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F/W 오트 쿠튀르 컬렉션 ①

CHANEL

패션 컬렉션의 새로운 아티스틱 디렉터 버지니 비아르가 이끄는 샤넬의 오트 쿠튀르 컬렉션이 엄청난 기대 속에 막을 올렸다. 옷뿐 아니라 음악과 장소에 이르기까지 쇼를 통해 무한한 상상력을 보여주고자 하는 샤넬은 이번 시즌 커다란 원형 도서관처럼 꾸민 그랑 팔레로 관객들을 초대했다.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앉게 되는 길다란 벤치와 커피 테이블, 포근한 러그와 유리 천장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초여름의 햇빛이 어우러진 그랑 팔레는 더없이 여유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샤넬이 이러한 요소를 통해 강조한 테마는 바로 책이다. 버지니 비아르에게서 칼 라거펠트로, 칼 라거펠트에게서 가브리엘 샤넬로 거슬러 올라가는 샤넬의 계보에는 마치 중요한 연결 고리처럼 언제나 책이 존재했다. 가브리엘 샤넬은 고아원에서 보낸 유년 시절 책에 의지해 살았고, 문학을 매개로 환상적인 패션 세계를 구현했다. “가브리엘 샤넬은 마치 기적처럼 화가, 음악가, 시인들 사이에서만 유효해 보이던 규칙들을 패션에 적용해나갔다. 그녀는 남들 눈에 띄지 않고 싶어 했고, 사교계의 소란 속에서도 고귀한 침묵을 지키고 싶어 했다”는 장 콕토의 회상과 “지금 문학사 책을 펼치면 새로운 고전 작가의 이름이 눈에 띌 것이다. 그는 바로 코코 샤넬이다. 샤넬은 종이와 잉크 대신 직물과 형태, 색깔을 이용해 글을 쓴다. 그녀는 고전 작가의 지위를 부여받기에 충분하다”라는 롤랑 바르트의 글이 이를 뒷받침한다. 칼 라거펠트 역시 가브리엘 샤넬 못지않은 책 애호가였다. 그의 공간에 남겨진 책이 무려 30만 권에 달하고, 스스로 병적인 수준의 독서광임을 인정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그와 30년 이상 책과 패션에 관한 생각을 나누고, 책을 향한 가브리엘의 애정을 동경한 버지니 비아르의 새 시즌 컬렉션은 무척 특별하다. 책을 통해 칼 라거펠트의 유산을 담아내고, 가브리엘 샤넬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은 옷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레이어드 기법의 재킷 칼라로 약간 펼쳐진 형태의 책을, 우아한 플리츠로 책꽂이에 책이 빽빽하게 꽂힌 장면을 표현한 것. 이 외에도 화려한 쿠튀르 드레스와 대비되는 단정한 안경과 로퍼, 무심히 꺼내 입은 듯한 무늬 없는 드레스는 샤넬이 꿈꾼 문학소녀가 얼마나 고전적인 모습이었을지 상상하게 만들며 룩의 완성도를 높였다.

칼 라거펠트의 서거 이후 팽배했던 불안감이 말끔히 해소된 덕분일까? 풍성한 실루엣과 장식 없이 간결한 디자인의 대비, 턱시도나 남성 재킷에서 차용한 요소가 만들어내는 중성적인 무드는 런웨이에서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쇼가 끝나자 관객들은 일제히 일어나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이번 쿠튀르 쇼는 브랜드의 새로운 수장이 된 버지니 비아르의 가능성과 함께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샤넬의 무한하고 고유한 아름다움을 체감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깊었다.

DIOR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여성의 신체를 캔버스로 여긴 건축가 버나드 루도프스키의 철학에서 새 컬렉션을 이끌어냈다. 거의 모든 룩을 블랙으로 구성해 장식적인 요소보다는 모델들의 몸 자체와 디올 드레스의 구조적인 면모를 강조한 것. 마리아는 또한 불과 공기, 물이 지닌 연금술적 힘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었다고 밝혔고, 이러한 모티프로 구성한 신비로운 패턴은 런웨이를 장식한 페니 슬링거의 흑백 작품과 만나 강렬한 인상을 만들어냈다. 화려한 색채 없이도 시선을 사로잡은 디올의 드레스들은 “블랙에 관해서라면 책을 한 권 쓸 수 있을 정도 입니다”라고 서술했던 크리스찬 디올의 정신을 이으며 블랙을 다루는 디올 하우스의 마법 같은 재능을 또 한 번 느끼게 했다.

SIREN SONG

발렌티노, 화보
화이트 드레스 발렌티노(Valentino), 오버사이즈 이어링, 깃털 장식 샌들 모두 발렌티노 가라바니(Valentino Garavani).
로베르토 까발리, 애니 코스텔로 브라운, 에이지엘
옐로 원숄더 톱과 스커트 모두 로베르토 까발리(Roberto Cavalli), 드롭 이어링 애니 코스텔로 브라운(Annie Costello Brown), 플랫 슈즈 에이지엘(AGL).
알베르타 페레티, 오오에이케이
플리츠 드레스 알베르타 페레티(Alberta Ferretti), 드롭 이어링 오오에이케이(OOAK).
마르니, 드레스, 안드레스 갈라도
프린트 드레스와 벨트 모두 마르니(Marni), 원석 이어링 안드레스 갈라도(Andres Gallardo).
빅토리아베컴, 레지나표
롱 벨티드 드레스 빅토리아 베컴(Victoria Beckham), 이어링 레지나 표(Rejina Pyo).
어웨이크, 블랙드레스, 조셉,
블랙 드레스 어웨이크(A.W.A.K.E.), 레이어드한 블랙 슬리브리스 톱 조셉(Joseph).
이자베 마랑, 지미추,
메탈릭한 브이넥 미니드레스 이자벨 마랑(Isabel Marant), 슬라이더 지미추(Jimmy Choo).

 

몬세의 태도

한국 소비자에게 몬세라는 브랜드를 소개해주기 바란다. 가르시아 몬세(Monse)는 여성성 혹은 남성성을 강조하거나 트렌드를 내세우는 대신 실험적인 옷 몇 가지를 중심으로 하는 브랜드다. 우리 옷은 한 벌만으로도 매력적이게 연출할 수 있는 것들로, 쉽게 말해 ‘이지 엘레강스’에 가깝다. 아쉽게도 한국에는 진출하지 않은 상태라 몬세를 접하려면 네타포르테(NETA-PORTER)를 통하는 편이 가장 빠를 것이다.

새로운 것이 계속 등장하는 패션계에서 ‘이지 엘레강스’는 다소 평범한 테마로 느껴진다. 가르시아 맞다. 이 주제만으로 시선을 끌기는 어렵다. 그러나 잘만 만든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트렌드는 계속 바뀌지만, 사실 여성들은 적은 시간을 투자해 자신을 최대한 꾸미기를 원하지 않나. 몬세가 추구하는 이지 엘레강스는 그런 요구를 충족시킨다.

론칭한 지 4년째인데, 무수히 많은 브랜드가 생기고 사라지는 동안 굳건히 영역을 확장할 수 있었던 몬세만의 특징은 무언가? 킴 아방가르드에 가까운, 쉽게 볼 수 없는 옷을 만든다는 점. 그리고 높은 가격대에 걸맞은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점 때문이 아닐까?

몬세뿐 아니라 오스카 드 라 렌타도 두 사람이 함께 이끌고 있는데, 두 브랜드의 대표적인 차이점은 뭘까? 킴 오스카 드 라 렌타는 페미닌과 클래식의 역사를 대표하는 브랜드다. 반면 몬세의 이미지는 남성적인 무드가 조금 가미된, 반항적인 관능미에 가깝다. 그렇다고 몬세가 클래식과 동떨어진 건 아니다. 남성복의 기존 틀을 해체해 오버사이즈로 영역을 넓히는 작업을 할 때 셔츠 같은 클래식한 아이템을 재해석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브랜드를 운영할 때, 둘이라서 좋은 점은 무엇인가? 킴 피드백을 주고받고, 생각을 공유할 사람이 있다는 점. 수년간 일해본 결과 우리는 완벽한 합을 이룬다. 나는 균형 잡히고 강인한 성향인 반면, 페르난도는 드라마틱하고 로맨틱한 사람이거든. 이렇듯 반대되는 성격의 조화가 일할 때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온다. 가르시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로라는 디자인적 독창성을 지녔으며 비즈니스가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반면 나는 마케팅과 홍보를 좋아하는데, 이렇게 역할을 분담하면 브랜드 운영의 효율성이 배가된다. 의견 대립도 거의 없는 편이다. 둘이 동의할 때 더 좋은 옷이 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았거든.(웃음)

로라 킴은 한국에서 태어났다고 들었다. 어떤 계기로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키우게 됐나? 킴 부모님과 조부모님 모두 직물 제조업에 종사하셨다. 그래서 아주 어릴 적부터 패션계를 접했고, 다른 일을 하는 건 생각도 못 했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진로를 정하게 됐다.

반면 페르난도 가르시아는 도미니카공화국과 스페인에서 자랐는데, 다양한 나라에서 생활한 경험이 몬세의 옷에 영향을 끼치나? 가르시아 알다시피 로라와 나는 모두 이민자고, 뉴욕은 온갖 문화가 뒤섞인 멜팅 포트다. 이런 환경 때문에 우리는 나라와 문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디자인을 브랜드에 반영할 수 있었고, 이 덕분에 몬세의 고객층도 다양해졌다.

<어벤져스>의 주연배우 브리 라슨이 한국을 방문하며 몬세의 보일러 수트를 입어 화제가 됐다. 로라 킴이 한국인인데다, 수트의 컬러가 태극기 색과 같아 한국 팬들이 열광했는데,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하다. 킴 브리 라슨과 우리는 줄곧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녀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룸>으로 상을 받은 해에도 특별히 제작한 몬세의 옷을 입고 배니티 페어 오스카 파티에 참석했을 정도다. F/W 시즌 룩 북이 나온 직후, 브리 라슨의 스타일리스트인 사만사 맥 밀런이 이 행사 때 입을 점프수트를 예약했다. 공교롭게도 여러 상황이 맞아 더욱 주목받았는데, 개인적으로 F/W 컬렉션 중 가장 좋아하는 옷이기도 해서 굉장히 행복했다.

그렇다면 몬세의 페르소나는 어떤 이미지인가? 구체적으로 생각해온 인물이 있나? 킴 에바 첸, 캐시 호린, 로렌 산토도밍고, 사라 럿슨, 사라 제시카 파커처럼 일과 스타일을 사랑하는 여성이다.

앞으로 브랜드를 어떻게 이끌어가고 싶은가? 가르시아 론칭 당시 5년에 걸친 사업 계획을 세웠지만, 아무것도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유연하고 유동적인 접근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런 도전적인 과정은 우리가 젊기에 가능한 것이고, 그렇기에 패션계의 전통적인 규칙을 따르지 않을 수 있어 즐겁다. 앞으로도 이런 방식을 유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