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아가는 과정 속의 #이재인

이재인 BIFF
레이스업 원피스 레하(Leha), 안에 입은 흰색 티셔츠 아이디어(Idea), 비즈 네크리스 토요일(Toyoil).

이재인
<사바하> <우리들의 시간> <봉오동 전투>

상반기 <사바하>를 마친 이후에도 쉴 틈 없이 작품을 이어가는 중이다.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에 이어 <봉오동 전투>도 개봉했고, 곧 <아워 바디>도 개봉한다. 올해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나? 드라마 찍을 때를 제외하고는 무대 인사를 다니는 시간이 많았다. 이전에는 해본 적 없던 일인데, <사바하>와 <봉오동 전투>로 무대 인사를 다니면서 관객을 만나는 시간이 너무 좋았다. 처음에는 엄청 긴장했는데 갈수록 관객이 박수도 많이 쳐주고 반응이 좋으니까 자신감이 좀 생겼다. <사바하>로 한창 무대 인사를 다닐 때였는데, 인사하자마자 반응이 너무 좋아서 말을 하다가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무대 인사를 마친 뒤에도 마음이 벅차 한참 울었다.

확실히 <사바하>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고, 이를 배우 이재인의 대표작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바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영화인데, 그런 영화가 내 대표작으로 남는다는 것이 신기하고 감사하다. 아직도 얼떨떨한 기분이 남아 있다. <사바하>를 하면서 만난 ‘금화’라는 캐릭터도 좋았고, 감독님이나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도 좋았고, 열정 넘치는 스태프들과 같이 작업할 수 있었던 것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사바하>를 대표작으로 꼽아주시는 게 굉장히 감동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

<사바하>로 신인상을 무려 세 번이나 받았다. 혹시 수상 소감으로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하나? <사바하> 속 ‘금화’와 ‘그것’은 내가 만들어낸 인물이지만, 동시에 많은 분의 영향을 받아서 만든 캐릭터다. 그래서 금화와 그것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가장 많이 했다.

혹시 미처 못해서 아쉬운 말이 있나? 수상 소감 얘기할 때 반 친구들이랑 선생님을 빠뜨려서 친구들한테 불만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에 상을 탈 때는 반 친구들 이름을 꼭 말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다음에는 나에게도 말을 해주고 싶다. 사실 나 스스로 칭찬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남들이 해주는 칭찬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편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나도 날 한 번쯤 칭찬해줄 때가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바하>와 <아름다운 세상><봉오동 전투>에서 완전히 다른 인물을 연기했는데도 묘하게 세 인물 간의 접점이 있다. 보는 사람에게 연민을 갖게 만드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그동안 연기한 캐릭터들이 주로 슬픈 감정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린 배우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 폭넓지 않고, 슬픈 연기가 필요한 경우가 많아서 그런 것 같다. 그렇지만 모두 각각의 이야기를 가진 캐릭터를 표현할 수 있어서 좋았다.

박정민, 이정재, 유해진, 엄태구 등 여러 배우들과 호흡을 맞췄다. 같이 연기하는 배우들에게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을까? 말 그대로 어깨너머로 배우고 있다. 어떤 배우의 연기에서 좋은 부분을 바로 옆에서 보면서 ‘아, 이런 건 이렇게 하는구나’ 하고 조금씩 배우고 있다. 엄태구 선배님과 영화 <어른도감>을 함께 찍었는데, 능청맞은 캐릭터를 표현하는 방식을 보면서 ‘연기를 이렇게까지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태구 선배님이 촬영하기 전에 긴장을 풀기 위해 점프하는 걸 보고 나도 따라 해보면서 긴장을 풀어보기도 했다. 또 박정민 선배님이 눈앞에서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더 깊이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다.

작품을 해나가면서 조금씩 익숙해지는 부분이 있다면? 반대로 여전히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연기는 매번 새로운 것 같다. 항상 적응이 안 되고 카메라 앞에 서는 건 늘 떨리지만, 그나마 익숙해진 부분이 있다면 눈물 연기인 것 같다. 아무래도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많아서 이에 대해 계속 고민하다 보니까 지금은 나만의 작은 해답을 찾은 것 같다. 그런데 반대로 밝은 모습을 표현하는 건 어렵다. 어릴 때는 촬영이 되게 재미있고, 놀러 온 기분으로 하다 보니까 잘 나왔는데 이제 ‘나는 배우다. 꼭 잘해서 이제 보여드려야지’ 하는  책임감이 생기니까 오히려 어려워지는 것 같다.

혹시 본인을 캐스팅한 이유를 물어본 적 있나? 오디션을 볼 때마다 대본을 나름대로 세세하게 분석해가는 편이다. 이걸 장점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분석한 것을 설명 할 때 감독님들이 좋아해주시는 것 같다.

이른 나이에 연기를 시작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못해 아쉬운 건 무엇인가? 아직 내 성격을 잘 모르겠다. 성인이 되거나 자아가 확실히 확립되면 ‘내가 어떤 사람이다’라고 정의 내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은 그게 안 되는 것 같다. 나는 소심할 때도 있고, 되게 적극적일 때도 있고, 우울한 사람처럼 보이다가도 금세 밝아지기도 한다. 그런 부분이 혼란스럽지만 배우로서 연기할 때는 도움이 되기도 한다. 캐릭터에 따라서 이리저리 바꿀 수 있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역할에 따라서 내 인격 자체가 많이 흔들리면 안 되겠지만, 그런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인 것 같다.

빨리 성인이 돼 더 다양한 연기를 해보고 싶은가, 아니면 이 과정 자체를 조금 천천히 즐기고 싶은가? 성장하는 과정 자체가 즐겁다. 내가 이만큼, 여기까지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좀 뿌듯하기도 하고. 성급하게 쌓아가다 보면 무너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큰 변화를 주기보다는 천천히 나를 메워가고 싶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해보고 싶은 작품이 있나? 요즘 흥미 있는 장르가 액션이다.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하고, 스포츠도 굉장히 좋아하는데 요즘은 검도를 배우고 있다. 액션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 볼 때마다 되게 신기했다. 합을 맞추고 그런 부분에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 또 언젠가 내가 아주 좋은 작품을 쓰게 된다면, 내가 쓴 작품에 직접 출연해보고 싶다. 내가 썼으니까 내가 제일 잘 알 수 있고, 그래서 더 재밌는 작업이 될 것 같다.

이재인 BIFF

새로운 나를 찾아서 #김재영

김재영 BIFF
니트 터틀넥과 와이드 팬츠 모두 김서룡(Kimseoryong).

김재영
<돈> <은주의 방>

드라마 <은주의 방>, 영화 <돈>에 이어 지금은 두 편의 드라마를 촬영 중이다. 배우로 데뷔한 이래 가장 꽉 찬 한 해를 보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 있는 한 해를 보내지  않았나 싶다. 새로운 역할에 도전했고, 전보다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어디 가서 배우라고 당당하게 말하진 못한다. 내 입으로 쉽게 말하기 어려운 직업인 것 같다. 그래도 올해는 ‘내가 배우의 길을 향해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확고하게 든 것 같다.

영화 <돈>을 보면서 ‘우성’이라는 인물을 소화하기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우성처럼 완벽하다는 이유로 생겨난 캐릭터 전우성을 표현해야 하는 데다 유지태, 조우진,류준열 등 강렬한 힘을 가진 배우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연기를 해내야 했을 테니. 전우성이라는 캐릭터는 냉정한 돈의 세계에서 유일하게 돈보다 친구 일현(류준열)을 좇는 사람이다. 그래서 더 어려웠다. 혼자만 다른 지점에서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주눅이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밝고 위트 있는 우성의 분위기를 더 재미있게 살릴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크다. 작품을 보면 늘 아쉬운 부분이 크게 보인다.

그럼에도 전작에 비해 유연해졌다,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는 반응도 있다. 그동안 주로 어둡고 차가운 분위기의 역할을 많이 맡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게 내 본모습이라 그런 것 같다. 평소에는 <돈>의 우성처럼 까불거리고 장난스러운 성격이다. 오디션을 볼 때 엉뚱한 짓도 많이 하고, 말도 웃기게 했는데 감독님이 영화에도 그런 모습으로 나오면 좋겠다고 이야기하셨다. 나 스스로도 멋있거나 어두운 역할에서 벗어나 가볍고 밝은 역할을 해보고 싶은 갈증이 있었는데, <돈>과 드라마 <은주의 방>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는 만족한다.

연기하면서 대중의 반응에 신경 쓰는 편인가? 엄청 쓴다.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요즘은 더욱 그렇고. 실수를 안 해야겠다, 허점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점점 더 강해진다. 편해지고 싶고, 그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완벽히 떨쳐내기엔 아직 부족한 단계인 것 같다. 모델 출신이라는 사실도 지금은 괜찮지만, 전에는 신경 쓰이는 부분 중 하나였다. 오디션 볼 때 연기를 보여주기도 전에 모델은 연기를 못하니까 이미지만 보면 된다는 반응이 있었다. 그런 부분에 대해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지만 모델로 활동한 시간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 덕분에 연기를 하게 된 거니까.

지금까지 한 작품 중에서 스스로 만족하는 장면 하나를 꼽는다면? 영화 <두 남자>를 찍으면서 처음으로 연기하는 새로운 방식을 배우고 재미를 붙인 것 같다. 처음에는 무조건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는데, <두 남자> 때는 달랐다. 영화를 찍기 두 달 전부터 거의 매일 감독님과 만나서 같이 밥 먹고 영화 보면서 캐릭터 얘기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내가 살아온 환경을 대입해보기도 하고 캐릭터를 다른 방식으로 이해해보기도 했다. 악역이라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어떤 작품보다 감정이입이 잘됐다. 나름 만족하는 장면이 있다면 마동석 선배님을 때리는 신이다. 연습할 때는 솔직히 무서웠다. 누가 감히 마동석 선배님을 때릴 수 있겠나 싶어서. 그런데 막상 촬영할 때는 ‘성훈’이라는 캐릭터에 몰입해서 겁 없이 들이댄 것 같다.

캐릭터를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고 접근하나? 일단 이 캐릭터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혼자서 고민하는 시간을 한참 갖는다. 그러고 나서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감독님과 상의한다. 사실 <두 남자>의 성훈이라는 인물은 이해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렇게까지 악하게 굴어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고준 선배님과 대화하면서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됐다. 선배님이 <청년경찰>에서 장기 밀매를 하는 조선족 역할을 맡았었는데, 연기할 때는 자신이 하는 범죄가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해줬다. 범죄인 건 알지만 이걸 하지 않으면 우리 조선족 식구들이 굶어 죽는다, 그러니까 무조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다가갔다고. 그 얘기를 듣고 나서 내가 아니라 그 캐릭터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달리 보이는 것들이 생겼다.

배우로서 표현해내고 싶은 역할이나 작품이 있나? <은주의 방>에서 ‘민석’은 현실에서 찾기 힘든, 로망 같은 남자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현실의 연애에 있을 법한 남자를 연기해보고 싶다. 영화 <연애의 온도> 같은 로맨스물. 사실 망가지는 역할을 무척 해보고 싶다. 모델 때부터 지금까지 표현하기 가장 어려운 것이 멋있는 캐릭터다. 돈 많고, 일 잘하고, 선망의 대상으로 살아온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러지 못해서 그런지 자꾸 속으로 ‘그래도 사람인데’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멋있는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이질적이라고 느끼는 거다. 그래서 나를 내려놓고 맘껏 망가지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 내게서 나오는 에너지 중 가장 큰 밝음을 제대로 표출해보고 싶다.

배우로서 지금 고민하는 건 무엇인가?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필모그래피를 쌓을 때마다 반대로 나의 색을 잃어버리는 느낌이다. 요즘 그런 생각에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내가 맡은 캐릭터 말고 실제 내가 좋아하는 것, 나랑 잘 맞는 것이 뭔지에 대해서. 나에 대한 생각이 무뎌지는 것 같다. 아직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고민 속에서도 연기를 계속 해나가는 동력은 무엇인가? 어렵긴 하지만 내 안에서 무언가를 찾아가는 과정이 한편으로는 즐겁다. 연기하면서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새로운 걸 알아가는 과정도 좋다. 그럴 때마다 연기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김재영 BIFF
니트 터틀넥 김서룡(Kimseoryong).

두려움을 이기는 열망 #김혜준

김혜준 BIFF
크림 컬러 블라우스 렉토(Recto), 팬츠 르메르(Lemaire), 메리제인 슈즈 트리커즈 바이 유니페어(Tricker’s by Unipair), 양말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혜준

<킹덤> <미성년> <변신>

올해만 벌써 <킹덤> <미성년> <변신> 세 작품을 선보였다. 지금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나? 얼마 전까지 <변신>으로 무대 인사를 다니다가 지금은 <싱크홀>이라는 영화에 합류하게 됐다. 올해 하반기는 <싱크홀>을 찍으면서 보낼 것 같다.

매번 색깔이 완전히 다른 장르의 작품을 시도하고 있다. 새로운 것을 좇는 성향인가? 그보다 아직 한 게 별로 없어서 지금 하는 모든 것이 새로울 뿐이다. 사극도 공포물도 코미디물도 해본 적 없어서 다 처음일 수밖에 없다. 사실 소심한 편이고 도전도 잘 못하는 편인데도, 작품에서는 이건 나에게 큰 도전이라는 생각은 잘 하지 않는다. <변신>을 하면서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걸 제외하고는 처음이라 오히려 무서울 것 없다는 생각으로 한 것 같다.

그중 가장 익숙했던 처음이 있다면? 지금 찍고 있는 <싱크홀>의 ‘은주’ 역할. 은주가 신입 사원이라 주변 사람들 눈치도 많이 보고 주눅 들어 지내는데, 나도 평소에 낯을 많이 가리고 주변을 살피는 편이라 캐릭터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웹 드라마 <대세는 백합>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연기를 시작했을 때, 어떤 모습이었던 것 같나? 그때는 학교에서 단편 작업을 해서 나름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몰랐던 것 같다. 지금 보면 뭣도 모르고 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아무것도 몰라서 다 새로웠다.

어떻게 연기를 시작하게 됐나? 문득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이 찾아왔다. 어떤 작품을 보고 연기를 하고 싶어진 것이 아니라 어느 날 문득 내 안에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 외부의 자극으로 하기로 결심하게 됐다.

그럼 배우의 길을 계속 가도 되겠다는 확신을 가진 시기는 언제인가? 아직은 길을 찾아가는 중이다. 내가 연기로 사람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시기가 오면 확신을 갖게 될 것 같은데, 아마 내가 아는 나는 평생 만족하지 못할 거다. 자존감이 낮은 편인지 연기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히는 편이다.

그럼에도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다는 반응이 있다. 전에는 무조건 아니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 흘려들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런 말들을 곱씹으면서 힘을 얻으려고 한다. 내 자존감을 높이는 데 보탬이 될 수 있게 하려고 한다.

자신이 연기한 작품을 볼 때 어떤 생각을 하나? 당연히 내가 못한 부분이 먼저 보인다. 그래서 제대로 들여다보기 위해 항상 작품을 몇 번씩 다시 본다. 처음에는 나만 보이다가 두 번째는 같이 연기한 사람들과의 앙상블이 보이고, 세 번째는 전체를 보면서 분석해간다. 현장의 상황을 떠올리며 내가 여기서 어떻게 했어야 하고, 그래서 다음 작품에서는 이렇게 대처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다. 작품을 계속 들여다보는 과정이 나에게는 일종의 오답 노트를 만드는 것과 같다.

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 상상하거나 꿈꿨던 일이 이뤄진 적이 있나? 감사하게도 조금씩 이뤄나가고 있어서 행복하다. 그중 하나가 멋있는 선배님들과 호흡을 맞추는 거다. 첫 작품이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였는데, 거기서 한석규 선배님과 호흡을 맞췄다. <최고의 이혼>의 배두나 선배님이나 <미성년>의 염정아, 김윤석 선배님 같은 분들을 만날 때마다 꿈이 이뤄진 기분이고, 마냥 신기하다.

<미성년>에서 배우 겸 감독 김윤석과 아빠와 딸로 호흡을 맞추는 동시에 감독과 배우로도 촬영했다. 연기를 잘하는 감독에게 디렉팅을 받는 것이 어려웠을 것 같은데. 촬영하는 동안에는 무척 어려웠다. 그런데 감독님이 늘 해결책을 제시하는 대신 내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거짓으로 연기하고 있거나 감정이 충분히 쌓이지 않았는데 대사를 내뱉는 부분은 날카롭게 잡아내셨지만, 다시 어떻게 해볼지는 내 몫이었다. 또 잘했다거나 못했다는 평가를 한 번도 하지 않으셨다. 그 점에 굉장히 감사한다. 못한다고 하면 주눅 들고, 잘한다고 하면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부담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건 배우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해줄 수 있는 배려가 아니었을까 싶다.

어떤 작품에 욕심이 생기는 편인가? 오디션 대본을 읽다 보면 유독 내 말처럼 느껴지는 작품이 있다. 그런 작품은 늘 오디션을 재미있게 봤고, 욕심이 생기고, 결과도 좋은 편이었다. 드라마 <다시 만난 세계>가 그랬다.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에서 실제와 나이가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역할을 맡았다. 그래서 항상 그때의 자신을 투영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사실 연기를 할 때마다 내 성격을 완전히 배
제하고 새로운 캐릭터를 구축하지 못한다. 일부러 투영하려는 건 아니지만, 모든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내 성격과 말투를 조금씩 투영한 것 같다.

지금 가장 자연스럽게 나오는 감정과 어렵게 표현되는 감정은 무엇인가? 자연스러운 건 멍때리는 것과 자는 것.(웃음) 그 외에는 다 어렵다. 생각보다 일상적인 평범한 대화도, 극단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어렵다.

연기하면서 언제 가장 큰 희열을 느끼나? 다 힘든데 그게 또 재미있다. 원래 힘들면 안 하는 스타일인데, 연기는 그런 생각이 안 들고 어떻게 하면 극복할지를 고민한다. 해결되지 않는 부분들을 해결해나갈 때, 영화가 나왔을 때, 그에 대한 평을 볼 때 매번 짜릿함을 느낀다. 현장에서도 긍정 에너지를 많이 받는다.

지금까지 연기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있다면? “내년은 너의 해야.” 하하. 3년째 이 말을 듣고 있다. 그리고 내 입으로 얘기하긴 민망하지만 이해가 빠르다는 얘기를 들어왔다.

자신의 얘기를 꺼내는 걸 조심스러워하고,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부끄러워하는 성격이라고 들었다. 그럼에도 배우라는 직업을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이 있을까? 진짜 신기하다. 어릴 때부터 수업 중에 발표하는 걸 제일 싫어했고, 지금도 발표하는 날에는 학교에 안 간다. 그런 내가 배우가 된 게 아직도 의문이다. 아마 부끄러움을 견뎌내고 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한 것 같다.

배우로서 어떤 식으로 다음을 만들어가고 싶나? 이렇게 된 이상 모든 장르를 섭렵해보고 싶다. 아직 해보지 않은 장르가 많다. 그런 기회가 생길 수 있도록 노력하는 중이다.

김혜준 BI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