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섹스

‘쏘 쿨’한 섹스

7, 8월이 언제부터 이렇게 고통스러웠을까. 공기를 쥐어짜면 물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은 극한의 습도 속에서 이웃집 뒤뜰에 파인애플과 바나나가 자라기 시작했다는 인터넷 뉴스를 접하고, 35℃ 정도는 따뜻한 거라고 정신 승리를 외치게 되는, 이 세상 더위가 아닌 듯한 한국의 여름. 그래도 나는 이런 혹독한 여름의 섹스를 사계절 중 가장 좋아한다. 땀 범벅의 엉망진창 섹스를 말하는 건 아니다. 그런 가학적 취미는 없다. 연중 가장 더운 때 제일 쿨한 섹스를 즐길 수 있는 아이러니의 일등 공신은 에어컨이다. 선풍기 바람처럼 요란스럽지 않고 천장에서 솔솔 불어오는 에어컨의 순풍은 혼을 빼놓는 섹스도 땀나는 수고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게 한다. 비록 실내 온도가 같아도 한여름 에어컨을 튼 공간의 서늘함은 가을이나 겨울과는 다르다. 포근하지만 격한 피스톤 운동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두툼한 차렵이불이나 영 분위기를 깨는 수면 양말도, 세탁하기 골치 아파 뭐가 묻을까 봐 자꾸 신경 쓰이는 오리털 토퍼도 없다. 인견 이불의 적당히 빳빳한 감촉과 사각거리는 소리, 내 몸에 포개진 그의 따끈한 체온, 그에 대비되어 나를 애무하던 그가 핥은 곳에 에어컨 바람이 슬쩍 지나갈 때 오소소 돋는 닭살의 느낌까지 여름밤의 홈 섹스는 생각지 못한 오감을 일깨운다. 다만 침대까지 갈 새 없이 거실의 라탄 러그 위에서 일을 치르려고 한 건 실수였다. 아무리 급해도 등나무 껍질에 엉덩이를 비비는 일은 없어야 한다. I_ 프리랜서, 31세

바닷가 랩소디

여름이 다가오고 기온이 올라갈수록 성욕은 그에 반비례한다고 하는데, 나는 조금 다르다. 햇볕 아래서 몸속에 비타민 D와 세로토닌을 흠뻑 충전하며 활기를 되찾는 여름의 나는, 살을 에는 추위에 존재 자체가 쪼그라드는 것 같은 겨울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남자친구도 비슷한 성향이라 마찬가지다. 그런 우리가 꼽는 여름 섹스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휴가지 섹스. 발갛게 익기 시작한 나의 맨살은 창백했던 지난겨울의 흔적을 없애주는 선탠 로션의 도움을 받아 반질한 윤기를 띠고, 선베드에 누운 나를 바라보는 남자친구의 노골적인 눈길은 불볕더위만큼이나 활활 타오른다. 나 또한 평소라면 절대 입지 않을 짧은 수영복 아래 드러나는 그의 허벅지, 모래가 점점이 달라붙은 그을린 어깨, 흠뻑 젖어 한껏 달라붙은 수영복 위로 슬며시 드러나는 페니스의 윤곽 등, 여름 필터를 씌운 남자친구의 비주얼을 찬양해 마지않는다. 그렇게 마음속에 불길을 머금은 채 바닷가에서 한나절을 보내고 숙소로 돌아올 무렵이면 그도 나도 만반의 준비가돼 있다. 그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그를 살짝 핥아본다. 가끔 잠자리에서 우연찮게(내 의지와 상관없이) 맛보는 땀의 텁텁한 짠맛과 달리, 그의 가슴팍에서 증발하고 남은 바닷물의 소금기에는 혀끝으로 느껴지는 낭만이 있다. 창을 통해 흘러 들어오는 잔잔한 파도 소리에 맞추어 절정에 이르는 동안 생각한다. 섹스가 매일 이랬으면 좋겠다고. O_ 직장인, 29세

여름 원피스계의 다크호스

지난 연애사를 돌아볼 때 여름에 만나던 남자들이 한결같이 격하게 반응하는 내 옷차림이 하나 있다. 선 드레스다. 하늘거리는 얇은 소재라 상체는 적당히 붙고, 허리부터 넓게 퍼지는 간편한 휴양지용 플리츠 원피스. 사실 내가 입는 선 드레스는 핫팬츠처럼 짧지도, 캐미솔처럼 민소매 끈이 가늘거나 노출이 적나라하지도 않다. 그런데도 기억에 남을 짜릿한 여름밤을 꼽으라면 열에 아홉은 이 선 드레스를 입었을 때라고 말할 수 있다. 남자들이 말하는 섹스어필 포인트는 이렇다. 가슴과 쇄골을 따라 흐르는 드레스의 실루엣과 바람이라도 불면 치맛단이 찰랑이며 은근하게 드러나는 엉덩이와 허벅지의 곡선. 그게 짧고 타이트한 옷보다도 훨씬 관능적이란다. 선 드레스를 입은 날엔 데이트를 할 때 그의 손길이 평소보다 바쁘다. 셔츠처럼 단추가 주르르 달려 있기라도 하면 굳이 마지막 단추까지 다 열어보고 싶어 한다. 한편 서로 엄청 달아오른 때는 무얼 벗고 자시고 할 새 없이 팬티만 단숨에 벗어던지고 본론에 들어갈 수도 있다. 드레스 자체가 분위기 메이커인 셈이다. 물론 다른 계절에도 뜨거운 밤을 위한 회심의 옷차림은 있지만, 이만큼 편하게 나를 열정의 섹스로 이끄는 건 없다. L_ 자영업, 33세

UNDER GROUND

좁은 지하 무대는 어둠에 완전히 잠겨 있고 객석은 관객으로 가득 차 있다. 극장이 작아 맨 앞줄의 관객은 배우들과 나무 바닥 무대를 나눠 써야 했다. 무대조명이 쓰레기봉투 사이에 누워 있는 누더기 차림의 젊은 두 배우를 비췄다. 이 배우들은 빈곤한 마을의 희망 없는 약물중독자를 연기하고 있다. 옆문이 열리자 경찰관 2명이 위협적으로 그들을 향해 걸어간다.

오늘 밤 공연의 제목은 <벽 너머 비(Rain Behind the Wall)>다. 소비 에트연방 해체 이후 경찰의 폭력과 부패, 도시 빈민층의 갈등을 주제로 한 연극으로 불특정 국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무대 옆에서는 구소련 경찰 제복을 입은 록 밴드가 장면마다 믹스한 록 음악을 연주하고, 때로는 진지한 곡으로 분위기를 바꾸어놓는다.

이야기가 경찰의 폭행과 이웃 주민들의 보복성 공격으로 점점 고조될수록 관객은 극에 몰입했다. 숨 막히는 두 시간이 흐르고 관객이 박수갈채를 보내자 12명의 배우들이 관객을 향해 인사했다. “공연 후 관객의 박수는 극과 현실 세계의 경계를 선명하게 드러내죠. 하지만 배우들은 그 명확한 구분을 좋아하지 않아요.” 예술감독 보리스 가푸로프(Boris Gafurov)의 설명이다. “저희가 무대 위에 창조해낸 분위기에 관객이 흠뻑 취해 그 기분을 그대로 집으로 가져가길 원하죠.”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 위치한 일홈(Ilkhom, 우즈베크어로 ‘영감’이라는 의미) 극단은 재능과 비전을 지닌 알자스 지방 출신 유대인 마르크 바일(Mark Weil) 감독이 1976년에 창립했다. 우즈베키스탄이 소비에트 연방에 속해 있던 당시, 일홈은 소비에트연방 최초의 독립 극단이었다. 도발적이고 논란의 여지가 많은 작품을 공연했음에도 구소련 공산당 정치국원 이슬람 카리모프(Islam Karimov)의 혹독한 독재를 견디고 살아남았다. 그는 공산주의의 몰락과 소비에트연방 붕괴 이후 우즈베키스탄에서 정권을 잡아 2016년 사망할 때까지 독재를 이어왔다. 일홈의 생존은 극단 창립자와 지지자들에게도 놀라운 일이었다.

극단 일홈은 감자 창고였던 건물을 극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낙후된 시설이지만 이곳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극장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감싼다. “저는 이곳을 우즈베키스탄의 바티칸이라고 불러요. 공간의 기운과 운영 철학 때문이죠.” 48세인 일홈의 부단장 이리나 바라트(Irina Bharat)의 말이다.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그 결과와 상관없이 용감하게 해내야 한다는 것을 창립자의 정신을 통해 배웠어요. 그것이 바로 우리가 수년간 살아남은 비결이죠.”

가장 혹독한 독재 정권 치하에서 이 자유의 요새가 이렇게 확장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바일이 연극을 공부한 학생들과 함께 극장을 열었을 때, 소비에트연방 당국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타슈켄트는 모스크바 에서 멀었고 바일은 아무도 예상치 못하게 극단을 창립할 정도로 영리하고 용감했다. 독재 정권 치하에서 순응하던 사람들은 자신을 자유롭게 표출할 공간에 목말라 있었다. 1982년 첫 모스크바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극단은 중앙정부로부터 원치 않은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정부와의 마찰과 반복되는 해체 압박에도, 바일은 당시 모스크바와 타슈켄트의 복잡하고 긴박했던 관계를 이용했다. 필요에 따라서는 어느 한 편에 기대 일홈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일홈은 곧 소비에트연방 전체에서 문화적 기준점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극단은 가장 중요한 예술적 소통 수단 중 하나였다. “우리는 무모했어요. 검열 받지 않은 작품을 연출하기도 했죠. 반소비에트연방 활동으로 잡혀갈 수도 있는 일이었죠.” 극단의 창립 과정을 기록한 책,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유명한 일홈(The Unknown Infamous Ilkhom)>에서 바일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정치 극단이 아니에요. 그저 편집되지 않은 삶과 실제 사람들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서 재생산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1991년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고, 더 나은 미래를 찾아 떠난 배우들 때문에 일홈은 잠시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 정도는 이겨낼 만큼 강해져 있었다. 새 대통령 이슬람 카리모프는 무자비하고 편집증적인 독재 정권을 세우고 정적들을 투옥하기도 했다. 또 국민들의 여행을 금지했고 수천 명의 학생과 근로자를 가을마다 목화 수확에 강제로 투입했다. 우즈베키스탄은 독립 방송국 하나 없는 단일 정당 국가가 되었지만, 카리모프 대통령은 일홈이라는 이 작은 자유 지대에는 손을 대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치적 목적을 위해 극단을 은밀히 이용했다. 인권침해가 만연했어도 우즈베키스탄은 공식적으로는 민주국가였는데, 정부는 이를 일홈을 통해 선전하고자 했다. 당시 카리모프의 딸도 공연을 보러 오곤 했다.

일홈은 창립 당시의 운영 철학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진 않지만 예술적 자유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폭력, 종교적 광신, 야욕, 내일에 대한 두려움 등 극단이 다룬 주제는 포괄적이다. 하지만 항상 이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과 관련이 있었다. 이에 대해 바라트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런 곳에서는 다양한 이야기와 연관성을 만들기가 쉬워요. 사람들은 그런 연관성을 보고 싶어 하죠. 하지만 우리는 이런 연관성을 일부러 만들어내려고 하지는 않아요. 적어도 의도적이지는 않죠.”

일홈의 연극은 극단적으로 도발적이거나 냉소적일 수 있다. 2016년 카리모프 대통령 사망 일주일 후 공연한 <공항(Airport)>에서는 죽은 대통령의 발언들을 거꾸로 읽어 아무런 의미가 없는 독백을 만들기도 했다. “주립 극장에서는 사전 검열과 허가 없이는 공연할 수 없어요. 하지만 여기서는 그렇지 않아요”라고 바라트는 말했다. 2011년 비공식적으로 록 음악이 금지되었을 때도 이 지역에서 유일하게 록 밴드 연주가 흘러나온 곳이 일홈이었다. 일홈은 현재 우즈베키스탄의 주요 독립 문화 단지에 자리 잡고 연극 학교, 음악 페스티벌, 예술 전시, 연극과 음악과 시를 결합한 혁신적인 연구소등을 운영하고 있다. 일홈의 공연을 보기 위해 중앙아시아, 러시아, 유럽, 미국 등지에서 관객이 찾아오며 극단은 수많은 해외 페스티벌과 공연에 참여하고 있다.

극단은 여전히 바일의 지침과 독특한 접근 방식을 따르고 있다. 연극은 경직된 각본보다는 배우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으로 탄생한 작은 장면을 중심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 장면들은 정제되고 합쳐져 하나의 극으로 완성된다. “이런 방식은 공연 준비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결과를 생각하면 그럴 가치가 있어요. 공연에 참여한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일부분을 극에 녹여내게 되고 그로 인한 자부심은 값을 매길 수 없죠.” 2006년 일홈의 일원이 되기 위해 시애틀에서 타슈켄트로 온 미국인 배우 듀린 카자크(Durin Cazac)의 설명이다. “공연이 정해져 있지 않지만 한 작품을 마친 후 다음 작품 구상에 들어가요. 그게 바로 유기적 극장의 모습이죠.” 일홈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말하는 특‘ 별한 힘’은 쉽게 느낄 수 있다.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 마치 다른 시공간에 들어선 듯한 기분이 든다. 무대와 관객간의 물리적 경계가 없어 관객이 극의 일부가 된 듯하다.

극은 놀라울 정도로 매혹적이고 촘촘하게 짜인 연기, 라이브 음악, 혁신적인 무대배경의 완벽한 균형을 자랑한다. 대부분 타슈켄트에서도 통용되는 러시아어로 진행되지만 배우들의 몸짓으로도 누구나 극을 이해할 수 있다. 일홈의 레퍼토리에는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혹은 유럽의 시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전형적인 비극, 현대극 등이 있는데, 이는 동서양 문화를 잇는 독특한 다리 역할을 한다.

2007년 9월, 거침없고 타협을 모르던 극단 창립자 바일은 자신의 아파트 앞에서 젊은 모슬렘들의 칼에 찔려 사망했다. 이들은 바일의 극에 묘사된 예언자 모하메드의 모습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 살인 사건의 배후에 정부가 있다고 생각했다. 바라트는 이렇게 말했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저희에게 어떤 제재도 할 수 없으니까 마르크를 죽인 거예요. 그들은 아마 창립자가 살해되면 극단도 죽을 거라고 생각했을 테죠.”

이 사건은 일홈의 새 시즌이 시작되기 바로 전날 일어났다. 공격이 있기 몇 시간 전, 바일은 긴박한 위험을 감지했는지 무슨 일이 있어도 계획한 대로 새 시즌을 시작한다는 계획을 분명히 했다. 사건이 일어난 날 저녁 비현실적 인 분위기에서 새 시즌은 그리스 아이스킬로스(Aeschylos)의 비극 <오레스 테이아(Oresteia)>로 막을 열었다. “그 공연은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3시간 내내 닭살이 돋은 기억이 나요.” 당시 일홈 연극 학교 학생이었던 카자크는 이렇게 회상했다. “공연을 마친 후 모두 지쳐버렸죠.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계속해서 해낼 것이다’라는 의미의 첫 공연은 큰 감동을 줬어요. 우리는 그때 다시 첫걸음을 뗀 거예요. 그다음부터는 조금씩 쉬워졌죠.”

살인 사건이 일어난 후, 가푸로프가 새 예술감독으로 지명됐다. 가푸로프는 “처음에는 본능적으로 최대한 멀리 도망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라며 웃었다. “지금도 종종 그런 기분이 들어요. 여전히 두렵거든요.” 바일의 사망은 극단 역사상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 그 일로 극단을 떠난 배우도 있었고, 수년 동안 극의 수준이 심각할 정도로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던 2010년 일홈은 15세기 투르크 시인이자 우즈베키스탄의 국민 작가 알리셰르 나보이(Alisher Navoi)의 시를 바탕으로 한 페르시아 왕의 탄생과 급격한 몰락을 연대기적으로 그린 우화 <일곱 개의 달(Seven Moons)>을 공연했다.

이는 바일의 사망 이후 일홈이 내놓은 첫 명작이 되었다. 내용, 음악, 안무 모두 환상적이었고 엄청난 호평을 받았다. “획기적인 순간이었어요.” 가푸 로프는 이렇게 기억했다. “그 후로 우리는 스스로를 다시 믿게 되었죠. 그리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었어요.” 바일이 뿌린 씨앗이 마침내 싹을 틔운 것이다. 그리고 일홈은 스스로 걸을 준비를 마쳤다. “마르크 사망 이후 극단의 열렬한 지지자들마저도 우리가 2년 이상 못 버틸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11년이 지났네요.” 가푸로프는 말했다.

극의 수준이 회복됐지만 일홈은 창립 이후부터 계속 어려움을 겪었다. 티켓 판매와 수업료만으로 연간 약 20만 달러에 달하는 비용을 충당하기에는 부족했다. 그래서 극단은 생존을 위해 보조금과 후원금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극단의 주요 배우 15명은 다달이 겨우 60에서 1백50달러의 월급을 받고 있다. 이들은 모두 다른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일홈에는 ‘돈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는 정신이 팽배하다. 하지만 배우들에게 제대로 된 삶의 기반을 마련해주지 못한다는 좌절감 또한 분명하게 자리하고 있다.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배우들도 가족을 꾸리고 싶고 차나 집을 사고 싶어질 때가 옵니다. 그래서 그만두게 되는 거죠.” 가푸로프의 말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의 창작 활동이 방해받는 건 큰 문제입니다. 배우가 떠나면 우리는 이를 대체할 배우가 필요하죠. 그러면 새로운 극을 준비하기보다는 기존 공연을 살려내기 위해 막대한 시간을 쓸 수밖에 없어요.”

이런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극단의 심장은 계속해서 뛰고 있고, 새 배우들 역시 배출해내고 있다. 가장 젊은 배우는 스무 살인 기말 가피야툴린(Gimal Gafiyatullin)으로 2년 전 극단에 합류했다. 그는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과 전염성 있는 미소를 지니고 있다. 가피야툴린은 작은 실내 무대에서 공연하기도 했던 아트 카페에서 웨이터로 일하다가 발탁되었다. 그는 일홈 연극 학교에 등록했고 이후 극단의 입단 제의를 받았다. “전 아직 스스로 배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배울 게 많죠.” 그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가피야툴린은 이미 6편의 공연에 참여했다. 무대에 처음 선 것은 불과 몇 주 전이지만 그는 자신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 천부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다. “단 몇 초였지만 놀라울 정도로 강렬한 느낌이었어요. 분장실로 돌아갔을 때 자리에 앉아 울고 말았죠.” 그는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감정이 격해지는 듯했다. “선생님은 얼마 안 되는 이런 순간을 위해서 우리가 배우를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카리모프가 사망한 이후, 우즈베키스탄은 마침내 숨통이 틔었다. 새 대통령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Shavkat Mirziyoyev)는 정치범과 종교범을 석방했고 카리모프 시대의 끔찍한 법을 일부 폐지했다. 이러한 변화는 극단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유능한 지역 신문 기자이자 일홈의 록 페스티벌 주최자인 니키타 마카렌코(Nikita Makarenko)는 이렇게 설명했다. “카리모프 정부는 우리의 존재를 숨기려 했었죠. 그들은 우리를 단 한 번도 페스티벌에 초청하지 않았고 안내 책자에도 소개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현 정부는 일홈의 이름을 지하철 광고에 내걸기도 하고 방송에 내보내기도 해요. 심지어 공식 언론에서 일홈의 공연에 대해 평가하기도 하죠!”

그렇다고 일홈의 미래가 밝다고 낙관할 수는 없다. 종교적 극단주의자들은 여전하고, 정부의 악행만큼이나 위협적인 사건을 또 겪을지도 모른다. 우즈베키스탄의 새봄은 경제적 기회를 가져왔지만 자본주의의 그림자 또한 덮쳐왔다. 지금 타슈켄트의 마을 대부분이 호화 고층 아파트를 짓기 위해 파괴되었다. 개발자들과 투자자들은 극장이 자리하고 있는 시내 중심가를 탐내고 있으며, 매수를 위해 인근 건물 사람들에게 접근하고 있다. 일홈은 주변 호텔 지하를 무료로 빌려 쓰고 있지만 앞으로의 일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바라트는 이렇게 말했다. “일홈이 모든 사람에게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니까요. 어떤 사람들에게 이곳은 마을 중심에 있는 상업 공간일 뿐인데, 우리는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거죠.”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건 생각할 수도 없다. 일홈은 새 건물을 지을 자금이 없고 극단의 신비한 에너지는 이 지하와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바라트의 생각은 확고하다. “이곳은 우리에게는 영적인 곳이에요. 마르크가 선택한 장소이기 때문이죠.”

무대로 내려가는 대리석 계단에는 창립자 바일의 초상화 두 점이 걸려 있다. 바일의 날카로운 눈이 조심스럽게 우리를 관찰하고 있다. 그가 죽은 지 12년이 지났지만 바일의 독특한 예술적 재능은 어느 때보다도 더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으며 여전히 일홈의 좁은 복도, 그래피티가 새겨진 벽과 담배 연기 자욱한 분장실에 깃들어 있다. 그의 에너지는 제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으며, 어떠한 폭정, 순응주의, 탄압도 인간의 정신은 침묵시킬 수 없다는 단호한 믿음을 심어주고 있다.

햄,소시지,베이컨 육가공품 가게 5

소금집 델리

성산동 ‘소금집 공방’의 수제 육가공품을 판매하고 이를 활용한 요리도 선보이는 망원동 ‘소금집 델리’. 쇼케이스를 가득 채우고 천장에 달린 고리에도 진열돼 있는 각종 육가공품은 치즈와 과일을 올린 샤퀴테리보드, 구운 감자와 채소를 함께 넣은 플래터 등으로 제공된다. 소금에 절여 숙성시킨 후 훈연하거나 수비드 방식으로 조리하는 델리 미트는 샌드위치와 잘 어울린다. 바게트를 갈라 버터를 두껍게 바르고 돼지 뒷다리 살로 만든 잠봉을 여러 겹 끼운 ‘잠봉 베르’가 인기 메뉴. 맥주에 곁들일 안주를 찾는다면 돼지 목살에 레드 페퍼를 입혀 매콤한 향이 느껴지는 카피콜라를 권한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로19길 14
영업시간 금·토요일 11:00~23:00, 일~목요일 11:00~22:00
문의 02-336-2617

에피세리81

직접 만든 샤퀴테리를 요리에 사용하는 동교동 레스토랑 ‘랑빠스81’의 샤퀴테리를 파는 ‘에피세리81’이 지난 5월 랑빠스81 아래층에 오픈했다. 프랑스 정통 방식을 따르는 40여 가지 제품이 이곳에서 숙성되는데, 고기와 내장, 채소, 향신료 등을 갈아 오븐에 구운 뒤 식힌 파테는 비닐이 아닌 병에 담겨 있어 보관하기 편하다. 빵 위에 바르고 피클을 올리면 맛을 돋워주고, 특히 ‘피스타치오 파테’는 레드 와인과 마리아주가 훌륭하다. 햄과 소시지는 종류별로 50g부터 구매할 수 있으며 테라스에 앉아 샤퀴테리 보드로 맛봐도 좋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30길 17-1 지하 1층
영업시간 12:00~22:00
문의 070-8813-8181

배익헌씨

올해 3월 신월동에서 연희동으로 공방을 이전한 ‘배익헌씨’. ‘Mr. Bacon’의 발음을 한국식으로 표기한 상호에서 알 수 있듯, 이곳의 육가공품은 베이컨에서 출발했다. 염지부터 훈연까지 약 2주가 걸리는데, 다른 제품에 비해 염분이 3분의 1 정도로 낮고 여섯 가지 이상의 천연 향신료를 사용한다. 로즈메리를 듬뿍 올린 ‘한 덩이 베이컨’은 기호나 상황에 따라 여러 방식으로 조리할 수 있다. 밥반찬이나 캠핑 음식으로도 제격이고,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구워 각종 채소와 함께 내놓으면 식감이 좋을 뿐 아니라 보기에도 예쁘다. 훈제 치즈, 육포 등도 판매하며 곧 소시지 2종도 출시할 예정.

주소 서울시 서대문구 홍연길 24
영업시간 화~금요일 10:00~21:00, 토·일요일 11:00~20:00, 월요일 휴업
문의 070-7746-6666

써스데이 스터핑

연희동에 자리한 ‘써스데이 스터핑’은 국내산 돼지고기와 채소, 전통 재료로 육가공품을 만든다. 이곳의 별미는 된장을 넣어 특유한 향이 올라오는 ‘살라미 소프레사’. 살라미만 먹어도 좋지만, 오렌지 콩포트를 얹으면 ‘단짠’의 조화까지 맛볼 수 있다.홀 안쪽으로 넓게 마련된 작업 공간에서는 꾸준히 신메뉴를 개발하는데, 최근에 출시한 구안치알레와 헤드치즈는 머리 고기를 활용했다. 여러 부위의 돼지고기와 채소 등을 함께 갈아 틀 안에서 익힌 후 무거운 것으로 눌러 만든 파테는 레드 어니언 피클, 치즈와 함께 ‘파테 샌드위치’로 즐겨볼 것.

주소 서울시 마포구 연희로15안길 6-4
영업시간 수~일요일 11:00~19:00, 월·화요일 휴업
문의 02-322-2359

세스크 멘슬

햄이나 소시지를 사러 정육점을 찾는 유럽의 식문화를 경험해보고 싶다면 성수동 인근의 ‘세스크 멘슬’은 어떨까? 생활 밀착형 육가공품 전문점을 지향하는 곳으로 유럽 3개국에서 10년간 쌓은 요리 경력을 바탕으로 매장 지하의 작업 공간에서 제품을 만든다. 우둔살과 돈육을 함께 갈고 에멘탈 치즈를 더해 만든 소시지 ‘케제 크라이너’ 등 해외 육가공 대회 수상자에게서 배운 레시피도 활용한다. 손님이 가공육을 부담 없이 맛보도록 얇게 썬 햄을 끼운 ‘슁켄 샌드위치’, 소시지와 함께 양파와 머스터드 등을 넣은 ‘보스나 샌드위치’, 소시지에 커리 소스를 올린 ‘커리 부어스트’도 판매한다. 모두 유럽에서 대중적으로 먹는 음식이다.

주소 서울시 성동구 성수이로14길 7
영업시간 11:00~20:00, 월요일 휴업
문의 02-6082-03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