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계로 빠져드는 #안지호

안지호 BIFF
스웨트셔츠와 안에 입은 셔츠, 코듀로이 팬츠 모두 폴로 랄프 로렌(Polo Ralph Lauren), 슈즈 커먼 프로젝트(Common Projects), 양말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안지호
<보희와 녹양> <나의 특별한 형제> <우리집>

연기를 처음 시작한 게 언제였나? 초등학교 5학년 겨울에 시작했다.

처음부터 연기에 재미를 느낀 건가? 그런 것 같다. 연기를 배울 때 어떤 상황을 설정하고 자유롭게 즉흥 연기를 해보라고 한 적이 있다. 그게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게임하듯이 놀았다. 그때부터 연기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아무 대본도 없는 즉흥 연기를 즐기는 사람은 드문데, 확실히 타고난 면이 있는 것 같다. <우리집> 오디션도 즉흥 연기로 봤다. 주어진 어떤 영화에 나오는 상황에서 자유롭게 연기하는 것이 최종 오디션이었는데 되게 재미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부족한 점을 어떻게든 보완하고 싶어서 노력하고 있다. 그나마 재능이라면 평소에 그리는 걸 좋아하는데, 그리면서 상상하는 것이 많다. 그런 상상이 연기에 도움이 되는 것 같긴 하다.

안지호라는 배우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영화 <보희와 녹양>이다.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감독님이 영화 <가려진 시간>을 보시고 거기서 내가 맡았던 역할이 ‘보희’와 비슷한 점이 있다며 나를 캐스팅하셨다.

보희라는 인물을 연기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 보희는 섬세하고 겁 많고 소심하지만 순수한 아이다. 보희가 가진 그런 특징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그중 가장 신경  쓴 건 보희가 앓고 있는 신경성 기흉이라는 병을 표현하는 거였다. 이 병의 증상을 찾아보고 이해하고 표현하려고 애썼는데 잘 못한 것 같아서 아직도 그 부분이 많이 아쉽다.

혹시 연기하면서 자신이 보희와 닮았다고 생각한 지점이 있나? 보희의 소심한 어떤 부분에 공감한 적이 있다. 또 나도 보희처럼 겁이 좀 많다. 그것 빼고는 다 다르다. 보희는 수영 말고는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데, 나는 학교에서 맨날 축구나 농구를 하며 논다. 특히 축구를 무척 좋아한다. 축구 하다가 다리가 두 번이나 부러졌는데도 축구가 좋다. 얼마 전에도 학교 대표로 나가서 준우승을 했다.

영화에서 꽤 과감한 노출도 감행했다. 대본에 그렇게 써 있기는 했지만 정말 벗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런데 진짜 벗어야 한다고 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같이 연기하는 서현우 선배님이 먼저 벗으셔서(웃음) 그때부터 부끄럼 없이 정말 재밌게 놀면서 연기했다.

어느 때보다 배우로서 특별한 한 해를 보내고 있다. <보희와 녹양> <나의 특별한 형제> <우리집>이 연이어 호평받았다. 아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세 작품 모두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소중한 추억이 될 것 같다. 정말 행복하고 한편으론 긴장도 되면서 설렌 해로 기억이 남을 것 같다.

<우리집>에서 부모의 싸움을 겪는 ‘찬희’나 <보희와 녹양>에서 아빠 얼굴을 모르는 ‘보희, ’, <나의 특별한 형제>에서 장애를 가진 ‘세하’ 모두 실제로 겪어본 적 없는 일을 연기해내야 했다. 이를 표현하는 데 어떤 과정이 필요했나? 그냥 그 인물이 처한 상황에 더 들어가보려고 했다. ‘이건 이런 감정으로 생각하고 표현해야겠다’고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그 인물로서 느껴지는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려고 한다. 그리고 계속 연습하는 수밖에 없다. 특히 <나의 특별한 형제>는 처음으로 몸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고 연기를 해야 했는데, 그래서 화가 나거나 눈물이 터지는 감정의 변화가 일어날 때 본능적으로 생기는 움직임을 자제하려고 연습을 많이 했다. <우리집>은 상대적으로 인물이 처한 상황에 몰입하기가 수월했다. 사실 <우리집>은 대본이 없었다. 촬영 전에 다 같이 만나서 감독님이 상황을 알려주면 연기하고, 그때 나온 말을 대사로 옮겨 써주셨다. 내 입에 편한 말로 대사를 만들다 보니 외우기도 쉽고, 촬영할 때도 ‘아 이때 이랬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상황에 빠질 수 있었다.

세 작품 모두 우는 연기가 압권이다. 초등학교 때 엄마한테 혼날 일이 있었는데, ‘울면 혼내지 않겠지’ 하는 생각에 울었던 적이 있다. 그랬더니 진짜 혼내지 않으셨다. 그때부터 사소한 일에도 잘 울게 됐다.(웃음) 요즘은 안 그런다. 울 일도 별로 없고.

이른 나이에 연기를 시작해서 좋은 점도 있고, 어려운 점도있을 것 같다. 내 나이에 경험해보지 못할 것을 경험할 수 있고,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 신기하고 새롭고 좋다. 하지만 아직 경험이 적어서 표현하는 데 한계를 느낄 때가 있다.

연기를 위해서 해보고 싶은 경험이 있을까? 그냥 내 또래 애들이랑 똑같이 잘 지내면서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경험해보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영화에서 배우는 것이 완전히 다를 것 같다. 영화를 통해 어떤 것을 배우고 있나? 학교에서 지식과 교우 관계를 배운다면, 영화에서는 예의와 협동심을 더 많이 배우게 된다. 한 작품을 위해 다 같이 한마음으로 작업해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영화를 만드는 데는 엄청난 협동심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감독이 있나? 봉준호 감독님 작품에 출연하는 게 꿈이다.

<우리집>으로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 그 얘기를 했나? 떨려서 말 못했다.

안지호 BIFF

나를 알아가는 과정 속의 #이재인

이재인 BIFF
레이스업 원피스 레하(Leha), 안에 입은 흰색 티셔츠 아이디어(Idea), 비즈 네크리스 토요일(Toyoil).

이재인
<사바하> <우리들의 시간> <봉오동 전투>

상반기 <사바하>를 마친 이후에도 쉴 틈 없이 작품을 이어가는 중이다.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에 이어 <봉오동 전투>도 개봉했고, 곧 <아워 바디>도 개봉한다. 올해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나? 드라마 찍을 때를 제외하고는 무대 인사를 다니는 시간이 많았다. 이전에는 해본 적 없던 일인데, <사바하>와 <봉오동 전투>로 무대 인사를 다니면서 관객을 만나는 시간이 너무 좋았다. 처음에는 엄청 긴장했는데 갈수록 관객이 박수도 많이 쳐주고 반응이 좋으니까 자신감이 좀 생겼다. <사바하>로 한창 무대 인사를 다닐 때였는데, 인사하자마자 반응이 너무 좋아서 말을 하다가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무대 인사를 마친 뒤에도 마음이 벅차 한참 울었다.

확실히 <사바하>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고, 이를 배우 이재인의 대표작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바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영화인데, 그런 영화가 내 대표작으로 남는다는 것이 신기하고 감사하다. 아직도 얼떨떨한 기분이 남아 있다. <사바하>를 하면서 만난 ‘금화’라는 캐릭터도 좋았고, 감독님이나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도 좋았고, 열정 넘치는 스태프들과 같이 작업할 수 있었던 것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사바하>를 대표작으로 꼽아주시는 게 굉장히 감동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

<사바하>로 신인상을 무려 세 번이나 받았다. 혹시 수상 소감으로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하나? <사바하> 속 ‘금화’와 ‘그것’은 내가 만들어낸 인물이지만, 동시에 많은 분의 영향을 받아서 만든 캐릭터다. 그래서 금화와 그것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가장 많이 했다.

혹시 미처 못해서 아쉬운 말이 있나? 수상 소감 얘기할 때 반 친구들이랑 선생님을 빠뜨려서 친구들한테 불만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에 상을 탈 때는 반 친구들 이름을 꼭 말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다음에는 나에게도 말을 해주고 싶다. 사실 나 스스로 칭찬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남들이 해주는 칭찬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편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나도 날 한 번쯤 칭찬해줄 때가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바하>와 <아름다운 세상><봉오동 전투>에서 완전히 다른 인물을 연기했는데도 묘하게 세 인물 간의 접점이 있다. 보는 사람에게 연민을 갖게 만드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그동안 연기한 캐릭터들이 주로 슬픈 감정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린 배우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 폭넓지 않고, 슬픈 연기가 필요한 경우가 많아서 그런 것 같다. 그렇지만 모두 각각의 이야기를 가진 캐릭터를 표현할 수 있어서 좋았다.

박정민, 이정재, 유해진, 엄태구 등 여러 배우들과 호흡을 맞췄다. 같이 연기하는 배우들에게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을까? 말 그대로 어깨너머로 배우고 있다. 어떤 배우의 연기에서 좋은 부분을 바로 옆에서 보면서 ‘아, 이런 건 이렇게 하는구나’ 하고 조금씩 배우고 있다. 엄태구 선배님과 영화 <어른도감>을 함께 찍었는데, 능청맞은 캐릭터를 표현하는 방식을 보면서 ‘연기를 이렇게까지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태구 선배님이 촬영하기 전에 긴장을 풀기 위해 점프하는 걸 보고 나도 따라 해보면서 긴장을 풀어보기도 했다. 또 박정민 선배님이 눈앞에서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더 깊이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다.

작품을 해나가면서 조금씩 익숙해지는 부분이 있다면? 반대로 여전히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연기는 매번 새로운 것 같다. 항상 적응이 안 되고 카메라 앞에 서는 건 늘 떨리지만, 그나마 익숙해진 부분이 있다면 눈물 연기인 것 같다. 아무래도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많아서 이에 대해 계속 고민하다 보니까 지금은 나만의 작은 해답을 찾은 것 같다. 그런데 반대로 밝은 모습을 표현하는 건 어렵다. 어릴 때는 촬영이 되게 재미있고, 놀러 온 기분으로 하다 보니까 잘 나왔는데 이제 ‘나는 배우다. 꼭 잘해서 이제 보여드려야지’ 하는  책임감이 생기니까 오히려 어려워지는 것 같다.

혹시 본인을 캐스팅한 이유를 물어본 적 있나? 오디션을 볼 때마다 대본을 나름대로 세세하게 분석해가는 편이다. 이걸 장점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분석한 것을 설명 할 때 감독님들이 좋아해주시는 것 같다.

이른 나이에 연기를 시작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못해 아쉬운 건 무엇인가? 아직 내 성격을 잘 모르겠다. 성인이 되거나 자아가 확실히 확립되면 ‘내가 어떤 사람이다’라고 정의 내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은 그게 안 되는 것 같다. 나는 소심할 때도 있고, 되게 적극적일 때도 있고, 우울한 사람처럼 보이다가도 금세 밝아지기도 한다. 그런 부분이 혼란스럽지만 배우로서 연기할 때는 도움이 되기도 한다. 캐릭터에 따라서 이리저리 바꿀 수 있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역할에 따라서 내 인격 자체가 많이 흔들리면 안 되겠지만, 그런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인 것 같다.

빨리 성인이 돼 더 다양한 연기를 해보고 싶은가, 아니면 이 과정 자체를 조금 천천히 즐기고 싶은가? 성장하는 과정 자체가 즐겁다. 내가 이만큼, 여기까지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좀 뿌듯하기도 하고. 성급하게 쌓아가다 보면 무너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큰 변화를 주기보다는 천천히 나를 메워가고 싶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해보고 싶은 작품이 있나? 요즘 흥미 있는 장르가 액션이다.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하고, 스포츠도 굉장히 좋아하는데 요즘은 검도를 배우고 있다. 액션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 볼 때마다 되게 신기했다. 합을 맞추고 그런 부분에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 또 언젠가 내가 아주 좋은 작품을 쓰게 된다면, 내가 쓴 작품에 직접 출연해보고 싶다. 내가 썼으니까 내가 제일 잘 알 수 있고, 그래서 더 재밌는 작업이 될 것 같다.

이재인 BIFF

보통의 이민기

이민기 스타화보
베이지 롱 코트, 화이트 셔츠, 네이비 팬츠, 타이 모두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 블랙 로퍼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
이민기 스타화보
블랙 원 버튼 재킷, 도트 프린트 셔츠, 블랙 트라우저, 커머번드 모두 지방시(Givenchy), 메탈 디테일 블랙 로퍼 벨루티(Berl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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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지 싱글 브레스티드 재킷, 베이지 팬츠 모두 산드로(Sandro), 화이트 스니커즈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민기 스타화보

이민기 스타화보
다크 그린 더블 체크 재킷, 다크 그린 체크 트라우저, 하이넥 셔츠 모두 우영미(WooYoungMi), 블랙 워커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드라마 <모두의 거짓말>은 <뷰티 인사이드>가 끝나고 1년여 만의 작품이다. 연기하지 않는 시간 동안 뭘 하며 지냈나? 스스로도 의아할 만큼 뭘 하며 지냈는지 모른 채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뷰티 인사이드> 촬영이 끝나고 감독판 DVD를 위한 작업도 했고 동남아의 작은 섬으로 짧은 일정의 여행도 다녀왔다. 섬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고 가만히 누워 있기도 하고 그랬다. 외로움도 여행의 일부라고 생각하며 혼자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모두의 거짓말>을 일찌감치 제안받은 터라 홀가분하게 다른 일을 할 수는 없었다. 그동안 스릴러라는 장르를 크게 관심을 가지고 보지 않았기 때문에 장르에 대해 공부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금세 지나가더라.

작품을 하지 않는 동안 주어지는 많은 시간을 규칙적으로 보내는 편인가? 어릴 때는 깨어 있거나 자거나 노는 시간이 모두 그냥 내 시간이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하루를 규칙적으로 보내야 정신적으로 안정감이 들더라. 지금은 매일 아침을 운동으로 시작하는데, 운동을 하면 하루를 밝은 기운으로 시작할 수 있다. 호르몬의 영향도 있겠지만 좋은 에너지를 얻는 것 같다. 그런 다음엔 정해진 일을 한다. 그 주에 읽기로 한 책이 있으면 읽고 만나기로 한 사람이 있으면 만나고. 작품을 하지 않을 때도 되도록 루틴에 따라 움직인다. 하루가 정리되어 있어야 맘이 편하다. 전에는 정해져 있으면 갑갑하고, 규칙이 스트레스로 다가왔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를 최소한으로 잡아주는 어떤 틀이 있는 편이 좋다.

<모두의 거짓말>은 처음 하는 장르물이고 형사를 연기한다. 전작과 인물의 결이 많이 다를 것 같다. 사실 캐릭터는 크게 특별할 건 없다. 그래서 끌렸다. 장르물은 보통 사건 중심인데 <모두의 거짓말>은 사건을 따라가다 보면 사람한테 빠지는 드라마가 될 것 같다. 드라마나 영화 속 형사들은 보통 뛰어난 능력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머리가 비상하거나 모든 것을 기억하거나 그런 능력. 그런데 내가 연기하는 ‘조태식’은 지극히 보통 사람이다. 그 보통 사람이 어떤 사건을 맞닥뜨렸을 때의 느낌이 좋았다. 평범한 30대 후반의 형사가 되고 싶어 살도 좀 찌웠다. 전작인 <뷰티 인사이드>와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서 내가 연기한 인물은 사실 보통 사람이 아니지 않나. 굉장히 이상적인 인물들이다. 반면 이번에 연기하는 인물은 강인해야 할 때 강인하고, 여릴 때 여리다. 어떤 환경에 처했을 때 그 환경에 따라 대응하는 보통 사람이다.

스릴러라는 장르에 지금껏 큰 관심이 없었음에도 이번 작품을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가 뭔가? 우선은 이윤정 감독과의 인연. 감독님이 연출하는 작품이라기에 선뜻 시나리오를 받아 들었고 첫 장을 읽으며 꽂혔다. ‘훗날 이 시대의 비극이 뭐냐고 묻는다면 악한 이들의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이들의 침묵일 것이다.’ 드라마가 이런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고? 그렇다면 하고 싶다, 할수 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난 <마리끌레르>와의 인터뷰에서 캐릭터를 준비할 때 뭔가 손으로 끄적인다고 했다. 이번 인물도 그런 식으로 준비를 했나? 보통의 사람이어서 이번에는 특별히 끄적일 만한 내용이 없었다. 대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써봤다. 이 인물을 연기하는 동안 내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적었다. 아무래도 전작을 통해 습득한 것들이 있을 텐데, 그게 무언지 곰곰이 생각했다. 사실 그 모든 걸 종합하면 ‘멋있지 말자’다.

채우기보다 덜어내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 같다. 그렇다. 각 잡지 않고 지내려고 했다. 걸음걸이를 비롯한 여러 행동을 좀 헐렁헐렁하게 하려 했다. 또 스릴러라는 장르를 잘 알지 못해 관련 작품을 많이 찾아서 봤다.

대본 리딩을 할 때 이윤정 감독이 이‘ 계절이 좋은 계절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향하는 현장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일하다 보면 개인의 기분이나 컨디션도 굉장히 중요하지 않나. 그런데 내 개인적인 감정이 내 태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 작품을 위해서 모였으니 다 같이 좋은 마음으로 하자, 그런 마음으로 모였으니 우리에겐 좋은 계절이 될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정말 현장이 아름답다. 배우와 제작 스태프들이 그런 현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민기 스타화보
화이트 하이넥 셔츠 코스(COS). 블랙 울 팬츠 준지(Juun.J).

<모두의 거짓말>은 배우 이유영을 비롯해 많은 배우가 함께한다. 한두 명의 주연배우가 극을 이끌어가는 작품과 달리 여러 인물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가는데 이 역시 전작들과 다른 점일 것 같다.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나마 내가 상대하는 인물이 많은 편이다. 형사라서 수사하러 가면 국회의원들도 만나니까. 여러 캐릭터와 호흡을 맞추니 또 다른 재미가 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촬영하는 나조차 내용을 절반밖에 모른다. 나머지는 방송을 봐야 알 수 있다. 드라마는 보통 대략적인 분위기를 가늠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다. 대본이 어떻게 완성될지 궁금하다.

데뷔작인 <베스트극장: 태릉선수촌>(이하 <태릉선수촌>)을 함께 한 이윤정 감독과 하는 작업이니 문득 그 시절이 떠오르기도 할 것 같다. 그때는 감독과 배우 모두 지금보다 어리고 모든 것이 서툴던 때가 아닌가? 가끔 감독님과 그때 더 잘했던 것 같다고 얘기한다.(웃음) 10여 년이 지나 만났는데 그때 보다 훨씬 잘해야 할 텐데 부담이라고 했더니 감독님도 같은 마음이라고 하더라. 사실 이번에도 감독님과 내게 많은 것이 처음이다. 장르물도 처음이고. 그런데 우리 둘 다 그때와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나는 사실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까 감독님이 그때보다 조금은 권위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여전히 현장에서 다른 스태프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이 드라마는 모두가 함께 하는 일이야. 여기에 누구 하나 특출한 사람은 없어.’ 감독님은 이런 생각으로 현장에 있는다. 사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서로 그때랑 똑같다고 한다.(웃음) 그리고 감독님이 예민하게 지켜보고 반응하는 면도 여전하다. 아니, 그런 면은 오히려 더 좋은 쪽으로 변한 것 같다.

과거에 같이 일하며 좋은 기억을 남긴 사람과 다시 일하는 건 좋은 일일 것 같다. 아주 좋다. 일단 인간적인 신뢰가 있고. 같은 말을 해도 섞이는 감정에 따라 다르게 들리는데, 작품을 함께 하고 나면 서로 마음에 닿는 부분이 많아진다. 그래서 소통도 훨씬 편하고.

배우로서 <태릉선수촌> 때와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무언가? 그때는 연기하는 게 꿈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일 같다. 그래서 지금이 더 어렵고 힘들다. 꿈은 꾸면 되는 건데 일은 잘해내야 하니까. 마음의 무게가 달라진 것 같다.

배우는 현장에서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사람이자 한 작품을 다른 사람들과 같이 만들어가야 하는 위치에 있다. 작품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다짐하지는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확신할 것, 불안해하지 말 것, 그렇게 현장에 있을 것인 것 같다. 내가 그래야 함께 작업하는 스태프들이나 배우들도 굳건하니까. 드라마는 촬영 기간도 길고 힘들지 않나. 모두가 예민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런 현장에서 평온하게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내가 예민해지거나 지쳐 있으면 작품과 현장 분위기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겠지.

흔들리지 않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또 없다. 언제라도 예상치 못한 순간을 맞닥뜨릴 수 있으니 말이다. 가장 좋은 건 흔들릴 법한 작품을 선택하지 않는 거지.(웃음) 확신이 잘 서지 않을 때는 조심스럽게 다가가게 된다.

드라마는 영화와 달리 매회 끝날 때마다 반응을 알 수 있다. 그런 피드백이 배우의 연기를 흔들 수도 있고. <뷰티 인사이드>도 초반에는 배우 이민기가 설정한 연기를 놓고 호불호가 갈렸다. 그럴 때는 확신이 의문으로 바뀔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지 않았다. 확신이 있었거든. 초반에 주변 반응을 보고, 그렇다면 내가 캐릭터 해석을 다르게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캐릭터에 대한 내 해석이 맞다고 생각했고 이 인물을 다른 식으로 풀어야 했다면 이 역할을 맡지 않았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다행히 그런 마음이 잘 전달되었다. 내가 연기할 때 확신이 없는 채 긴가민가했으면 흔들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았다.

<태릉선수촌>의 마지막 회 소제목이 ‘봉우리’였던 걸 기억하나? 아마도 봉우리가 누군가의 목표, 선수들의 목표, 인간으로서의 목표를 의미했던 것 같다. 여전히 오르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뭔가? 운동선수들의 목표는 보통 세계 대회 금메달이지만 <태릉선수촌>에서 내가 오른 봉우리는 동메달이었다. 높은 봉우리를 오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내가 어떤 봉우리를 넘었다고 해서 다음에 넘게 될 봉우리가 꼭 더 높지는 않을 수 있다. 중요한 건 봉우리 자체보다는 어떤 봉우리든지 올랐을 때보다 올려다볼 때 설렌다는 거다. 그리고 그 설렘을 품고 봉우리를 오를 열정이 계속 솟으면 되지 않을까? 그러길 바란다.

열정이 여전히 충만한가? 열정의 방식이 다른 것 같다. 마냥 뜨겁지만은 않다. 20대에는 마냥 뜨거웠다. 열정과 열기를 방출했는데 점점 일로 다가오면서 신중해졌다. 이제는 무작정 열기를 표출하기보다는 좀 다듬어졌다고 해야 하나?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무던해지는 것 같다. 그게 좋은 점이기도 하고 때론 무던해져서 힘들다. 배우로서 좀 더 예민하고 날카로운 감성을 가져야 할 것 같은데 게으르고 나태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 다시 그런 내가 편하게 느껴지고. 상반된 마음이 교차한다. 나이 드는 것에 관한 책을 보면 ‘인생은 살수록 행복하다’고 말하는데, 그런 말에 수긍하다가도 오‘ 늘이 내가 가장 젊은 날이니 뭐라도 해야 하는데’ 하며 조급해진다.

<모두의 거짓말>로 함께하는 지금의 계절이 어떤 계절로 기억되길 바라나? 궁금한 계절이 되려나? 보통 드라마를 할 때 시놉시스를 보면 어떤 식으로 진행되고 끝맺을지 알 수 있는데 이번 작품은 이후 상황을 알려주지 않는다. 배우만이 아니라 스태프들도 모른다. 작가와 감독님만 안다. 우리 모두 모른 채 있기로 약속했다. 가끔 주인공이니 내용을 알지 않느냐며 나를 추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도 정말 모른다.(웃음) 그래서 기다리는 재미가 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해지고.

아직 드라마가 방영되지 않았지만 이 드라마가 끝나고 <모두의 거짓말>이 본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7개월 넘게 이 작품에 몸담고 이 작품을 위해 고민하며 시간을 보냈으니 그 시간만큼 넓어지든 깊어지든 혹은 무언가를 덜어내 가벼워지든 아니면 뭔가 쌓이든 풀어지든 했으면 좋겠다.

이민기 스타화보
라운드 칼라 반코트 누메로벤투노 바이 한스타일(N˚21 by Han Style), 블랙 울 팬츠 준지(Juun.J), 블랙 앵클부츠 코스(COS), 화이트 니트 스웨터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