 물론 그때의 나는 의식할 수는 없었지만 당시 작명소에서 받아온 내 이름은 다음 아이를 남자아이로 태어나게 만들어준다는 이름이었다. 여성이라는 성별은 나의 존재 가치와 정체성, 자존감을 남동생의 절반만큼만 갖게 했다.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여자세요, 남자세요?’라는 질문. 여성 혐오가 만든 프레임 때문에 그 틀 안에 얌전히 들어가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늘 받아야 하는 무례한 질문이다. 내가 여성이면 혹은 남성이면 뭐가 어떻다는 거지? 내 성별을 인지하고 나면 뭐가 달라지는 건지, 왜 궁금한지 이해할 수 없다.

일상 속 실천 언어 사용을 굉장히 조심하고 있다. 성평등뿐 아니라 모든 차별과 대상화는 언어 사용과 유기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생각한다. 특히 가사를 쓰는 사람으로서 어떤 말들이 어떤 맥락을 가지는지, 어떻게 읽히는지 공부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페미니즘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과 친구 하지 않습니다.

주목하는 젠더 이슈 성별, 성 지향성, 성 정체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어릴 때부터 인지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회가 오길 바란다. 지금은 위 세 가지 개념에 대한 정의조차 공유되지 못하고 있다. 나 역시 과거에 이 개념들이 제대로 자리 잡지 않아 고통과 비극의 시간을 겪어야 했다.

성평등 의식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낀 사건이나 순간 최근에 읽었던 기사 중 ‘20대 여성 두 명 중 한 명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한다’는 헤드라인. 멋진 변화라고 생각한다.

가장 아름다운 나 아름다운 나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아름답지 않아도 상관없다.

나의 위대한 여성 지금 살아 있는 여성들 모두. 끝까지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란다.

 

노가은 카피라이터 페미니즘 맨스플레인 가스라이팅

노가은 카피라이터 1994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피곤하다.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이 매일 일어나고, 그 대상이 내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자유로운 사고를 가둔다. 수많은 잣대와 타인의 말에 흔들리지 않게 스스로를 지키는 일도 소홀해선 안 된다. 감옥에 갇혔으면서도 변변찮은 무기 없이 보초를 서고 있는 꼴이랄까.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정체성이 각인된 순간 초등학교 1학년 때, 난 노씨인데도 정원이 30명 정도 되는 반에서 25번이었다. 남자아이 먼저, 그다음 여자아이 순으로 번호가 배정됐기 때문이다. 그게 내가 여성이어서 겪은 최초의 불평등이다.

나는 여자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여자를 미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 사회는 너무도 쉽게 여자를 미워하는 것 같다. 각종 미신과 단어들로 말이다. 이 사람이 남자였다면 욕먹을 일인가? 여자라서 더 나쁘게 보이는 것은 아닐까? 의심한다. 이기적이고, 제멋대로 굴고, 욕망하는 여자들을 좀 내버려둘 필요가 있다. 나 스스로도 마찬가지다.

성평등 의식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낀 사건이나 순간 생리를 ‘그날’이 아닌 생리라 말하는 광고가 만들어지고, 성폭력 사건 재판에서 어느 정도 납득할 판결문이 나오고, 여자 아이돌이 탈코르셋의 내용을 담은 노래를 부르는 걸 보면, ‘조금씩 바뀌고 있구나’라고 생각한다.

#맨스플레인 #가스라이팅 “아갈머리를 확!”

 

이지원 IT 업계 매니저 1992

페미니즘? 남성 중심 사회를 청산하고 여성 중심 사회로 재편하고자 하는 여성 중심 사회 운동. 으레 페미니즘을 성평등 운동이라 정의하는데 사실은 그게 맞다. 하지만 나는 2분의 1을 원하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을 원한다. 이런 이유로 나는 ‘여성 중심 사회를 지향하는 운동’으로 정의하고자 한다.

여성스럽다 관철하다(본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소신대로 끈기 있게 나아가다)라는 동사의 유의어였으면.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사람이기 전에 여성으로 살아간다.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여성’이다. 남성에게 성적으로 매력적이어야 하고 항상 웃어야 하며 소위 ‘빻은’ 말을 들어도 공격하지 않고 우회적으로 말해 현명하다는 평을 들어야 하는, 임신이 가능한 상태인지 아닌지 측정당하는 젊고 싱싱한 여성. 고유의 개성을 지닌 개인으로 보지 않는다.

듣고 싶지 않은 말 ‘시집가야지’. 20대 후반이 되면서 결혼 얘기를 듣는데 정말 듣기 싫다. 결혼 생각도 없을뿐더러 나는 결혼 말고도 하고 싶은 일, 할 일이 많다.
결혼 얘기를 듣는 순간부터 내 인생을 커다란 허들이 가로막은 것 같다.

나는 지랖^^이 넓지 않습니다. 남의 인생에 심각하게 오지랖 넓게 참견하는 사람들을 만난 적 있다. 이런 사람들은 꼭 타인의 결혼, 애인, 옷차림 등 사생활에 관심을 갖는다. 이들을 보며 확실히 다짐했다. 누군가의 삶에 참견하는 일은 전에도 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더더욱 하지 않겠다고. 윤리적, 사회적,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행동을 하거나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닌 이상 남의 인생에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

성평등 의식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낀 사건이나 순간 매 순간. 하루하루 터져 나오는 이슈들이 이를 방증한다. 이전에는 몰랐던 것, 알아도 눈감았던 것, 차마 눈감지 못해 목소리를 내면 아무도 관심 갖지 않던 젠더 이슈가 하나둘 수면 위로 올라온다. 이제 우리는 생각하고 행동하고 소리 지른다. 아무도 가지 않은 눈길 위에 발자국을 내는 기분이다.

나의 위대한 여성 딱 한 명은 아니고 불특정 다수. ‘메갈리아’ 등장 이전부터 비혼의 길을 걸은 분들. 결혼이 여성 삶의 디폴트 값이었던 때에 비혼을 생각하다니. 나처럼 사회체제에 의심 없이 순종하는 사람은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 개인의 생각이 사회의 영향을 직간접으로 크게 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요즘 들어 더욱 존경스럽다. 혜안이 있다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탈코르셋 밖에서 가끔 탈코르셋을 한 자매들을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표현을 못했지만 이 지면을 통해 말하고 싶어요. 반가워요. 고마워요. 우리 서로에게 용기를 주도록 해요.

#백래시 나도 아직 힘겹게 싸우고 있다. 다른 것이 그러했듯 이것 또한 시간을 들여 천천히 떼어내야겠지.

90년생 여자사람 ①

뮤지션 예지 페미니즘
ⓒLYDO LE

예지 뮤지션 1993

페미니즘? 누구나 평등한것. ‘woman’이든, ‘womxn’(man에서 파생된 단어인 woman의 대안용어. 여성은 남성의 일부가 아님을 언어로 재정의함)이든, 퀴어든, 트랜스젠더든, 논-바이너리(non-binary)든, 그 누구라도.

여성스럽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 외에도 다양한 사람이 존재한다. 그 차이를 인정하고 재정의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 인권과 권리를 이야기할 때 ‘아름다운(beautiful)’ 또는 ‘여성적(feminine)’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편견과 규정을 만들 뿐이다. 실제로 위 단어들이 여성 인권을 ‘지지하는’데 사용되었더라도 말이다. 서로 배우고, (잘못 배웠던 것들은)의식적으로 잊으며 우리를 규정짓는 틀에서 벗어나길 소망한다.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어디에서 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뉴욕은 한국보다는 조금 더 진보적이다. 가령 나이에 따라 판단받는 일이 적다. 그렇다고 차별이 없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미국에서 젊은 한국인 여성으로 사는 것 역시 그만의 어려움이 있다.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정체성이 각인된 순간 지금으로서는 여성이라는 사실을 자각할 만한 경험은 없다. 대신 나를 불편하게 하는 타인에 대해 의식적으로 생각하려 한다. 어떤 차별적 순간을 경험했을 때 나의 잘못과 문제가 아님을 인지하려 한다. 구시대적인 관점을 지닌 건 바로 그들이니까.

사회가 요구하는 성 역할에서 해방됐던 계기 가장 먼저 보수적인 미국과 한국에서 자라면서 배웠던 모든 것을 의식적으로 잊으려 노력했다. 과거 사회가 우리 부모님을 가르쳤고, 부모님은 내게 여자는 이래야 한다, 남자는 이래야 한다, 퀴어는 잘못된 것이라 가르쳤다. 과거의 사고 방식을 뇌에 각인하고 규범으로 정착시키려 한 것이다. 하지만 이게 규칙이라고 그 누가 규정할 수 있나? 둘째, 다른 사람에게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해 생각하기를 그만 두고,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들을 보기 시작했다. 한국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스스로를 작은 존재로 만들었던 과거의 습관에서 벗어나려고도 애썼다. 대신 나를 작아지게 하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그들이 왜 그러는지를 더 많이 생각했다. 셋째, 다양한 피부색의 여성들, 퀴어, 트랜스, 논-바이너리, 논-스트레이트 메일(non-straight male) 등 다양한 친구를 만났다. 그들은 내게 솔직하고 주체적인 삶을 사는 방식에 대해 가르쳐줬으며, 어떤 성 정체성에 대해서든 자유롭게 표현해도 좋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일상 속 실천 내가 속한 커뮤니티 안에서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려한다. 부모님과도 성평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양한 인종의 여성이 주최하는 행사에 더 많이 참여하려 하고, 그들을 지지하고, 목소리를 내고 응원하려 한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습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성평등 의식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낀 사건이나 순간 성평등과 인권 감수성이 통하는, 친밀한 커뮤니티가 있는 뉴욕에 산다는 건 행운이다. 내가 있는 이곳은 한국보다는 진보적이다. 비록 정치적인 면에서는 더 혼란스럽지만 적어도 열린 마음을 지닌 개개인이 모여 집단을 이루고 있다. 요즘 또래의 한국 여성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한국 역시 조금씩 희망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느낀다.

나의 위대한 여성 ‘모든 드래그 퀸은 위대하다!’고 외치고 싶다.

녹색당공동운영위원장 신지예 페미니즘

신지예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1990

성평등 의식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낀 사건이나 순간 최근 불법 촬영 및 유포 범죄로 자살을 택한 여성들을 위한 추모제를 진행했다. 규모가 큰 행사는 아니었지만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참석해 진심으로 추모했다. 안희정 비서 성폭력 사건의 2심 결과도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협소하게 해석해온 기존 판례를 뒤집는 결과였다. 바뀌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천천히 확실히 바뀌긴 바뀌는구나 싶었다.

페미니즘? 가부장제와 성폭력, 성차별과 싸우는 철학. 젠더 불평등은 오래전부터 공고하게 이어져온 구조적 억압이기 때문에 인식조차 하기 어렵다. 가부장제 속에서 남성이 아닌 존재들은 타자로서 존재할 뿐이다. 페미니즘은 주체와 비체를 가르는 이분법적 구분을 전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보이지 않거나 별것 아닌 것으로 여겨졌던 젠더 불평등에 저항하고, 끊임없이 권력 구조를 재해석하는 살아 있는 철학이기도 하다.

여성스럽다 ‘여성스럽다’라는 범주에는 성격이 부드럽다, 조용하다, 성숙하다, 조신하다 등 수많은 표현이 존재한다. 이런 말들은 생물학적인 특징, 염색체 XX를 설명하는말이기보다 사회가 규정한 젠더 규범을 설명하는 표현이다. 페미니즘이 꿈꾸는 사회가 도래해 젠더 규범에서 해방되는 순간을 상상해보자. 단순히 ‘여성스럽다’라는 범주 안에 통속적 의미로서 정반대 표현만을 채워 넣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젠더 규범으로 이뤄진 정체성에 대한 해체, 더 이상 정형화된 여성이나 남성의 구분이 없는 세상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여성스럽다는 말의 의미는 텅 비어 있고, 없다고 말하고 싶다.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강도가 다를지라도, 차별의 언어와 억압은 늘 여성에게 존재했다. 여성으로 태어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두려움에 떨며 밤거리를 걷지 않아도 될 것이다. 혼자 무전 여행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을 것이다. 옷매무새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더 크게 걷고 더 크게 웃고 게걸스럽게 먹을 수 있다. 임신중절이 불법이고, 홀로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이 사회에서 임신은 더 이상 공포가 아닐 것이다. 페미니즘을 공부할수록 나보다는 엄마나 할머니의 삶이 떠오른다. 억압과 차별 속에서 살아온 여성들이 경이롭게 느껴진다. 그리고 뒤이어 살아갈 다른 여성들의 삶이 상상된다. 설사 내 삶 속에서 성차별과 억압의 구조가 모두 없어지지는 않더라도 앞으로 태어날 여성들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란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사는 일은 고통을 직시하며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다.

듣고 싶지 않은 말 여자는 아기를 낳아야 몸이 완성된다.

가장 아름다운 나 푹 자고 일어나서 기운 넘칠 때.

#탈코르셋 벗어 던지는 것은 옷이나 머리칼이 아니라 여성이라면 으레 해야 한다던 사회 규범이다.

 

남소라 경제지 기자 1990

페미니즘?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모든 것.

여자다움, 여자답다 나고 자라면서 습득한 나의 모습을 그대로 숨김없이 드러낸 당당함.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고,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정체성이 각인된 순간 생리를 시작한 것. 나는 아이를 낳고 싶지 않고 낳을 생각도 없는데, 앞으로 수십 년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나고 불만스러웠다.

듣고 싶지 않은  ‘여자니까’.

일상 속 실천 성차별적 단어 사용을 지양하고, 대화 중 타인이 사용할 경우 이를 지적하기.

주목하는 젠더 이슈 스포츠계 성범죄 사건들. 조재범부터 시작해 다른 피해자의 목소리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가해자로 지목된 자들에 대해 빠른 조사가 이뤄져 올바른 죗값을 치르길 바란다.

성평등 의식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낀 사건이나 순간 성범죄 사건을 이야기하다 피해자를 탓하는 발언이 나오면 모두 한마음으로 지적하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지우는 행동이 2차 가해임을 지적하는 모습을 일상에서 목격했을 때. 페미니즘이나 정치·사회적 성격을 띠지 않는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가장 아름다운 나 살아 있는 자는 모두 아름답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매 순간 어떤 모습이든 아름답다.

나의 위대한 여성 서지현 검사가 안태근 전 검사장을 성추행으로 고발한 지 1년. 그동안 우리는 수없이 많은 성범죄 가해자를 고발하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서지현 검사가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전히 눈을 가리고 귀를 막은 채 보고도 보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며 살았을 것이다. 주간지 <시사인> 589호에서는 ‘2018 올해의 인물’로 서지현 검사를 꼽았다. 서 검사는 <시사인>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원더우먼처럼 찍어달라고 말했다.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했던 한국 사회와 맞짱 떠 승리하고 있는 서지현 검사를 존경한다.

#노브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있지만 한 번만 해본 사람은 없을걸.  #유리천장 유리 천장 위에 있는 사람들이 왜 자꾸 유리 천장이 없다고 하는지?

 

이길보라 영화감독·작가 1990

‘몸 간수 잘해라’ ‘잘 처신해라’ 최악이다. 모든 잘못은 내 몸에 있다는 말이 아닌가.

여성스럽다 의미를 재정의한다 해도 나는 이 말을 쓰고 싶지는 않다. ‘여성’과 ‘남성’으로 모든 것을 구분할 수 없다. 인터섹스 같은 간성이 분명히 존재하고, 지금 유학 중인 네덜란드에서는 지난해부터 젠더 중립 여권을 발급하기 시작했다. 홈페이지 등에 가입할 때도 성별을 표기하고 싶지 않다면 젠더 중립 혹은 미표기를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여성스럽다’ ‘남성스럽다’라는 말보다 ‘이길보라스럽다’ ‘ㅇㅇㅇ스럽다’라는 개인의 고유성을 넣은 표현을 쓰고 싶다. 페미니즘은 개인의 고유성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한국에서 20대 여성이자, 장애인의 자녀로 사는 건 나를 늘 성찰하게 하는 계기였다. 어딜 가나 차별과 차이를 직시할 수밖에 없는 소수집단에 속했으니까. 그 경험이 다른 사람의 아픔과 경험에 공감할 수있는 감수성을 주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만큼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정체성이 각인된 순간 중학교에 들어가니까 치마를 입어야 하더라.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고 싶어 학교 갈 때만 체육복 바지를 입으면 안 되느냐고 학교에 문의했더니 절대 안 된다고 했다. 그럼 교복 바지를 만들어달라고 했더니 그것 또한 절대 안 된다고 하고. 남동생은 매일 학교에 자전거를 타고 갔는데 말이다. ‘내 몸은 왜 그의 몸처럼 자유로울 수 없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듣고 싶지 않은 말 ‘몸 간수 잘해라’ ‘잘 처신해라’ 최악이다. 모든 잘못은 내 몸에 있다는 말이 아닌가.

사회가 요구하는 성 역할에서 해방됐던 계기 유럽 여행을 처음 했을 때.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다. 당시 나는 삭발을 하거나 쇼트커트를 했는데 한국에서는 화장실에 갈 때마다 사람들이 깜짝깜짝 놀랐다. ‘여기 여자 화장실인데요’ 하는 말도 많이 들었다. 네덜란드에서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더라. 내가 무엇을 입든 어떤 머리를 하든. 해방감이 들었다. 이런 세상이 존재할 수 있구나 싶었다.

일상 속 실천 네덜란드에서는 노브라가 흔하다. 노브라에 원피스를 입고 힐을 신은 채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 나 역시 그렇게 지내다 한국에 오니 약간 눈치가 보이더라. 심지어 엄마는 지난여름에 네덜란드에서 노브라 상태인 나를 봤을 때는 아무 말 안 했는데 한국에 오니까 왜 브래지어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운동적인 측면에서 정치적인 의미를 담아 노브라에 민소매 티를 입고 다녔다. 일을 하러 갈 때나 지하철을 탈 때도. 누가 쳐다보거나 말을 걸면 미친년처럼 싸워야겠다는 생각으로. 그게 정말 큰 변화였다.

나는 몸 을 꽉 죄는 그 어떤 것도 입지  않습니다. 

성평등 의식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낀 사건이나 순간 미투 운동, 그리고 미투 운동을 둘러싸고 미디어가 피해자 이름을 거론하지 않고 가해자 이름을 따 ‘안희정 성폭행 사건’ ‘조재범 성폭행 사건’이라고 부르는 걸 봤을 때. 무언가를 어떻게 부르느갸가 그것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의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의 얼굴과 이름을 계속 언급해 그를 피해자화하지 말자고,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사건을 인식하는 방법을 고쳐먹자고 움직인 순간이니까.

나의 위대한 여성 지금 공부하고 있는 네덜란드 필름 아카데미의 여성 학장 미커(Mieke) 그리고 여성학을 전공한 여성 조교인 크리스(Kris)와 사빈(Sabien). 슈퍼 페미니스트 그룹으로 조교실 한쪽 벽에 영화 <델마와 루이스> 포스터가 붙어 있다. 여성주의를 바탕으로 만들어가는 석사과정 자체가 성적으로 평등하고 수평적인 곳이다. 매일 마주치는 이들을 보며 많은 것을 배운다.

페미니즘 나연 예술행동가

나연 예술행동가(ARTIVIST) 1994

여성스럽다 재정의 과정을 거쳐 결국에는 사라졌으면 하는 말. 인간을 이루는 한 부분인 성별이 존재 전체를 뒤덮는 일이 더 이상 생기질 않길 바란다. 궁극적으로 성별이라는 것이 동물처럼 생식 기능 외에는 아무 의미를 지니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사회가 요구하는 성 역할에서 해방됐던 계기 누드 사진을 찍으면서부터. 그 전까지 나는 내 몸을 싫어했고, 혼자 있을 때도 내 나체를 보는게 불편했다. 내 몸이 단순히 여성의 몸으로 대상화돼 존재한다는 걸 알았기에 은연중에 그랬던 것 같다. 그동안 접한 여성의 누드가 언제나 남성의 ‘자위용’으로만 소비되는 것을 목격해왔으니까. 이제는 그들의 폭력적인 시선이 문제임을 안다. 우리는 모두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로 태어났고, 몸에는 죄가 없다. 내 몸은 그저 살과 뼈일 뿐, 이를 저열한 욕망의 논리에 끼워 맞춰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내 몸을 제대로 보면서 깨닫기 시작했다.

일상 속 실천 누구를 만나건 페미니스트라고 말한다. 이 사실을 밝힐 때 상대방이 조심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또 페미니스트가 이 세상에, 그것도 당신 주위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페미니스트를 ‘일베’처럼 악마화된 소수집단으로 여기는데 이는 그들의 착각일 뿐이다. 세계 모든 곳에 페미니스트가 있고 우리는 결코 소수가 아니다.

나는 남성 권력에 고개를 숙이지 않습니다.

주목하는 젠더 이슈 한국의 임신중절 합법화.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임신중절 처벌에 대한 위헌 여부를 논의하고 있다. 당연히 위헌이라고 결론 내리길 기다리고 있다. 100% 피임법이 존재하지 않는 현 상황에서 여성은 원치 않는 임신과 출생이란 덫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여성 역시 자신의 인생을 위해 주체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인간인데 정부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성평등 의식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낀 사건이나 순간 사회가 페미니스트들에게 응답할 때. 제도적인 측면이 변화할 때. 최근 아일랜드에서 임신중절이 합법화되었는데 이처럼 사회 인식이 바뀌는 걸 목격하는 순간, 지치지 말고 나아가야 함을 다시금 느낀다.

나의 위대한 여성 윤리학자 캐럴 길리건. 기존 도덕 발달 이론이 지극히 남성 중심적이라는 점을 비판하며 여성을 기준으로 한 새로운 이론을 제시한 학자다. 여성성과 결부되는 가치를 긍정적으로 재평가했다. ‘여성스럽다’는 단어와 가치에 함축된 것을 재정의하며 여성의 존재를 긍정하는 데 공을 세운 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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