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의 지점

이주영 배우
드레스 와이씨에이치(YCH), 오른쪽 이어 커프 레끌라(L’éclat), 이어링 캘빈 클라인 주얼리(Calvin Klein Jewelry), 왼쪽 이어링 레끌라(L’éclat).
이주영 배우
에나멜 재킷 클루드클레어(Clue de Clare), 오른쪽 이어링과 반지 모두 레끌라(L’éclat), 왼쪽 이어링 모니카 비나더(Monica Vinader),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주영 배우
윤세(Yunse), 퍼 코트와 팬츠 모두 키미제이(Kimmy J), 슈즈 자라(ZARA), 오른쪽 이어링과 이어 커프 모두 레끌라(L’éclat), 왼쪽 이어링 모니카 비나더(Monica Vinader).

9월 26일 영화 <메기> 개봉을 앞두고 있다. 요즘 20, 30대 관객 사이에서 <‘ 우리집> <벌새> 뛰고 2차로 <메기>로 간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 흐름이 반갑고 좋을 것 같다. 신기하다. 여성 감독이 만들고 여성이 주연한 영화가 한 해에, 그것도 시기적으로 이어서 개봉한다는 사실이 우연인가 싶다가도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그 덕분에 관객과의 대화(GV) 등 영화 관련 행사에 초대받을 일이 생겨서 주변 배우들과 감독님들 볼 일도 많아지고, 또 서로 도우며 연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즐겁고 계속 이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 감독의 여성 주연 영화를 반가워하는 관객이 전보다 많아진 걸 느끼나? 영화 <벌새>는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처음 봤고 이번에 개봉하고 한 번 더 봤다. <밤의 문이 열린다> 역시 지난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관람하고 이번에 개봉했을 때 또 봤다. 막상 상영관에 가면 여성 관객도 많지만 남성 관객 역시 많이 찾아 주시더라. 많은 관객이 여성 캐릭터의 새로운 점을 흥미롭게 보고 궁금해한다는 건 배우로서도 물론 좋지만 그보다 관객의 수요가 이런 식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현상 자체만도 반갑다.

영화 <메기>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됐고, 이 영화를 통해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했다. 더불어 시민평론가상, CGV아트하우스상, KBS독립영화상을 수상하며 4관왕에 오른, 이미 검증된 기대작이다. 부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오른 작품이라 작품상은 조금 기대했는데, 배우상을 받을 줄은 몰랐다. 내가 상을 받아도 되는 건가 싶어 얼떨떨했다. 무엇보다 이옥섭 감독님이 크게 주목을 받으며 입봉할 수 있게돼 함께 기뻐했다. 예산이 넉넉지 않은 영화라서 촬영하는 동안 고생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분이 궁금해하는 영화가 된 것 같아 나 역시 개봉이 기대된다.

이주영 배우
검정 터틀넥 코스(COS), 블랙 스커트 엠에스지엠(MSGM), 슈즈 엠포리오 아르마니(Emporio
Armani), 이어 커프 레끌라(L’éclat), 이어링 캘빈 클라인 주얼리(Calvin Klein Jewelry).

영화 <메기>의 장르는 ‘미스터리 펑키 코미디’다. 낯선 장르만큼이나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이 이 작품을 두고 ‘힙하다’고 표현하는데, 우리가 흔히 영화를 두고 힙하다는 평은 잘 하지 않는다. 영화의 어떤 점 때문에 이런 평을 받는다고 생각하나? 이옥섭 감독님이 그동안 연출한 단편을 보면 굉장히 독특하고, 우리가 익히 봐온 영화와는 그 문법과 결이 다르다. 이번에 첫 장편을 찍으면서 감독님이 공을 많이 들였고 이옥섭이라는 장르를, 자기 스타일을 잘 만들어내셨다. 아마 관객도 처음에는 ‘이게 무슨 영화일까’ 하고 궁금해할 것 같다. 나는 영화제나 개봉 전 상영회, 내부 시사 까지 포함해 다섯 번 정도 본 것 같은데, 작품에 참여한 배우인 나조차 서너번 봐야 아, 결국 이런 영화구나 하고 느낌이 오더라. 보시는 분들도 여러 번 보면(웃음) 감이 조금 잡히지 않을까 싶다.

N차 관람이 충분히 가능한 것이(웃음) 그 모‘ 르겠다’는 감상이 아‘ , 모르겠다’ 하고 끝내버리는 것이 아니라 ‘알고 싶다’로 이어지는 묘한 매력이 있는 작품이라. 이 영화를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 없던 영화가 나왔다는 반증인 것 같기도 하다. 개봉 전 영화제에서 <메기>를 본 분들이 남긴 감상을 많이 찾아보는 편인데 이 영화가 어떤 영화다라고 해석하고 정의하는 평보다 독특하고 그간 보지 못한 장르라는 평을 볼 때 되게 재미있다.

큰 맥락에서 영화 <메기>는 믿음과 의심에 관한 이야기다. 지독하게 믿는 편인가, 철저하게 의심하는 편인가? 둘 다 아닌 것 같다. 그러면 너무 피곤하다고 해야 할까. 우리 영화에서도 지독한 믿음, 철저한 의심이 결국 파멸로 이어지지 않나. 나는 평소 모든 것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려고 하는 편이다. 오디션을 봐도 내가 저걸 꼭 해내야지 하고 지독하게 마음먹기보다 하게 되면 내 것이고, 안 되면 다른 사람 몫이구나 하고. 순리대로.

작품에 참여하며 실제 믿음과 의심을 오간 적도 있나? 작품을 하는 동안에도 스스로 ‘지금 옳게 연기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심을 끊임없이  했다. 나는 잘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감독님은 좋다고 하는 것 같고, 다르게 해봐야 할 것 같은데 (구)교환 오빠도 괜찮다고 하는 것 같고. 언제까지 연기를 하게 될진 모르지만, 배우로서 자신에 대한 의심은 연기를 하는 한 계속되지 않을까. 그렇다고 연기는 의심만 가지고는 못 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어느 정도 합리적인 자신감은 있어야 한다. 의심과 자신감을 조절하며 연기하는 것 같다.

‘합리적인 자신감’을 구성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누가 잘한다 잘한다하면 잘하고, 못한다 못한다 하면 못한다.(웃음) 주변에서 잘한다고 하면 ‘내가 좀 괜찮나 오늘은?’ 하는 편이라 합리적인 자신감은 주변 사람을 통해 많이 얻는다. 주변에서 ‘너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면 그런가 보다 하며 쌓아가는 면이 있다.

의외의 대답이다. 그간 맡은 캐릭터가 그렇기도 하고, 배우 이주영 하면 어떤 역할을 해도 견고하게 보이는 면이 있다. 그리고 그게 딱 이주영 같은데, 본인의 실제 모습이 얼마큼 투영된 건가? 많은 분이 그렇게 봐주는 것 같다. 아주 친한 사람들조차 내가 견고한 사람인 줄 알거든. 나 스스로 되게 견고하고 단단해 보이고 싶어 한다. 약해 보이고 싶지 않아 애쓰는 것이 습관이 됐다고 할까. 이런 성격이 연기할 때 어느 정도 투영되지 않나 싶다. 나 역시 한없이 약해질 때가 있다. 그 기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아무것도 못 할 것 같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배우로서 입지를 다진 후에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던 중이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지치더라. 특별한 계기 없이. 조금씩 쌓여 있던 것들이 순간적으로 폭발한 것 같다.

언제였나? 1년 반 전? 그 시기를 견뎌내기 위해 그간 해보지 않은 걸 이것 저것 하며 노력해봤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흘려보내면서 괜찮아졌다. 신기한 것이 그런 힘든 순간이 내가 어떤 큰 타격을 받아서 오는 것이 아니고, 치유되는 것 역시 큰 노력을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거다. ‘사람은 모든 게 자연스러운 리듬이 있구나.’ 이 점을 느낀 시기이기도 하다. 물론 지금 엄청 좋다가도 갑자기 한두 달 뒤에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것 역시 체득하고 받아들이게 됐다.

그 혼란 속에서도 배우 이주영은 비교적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맡아왔다. 영화에 주체적인 여성이 등장한다는 건 얼마나 중요한 일이라고 보는가? 이제는 좀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본다. 2011년부터 독립영화를 시작했고 다양한 작품에서 많은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나 역시 때때로 어떤 시나리오가 좋은 시나리오인지 모르고, 어떤 작품이 좋은 작품인지도 모른 채 그저 ‘재미있겠다’는 판단만으로 작품을 맡은 적이 있다. 배우가 좋은 작품, 좋은 시나리오를 보는 눈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작품을 만드는 분들 역시 밝은 눈이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최근 들어 여성 배우들이 맡을 수 있는 다양한 캐릭터, 표현 가능한 스펙트럼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고 느낀다. 지금 시작된 변화가 앞으로 10년, 20년에 걸친 큰 흐름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 이렇게 변화하고 있고, 좋은 기류를 만들어내고 있다면 나를 비롯한 또래 배우들이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많아지지 않을까.

영화라는 세계 안에서 이주영에게 영감을 주는 여성은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나? 드라마, 영화 할 것 없이 요즘 현장에 가면 확실히 여성 스태프의 수가 많이 늘었다. 소위 현장에서는 힘을 써야 하고 그래서 남자가 필요하다는 말에 나 역시 그‘ 런가?’ 하며 동의한 적도 있다. 하지만 막상 일을 하다 보면 우리가 못 드는 장비를 들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제는 많은 사람이 현장에 남자가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것 같다. 그런 와중에 여자 스태프들 만나면 더없이 반갑고, 존경스럽고 감사하다. 힘들어 보이면 걱정되기도 하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여자이기 때문에 힘든 것이 아니라 남자든, 여자든 다 힘든 게 촬영 현장이니까. 촬영 팀이나 조명 팀의 여성 스태프도 몇 년 뒤에 조명감독, 촬영감독으로 만났으면 하고.

배우의 삶에서 여성이라는 한계를 처음 느낀 건 언제인가? 특정 사건이 있다기보다 시나리오나 대본을 볼 때 남자 캐릭터는 무척 흥미롭고, 작품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것 같은데, 내게 제의가 들어온 여자 캐릭터는 부수적이고 장치적으로 활용된다는 걸 느낄 때 한계를 느꼈다. 표현할 수 있는 폭이 워낙 좁아서 누가 해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을 때, 이 이야기에서 성별만 바꾸면 참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아쉽다.

배우에 대한 가치 평가가 매순간 뒤바뀌는 이곳에서 자신을 붙들고 서있기란 쉽지 않다. 자기 중심을 잡는 일, 그게 배우의 전부인 것 같다. 중심만 있으면 뭐든 하고 싶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중심이 흔들릴 때마다 힘들어지는 거고. 모든 일이 그럴 테지만 특히 배우라는 직업은 개인적인 성취나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객관적인 수치가 없다. ‘내가 이 정도 했으면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거지?’, 이‘ 렇게 하는 게 잘하고 있는 건가?’ 하는 의심도 자주 들 수밖에 없는 직업이다. 주변의 같은 일을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계속 성취가 달라지고, 그게 달라진다고 해서 지금 누가 더 잘하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내 중심을 잡고 있는 것, 그 자체가 이 일을 할 때 가장 필요한  일인 것 같다. 나는 질투가 없는 편인데 때때로 주변 배우 친구들을 보면 질투가 난다. 저 친구는 나보다 더 잘하고 있는 것 같고, 나는 뒤처지는 것 같고. 한데 그 친구는 오히려 나를 부러워하는 면이 있다.

중심을 잡으려면 매 순간 깨어 있고 각성해야 하는데 어디 그게 쉽나. 먼 미래를 보지 않으려고 한다. 5년, 10년 뒤에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힘들어지니까. 예상한 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는 거고, 뭐가 될지도 모르고.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는 엄청 유명한 배우가 되면 행복할까? 돈이 아주 많으면 행복할까? 둘 다 내가 바라는 바는 아니다. 그러니 지금처럼 하루하루, 하나씩 해나가는 일에서 최대치의 행복을 느끼려고 한다.

온갖 무례와 간섭을 뒤로하고 인간 이주영으로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연기를 하고, 배우를 직업으로 삼는 이유나 계기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다만 나는 연기할 때 가장 즐겁고, 그러니 계속할 것 같다 하는 정도의 추측을 할 뿐이다. 확실한 것은 내 강아지와 아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다. 요즘은 일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강아지다. 내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내 강아지도 행복하다. 사랑만으로 강아지를 돌볼 수는 없으니까.(웃음) 내 강아지와 가족,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것, 맛있는 것 먹이고 싶은 마음. 이런 욕구가 들 때마다 열심히 일해야지 하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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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옹성우

블랙 니트 톱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슈즈 프라다(Prada), 블랙 와이드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블랙 실크 셔츠, 블랙 재킷, 블랙 플리츠 팬츠, 라운드 버클 벨트 모두 생 로랑 바이 안토니 바카렐로(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러플 스카프 블라우스 구찌(Gucci).
오버핏 수트, 셔츠 모두 오디너리 피플(Ordinary People), 슈즈 손신발(Son Shinbal).

드라마 <열여덟의 순간> 속 위태롭고 미숙한 열여덟, ‘준우’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상황에 부딪히며 자신의 꿈을 찾고 미래를 내다 보며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준우를 만나며 연기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배우 옹성우 역시 조금씩 자신의 방식을 찾으며 성장했다. 기대에 찬 혹은 냉소적인 사람들의 시선, 마음처럼 되지 않았던 순간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했던 시간을 거치며 옹성우는 준우가 될 수 있었다. 그가 준우로 불렸던 5개월의 시간에 마침표를 찍는 날, 그를 만났다.

좀 전에 드라마 <열여덟의 순간>의 마지막 촬영을 마쳤어요. 내일이면 드라마가 마지막 회로 끝을 맺고요. 기분이 어떤가요? 아직 시원한지 섭섭한지도 모르겠어요. 실감이 나지 않아요. 내일도, 다음 주도 계속 할 것 같아요. 그나마 16부(마지막 회) 대본에 감독님이 배우마다 한 마디씩 써주신 걸 보고 ‘끝이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마지막 대본에 어떤 말이 쓰여 있었나요? 제게도 첫 작품이지만, 감독님에게도 첫 장편이거든요. 같이 시작하고 함께 해나갈 수 있어서 좋았다는 말을 써주셨어요.

감독님께 마지막 인사의 말을 어떻게 남기고 싶나요? 감독님을 만나서 다행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첫 작품을 하면서 부담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고민과 부담감을 내려놓을 수 있게 도와주셨어요. 현장에서도 편하게 연기할 수 있게 만들어주셔서 마음 놓고 할 수 있었어요.

어떤 지점이 부담으로 다가왔나요? 연기를 처음 하는데 주연이고,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독특한 매력을 가진 캐릭터라 어려웠어요. 처음 하는 작품에서 이런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을지가 부담스러웠어요. ‘잘하고 싶다, 연기를 잘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마음이 가장 많이 방해한 요소였어요.

준우를 표현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준비했나요?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외로움, 고독에 관해 생각하면서 혼자 시간을 보내봤어요. 혼자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거나, 혼자 자전거를 타고, 혼자 영화도 보면서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크게 도움이 되진 않았어요. 그보다 감독님이랑 준우라는 사람에 대해 대화하면서 이해하는 과정에서 얻은 것이 더 많아요. 생각해보니 제가 한 행동들은 스스로를 외롭게 만드는 거였어요. 그런데 준우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본인이 원해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외로운 아이가 된 거였어요. 그사실을 깨달으면서 준우를 받아들였어요.

준우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가장 어려웠던 점은 뭔가요? 저는 설명적이에요. 어떤 말을 하든 설명을 많이 붙여요. 그런데 준우는 설명을 하지 않아요. 감정을 꾹꾹 눌러 담다가 한 번에 얘기해요. 그래서 저와 준우가 내뱉은 말이 가진 힘의 차이가 굉장히 커요. 이런 부분을 표현하는 것이 어려웠어요.

어려울 줄 알면서도 준우라는 캐릭터를 연기하기로 마음먹은 이유가 있나요? 매력 있었어요. 전에 본 적 없는 느낌을 가진 것도, 성장해나간다는 점도 좋았어요. 저도 성장해야 하는 시기에 만난 준우의 이야기가 마음에 닿았어요.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외로운 아이가 사람들을 이해시킬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프린트 후드 코트, 셔츠, 팬츠 모두 발렌티노- 언더커버(Valentino-Undercover).
투톤 캐멀 컬러 코트, 안에 입은 러플 스카프 블라우스 모두 구찌(Gucci), 팬츠와 앵클부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카디건, 스트라이프 수트 모두 프라다(Prada).

준우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난 결정적 장면을 꼽는다면요? 기태(이승민)가 준우에게 “넌 이미 망친 인생이지만 나는 아니야”라고 말하자, 준우가 “기태야, 이미 망친 인생이란 건 없어. 우리 아직 열여덟인데, 너도 나도”라고 답하는 장면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이기도 하고, 준우의 마음을 잘 보여주는 말이 아닌가 싶어요. 아마 준우에게도, 저에게도, 그리고 모두에게 각자의 방식으로 와닿는 말일 것 같아요.

드라마 안에서 캐릭터의 성장도 있었지만, 연기하는 배우로서 개인의 성장도 있었을 것 같아요. 제가 스스로 성장했다고 판단할 수는 없지만 느낀 점은 있어요. 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 준비에 관한 얘기는 아니고, 다른 지점에서 잘못된 고민을 하면 안 된다는 뜻이에요. 예를 들어 어떤 신을 앞두고 눈물을 흘리고 싶고, 흘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현장에 가면 눈물이 안 나오더라고요. 마치 눈물을 흘려야 한다는 생각이 감정을 방해하는 것 같았어요. 오히려 감독님과 대화하면서 상황을 이해했을 때 저절로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신기했어요. 이런 건 연기하면서 잘못 하면 안 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했어요.

감독님과 많은 대화를 나눈 것 같아요. 그래서 다행이었어요. 처음에는 막연히 못해서 혼나진 않을까 걱정했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할 수 있어. 괜찮아. 편하게 해. 억지로 하지 마’라는 말을 계속 해주시면서 제가 어떤 의견이든 꺼낼 수 있도록 도와주셨어요.

어떤 식으로든 <열여덟의 순간>은 기억에 많이 남을 작품일 것 같아요. 5개월 동안 진짜 고등학생 시절을 보내는 것처럼 촬영을 했어요. 그래서 이 작품은 또 한 번의 고등학교 2학년을  보낸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아요. 저는 열여덟, 열아홉 살 때가 정서적 성장에 가장 중요한 시기였어요. 자아가 생기는 시기였고, 친구들과 많은 대화를 하면서 성장했어요. 그런데 그 기분을 지금 또 한 번 느낀 것 같아요.

드라마 <열여덟의 순간>은 옹성우가 등장한다는 사실만으로 시작부터 화제가 됐어요. 기대하는 시선도 있었고, 냉소적인 시선도 있었죠. 그런 시선이 연기하는 데 영향을 미쳤나요? 네, 많이요. 기대감도 있었을 테지만 그보다 제 팬들조차 걱정하는 마음이 컸을 거예요. 그런 부분을 신경 쓸 수밖에 없었어요. 대중의 시선뿐 아니라 촬영 현장에서도 한동안 ‘스태프들이 과연 나에 대해 만족할까’, ‘감독님이 내 연기에 오케이를 하실까’ 하는 걱정을 했어요. 어쨌든 내려놔야 할 수 있는데, 걱정한다고 좋은 연기가 나오는 게 아닌데 말이죠. 내려놓을 때까지 좀 힘들었어요.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 잘하고 싶은 마음이 강한 편인가 봐요. 강한 편인 것 같아요. 욕심도 많고요.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다만 그 지점을 잘 조절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열정도 중요한데 그게 잘못 가면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 같거든요.

결과적으로는 잘한 것 같나요? 마음이 복잡해요. 그래도 좋은 말을 해주는 분이 많아서 다행이에요. ‘잘했다, 뿌듯하다’가 아니라 정말 다행이었어요. 그 외에는 매 화 보면서 많이 아쉬웠고, 어떤 장면은 부끄러웠어요. 그럴 때마다 일부러 대중의 반응을 찾아봤어요. 내가 부끄럽게 느낀 지점을 확실히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힘들었지만, 그런 과정을 겪고 나면 발전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한번은 친구를 만나서 오늘 연기를 잘못한 것 같다고, 큰일이라고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친구가 ‘네가 그렇게 생각하면 못한 거겠지. 그래도 이렇게 고민하고 힘들어하니까 다음엔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고 말해줬어요. 그 말에 마음이 좀 놓였어요.

연기에 관한 반응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말이 있었나요? 이번 작품에 관한 해시태그 중에 ‘옹성우가 완성한 최준우’라는 말이 있어요. 그 말을 보고 크게 감동받았어요. 최준우라는 캐릭터는 결국 제가 완성하는 거지, 누가 완성한 걸 따라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최대한 제가 준우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어떻게 표현하고 싶은지를 생각했어요. 대단히 몰입해서 연기를 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런 마음이라도 표현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신기한 건 그런 마음이 한 번씩 준우에게 닿을 때가 있었다는 거예요. 낚싯바늘을 계속 던지다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감정이 준우에게 걸쳐질 때가 있었어요. 그때의 희열감을 잊을 수가 없어요. 사실 아주 드물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걸리는지 계속 던져봤는데 쉽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한 번씩 준우한테 닿을 때마다 참 고마웠어요.

드라마 속 준우의 얘기는 열여덟 살에서 끝나요. 준우가 되어본 사람으로서 준우의 미래가 어떻게 되길 바라나요? ‘지금처럼만 자라다오’ 하는 느낌이에요.(웃음) 준우는 하는 일마다 안쓰러워 보이는데, 또 기특하게 잘해내잖아요. 언젠가 좌절하고 멈추는 시점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지금의 준우라면 잘 자라줄 것 같아요. 그러면 좋겠어요.

‘준우야’라는 말 많이 들었죠? 내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기분은 어땠나요? 신기하게도 금방 익숙해졌어요. ‘준우야’ 하면, ‘네’가 바로 나왔어요. 내가 준우라고 할 만큼 깊이 몰입하진 못했지만 준우라고 불리는 게 좋고, 준우로 받아들여지는 데 거부감이 전혀 없었어요. 그냥 준우라는 아이가 좋았던 것 같아요.

배우라는 직업은 해보니까 어떤 것 같아요? 연기하는 재미를 찾았나요?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하면서 어렵고 힘들고 깊은 영역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재미있었던 건 사람에 대해 탐구하는 것이었어요. 친구들이랑 연습실에 모여서 ‘얘가 왜 이런 행동을 했을 것 같아?’, ‘원래 사람들은 가끔 이런 행동을 하잖아’, ‘사람이라는 건 이런 것 같아’ 같은 말을 하면서 캐릭터를 연구하는 과정이 좋았는데, 준우를 연기하면서 그 즐거움을 새삼 느꼈어요.

대학에서 공부할 때와 실제로 현장에서 연기를 하는 것은 차이가 있었을 것 같아요. 아는데 꺼내 쓰지 못하는 게 어려워요. 대학에서 배우고 이해했지만 막상 실전에서 써먹을 수 없었던 것을 기회가 오면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나중에 연기하면서 할 수 있겠다 싶었던 것들을 막상 현장에서는 전혀 못 하겠더라고요.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언젠가는 선택하듯이 꺼내 쓰면 좋을 것 같아요.

이제 배우라는 또 다른 직업이 생겼어요. 앞으로는 연기를 하는 동시에 무대에 올라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도 보여주게 될 텐데요. 춤추고 노래할 때와 연기할 때의 경계를 두고 싶나요? 처음부터 철저하게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고민해보지 않았을 정도로 제게 연기와 무대에 대한 고민의 지점이 완전히 달라요. 그래서 오히려 편하게 두 장르를 넘나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굳이 이럴 때와 저럴 때, 다른 사람으로 인식되길 바라는 마음도 없겠네요? 네. 다른 사람…. 연기를 하고 나니까 어려운 질문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전에는 ‘요즘 어떤 생각을 해요?’, ‘행복할 때는 언제인가요?’ 같은 질문을 받았는데, 연기에 관한 얘기를 하려니까 어렵네요. 말하면서도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게 맞나 싶을 때가 있어요.(웃음) 그런 생각을 잘 얘기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일 텐데, 아직은 생각하고 고민하는 시기인 것 같아요. 그 과정을 거쳐서 제 안에 담긴 것을 잘 표현하고 싶어요.

울 아우터 웨어, 레더 재킷 모두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BE BEWHY – 비와이 Preview

블랙 울 코트, 데콜타주 네크라인의 니트 풀오버, 실크 시스루 톱, 팬츠, 러버솔 부츠 모두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페도라 유니버셜 케미스트리(Universal Chemistry).
비와이 래퍼
화이트 자카드 재킷, 안에 입은 톱, 블랙 팬츠, 스카프 모두 김서룡(Kimseoryong), 첼시 부츠 던힐(Dunhill). 링은 본인 소장품.
메탈릭한 소재의 셔츠, 그레이 팬츠, CD 로고 벨트 모두 디올 맨(Dior 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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