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싱키 플로 페스티벌의 3일

FLOW FESTIVAL

15년 전 작은 클럽에서의 이벤트로 시작한 페스티벌. 매년 8월 헬싱키에서 열리는 플로 페스티벌에는 세계적인 팝스타부터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하는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의 무대까지 다양한 음악이 펼쳐진다. 각기 다른 개성으로 꾸민 10개의 스테이지에는 인디 뮤직, 팝, 록, 일렉트로닉 등 각 분야 아티스트의 공연이 백야의 밤이 빛날 때까지 쉴 새 없이 펼쳐진다.

 

야코 에이노 칼레비

뮤지션

핀란드의 뮤지션. 헬싱키에서 트램 운전사로 일하며 꾸준히 음악을 만들어오다 2015년 ‘노르딕 뮤직 프라이스(Nordic Music Prize)’라는 음악상 쇼트 리스트 부문에 이름을 올리며 뮤지션의 삶을 시작했다. 인디 뮤직, 소프트 록, 일렉트로 팝, 재즈까지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며 특유의 보헤미안 소울이 담긴 음악을 만들어낸다. 현재는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헬싱키 페스티벌

생일 축하해요!(공연 도중 야코의 깜짝 생일 파티가 열렸다) 생일이 언제예요? 어제였어요. 잠을 한숨도 못 자서 어제가 오늘까지 이어진 기분이지만요.(웃음)

왜 잠을 못 잤어요? 어제 오슬로에서 새벽 1시 30분에 공연이 있었는데, 공항에 오전 5시까지 가야 하는 상황이라 잠을 한숨도 못 잤어요.

가장 피곤한 생일이었을 것 같네요. 생각보다 피곤하지 않아요. 잠을 못 잤더니 오히려 몽롱하면서 약간 들뜨는 것 같아요(웃음).

플로 페스티벌에 자주 등장했다고 들었어요. 이번이 몇 번째 무대인가요? 2007년에 처음 무대에 섰고, 다른 밴드의 공연에 가끔 참여하기도 했어요. 올해가 여섯 번째 무대인 것 같아요.

오늘 공연 어땠어요? 만족했나요? 개인적으로 참 좋았어요. 스테이지 위에 큰 풍선이 떠 있어서 무대가 아주 멋있었던 것 같아요. 바쁜 일정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악기에도 문제가 생겨서 조금 걱정했는데, 다행히 공연도 잘했고 생각보다 참 좋았어요.

맞아요, 무대가 무척 멋있었어요. 반응도 꽤 뜨거웠고요. 정말 다 좋았어요.

다른 나라의 페스티벌에는 없는 헬싱키 플로 페스티벌만의 특별한 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세련된 분위기? 도시 한가운데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이라 그런지 이곳만의 특별한 느낌이 있어요. 구성도 잘 짜여 있고 페스티벌 곳곳의 디테일도 아주 좋은 것 같아요.

뮤지션으로 활동하기 전 트램 운전사로 일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워요. 트램 운전사에서 뮤지션이 된 과정을 설명해줄 수 있을까요? 트램 운전사로 일하기 전부터 음악을 전공한 뮤지션으로 활동했어요. 음악을 계속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했고 현실적인 방법으로 트램 운전을 시작했죠.일도 단순하고 근무시간이 매우 유연해서 일주일에 한 두 번만 일해도 되는 직업이거든요. 사실 복지가 꽤 괜찮았어요.(웃음) 트램 운전사는 집도 제공되고, 대중교통도 공짜로 탈 수 있거든요. 그렇게 조금씩 일하고 남은 시간에 음악을 만들면서 보냈어요. 만약 지금도 헬싱키에 살고 있다면 트램 운전사를 계속했을지도 몰라요.

베를린에서 산 지 얼마나 되었어요? 그곳에서 뮤지션으로 활동하는 건 어떤가요? 5년 반 정도 되었어요. 생각보다 오래되었네요. 좋지만 매 순간이 도전이에요. 점점 많은 사람이 베를린에 모여들면서 경쟁도 심해지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도시가 가진 특별한 매력이 점점 줄어들고 평범해지는 것 같아요. 물가도 점점 오르고, 집을 구하는 일도 쉽지 않아요.

대부분의 핀란드 뮤지션은 핀란드어로 음악을 만드는데 당신은 영어로 음악을 만들고 있어요. 맞아요. 요즘 많은 밴드가 핀란드어로 음악을 만들어요. 다른 뮤지션 친구와 이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몇 년 전부터 그런 경향이 더 강해지는 것 같아요. 핀란드뿐 아니라 다른 나라 밴드들도 그렇고요. 모국어로 노래하면 자국 팬들과 좀 더 깊이 교감할 수 있어서 그러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영어로 만드는 편이 아직은 더 편한 것 같아요.

한국에도 당신의 음악을 듣는 리스너들이 있어요. 공연을 하러 한국에 올 계획도 있나요? 무척 가고 싶어요. 초청해준다면요. 서울이 아주 흥미로운 도시라고 들었어요. 매일 초청 메일을 기다리고 있을게요.(웃음)

이제 이 페스티벌을 어떻게 즐길 작정인가요? 마시고 싶은 술이나 보고 싶은 뮤지션이 있어요? 이제는 마음 놓고 즐기려고 해요. 테임 임팔라의 공연을 보면서 제일 좋아하는 레드 와인을 마실 거예요.

 

헬싱키 페스티벌

에레네 코스타스

DJ 겸 패션 브랜드 오나르 디렉터

매주 금요일 ‘라디오 헬싱키’의 쇼를 진행하며 실험적인 일렉트로닉 음악과 오가닉 음악을 선보인다. 카이쿠(Kaiku)나 포스트 바(Post bar) 같은 헬싱키 대표 일렉트로닉 클럽에서 디제잉을 하며 로컬 언더그라운드 신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동시에 감각적인 패션 브랜드 오나르(Onar)를 이끌고 있다.

헬싱키 페스티벌

플로 페스티벌에는 몇 번이나 참여했어요? 패션 브랜드 오나르의 디렉터로만 알고 있었는데 DJ로 무대에 오른 걸 보고 좀 놀랐어요. 브랜드 오나르의 이름은 제가 2012년부터 구상한 클럽 컨셉트에서 따온 거예요. 그때부터 디제잉을 시작했고, 그해 처음으로 플로 페스티벌 무대에 섰죠. 올해로 벌써 네 번째 참여하고 있네요. 제 정체성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음악과 패션 브랜드 오나르는 서로 깊이 연결돼 있어요. 물론 오나르를 론칭한 첫해에는 온전히 패션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고, 2년 전 라디오 쇼를 시작하면서 음악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죠.

다른 나라의 페스티벌과 다른, 헬싱키 플로 페스티벌만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플로 페스티벌은 개성이 아주 뚜렷해요. 음악만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문화가 녹아 있죠. 우선 플로 페스티벌에서 디자인은 매우 중요한 요소예요. 이뿐 아니라 지속 가능성을 지향하는 친환경적 페스티벌이죠. 패션은 말할 것도 없고 음식에도 공을 많이 들여요. 음식 코너에 가봤어요? 최고예요.

어제 조금 둘러봤는데 요즘 유명한 로컬 레스토랑이 대부분 참여해서 놀랐어요. 음식의 종류도 무척 다양하고, 건강한 식재료로 만든 음식도 많더라고요. 그렇죠? 15년 전쯤 플로 페스티벌이 처음 생겼을 때 관객으로 왔었는데, 그때에 비하면 정말 많이 발전했어요. 장소도 훨씬 좋아지고 음악 장르 또한 매년 다양해지고 있어요. 솔직히 큰 페스티벌을 엄청 좋아하는 사람은 아닌데, 플로 페스티벌은 어딘가 모를 편안함과 특별함이 있어요.

카이쿠(KAIKU)나 애니발리(ÄÄNIWALLI) 같은 헬싱키 대표 일렉트로닉 클럽에서 음악을 틀어온 로컬 DJ로서 요즘 헬싱키의 언더그라운드 뮤직 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전체적인 뮤직 신이 아주 많이 발전했어요. 제가 막 헬싱키에 이주했을 때만 해도 일렉트로닉 클럽은 한두 곳뿐이었어요. 지금처럼 많은 클럽과 언더그라운드 뮤직 파티가 생겨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죠. 주의 깊게 지켜보면 매주 라인업이 훌륭한 파티를 접할 수 있어요. 헬싱키의 작은 도시 규모를 생각하면 제공되는 파티의 퀄리티는 엄청나죠.

일주일에 한 번씩 음악을 트는 ‘라디오 헬싱키’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라디오 헬싱키 뮤직 디렉터의 제안으로 처음 시작하게 되었고, 벌써 2년이 다 되어가네요. 매주 금요일에 2시간 동안 음악을 트는 라디오 쇼는 크리스티나(Kristiina)와 함께 진행해요. 크리스티나는 DJ이자 포토그래퍼로 제 가장 친한 친구이자 매 시즌 오나르 컬렉션 촬영도 함께하는 좋은 동료예요. 개인적으로 라디오를 위한 음악을 만드는 일이 참 재밌어요. 댄스 플로어에서 틀 수 없는 음악을 만들 수 있거든요. 다운 템포의 오가닉 뮤직을 일렉트로닉 뮤직에 접목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실험적인 음악을 소개하고 있어요.

공연이 끝난 후에 이 페스티벌을 어떻게 즐길 작정인가요? 마시고 싶은 술이나 보고 싶은 뮤지션이 있나요? 오늘 보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어요. 이란 뮤지션 사바 알리자데(Saba Alizâdeh)와 베를린에서 활동하고 있는 핀란드 듀오 뮤지션 암네시아 스캐너(Amnesia Scanner)의 공연을 기대하고 있어요. 공연 보다가 춤도 추고 스파클링 와인도 한 잔 마시면 아주 좋겠네요.(웃음)

결혼 선물

1 아름다운 형태의 투명한 인센스 버너 4만5천원 클리어 비 바이 티더블유엘(Clear B by TWL). 2 녹색 구리 화병 22만원 앤트레디션 바이 이노메싸(&Tradition by Innometsa). 3 핀란드의 호수와 물결을 형상화한 알바 알토 베이스 28만원 이딸라(Iittala). 4 디자이너 타피오비르칼라가 녹아내리는 빙하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울티마 툴레 피처 24만원 이딸라(Iittala). 5 울티마 툴레 스파클링 와인 글라스 2개 세트 7만9천원 이딸라(Iittala). 6 은은한 빛을 띠는 브라스 오일 버너 21만원 이솝(Aesop). 7 낮과 밤을 시트러스 향으로 채워주는 아누크 오일버너 블랜드 4만5천원 이솝(Aesop).

 

1 서유럽의 고전적인 티포트 디자인과 일본 찻주전자의 미감을 담은 카오루(Kaoru) 티포트 14만5천원 타임앤스타일 바이 티더블유엘(Time & Style by TWL). 2 카오루(Kaoru) 그린티 컵 각각 2만9천원 타임앤스타일 바이 티더블유엘(Time & Style by TWL). 3 일본 이시카와현의 전통 옻칠 장인이 1백50단계의 공정을 거쳐 완성한 카오루(Kaoru) 소서 각각 4만1천원 타임앤스타일 바이 티더블유엘(Time & Style by TWL). 4 현무암 위에 오일을 몇 방울을 떨어뜨려 발향을 느끼는 타임랩스 룸 프래그런스 세트 11만원 스틸라이프 바이 챕터원(Still Life by Chapter 1). 5 주석으로 만든 인센스 스탠드 리프 5만9천원 노사쿠 바이 챕터원(Nosaku by Chapter 1).

 

1 국과 볶음 요리를 만들 때 유용한 2인용 원형 무쇠 주물 냄비. 시원한 캐리비안 블루 색상은 요리 후 바로 식탁에 올려도 좋다. 18cm 31만8천원 르크루제 (Le Creuset). 2 목과 어깨가 뻐근한 이들에게 적합한 레이크 넥 필로. 은은한 색상이 아름답다. 선택에 따라 메밀 또는 편백나무 조각으로 속을 채울 수 있다. 각각 4만3천원(스카이블루), 5만9천원(멜론그린) 일상직물(Ilsangjingmul). 3 섬세한 핸드 페인팅으로 장식한 블롬스트 컬렉션 중 푸크시아, 라일락 문양 컵과 소서. 각각 17만6천원 로얄코펜하겐(Royal Copenhagen).

 

1 상하좌우 전 방향으로 동시에 회전해 공간 곳곳에 시원한 바람을 전하는 소형 선풍기 ‘3D 스몰 팬 C311’ 10만9천원 플러스마이너스제로 바이 시코코리아(PlusMinus Zero by CICO Korea). 2 PM 2.5 초미세먼지 제거율 99%의 공기청정기 CO21 29만9천원 플러스마이너스제로 바이 시코코리아(PlusMinus Zero by CICO Korea). 3 드롱기의 디스틴타(Distinta) 컬렉션 중 퓨어 화이트 색상 19만9천원 드롱기(DeLonghi). 4 실내와 실외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블루투스 스피커 베오플레이 1백35만8천원 뱅앤올룹슨(Bang & Oluf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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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길을 잃다

바다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 카발루탄 마을 근처, 암석과 산호초 사이에서 가재를 잡는 바자우라우트족. 토기안섬 부근에서 작살총으로 참바리를 포획했다.

 

바다 인도네시아
수중 가옥을 세우고 연결해 바다 위 마을을 만든 바자우라우트족.
바다 인도네시아
이제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며 정규교육을 받는다.
바다 인도네시아
아무 수중 장비 없이 바다에 들어가 문어를 잡는 이.

인도네시아 카발루탄(Kabalutan)의 한 마을에 있는 조노 레싱(Jono Lessing)의 집. 거친 나무 바닥 사이, 그 아래 맑은 크리스털 초록빛 술라 웨시(Sulawesi) 바다가 넘실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마을의 집이 대부분 그러하듯 레싱의 집 역시 밀물과 썰물의 영향을 받지 않는 높이의 바다 위에 지었다. 레싱이 아내와 어린 아들과 함께 사는 이 집은 그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이다. 이보다 바다 가까이에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레싱은 어린 시절 육지에 발을 디딜 일이 거의 없었다. 그의 부모는 수세기 동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사이 산호 삼각지대인 무지갯빛 바다에서 보트를 타고 살았던 해상 유랑 문화를 이은 마지막 세대이기 때문이다.

바다 유목민 혹은 바다 집시라고 불리는 바자우라우트(BajauLaut)는 세상에서 가장 독특하고 전문화된 부족 중 하나다. 생존을 위해 바다에 의존하는 그들은 놀라운 프리다이빙 능력으로 유명한데, 수분간 숨을 참고 놀라울 만큼 깊은 곳까지 들어가 직접 만든 작살총으로 저녁 거리를 잡는다. 그들은 깊은 물속까지 다이빙하는 데 용이하도록 일반 사람보다 비장이 크게 진화했으며, 일부 사람들은 물속에서 초점을 더 잘 맞출 수 있게 시력이 발달했다. “저희 삶의 무대는 오직 바다입니다, 바다가 없는 삶은 끔찍할 거예요.”라고 레싱은 말한다. 웃는 아이들을 가득 실은 목선들이 집 뒤쪽으로 물을 튀기며 지나간다.

최근 수십 년 동안 바자우라우트족의 삶은 격변을 맞았다. 어족 자원 감소, 정부의 압력, 현대의 안락한 생활에 직면하며 소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서서히 방랑 생활을 포기하고 술라웨시 앞바다 토기안섬(Togean Island)의 마을에 정착했다.

부어부터 해삼까지 바다에 사는 모든 생물을 잡으며 하루를 보내는 레싱은 자신을 ‘문어 전문가’로 묘사하지만, 그는 부모 세대의 놀라운 기술과 지식을 보유한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다. 어느 날 오후, 그는 나중에 문어잡이를 나갈 때 나를 데려가겠다고 했다. 우리는 문어잡이 당일 아침 일찍 그의 작은 목선을 타고 출발했다. 약 한 시간 후, 레싱은 얕은 산호초 위에 배를 멈추고 수중 마스크에 김이 서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물속에서 해면 같은 것을 뽑아내어 문지른 후 바로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는 한 손으로는 배를 끌고, 다른 한 손에는 문어 미끼를 든 채 바다를 헤치고 나아간다. 나는 지느러미 같은 기구를 착용하고(바자우라우트족은 착용하지 않는다) 배나 미끼 같은 짐이 없는데도 그를 따라갈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번 문어잡이에서는 딱 한 마리만 잡았는데 문어는 레싱의 단단한 손아귀 안에서 꿈틀거리며 짙은 먹물을 구름처럼 뿜었다.

그날 오후, 그의 다이빙 솜씨를 보니 더욱 놀라웠다. 다부지고 약간통통한 체격, 숙련된 편안한 자세로 몇 번의 시도만으로 무려 수심 20m 아래로 잠수해 바다 밑 구석구석의 문어를 찾는 그에게 물속은 물 밖보다 편안한 세상 같았다. 그의 장비는 직접 깎은 나무 작살총으로 금속 볼트가 달려 있고, 타이어 고무로 만든 끈으로 묶여 있다. 그의 작살총은 표적을 빗나가는 법이 거의 없다. 세 살짜리 아들에게 이미 기술을 가르치고 있는 레싱은 “다이빙은 우리 문화의 중요한 부분입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이 전통이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바자우라우트족의 전통적인 바다에 기댄 생활 방식을 낭만적으로 묘사하기는 쉽다. 하지만 바다를 무대로 한 삶의 현실은 극도로 가혹했다. 저녁거리를 얻기 위해 40m 깊이의 바닷속으로 잠수하는 일이 매력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매일 그래야 하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었다. 배 위에서의 삶은 힘들고 고립되고 자주 위험했다. 그럼에도 그는 “이제 생활이 나아졌습니다. 저는 본토인 암파나(Ampana)의 상인에게 물고기를 파는데, 그게 더 이익이죠”라고 레싱은 말한다. “우리 자식 대에는 사정이 나아질 겁니다. 교육을 받으니까요.”

레싱의 아들 푸트라(Putra)는 아버지와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있다. 집에는 영어 알파벳 철자가 적힌 교육용 포스터가 벽에 걸려 있고, 심지어 방 한구석에 TV도 있어 애니메이션을 보기도 한다. 마을의 아이들은 이제 학교에 가서 더 넓은 세계에 대해 배우고 탁구, 배구, 가라오케 같은 육지의 오락을 즐긴다. 비록 이 마을에서 그나마 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물살 위에 매달린, 곧 무너질 듯한 나무 산책로가 전부지만 레싱은 오토바이도 소유하고 있다.

현대 기술을 받아들이면서 바자우라우트족은 위험할 정도로 효율적인 해양 사냥꾼이 되었다. 디젤엔진 덕분에 훨씬 더 많은 구역에서 고기를 잡을 수 있게 되었고, 값싸고 촘촘한 수입 그물망을 사용해 다양한 크기의 물고기를 더 손쉽게 건져 올릴 수 있게 됐다. 다수의 바자우라우트족 사람들은 다이너마이트나 금속염인 시안화물로 고기를 잡기도 했는데, 이것은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는 엄청나게 위험한 관행이다. 겉보기엔 낙원이지만, 현대 바자우라우트족이 손쉽게 어획하게 되면서 마을 주변 바다에는 생명체가 없거나 경제적 가치를 지닌 어종은 자취를 감췄다. 이처럼 새로운 생활양식은 남획을 불러왔고, 그들 스스로 수중 수렵 채집가로서 장기적 미래와 고유한 문화유산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이런 현실은 급속하게 축소되고 글로벌화한 21세기 세계에서 많은 토착 집단이 공통적으로 겪는 고충이다. 바자우라우트족 사람들 중에 자신들의 현재 삶이 이전보다 더 편안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미래가 이토록 불확실해 보인 적은 이전에 결코 없었다. 옛 방식과 새 방식, 세계와 지역 그리고 부를 획득하는 능력과 그들의 문화와 환경을 보호해야 할 책임의 균형을 맞추는 일은 이들이 풀어야 할 거대한 과제다. “50년 후에는 바자우라우트족 중 극소수만이 잠수하는 방법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제도 반대편의 한 마을에서 온 서른 일곱 살의 바자우라우트족 어부 다프린 암보탕(Dafrin Ambotang)이 한탄한다. 그의 아들은 현재 본토의 쇼핑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이전에는 (잠수해서) 물고기를 잡기가 쉬웠는데 지금은 훨씬 더 어려워졌습니다. 하지만 다이너마이트로 물고기를 잡는 것은 쉽습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죠.”

“이전처럼 물고기가 많지 않습니다”라고 레싱도 동의한다. 현재 그는 물고기가 아직 남아 있는 산호초를 찾기 위해 몇 시간을 이동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결국 육지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는데, 이곳의 많은 사람들이 피우는 담배에 들어가는 정향을 재배하고 있다. 바로 한 세대 전만 해도, 다수의 바자우라우트족 사람들은 보트의 흔들림을 느낄 수 없는 육지에 발을 디디면 육‘ 지 멀미’를 해서 애를 먹곤 했다. 레싱은 자기 부족 사람들의 삶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얼마나 빨리 변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제 부모님은 배를 타고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 중 일부는 바다에 관한 지식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바다 인도네시아
대부분의 바자우라우트족 사람들은 수중 마을에서 벗어나 토기안섬에 정착했다 .
바다 인도네시아
카발루탄의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바위에 어린 바자우라우트족 소녀가 앉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