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이민기

이민기 스타화보
베이지 롱 코트, 화이트 셔츠, 네이비 팬츠, 타이 모두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 블랙 로퍼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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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원 버튼 재킷, 도트 프린트 셔츠, 블랙 트라우저, 커머번드 모두 지방시(Givenchy), 메탈 디테일 블랙 로퍼 벨루티(Berl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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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지 싱글 브레스티드 재킷, 베이지 팬츠 모두 산드로(Sandro), 화이트 스니커즈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민기 스타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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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그린 더블 체크 재킷, 다크 그린 체크 트라우저, 하이넥 셔츠 모두 우영미(WooYoungMi), 블랙 워커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드라마 <모두의 거짓말>은 <뷰티 인사이드>가 끝나고 1년여 만의 작품이다. 연기하지 않는 시간 동안 뭘 하며 지냈나? 스스로도 의아할 만큼 뭘 하며 지냈는지 모른 채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뷰티 인사이드> 촬영이 끝나고 감독판 DVD를 위한 작업도 했고 동남아의 작은 섬으로 짧은 일정의 여행도 다녀왔다. 섬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고 가만히 누워 있기도 하고 그랬다. 외로움도 여행의 일부라고 생각하며 혼자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모두의 거짓말>을 일찌감치 제안받은 터라 홀가분하게 다른 일을 할 수는 없었다. 그동안 스릴러라는 장르를 크게 관심을 가지고 보지 않았기 때문에 장르에 대해 공부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금세 지나가더라.

작품을 하지 않는 동안 주어지는 많은 시간을 규칙적으로 보내는 편인가? 어릴 때는 깨어 있거나 자거나 노는 시간이 모두 그냥 내 시간이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하루를 규칙적으로 보내야 정신적으로 안정감이 들더라. 지금은 매일 아침을 운동으로 시작하는데, 운동을 하면 하루를 밝은 기운으로 시작할 수 있다. 호르몬의 영향도 있겠지만 좋은 에너지를 얻는 것 같다. 그런 다음엔 정해진 일을 한다. 그 주에 읽기로 한 책이 있으면 읽고 만나기로 한 사람이 있으면 만나고. 작품을 하지 않을 때도 되도록 루틴에 따라 움직인다. 하루가 정리되어 있어야 맘이 편하다. 전에는 정해져 있으면 갑갑하고, 규칙이 스트레스로 다가왔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를 최소한으로 잡아주는 어떤 틀이 있는 편이 좋다.

<모두의 거짓말>은 처음 하는 장르물이고 형사를 연기한다. 전작과 인물의 결이 많이 다를 것 같다. 사실 캐릭터는 크게 특별할 건 없다. 그래서 끌렸다. 장르물은 보통 사건 중심인데 <모두의 거짓말>은 사건을 따라가다 보면 사람한테 빠지는 드라마가 될 것 같다. 드라마나 영화 속 형사들은 보통 뛰어난 능력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머리가 비상하거나 모든 것을 기억하거나 그런 능력. 그런데 내가 연기하는 ‘조태식’은 지극히 보통 사람이다. 그 보통 사람이 어떤 사건을 맞닥뜨렸을 때의 느낌이 좋았다. 평범한 30대 후반의 형사가 되고 싶어 살도 좀 찌웠다. 전작인 <뷰티 인사이드>와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서 내가 연기한 인물은 사실 보통 사람이 아니지 않나. 굉장히 이상적인 인물들이다. 반면 이번에 연기하는 인물은 강인해야 할 때 강인하고, 여릴 때 여리다. 어떤 환경에 처했을 때 그 환경에 따라 대응하는 보통 사람이다.

스릴러라는 장르에 지금껏 큰 관심이 없었음에도 이번 작품을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가 뭔가? 우선은 이윤정 감독과의 인연. 감독님이 연출하는 작품이라기에 선뜻 시나리오를 받아 들었고 첫 장을 읽으며 꽂혔다. ‘훗날 이 시대의 비극이 뭐냐고 묻는다면 악한 이들의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이들의 침묵일 것이다.’ 드라마가 이런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고? 그렇다면 하고 싶다, 할수 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난 <마리끌레르>와의 인터뷰에서 캐릭터를 준비할 때 뭔가 손으로 끄적인다고 했다. 이번 인물도 그런 식으로 준비를 했나? 보통의 사람이어서 이번에는 특별히 끄적일 만한 내용이 없었다. 대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써봤다. 이 인물을 연기하는 동안 내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적었다. 아무래도 전작을 통해 습득한 것들이 있을 텐데, 그게 무언지 곰곰이 생각했다. 사실 그 모든 걸 종합하면 ‘멋있지 말자’다.

채우기보다 덜어내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 같다. 그렇다. 각 잡지 않고 지내려고 했다. 걸음걸이를 비롯한 여러 행동을 좀 헐렁헐렁하게 하려 했다. 또 스릴러라는 장르를 잘 알지 못해 관련 작품을 많이 찾아서 봤다.

대본 리딩을 할 때 이윤정 감독이 이‘ 계절이 좋은 계절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향하는 현장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일하다 보면 개인의 기분이나 컨디션도 굉장히 중요하지 않나. 그런데 내 개인적인 감정이 내 태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 작품을 위해서 모였으니 다 같이 좋은 마음으로 하자, 그런 마음으로 모였으니 우리에겐 좋은 계절이 될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정말 현장이 아름답다. 배우와 제작 스태프들이 그런 현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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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하이넥 셔츠 코스(COS). 블랙 울 팬츠 준지(Juun.J).

<모두의 거짓말>은 배우 이유영을 비롯해 많은 배우가 함께한다. 한두 명의 주연배우가 극을 이끌어가는 작품과 달리 여러 인물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가는데 이 역시 전작들과 다른 점일 것 같다.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나마 내가 상대하는 인물이 많은 편이다. 형사라서 수사하러 가면 국회의원들도 만나니까. 여러 캐릭터와 호흡을 맞추니 또 다른 재미가 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촬영하는 나조차 내용을 절반밖에 모른다. 나머지는 방송을 봐야 알 수 있다. 드라마는 보통 대략적인 분위기를 가늠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다. 대본이 어떻게 완성될지 궁금하다.

데뷔작인 <베스트극장: 태릉선수촌>(이하 <태릉선수촌>)을 함께 한 이윤정 감독과 하는 작업이니 문득 그 시절이 떠오르기도 할 것 같다. 그때는 감독과 배우 모두 지금보다 어리고 모든 것이 서툴던 때가 아닌가? 가끔 감독님과 그때 더 잘했던 것 같다고 얘기한다.(웃음) 10여 년이 지나 만났는데 그때 보다 훨씬 잘해야 할 텐데 부담이라고 했더니 감독님도 같은 마음이라고 하더라. 사실 이번에도 감독님과 내게 많은 것이 처음이다. 장르물도 처음이고. 그런데 우리 둘 다 그때와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나는 사실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까 감독님이 그때보다 조금은 권위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여전히 현장에서 다른 스태프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이 드라마는 모두가 함께 하는 일이야. 여기에 누구 하나 특출한 사람은 없어.’ 감독님은 이런 생각으로 현장에 있는다. 사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서로 그때랑 똑같다고 한다.(웃음) 그리고 감독님이 예민하게 지켜보고 반응하는 면도 여전하다. 아니, 그런 면은 오히려 더 좋은 쪽으로 변한 것 같다.

과거에 같이 일하며 좋은 기억을 남긴 사람과 다시 일하는 건 좋은 일일 것 같다. 아주 좋다. 일단 인간적인 신뢰가 있고. 같은 말을 해도 섞이는 감정에 따라 다르게 들리는데, 작품을 함께 하고 나면 서로 마음에 닿는 부분이 많아진다. 그래서 소통도 훨씬 편하고.

배우로서 <태릉선수촌> 때와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무언가? 그때는 연기하는 게 꿈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일 같다. 그래서 지금이 더 어렵고 힘들다. 꿈은 꾸면 되는 건데 일은 잘해내야 하니까. 마음의 무게가 달라진 것 같다.

배우는 현장에서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사람이자 한 작품을 다른 사람들과 같이 만들어가야 하는 위치에 있다. 작품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다짐하지는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확신할 것, 불안해하지 말 것, 그렇게 현장에 있을 것인 것 같다. 내가 그래야 함께 작업하는 스태프들이나 배우들도 굳건하니까. 드라마는 촬영 기간도 길고 힘들지 않나. 모두가 예민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런 현장에서 평온하게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내가 예민해지거나 지쳐 있으면 작품과 현장 분위기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겠지.

흔들리지 않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또 없다. 언제라도 예상치 못한 순간을 맞닥뜨릴 수 있으니 말이다. 가장 좋은 건 흔들릴 법한 작품을 선택하지 않는 거지.(웃음) 확신이 잘 서지 않을 때는 조심스럽게 다가가게 된다.

드라마는 영화와 달리 매회 끝날 때마다 반응을 알 수 있다. 그런 피드백이 배우의 연기를 흔들 수도 있고. <뷰티 인사이드>도 초반에는 배우 이민기가 설정한 연기를 놓고 호불호가 갈렸다. 그럴 때는 확신이 의문으로 바뀔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지 않았다. 확신이 있었거든. 초반에 주변 반응을 보고, 그렇다면 내가 캐릭터 해석을 다르게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캐릭터에 대한 내 해석이 맞다고 생각했고 이 인물을 다른 식으로 풀어야 했다면 이 역할을 맡지 않았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다행히 그런 마음이 잘 전달되었다. 내가 연기할 때 확신이 없는 채 긴가민가했으면 흔들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았다.

<태릉선수촌>의 마지막 회 소제목이 ‘봉우리’였던 걸 기억하나? 아마도 봉우리가 누군가의 목표, 선수들의 목표, 인간으로서의 목표를 의미했던 것 같다. 여전히 오르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뭔가? 운동선수들의 목표는 보통 세계 대회 금메달이지만 <태릉선수촌>에서 내가 오른 봉우리는 동메달이었다. 높은 봉우리를 오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내가 어떤 봉우리를 넘었다고 해서 다음에 넘게 될 봉우리가 꼭 더 높지는 않을 수 있다. 중요한 건 봉우리 자체보다는 어떤 봉우리든지 올랐을 때보다 올려다볼 때 설렌다는 거다. 그리고 그 설렘을 품고 봉우리를 오를 열정이 계속 솟으면 되지 않을까? 그러길 바란다.

열정이 여전히 충만한가? 열정의 방식이 다른 것 같다. 마냥 뜨겁지만은 않다. 20대에는 마냥 뜨거웠다. 열정과 열기를 방출했는데 점점 일로 다가오면서 신중해졌다. 이제는 무작정 열기를 표출하기보다는 좀 다듬어졌다고 해야 하나?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무던해지는 것 같다. 그게 좋은 점이기도 하고 때론 무던해져서 힘들다. 배우로서 좀 더 예민하고 날카로운 감성을 가져야 할 것 같은데 게으르고 나태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 다시 그런 내가 편하게 느껴지고. 상반된 마음이 교차한다. 나이 드는 것에 관한 책을 보면 ‘인생은 살수록 행복하다’고 말하는데, 그런 말에 수긍하다가도 오‘ 늘이 내가 가장 젊은 날이니 뭐라도 해야 하는데’ 하며 조급해진다.

<모두의 거짓말>로 함께하는 지금의 계절이 어떤 계절로 기억되길 바라나? 궁금한 계절이 되려나? 보통 드라마를 할 때 시놉시스를 보면 어떤 식으로 진행되고 끝맺을지 알 수 있는데 이번 작품은 이후 상황을 알려주지 않는다. 배우만이 아니라 스태프들도 모른다. 작가와 감독님만 안다. 우리 모두 모른 채 있기로 약속했다. 가끔 주인공이니 내용을 알지 않느냐며 나를 추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도 정말 모른다.(웃음) 그래서 기다리는 재미가 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해지고.

아직 드라마가 방영되지 않았지만 이 드라마가 끝나고 <모두의 거짓말>이 본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7개월 넘게 이 작품에 몸담고 이 작품을 위해 고민하며 시간을 보냈으니 그 시간만큼 넓어지든 깊어지든 혹은 무언가를 덜어내 가벼워지든 아니면 뭔가 쌓이든 풀어지든 했으면 좋겠다.

이민기 스타화보
라운드 칼라 반코트 누메로벤투노 바이 한스타일(N˚21 by Han Style), 블랙 울 팬츠 준지(Juun.J), 블랙 앵클부츠 코스(COS), 화이트 니트 스웨터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새로운 나를 찾아서 #김재영

김재영 BIFF
니트 터틀넥과 와이드 팬츠 모두 김서룡(Kimseoryong).

김재영
<돈> <은주의 방>

드라마 <은주의 방>, 영화 <돈>에 이어 지금은 두 편의 드라마를 촬영 중이다. 배우로 데뷔한 이래 가장 꽉 찬 한 해를 보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 있는 한 해를 보내지  않았나 싶다. 새로운 역할에 도전했고, 전보다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어디 가서 배우라고 당당하게 말하진 못한다. 내 입으로 쉽게 말하기 어려운 직업인 것 같다. 그래도 올해는 ‘내가 배우의 길을 향해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확고하게 든 것 같다.

영화 <돈>을 보면서 ‘우성’이라는 인물을 소화하기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우성처럼 완벽하다는 이유로 생겨난 캐릭터 전우성을 표현해야 하는 데다 유지태, 조우진,류준열 등 강렬한 힘을 가진 배우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연기를 해내야 했을 테니. 전우성이라는 캐릭터는 냉정한 돈의 세계에서 유일하게 돈보다 친구 일현(류준열)을 좇는 사람이다. 그래서 더 어려웠다. 혼자만 다른 지점에서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주눅이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밝고 위트 있는 우성의 분위기를 더 재미있게 살릴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크다. 작품을 보면 늘 아쉬운 부분이 크게 보인다.

그럼에도 전작에 비해 유연해졌다,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는 반응도 있다. 그동안 주로 어둡고 차가운 분위기의 역할을 많이 맡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게 내 본모습이라 그런 것 같다. 평소에는 <돈>의 우성처럼 까불거리고 장난스러운 성격이다. 오디션을 볼 때 엉뚱한 짓도 많이 하고, 말도 웃기게 했는데 감독님이 영화에도 그런 모습으로 나오면 좋겠다고 이야기하셨다. 나 스스로도 멋있거나 어두운 역할에서 벗어나 가볍고 밝은 역할을 해보고 싶은 갈증이 있었는데, <돈>과 드라마 <은주의 방>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는 만족한다.

연기하면서 대중의 반응에 신경 쓰는 편인가? 엄청 쓴다.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요즘은 더욱 그렇고. 실수를 안 해야겠다, 허점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점점 더 강해진다. 편해지고 싶고, 그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완벽히 떨쳐내기엔 아직 부족한 단계인 것 같다. 모델 출신이라는 사실도 지금은 괜찮지만, 전에는 신경 쓰이는 부분 중 하나였다. 오디션 볼 때 연기를 보여주기도 전에 모델은 연기를 못하니까 이미지만 보면 된다는 반응이 있었다. 그런 부분에 대해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지만 모델로 활동한 시간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 덕분에 연기를 하게 된 거니까.

지금까지 한 작품 중에서 스스로 만족하는 장면 하나를 꼽는다면? 영화 <두 남자>를 찍으면서 처음으로 연기하는 새로운 방식을 배우고 재미를 붙인 것 같다. 처음에는 무조건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는데, <두 남자> 때는 달랐다. 영화를 찍기 두 달 전부터 거의 매일 감독님과 만나서 같이 밥 먹고 영화 보면서 캐릭터 얘기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내가 살아온 환경을 대입해보기도 하고 캐릭터를 다른 방식으로 이해해보기도 했다. 악역이라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어떤 작품보다 감정이입이 잘됐다. 나름 만족하는 장면이 있다면 마동석 선배님을 때리는 신이다. 연습할 때는 솔직히 무서웠다. 누가 감히 마동석 선배님을 때릴 수 있겠나 싶어서. 그런데 막상 촬영할 때는 ‘성훈’이라는 캐릭터에 몰입해서 겁 없이 들이댄 것 같다.

캐릭터를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고 접근하나? 일단 이 캐릭터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혼자서 고민하는 시간을 한참 갖는다. 그러고 나서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감독님과 상의한다. 사실 <두 남자>의 성훈이라는 인물은 이해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렇게까지 악하게 굴어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고준 선배님과 대화하면서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됐다. 선배님이 <청년경찰>에서 장기 밀매를 하는 조선족 역할을 맡았었는데, 연기할 때는 자신이 하는 범죄가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해줬다. 범죄인 건 알지만 이걸 하지 않으면 우리 조선족 식구들이 굶어 죽는다, 그러니까 무조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다가갔다고. 그 얘기를 듣고 나서 내가 아니라 그 캐릭터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달리 보이는 것들이 생겼다.

배우로서 표현해내고 싶은 역할이나 작품이 있나? <은주의 방>에서 ‘민석’은 현실에서 찾기 힘든, 로망 같은 남자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현실의 연애에 있을 법한 남자를 연기해보고 싶다. 영화 <연애의 온도> 같은 로맨스물. 사실 망가지는 역할을 무척 해보고 싶다. 모델 때부터 지금까지 표현하기 가장 어려운 것이 멋있는 캐릭터다. 돈 많고, 일 잘하고, 선망의 대상으로 살아온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러지 못해서 그런지 자꾸 속으로 ‘그래도 사람인데’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멋있는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이질적이라고 느끼는 거다. 그래서 나를 내려놓고 맘껏 망가지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 내게서 나오는 에너지 중 가장 큰 밝음을 제대로 표출해보고 싶다.

배우로서 지금 고민하는 건 무엇인가?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필모그래피를 쌓을 때마다 반대로 나의 색을 잃어버리는 느낌이다. 요즘 그런 생각에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내가 맡은 캐릭터 말고 실제 내가 좋아하는 것, 나랑 잘 맞는 것이 뭔지에 대해서. 나에 대한 생각이 무뎌지는 것 같다. 아직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고민 속에서도 연기를 계속 해나가는 동력은 무엇인가? 어렵긴 하지만 내 안에서 무언가를 찾아가는 과정이 한편으로는 즐겁다. 연기하면서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새로운 걸 알아가는 과정도 좋다. 그럴 때마다 연기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김재영 BIFF
니트 터틀넥 김서룡(Kimseoryong).

두려움을 이기는 열망 #김혜준

김혜준 BIFF
크림 컬러 블라우스 렉토(Recto), 팬츠 르메르(Lemaire), 메리제인 슈즈 트리커즈 바이 유니페어(Tricker’s by Unipair), 양말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혜준

<킹덤> <미성년> <변신>

올해만 벌써 <킹덤> <미성년> <변신> 세 작품을 선보였다. 지금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나? 얼마 전까지 <변신>으로 무대 인사를 다니다가 지금은 <싱크홀>이라는 영화에 합류하게 됐다. 올해 하반기는 <싱크홀>을 찍으면서 보낼 것 같다.

매번 색깔이 완전히 다른 장르의 작품을 시도하고 있다. 새로운 것을 좇는 성향인가? 그보다 아직 한 게 별로 없어서 지금 하는 모든 것이 새로울 뿐이다. 사극도 공포물도 코미디물도 해본 적 없어서 다 처음일 수밖에 없다. 사실 소심한 편이고 도전도 잘 못하는 편인데도, 작품에서는 이건 나에게 큰 도전이라는 생각은 잘 하지 않는다. <변신>을 하면서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걸 제외하고는 처음이라 오히려 무서울 것 없다는 생각으로 한 것 같다.

그중 가장 익숙했던 처음이 있다면? 지금 찍고 있는 <싱크홀>의 ‘은주’ 역할. 은주가 신입 사원이라 주변 사람들 눈치도 많이 보고 주눅 들어 지내는데, 나도 평소에 낯을 많이 가리고 주변을 살피는 편이라 캐릭터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웹 드라마 <대세는 백합>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연기를 시작했을 때, 어떤 모습이었던 것 같나? 그때는 학교에서 단편 작업을 해서 나름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몰랐던 것 같다. 지금 보면 뭣도 모르고 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아무것도 몰라서 다 새로웠다.

어떻게 연기를 시작하게 됐나? 문득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이 찾아왔다. 어떤 작품을 보고 연기를 하고 싶어진 것이 아니라 어느 날 문득 내 안에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 외부의 자극으로 하기로 결심하게 됐다.

그럼 배우의 길을 계속 가도 되겠다는 확신을 가진 시기는 언제인가? 아직은 길을 찾아가는 중이다. 내가 연기로 사람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시기가 오면 확신을 갖게 될 것 같은데, 아마 내가 아는 나는 평생 만족하지 못할 거다. 자존감이 낮은 편인지 연기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히는 편이다.

그럼에도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다는 반응이 있다. 전에는 무조건 아니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 흘려들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런 말들을 곱씹으면서 힘을 얻으려고 한다. 내 자존감을 높이는 데 보탬이 될 수 있게 하려고 한다.

자신이 연기한 작품을 볼 때 어떤 생각을 하나? 당연히 내가 못한 부분이 먼저 보인다. 그래서 제대로 들여다보기 위해 항상 작품을 몇 번씩 다시 본다. 처음에는 나만 보이다가 두 번째는 같이 연기한 사람들과의 앙상블이 보이고, 세 번째는 전체를 보면서 분석해간다. 현장의 상황을 떠올리며 내가 여기서 어떻게 했어야 하고, 그래서 다음 작품에서는 이렇게 대처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다. 작품을 계속 들여다보는 과정이 나에게는 일종의 오답 노트를 만드는 것과 같다.

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 상상하거나 꿈꿨던 일이 이뤄진 적이 있나? 감사하게도 조금씩 이뤄나가고 있어서 행복하다. 그중 하나가 멋있는 선배님들과 호흡을 맞추는 거다. 첫 작품이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였는데, 거기서 한석규 선배님과 호흡을 맞췄다. <최고의 이혼>의 배두나 선배님이나 <미성년>의 염정아, 김윤석 선배님 같은 분들을 만날 때마다 꿈이 이뤄진 기분이고, 마냥 신기하다.

<미성년>에서 배우 겸 감독 김윤석과 아빠와 딸로 호흡을 맞추는 동시에 감독과 배우로도 촬영했다. 연기를 잘하는 감독에게 디렉팅을 받는 것이 어려웠을 것 같은데. 촬영하는 동안에는 무척 어려웠다. 그런데 감독님이 늘 해결책을 제시하는 대신 내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거짓으로 연기하고 있거나 감정이 충분히 쌓이지 않았는데 대사를 내뱉는 부분은 날카롭게 잡아내셨지만, 다시 어떻게 해볼지는 내 몫이었다. 또 잘했다거나 못했다는 평가를 한 번도 하지 않으셨다. 그 점에 굉장히 감사한다. 못한다고 하면 주눅 들고, 잘한다고 하면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부담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건 배우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해줄 수 있는 배려가 아니었을까 싶다.

어떤 작품에 욕심이 생기는 편인가? 오디션 대본을 읽다 보면 유독 내 말처럼 느껴지는 작품이 있다. 그런 작품은 늘 오디션을 재미있게 봤고, 욕심이 생기고, 결과도 좋은 편이었다. 드라마 <다시 만난 세계>가 그랬다.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에서 실제와 나이가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역할을 맡았다. 그래서 항상 그때의 자신을 투영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사실 연기를 할 때마다 내 성격을 완전히 배
제하고 새로운 캐릭터를 구축하지 못한다. 일부러 투영하려는 건 아니지만, 모든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내 성격과 말투를 조금씩 투영한 것 같다.

지금 가장 자연스럽게 나오는 감정과 어렵게 표현되는 감정은 무엇인가? 자연스러운 건 멍때리는 것과 자는 것.(웃음) 그 외에는 다 어렵다. 생각보다 일상적인 평범한 대화도, 극단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어렵다.

연기하면서 언제 가장 큰 희열을 느끼나? 다 힘든데 그게 또 재미있다. 원래 힘들면 안 하는 스타일인데, 연기는 그런 생각이 안 들고 어떻게 하면 극복할지를 고민한다. 해결되지 않는 부분들을 해결해나갈 때, 영화가 나왔을 때, 그에 대한 평을 볼 때 매번 짜릿함을 느낀다. 현장에서도 긍정 에너지를 많이 받는다.

지금까지 연기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있다면? “내년은 너의 해야.” 하하. 3년째 이 말을 듣고 있다. 그리고 내 입으로 얘기하긴 민망하지만 이해가 빠르다는 얘기를 들어왔다.

자신의 얘기를 꺼내는 걸 조심스러워하고,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부끄러워하는 성격이라고 들었다. 그럼에도 배우라는 직업을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이 있을까? 진짜 신기하다. 어릴 때부터 수업 중에 발표하는 걸 제일 싫어했고, 지금도 발표하는 날에는 학교에 안 간다. 그런 내가 배우가 된 게 아직도 의문이다. 아마 부끄러움을 견뎌내고 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한 것 같다.

배우로서 어떤 식으로 다음을 만들어가고 싶나? 이렇게 된 이상 모든 장르를 섭렵해보고 싶다. 아직 해보지 않은 장르가 많다. 그런 기회가 생길 수 있도록 노력하는 중이다.

김혜준 BI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