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스트의 집 ①

STEP TO MINIMAL LIFE

자주 쓰지 않는 물건은 수납 바구니에 넣어두기.
음식은 한 끼 먹을 만큼만 만들기.
쓰레기 분리배출 철저히 하기.
한눈에 들어오게 정리하고 나머지는 처분하기.
자신의 소비 패턴을 냉정하게 파악해 필요한 것만을 남기기.

가진 것만으로 생활하기

눈에 거슬리는 것 하나 없이 깨끗한 집에서 전민정은 남편과 고요하고 충만한 매일을 산다. 5년 넘게 미니멀 라이프를 지속하고 있는 그녀의 집은 갓 이사 온 듯 단출한데, 유지하기 결코 쉽지 않아 보이는 이 간소함을 전민정은 어려울 게 없다는 듯 말한다. “남편과 저의 힘으로 신혼집을 꾸며야 해서 물건을 구입할 때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군요. 일단 안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필요한 것만 사고 그 외에는 살면서 필요하면 채우자고요.” 원래도 물건을 쌓아두는 타입은 아니었다지만 책과 컨버스만은 컬렉터처럼 수집했다고 한다. 벽 한 면을 채울 정도의 책과 포장을 뜯지도 않은 채 모셔두었던 색색의 컨버스는 이 집으로 이사 오던 2년 전 모두 정리했다. 계기라면 이사다. 그리고 우연히 접한 다큐멘터리. “미니멀 라이프에 관한 다큐멘터리였어요. 아이 방이 나왔는데 작은 바구니에 장난감 몇 개만 있을 뿐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아이 엄마는 ‘바구니에 담을 수 있을 만큼의 장난감만 사준다’고 했어요. 그걸 보니 제 책과 신발이 쓸데없이 너무 많게 느껴지더군요. 다신을 것도 읽을 것도 아니면 정리하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은 중고 서점과 국립도서관에, 신발과 불필요하다고 판단한 옷은 아름다운가게에 기증했다.

미니멀 라이프는 단순히 소비 패턴을 바꾸는 게 아니라 삶에 대한 가치관을 변화시키는 일이기에 남편을 설득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끊임없이 대화로 조율해나가고 있어요. 요즘 환경에도 관심이 생기면서 쓰레기 분리배출을 열심히 하는데 이 과정이 꽤 복잡다단해요. 남편이 귀찮아하면 그냥 제가 해요. 미니멀 라이프도, 환경을 생각하는 것도, 본인이 직접 느끼지 못한 채 남이 얘기하면 그냥 잔소리고 강요거든요. 엄마가 물건을 많이 쟁여두는 스타일인데 가끔 친정집에 가면 잔소리하면서 제가 정리해요. 그런데 문득 이게 엄마의 라이프스타일이고 내가 스트레스를 줌으로써 엄마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더군요. 미니멀 라이프는 그냥 내 삶인거고 다른 이의 취향과 삶의 방식도 존중하려 해요.”

전민정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을 때’ 무언가를 산다. “버릴 때보다 집으로 뭔가를 들일 때 더 고민해요. 그러니까, 잘 안 사요. 원래 성향이 그런 편이긴 한데 조금씩 더 이런 삶의 방식에 확신이 생기고 있는 거죠.” 사지 않는 것에서 비롯되는 미니멀 라이프는 자연스레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물건을 구입할 때 어떻게 버릴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요. 플라스틱이나 비닐도 재활용이 잘 될 것인가도 늘 고민하고요. 망가져서 사용하지 못하게 되면 그나마 처분하기 쉬운데, 사용하지 않으면 집에 쌓아뒀다가 누군가에게 주거나 그냥 버려야 해요. 근데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그 물건을 누군가가 쉽게 가져간다고 치면 또 쉽게 버릴 가능성이 높아요. 결국은 쓰레기가 되는거예요. 쓰레기가 되면 환경에도 문제가 되겠죠. 화학물질과 썩지 않는 쓰레기가 매립된 땅에서 나고 자란 것을 먹게 되고요. 장바구니를 사용하고 분리배출을 열심히 하고 포장 음식은 용기를 가져가서 받아오는 등 환경보호를 위한 몇 가지 행동을 실천하고 있지만 저는 완벽 주의자도 아니고 그렇게 될 수도 없으니 살면서 조율해가야 해요. 얼마만큼 실천하고 지속할 수 있는지를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전민정의 냉장고는 빈 공간이 대부분이다. 음식은 한 끼 먹을 만큼만 하고, 반찬은 다 먹을 때까지 다른 반찬을 만들지 않는다. 다 먹지 못해서 버려지는 음식과 식재료는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다. “얼마 전 아파트 전체에 전기가 나갔어요. 정전이 길어지면서 다른 집들은 난리가 났죠. 냉장고 안에 있는 것들을 다 버리게 생겼으니까요. 그런데 우리 집 냉장고에는 아이스크림 3개밖에 없었어요. 그때 이렇게 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치열한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현관문을 열면 평온하고 여유로운 여백이 그를 반긴다. 집안일이라는 또 다른 일거리에 매몰될 필요 없이 이 풍경과 하나가 되면 그만이다.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전민정은 우선 사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미니멀 라이프를 하겠다고 다짐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단 버리면서 시작해요. 버리는 건 정말 쉬워요. 그리고 또 사죠. 이런 누를 범하지 않으려면 내가 뭘 자주 사용하는지부터 알아야 해요. 저 역시 이 방법을 따르는데, 수납공간에 빈 박스를 두고 사용하지 않는 것들을 넣어둬요. 그럼 어떤 것들을 잘 사용하는지 혹은 사용하지 않는지 파악할 수 있고, 그렇게 소비 패턴을 알고 나면 뭔가를 재구매할 때도 도움이 돼요. 또 하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정리하세요. 한 예로 뒤편에 수납해둔 옷은 다시 꺼내지 않을 확률이 높아요. 꺼내기 쉬운 곳에, 한눈에 들어올 만큼만 두고 살아도 충분해요. 한 번에 되지 않을 거예요. 조금씩 습관으로 만드는 게 중요해요.”

셰어하우스 이야기_하베아편

디지털 노마드의 함께 살기
SUN AND CO.

인터넷만 가능하면 이곳저곳 떠돌며 어디에서든지 일하고 돈을 벌 수 있는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 여행하듯 일하며 사는 이들은 우리가 열광해 마지않는 사무실을 탈출한 삶, ‘로케이션 인디펜던트(Location Independent)’ 의 대표적인모습이다. 이들에게 코리빙(co-living), 주거 공유, 공동 삶터, 셰어하우스 등으로 불리는 공유의 삶은 원격 근무의 외로움을 덜고 생활에 인간적인 온기를 불어넣어준다. 함께 나눌 수 있는 건 그뿐이 아니다. 지식, 업무 노하우, 인생을 대하는 관점 등 무궁무진하다. 스페인 동부 도시 발렌시아와 알리칸테 사이의 해안 도시 하베아에 있는 선앤코(Sun and Co.)는 이러한 디지털 노마드와 프리랜서들이 주축인 주거 공간이다. 4층짜리 빌라에서 공동 거주자들은 주방과 커뮤니티 룸, 사무실을 함께 쓰면서 생활한다. 각자 업무를 보는 시간 외에는 마음 맞는 사람끼리 여가를 즐기거나 서로의 전문 분야에 대해 정보를 나눈다. 선앤코의 창업자 존과 뉴욕에서 하베아로 삶의 공간을 바꾼 시에나가 디지털 노마드의 함께 살기에 대해 말했다.

SUN AND CO.
주소 Carrer Príncep d’Astúries, 40, 03730 Xàbia, Alacant, SPAIN
웹사이트 www.sun-and-co.com

선앤코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존 에두(Edu)와 나는 2015년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열린 스페인 코워킹(co-working) 컨퍼런스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나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공유 오피스를 운영하고 있었고 에두는 숙박과 여행업에 종사한 경력이 있어서 숙박업의 트렌드와 공유경제의 미래에 대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선앤코를 기획했다. 처음에는 잠재적으로 우리 공간에 올 만한 사람들의 니즈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의 코리빙×코워킹 서비스의 윤곽을 잡는 데 기여할 첫 게스트는 말할 수 없이 중요했다. 우리는 처음 선앤코를 찾은이들이 단순히 게스트가 아닌 선앤코의 일부가 되길 원했다. 초기 게스트 중 한 명인 페테르는 프로그래머이자 디지털 노마드로 지난 3년 동안 열 번이나 선앤코에 머물다 갔다. 여기에서 형성된 유대 관계는 게스트들이 떠난 후에도 공고히 이어지고 있다.

하베아라는 도시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존 하베아는 1년 내내 맑은 날이 이어지는 안락하면서도 젊은 분위기의 동네다. 하베아 시내에 있는 에두의 조부모님 집이 마침 비어 있어 타이밍이 좋았다. 19세기에 지은 역사가 오래된 이 집을 미래의 주거X사무 형태로 부상하고 있는 코리빙 코워킹의 허브로 쓴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다. 시에나 하베아의 일상은 단순하지만 단조롭지 않다. 대도시의 삶에서 잠시 멀어질 의향만 있다면 불필요한 선택지를 줄임으로써 현재에 충실하고 주변의 것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알찬 일과를 보낼 수 있다.

주거 공유 트렌드는 스페인에서 얼마나 알려져 있나? 시에나 아직까지는 생소한 컨셉트다. 하지만 근무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업무 형태는 유럽과 미국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기 때문에, 스페인 회사들도 점차 그 흐름을 인식하고 있는 상황이다. 선앤코는 스페인에서는 아직 낯선 코리빙과 코워킹 라이프스타일을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선앤코에는 이제까지 몇 명이 머물다 갔나? 존 40개국에서 온 5백 명 넘는 사람들이 이용했다.

선앤코에서는 어떤 사교 활동과 여가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나? 시에나 매주 정기적으로 여러 단체에서 활동하는데 친목을 위한 활동도 있지만 커리어 계발에 도움이 될 전문 지식이나 트렌드 공유도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다만 스케줄은 하루에 두 가지 정도로 제한해 거주자들의 업무 생산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여가 시간을 충분히 즐길 수 있게 한다. 해안가 하이킹이나 패들보딩, 타파스 맛집 탐방 등은 언제나 인기가 좋다. 또 공동 주방에서 요리를 많이 해 먹는데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공유할 수 있어 좋다. 커뮤니티 룸에서는 삼삼오오 모여 가벼운 수다부터 진중한 대화까지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항상 볼 수 있다. 이런저런 사람들과 한 지붕 아래 함께 살면서 일하는 것은 특별히 계획하지 않아도 언제든 사적으로나 업무적으로 미처 생각지 못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선앤코는 다른 셰어하우스와 비교했을 때, 공동체 생활의 장점에 더해 실제적인 커리어 계발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금 다른것 같다. 주기적으로 마스터 마인드와 스킬 셰어 세션을 연다는 점이 그렇다. 선앤코가 생각하는 거주자들을 위한 주된 목표는 무엇인가? 시에나 우리의 모토는 ‘현명하게 일하고 더 나은 삶을 살자’다. 그러므로 선앤코의 주된 목표는 공동 거주자들이 이러한 목표를 이룰 수 있게 돕는 것이다. 거주자들은 마스터 마인드와 스킬 셰어 세션을 통해 각자의 전문 지식을 공유하며, 새로운 기술과 지식, 인맥을 갖고 선앤코를 떠나게 된다. 우리는 원격 근무를 하는 거주자들이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할 뿐 아니라, 서로 다른 분야일지언정 비슷한 형태로 일하는 타인과 교류하며 새로운 형태의 삶을 경험하기를 바란다. 다양한 전문 지식을 공유하는 동안 선앤코 커뮤니티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친구이자 고객, 사업 파트너로서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된다.

마스터 마인드와 스킬 셰어 세션에 대해 좀 더 설명해줄 수 없나. 시에나 선앤코에서는 매주 초 패밀리 미팅을 연다. 반상회 같은 건데, 새로운 멤버를 소개하고 커뮤니티의 현안을 업데이트하는 동시에 서로 어떤 스킬이나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지, 특별히 배우고자 하는 분야가 있는지 의견을 나눈다. 콜라보레이션은 선앤코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누가 거주하고 있느냐에 따라 주제는 매우 다양하다. 모두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의 전문 지식을 기꺼이 공유한다. 스킬 셰어에서는 SNS 마케팅, 부동산 투자와 같은 실용 지식부터 미니멀리즘, 자각몽에 이르기까지 어떤 종류의 기술이나 지적 관심사도 제한 없이 다룰 수 있다. 한편 마스터 마인드에서는 구성원들이 모여 사업을 구상하거나 자원 활동을 모의하고, 커리어를 전환하는 방법을 함께 고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말하자면 도전과 극복이 필요한 모든 과제가 대상이다. 패밀리 미팅에서 그 주의 활동 주제가 정해지면, 그에 맞게 리더를 뽑아 모임을 주도하게 한다.

커뮤니티 구성원들의 국적을 주로 어떤가? 존 독일, 네덜란드, 영국 혹은 북유럽 나라와 미국에서 많이 오는 편이다.

선앤코에서 지냈던 구성원을 소개해주기 바란다. 존 첫 게스트였던 페테르는 덴마크 사람인데 지난 3년간 열 번이나 방문할 정도로 선앤코를 자신의 또 다른 집으로 여긴다. 독일에서 온 토비아스는 지난 2월 3개월 일정으로 이곳에 왔는데, 넉 달째 살고 있다. 기업 웹사이트 구축을 주로 하는 그의 직업은 이곳과 안성맞춤이다. 이 밖에도 검색 엔진 덕덕고(DuckDuckGo)를 위해 일하는 알리는 3년째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살고 있는데, 선앤코는 그녀의 스페인 거처라 할 수 있다.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다. 런던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프랑스인 일러스트레이터인 로랑도 지중해의 영감이 필요할 때면 이곳을 찾는다. 한 번 올 때마다 몇 주씩 머물며 다른 거주자에게 새로운 스킬을 배우고 개인 작업에 집중하는 동시에 번잡한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이곳에서 지내는 사람들은 직업적 배경이나 전문 분야, 나이, 관심사가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서로 비슷한 삶의 가치를 추구하고, 그래서 많은 영감을 주고받는 것 같다.

선앤코에는 현재 몇 명이 거주하고 있나? 존 현재는 16명이 살고있다. 최대 스무 명까지 지낼 수 있는데 보통 지금 정도의 구성원 수가최적의 밸런스를 보여주는 것 같다. 한 집에서 서로 교류하면서도 너무 복잡하거나 시끌시끌하지 않아 적당하다.

원격 근무를 하는 디지털 노마드 이외에, 어떤 이들에게 선앤코를 추천하고 싶은가? 시에나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거주지에 구애받지않는 라이프스타일을 시도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환영한다. 여기서 머무는 이들 중에는 단순히 코리빙을 경험해보고 싶어서 찾아온 사람들도 있다. 한편으로는 꼭 유랑이 목적인 아니라, 다른 이들과 생활하며 신선한 영감과 활력을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공간을 원해 방문하는 사람도 많다. 이들에게 선앤코는 단순한 별장이나 휴가지가 아니라 제2의 집인 셈이다.

커뮤니티를 이끌면서 가장 의미 있었던 순간은 언제였나? 존 1년전이었다. 선앤코에 머물던 커플이 있었는데 어느 날 저녁 다 함께 식사 자리에서 다음 날 결혼을 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집에는 온 지 일주일도 안 된 사람도 있었고, 나를 포함해 이들을 잘 아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모두가 합심해서 결혼식을 준비했다. 24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에 그렇게 아름다운 결혼식을 준비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구성원들이 서로 아낌없이 베푸는 이타적인 면모를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일구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선앤코가 추구하는 코리빙×코워킹 라이프스타일은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존 선앤코를 운영하면서 나는 열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구성원들이 서로 돕고 가르치며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만으로도 느끼는 것이 많다. 대가 없이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사람들의 선한 면을 볼 수 있어 기쁘다. 시에나 코리빙은 내게 인생에 대해 아주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뉴욕에서 온 나는 때로는 느리게 사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또 일에만 매달리지 않고 한발 물러서 새로운 경험과 교류에 초점을 맞출 때 삶이 풍성해질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셰어하우스 이야기_코펜하겐편

청년들을 위한 집
CPH VILLAGE

도시에 사는 청년들이 비싼 집값 때문에 집을 구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건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거주 문제로 고민하던 프레데리크 부스크와 미샤엘 플레스네르는 경제력이 없는 학생들에게 가혹하기만 한 집값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컨테이너 마을을 만들기로 했다. 그들의 기발한 발상으로 낙후한 항만 지역에 방치된 차가운 컨테이너는 온기가 도는 집이 되었다. 바로 CPH 빌리지(CPH Village)다. 이곳의 입주자들은 컨테이너를 재활용해 만든 집에서 독립된 각자의 방과 부엌을 가지고 있고, 욕실은 다른 한 사람과 같이 쓴다. 빌리지 안에는 커뮤니티 하우스를 비롯해 다른 입주자와 교류할 수 있는 카페나 텃밭 같은 여러 공간이 있다. 이곳은 말하자면 레고 블록 같은 곳이다. 컨테이너로 지은 집은 변형과 재배치가 손쉽고 이동이 편리해 필요하면 언제든지 쓰임새를 바꿀 수 있다. 넓은 공간이 필요하면 컨테이너를 여러 개 이으면 되고, 그 공간이 필요 없어지면 해체하면 그만이다. “컨테이너로 만든 집은 그대로지만, 10~15년이 지난 후 이 집은 사람이 살지 않는 다른 지역으로 옮겨질 거예요.”(프레데리크)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올라간 집값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지은 CPH 빌리지는 입주에 나이 제한을 두지는 않지만 공부하는 학생만 받는다. “CPH 빌리지를 세 단어로 표현한다면 공간, 커뮤니티, 편의성이에요. 사적인 공간을 줄이는 대신 공유 공간을 늘렸죠. 이곳에는 다양한 커뮤니티가 존재하고 입주자들은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커뮤니티에 언제든지 합류할 수 있어요. 콘서트를 비롯한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죠. 전 숫자의 힘을 믿어요. 한 명이 해내는 일보다 더 많은 사람이 함께할 때 얻는 것이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프레데리크) CPH 빌리지는 2020년까지 2천 명의 학생들을 위한 8개의 마을을 짓는 것이 목표다. 덴마크에는 2만5천 명의 학생이 있지만 스웨덴에는 30만 명의 학생들이 주거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CPH 빌리지는 코펜하겐뿐아니라 다른 나라의 도시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CPH VILLAGE
주소 Refshalevej 161f, 1432 København, Denmark
웹사이트 www.cphvillage.com

CPH 빌리지에 거주한 지 얼마나 됐나? 안네-마리에 학교에 다니면서 본의 아니게 이사를 여러 번 했다. 그럴수록 나만의 공간이 절실했다. 나만의 부엌, 내 방, 내 취향으로 채운 공간. 하지만 학생이 이 도시에서 그런 집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또 하나, 다른 학생들과 함께 할 큰 커뮤니티가 필요했다. CPH 빌리지에 관한 기사를 처음 읽었을 때 낡은 컨테이너를 학생들을 위한 집으로 바꿨다는 내용을 봤다. 일반적이지 않은 다른 무언가를 하고 싶던 나는 항만에 있는 컨테이너에 살아보고 싶었다. 도시의 학생이 살 수 있는 새로운 주거 형태가 아닌가! 나는 CPH 빌리지에 처음 입주한 학생 16명 중 하나다. 지금까지 이 마을이 커가는 것을 여행하는 기분으로 지켜보고 있다. 트롤레스 지난해 6월부터 이곳에서 살았다. 원래는 5월에 이사 오려고 했는데, 내 방에 있는 가구를 모두 직접 만드느라 시간이 좀 더 걸렸다. 컨테이너로 집을 만들었다는 점이 무척 신선해 이곳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게다가 내가살던 낡은 집보다 집값도 저렴하고 시끄러운 길가에 있지도 않다. 처음에는 공간이 생각보다 작아 놀랐지만, 문득 내가 지나치게 많은 물건을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살기 위해 짐을 많이 줄였다.

CPH 빌리지에 사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은 각각 무엇인가? 안네-마리에 이곳에 살아서 가장 좋은 점은 커뮤니티다. CPH 빌리지에 사는 우리는 모두 학생이지만 나이와 전공, 태어난 곳이 제각각 다르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학생들끼리 서로 고민을 나누고 힘이 되어준다. 또 다른 좋은 점은 주변 환경이다. 도시지만 항만 가까이에 있어 물과 자연이 지척에 있다. 크고 오래된 배도 있다. 분명 도시에 살고 있지만 이곳은 매우 조용하고 평화롭다. 나쁜 점을 굳이 꼽자면 창의적인 소셜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곳에 사는 즐거움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 이 마을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CPH 빌리지에 사는 또 다른 즐거움은 내 가구와 물건을 11㎡ 크기의 방에 마음껏 배치하며 인테리어를 꾸밀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 작은 공간을 안락하게 꾸미려면 미니멀리스트가 돼야 한다. 트롤레스 특히 좋은 점은 마을에 함께 사는 사람들과 위치다. 이렇게 멋진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있다는 건 아주 멋진 일이다. 집에 돌아와 그들과 CPH 빌리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것도 좋아한다. 집을 나서 10m만 걸으면 코펜하겐 운하가 나오는데, 여름이면 주저하지 않고 물속에 뛰어들어 수영을 즐긴다. 이곳의 단점이라면 이웃집의 생활 소음. 컨테이너는 아파트나 주택에 비해 이웃집의 소리가 잘 들린다.

평일과 주말의 일과가 궁금하다. 안네-마리에 평일에는 긴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거리를 걷다 보면 많은 이웃을 만나게 된다. 친구들을 만나면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때론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볕이 좋은 주말에는 종종 낮에는 항구에 가서 수영을 하고 밤에는 여럿이 모여 캠프파이어를 한다. 나는 CPH 빌리지에서 크고 작은 파티를 주관한다. 매달 파티를 기획하는데 바를 만들기도 하고 신나는 음악을 틀기도 한다. 트롤레스 평일은 아주 단순하게 보낸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오트밀 위에 과일을 얹어 식물성 우유를 부어 먹는다. 나는 비건이다. 그다음 머리 빗고 양치한 다음 도시락을 챙겨 자전거를 타고 16km 떨어진 통나무집 디자인 작업실로 간다. 7시간 정도 일한 다음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에 돌아와 이웃 사람들과 돌아다니거나 책을 보고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주말에는 대부분 잠을 자며 보낸다. 실컷 자고 일어나 향이 좋은 커피 한 잔과 팬케이크를 아침으로 먹고, 친구를 만나거나 세탁 같은 밀린 집안일을 한다.

CPH 빌리지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안네-마리에 부두의 끝.그곳에 서 있으면 오페라하우스를 비롯한 큰 건물들이 보인다. 그곳에 앉아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일몰을 보기도 하고 맥주를 마시며 밤 을 보내기도 한다. 밤에도 도시의 불빛 때문에 깜깜하지 않다. 내 방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침대. 침대에 앉으면 집 근처 나무들이 보이고 내가 코펜하겐 한가운데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하늘이 보인다. 트롤레스 CPH 빌리지는 항만에 있어 물과 가깝다. 항만 근처에 한적한 벙커가 있는데 그곳에 가는 걸 좋아한다. 자그마한 내 방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은 내 커다란 침대다.

이 마을 사람들이 새로운 가족처럼 느껴질 것 같다. 가족의 의미는 뭘까? 안네-마리에 나는 이곳에서 가족을 찾았다. 우리는 서로 돌보고 돕는다. 드라이버 같은 작은 장비가 없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웃에 사는 친구가 금세 빌려준다. 사소한 물건뿐 아니라 따듯한 위안이 곳곳에 있다. 한 번 크게 안아주면 필요한 모든 것을 내어준다. 마치 의좋은형제처럼. 트롤레스 CPH 빌리지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과는 이웃과 발코니에 앉아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가족을 내가 선택할 수 없듯, 이곳에서 만나는 이웃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빌리지의 규모가 꽤 커서 내가 모르는 이웃도 많다. 가족은 무어라 정의하기 힘든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