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CE IN MY LIFE

정해인 김고은
정해인 니트 스웨터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고은 니트 스웨터 샤넬(Chanel), 데님 팬츠 이자벨 마랑(Isabel Marant), J12 워치 샤넬 워치(Chanel Watches), 링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정해인 김고은
카디건형 원피스 샤넬(Chanel), 이어링 샤넬 화인주얼리(Chanel Fine Jewelry).
정해인 김고은
재킷 멀버리(Mulberry), 링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정해인 김고은
정해인 니트 스웨터 누메로벤투노(N˚21), 안에 입은 티셔츠 프레드 페리(Fred Perry), 팬츠 와이 프로젝트(Y/Project), 슈즈 에르메스(Hermes). 김고은 롱 카디건과 울 코트 모두 르메르(Lemaire), 와이드 팬츠 제인 송(JainSong), 스니커즈 컨버스(Converse), 링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정해인 김고은
니트 스웨터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데님 팬츠 프레임 바이 무이(Frame by MUE), 골드 체인 네크리스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ta), 슈즈 르메르(Lemaire), 링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은 두 남녀의 이야기가 1994년부터 시작해 2000년대 중반까지 이어져요.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며 두 사람은 어떻게 달라지나요? 해인 하고 싶은 일과 현실의 벽에 부딪혀 피할 수 없는 일이 ‘현우’에게 다가와요. 드러내고 싶지 않은 아픈 과거가 있어 초반에는 조금 우울해 보이기도 하고 어두운 면도 있는데,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게 되면서 좀 더 밝고 긍정적으로 변하죠. 고은 ‘미수’는 현실에 발을 붙이고 살아요. 자기가 원하는 직업을 가지기보다는 급여가 꾸준히 들어오고 안정적인 직업을 선택하죠. 어떤 면에서는 자존감이 좀 떨어지기도 해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시간을 겪기도 했고. 그런데 현우를 만나며 변해요. 그렇다고 이상을 추구하는 인물로 완전히 변하는 건 아니지만 좀 더 능동적으로 변하죠. 현우는 미수의 성향대로라면 선택하지 않았을 상대예요. 불안정하니까요. 그런데 미수는 감정에 좀 더 솔직해지고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행동하는 변화를 겪죠.

시나리오를 보고 처음 든 감정은 어떤 것이었나요? 해인 시나리오가 더 재미있게 다가온 이유는 미수 역할을 (김)고은이가 하게 될 걸 알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감정이입이 더 잘됐어요. 그리고 시나리오의 전체적이 느낌이 따듯했죠. 위로받기도 하고. 아픈 사람들끼리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모습이 가장 좋았어요. 고은 시나리오로 처음 만난 미수는 굉장히 현실적인 인물이었어요. 그래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이 공감할 만한 감정선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어요. 또 현우와 미수의 사랑이 드라마틱하진 않지만 한번쯤 꿈꿔볼 법한 지점이 있어요. 지나치게 판타지 같지 않아서 좋았고.

현우와 미수의 어떤 점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해인 처음에는 갇혀 있는 듯한 현우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러다 한 여자를 만나면서 마음이 열리는 순간순간을 잘 드러내려 했어요. 고은 비단 남녀의 사랑뿐 아니라 사랑이라는 감정은 우리 삶에서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해요.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은 현실과 상황이 사랑으로 변할 수 있다는 걸 미수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어요.

로맨스와 멜로라는 장르 속 배우 정해인과 김고은은 익숙한 면이 있어요. 같은 장르라도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 같아요. 고은 미수와 현우가 동갑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이 둘이 사랑하는 모습이 아주 현실적이에요. 자취방에서 만나고 함께 퇴근하고 장 보고. 굉장히 현실적인 공간이 배경인데 그래서 더 공감하게 돼요. 해인 맞아요. 촬영할 때도 그런 얘기를 했어요. 손잡고 길을 걸어가는데 이 커플 너무 부럽다고. 고은 소소한 것을 나누며 행복해하는 모습이 좋았어요.

정지우 감독의 말랑한 멜로영화예요. <폴라로이드 작동법>이나 <사랑니>처럼 마음이 가는 로맨스영화를 기대하게 해요. 해인 처음 함께 작업했는데 말 그대로 장인정신으로 영화를 만드시는 분이에요. 한 땀 한 땀. 굉장히 디테일한데 그렇다고 배우에게 디렉션을 엄청 디테일하게 주진 않으세요. 추상적으로 뭔가에 빗대어 얘기하시기 때문에 처음에는 감독님의 의중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어요. 그런데 대화를 많이 나누다 보니까 감독님이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금세 깨닫게 되더라고요. 감독님과 대화하려고 엄청 뛰어다녔어요. 모니터링 카메라와 촬영 현장 사이에는 거리가 있잖아요. 처음에는 감독님이 계속 제가 있는 곳으로 뛰어오시는데 마음이 불편하더라고요. 그래서 같이 뛰어서 중간 지점에서 만났어요.(웃음) 고은 감독님은 어떤 장면을 고민하며 배우들에게 얘기하실 때 추상적으로 디렉션을 하시는 경우가 있어요. 배우에게 어떤 제한을 두고 싶어 하지 않으시거든요. 명백하게 설명해 자신의 의견이 정답처럼 느껴지는 걸 꺼리시죠. 그래서 오랜 시간 대화하게 되는데, 이제 영화 촬영장이 근무시간에 제한이 있잖아요. 그래서 감독님 말씀을 더 빨리 이해하려고 엄청 노력했어요.(웃음) 잘됐는지는 모르겠네요. 그래도 전 감독님과 두 번째로 함께 작업하니까 도움 되는 사람이 되려고 그런 노력을 기울여봤습니다.(웃음)

정해인 김고은
셔츠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 카디건 마르니 바이 무이(Marni by MUE), 팬츠 코스(COS), 슈즈 알든 바이 유니페어(Alden by Unipair).
정해인 김고은
니트 스웨터 마르니 바이 무이(Marni by MUE), 팬츠 코스(COS).
정해인 김고은
정해인 티셔츠 프레드 페리(Fred Perry), 팬츠 와이 프로젝트(Y/Project), 슈즈 에르메스(Hermes). 김고은 롱 카디건과 울 코트 모두 르메르(Lemaire), 와이드 팬츠 제인 송(Jain Song), 스니커즈 컨버스(Converse), 링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촬영 현장 분위기도 좋았을 것 같아요. 꼭 계절의 영향이 아니어도 오늘 화보 촬영하는 모습을 보면 그때의 호흡이 고스란히 느껴져요. 함께 출연했다고 모두 친해지는 건 아니니까요. 고은 아, 그럼 너무 힘들 것 같아요. 해인 맞아요. 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도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럼 참 괴로울 것 같아요.

서로에게서 찾은 반전 같은 면모도 궁금해요. 해인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요. 연기할 때와 하지 않을 때가 다르지 않고 늘 얘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있고요. 격의 없이 대해주는 면도 고마웠어요. 현장에서 고은이를 보고 있으면 저만 실수하지 않으면 별일 없겠다 싶었어요. 물론 반전도 있죠. 평소에도 밝고 개구쟁이 같은 모습이 있는데 얼굴이 붓는 날이면 애교가 더 많아져요.(웃음). 고은 아니, 붓는 게 저는 특히 복불복이에요. 전날 많이 먹었다고 붓는 것도 아니고 굶는다고 붓지 않는 것도 아니에요. 사석에서는 상관없는데 카메라에 잡히면 좀 민망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래서 더 그런가봐요.(웃음) 드라마 <도깨비>가 끝나고 (정)해인 오빠는 이상하게 우연히 마주칠 일이 없었는데 이번 작품으로 만나서 무척 반가웠죠. 제가 격의 없이 대했다고 말하지만, 그것도 다 상대가 잘 받아주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거예요. 그게 합이 잘 맞는 거죠. 웃긴 얘기 하면 잘 웃어주고, 그래서 현장 분위기도 잘 아우를 수 있고. 반전은! 술을 잘 마셔요. 못 마시게 생겼는데 술을 마셔도 흔들림이 없어요.(웃음)

겉으로 드러나는 분위기도 닮은 것 같아요. 2019년에 <유열의 음악앨범>을 얘기하는 데 이질감이 전혀 없다고 할까요. 고은 둘 다 변화에 민감하거나 시대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그 시대의 아날로그가 주는 매력은 뭘까요? 해인 편안함. 시간이 더 머무는 느낌이에요. 노래와 공간, 사진 모두요. 아날로그의 시간은 천천히 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시간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요. 고은 아날로그가 좋은 점은 아주 많죠. 세상이 점점 간편해지고 빨라지고 있잖아요. 모든 것이 속전속결이고. 이렇게 빠른 속도로 뭔가 하나에 집중해서 하다 보면 하나를 놓치기 마련이에요. 그렇게 놓친 지점들이 아날로그에는 다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의 시대가 언젠가는 아날로그가 될 수도 있겠죠. 그때는 또 지금을 추억할 수도 있고.

아날로그 아이템 중 사라지지 않고 영원했으면 하는 것이 있나요? 고은 필카! 필름 카메라는 필름 한 통으로 사진을 몇 장 찍을 수 있는지 알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한 장 한 장 마음을 담아 찍게 돼요. 디지털카메라는 고속 연사로도 찍을 수 있으니까 촬영하는 마음이 다를 것 같아요. 해인 저도 필카요. 영화에도 제가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고은이가 보는 장면이 나와요. 소중한 순간의 기억을 찍어서 방에 걸어둔 거죠. 디지털카메라도 인화를 맡길 수 있지만 아날로그처럼 기다리는 애틋한 마음이 덜하죠.

과거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그 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힘이 있어요. 해인 촬영하면서 느꼈어요. 미수네 집으로 가는 언덕을 지나는 골목길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을 보고 있으니 어릴 때 생각이 났어요. 제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골목길과 아주 비슷해서 옛날 생각이 많이 떠올랐죠. 고은 저도 그래요. 어릴 때 친구들이랑 아파트 앞 놀이터에서 엄청 즐겁게 놀았거든요. 해 지는 게 싫었어요. 그때는 휴대전화도 없으니까 저녁 먹을 시간이 되면 엄마가 창문 밖으로 큰 소리로 저를 불렀죠. 해 지고 밥 냄새가 나면 집에 들어갈 시간이었죠. 그래서 밥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싫었어요.(웃음)

모든 작품마다 배우는 점이 다를 것 같아요. <유열의 음악앨범> 촬영을 마친 후에도 그런 점이 있겠죠? 해인 저는 있어요.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를 끝내고 이 작품을 시작했는데 표현할 때 절제하는 법을 배운 것 같아요. 현우가 워낙 갇혀 있고 어두운 캐릭터이다 보니 말 한마디라도 캐릭터의 결과 다르게 하면 너무 튀었죠. 절제하며 표현하는 것에 대해 감독님과 고은이랑 많은 얘기를 나누며 배웠어요. 고은 작품마다 성장하는 지점이 분명히 있어요. 한 작품을 끝내면 자기반성의 시간도 가지곤 해요. 그러다 보면 ‘그때 왜 그랬니?’ 이러면서 머리 박고 그래요. 이상하게 잘한 순간보다 그러지 못한 순간이 많이 떠오르거든요. 그게 꼭 연기에 국한된 건 아니고, 저 자신에게 아쉬운 지점들이죠. <유열의 음악앨범> 촬영이 끝나고 한참 지나 해인 오빠에게 문자도 보냈어요. ‘더 나은 파트너가 되어주지 못한 것 같다’고. 해인 맞아요. 고은이가 LA에 있을 때였어요. 고은 그날 진심으로 떠오른 생각이었어요. 남들이 알아채는 실수도 하지 말아야 하지만 저만 아는 실수라는 게 있잖아요. 그런 게 생각났어요. 그런 실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다음에는 이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죠.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고 계속 그렇게 자신을 되돌아보며 나아갈 것 같아요.

인간은 왜 자꾸 반성하는지 모르겠어요. 반성의 시간만 없어도 좀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고은 그 시간을 짧게 가지면 되죠. 짧게.(웃음) 해인 그런데 그 문자 보고 깜짝 놀랐어요. 고은 현장에선 내가 늘 너무 완벽했어?(웃음) 해인 얼굴을 보고 얘기를 나누는 것과 문자로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는 게 느낌이 다르잖아요. 진심이 담긴 문자가 너무 진지하게 오니까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라 한참 고민했어요. 어떤 표정과 마음으로 그 문자를 썼을지 그려졌거든요. 여행을 갔다는 건 뭔가 떨치고 비워내려 간 건데 연기 생각만 계속 하고 있는 게 느껴졌나 봐요. 고은 내가 너무 완벽했다면 그것만 기억해.(웃음) 영화 촬영이 끝나자마자 여행을 갔어요. 혼자 동떨어져 있다 보니까 전작이 자연스레 생각나더라고요. 연기는 이미 해버린 거니까 어쩔 수 없는데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들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걸 제 마음에만 담아두지 않고 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고요. 해인 용기가 필요한 일이죠. 그런데 말하지 않았으면 그런 일이 있었는지 끝까지 몰랐을 거예요.(웃음)

한 편의 영화를 촬영하고 개봉 전에 홍보하고 개봉하기까지, 가장 즐거운 순간과 힘든 순간이 있다면? 해인 가장 즐거울 때는 촬영할 때, 가장 힘들 때도 촬영할 때. 홍보 일정은 바쁘긴 해도 하면 되는데 촬영할 때는 고민도 많고 머릿속도 복잡하고 걱정도 되고 그래요. 고은 극 중 인물로 연기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해요.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성취감을 느끼기도 하니까요. 잘하든 못하든 현장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해요. 그런데 제가 부끄러움을 많이 타거든요. 연기할 때는 괜찮아요. 어차피 카메라 앞의 김고은은 저 자신이 아닌 극 중 인물이니까. 그런데 오늘 <비긴어게인> 촬영하러 가거든요. 너무 걱정돼요. 그때는 연기가 아니라 저 자신을 보여주는 거니까 너무 부끄럽기도 하고.

마지막 질문이에요. 영화 제목이 음악 앨범이니까. 조금 오글거리는 질문이기는 한데, 오늘의 앨범에 담고 싶은 음악은? 해인 루시드 폴의 ‘보이나요’. 고은 전 이소라의 ‘그대와 춤을’. 사랑하는 그대와 춤을 춘다는 내용인데, 지금 창밖으로 보이는 정원에서 틀면 딱 좋을 것 같아요.

정해인 김고은
정해인 셔츠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 카디건 마르니 바이 무이(Marni by MUE). 김고은 니트 스웨터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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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김규리

김규리 화보
원피스 와이 프로젝트 바이 분더샵 (Y/Project by BoonTheShop).

요즘의 계절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밝고 햇살이 비치는 느낌의 노란색 같다고 말한 배우 김규리가 인터뷰를 마치고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커다란 부채를 집어 들었다. 커다란 부채에는 노란 바탕에 빨간 꽃을 피운 매화나무가 그려져 있었다. “여름이면 부채에 그림을 그려 사람들에게 선물해요. 이건 어제 그린 거예요. 먼저 가장 큰 줄기를 그리고 균형을 맞춰가며 가지를 그려 넣죠. 매화꽃은 겨울이 지나고 봄으로 갈 때쯤 가장 먼저 피는 꽃이에요.” 김규리는 영화 <미인도>에서 신윤복을 연기하며 한국화를 배우기 시작했고 지금도 수묵화와 민화를 계속 그리고 있다. 지난해에는 이쯤 해서 배우 일을 관두고 한국화 화가로 살아볼까 결심도 했지만 다시 배우의 길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다시봄이 찾아왔다.

김규리 화보
원피스 하고(HAGO), 블랙 터틀넥 조셉(Joseph).
김규리 화보
숄 코트 코스(COS), 슈즈 스튜어트 와이츠먼(Stuart Weitzman), 벨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규리 화보
체크 코트 푸시버튼(pushBUTTON), 원피스 코스(COS).

김규리 화보

김규리 화보
체크 코트 푸시버튼(pushBUTTON), 원피스 코스(COS).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 촬영을 끝냈다. 이제 한숨 좀 돌리겠다. 아직 아니다. 마지막 촬영이 끝난 날 1시간 자고 칠곡에 있는 숲에 다녀왔다. 산림청 한국산림복지진흥원 홍보대사로 일하게 됐는데 숲 여행을 하며 그 숲을 소개하는 프로젝트를 맡고 있다. 아마 10월쯤에 유튜브 영상과 책으로 나올 것 같다. 숲마다 특징이 모두 다른데, 어느숲에 가면 아이들이 교육받을 수 있는 체험학습장이 있고, 어느 숲에가면 수목장이 있다. 수목장이 있는 곳은 주민들의 반발을 우려해 그옆에 캠핑장을 열어 주민들이 운영할 수 있게끔 했다. 여러 숲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어 프로젝트에 함께하게 됐다.

숲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겠다. 그러고 싶었다. 나무를 원체 좋아하기도 하고. 힘들 때면 소나무의 지혜를 배웠다. 한 번은 너무 답답해 가만히 있으면 죽을 것 같아 뭐라도 하고 싶어 청계산에 갔다. 그냥 막 올라갔다. 곧 정상에 오를 것 같은데 내가 어디쯤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고, 숨이 너무 차서 그만둘까 여러 번 고민하던 중에 산등성이에 있는 소나무를 보았다. 수백 년은 족히 그곳에서 살았을 법한 엄청 큰 소나무가 서 있었다. 긴 세월 동안 한자리에서 비바람을 맞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들도 그 소나무를 가만두지 않았는지, 사람들이 새겨놓은 글씨도 있었고 던져놓은 쓰레기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 나무는 오랜 세월을 버티며 살아온 거다. 나는 그래도 사람이니까 걸어 다닐 수 있고 숨도 쉬고 피해갈 수 있는데 소나무는 모진 시련을 덤덤히 겪어낸 거지. 그 생각을 하니 숙연해지더라. 소나무를 꼭 안아주며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힘을 내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아주 기분좋게 내려왔지.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언니랑 말다툼을 크게 하고 집을 뛰쳐나갔다. 무슨 일 때문에 싸웠는지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집을 나와 벤치에 누워버렸다. 한참 누워 있다가 눈을 떴는데 아주 키 크고 가는 소나무 두 그루가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더라. 근데 소나무가 쭉 곧은 게 아니라 건물 사이에서 자라며 해를 보기 위해 기를 쓰느라 삐뚤어져 있었다. 다른 곳으로 가지도 못하고 해를 보기 위해 그렇게 애쓰고 있었던 거지. 문득 나는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고 하고 싶을 일을 성취할 수 있는데 소나무는 그렇지 않음에도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소나무들이 참 멋있게 느껴졌다.

왜 많은 나무 중에 유독 소나무에 마음이 더 가는 걸까? 소나무는 땅의 기운을 받는다더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나무가 돌산에 있는 소나무다. 나무가 돌이 가득한 땅속의 돌을 피해 뿌리를 뻗는다는 건데, 그런 소나무는 곧게 자라지 않고 구부러진다. 그런데 우리는 일자로 뻗은 소나무보다 구불구불한 소나무를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나. 정작 그 소나무는 엄청 힘들게 자랄 텐데. 그러다 문득 나는 내 인생이 너무 고통스럽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누군가 나의 인생을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산림청 홍보대사도 사심으로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나무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 것 같고, 이 좋은 걸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기도 해서.

요즘 라디오 DJ로도 활동하고 있다. 산림청 홍보대사도 그렇고 EBS 국제다큐영화제 사회도 보게 됐다. 연기 외의 활동 영역이 다양한데, 폭넓게 활동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나? 욕심보다는 호기심이 있었다. 연기하는 게 내 직업이긴 하지만 배우라고 해서 1년 내내 연기만 하며 살 수 없지 않나. 다음 작품을 준비하는 동안 나를 환기하고 단련해야 한다. 그리고 건강해야 한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내가 사랑이 넘쳐야 악역을 맡더라도 사람들에게 내 연기의 진심이 전달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해보고 좋은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 경험을 많이 쌓고 공부도 많이 해야지.

어떤 삶을 살지 오래전부터 정해둔 건가? 연기를 시작하고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어릴 때는 사람들이 나더러 욕심이 많다고 하면 듣기 싫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욕심이 있었다. 연기를 잘하고 싶은 욕심. 스타가 되고 싶었던 적은 없다. 배우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나를 자꾸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벼랑 끝에서는 간절한 마음이 나오지 않나. 절박하게 연기했다. 나 자신은 고통스러울지 모르지만 사람들에게는 내 연기가 더 잘 가닿을 테니까. 그런데 그렇게 치열하게 살다 보니 오히려 한계가 느껴지고 피폐해졌다. 살아남으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게 된 것 같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그림을 그리고 산에 가고 봉사활동을 하고.

오랜만에 드라마에 출연했다. 촬영 마지막 날 어떤 감정이 들었을지 궁금하다. 막상 마지막 촬영을 하니까 많이 아쉬웠다. 무엇보다 스태프와 동료들 보러 가는 재미로 촬영장에 갔는데 더 이상 그럴 수 없으니까. <60일, 지정생존자>는 올해 1월 촬영을 시작해 8월에 끝났다. 드라마의 첫 촬영과 마지막 촬영 일정을 같이했다. 맨 먼저 들어가서 맨 마지막에 나온 거지. 이번 작품은 배우들 간의 합이 워낙 좋았다. 팀워크가 좋아서 시간 맞춰 함께 드라마도 보곤 했는데 아쉽게도 나는 함께하지 못했다. 매일 아침 9시에 라디오 생방송이 있어서 밤 11시에는 잠을 자야 해서. 8시 30분까지는  방송국에 도착해야 한다.

아침 일정이 회사원에 버금가는 루틴이다. 목적이 있으면 움직이기가 편하더라. 나는 원래 저녁형 인간이었다. 저녁보다도 더 늦은 밤, 새벽에 가까운 밤. 그 시간에 사색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걸 좋아했다. 그런데 아침 라디오 방송을 시작한 후 깨어 있는 시간이 확 바뀌었다. 생활의 중심이 아침으로 간 거지. 이제 웬만하면 저녁 7시 이후에는 약속을 잡지 않는다. 많이 늦으면 8시. 그동안 나는 밤을 좋아하고 그 시간에 사색하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를 괴롭히는 시간이었더라. 나는 감성적이어서 사색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색이 너무 깊어지면 괴로웠다. 아침형 인간이 된 후에는 햇볕아래 나쁜 바이러스들이 사라지고, 습기가 싹 가시는 것처럼 훨씬 밝고 건강해지고 있다. 그리고 라디오 방송을 하면서 말을 배웠다.

이제 와서 말을 배웠다는 건 무슨 말인가? 지금까지 꽤 오랫동안 사람들이 내게 말했다. 하지 마, 말하지 마, 움직이지 마, 조용히 있어,때리면 맞아, 맞아도 아프다고 하지 마. 억울해도 억울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 버티고 입을 다물었는데 그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익숙해졌나 보다. 라디오 방송을 하면서 1시간 동안 말을 해야 하는데, 말 한 마디 꺼내는 게 두렵고 무서웠다. 그런데 말을 많이 해서 바뀌는 게 아니라 청취자 때문에 내게 변화가 일어나더라. 나는 계속 공격 당하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사실 공격하는 사람이 한 명 있으면 나를 응원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더라. 라디오를 하면서 내게 힘내라 응원해주는 청취자들을 많이 만났다. 지금은 청취자들과 사이가 너무 돈독해졌다. 서로 응원해주는 사이다.

요즘의 삶이 유독 풍성해 보인다. 청취자들의 마음이 너무 따듯해서 말도 다시 배우고 일상성을 회복하는 중이다.

맞다. 업무로 맺은 관계보다 일상적인 관계가 더 큰 위로가 되어준다. 배우로 살고, 연기만 할 때는 뭔가 자꾸 부족한 것 같았다. 요즘에는 라디오 방송을 하며 사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일상성이 회복되고 있다. 나는 그냥 청취자들과 수다를 떨고 놀 뿐인데 얻는 게 너무 크다.

앞으로 시간이 많이 지나도 잃고 싶지 않은 인생의 주제가 있다면. 변치 않는 주제는 ‘나’다. 내가 지금 이곳에 존재하는 이유가 있을 텐데,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 문제는 아주 어릴 때 풀었다. 뭘 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질문했더니 답이 나오더라. 나는 사랑을 전달하고 싶어서 태어난 것 같다. 그렇다고 대단히 많은 사람을 보듬겠다는 게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을 밝게 밝히고 싶었다. 내 주변을 밝히면 그 사람들이 자기 주변 사람을 밝히고. 내 옆에 있는 사람들과 즐겁고 건강하게 지내며 그 좋은 기운으로 사랑을 퍼뜨리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건강해야 하고. 인생이라는 게 참 재미있다. 올라가면 내려오고, 내려오면 올라간다고 하지 않나. 지난해가 내 인생의 분기점이었다. 일이 거의 들어오지 않아 직업을 바꿀 결심을 했었다. 사회에 나오자마자 한 일을 관두는 것이다 보니 결심하기 쉽지는 않았지. 그래도 사람은 때를 알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쿨하게 뒤돌아 서서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하려니, 할 일이 남았던 건지 갑자기 연기할 기회가 생겼다. 도망가는 것도 기회가 안 오더라.(웃음) 그래서 다시 즐겁게 남게 됐다. 그럼 다시 해볼까 하고 움직이는 중이다.

그래서 오늘의 김규리는 행복한가? 행복하다. 많은 걸 갖고 싶은게 아니라는 내 속마음을 알게 되어 더욱 그렇다. 이 삶을 즐기고 있어서 감사하다. 부피와 넓이를 키우기보다는 깊이 있고 심도 있는 삶을 살고 싶다. 내가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아 다행이다. 요즘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나는 지금껏 완벽하고 싶었다. 누군가의 완벽한 모습을 보면 전율을 느꼈다. 그런데 지금은 뭔가 부족한 모습을 보면 오히려 정이 가더라. 눈으로는 완벽한 것을 좇지만 심장은 부족한 모습을 봤을 때 움직이더라. 그냥 사람이 사람 같으면 되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인생이 편해지더라. 전에는 내 주머니가 비어 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는데 이제는 빈 주머니를 보여줘도 아무렇지 않다. 아무것도 없으면 어떤가. 살기에 좋은 걸.

김규리 화보
원피스 푸시버튼(pushBUTTON), 페플럼 형태의 허리띠 레하(Le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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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SED WITH IRENE – 아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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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스티에 해프닝, 스커트 코스, 리본 핀 자라, 화이트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아이린이 바른 컬러는 루쥬 알뤼르 잉크 퓨전 #814 코랄 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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