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하 사랑방

딮 게스트하우스 in 경주

20여 년 된 여관을 리모델링한 뚋 게스트하우스는 여행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운영하는 여행자 숙소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것은 잠시 접어두고, 느리게 음미하는 여행을 제안한다. 1층 라운지에서 열리는 북 콘서트나 공연 등을 통해서도 그 생각을 전한다. 얼마 전 오픈 4주년을 기념해 싱어송라이터 시와 함께하는 공연을 마련하기도 했다. 현재 경주에서도 실력 있는 뮤지션의 공연을 선보이자는 취지의 프로젝트 ‘얼반 콜렉티브’를 카페 ‘향미사’, 판교의 라이브 다이닝 클럽 ‘커먼키친’과 의기투합해 이어가고 있다. 싱어송라이터 정밀아가 그 스타트를 끊었다.

미륵미륵 맥주 호스텔 in 통영

원래 농협 구판장이던 1층에는 마을 주민과 여행객이 이용할 수 있는 수제 맥주 펍을, 보습 학원이던 2층과 무용 학원이던 3층에는 게스트하우스를 만들었다. 통영 미륵산에서 영감을 받아 꾸민 수제 맥주 펍에서는 전국 양조장을 돌며 선별한 통영IPA, 미륵사우어, 거제바이젠, 남해스타우트 등 맛있는 로컬 맥주를 맛볼 수 있다. 가끔 열리는 각종 공연과 낭독회, 인문 강연 등으로 머리와 마음까지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곳이다.

백희 게스트하우스 & 갤러리 in 전주

전주 한옥마을 경기전 뒤편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이자 복합 문화 공간. 이웃과 여행객이 쉴 수 있도록 담장을 허물고 낮은 담을 벤치로 만든 이곳의 1층은 갤러리 겸 카페다. 흔히 어렵고 무겁게 생각하는 전시 관람의 문턱을 낮추고 작가와 관객이 소통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공간이다. 2~3층에는 통창으로 경기전을 감상할 수 있는 온돌방 등 전통미를 적절하게 살린 숙박 공간이 있다.

#시원상큼 여름 디저트

여름이니까 더 먹고 싶은,
여름에만 특별히 판매되는,
서울 소재 카페의 여름 메뉴를 소개한다.

오우아

방배동 카페 오우아가 5월 10일
여름 신메뉴로 수박 케이크를 출시했다.
라즈베리, 화이트 초콜릿 무스 위에 체리 필링을 얹고
아몬드 향의 케이크 시트를 활용해 수박 껍데기를 만들었다.
진짜 수박을 갈아 넣은 수박 주스도 판매한다.

주소 서초구 도구로1길 73-1
영업시간 월~토요일 11:00~22:00, 일요일·공휴일 11:00~21:30
문의 02-6498-4998

원 모어 프로포즈

새콤한 에이드는 여름에 추천하는 음료 중 하나.
연남동 카페 원 모어 프러포즈
각종 과일이 듬뿍 들어간 에이드를 만드는데,
액상과당이나 시럽은 넣지 않는다.
5월 중순부터 판매 중인 핑크 에이드에는
레몬, 파인애플, 키위와 함께 용과가 들어가 있어
젤리가 씹히는 듯한 식감이 특징이다.

주소 마포구 성미산로31길 13
영업시간 11:00~21:00, 월요일 휴무
문의 010-6350-7017

오브 마이 버터

여름 디저트 오브마이버터
@ofmybutter

연남동 오브 마이 버터레인보우 라떼에는
식용색소를 넣고 만든 우유 얼음이 들어 있다.
그 위로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체리가 올라가며
라즈베리, 녹차, 초코 중 한 가지 맛의 우유가 함께 제공된다.
우유 얼음이 든 잔에 우유를 부어 마시는 음료로
그냥 따르는 것만 찍어도 예쁜 음료다.

주소 마포구 성미산로29길 40-6
영업시간 12:00~20:00, 월요일 휴무
문의 010-6524-1801

소장식물점

방화동의 빈티지 화분 상점 겸 카페, 소장식물점.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는 흙파르페
화분처럼 생긴 비주얼이 매력적이다.
시리얼과 아이스크림을 층층이 쌓고
오레오 가루를 뿌린 후 튤립 모양의 쿠키를 꽂았다.
천연 벌꿀을 곁들여 먹는 요거트
더운 날 상큼하게 즐기기 좋다.

주소 강서구 방화대로23길 34
영업시간 토~화요일 12:00~19:00, 수~일요일 비정기적 운영
문의 @sosiksosik

쁘띠가든

10여 년 전 유행하던 카페 ‘캔모아’를 기억한다면
홍대 근처에 있는 쁘띠가든에 가볼 것.
웨하스와 빼빼로를 비롯한 과자와 아이스크림,
과일 등으로 한껏 토핑한 파르페를 판매한다.
그외에도 캐러멜 바나나 드롭, 러블리 빙수 등
화려한 디저트를 다양하게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주소 마포구 와우산로29길 20
영업시간 평일 11:00~22:30, 주말 11:00~23:00
문의 02-779-1343

TEACHERS ON THE FROZEN RIVER

우리는 한낮에도 해가 들지 않는 어두운 협곡으로 들어갔다. 얼어붙은 강 표면은 상당한 평형 감각이 필요할 정도로 미끄러웠고, 그 위에는 환상적인 무늬가 수놓여 있었다. 때때로 얼음 윗부분이 녹아 생긴 얕은 물웅덩이가 나타나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장화를 신거나 방수가 잘되지 않는 장화라면 맨발로 웅덩이를 건너야 했다. 얼음이 녹으면서 얇아진 얼음 층이 우리 무게 때문에 요란하게 삐걱대며 거친 소리를 냈다. 눈 덮인 협곡의 적막과 울림이 더 해져 소리가 커졌다. 우리는 절벽 꼭대기를 향해 눈 사이를 우아하게 가로지르는 시베리안 아이벡스 무리의 호기심 어린 눈빛을 받으며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강의 어떤 부분은 새로 내린 눈 아래로 완벽히 언 것처럼 보여 아주 잠시 여정이 수월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한 굽이만 지나면 물이 다시 거세지고 얼음은 더 얇아져 결국 우리는 바위에 매달려 한 발 한 발 전진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틀간 잔스카르강이 흐르는 차다르 계곡 파둠에 있는 람돈(Lamdon) 고등학교 교사 몇 명과 함께 모험 같은 여정에 올랐다.

잔스카르는 인도 북부 지역으로 히말라야산맥과 카라코룸 사이 그리고 카슈미르와 라다크의 중간 지점에 있다. 1842년까지 독립 왕국이었던 이곳은 그 후 인도에 병합되었는데, 인도 정부는 인도의 언어와 문화를 강요했지만 그들은 변하지 않았다.이곳 고지대 사막에서는 몇몇 오아시스가 라마교 사원과 번갈아 나타난다. 사원들은 마치 잔스카르강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요새 같다. 시간이 가도 변하지 않는 이곳은 1월 말이면 히말라야에서 찬 바람이 불어오면서 기온이 영하 30℃ 아래로 떨어진다. 그리고 연중 거칠던 강의 물살이 점점 약해져 완전히 멈춘다. 잔스카르를 얼음의 강으로 만드는 마법 같은 시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 길은 주민들에게 얼음 위를 걸어서 다시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해준다. 5년 전쯤 나는 잔스카르 계곡 고산지대 목초지에서 볼 수 있는 드리모(암컷 야크) 젖으로 만드는 귀한 버터를 시장으로 운반 한다는 ‘버터 카라반’을 만나기 위해 처음 이 길을 찾았다. 그때 세상에 하나뿐인 이 길과 추운 겨울 고단한 삶을 사는 이 지역 사람들의 모습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그리고 겨울방학이 끝나 개학할 때인 3월 1일 잔스카르의 학교로 복귀하기 위해 언 강을 건너는 교사들을 만났다. 그때 나는 이곳을 다시 방문해 이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잔스카르 계곡 곳곳에 있는 학교는 대부분 국제단체에서 교사 월급을 지원받는다. 그중 람돈 고등학교는 1988년 이 계곡과 불교 철학에 매료된 프랑스인 마크 다미앙이 설립했다. 오늘날 이 학교는 약 3백 명의 학생이 12개 학급을 이루고 있다. 여학생이 그중 절반을 차지한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비영리단체 AAZ(Aid to the Zanskar-Aide au Zanskar)에서 지원하고 있다. 사원에 소속된 학교도 아니고 인문학과 과학, 잔스카르와 라다크에서 사용하는 티베트어, 힌두어, 우르드어, 영어를 가르치고 있지만 학교 곳곳에 불교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많은 교사가 중국의 티베트 침략 이후 인도에서 정치적 망명자 신분으로 살고 있는 티베트 출신이다. 개학을 며칠 앞둔 상황에서 학교로 돌아갈 채비를 하는 교사 중 몇몇을 2월 20일 레(Leh)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의 동행이자 잔스카르 주민인 타르게이는 약간 걱정스러워 보였다. 수년 전부터 지구온난화가 이 히말라야의 얼어붙은 계곡 마을에도 그 영향력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특히 올해 기온이 한 번도 영하 30℃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고 2월 말에는 상황이 더욱 좋지 않았다. 강 곳곳의 얼음이 완전히 녹거나 사람과 썰매의 무게를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얇아진 것이다. 레에 도착한 다음 날 나는 머물던 게스트하우스에서 몇몇 구간의 물이 허벅지까지 차오르는 바람에 여정을 포기했다는 여행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히말차프라데시에서 온 체육 교사 라지브와 아내 돌마 그리고 이들과 함께 차다르에서 8년째 지리, 정치, 과학, 티베트어를 가르치고 있는 티베트 출신 교사 텐짐은 떠나기 전 매우 특별한 축제가 열리고 있는 마토(Matho)사원을 방문했다. 두 명의 승려가 무아의 경지에 이르러 온몸으로 계시를 받아 종교적 예언을 하고 새해의 복을 기원해주었다. 드문 조합이기는 했지만 고대 샤머니즘, 교사들의 바람 그리고 이 승려들의 기도는 하나같이 강물을 지나는 위험한 여정에 행운이 깃들기를 바라고 있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나는 인더스강 합류 지점부터 계곡이 넓어지고 첫번째 마을이 나오는 협곡의 끝까지 강을 모두 둘러보는 데 6일이 걸렸다. 하지만 변덕스러운 날씨는 단 몇 시간 만에 얼음 상태에 변화를 줄 수 있다. 스케이트를 탈 수 있을 정도로 거울처럼 매끈하게 얼려버릴 수도 있고, 물살을 소용 돌이치게 해 도저히 건너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면 우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암벽을 타는 대신 얼음이 얼기만을 며칠이고 기다리며 고된 여정을 이어가야 한다. 우리를 싣고 칠링(Chilling) 마을로 온 차에서 내렸을 때 동이 텄다. 차는 오랜 시간 동안 인도 군인들이 협곡을 따라 공사하던 비포장도로를 달려왔다. 이 도로 공사는 수년 동안 1년에 10킬로미터 이상 진척이 없는 것으로보아 사실상 오래전 공사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건을 실은 썰매, 짐가방, 교사들이 탄 카라반, 짐꾼, 그 외 잔스카르 주민들이 천천히 얼음 상태를 살피며 출발했다. 첫날 밤, 야영은 춥긴 했지만 마법 같은 시간이었다. 협곡옆에 있는 여러 동굴 속에서는 짐꾼들이 불을 피워 옷을 말리고 저녁을 준비했다. 언제나 그러듯 계피차를 끓이는 주전자 위에 젖은 양말을 막대기에 매달아놓았다. 달콤하면서도 도수 높은 이 지역 럼 한 병이면 특히 힘들었던 하루의 지친 심신을 달래기에 더없이 좋다.

여행을 시작한 첫날, 기온이 많이 떨어지지 않아 우리는 결국 줄에 매달려 암벽등반을 해야 했고 그 때문에 속도가 더뎌졌다. 하지만 밤 동안 횃불이 없어도 될 정도로 환하던 보름달과 수많은 별은 강물을 차갑게 얼렸고 다음날 아침 나는 얼어붙은 침낭에서 잠을 깼다. 내 옆에서 타르게이는 여정 전체보다 더 험난한 하루를 마주하기 전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날 지난 강가 바위 절벽은 굉장히 가팔라서 ‘만일 강이 얼지 않았다면 날아서 탈출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걸을 때마다 집을 떠나 언 수평선을 향할 잔스카르 사람들을 떠올렸다. 강의 소용돌이 물살은 얼어서 이 사람들의 마음의 길로 변했다. 이 사람들은 저녁이면 불가에 모여 보따리 가득 버터를 담아 어깨에 메기 전 얼음 상태와 눈사태 가능성에 대해 점성술사에게 묻곤 했던 옛날 옛적 차다르 모험 이야기를 했다.

이틀 후, 얼음은 이곳저곳에서 여러 조각으로 부서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다시 산을 타야 했고 일부 구간에서는 물이 무릎까지 차기도 했다. 타르게이는 아직 겨울인데 얼어 붙은 강이 이렇게 많이 녹아버리면 돌아가는 여정이 매우 힘들 거라며 걱정했다.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었다. 지난주에 내린 엄청난 눈 때문에 돌아가는 길 중 5킬로미터가 막혀버릴 수도 있었다. 5월말까지 계곡에 갇힐 위험성이 무서우리만큼 커진 것이다. 그래서 계곡이 넓어지고 흰 눈에 반쯤 덮인 집들이 보이고 아이들이 발에 고무 호스를 묶어 스키를 타며 놀고 있는 첫 번째 마을까지 뻗은 길을 보았을 때, 타르게이는 귀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짐꾼 두 명과 함께 우리는 즉각 돌아오는 여정에 올랐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차다르의 베테랑 수위 틴레이 그리고 라지브와 다른 교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며 여름에 길이 열리고 학교가 한창일 때 이들을 보러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다. 우리가 돌아 가는 동안 이들은 학교까지 남은 40킬로미터를 오프로드 카를 타고 달릴 것이다. 그 길 역시 쉽지만은 않을 터다.

차다르의 마지막 날 우리는 평상시처럼 동굴이나 암벽 뒤 임시 거처에 머무는 대신 협곡 위에 고립된 마을의 한 집에서 보내게 되었다. 사람들은 집안의 야크 배설물을 태우는 난로 주변에 모여서 사원에 가지 못하는 대신 만트라를 낭송했다. 저녁에 여인들과 여자아이들은 양털 실을 뽑고 다듬는 일을 하며 남편이나 미래의 약혼자에 대한 수다를 떨었다. 타르게이는 진행자처럼 그들 틈에 자리 잡고 앉았다. 벽에는 비행기나 기계 사진과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그러던 중 나는 측면에 이니셜이 박힌 잔스카르의 풍경화를 발견했다. 그 풍경화 속 잔스카르는 당시만 해도 고립에서 벗어나려는 정치적 모험을 벌이던 시기의 모습이었다. 고립이라는 조건이 외국인들에게는 매력적인 지점이긴 하지만 지역민에게는 그렇지 못하다. 비록 오래 걸리는 길이긴 하지만 ‘당나귀 길’이 부분 부분 극단적인 구간을 갖춘 트레킹 코스로 변하면서 잔스카르 주민들은 투어 가이드나 짐꾼 등 새로운 직업을 가지게 되었고, 보잘 것없던 수입이 늘었을 뿐 아니라 추운 겨울밤 불가에 모여 앉아 선조들의 모험 이야기를 직접 들려줄 기회까지 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