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개척자

사진작가 김옥선의 전시 <베를린 초상(Berlin Portraits)>이 열리는 아뜰리에 에르메스에 들어 서면 비슷한 구도의 커다란 인물 사진이 줄을 맞춰 걸려 있다. 사진 속 재독 한인 간호 여성들은 1960년대에 베를린으로 이주해 새로운 삶을 만들어갔다. ‘주변과 이방’이라는 주제에 천착해온 작가는 이번엔 베를린에 사는 한인 간호사들의 집을 찾아갔다. 작가에게 선뜻 문을 열어준 그들은 마음의 문도 함께 열었다. 작가 역시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마음의 문이 열렸다. 어떤 이는 간호사로 일하며 모은 사업 자금을 들고 사라진 남편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다른 이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남편의 손길이 구석구석 닿은 집을 따듯한 말로 안내했다. 슬픔을 강인함 뒤로 밀어놓고 낯선 곳에서 용기 있게 자신의 삶을 만들어온 이들의 사진을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텍스트가 아닌 실재가 전하는 이야기와 그로 인한 마음의 움직임이 읽힌다.

전시의 시작점은 언제인가? 2017년에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국경을 넘어 경계를 넘어>라는 전시를 했다. 재독 간호사들이 독일에 가기 시작한 시점이 1966년이니, 50주년을 기념한 전시였다. 처음 독일에 갈 때는 3년 계약직의 이주노동자 신분이었고, 후에 강제 귀국 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은 명령에 굴하지 않고 자신들이 원할 때 돌아가겠다며 체류 연장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했다. 당시 재독 간호사에 대한 독일 내 여론이 좋았던 터라 사람들이 선뜻 서명에 참여해 체류 연장 허가를 받았다. 자신들이 원하는 때에 한국에 돌아갈 수 있도록 비자 기간이 연장된 것이다. 이는 세계 이주 노동사의 관점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쟁취다. 현재 베를린에 베를린 재독 여성 모임이 있는데 주축이 간호사들이다. <국경을 넘어 경계를 넘어>는 베를린에 거주하는 한국 작가와 간호사들이 뜻을 모아 자신들의 역사를 보여주는 유물을 전시했고, 베를린에 거주하는 간호사 세 분이 강연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많은 한인 간호사가 여전히 베를린에 거주한다는 얘기를 듣고 ‘내가 작업해야 할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연 때 만난 간호사들에게 작업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는데, 흔쾌히 자신들이 섭외를 도울 테니 베를린에 와서 해보라고 하셨다. 그로부터 두 달 후 장비를 챙겨 베를린으로 떠났다. 당시 한 달 정도 베를린에 머물며 촬영했는데, 한 번에 끝내지 않고 이듬해에 한 번 더 촬영했다.

우리나라의 1960년대는 국민들의 인권이 존중받지 못하던 시기다. 여성 인권 수준은 더 낮았을 텐데 선택당하는 삶이 아니라 선택하는 삶을 살았다는 점이 큰 울림을 주는 것 같다. 그렇다. 보통 ‘파독 간호사’라는 용어를 쓰는데 이들은 이 표현을 거부한다. 누군가 보내서 간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해서 떠났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루트를 만들어줬을 뿐이고 경비를 비롯한 모든 것을 개인이 준비해서 독일로 갔다. 그래서 파독이 아닌 재독 간호사라 부른다. ‘파독’이라는 말에는 가족을 위한 희생, 외화를 버는 애국, 이런 이미지가 있지만, 실제 재독 간호사 여성들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이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 선택 덕분에 지금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맞다. 파독 간호사란 용어를 들었을 때는 이분들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연민으로 시작됐다. 그런데 막상 내용을 들여다보면 개척자의 삶이다. 그렇다. 인권에 일찍 눈을 뜨고 투쟁하며 만들어간 삶이다. 같은 여성으로서 존경스럽다.

모든 촬영이 아주 사적인 영역인 집에서 이루어졌다. 인물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정서적으로 피사체와 가까워져야 하는 만큼 시간이 필요했을 것 같다. 나로서는 독특한 경험이었다. 재독 간호사들이 연세도 많고 살아온 세월 동안 경험한 일도 다채롭다. 지금까지 이방인을 주제로 외국인과 작업을 많이 했는데 그때와는 다른 속도로 가까워졌다. 바로 훅 들어온다고 할까? 내가 이런 작업을 위해 베를린에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반겼고 작업 의도를 잘 이해하셨다. 스스럼없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며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하셨다. 거리감을 느낄 새도 없이 만나자마자 가까워지고 공감했으며 그들의 삶에 내가 쑥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집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마음의 문이 열렸다.

재독 간호사 중에는 독일인과 결혼한 여성이 많으니 개인적인 상황이 비슷해 더 쉽게 교감할 수 있었을 것 같다. 나 역시 국제결혼을 했고 재독 간호사 중 많은 분이 독일인과 결혼했다. 나는 결혼 후 1년 정도 서울에서 살다가 남편이 복잡한 도시를 떠나 자연이 가까운 곳에 살고 싶어 해서 제주로 이주했다. 제주가 고향도 아니고 아는 사람도 없어서 처음에는 내가 마치 이방인처럼 느껴진 시간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국내에 거주하는 보통의 여성이 외국인과 결혼하면 외국에 나가 살라며 등을 떠밀던 때다. 한국인 남편을 둔 외국인 여성에게는 비자를 발급해줬지만 외국인 남성과 결혼한 한국인 여성에게는 비자를 발급해주지 않았다. 그런 현실이 부당하다는 생각에 제주에 사는 국제결혼한 부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국제결혼 한 부부를 주인공으로 한 포트레이트인 <해피 투게더> 작업을 하게 됐다. 그 작업을 통해 국제결혼 한 부부를 대하는 법률이 얼마나 부당한지 시각적으로 알리고 싶었다. <베를린 초상>을 작업하면서 내 미래의 모습이 재독 간호사의 현재 모습과 비슷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그들이 겪은 세월이 더 궁금했고 들여다보고 싶었다. 이토록 의연하게 지나온 굴곡 많은 생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분들도 있는데, 난 너무 엄살을 부리며 살지 않았나 하는 반성도 들었다.

이주민을 보는 시선은 여전히 보수적이고 편견이 가득하다. 베를린에서 작업하던 2017년 당시 제주에 많은 난민이 들어왔다. 베를린의 간호사들은 이 뉴스를 접하고 자신들도 난민이자 이주민이었고 독일이 받아준 덕에 이렇게 자리 잡고 살고 있으니 우리 역시 난민을 내쫓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1초도 주저하지 않고 그렇게 말씀하셨다.

재독 간호사들에게서 어떤 표정과 포즈를 이끌어내고 싶었나? 인물에 많이 개입하고 싶지 않았고, 연출로 상대방을 장악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개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들의 삶을 그대로 담아내고 싶었다. 이번 작업에서는 그게 내 역할이었다.그분들이 내가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에 개의치 않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를 바랐다. 사진 속 인물들의 표정을 보면 크게 웃고 있지 않다. 우리가 혼자 있을 때 크게 웃는 경우는 별로 없다. 정면을 바라보라는 정도만 요구했고, 의자에 편히 앉아 이야기하다가 찍거나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리는 정도만 연출했다. 그렇게 자신의 공간에 자연스럽게 있는 순간을 담았다.

사진에 인물의 이름이나 나이 같은 신상이 전혀 적혀있지 않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개개인을 부각하기보다는 독일에 계신 간호사 모두에게 주목하고 싶었다. 한 개인의 삶에 있는 모든 서사에 경의를 표하지만, 전시는 이들의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는 과정과 성취를 담고자 했다. 전시된 사진은 언뜻 보기에는 거의 비슷한 이미지가 반복된다. 반복을 통해 관람객이 사진 속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지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고, 자연스레 사진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를 스스로 깨닫게 되는 거다. 각자 사진을 보며 대상의 서사를 완성해가길 바란다.

사진은 어떤 장점과 기능을 가진 예술의 매개체라고 생각하나? 사진은 기계가 찍는다. 나와 사물 혹은 인물 사이에 기계가 있기 때문에 사진 속 대상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실재하는 것을 포착하는 것은 실존하는 것을 보여주는 힘을 지니고 객관성을 지닌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진이란 과장되거나 주관적이지 않으며 뭔가를 강요하지 않는 거다. 실재를 보여주는 사진이 좋다. 작업의 주제를 정하고 접근하는 방식은 주관적이지만 카메라는 결국 대상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둔다. 그 정도의 거리감이 곧 객관성인 것 같다. 이번 전시 <베를린 초상>도 드라마틱한 느낌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사진에 가치 판단을 포함하지 않고 관람객에게 생각할 여지를 주는 것이다.

<해피 투게더>나 <베를린 초상> 등 작품을 기획할 때 주로 어떤 대상에 마음이 움직였나? 나는 국제결혼을 한 부부, 여성, 이방인, 난민을 주제로 주로 작업해왔다. 이번 전시작을 포함해 최근 작업은 비슷한 이미지가 반복되고 일렬로 병치되도록 해사람들이 사진 속 대상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했다.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을 내 감정을 이입하지 않고 중립적으로 보여주며 사진이라는 매체의 장점을 부각하고자 했다.

작가로서 이방인으로부터 어떤 메시지를 읽어내는지 궁금하다. 이방인에게 관심을 가진 건 나와 조금 다르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제주에는 남편처럼 외국인이 꽤 많이산다. 남편은 제주도에서 교직에 종사했었는데, 어느 날 그일이 하기 싫다며 다이빙 숍을 운영하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배를 만들기 시작했다. 배를 만드는 이유를 물었더니 세계 일주를 하겠다더라. 그렇게 혼자 책을 보며 1, 2년 공부하더니 배를 만들기 위한 자재를 구하기 시작했다. 철판을 알아보다 크기가 맞지 않아 외국에서 수입하는 합판을 구해 4년 동안 배를 만들었다. 시간 날 때마다 대패질을 해가며. 우리는 보통 50세가 넘으면 노후를 준비하지 않나. 안정적인 삶을 지향하고. 그런데 남편이 꿈꾸는 것은 자신이 만든 배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하는 것이었다. 그 배가 과연 뜰까 싶었다. 남편뿐 아니라 제주에 사는 외국인 중에는 직업은 돈을 버는 수단이고, 자신이 이루고 싶은 꿈은 따로 있는 사람이 많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돈을 버는 거지. 삶을 보는 포커스가 달랐다. 그들을 보며 내가 살아온 방식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나는 이방인들에게서 어딘가에 정착해 집을 마련하고 평생 그곳에서 살아야겠다는 마음보다 원할 때 어디로든 이주할 용기를 보았다. <함일의 배>나 <노 디렉션 홈> 같은 작업에서 나와 다른 삶의 가치관을 가지고 자유롭게 사는 이방인들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그래서 그 배는 어떻게 되었나? 배는 떴다. 만들기 시작한 지 4년 만에 진수했다. 인생 작업이었지. 그런데 독일 국적으로 등록됐다. 외국 국적의 배가 바다를 통해 들어온게 아니라 제주의 바다에서 만들어졌으니 지금껏 없던 사례였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 요트 문화가 거의 없어 요트로 등록하는 게 꽤 복잡했고 6개월이나 걸렸다. 그런데 그 와중에 태풍이 왔다. 태풍에 배가 날아가서 등대에 맞고 깨졌다. 그야말로 인생 드라마 아닌가! 이 일련의 과정을 배의 이름이기도 한 <카벵가>라는 영상 작업으로 남겼다. 한 번 사는 인생, 극한까지 해본다는 남편의 태도가 부럽기도 했다.

 

미니멀리스트의 집 ②

MINIMAL LIFE

애착이 없는 것부터 버리기.
무료 샘플이나 사은품을 무턱대고 받아 오지 말 것.
환경을 위해 소창 행주, 천연 수세미, 천연 세제, 스테인리스 스틸 빨대 사용하기.
식탁, 싱크대 위 등 표면부터 정리하기.
묶음 상품 지양.

조금씩 비우기

수년 전만 해도 양수나는 예쁜 물건을 보면 사야 직성이 풀렸다. 그만큼 충동구매도 잦았다. 가족 구성원 중 유일한 맥시멀리스트였던 그녀는 현재 미니멀 라이프 1년 차다. 옷장에 꽉 찬 옷들을 보며 여느때처럼 ‘입을 옷이 없다’고 고민하던 그녀에게안 입는 옷을 정리하는게 어떻겠느냐는 남편의 한마디가 그날 따라 가슴에 와 닿았다. 곧장 옷 정리를 시작했다. 즐겨 입는 옷만 남겨 여유 공간이 넉넉히 생긴 옷장을 보는 기분은 기대 이상으로 후련했다. 옷장처럼 다른 공간들도 비우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그때부터 관련 서적을 읽으며 본격적인 미니멀 라이프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막연히 비우는 것이 미니멀 라이프라고 생각했어요. 물건이 적어야 미니멀 라이프에 적합하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비운다고 무조건 행복해질까’라고 자문해봤어요. 미니멀 라이프는 행복한 삶을 위한 수단일 뿐이잖아요. 다른 사람의 기준이 아니라 내게 맞는 기준을 정해 불필요한 것은 없애고 행복하게 생활하는 것이 미니멀 라이프라고 생각해요. 그래야 지치지 않고 즐겁게 실천해나갈 수 있어요.”

미니멀 라이프는 삶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다. 눈에 띄는 부분은 생활비가 크게 줄었다는 것. 식구가 넷이라 대형 마트에 가면 버릇처럼 필요 이상으로 식품을 구입해 냉장고를 꽉 채워놓곤 했다. 며칠 후 시들어버린 채소를 먹고 유통기한이 지난 식재료들을 버리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필요한 것을 메모해 그것만 구입하는 지금은 식비가 그때에 비해 3분의 1로 줄었다. 생활용품도 마찬가지. 쇼핑하는 순간이 행복해서 사서 쓰다가 금방 새로운 무언가를 찾는 생활에서 벗어난 지금은 가진 물건을 아껴서 사용하며 삶 자체를 더욱 소중하게 여기게 됐다. “냉장고에 보관만 하다가 버려지는 음식물이 없고 물건을 관리하느라 들이는 시간과 돈이 현저히 절약되고 있다는 걸 느낄 때마다 미니멀 라이프 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쉴 수 있는 여유 공간이 늘었고 물건 하나를 신중하게 구입해 오래 쓰니 환경에도 이롭죠.” 미니멀 라이프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양수나는 ‘미련이 없는 것부터 버릴 것’을 추천한다. “옷을 좋아하는 사람이 옷부터 버리려고 하면 힘들 거예요. 당장 정리해도 아쉽지 않은 공간이나 품목을 정해 하나씩 비워보세요. 눈에 띄는 공간의 위쪽부터 정리해보는 것도 좋겠네요. 책상이나 선반, 식탁, 싱크대 위 같은 곳을 정리하면 바로 깔끔해진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강력한 동기부여가 될 거예요.” 무료 샘플이나 사은품을 받을 때도 두 번 생각해볼 것을 권한다. “필요하지 않은데 그냥 주니까 가져오는 것들이 하나 둘 쌓이다 보면 집 한구석을 차지하는 고물이 되거든요. 대량 구매를 하지 않고 필요한 만큼만 물건을 구입하는 습관도 필요해요.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는 있어도 쓰다 보면 유효기간이 지나 결국 버리게 되더라고요.” 무작정 비우기보다 자신의 소비 패턴을 냉정하게 파악해 필요한 것만을 남기는 것. 물질만능주의 아래 누군가에겐 엄두도 낼 수 없는 도전이지만 한 번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정리해야 하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시간을 앞당길 기회이기도 하다.

셰어하우스 이야기_도쿄편

여행자를 기다리는 셰어하우스
LOCALIFE

도쿄의 셰어하우스 로컬라이프(LocaLife)는 입주자와 여행자가 함께 지내는 곳이다. 숙소를 무료로 제공하는 현지인과 여행자를 연결하는 여행자 네트워크인 카우치 서핑(www.couchsurfing.com)을 통해 여행자가 로컬라이프에 오게 되고 로컬라이프 입주자들이 호스트 역할을 한다. 입주자들이 게스트의 숙박 일정을 캘린더로 공유하는데 매달 다섯 팀 정도 머문다. 이 과정에서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고 관계를 맺으며 인생의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되는 곳. 컨셉트 셰어하우스의 기획과 운영을 맡는 회사인 콜리시(Colish)의 겐타로 대표는 단순히 거주를 목적으로 하는 집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인생관을 바꿀 기회를 주는 셰어하우스를 만들고 싶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면 삶이 더욱 풍족하고 즐거워진다는 것이 겐타로의 생각이다. “삶의 방식을 더 다양하게 만들고 싶었다. 일이나 학업은 어떻게 살고 싶으냐에 따라 선택하는데 집은 그렇지 않다. 보통 직장이나 학교에 맞춰 선택한다. 나는 집을 더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정 장소가 무의미한 공간이 될지, 무언가 탄생하는 의미 있는 공간이 될지는 생각의 주제에 따라 달라진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그 주제를 공유하며 보다 재미난 일을 벌이면 좋겠다. 그리고 로컬라이프가 그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겐타로) 로컬라이프에 새로운 입주자가 들어오면 ‘요로시쿠(잘 부탁해) 파티’를 연다. 새로 온 입주자가 자신을 프레젠테이션하는 자리인데, 이를 통해 서로 인생의 대해 알아가며 자연스레 가까워진다. 새 입주자가 하우스메이트들에게 밥을 지어 대접하는데 프레젠테이션의 형식은 정해져 있지 않다.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이 만든 유튜브 영상을 보여주기도 하며, 파워포인트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보여주기도 한다. 로컬라이프에서는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다른 문화와 생각을 공유하고 교류하며 새로운 선택을 위한 힘을 얻는다. 로컬라이프를 운영하는 겐타로와 입주자 메구미, 코타가 로컬라이프에서 사는 삶에 대해 들려주었다.

LOCALIFE
웹사이트 http://localife.strikingly.com/

로컬라이프는 다른 셰어하우스와 어떤 점에서 다른가? 겐타로 일본인뿐 아니라 일본을 찾은 여행자들이 함께 산다는 점이 다르다. 셰어하우스 내에는 거주자가 생활하는 개인 방과 게스트룸이 있는데, 게스트룸에는 카우치서핑이라는 인터넷 여행자 커뮤니티 웹사이트에서 신청한 여행자들이 무료로 숙박할 수 있다. 이때 거주자들이 여행자를 호스팅한다. 여행자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숙박 일정을 관리하는 방식이다. 로컬라이프는 최대 6명까지 거주할 수 있다. 지금은 스페인에서 온루이스, 오스트리아에서 온 율리안 그리고 이 자리에 동석한 메구미가 같이 살고 있다.

셰어하우스의 운영자는 어떤 역할을 하나? 겐타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사람을 뽑는 것이다. 입주 신청을 받으면 이곳을 함께 설립한 유타가 직접 인터뷰를 한다.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며 여러 질문을 주고받는다. 가끔 영어를 배우고 싶다는 이유로 오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목적을 가진 사람은 로컬라이프와 맞지 않는다. 이곳에서 영어는 소통 수단의 하나일 뿐이다.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교류하며 다양한 것을 배우는 과정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입주하길 바란다. 인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빼놓지 않고 하는 질문이 ‘당신을 표현하는 키워드 3개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여행에 대한 질문을 하며 이를 중심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로컬라이프는 셰어하우스를 열기 전에 입주자를 먼저 모았다. 로컬라이프가 채 완성되기 전에 입주를 결정한 사람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집을 고를 때 ‘어디에서 얼마에 살지’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로컬라이프는 ‘누구와 어떻게 살 것인가’가 선택의 기준이 되는 곳이다. 이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살기로 했다.

왜 로컬라이프를 선택했나? 메구미 도쿄에 있는 회사로 이직하며 셰어하우스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주말에 투어 가이드를 할 생각도 했는데, 여행자와 함께 사는 로컬라이프의 방식이 좋았다. 처음 이 집을 보러 왔을 때 하우스메이트 중 한 명이 배를 깎아 줬는데, 그 모습을 본 순간 이곳에 살고 싶어졌다.(웃음) 배가 아주 맛있었다. 일본인들을 대할 때 가끔 벽이 느껴지는데, 그 친구는 그 벽을 쉽게 넘어오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이곳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인가? 메구미 거실. 거실에서 하우스메이트들과 함께 있으면 서로 대화를 할 때도 있고 대화가 전혀 없을 때도 있다. 자유롭다. 나고야에서도 셰어하우스에 산 적 있는데, 그곳 거실이 각자 시간을 보내고 장소만 공유하는 느낌이었다면 이곳은 같이 사는 기분이 든다. 아주 편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겐타로 거실은 가구까지 신경 쓴 공간이다. 거실이 교류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이닝 공간을 만들지 않았다. 마주 보고 앉을 때 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50cm 정도 된다. 이보다 더 가까우면 피로감이 들고 오래 앉아 있지 못했을 것이다. 로컬라이프의 로고도 거실 공간의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거실은 이곳에서 가장 상징적인 공간이다. 테이블도 사람들이 앉는 자리가 어느 한쪽에 몰리지 않도록 정사각형으로 만들었다.

셰어하우스에서 사는 즐거움은 뭘까? 메구미 집에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기분이다. 누군가 내가 돌아오기를 고대하는 느낌.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어서 와”라고 말을 건네는 사람들이 늘 있다. 로컬라이프 입주자들은 이상하게 비슷하다. 코타 ‘다녀올게’, ‘어서 와’라는 말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좋다. 물론 불편한 점도 있다. 냉장고가 너무 작다는 점? 냉장고 관리가 잘되지 않아 가끔 냉장고에서 형체가 변한 음식물이 나오기도 한다.(웃음) 그래도 그렇게 더러워진 냉장고를 다 같이 청소하는 일도 즐겁다. 장소만 공유했다면 서로 다른 점이나 불편한 점이 스트레스로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에는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고 사소한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끼리 느끼는 감성이 있다. 그리고 여행자들이 드나들기 때문에 늘 신선한 바람이 부는 기분이다. 늘 같은 사람만 만나면 대화 내용도 천편일률적일 텐데 여행자들이 머물면 화제가 보다 풍부하다.

로컬라이프에서 보내는 평일과 주말의 일과가 궁금하다. 메구미 오후 8시쯤 돌아와 밥을 먹는다. 10시까지 거실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하우스메이트들과 목욕탕에 가기도 한다. 보통 밤 12시쯤 잔다. 토요일이나 공휴일에는 쓰키지 시장에 가서 투어 가이드를 한다. 오후에 돌아오면 피곤해서 거실 소파에 누워 낮잠을 잔다. 나는 5년 전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외국인 친구가 일본에 와서 이곳저곳 안내해줬는데 무척 즐거웠다. 그래서 주말에 투어 가이드를 하게 됐다.

자신의 방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물건은 뭔가? 메구미 기모노, 포르투갈 관련 책, 안경. 기모노는 이곳에 이사 온 후부터 모으고 있다. 나고야에 살 때 친구 어머니가 가끔씩 입혀주셨고 단골 바에서 기모노 를 입고 술을 즐기는 이벤트가 있어서 좋아하게 됐다. 도쿄에 이사 온 후 내가 산 기모노를 입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쓰키지 시장에 갈 때 기모노를 입으면 여행자들이 좋아한다.

이곳에 살며 배운 것이 있다면? 메구미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이토록 좋은 관계를 맺게 될 줄 몰랐다. 함께 사는 사람 모두 내게 하우스메이트 이상의 의미를 지닌 존재다. 함께 살기 전에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부분이다. 겐타로 이곳에 살며 결혼이나 동거로 이어진 커플이 꽤 많다. 아마도 로컬라이프가 인생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집이란 어떤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겐타로 로컬라이프가 이상적인 집의 형태라고 생각한다. 한 공간에 함께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들이 모여 있고, 그들 모두 내게 없는 세상을 가지고 있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산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언젠가 내 아이가 생긴다면 세계의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살면 좋겠다. 메구미 내게 집은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고, 나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곳이다. 전에 살았던 나고야의 셰어하우스는 특별히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었다. 공간을 공유하지만 독립적이었고 행동도 자유로웠다. 대신 서로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이곳은 내가 집에 오기를 기다려주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더 ‘집’처럼 느껴진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홈과 하우스의 차이가 아닐까. 나는 홈에 살고 싶다. 겐타로 깊이 공감 가는 말이다. 나도 홈을 만들고 싶었다. 나중에 인생을 돌이켜봤을 때 ‘이곳에 살아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으면 한다. 각자 이곳에서 인생에서 중요한 무언가를 얻으면 좋겠다. 하버드 대학에서 ‘행복의 조건’을 연구한 리포트를 좋아한다. 75년 넘게 지속된, ‘무엇이 우리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드는가’를 주제로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연구다. 연구의 결론은 ‘좋은 관계가 우리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든다’는 거다. 친구가 얼마나 많은가, 결혼했는가가 아니라 타인과 얼마나 깊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지가 중요하다. 이곳 로컬라이프가 사람들에게 그런 관계를 만들어주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