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속의 토모 코이즈미

지난 뉴욕 패션위크 기간에 토모 코이즈미 쇼가 끝난 후 SNS는 곧 거대한 드레스 세상이 되었다.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나는 도쿄에서 활동하고 있는 드레스 디자이너다. 셀러브리티나 광고 촬영을 위한 의상을 제작하는 디자이너로 7년 동안 일했다. 스물세 살 때 코스튬 드레스 레이블을 론칭했고, 지금은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대학에서 미술 교육을 전공하고 있다. 열네 살 때 잡지에서 존 갈리아노의 디올 쿠튀르 드레스를 본 뒤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했다. 나는 언제나 꿈을 좇는다.

스타일리스트 케이티 그랜드가 자일스 디컨의 소개로 당신을 인스타그램에서 발견했다고 들었다. 그녀에게 연락이 왔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나는 케이티 그랜드가 창간한 <러브> 매거진과 그녀의 수많은 작업을 오랫동안 흠모해온 팬이다. 지난 1월 초 그녀에게서 DM을 받고, 내 눈을 의심했다. “내가 수년 동안 본 컬렉션 중 가장 좋았다”라는 그녀의 메시지를 본 게 새벽 3시였는데, 마치 꿈을 꾼 듯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릴 뻔했다.

마크 제이콥스가 당신에게 자신의 스튜디오뿐 아니라 매장까지 내어주었다. 그가 당신에게 해준 말 중 가장 인상적인 말은 무언가? 그에게 “당신의 모든 재능을 이곳으로 가지고 와줘서 고맙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무척 감동했다. 나는 쇼 5일 전에야 뉴욕에 도착했고, 케이티가 구성해둔 완벽한 팀을 비롯해 마크 제이콥스, 패션 에이전시 KCD의 도움으로 쇼를 성사시킬 수 있었다.

2019 F/W 컬렉션에 대해 소개해주기 바란다. 케이티에게 연락을 받은 당시 나는 쇼를 열 계획이 없었고, 뉴욕으로 가야 하는 날짜가 3주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컬렉션의 반은 나의 아카이브에서 선별하고, 나머지는 새로 디자인했다. 자연의 색채와 추상화 그리고 애니메이션<세일러문>에서 영감을 받았고, 실루엣은 디올,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쿠튀르 드레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왜 이토록 초현실적인 드레스를 만들기 시작했나? 사람들이 아직 보지 못한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고 싶었다. 패션을 통해 사람들에게 환상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옷을 만들 때 판매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드레스를 디자인한다. 그것이 다른 컬렉션과 구별되는 차이를 만들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큰 관심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드레스 한 벌을 완성하는 데 평균적으로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 드레스를 만드는 과정이 궁금하다. 보통 5일에서 7일 걸린다. 나카메구로에 있는 나의 작은 스튜디오에 있는 수많은 화려한 색의 러플을 어울리는 색으로 조합해 드레스를 만든다. 컬러의 경우 요즘에는 옛날 인형이나 왕족의 의상 등 일본의 전통문화에서 영감을 얻는다.

전 세계 패션계의 이목이 당신에게 집중돼 있다. 다음 계획은 무엇인가? 지난 쇼 이후 커머셜 피스나 숍 오픈에 대한 문의를 많이 받고 있다. 나는 상업적인 디자인은 잘못한다. 만약 내가 기성복을 디자인한다면 티셔츠처럼 지금 만드는 드레스와는 완전히 다른 아이템을 선택해야 할 것같다. 숍을 열 계획은 없지만 맞춤복 고객을 위한 스튜디오를 마련하고 싶다. 투자를 받기보다 상업적인 브랜드와 협업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다음 시즌엔 무지개 컬러에서 벗어나 좀 더 그래픽적인 작업을 하고 싶다. 유럽의 패션위크에서 새로운 컬렉션을 소개하게 되길 기대하고 있다.

동네 패션 바이브

4대 패션위크 출장에서 돌아온 에디터에게는 종종 이런 질문이 쏟아진다. “다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주인공들처럼 차려입어?” 톱 셀러브리티부터 인플루언서까지 한자리에 모여 스타일링 감각을 뽐내는 자리이니 당연히 궁금할밖에. 그러나 지난 시즌 기억을 떠올려보면 답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하이힐에 맥시 스커트를 입고 치맛자락을 곱게 들어 올린 채 종종걸음을 하던 게 어느새 까마득한 예전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대신 최근 하이패션계에는 ‘동네 패션’ 바람이 불었다. 영향력 있는 패션 인사이더만 앉을 수 있는 프런트 로에서는 플립플롭과 슬리퍼가 심심찮게 포착된다. 트랙 팬츠나 슬리브리스 톱, 심지어 이 둘을 매치해 입는 경우도 흔하다. 패션계는 이런 트렌드를 ‘원 마일 웨어(One Mile Wear)’라고 부르기로 했다. 집에서 1마일 이내의 거리를 다닐 때나 입는 옷이라는 뜻이다. 원 마일 웨어는 몇 시즌 전부터 시작된 스포티즘과 애슬레저 무드의 유행에 여성복을 실용적으로 만들어 젠더리스 패션을 이룩하고자 했던 여러 패션 하우스의 노력이 더해지고, 지지하디드나 켄달 제너 등 톱 모델들의 ‘레깅스 패션’이 필라테스 붐과 맞닿으며 서서히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어려운 용어를 갖다 붙이니 그럴싸해 보이지만, 실상 그것들은 ‘쪼리, 쓰레빠, 츄리닝,메리야스, 동네 패션’이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릴 정도로 친근한 생김새를 가졌다. 셀러브리티의 SNS에 이런 옷차림이 연일 업로드되고, 명품 브랜드에서 앞다투어 상품화하다 보니 이제 실생활에서도 ‘동네 패션’이 하나의 스타일이 되었음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박물관이나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트랙 팬츠를 입은 이들이 적잖이 목격되고, 어른들의 눈총쯤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대다수가 됐다. 물론 TPO에 관한 지적에 반기를 들기는 쉽지 않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봐도, 앞서 언급한 아이템들이 정돈된 느낌을 주지는 않는 게 사실이니까. 그러나 패션을 자기 표현의 수단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원 마일 웨어 트렌드는 전혀 이상할 게 없다. 게다가 젠더 구분이 비교적 덜하고, 활동성까지 확장된다고 생각하면 이 유행이 고맙고 반갑게 느껴질 정도다. 지금까지 나열한 장점에 귀가 솔깃한다면 당신도 동네 패션을 트렌드로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는 얘기다. 무언가를 새로 살 필요도 없다. 그냥 깨끗한 티셔츠와 헐렁한 조거 팬츠에 스니커즈를 신고 거리로 나가보길. 그때 느껴지는, 정형화된 아름다움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이야말로 원 마일 웨어가 지닌 진짜 매력이니까!

1 스텔라 매카트니의 집업 재킷. 2 ‘아빠 샌들’ 같은 구찌의 샌들. 3,4 알렉산더 왕이 출시한 슬리브리스 톱과 조거 팬츠.

 

빠지면 섭섭한 여름 패션템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면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하는 것조차 사치로 느껴진다. 멋 좀 내보겠다고 이 옷 저 옷 걸쳐보는 순간 체감온도가 5℃ 이상 올라가니 말이다. 여름엔 시원하고 간편한 옷이 최고다. 하지만 여름 스타일링의 즐거움을 누리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이번 시즌 컬렉션에선 그중 두 가지가 단연 눈에 띈다. 시원한 혹은 시원해 보이는 아이템이 바로 그것. 전자는 시스루, 후자는 PVC다.

먼저 시스루는 여름이면 런웨이를 점령하는 단골손님이다. 이번엔 투명에 가까운 얇은 시스루의 활약이 돋보인다. 속이 다 비친다는 건 레이어링에 신경써야 한다는 의미다. 한편으로는 여러 겹 입어도 부담 없을 만큼 얇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더위에 민감할지라도 다양한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으니 눈여겨볼 것. 다채로운 시스루 룩 중 프라발 구룽, 레지나표, 푸아레처럼 네온 컬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스타일이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다. 네온 컬러를 겹겹이 스타일링해 특유의 청량한 기운을 배가했으니! 옐로 보디수트에 그린 스커트를 입은 프라발 구룽, 오렌지색과 핑크빛 드레스를 겹쳐 입은 푸아레의 룩을 보면 알 수 있듯 마치 수채화처럼 두 가지 색이 더해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 ‘하의 실종’의 새로운 버전 역시 주목할 만하다. 미니드레스 길이의 셔츠 위에 각각 시폰 스커트와 드레스를 매치한 프라다와 버버리, 마이크로 미니 쇼츠 위에 메시 소재 펜슬 스커트를 덧입은 미우미우의 스타일링은 다소 과감하긴 하지만 참신하다. 그렇다면 상의를 시스루 소재로 선택할 경우에는 어떤 아이템을 활용하는 게 좋을까? 진짜 속옷 같은 톱보다는 드리스 반 노튼과 질샌더 컬렉션처럼 밴드 디자인이나 크롭트 톱 스타일의 아이템과 짝지어보자. 물론 런웨이에서는 가슴을 드러내는 경우가 다반사지만, 쇼는 쇼일 뿐! 어쨌거나 시스루만큼 시원하고 또 레이어링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소재가 또 있을까?

PVC의 경우 솔직히 말해 한여름엔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시원해 보이는 걸로 따지자면 얼음처럼 투명한 비닐 소재가 최고지만, 공기가 전혀 통하지 않기 때문. 물론 비 오는 날 실용적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PVC 소재의 옷을 입은 모델들의 옷과 신발에 뽀얗게 습기 찬 모습이 포착될 정도니, 더운 날씨와는 상극이다. 이런 큰 단점에도 불구하고 매번 S/S 시즌 컬렉션의 키 아이템으로 등장하는 이유는 무얼까? PVC를 비롯해 아크릴, 셀로판지 같은 시퀸, 반투명한 기능성 소재 등 비닐류는 형태를 원하는 대로 만들 수있어 구조적인 실루엣을 구현하는 데 용이하고, 빛을 반사해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마린 세레나시스 마잔처럼 퓨처리스틱한 무드를 즐기는 슈퍼 루키들이 컬렉션에 PVC나 홀로그램 소재로 키 룩을 제안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편 펜디, 오프화이트, 휠라, 엠포리오 아르마니의 애슬레저 룩, 마리 카트 란주와 메종 마르지엘라에서 선보인 기묘한 실루엣의 드레스, 알투자라와 아쉬시가 정성스레 완성한 투명 시퀸 장식 드레스는 추구하는 방향은 다르지만 모두 초현실적인 인상을 뿜어낸다는 점에서 일맥 상통한다. 이 소재의 경우 액세서리가 더욱 다양하고 또 유용하다. 투명한 백과 슈즈는 날씨를 의식할 필요 없이 룩에 포인트를 주기 좋기 때문. 게다가 샤넬의 로고 장식 슬라이더, 알렉사 청의 러버 소재 샌들, 베르사체와 모스키노의 쇼퍼백은 해가 쨍쨍한 여름날 해변에서, 그리고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장마철에도 아주 실용적이지 않은가! 더운 날씨는 사람을 매사에 무기력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번 시즌 쏟아져 나온 매력적인 시스루와 PVC 아이템을 모른 척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여름에만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